찬양이야기
찬송가 442장 저 장미 꽃 위에 이슬
  • 주님과 동행함을 노래한 찬송 올해 우리 교회달력에는 마치 매월의 주제어가 새겨진 듯 단어가 한 가지씩 표기되어 있다. 1월의 단어가 ‘인내’였는데 많은 분들이 ‘신년축복 열두 광주리’부터가 인내의 훈련이었다고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 신년부터 힘든 일이 있어 낙심된 분들도 매일 보게 되는 이 달력의 ‘인내’를 보고 한 번 더 묵상하고 힘을 내어 인내했다는 고백도 들려왔다. 인내를 통과하고 나니 2월은 ‘동행’이다. 이번에 소개할 찬양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유독 ‘동행’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고, 마음에 주시는 찬양이 있었는데 이 찬양 역시 주와 동행함을 노래한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이었다. 인내를 통과한 우리 성도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2월이 되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찬송가의 작시, 작곡가인 마일스( Charles Austin Miles, 1868∼1946)는 1892년 약사의 길을 버리고 복음찬송가 작사자로 헌신하였는데, 어느 날 그의 음악동료인 아담 가이벨(Adam Geibel 1885∼1933)이 자신의 무남독녀와 결혼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위가 제철회사에서 근무하다 용광로가 폭발하는 사고로 사망하자 깊이 상심하였다. 어릴 적 열병으로 실명하였으나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신앙으로 찬송곡과 성가곡을 많이 작곡하고, <가이벨 음악출판사>를 운영하며 미국의 종교음악에 크게 기여한 가이벨이었는데, 그동안 험난하고 수많은 역경을 인내해온 자신에게 닥친 또 한 번의 비극에 믿음마저 연약해지려하자 친구 마일스를 찾아가 자신을 위하여 위로가 될 찬송시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마일스는 친구 가이벨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며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요한복음 20장을 묵상하던 중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 새벽의 한 장면에 영감을 받아 그 즉시 찬송시를 적었다. 안식 후 첫날 아직도 사방이 어둠에 싸이고 ‘장미꽃 위에 이슬이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어두움의 무서움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무릅쓰고 오직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향유를 들고 홀로 무덤에 찾아간 마리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한 슬픔에 울다가 인기척에 돌아보았으나 처음엔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의 시체라도 내주기를 간구하던 그때 들려온 음성이 있었다. “마리아야!” 순간 예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린 마리아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소리 지른다. “랍오니여(선생이시여)!” 자신을 부르는 그 음성 한 마디에 지금까지 그토록 괴로웠던 마리아의 괴로움은 다 가셨고 그의 울음은 멎었다. 주께서 그 곳에 계시므로 슬픔도, 눈물도, 고통과 아픔도, 죄도 다 사라지고 절망의 상황이 일순간 기쁨과 소망으로 바뀐 것이다. 이 극적인 순간의 증인이 된 듯 마일스는 그날 저녁 곡도 완성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80만장 이상의 레코드가 판매되는 등 그 어느 복음 찬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인내’로 한 해를 시작한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이제 ‘동행’하기 원하신다. 예수님을 정성껏 섬기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나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낸 마지막까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자 했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과 가장 먼저 동행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또한 부활의 기쁜 소식도 가장 먼저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므로 절망이 소망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는 동행의 은혜를 누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 은혜가 흘러 넘치도록 온전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고난 중에도 마음 속에 있는 강한 힘과 아름다움, 인내력과 고귀함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이 바로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 윌리엄 버클레이 우리의 모습 속에,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끝> 김정무 목사(찬양부장)
  • 2015.03.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찬송가 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모어 작사 · 그루버 작곡), 예수 탄생의 기쁨을 전세계 울린 찬송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을 멈추며 하나되는 기적도 가져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첫 소절만으로도 우리를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그 거룩한 밤으로 인도하는 이 곡은 1818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인 오벤도르프(Oberndorf)에 있는 성 니콜라스교회에서 시작됐다.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예배의 가장 중요한 도구였던 교회 오르간이 갑자기 고장 나자 그 교회의 보좌신부였던 요셉 모어(Josef Mohr, 1792∼1848)는 마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말로 예수 탄생의 신비를 써놓았던 자신의 시를 가지고 당시 초등학교 음악교사이자 그 교회의 오르간주자이기도 했던 프란츠 사버 그루버(Franz Xaver Gruber, 1787∼1863)에게 찾아가 작곡을 부탁한다. 그리고 비록 웅장한 연주를 해줄 오르간은 없지만 축복이 가득한 성탄전야에 성도들과 함께 조용히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기타에 맞추어 함께 부르자고 요청했다. 이렇게 탄생된 「고요한 밤(Stille Nacht)」은 1818년 12월 24일, 마치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그 밤처럼 작은 산골 교회에서 처음으로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 노래는 1825년 오르간 제작자인 칼 마우락허(Carl Mauracher, 1789∼ 1844)가 와서 오르간을 수리하기까지는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다. 오르간을 수리하러 온 마우락허는 오르간이 있는 2층에서 가사와 곡이 적혀 있는 「고요한 밤」의 악보를 발견하였는데 당시 그는 유럽에서 연주 여행하는 민속합창단들이 자주 왕래하는 티롤(Tyrol) 산골에 살았기에 악보를 베껴 가지고 이 노래를 스트라서(Strasser) 어린이 합창단에게 주었다. 합창단은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유럽 전역을 거쳐 차츰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14년 크리스마스에 아름다운 기적을 낳게 된다. 1914년 여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시간은 흘러 어느덧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왔고 밤은 점점 깊어갔다. 춥고 습한 참호 속에 웅크린 채 언제 있을지 모를 독일의 공격에 대비하던 바로 그때, 영국군들의 귀에 독일어로 부르는 낯익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 소리는 서서히 독일군 참호 쪽 전체로 퍼져가더니 합창처럼 전 전선에 울려 퍼졌다. 그 노래는 바로 <고요한 밤 가룩한 밤>이었다. 그러자 영국군 진영 쪽에서도 하나 둘 이를 영어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참호는 합창 소리로 가득 찼다. 한낮 동안 포격이 반복되던 전쟁터였는데 밤이 되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했다. 밤새 캐럴은 울려 퍼졌고 동이 터오자 한 독일 병사가 손에 총 대신 초를 매단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들고 영국군 쪽으로 다가와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영국군 측에서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마주 나가 반갑게 악수하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제야 지난 총격으로 양측 참호 사이에 무수히 널려 있는 병사들의 시체를 보게 됐다. 양측 진지 사이에서 쏘아대는 빗발치는 총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선 한 가운데 방치된 상태였는데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눈 이들은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내려놓고 전사자들의 시신을 거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 병사들을 묻을 땐 곁에 있던 독일군들이 기도하고, 독일 병사들을 묻을 땐 반대로 영국군들이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윽고 시체가 말끔히 치워지자 어디선가 들판 한가운데로 공이 굴러왔고, 양측 병사들은 편을 나누어 축구경기도 벌이고 기념사진도 찍는 등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시작된 크리스마스의 은혜는 이처럼 전쟁을 잠시 멈추게 하고 평화로 하나 되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성도들에겐 성탄의 의미가 하나의 교회절기나 세상 분위기로 즐기는 연중행사가 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 분열된 곳에 있는가? 내 안에 오신 예수님의 평안을 선택하자. 전쟁과 같은 마음의 소용돌이가 있는가? 평화하기로 결단하자. 전쟁을 멈추게 했던 최전선의 병사들처럼 성도들이 성탄절의 기적을 만들어가자! Merry Christmas! 김정무 목사(찬양부장)
  • 2014.12.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화니 크로스비(F. J. Crosby, 1820∼1915)
  • 생후 6주 만에 시력 잃었지만 평생 9천여 편 찬송 작시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평생 감사’ 생후 6주 만에 무면허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시력을 잃고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했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의 얼굴도, 들판의 꽃과 푸른 하늘, 아름다운 황금빛 별들도 결코 볼 수 없었지만 불과 8세의 나이로 이 시를 지었다. “난 얼마나 즐거운 영혼을 지녔는가!/ 비록 내가 볼 수는 없지만, 난 이 세상에서 만족하려고 결심했네/ 얼마나 많은 복을 내가 누리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이 복이 없으리/ 내가 장님이기에, 울고 한숨짓는 일, 난 할 수 없으리, 하지 않으리” 놀랍지 않은가? 어린 나이에 절대감사의 비밀을 깨달은 이 소녀의 고백이. 감사는 환경이나 감정 때문이 아니라 바로 ‘결단’하는 것임을 하나님은 이 작은 소녀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셨다. 이 소녀가 바로 9000여 편의 찬송시로 일생을 통해 은혜를 끼친 화니 크로스비(F. J. Crosby, 1820∼1915)다.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찬31장), ‘인애하신 구세주여’(찬279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장), ‘기도하는 이 시간’(찬361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찬384장), ‘오 놀라운 구세주’(찬391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찬435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찬540장), ‘예수께로 가면’(찬565장)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찬송가의 작사가인 화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다. 화니의 어린 시절, 생후 1년 만에 아버지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 21세에 과부가 된 그녀의 어머니는 남의 집으로 일하러 다녀야 했다. 화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외할머니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화니가 볼 수는 없지만,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그릴 수 있도록 성경말씀과 접목시켜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그녀는 정상적인 사람과 똑같이 볼 수는 없지만 환상을 통해 멋진 자연을 꿈꿀 수 있었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셨기에 늘 감사와 기도로 살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을 키울 수 있었다. 그 믿음은 어린 나이지만 그녀 마음에 깊게 뿌리내려 그녀가 아홉 살 때 기도하면서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했다. 또한 그녀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꿈을 찾던 중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송시를 쓰는 것을 꿈꾸게 됐다. 그녀는 시를 쓸 수 있도록 놀라운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일을 통해 큰 기쁨을 누렸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화니를 찾아와 주님께서 그녀에게 많은 은사를 주셨는데, 왜 시력은 주시지 않으셨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화니는 “목사님, 저는 하나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처음 보게 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길 원하거든요”라고 고백했다. 또 “당신이 처한 상황을 볼 때 감사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무엇이 늘 그렇게 감사로 가득 차게 하나요?”라는 어떤 성도의 물음에 그녀는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답니다”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화니 크로스비는 인간적으로는 한 평생 수많은 슬픔과 고통, 아픔을 거듭해서 경험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녀에게 천국의 소망과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사와 열정을 부어주셨다. 95세의 일기로 생을 마치기까지 화니는 찬양하고 간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늘은 감사절이다. 입으로 감사하던 삶을 청산하고, 지금 바로 매순간 조건 없이 ‘감사’하기로 결단하자! 당신이 선택한 ‘감사’가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다! 할렐루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 2014.11.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⑩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 고통속에서 다가온 평안을 고백한 노래 여객선 사고로 네 딸 한꺼번에 잃어 삶의 초점 주께 두면 하늘의 평안 임해 10월 첫째 주 성찬주일 때 이영훈 목사는 설교시간에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작사한 스패포드에 대한 이야기를 간증했다.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었기에 성도들과 다시 나누고자 한다. 호레이쇼 G.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는 시카고의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린드 대학교와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요 신학교 이사 및 운영위원이었다. 그는 유명한 전도자 무디(Dwight L. Moody)와 절친한 친구로서 무디교회의 회계 집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1871년 시카고에 대화재가 일어나 투자했던 부동산 등 그의 전 재산도 다 잃고 교회마저 완전히 불타버렸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스패포드는 자신의 집보다도 불타 없어진 교회를 어떻게 하면 빨리 다시 건축할 수 있을까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부인 안나 스패포드가 충격으로 병약해졌기에 환경을 바꿔보라는 의사의 권유로, 쉼도 얻고 마침 영국에서 있던 무디 집회도 도울 겸 1873년 그는 그의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가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와 여러 가지 처리할 일들로 부인과 딸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뒤따라가기로 했는데 출항한지 7일 뒤인 1873년 11월 22일 새벽 2시, 부인과 딸들이 탄 프랑스 여객선(Ville de Havre호)이 영국 철갑선 라키언(Lochesrn)호와 정면충돌하면서 승객 226명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고로 인해 갑판에서 아내와 함께 무릎 꿇고 기도했던 스패포드의 네 딸들은 모두 사망했고, 스패포드의 아내만 실신한 상태로 구명정에 의해 구조됐다. 그의 아내는 9일 후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Cardiff)에 도착한 후 남편인 스패포드에게 “홀로 구조됨”이라는 짤막한 전문을 보냈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많은 동료들이 그를 위로하자 그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주님만 의지할 수 있게 되어서 나는 기쁘고 감사합니다”라고 믿음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홀로 생존한 아내를 만나러 배를 타고 가는데 네 딸을 잃은 사고해역을 지나자 사랑하던 딸들을 잃은 슬픔과 아픔이 북받쳐 선실에 들어와 울면서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하며 밤새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중,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열왕기하 4장 26절을 떠올리게 하신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죽은 아이를 두고 믿음으로 평안하다 고백한 수넴 여인의 그 ‘평안’이란 단어가 그의 마음에 큰 은혜로 다가와 그는 다시 마음을 돌이켜 주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믿음의 고백을 시로 적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기에 우리는 환경이 어렵거나 문제가 있다 해도 예수님으로 인해 평안할 수 있다. 나의 모든 초점을 주님께 맞추면 주님이 내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내 영혼을 지키시고 나의 범사의 문제 또한 주님의 방법대로 가장 선하게 해결해 주신다. 오늘 인생의 많은 문제와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성도들도 믿음으로 “내 영혼은 평안하다!”고 선포하시고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감사함으로 승리하시길 기도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김정무 목사(찬양부장)
  • 2014.10.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마귀들과 싸울지라 (찬송가 348장)
  • 영적전쟁에서 마귀와 담대하게 싸워 승리해야 보통의 경건하고 은혜로운 분위기의 찬송들과 달리 마귀에 대적해 싸우라는 직설적이고 전투적인 가사가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이 찬송가는 앞서 다루었던 찬송들과는 다른 특징적인 사항이 있다. 콘트라팍투어(Kontrafaktur)라고 하여 일반적으로 종교적 가사를 민요나 민간 음악 등 비종교적인 가락에 얹어 찬송을 만드는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정통 가톨릭 미사의 라틴어로 된 난해하고 회중들이 알 수 없었던 찬양을 더 많은 회중들에게 은혜를 끼치고자 루터가 회중이 이미 알고 있는 민요나 대중가요의 곡조에 찬송시를 부르게 했던 데에서부터 본격화 됐다. 그 중 하나인 ‘마귀들과 싸울지라’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존 스테프라는 사람이 소방대원으로 있는 친구의 부탁으로 1852년에 소방대원 행진곡으로 작곡했는데 그 뒤 이 가사를 캠프집회에서 ‘Oh, Brothers, Will You Meet Us on Canaan’s shore?’(오 형제여 가나안의 행복한 강가에서 만나야죠?)로 바꿔 부르게 됐고 캠프 전도 집회를 통해 전국에 퍼지게 됐다. 그러다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경쾌하고 쉬운 멜로디 때문인지 남군은 남군대로, 북군은 북군대로 이 곡조에다 군가 가사를 붙여 불렀고, 1861년 여류시인 줄리아 하우가 ‘재림주(再臨主)로 오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찬송시를 써서 이 곡에 붙여 19세기 미국 찬송가에 거의 다 실렸을 뿐 아니라 오늘날 미국에서 널리 불리우는 ‘Battle Hymn of the Republic’(공화국 전승가)이 됐다. <우리 주님 영광 중에 이제 재림하신다 / 분노의 포도주를 모두 밟고 오신다 / 심판주의 번개 같은 칼이 번뜩이누나 예수님 오신다 / <후렴> 영광, 영광 할렐루야! / 예수님 오신다> 그러나 우리 찬송가에 실린 가사는 이 가사가 아닌 일본의 미다니 다네끼지 목사가 붙인 ‘마귀들과 싸울지라’의 가사다. 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찬송가 350장 ‘우리들이 싸울 것은’의 작사자이기도 한 미다니 목사는 일본 홀리네스교단 초창기 찬송가를 편집한 사람으로서, 미국 선교사 페리 목사에 의해 전도 받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좋은 직장인 외국상사에서 통역을 하며 살다 선교사의 간청에 의해 전도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당시 불교인들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살려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찬송을 부르며 노방전도를 했는데 그 찬송을 듣고 모여드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며 사람들이 금세 복음을 배울 수 있도록 <창가(唱歌)>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복음창가(福音唱歌), 1901>를 출판하게 됐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오늘 소개한 ‘마귀들과 싸울지라’인데, 미다니 목사는 먼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불리어지고 있었던 이 곡을 선교사로부터 소개받고 그 곡에 누구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지만 영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다른 찬송에서 잘 쓰지 않는 마귀들과 싸움, 심판, 멸망이라는 조금은 과격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작사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마주한 영적전쟁 가운데 미다니 목사의 고백처럼 우리는 담대하게 마귀와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 세속의 가사가 붙어 떠돌아다니던 이 곡조에 은혜의 찬송시가 붙어 세상과 구별된 귀한 찬송이 된 것처럼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승리를 날마다 선포하는 구별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김정무 목사(찬양부장)
  • 2014.09.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날 고치소서(김도훈 작사·작곡 )
  • 치료의 은혜 간구하는 마음 담아 찬양으로 완성 얼마전 제9회 ‘THE HOLY SPIRIT’ (구 606 전국청년부흥대성회) 성회가 ‘The Kingdom of God-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일산 킨텍스에서 있었다. 청년들은 이 성회를 준비하기 위해 뜨거운 기도는 물론이고 교회 주변에서 티셔츠와 기념 찬양CD를 팔고 있었다. 필자도 티셔츠 한 장을 사려고 다가서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의 새 찬양이 들려왔다. 바로 이영훈 목사님의 목소리였다. 목사님이 직접 부르신 곡이었던 것이다. 많은 곡들 중 목사님께서 선택하셔서 직접 부르신 곡이라 그런지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울림이 있어 이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보혈을 지나>의 작사, 작곡자로 알려진 우리교회 대학청년국 프뉴마선교회 부장으로 시무하고 있는 김도훈 목사님의 새 자작곡이다. 김도훈 목사님은 이 찬양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새벽 설교를 마치고 나오던 길이었습니다. 성전 앞에 서 계신 한 성도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왠지 저를 기다리신 것 같은데, 선뜻 다가오시지는 못하고 머뭇머뭇거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제가 먼저 다가가 물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잠시 머뭇거리시던 성도님께서는 귀 기울여 들어야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말기암 환자입니다. 오늘 새벽 설교를 듣는 중에 기도를 받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주셨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머뭇거리고 있네요…’ 말씀을 듣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수기도를 위해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기도가 아닌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날 고치소서… 주님의 손으로… 못 자국 난 손으로 고쳐주소서 날 고쳐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그 오른손으로… 날 고쳐주소서’ 그렇게 마음에 새겨진 노래를 악보로 그리고 나누게 된 곡입니다” 오늘 우리는 연이어 들려오는 참으로 가슴 아픈 사건들로 가슴을 저미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사회의 문제 이전에 개인의 가정, 사업, 자녀, 질병의 문제와 해결되지 않아 마음의 근심을 더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기도하고 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죽음 이후의 천국을 선물로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의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의 삶을 누리길 원하신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주시고, 혈루병 앓는 여인에게 구원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남은 생을 은혜로 누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친히 고쳐주셨듯이 우리는 이 찬양의 고백처럼 진심으로 이렇게 간구해야 한다. 날 고치소서! 주님의 손으로… 못자국 난 손으로 고쳐주소서! 나의 영혼을, 나의 육신을, 이 나라를, 이 세계를 고쳐주소서! 김정무 목사(찬양부장)
  • 2014.08.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 94장)
  • 시를 읽고 성령의 감동으로 완성된 찬송 조지 비벌리 쉐아(George Beverly shea)는 캐나다에서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교회보다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쳐오게 되어 다니던 학턴 대학(Houghton College)을 휴학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상호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중 한 방송국 편성부장을 알게 됐고 조지의 노래실력을 안 방송국 편성부장은 조지에게 NBC스튜디오에서 1500명의 방청객과 전국의 청취자들 앞에서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는 중후한 베이스 바리톤(Bass-Baritone)의 목소리로 “가라 모세(Go down Moses)”라는 곡을 불렀는데 상상 외의 큰 호응을 받아 하루아침에 인기가 급상승하게 됐다. 이에 방송국 편성부장은 즉각 조지에게 정기 출연을 요청했다. 그는 스타가 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많은 돈을 벌어서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벗어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은 기도하시는 부모님과 의논하기로 하고 선뜻 결정하지 않았다. 조지는 부푼 꿈에 마음이 술렁여서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 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좇아가다 자칫 신앙에서 멀어질까 염려되어 간절히 기도한 후 평소 자기가 애송하던 한 복음 성시를 그에게 내놓았다. 그 시는 시카고 나사렛 감리교 목사 부인 레아(Mrs. Rhea F. Miller) 사모가 1925년에 쓴 시로 지금의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찬송가사이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 큰 재물을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의 것 되겠네 큰 집과 넓은 땅 갖느니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 못 박힌 손에 이끌림이 차라리 나으리라 이 시를 읽은 조지는 주님이 조지에게 주시는 응답임을 알았지만 꿈꾸던 성공의 기회를 포기해야함에 많이 힘들어하며 고민했다. 그러나 그 길은 주님을 섬기는 길이 아님이 분명했기에 방송제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어느 주일 아침, 교회에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던 중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말씀이 있었는데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가지리”라는 그 성시였다. 그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가득 차 찬송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가 됐다. 그 후 조지는 빌리 그레이엄 전도단에 들어가 주님의 종으로 노래하는 전도자가 되었고, 어디를 가든 주께서 그를 인도하실 때 도구로 삼으셨던 이 찬송을 불렀다. 조지의 인생간증이 담긴 이 찬송은 술에 취해 방황하던 사람, 자살하려던 사람, 전쟁터에서 등 듣는 사람의 마음에 큰 변화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나의 주권을 내려놓고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한 제자들처럼 그리고 조지처럼 비록 작게는 자신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믿음의 결단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쁘게 받으사 주님을 택한 그 남은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져주셨다. 또한 그 인생이 은혜와 전도의 도구가 되는 하늘의 영광도 선물로 더하셨다. 오늘 나의 기도제목은 어떠한지 돌이켜보자. 매 순간 이 땅에서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위해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한다. 찬양부 김정무 목사
  • 2014.07.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⑥ 빈 들에 마른 풀같이(찬송가 183장)
  •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고백 이 찬송가는 19세기말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 선생과 같이 활약한 부흥사인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다니엘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목사가 에스겔 34장 26절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showers of blessing)를 내리리라”에 근거하여 작사한 찬송시에 당시 무디 전도단의 음악을 담당한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 1840∼1907) 목사가 곡을 붙여 ‘축복의 소낙비’(Showers of Blessing)라는 제목으로 《복음 성가집》 ‘Gospel Hymns No.4, 1882’에 처음 발표한 곡이다. 이 찬양의 은혜로운 가사는 다니엘 휘틀 목사의 삶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신실한 기독교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21살 때에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입대하여 전투하던 중 팔에 심한 부상을 입고 오른팔 절단으로 군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무료한 입원기간동안 어머니가 배낭 안에 넣어주셨던 신약성경을 읽게 된 그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주님을 통해 구원받는 길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던 어느 밤, 죽어가는 청년이 몇 시간째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을 찾고 있으니 가서 기도를 해달라는 간호사의 부탁을 받게 된다. 그는 자신도 기도할 줄 모르고 죄인 된 사람이라고 거절했지만 간호사는 휘틀이 성경 읽는 것을 보았고, 그가 이 병실에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간절히 부탁했다. 휘틀은 그 간곡함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죽음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청년 앞에 서게 된다. 그 청년은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죄악 된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대신 용서를 빌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청년의 간청을 듣고 있던 휘틀의 귀에 “휘틀, 너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알고 있으니 무릎을 꿇고 네 주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저 청년을 위해 기도하여라”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휘틀은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먼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 후 하나님께 청년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드렸고, 그 청년은 휘틀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기도를 듣다가 숨을 거뒀다. 휘틀은 이 일을 통해 주님께서 자신을 주님께로 인도하시려고 이 청년을 사용하셨다는 것과 또 그 청년을 주님께로 데려가시려고 자신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조금씩 변화하게 됐다. 그 후 전역하여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참석한 무디 부흥집회에서 비로소 자신의 영혼이 빈들의 마른풀 같이 시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갈급한 심령이 되어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전도단에 가입하여 미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가 된다. 또한 ‘아 하나님의 은혜로(310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407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358장)’ 등 200여 편이 넘는 은혜의 찬송시를 지어 하나님의 복음에 은혜를 더했다. 성령님은 이 찬양의 가사처럼 간절히 기다리고 갈급한 심령 위에 성령을 부어주신다. 때론 휘틀 목사처럼 우리가 빈들의 마른 풀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진다면 휘틀 목사처럼 내 영혼이 빈들의 마른 풀 같이 시들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시라고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주님께서 주신다 약속하신 성령의 단비는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그 소산을 내어 그 땅에서 평안하게 하는(겔 34:27) 새 생명이기에 우리는 한 주일의 성령강림절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이 성령강림절이 되도록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한다.
  • 2014.06.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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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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