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Think! 인생 Thank!
평생 어부바 ... 나는 ‘하나님 껌딱지’
  • 우리가 기대고 의존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지키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특집으로 <금쪽같은 오둥이>가 방영됐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다섯 쌍둥이라니 놀랄 일이다. 약 6000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났으니 기적 같은 일이요 좌충우돌 육아일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다섯 아이들은 각자 그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치명적인 눈웃음의 소유자, 포동포동 튼튼이, 할머니 껌딱지, 호기심 대왕, 수다쟁이라고 불린다. 그중 제일 약하게 태어난 할머니 껌딱지는 울면서 할머니만 찾는다. 독수리 등에 업혀 출애굽 할머니는 이 아이만 볼 수 없으니 껌딱지를 포대기에 싸 어부바를 한다. 보채고 울던 아이는 할머니 등에서 편하게 안겨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든다.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면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어부바한 것처럼 누가 날 좀 업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압제에 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았다. 애굽인들에게 어떠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것을 이 악물고 해야 했다. 그들이 산파에게 태어나는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했고,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 하면 그렇게 해야 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켰고 홍해의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다(출 14:15~31). 또 바위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가능하게 하셨다(출 16~17장).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업으셨을 뿐이다.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야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의존할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 우리는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 의존한다는 것이 ‘약하다, 비굴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려 하고, 나이가 들어선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후를 준비한다. 성경에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등으로 끊임없이 ‘의존적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며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의지의 종교”라고 전한다. 이 의지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그런 의지, 영어의 ‘윌’(will)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대려는 그런 의지 ‘디펜던스’(dependence)라고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이다. 할머니 껌딱지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무엇이 불편한지 배가 고픈지 바로 알아차리며, 불안하고 겁날 때 등에 업히면 편안하고 안정을 주는 신뢰의 존재였다. 2023년 우리에게 들리는 뉴스들은 금리가 오르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집값은 계속 내리고, 코로나는 전혀 종식되지 않는 불안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불안은 돈을 쌓아두게 되고 사람을 의지하며 미래를 알려주는 점집을 찾아가게 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이 아니라(시 135:15)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다른 것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불안하고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하나님 야훼의 눈동자가 우리를 지키시는데 그것도 연초부터 연말까지 365일 지키신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으로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적셔졌으며, 적절한 때에 내려주심으로 가나안 땅의 3대 산물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얻게 하셨고 가축을 위한 풀도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신 11:11~15). 땅이 좋아 풍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이다. 2023년 우리에게 펼쳐질 날들의 예상 시나리오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어부바 해주시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유대인들이 아기를 목욕시킬 때 하는 기도문이 있다. 이걸 좀 변형해서 조석(朝夕)으로 기도하면 좋겠다. 이 기도문의 핵심은 내가 누구를 기대고 살아야 하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제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소서 / 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복된 말이 되게 하소서 / 제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게 하소서 / 제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 제 가슴에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품게 하소서 / 제 오장육부가 건강하여 튼튼하게 하소서 /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 교만한 자리에 앉게 마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소서 /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Think! Thank! Q1. 하나님이 언제 어부바를 해주셨으면 좋겠나요? Q2. 당신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나요? Q3. 이 말씀을 가족과 함께 암송해 보세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1.06

    영적 자서전 …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 재구성
  • 2022년 되돌아보니 곳곳에서 하나님과 조우(遭遇) 새로운 시야로 인생의 목적과 방향 돌이킬 수 있어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 창 밖의 겨울 나무를 바라보듯 / 한 해의 마지막 달인 / 12월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뿌리를 내렸나요? /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 오늘을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 더 밝게 눈 뜨기 위해” 이해인 시인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22년을 보내려 하니 여러모로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새롭게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때마다 하나님과의 조우(遭遇)를 기억하며 그분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영적 자서전 … 영성 훈련일지 보통 유명한 사람이 지나온 삶에 대해 쓰는 걸 자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매일을 기록한 일기나 성찰일지를 쓰고 모으면 이것도 자서전이 될 수 있다. 자서전은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영성 훈련일지이다. 자신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쓴 사람 중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록』(Confessiones)이 가장 유명하다. 어거스틴은 책에서 “내 영혼의 의사이시여, 내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고백을 하고 있는지 나로 하여금 확실히 알게 하소서. 당신은 내 과거의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 주셔서 신앙과 성례로 내 생을 변화시키셨고 당신 안에서 행복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내 고백을 읽고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감명을 받고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자서전(spiritual autobiography)은 첫째로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을 홀로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영적 자서전은 하나님을 공동 주연으로 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기록하다 보면 그 어떠한 것도 그냥 일어나거나 발생하는 일들은 없다. 영적 자서전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올 한 해 일어났던 고통, 아픔, 시련, 감격, 축복, 후회 등 이 모든 것들의 숨은 의미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셋째, 영적 자서전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태도가 있다. 바로 감사다. 되돌아보며 … 하나님과의 조우 자서전 쓰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연대기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삶의 어떤 중요한 주제들을 정리해 나가기도 한다. 맥아담스(Dan P. McAdams)는 이 두 가지를 통합시켜 시간과 주제의 양면성 속에서 개인의 영적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였다. 실제로 써보려면 우선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첩을 열어 시간, 사건별로 사진을 선택해 그 밑에 제목을 적어보자. 결혼, 사별, 취직, 유학 등 외형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수 있고, 지나가던 사람과의 우연한 대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작은 책, 지하철을 기다리다 무심코 읽게 된 하나의 시일 수도 있다. 1월 인생 첫 침례, 3월 병원 입원 등 자신에게 있었던 내용들을 적어보자.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지 등을 써 내려간다. 이때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 선생님 등을 들 수 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책이나 학문을 통해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견디기 힘들었던 광야의 시간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부어주신 축복, 때마다 결정하고 선택했던 순간들을 통해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을 재구성하면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들(the meaning of life)을 알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과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써 내려 가게 된다. 모든 것이 … 다 은혜였다 신명기 8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 자서전과 같은 책이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온 광야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함을 알려주신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살려주셨다. 사도 바울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고백하였다. 2022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Think! Thank! Q1. 월별로 어떠한 일들이 있는지 나열해 보세요. Q2.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기억하게 된 시기, 사건이 있으신가요? Q3. 바울의 고백처럼 2022년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해 보세요(고전 15:10).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12.09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
  • 쉬운 성경들 통해 어려운 단어 쉽게 이해해
    단순한 읽기 뛰어 넘어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해 지난 8월 한 웹툰 작가의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주최 측은 ‘심심한’ 사과의 뜻을 밝혔는데,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한데 무슨 소리냐”라는 트윗이 쏟아졌다.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의미의 ‘심심하다’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교사가 한 학생에게 ‘좀 고지식한 면이 있는 것 같다’라고 면박을 줬는데 오히려 학생은 기뻐했다. ‘융통성이 없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지칭하는 고지식(固知識)을 ‘지식이 높다’(高知識)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짧은 채팅 위주의 대화가 습관화되면서 어휘력과 표현력 즉 문장을 이해하는 ‘문해력’의 저하가 심각해졌다. 여기에 무분별한 신조어 사용으로 기본 단어에 대한 무지를 가져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애써 찾아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읽기는 어떨까? 옛날말로 쓰여진 고리타분한 책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의 세계와도 같다. 하나님의 러브레터인 성경을 어떻게 하면 단어 해석에서 넘어지지 않고 달콤하게 읽을 수 있을까?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독서 또는 읽기를 뜻하는 ‘렉시오’(Lectio)와 거룩, 신성을 의미하는 ‘디비나’(divina)의 합성어이다. 거룩한 독서를 의미하는 말로, 성경 본문을 눈으로 읽고 마음에 곱씹으면서 좀 더 주님을 깊게 만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성경 속 단어가 생경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단어를 일상적인 용어로 풀어낸 성경을 읽으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이나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을 추천한다. 요즘은 핸드폰에서 다양한 종류의 성경 앱을 내려 받아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다. 갓피플성경어플, 홀리넷 등에 들어가면 개역개정과 비교해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편 8편 4절에 인자(人子)를 사람의 아들, 우리로 풀어쓴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개역개정)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새번역)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걱정하시고 우리 인생길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살뜰히 살피십니까?”(메시지 성경) 거룩한 독서의 순서 현재 읽고 있는 성경 본문이거나 『감사큐티 365』를 본문으로 시작하면 된다. 본문의 분량 제한은 없지만 최소 4절에서 최대 10절 사이로 읽기를 권장한다. 추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정독 묵상과 깨달음을 위해 성령을 초대하는 짧은 기도를 여러 차례 드린다.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입니다” 그 뒤에 성경 본문에 관심을 집중하여 온 마음으로 꼼꼼하게 편견 없이 정확하게 읽어 나간다. 2) 묵상 본문에서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단어나 구절이 무엇인지 주목하면서 자신의 삶의 어떠한 부분과 연결되는지를 생각하고 정리한다. 이 단계에서는 주님이 참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묻고 계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갈망하게 된다. 3) 기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게 되며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해 더더욱 하나님과 친밀한 내적 대화를 나누게 된다. 4) 관조 특별히 무슨 생각이나 궁리를 하기보다는 그냥 말씀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의 생각에 자신의 마음을 얻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과 모든 사건을 보게 된다. 어디에서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기독교인이니 성경을 일독해야지 말씀 안에서 위로를 받아야지”라고 읽기 시작한 성경읽기가 어려운 단어로 성경책을 덮기도 하지만 나를 넘어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한다. 단순히 정보를 얻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변화로 나아가게 한다. 칼 바르트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통해 성경 읽기를 “어둡고 통제된 창고에서 나와, 확 트이고 햇살이 비치는 바깥세상으로 들어서는 것”이라 설명한다. 유진 피터슨은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 우리는 전적으로 낯선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구원의 세상이 끝도 없이 우리 위로 그리고 우리 너머로 펼쳐져 있는 그러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읽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보다가 펴놓은 로마서 13장을 읽다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성자가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읽다 은혜를 받고 중세의 죽은 교회를 살려내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말씀을 읽고 자신을 넘어선 구름 같은 증인의 대열에(히 12:1) 이번엔 당신이 설 차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Think! Thank! Q1. 성경을 읽을 때 단어의 뜻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나요? Q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에서 뛰어넘어 당신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Q3. 렉시오 디비나의 순서를 적어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10.07

    ‘쉼’ 모든 것에서의 ‘그침’
  •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 되심 기억하고 ‘쉼’을 통해 소명 발견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 해야
    ‘번아웃’된 그대 “월급만 빼고 다 올랐습니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 금리 환율이 모두 상승하는 ‘3고(高)’에 접어들면서 월급만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코인, 주식 등이 폭락하면서 ‘빚투족’(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의 곡소리 또한 여기저기서 들린다. 해결되지 않는 빚의 무게로 자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동반자살을 하는 등 가슴 아픈 뉴스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휴가철을 맞이했지만 삶의 불안과 고민으로 편안한 쉼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행여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충전 없이 달리기만 하면 엔진 과열이 일어나 억지로 멈춰지게 된다. 우리도 스스로를 살펴보고 쉬어주지 않으면 탈진하게 되는데 이를 번아웃(burnout)이라 한다. 이 단어에는 ‘에너지를 소진하다, 다 타다, 가열되어 고장이 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 소진하여 번아웃되지 않게, 우리에게 진정한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쉼에 대한 오해 막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무조건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스케줄을 빡빡하게 짠다. 열심히 여행을 다니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체력을 보충한다며 하루종일 잠을 자기도 한다. 당장은 쉬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피로가 더 쌓일 뿐이다. 휴식(休息)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어 휴(休)를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일을 멈추고 그늘 드리운 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을 말한다. 『휴식』의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휴식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카피라이터 정철 역시 “충전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 많고 복잡하고 많이 듣고 눈에 무언가를 많이 담는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쉼 지쳐있는 당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자신의 짐이 덜어지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여기서 ‘수고하고’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계속하여 지친 상태를 말한다. ‘무거운 짐 진 자’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무거운 짐이 계속 지워진 채 살아가서 지쳐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가 고행이다. 이 짐을 지고 간다는 것은 스스로 만사를 해결할 수 있으며, 미래 또한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었던 당신이 ‘쉼’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그치고,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 되심을 마음과 영혼에 다시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소명 발견하기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다리에는 장애가 있어 걷기 힘들고 45년간 당뇨로 투병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극심한 저혈압에 시달렸고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엔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하루 열한 번 약을 먹어야 했다. 평생 질병과 병마에 시달린 삶을 살았던 여인은 바로 미국의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이다. 일상의 안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가 평생 평안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부활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식에 대해 4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자기 안에 있는 염려, 근심, 불안을 ‘그치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을 그치라는 뜻이다. 두 번째 ‘쉬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 사회적으로 휴식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말하고 아는 바이다. 이걸 뛰어넘어 세 번째, 진정한 안식은 ‘받아들임’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축제와 향연의 단계’로 서로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쉼’을 주셨다(왕상 19:1~8). 그 가운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쉼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그 길로 엘리야는 40일 밤낮으로 달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됐다(왕상 19:9~21). 지쳐있던 당신도 ‘쉼’을 통해 소명을 발견하고 힘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세우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Think! Thank! Q1. 지금 무엇으로 지쳐있나요? Q2. 나 혼자 오롯이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나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어떠한 소명을 발견하였나요? Q3. ○○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말씀을 외워 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8.12

    기독교 교육, 단절 아닌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인생 살게 해 영혼을 사랑하고 수고하는 일 우선돼야 전남 곡성에 사는 할머니들은 글을 알지 못했다. 작은 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시를 쓰고 책을 냈다. 배움 앞에 선 이들은 연필과 공책 대신 핸드폰을 켜고 사진을 찍고 펜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이름을 남긴다. 기기를 다루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신기함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전화만 걸 줄 알았던 할머니들의 놀라운 반전이다(S전자 휴대폰 광고 중에서). 계속적으로 학습해야 힘들게 준비해서 취업에 성공하면 “이 직장에 뼈를 묻어야지!”라고 외치던 다짐은 이제 사라져간다. 연수에 따라 진급하고 정년이 보장됐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첫 직장을 떠났다는 보고가 있을(동아일보 2020년 1월 9일자) 정도로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도입이 확산됨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에 대한 불안으로 기업도 개인도 재교육에 열심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식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며 유통 기한이 지나기 전에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옵솔리지 Obsoledge). 퇴직 후의 삶은 어떠한가? 일자리로부터의 빠른 퇴직으로 5060 세대의 인생 이모작 설계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평생교육 기관 등을 통해 배움이 확산되고 있다. 미래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평생학습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운 시대 이미 와 코로나 사태 이후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에 돌입했던 기업들이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근무 형태를 마련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재택근무제를 공식 제도화했고, LG전자와 SK텔레콤은 직원들이 근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원격근무’를 시행 중이다. 때가 되면 진급하던 시절에서 능력제로 서열에서 밀려날 수 있고 내 연봉과 상여금 등을 스스로 정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등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다. 교육에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학습 형태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점점 더 개방적인 체재로 변모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무크(온라인 공개 수업), 코세라(온라인 공개 수업 플랫폼) 등 무료로 고급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와 있다. ‘기독교 교육 이력’ 관리 필요 기독교 교육하면 주일학교 교육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예배 후 공과를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한답시고 예배만 왔다 갔다 하다 졸업했다. 이후 대학부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거나 재수 삼수를 하면 세상에 휩싸여 교회에서 점점 멀어졌다. 직분을 받으려고 수강했던 성경학교, 성경대학이 교회에서 받았던 교육의 전부다. 기독교 교육이 단절되지 않고 세상에서 말하는 평생교육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의 배움이 계속 실시되어야 한다. 교회는 다니는데 지식이 부재하니 세상에서 살아낼 힘이 부족하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평생학습계좌제>라는 것을 만들어 개인마다 ‘학습이력통합관리’를 해주고 있다. 이처럼 교회도 성도들의 ‘기독교 교육 이력’ 관리를 해줘야 한다. 성도들의 신앙 발달 단계에 맞춰 대면과 온라인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것이 우선돼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때에 맞게 기독교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 이보다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랑이다. 작은 도서관 관장이 노인들을 사랑하고 필요를 읽고 글을 가르쳤던 것처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년기의 어르신들을 생각해보자. 몸이 노화돼 눈이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걷는 것도 불편하고 하루 종일 누구 하나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다.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줌을 켤 수는 있는지, 와이파이는 터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바울이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고 말한 것처럼 영혼을 사랑하고 수고하는 일이 우선되면 그들의 필요가 보인다. Think! Thank! Q1. 교회에서 받은 교육을 나열해 보세요. Q2. 기독교 교육을 성도들에게 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엡 4:13)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4.10

    바른생활 루틴이
  • 어떤 규칙적 습관 통해 스스로 행복감 느껴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시간을 살아간다. 고등학생은 학원과 학교 스케줄에, 직장인은 회사 일정에, 부모는 아이들의 시간에 맞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스로의 계획보다 주어진 과제를 풀어가듯 산다. 바쁘게 살아가지만 무엇 때문에 바빴는지 하루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일상에 쫓기지 않으려면 스스로 주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루틴 통해 일상 지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을 개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도 편지를 쓴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면 찌뿌둥해졌을 몸을 풀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준다. 하루의 마지막은 독서와 일기로 마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딸의 모습이다. 요즘 데일리 루틴을 실천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바른생활 루틴이'라고 부른다. 루틴(routine)은 매일 수행하는 습관이나 절차를 의미한다. '바른생활 루틴이'는 외부적 통제를 받지 않고 루틴을 통해 스스로 자기 일상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루틴은 길을 뜻하는 루트(route)와 어원이 같다. 길을 따라 꾸준히 가는 것처럼 내가 정해둔 일정 시간에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인지하지 않고 진행되는 습관과 달리 루틴은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삶, 최선 다해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스스로 이러한 삶을 살아갈까? 바른생활 루틴이들에게는 '아주 평범한 삶이지만 그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 내재 되어 있다. 이들은 미래의 무엇을 위한다기보다는 오늘 하루 소소한 루틴을 이어 나가는 일상의 성실함에서 '행복'을 누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살 거라 생각하지만 이들의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외 없이 매일 새벽 4시부터 12시까지 글을 쓰고,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달리기나 수영을 즐긴다. 2시부터 9시까지 독서와 음악 감상을 하고, 9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잠을 잔다. 현대그룹 故 정주영 회장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일어나 신문을 읽고, 목욕을 한 후 가족과의 아침 식사를 했다. 오전 5시가 되면 매일 걸어서 출근을 했다. 다니엘의 루틴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의 루틴은 어떨까?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어려운 상황에도 다니엘은 철저하게 지켰다. 통치자를 신격화시켜 놓고 통치자가 아닌 다른 신에게 예배하면 사자굴에 던져 죽인다는 법이 제정된 뒤에도 지켜졌기 때문이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다니엘의 일상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무료한 일상에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눈에 보이는 권력자보다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기 때문이다. '코람 데오'(Coram Deo) 매 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살기에 잠깐의 눈가림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실천하는지 점검 필요 혼자 하다 보면 지루함에 빠지기 쉽고 실패할 수도 있기에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받는 일이 중요하다. <마이 루틴 앱>을 통해 루틴을 실행하는데 도움을 받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이용해 잘하고 있는지를 서로 확인해 주고 도닥여주는 것이다. 줌을 통해서든 전화, 카톡 등을 이용해서 잘하고 있는 루틴을 이야기 나누고, 인증사진 등을 보여주므로 서로 점검해 줄 수 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감사QT 365>를 이용해도 좋다. 매일 같은 시간에 서로 느낀 점을 나누며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규칙적 습관을 통해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도 그분 앞에서 살고 있다면 바로 당신이 '바른생활 루틴이'이다. 다른 누군가가 체크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분 앞에서 살기 때문에 그렇다. Think! Thank! Q1. 자신만의 루틴을 세워보세요. Q2.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하고 점검하나요? Q3. 코람 데오의 뜻을 적고,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작정해 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3.13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쓰자!
  •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 조명하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이 승리의 삶 2022년 1월을 맞이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2월 문턱에 다다르니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미련만 남을 뿐이다. 이렇게 살다 12월에 이르면 아쉬움이 가득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유서를 써보고 한해를 새롭게 살아보자. 새해! 유서 써보기 유서는 죽음을 앞두고 남겨질 사람들에게 쓰는 것을 말한다. 유서를 쓴다는 건 보통 우울하고 슬픈 일이라 여겨진다. 허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중세의 수도승들은 만나면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죽음을 기억할 때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서를 쓰는 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된다. 내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삶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게 된다. 유서 안에는 유서를 쓰게 된 동기, 죽은 뒤 집안에서 해결해야 될 일에 대한 부탁, 자녀들에 대한 재산분배 내용이 포함된다. 그중 유산에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아파트, 상가, 현금 등 손에 잡히는 것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삶을 반추해 어떻게 살기를 당부하는 것도 유산이 될 수 있다. 백세인생, 지혜를 듣다 한국인의 2070년 기대수명은 91.2세(남자 89.5세, 여자 92.8세)로 추정된다. 이 기대수명을 뛰어넘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는 어른이 있다. 100세를 넘은 김형석 교수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유산으로 전해주고 있다. 김형석 교수는 "죽음이란 게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선에 골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시작했으니 결승선을 통과해야지요.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다음이 무엇일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최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떨어진 잎사귀에서 노년의 의무를 발견한다. 싹이 피기 위해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낙엽이 되어서는 다른 나무들과 숲을 자라게 하는 비료가 돼야 한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이어 "열심히 벌어서 내 힘으로 살다가 남은 재산이 생기면 필요한 곳에 주고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나를 본받으라 바울은 어떠한가?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다(빌 3:17). 고린도 교회에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편지를 보냈다. '본받다'라는 말의 헬라어 단어 '미메타이'(mimetai)는 '모방하다' 혹은 '그림자'라는 뜻이다. 모방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행한 것을 보고 조금도 더함이나 덜함이 없이 그대로 따라한다는 의미이다.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는 그의 생각과 삶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울은 존재의 의미가 분명했다.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당당했다.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듯이 자신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닮아가는 것이 결국 신앙의 여정이며 승리의 삶이다. 나의 유서 김형석 교수처럼, 바울처럼 우리는 유서에 어떠한 내용을 적을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적다 보면 올 한 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깨닫게 된다. 2022년 새해를 어영부영 흘려보냈다면, 유서 쓰기를 통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아쉬움 없이 살아보면 좋겠다. Think! Thank! Q1. 유서를 작성해 보세요. ① 인생을 정리하며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 ②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는 말 ③ 친구나 친지에게 남기거나 당부하는 말 ④ 기도 등 종교적인 말 (①~④번을 다 해도 되고, 한두 개만 해도 된다.) Q2. 올 해 어떻게 살기를 소망해 보나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2.13

    아듀 2021! 후회와 감사 교차
  • 그대 누구를 주인으로 모셨는가?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고백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면 달이 태양처럼 불타고 있고 하늘에는 생명을 품은 듯한 노란 별들이 가득하다. 감청색이 주제인 밤하늘은 마치 그가 많이 그린 노란색의 해바라기처럼 살아있다. 그 가운데 교회는 생명을 품은 모습이 전혀 없는 불 꺼진 하나의 건물로 나타나 있다. 가깝게 지내는 철학 교수님이 '서울에는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서울은 천국이 아닐까?'라고 질문하신 적이 있다. 역으로 이 질문을 각자에게 던져보자.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2021년 과연 잘 살아내셨습니까?' 그대 누구를 주인으로 모셨는가?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창을 던질 때 '표적을 벗어남', '목표에 적중시키려다 빗맞음', '표적을 일탈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헬라어의 개념을 빌려 인간의 죄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하마르티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내 인생을 나의 것이라 여기고 내 힘, 내 뜻대로 사는 것을 '죄'라고 이야기 한다. <소요리문답>을 보면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가요?'이다. 쉽게 말하면 '당신은 왜 사십니까?'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생 그래프 한 눈에 우선 2021년 인생그래프를 그려보자. 월별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적어보고 이에 대한 만족도를 100점 기준으로 표시하면 된다. 가로축은 기간이고 월마다 핵심 키워드를 작성하면 된다. 세로축은 감성지수로 0을 중심으로 아래로 가면 불행했던 지수이고, 위로 올라가면 행복한 지수이다. 세로축의 가장 높은 곳에 적혀 있는 점의 내용을 보면 자신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인지, 무엇 때문에 행복했는지를 알 수 있다. 반대로 세로축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내용을 보면 불행했던 시간이 언제인지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은혜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니 실수, 어리석음, 깨진 관계, 연약함 등이 보인다. 이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방향을 틀게 되니 이 또한 은혜였다. 헬렌 켈러는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결혼, 취업, 수술 등 잘 돼서 기뻤던 일들을 돌아보니 걸음걸음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CCM 찬양곡 '오직 예수 뿐이네'에 나오는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가사처럼 살아온 모든 것이 은혜다. 구원받은 인생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하나님이 만물의 기원이시며 과정이시며 목표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근원을 하나님에게 두고 하나님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이 최고로 행복한 인생이다. 한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슬펐으나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데 한나의 감사는 임신한 사연보다 구원을 감사하고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인생이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신, 또 앞으로도 붙잡아주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며 2021년을 마무리해보자. Think! Thank! Q1. 2021년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니 가장 행복한 시간과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반대로 가장 슬픈 시간과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Q2. 한 해를 되돌아보니 어떠한 것이 은혜였나요? Q3. 한나의 기도처럼 하나님에게 구원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보세요(삼상 2:1).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1.12.1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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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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