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Think! 인생 Thank!
저마다의 인생 ... 똑같지 않아  
  • “얘들아 너희는 다 계획이 있구나!”
    부모의 양육 태도, 애정과 통제 균형 이루어야 “엄마! 대학원에 가야 할지 취직을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머뭇거리다 보면 겁이 날 거 같아요. 1년간 낯선 곳에 저를 던져 볼게요.” 2월에 대학을 졸업한 딸이 말한다. “수시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 거 같아요. 정시 준비할 거라 학교 시험 안 봐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의 통보다. “얘들아 너희는 다 계획이 있구나!” 저마다의 인생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딸은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휴학을 하고 1년간 영어 학원을 다녔다. 복학 후 전공과목보다는 철학에 입덕하더니 글쓰기에 빠져 2년을 보낸 후 올해 졸업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중 일사천리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비자(비자를 발급해주는 국가에서 일도 하고 동시에 여행 어학연수 등 청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비자)를 받았다. 딸에게 몇 차례 연봉이 높은 기업을 추천하며 취업을 종용했고, 학과 교수는 대학원으로 진로를 설계해 주었지만 생각은 단호했다. 1년간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진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며 떠났다. 마음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대학에 들어간 후 진정한 독립은 ‘재정 독립’에 있다며 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교통비, 통신비, 학원비, 여행비 등)을 스스로 해결했다. 캐나다 워홀에 필요한 비자발급 비용을 시작으로 비행기 티켓, 홈스테이비 등도 스스로 지불하니 부모의 개입 여지를 1도 허락하지 않는다. 올해 고3인 아들은 2학년 때부터 수시로는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드니 정시로 승부를 걸겠다며 내신을 버렸다. 정시를 준비한다며 일반적이지 않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욕망 평소 지론이 ‘평범한 것! 재미없어!’로, 여느 부모들과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자녀들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관심을 보이고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게끔 개방적인 태도로 키웠다. 딸의 선택에 ‘재수랑 휴학을 하느라 2~3년을 까먹었는데 워킹홀리데이 비자까지… 취업이 어렵지 않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취업은, 대학원은?” 혼자 중얼거린다. 학교에서 ‘오피스 빅뱅!’ 일터의 문화가 바뀌었고, 평생직장이 사라졌다고 가르치면서도 내심 자식에게는 일반적인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데 수시랑 정시, 다 챙기면 좋을 텐데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니 맘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다. 지금이 딱 간섭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의식해서 입을 틀어막았다. 친정엄마가 말한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보면 내 마음 알 것”이라는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친정 엄마는 늘 지시하고 염려하고 관여했기에 거기서 벗어나고자 부단히도 애쓰고 도망쳤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자녀들을 자유롭게 키우려 애썼는데 머리로 생각했던 것과 눈으로 지켜보는 문제는 달랐다. 애정과 통제 균형 이루어야 바움린드(D. B. Baumrind) 교수는 애정과 통제의 정도에 따라 부모의 양육 유형을 나눴다. 부모의 통제가 높고 애정이 낮을 경우, 체벌이나 강압적 방법으로 자녀를 훈육한다. 자녀는 걱정이 많고 지나치게 복종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게 된다. 부모의 애정은 높으나 통제가 낮을 경우, 일관되지 못한 훈육을 하게 되며 자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벌주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는 쉽게 좌절하고 자기중심적이게 된다. 애정과 통제 모두 낮을 경우 자녀에 대한 애정이 없고 자식을 믿지 못한다. 자녀는 문제 행동을 많이 하고 적대감이 많으며 좌절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애정과 통제 모두 높을 경우 자아존중감이 높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사회에 적응해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는 “한 사람의 부모가 백 명의 교사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과 통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은 자율성과 선택권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때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만 의식적으로 자신의 양육태도를 수정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열렬히 응원해주자. 자녀들은 믿어준 만큼 큰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주님이 우리에게 하셨던 방법! 자유를 허락한 사랑이다. 자녀들을 이끌어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Think! Thank! >>>>> Q1. 당신의 양육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Q2. 당신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떤 장점이 있나요? 또 어떤 것을 고쳐야 할까요? Q3. 성경 구절을 암송해 보세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4.07

    말의 힘 ... 자신의 마음 및 영적 상태와 연결
  •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해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감사’와 ‘긍정’의 말들 쏟아져 말이 씨가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드러내는 말들이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힘이 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한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던진 말들이 결실을 맺기도 한다. 말은 이처럼 마음을 드러내고 파장을 일으키며 파동으로 세상을 움직이며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말대로 해줄까? 개그우먼 이성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아들에게 했다. “이 또라이야, 한심한 놈아, 야~ 정신 나간 놈아.” 시간이 갈수록 욕은 늘어났고, 눈에 차지 않는 아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욕은 점점 세졌다. 아들이 17살이 되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분풀이를 하는데 아들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더 악을 쓰며 막말을 했고, 아들은 “연예인이라는 인간이, 교회 집사라는 인간이! 사람들이 이러는 거 알아?”라고 소리쳤다. 순간 이 말을 듣고 놀란 그녀의 내면에서 ‘네가 말한 대로 해줄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17년간 아들에게 했던 말들을 되돌아보니 비참했다. 아들은 피를 흘리며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미친개가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두려움이 다가왔고 진심으로 아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녀는 사랑했던 아버지를 잃었고,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등 삶 자체가 고난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미움이 가득 찼고 그것이 욕으로 나와 아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성경에도 “내 귀에 들린 대로 해주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 28). 읽다 보면 하나님 앞에서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화가 나고, 못마땅한 게 있어도 늘 긍정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10가지 재앙을 통해 구출해 주셨다. 홍해를 갈라 건너가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이러한 광경들을 직접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 애굽을 그리워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민 14:2~3).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눈 앞에 펼쳐진 어려움 앞에서 무너지고 불평의 소리를 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의 힘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성경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말의 힘을 강조한다. 우리가 하는 말은 자신의 마음 및 영적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긍정적인 단어 몇 개를 사용해야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서 구원받은 자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남과 비교하여 불안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개그우먼 이성미 씨는 자신이 불행하고 불안했을 때 자식에게 죽이는 말만 했다.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바뀌고 나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달라졌다고 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방향성을 결정한다(잠 18:21). 눈에 보이는 상황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감사’와 ‘긍정’의 말들을 쏟아낼 수 있다. 우리 교회는 ‘내가 먼저 인사합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마음은 없는데 입으로만 예쁘게 인사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산 공동체이며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나도 구원해 주셨는데 저 사람도 하나님은 가능케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 상대방을 살리는 말을 할 수 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지금 당장 10년 전에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인사하자. “할렐루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Think! Thank! Q1. 당신에게 힘이 되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Q2. 말의 힘에 대한 성경 구절을 나열해 보세요(마 15:11, 잠 18:21, 엡 4:29). Q3.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고 싶나요?
  • 2023.03.10

    ‘The Glory’(더 글로리) … 하나님의 영광 반사
  •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날이 주의 날
    어떻게 살았는가를 반성하며 삶의 예배자로 살아야 끔찍한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자가 가해자를 응징하기 위해 온 生(생)을 거는 이야기 <더 글로리>가 인기다. 이 드라마 곳곳에는 기독교가 형편없이 그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오징어게임>, <수리남>, <지옥> 등도 기독교인을 악하게 묘사하거나 기독교 신앙이 위선의 산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가 어떻게 비쳤는지 살펴보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회복하자. 주일만 주의 날?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사라는 새벽 예배에 나가고 찬양을 부르면서도 학교에서는 잔인하게 친구를 괴롭힌다. 여기에 마약과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이중적인 행동은 혀를 차게 한다. 교회생활과 세상의 삶이 분리된 이러한 모습은 어떠한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신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참된 예배는 주일 예배시간 축도 후에 비로소 시작 된다”라고 말한다.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요일이 주의 날이며 매일 삶의 자리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살아내는 자들이다.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로 쉽게 물으면 “너는 왜 사느냐”이다. 답은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자들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신에게만 죄를 고했다고? 성인이 된 후 이사라는 문동은이 찾아오자 거액을 건네며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 받았어”라고 말한다. 과연 자신이 지은 죄를 신에게만 고하고 회개하면 죄가 다 없어지고 용서가 되는 걸까? 하나님 나라의 최고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할 것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세리 삭개오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과 같은 일을 하는 자로 동족들에게 경멸 받았던 사람이다.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고백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며 살아가는 동안 죄짓고 실수하는 일이 태반이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반드시 회개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성령께서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 내용을 변제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 문동은이 학교폭력을 당할 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는 가해자들과 한편이 되었고 학교 선생님은 친구들끼리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도리어 그녀를 폭행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던 그녀는 영혼까지 부서진 여자라고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약자이며 가난하다. 가난은 재정적인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곳이 없는 마음적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는 그들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공동체였는지 고민해야 한다. 율법적으로 잣대를 들이대고 정죄하며 교회 문턱을 높이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야훼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시 86:1).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시며 도와주실 것을 전해야 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잊으려 해도 몸과 마음에 아픔의 흔적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병원치료, 상담치료 등을 통해 치료 받아야 하고 좋은 사람들을 통해 회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대면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요일이 주의 날이며 그분의 통치를 받고 그분을 위해 사는 우리는 다르게 살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상식적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가 어떻게 비쳤는지 살펴보고 다시 말씀을 좇아 살아야 한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 Think! Thank! >>>>>>>>>>>>>> Q1. 주일에 보이는 당신의 모습과 평일의 모습이 다르지는 않은가요? Q2. 세상에서 묘사하는 불편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Q3. 먹든지 마시든지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나요?(고전 10:31)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2.10

    평생 어부바 ... 나는 ‘하나님 껌딱지’
  • 우리가 기대고 의존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지키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특집으로 <금쪽같은 오둥이>가 방영됐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다섯 쌍둥이라니 놀랄 일이다. 약 6000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났으니 기적 같은 일이요 좌충우돌 육아일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다섯 아이들은 각자 그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치명적인 눈웃음의 소유자, 포동포동 튼튼이, 할머니 껌딱지, 호기심 대왕, 수다쟁이라고 불린다. 그중 제일 약하게 태어난 할머니 껌딱지는 울면서 할머니만 찾는다. 독수리 등에 업혀 출애굽 할머니는 이 아이만 볼 수 없으니 껌딱지를 포대기에 싸 어부바를 한다. 보채고 울던 아이는 할머니 등에서 편하게 안겨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든다.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면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어부바한 것처럼 누가 날 좀 업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압제에 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았다. 애굽인들에게 어떠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것을 이 악물고 해야 했다. 그들이 산파에게 태어나는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했고,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 하면 그렇게 해야 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켰고 홍해의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다(출 14:15~31). 또 바위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가능하게 하셨다(출 16~17장).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업으셨을 뿐이다.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야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의존할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 우리는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 의존한다는 것이 ‘약하다, 비굴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려 하고, 나이가 들어선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후를 준비한다. 성경에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등으로 끊임없이 ‘의존적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며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의지의 종교”라고 전한다. 이 의지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그런 의지, 영어의 ‘윌’(will)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대려는 그런 의지 ‘디펜던스’(dependence)라고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이다. 할머니 껌딱지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무엇이 불편한지 배가 고픈지 바로 알아차리며, 불안하고 겁날 때 등에 업히면 편안하고 안정을 주는 신뢰의 존재였다. 2023년 우리에게 들리는 뉴스들은 금리가 오르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집값은 계속 내리고, 코로나는 전혀 종식되지 않는 불안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불안은 돈을 쌓아두게 되고 사람을 의지하며 미래를 알려주는 점집을 찾아가게 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이 아니라(시 135:15)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다른 것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불안하고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하나님 야훼의 눈동자가 우리를 지키시는데 그것도 연초부터 연말까지 365일 지키신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으로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적셔졌으며, 적절한 때에 내려주심으로 가나안 땅의 3대 산물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얻게 하셨고 가축을 위한 풀도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신 11:11~15). 땅이 좋아 풍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이다. 2023년 우리에게 펼쳐질 날들의 예상 시나리오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어부바 해주시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유대인들이 아기를 목욕시킬 때 하는 기도문이 있다. 이걸 좀 변형해서 조석(朝夕)으로 기도하면 좋겠다. 이 기도문의 핵심은 내가 누구를 기대고 살아야 하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제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소서 / 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복된 말이 되게 하소서 / 제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게 하소서 / 제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 제 가슴에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품게 하소서 / 제 오장육부가 건강하여 튼튼하게 하소서 /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 교만한 자리에 앉게 마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소서 /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Think! Thank! Q1. 하나님이 언제 어부바를 해주셨으면 좋겠나요? Q2. 당신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나요? Q3. 이 말씀을 가족과 함께 암송해 보세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1.06

    영적 자서전 …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 재구성
  • 2022년 되돌아보니 곳곳에서 하나님과 조우(遭遇) 새로운 시야로 인생의 목적과 방향 돌이킬 수 있어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 창 밖의 겨울 나무를 바라보듯 / 한 해의 마지막 달인 / 12월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뿌리를 내렸나요? /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 오늘을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 더 밝게 눈 뜨기 위해” 이해인 시인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22년을 보내려 하니 여러모로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새롭게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때마다 하나님과의 조우(遭遇)를 기억하며 그분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영적 자서전 … 영성 훈련일지 보통 유명한 사람이 지나온 삶에 대해 쓰는 걸 자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매일을 기록한 일기나 성찰일지를 쓰고 모으면 이것도 자서전이 될 수 있다. 자서전은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영성 훈련일지이다. 자신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쓴 사람 중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록』(Confessiones)이 가장 유명하다. 어거스틴은 책에서 “내 영혼의 의사이시여, 내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고백을 하고 있는지 나로 하여금 확실히 알게 하소서. 당신은 내 과거의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 주셔서 신앙과 성례로 내 생을 변화시키셨고 당신 안에서 행복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내 고백을 읽고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감명을 받고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자서전(spiritual autobiography)은 첫째로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을 홀로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영적 자서전은 하나님을 공동 주연으로 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기록하다 보면 그 어떠한 것도 그냥 일어나거나 발생하는 일들은 없다. 영적 자서전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올 한 해 일어났던 고통, 아픔, 시련, 감격, 축복, 후회 등 이 모든 것들의 숨은 의미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셋째, 영적 자서전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태도가 있다. 바로 감사다. 되돌아보며 … 하나님과의 조우 자서전 쓰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연대기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삶의 어떤 중요한 주제들을 정리해 나가기도 한다. 맥아담스(Dan P. McAdams)는 이 두 가지를 통합시켜 시간과 주제의 양면성 속에서 개인의 영적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였다. 실제로 써보려면 우선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첩을 열어 시간, 사건별로 사진을 선택해 그 밑에 제목을 적어보자. 결혼, 사별, 취직, 유학 등 외형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수 있고, 지나가던 사람과의 우연한 대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작은 책, 지하철을 기다리다 무심코 읽게 된 하나의 시일 수도 있다. 1월 인생 첫 침례, 3월 병원 입원 등 자신에게 있었던 내용들을 적어보자.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지 등을 써 내려간다. 이때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 선생님 등을 들 수 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책이나 학문을 통해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견디기 힘들었던 광야의 시간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부어주신 축복, 때마다 결정하고 선택했던 순간들을 통해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을 재구성하면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들(the meaning of life)을 알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과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써 내려 가게 된다. 모든 것이 … 다 은혜였다 신명기 8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 자서전과 같은 책이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온 광야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함을 알려주신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살려주셨다. 사도 바울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고백하였다. 2022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Think! Thank! Q1. 월별로 어떠한 일들이 있는지 나열해 보세요. Q2.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기억하게 된 시기, 사건이 있으신가요? Q3. 바울의 고백처럼 2022년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해 보세요(고전 15:10).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12.09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
  • 쉬운 성경들 통해 어려운 단어 쉽게 이해해
    단순한 읽기 뛰어 넘어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해 지난 8월 한 웹툰 작가의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다. 주최 측은 ‘심심한’ 사과의 뜻을 밝혔는데,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한데 무슨 소리냐”라는 트윗이 쏟아졌다.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의미의 ‘심심하다’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교사가 한 학생에게 ‘좀 고지식한 면이 있는 것 같다’라고 면박을 줬는데 오히려 학생은 기뻐했다. ‘융통성이 없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지칭하는 고지식(固知識)을 ‘지식이 높다’(高知識)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짧은 채팅 위주의 대화가 습관화되면서 어휘력과 표현력 즉 문장을 이해하는 ‘문해력’의 저하가 심각해졌다. 여기에 무분별한 신조어 사용으로 기본 단어에 대한 무지를 가져왔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애써 찾아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읽기는 어떨까? 옛날말로 쓰여진 고리타분한 책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암호의 세계와도 같다. 하나님의 러브레터인 성경을 어떻게 하면 단어 해석에서 넘어지지 않고 달콤하게 읽을 수 있을까?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독서 또는 읽기를 뜻하는 ‘렉시오’(Lectio)와 거룩, 신성을 의미하는 ‘디비나’(divina)의 합성어이다. 거룩한 독서를 의미하는 말로, 성경 본문을 눈으로 읽고 마음에 곱씹으면서 좀 더 주님을 깊게 만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성경 속 단어가 생경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단어를 일상적인 용어로 풀어낸 성경을 읽으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이나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을 추천한다. 요즘은 핸드폰에서 다양한 종류의 성경 앱을 내려 받아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다. 갓피플성경어플, 홀리넷 등에 들어가면 개역개정과 비교해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편 8편 4절에 인자(人子)를 사람의 아들, 우리로 풀어쓴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개역개정)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새번역)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걱정하시고 우리 인생길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살뜰히 살피십니까?”(메시지 성경) 거룩한 독서의 순서 현재 읽고 있는 성경 본문이거나 『감사큐티 365』를 본문으로 시작하면 된다. 본문의 분량 제한은 없지만 최소 4절에서 최대 10절 사이로 읽기를 권장한다. 추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정독 묵상과 깨달음을 위해 성령을 초대하는 짧은 기도를 여러 차례 드린다.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입니다” 그 뒤에 성경 본문에 관심을 집중하여 온 마음으로 꼼꼼하게 편견 없이 정확하게 읽어 나간다. 2) 묵상 본문에서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단어나 구절이 무엇인지 주목하면서 자신의 삶의 어떠한 부분과 연결되는지를 생각하고 정리한다. 이 단계에서는 주님이 참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묻고 계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갈망하게 된다. 3) 기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게 되며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해 더더욱 하나님과 친밀한 내적 대화를 나누게 된다. 4) 관조 특별히 무슨 생각이나 궁리를 하기보다는 그냥 말씀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이 때 하나님의 생각에 자신의 마음을 얻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과 모든 사건을 보게 된다. 어디에서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기독교인이니 성경을 일독해야지 말씀 안에서 위로를 받아야지”라고 읽기 시작한 성경읽기가 어려운 단어로 성경책을 덮기도 하지만 나를 넘어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게 한다. 단순히 정보를 얻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변화로 나아가게 한다. 칼 바르트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통해 성경 읽기를 “어둡고 통제된 창고에서 나와, 확 트이고 햇살이 비치는 바깥세상으로 들어서는 것”이라 설명한다. 유진 피터슨은 “우리가 성경을 펼칠 때… 우리는 전적으로 낯선 하나님의 세상, 창조와 구원의 세상이 끝도 없이 우리 위로 그리고 우리 너머로 펼쳐져 있는 그러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읽기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가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보다가 펴놓은 로마서 13장을 읽다가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성자가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읽다 은혜를 받고 중세의 죽은 교회를 살려내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말씀을 읽고 자신을 넘어선 구름 같은 증인의 대열에(히 12:1) 이번엔 당신이 설 차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Think! Thank! Q1. 성경을 읽을 때 단어의 뜻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몰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나요? Q2.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에서 뛰어넘어 당신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Q3. 렉시오 디비나의 순서를 적어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10.07

    ‘쉼’ 모든 것에서의 ‘그침’
  •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 되심 기억하고 ‘쉼’을 통해 소명 발견하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 해야
    ‘번아웃’된 그대 “월급만 빼고 다 올랐습니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 금리 환율이 모두 상승하는 ‘3고(高)’에 접어들면서 월급만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코인, 주식 등이 폭락하면서 ‘빚투족’(빚내서 투자하는 사람)들의 곡소리 또한 여기저기서 들린다. 해결되지 않는 빚의 무게로 자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동반자살을 하는 등 가슴 아픈 뉴스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휴가철을 맞이했지만 삶의 불안과 고민으로 편안한 쉼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행여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충전 없이 달리기만 하면 엔진 과열이 일어나 억지로 멈춰지게 된다. 우리도 스스로를 살펴보고 쉬어주지 않으면 탈진하게 되는데 이를 번아웃(burnout)이라 한다. 이 단어에는 ‘에너지를 소진하다, 다 타다, 가열되어 고장이 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 소진하여 번아웃되지 않게, 우리에게 진정한 ‘쉼’의 시간을 갖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쉼에 대한 오해 막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무조건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스케줄을 빡빡하게 짠다. 열심히 여행을 다니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체력을 보충한다며 하루종일 잠을 자기도 한다. 당장은 쉬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피로가 더 쌓일 뿐이다. 휴식(休息)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어 휴(休)를 보면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일을 멈추고 그늘 드리운 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을 말한다. 『휴식』의 저자 울리히 슈나벨은 휴식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카피라이터 정철 역시 “충전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 많고 복잡하고 많이 듣고 눈에 무언가를 많이 담는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쉼 지쳐있는 당신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자신의 짐이 덜어지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여기서 ‘수고하고’는 스스로 많은 일들을 계속하여 지친 상태를 말한다. ‘무거운 짐 진 자’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무거운 짐이 계속 지워진 채 살아가서 지쳐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하루하루가 고행이다. 이 짐을 지고 간다는 것은 스스로 만사를 해결할 수 있으며, 미래 또한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음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맨손으로 붙잡으려는 것과 같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었던 당신이 ‘쉼’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그치고,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 되심을 마음과 영혼에 다시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소명 발견하기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다리에는 장애가 있어 걷기 힘들고 45년간 당뇨로 투병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극심한 저혈압에 시달렸고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엔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하루 열한 번 약을 먹어야 했다. 평생 질병과 병마에 시달린 삶을 살았던 여인은 바로 미국의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이다. 일상의 안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가 평생 평안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부활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안식에 대해 4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자기 안에 있는 염려, 근심, 불안을 ‘그치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을 그치라는 뜻이다. 두 번째 ‘쉬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영적, 사회적으로 휴식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말하고 아는 바이다. 이걸 뛰어넘어 세 번째, 진정한 안식은 ‘받아들임’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그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네 번째, ‘축제와 향연의 단계’로 서로를 축복하고 격려하며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쉼’을 주셨다(왕상 19:1~8). 그 가운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쉼의 시간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그 길로 엘리야는 40일 밤낮으로 달려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됐다(왕상 19:9~21). 지쳐있던 당신도 ‘쉼’을 통해 소명을 발견하고 힘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세우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Think! Thank! Q1. 지금 무엇으로 지쳐있나요? Q2. 나 혼자 오롯이 쉴 수 있는 장소가 있나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어떠한 소명을 발견하였나요? Q3. ○○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말씀을 외워 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8.12

    기독교 교육, 단절 아닌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인생 살게 해 영혼을 사랑하고 수고하는 일 우선돼야 전남 곡성에 사는 할머니들은 글을 알지 못했다. 작은 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시를 쓰고 책을 냈다. 배움 앞에 선 이들은 연필과 공책 대신 핸드폰을 켜고 사진을 찍고 펜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이름을 남긴다. 기기를 다루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신기함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전화만 걸 줄 알았던 할머니들의 놀라운 반전이다(S전자 휴대폰 광고 중에서). 계속적으로 학습해야 힘들게 준비해서 취업에 성공하면 “이 직장에 뼈를 묻어야지!”라고 외치던 다짐은 이제 사라져간다. 연수에 따라 진급하고 정년이 보장됐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첫 직장을 떠났다는 보고가 있을(동아일보 2020년 1월 9일자) 정도로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도입이 확산됨에 따라 일자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에 대한 불안으로 기업도 개인도 재교육에 열심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지식에도 유통 기한이 있다며 유통 기한이 지나기 전에 새로운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옵솔리지 Obsoledge). 퇴직 후의 삶은 어떠한가? 일자리로부터의 빠른 퇴직으로 5060 세대의 인생 이모작 설계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평생교육 기관 등을 통해 배움이 확산되고 있다. 미래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평생학습사회에 살고 있다. 새로운 시대 이미 와 코로나 사태 이후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에 돌입했던 기업들이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로운 근무 형태를 마련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재택근무제를 공식 제도화했고, LG전자와 SK텔레콤은 직원들이 근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원격근무’를 시행 중이다. 때가 되면 진급하던 시절에서 능력제로 서열에서 밀려날 수 있고 내 연봉과 상여금 등을 스스로 정하는 제도가 도입되는 등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다. 교육에 IT 기술이 접목되면서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학습 형태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점점 더 개방적인 체재로 변모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무크(온라인 공개 수업), 코세라(온라인 공개 수업 플랫폼) 등 무료로 고급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시대가 이미 와 있다. ‘기독교 교육 이력’ 관리 필요 기독교 교육하면 주일학교 교육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예배 후 공과를 하고,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한답시고 예배만 왔다 갔다 하다 졸업했다. 이후 대학부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거나 재수 삼수를 하면 세상에 휩싸여 교회에서 점점 멀어졌다. 직분을 받으려고 수강했던 성경학교, 성경대학이 교회에서 받았던 교육의 전부다. 기독교 교육이 단절되지 않고 세상에서 말하는 평생교육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의 배움이 계속 실시되어야 한다. 교회는 다니는데 지식이 부재하니 세상에서 살아낼 힘이 부족하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다. 국가에서는 <평생학습계좌제>라는 것을 만들어 개인마다 ‘학습이력통합관리’를 해주고 있다. 이처럼 교회도 성도들의 ‘기독교 교육 이력’ 관리를 해줘야 한다. 성도들의 신앙 발달 단계에 맞춰 대면과 온라인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교육받을 수 있도록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불쌍히 여기는 것이 우선돼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때에 맞게 기독교 교육을 시켜줘야 한다. 이보다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사랑이다. 작은 도서관 관장이 노인들을 사랑하고 필요를 읽고 글을 가르쳤던 것처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년기의 어르신들을 생각해보자. 몸이 노화돼 눈이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걷는 것도 불편하고 하루 종일 누구 하나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다.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줌을 켤 수는 있는지, 와이파이는 터지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바울이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고 말한 것처럼 영혼을 사랑하고 수고하는 일이 우선되면 그들의 필요가 보인다. Think! Thank! Q1. 교회에서 받은 교육을 나열해 보세요. Q2. 기독교 교육을 성도들에게 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엡 4:13)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04.10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