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Think! 인생 Thank!
부모의 자격 … 창조주 하나님 만나야 
  • 수능까지 95일, 하나님 주신 평안함으로 자녀위해 기도 대학 입시 취업 등 인생의 한 부분, 더 큰 그림 그려야 수험생과 취준생을 위한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합격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하고, 카톡으로 서로의 기도문을 공유한다. 하나님에게 모든 걸 맡긴다고 하면서도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수능이 95일 남은 시점에서 ‘수능 킬러문항 배제’ 찬반의견이 팽배하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신입 채용시장이 한파일 거라는 뉴스는 불안에 떨게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어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세상과 부모가 원하는 기대에 맞추어 산다. 수능 점수에 맞게 학교를 선택하고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입학한다. 정작 들어가서는 적성에 맞지 않아 전과를 준비하거나 휴학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3·4학년 때에는 취업을 목표로 자격증을 준비하고 스펙을 쌓느라 분주하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전공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안정된 노후와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로 경쟁률이 높았지만 지금은 시들해졌다. 기술과 인터넷의 무서운 발전 속도로 원격 근무, 비대면 업무 등 직장생활의 환경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의 수많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모가 꿈꾸고 세상이 말하는 학과,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당장 부와 안정이 보장되는 것 같아 보이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부터 합격을 위한 기도를 하기 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자녀가 그 대학에 들어가길 원하는 건지? 왜 저 기업에 취업이 되기를 바라는 건지?” 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그 내면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한(恨), 체면, 성공 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자신의 틀 안에서 자녀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제한된 생각 안에서 키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계획에 맞춰 돌아가지 않으면 못마땅할 뿐 아니라 절망하게 된다. 팀 켈러는 우리를 절망케 하는 것일수록 우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 3:11)을 주셨는데, 대부분 하나님 보다 자녀를 1순위에 두고 삶의 기쁨을 찾는다. 하나님 없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은 망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린 솔로몬은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라고 고백했다. 자녀를 많이 사랑한 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연약함을 고백해야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분의 은혜를 깨달으면 우리의 배포는 커진다.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전전긍긍하지 않으며, 믿음의 눈으로 자녀를 본다. 자녀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다(시 127:3). 우리에게 자녀를 맡겨주신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오류가 없으시며 완벽하시다. 그 좋으신 하나님이 자녀를 붙잡고 계시니 자녀가 잘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믿음이 우선이다(엡 2:10). 하나님 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이 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녀들이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긴 인생 가운데 지금의 시간은 한 부분이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잠 16:9). 자녀가 때때로 무기력하고,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에도 채근하지 말아야 한다.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 이력서를 수백 통을 쓰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그분이 주시는 평안함으로(요 14:27) 자녀를 대할 때 자녀는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불안하다. 95일간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부모라면 자신이 얼마나 자격 없는 자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그 도우심으로 자녀의 인생을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 ‘절대긍정 절대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Think! Thank! Q1. 자녀가 못마땅하며 자신을 실망시키고 있나요? Q2. 자녀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나요?(살전 5:18) Q3. 10년 뒤에 일어날 일들을 예상할 수 있나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8.11

    상실, ‘하나님 앞에서 울다’
  • 안전하다고 느껴질 때 이 세상을 영원한 집으로 삼아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발견 7, 8월이 되면 각종 성회가 개최되면서 오산리 기도원에 올라간다.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임에도 발걸음을 돌린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없는 현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질 때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하나님~ 진짜 저와 함께하시는 거 맞죠?” 하나님에게 답이 있다고 믿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최근 불의의 사고로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주석중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병원 근처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이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외과 분야는 업무 강도가 높아 의사 인력이 부족해 주 교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을 도맡아 했다.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이 오로지 환자를 돌보고 연구에만 힘썼다. 죽음을 맞기 전 아내에게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들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었던 논문도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해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의 연구실에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이 있었는데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하지만 실제 치유 과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살았던 주 교수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다. 왜? 이런 죽음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환자를 돌보며 소명을 가지고 살았는데 “왜? 이런 죽음을 당했을까? 하나님은 왜 이런 죽음을 허락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상실(喪失)은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되는 것,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울다』를 쓴 제럴드 싯처는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음주운전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아내와 딸, 어머니를 잃고 남은 세 아이들도 큰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고는 교회봉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발생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각자의 삶에서 이미 이런 일을 겪고 있거나 당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상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고통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상실은 성장을 가져와 이러한 상실은 슬픔을 넘어 절망을 가져오게 된다.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으로 여러 좋은 것 중 하나를 잃었을 때 찾아온다.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다. 궁극적인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삶이 평안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삶의 에너지와 시선이 내 자신, 내 가족, 내 행복에 맞춰진다. 그러나 상실로 인해 깊은 어둠 속에 빠지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그동안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안정, 자식, 돈, 권력 등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상실은 나쁜 것이고 삶을 위협하는 어둠인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선용(善用)하셔서 결국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드신다. 제럴드 싯처는 “나는 잃었지만 또한 얻었다. 나는 사랑하던 세상을 잃었지만 은혜를 깊이 알게 되었다. 은혜야말로 내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해주었고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새삼 발견하도록 해주었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할 때 이 세상을 영원한 집으로 삼으려 한다. 이 땅의 삶은 잠깐이다. 아픔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상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상실의 상황이 영혼의 유익을 주는 사건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택이라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실 앞에서 무기력, 절망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면 상실은 계속해서 내 인생에 파괴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상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앞에 놓여있는 삶을 향해 계속 전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상실을 영혼의 유익을 주는 재료로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Think! Thank! Q1.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느껴진 시간이 있나요? Q2. 지금 당신을 절망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Q3.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암송해 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7.07

    크리스천,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 사는 자
  • 이방인들에게 불린 이름 …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행실을 선하게 가져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우리 집에는 귀한 아드님이 한 분 있다. 수능을 앞둔 고3이라 예민하기도 하고 남자아이라 한창 말이 없는 시기이다. 시험 때까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특별한 주문이 있기에 이에 응답하기로 했다. “밥 먹었니, 오늘 학교는 가니, 병원 다녀와라” 등 몇 문장 외에는 되도록 말을 걸지 않는다. 늘 귀에 에어팟을 꽂고 음악을 듣는 아이인데 어느 날 차에서 볼륨을 높여 함께 음악을 듣게 됐다. 모순적 모습 ‘××크리스천’ 세련된 멜로디에 온통 가사가 영어이기에 팝송인 줄 알고 들었다. 중간 중간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크리스천!’(Christian)이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교회와 멀어지고, 부모 눈에 영 신앙생활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런 노래를 듣다니’ 아들을 다시 보게 됐다. 노래 제목을 물어보고 집에 가서 다시 듣는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멜로디에 치우치지 않고 가사를 집중해서 듣는데, 뭔가 중고등학생들이 자주 입 밖으로 내뱉는 욕이 나왔다. ‘fucking christian’(퍼킹 크리스천), 해석하면 ‘×× 크리스천’이다. 검색을 해보니 지올팍이라는 한국 가수가 영어로 부른 노래다. 가사는 “지금 넌 바리새인처럼 굴잖아, 내가 가난했을 땐 엄마에게 난 골칫거리였지… 돈은 날 좋은 아들로 만들었어… 방금 막 디올을 샀어… 셀럽들과 함께 잔도 부딪치고 말이야… 근데 곧 일요일 아침이야, 이제 교회 가야 돼”라는 내용이다. 가수 지올팍 스스로가 밝힌 ‘크리스천’의 해석은 세상에 이름만 크리스천이지, 크리스천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많은 크리스천들의 모순적인 모습의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예수를 위해 죽고 사는 자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는 자녀들과 세상 사람들의 눈에 기독교인은 그저 위선자일 뿐이었다.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세상 사람으로 돌아가는 루틴이었다. ‘크리스천’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Christianus(크리스티아누스)에서 온 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를 위해 죽고 예수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언제부터인가 크리스천이라는 단어 앞에 진짜, 바른 등의 수많은 형용사가 붙게 됐다.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의 영성』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명사가 오염될 때 형용사를 필요로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명사에는 굳이 형용사가 필요 없다. 시대가 복잡해지고 믿지 못할 세상이 되다 보니 언어가 오염됐다. 그중에서도 명사의 오염은 심각하다. ‘크리스천’이라는 단어 자체가 명확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인이 원래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살기에 불필요한 형용사가 많아졌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대회에 참여했다. 그들의 사역보고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보았다. 선교사들은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들로 낯선 땅에 발을 디디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그 수고를 다하고 있다. 지난 5월 제28회 영산효행상 수상자들을 보면 8년간 척수공동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사지가 마비돼 거동이 불편한 딸의 손과 발이 되어준 권사,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와 실명한 아들을 돌보는 집사 등의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그 사랑의 힘으로 예수를 위해 죽고 살기를 결심한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불렸다(행 11:26). 오직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들의 독특한 삶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처음에는 조롱하는 뜻으로 불린 것이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이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크리스천은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사람들이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크리스천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1~12). 이어령 교수의 책 제목이 귓가에 맴돈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Think! Thank! Q1. 당신은 세상에서의 삶과 교회에서의 삶이 많이 다른가요? Q2. 크리스천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요? Q3. 누군가 당신에게 질문합니다. “당신, 크리스천 맞아?” 이에 답해 보세요.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6.09

    저마다의 인생 ... 똑같지 않아  
  • “얘들아 너희는 다 계획이 있구나!”
    부모의 양육 태도, 애정과 통제 균형 이루어야 “엄마! 대학원에 가야 할지 취직을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머뭇거리다 보면 겁이 날 거 같아요. 1년간 낯선 곳에 저를 던져 볼게요.” 2월에 대학을 졸업한 딸이 말한다. “수시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 거 같아요. 정시 준비할 거라 학교 시험 안 봐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의 통보다. “얘들아 너희는 다 계획이 있구나!” 저마다의 인생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딸은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휴학을 하고 1년간 영어 학원을 다녔다. 복학 후 전공과목보다는 철학에 입덕하더니 글쓰기에 빠져 2년을 보낸 후 올해 졸업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중 일사천리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비자(비자를 발급해주는 국가에서 일도 하고 동시에 여행 어학연수 등 청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비자)를 받았다. 딸에게 몇 차례 연봉이 높은 기업을 추천하며 취업을 종용했고, 학과 교수는 대학원으로 진로를 설계해 주었지만 생각은 단호했다. 1년간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 진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며 떠났다. 마음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대학에 들어간 후 진정한 독립은 ‘재정 독립’에 있다며 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교통비, 통신비, 학원비, 여행비 등)을 스스로 해결했다. 캐나다 워홀에 필요한 비자발급 비용을 시작으로 비행기 티켓, 홈스테이비 등도 스스로 지불하니 부모의 개입 여지를 1도 허락하지 않는다. 올해 고3인 아들은 2학년 때부터 수시로는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드니 정시로 승부를 걸겠다며 내신을 버렸다. 정시를 준비한다며 일반적이지 않은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욕망 평소 지론이 ‘평범한 것! 재미없어!’로, 여느 부모들과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자녀들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관심을 보이고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게끔 개방적인 태도로 키웠다. 딸의 선택에 ‘재수랑 휴학을 하느라 2~3년을 까먹었는데 워킹홀리데이 비자까지… 취업이 어렵지 않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취업은, 대학원은?” 혼자 중얼거린다. 학교에서 ‘오피스 빅뱅!’ 일터의 문화가 바뀌었고, 평생직장이 사라졌다고 가르치면서도 내심 자식에게는 일반적인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데 수시랑 정시, 다 챙기면 좋을 텐데 학교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니 맘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다. 지금이 딱 간섭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의식해서 입을 틀어막았다. 친정엄마가 말한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보면 내 마음 알 것”이라는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친정 엄마는 늘 지시하고 염려하고 관여했기에 거기서 벗어나고자 부단히도 애쓰고 도망쳤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자녀들을 자유롭게 키우려 애썼는데 머리로 생각했던 것과 눈으로 지켜보는 문제는 달랐다. 애정과 통제 균형 이루어야 바움린드(D. B. Baumrind) 교수는 애정과 통제의 정도에 따라 부모의 양육 유형을 나눴다. 부모의 통제가 높고 애정이 낮을 경우, 체벌이나 강압적 방법으로 자녀를 훈육한다. 자녀는 걱정이 많고 지나치게 복종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게 된다. 부모의 애정은 높으나 통제가 낮을 경우, 일관되지 못한 훈육을 하게 되며 자녀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벌주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는 쉽게 좌절하고 자기중심적이게 된다. 애정과 통제 모두 낮을 경우 자녀에 대한 애정이 없고 자식을 믿지 못한다. 자녀는 문제 행동을 많이 하고 적대감이 많으며 좌절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애정과 통제 모두 높을 경우 자아존중감이 높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사회에 적응해 살아간다.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는 “한 사람의 부모가 백 명의 교사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과 통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은 자율성과 선택권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할 수 있다. 때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겠지만 의식적으로 자신의 양육태도를 수정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열렬히 응원해주자. 자녀들은 믿어준 만큼 큰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주님이 우리에게 하셨던 방법! 자유를 허락한 사랑이다. 자녀들을 이끌어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Think! Thank! >>>>> Q1. 당신의 양육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Q2. 당신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어떤 장점이 있나요? 또 어떤 것을 고쳐야 할까요? Q3. 성경 구절을 암송해 보세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4.07

    말의 힘 ... 자신의 마음 및 영적 상태와 연결
  •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해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감사’와 ‘긍정’의 말들 쏟아져 말이 씨가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드러내는 말들이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힘이 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한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습관적으로 던진 말들이 결실을 맺기도 한다. 말은 이처럼 마음을 드러내고 파장을 일으키며 파동으로 세상을 움직이며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말대로 해줄까? 개그우먼 이성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아들에게 했다. “이 또라이야, 한심한 놈아, 야~ 정신 나간 놈아.” 시간이 갈수록 욕은 늘어났고, 눈에 차지 않는 아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욕은 점점 세졌다. 아들이 17살이 되었을 때 여느 때와 같이 분풀이를 하는데 아들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더 악을 쓰며 막말을 했고, 아들은 “연예인이라는 인간이, 교회 집사라는 인간이! 사람들이 이러는 거 알아?”라고 소리쳤다. 순간 이 말을 듣고 놀란 그녀의 내면에서 ‘네가 말한 대로 해줄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17년간 아들에게 했던 말들을 되돌아보니 비참했다. 아들은 피를 흘리며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미친개가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두려움이 다가왔고 진심으로 아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녀는 사랑했던 아버지를 잃었고,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등 삶 자체가 고난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미움이 가득 찼고 그것이 욕으로 나와 아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성경에도 “내 귀에 들린 대로 해주겠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 28). 읽다 보면 하나님 앞에서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화가 나고, 못마땅한 게 있어도 늘 긍정적으로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10가지 재앙을 통해 구출해 주셨다. 홍해를 갈라 건너가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시고,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이러한 광경들을 직접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 애굽을 그리워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민 14:2~3).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눈 앞에 펼쳐진 어려움 앞에서 무너지고 불평의 소리를 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의 힘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허나 성경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말의 힘을 강조한다. 우리가 하는 말은 자신의 마음 및 영적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 긍정적인 단어 몇 개를 사용해야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하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서 구원받은 자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남과 비교하여 불안하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개그우먼 이성미 씨는 자신이 불행하고 불안했을 때 자식에게 죽이는 말만 했다.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바뀌고 나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달라졌다고 한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방향성을 결정한다(잠 18:21). 눈에 보이는 상황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감사’와 ‘긍정’의 말들을 쏟아낼 수 있다. 우리 교회는 ‘내가 먼저 인사합니다’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마음은 없는데 입으로만 예쁘게 인사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할 때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산 공동체이며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나도 구원해 주셨는데 저 사람도 하나님은 가능케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 상대방을 살리는 말을 할 수 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지금 당장 10년 전에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인사하자. “할렐루야!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Think! Thank! Q1. 당신에게 힘이 되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Q2. 말의 힘에 대한 성경 구절을 나열해 보세요(마 15:11, 잠 18:21, 엡 4:29). Q3. 당신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고 싶나요?
  • 2023.03.10

    ‘The Glory’(더 글로리) … 하나님의 영광 반사
  •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날이 주의 날
    어떻게 살았는가를 반성하며 삶의 예배자로 살아야 끔찍한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자가 가해자를 응징하기 위해 온 生(생)을 거는 이야기 <더 글로리>가 인기다. 이 드라마 곳곳에는 기독교가 형편없이 그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오징어게임>, <수리남>, <지옥> 등도 기독교인을 악하게 묘사하거나 기독교 신앙이 위선의 산물처럼 묘사되어 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가 어떻게 비쳤는지 살펴보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회복하자. 주일만 주의 날?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사라는 새벽 예배에 나가고 찬양을 부르면서도 학교에서는 잔인하게 친구를 괴롭힌다. 여기에 마약과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이중적인 행동은 혀를 차게 한다. 교회생활과 세상의 삶이 분리된 이러한 모습은 어떠한가?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세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신자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고 있는 자들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참된 예배는 주일 예배시간 축도 후에 비로소 시작 된다”라고 말한다. 월화수목금토일, 모든 요일이 주의 날이며 매일 삶의 자리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살아내는 자들이다.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로 쉽게 물으면 “너는 왜 사느냐”이다. 답은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자들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신에게만 죄를 고했다고? 성인이 된 후 이사라는 문동은이 찾아오자 거액을 건네며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 받았어”라고 말한다. 과연 자신이 지은 죄를 신에게만 고하고 회개하면 죄가 다 없어지고 용서가 되는 걸까? 하나님 나라의 최고 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할 것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세리 삭개오는 일본의 앞잡이 노릇과 같은 일을 하는 자로 동족들에게 경멸 받았던 사람이다. 이런 삭개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고백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며 살아가는 동안 죄짓고 실수하는 일이 태반이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반드시 회개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성령께서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 내용을 변제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나? 문동은이 학교폭력을 당할 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는 가해자들과 한편이 되었고 학교 선생님은 친구들끼리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도리어 그녀를 폭행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던 그녀는 영혼까지 부서진 여자라고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약자이며 가난하다. 가난은 재정적인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곳이 없는 마음적 상황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는 그들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는 공동체였는지 고민해야 한다. 율법적으로 잣대를 들이대고 정죄하며 교회 문턱을 높이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야훼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시 86:1).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편이시며 도와주실 것을 전해야 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잊으려 해도 몸과 마음에 아픔의 흔적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병원치료, 상담치료 등을 통해 치료 받아야 하고 좋은 사람들을 통해 회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대면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시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모든 요일이 주의 날이며 그분의 통치를 받고 그분을 위해 사는 우리는 다르게 살 수밖에 없다. 기독교는 상식적이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기독교가 어떻게 비쳤는지 살펴보고 다시 말씀을 좇아 살아야 한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 Think! Thank! >>>>>>>>>>>>>> Q1. 주일에 보이는 당신의 모습과 평일의 모습이 다르지는 않은가요? Q2. 세상에서 묘사하는 불편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Q3. 먹든지 마시든지 당신은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나요?(고전 10:31)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2.10

    평생 어부바 ... 나는 ‘하나님 껌딱지’
  • 우리가 기대고 의존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지키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 특집으로 <금쪽같은 오둥이>가 방영됐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다섯 쌍둥이라니 놀랄 일이다. 약 6000만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태어났으니 기적 같은 일이요 좌충우돌 육아일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다섯 아이들은 각자 그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치명적인 눈웃음의 소유자, 포동포동 튼튼이, 할머니 껌딱지, 호기심 대왕, 수다쟁이라고 불린다. 그중 제일 약하게 태어난 할머니 껌딱지는 울면서 할머니만 찾는다. 독수리 등에 업혀 출애굽 할머니는 이 아이만 볼 수 없으니 껌딱지를 포대기에 싸 어부바를 한다. 보채고 울던 아이는 할머니 등에서 편하게 안겨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든다. 인생이 힘들고 지칠 때면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어부바한 것처럼 누가 날 좀 업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압제에 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았다. 애굽인들에게 어떠한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것을 이 악물고 해야 했다. 그들이 산파에게 태어나는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했고, 태어난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라 하면 그렇게 해야 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열 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굴복시켰고 홍해의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다(출 14:15~31). 또 바위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가능하게 하셨다(출 16~17장). 애굽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업으셨을 뿐이다.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야훼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 32:10~12). 의존할 대상이 누구인지가 중요 우리는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 의존한다는 것이 ‘약하다, 비굴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려 하고, 나이가 들어선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후를 준비한다. 성경에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 16:20) 등으로 끊임없이 ‘의존적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적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며 감정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의지의 종교”라고 전한다. 이 의지는 무엇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그런 의지, 영어의 ‘윌’(will)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대려는 그런 의지 ‘디펜던스’(dependence)라고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이다. 할머니 껌딱지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무엇이 불편한지 배가 고픈지 바로 알아차리며, 불안하고 겁날 때 등에 업히면 편안하고 안정을 주는 신뢰의 존재였다. 2023년 우리에게 들리는 뉴스들은 금리가 오르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집값은 계속 내리고, 코로나는 전혀 종식되지 않는 불안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불안은 돈을 쌓아두게 되고 사람을 의지하며 미래를 알려주는 점집을 찾아가게 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들이 아니라(시 135:15)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다른 것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야훼의 눈동자가 불안하고 마음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된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하나님 야훼의 눈동자가 우리를 지키시는데 그것도 연초부터 연말까지 365일 지키신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으로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적셔졌으며, 적절한 때에 내려주심으로 가나안 땅의 3대 산물인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얻게 하셨고 가축을 위한 풀도 풍성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신 11:11~15). 땅이 좋아 풍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좋은 땅이 된다는 것이다. 2023년 우리에게 펼쳐질 날들의 예상 시나리오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어부바 해주시니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유대인들이 아기를 목욕시킬 때 하는 기도문이 있다. 이걸 좀 변형해서 조석(朝夕)으로 기도하면 좋겠다. 이 기도문의 핵심은 내가 누구를 기대고 살아야 하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제 얼굴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품게 하소서 / 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복된 말이 되게 하소서 / 제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하게 하소서 / 제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 제 가슴에 나라와 민족에 대한 사랑을 품게 하소서 / 제 오장육부가 건강하여 튼튼하게 하소서 / 부지런한 다리가 되어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 교만한 자리에 앉게 마시고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앉게 하소서 / 보이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Think! Thank! Q1. 하나님이 언제 어부바를 해주셨으면 좋겠나요? Q2. 당신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나요? Q3. 이 말씀을 가족과 함께 암송해 보세요. “네 하나님 야훼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야훼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3.01.06

    영적 자서전 …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 재구성
  • 2022년 되돌아보니 곳곳에서 하나님과 조우(遭遇) 새로운 시야로 인생의 목적과 방향 돌이킬 수 있어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 창 밖의 겨울 나무를 바라보듯 / 한 해의 마지막 달인 / 12월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뿌리를 내렸나요? /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 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 오늘을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 더 밝게 눈 뜨기 위해” 이해인 시인의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이다. 며칠 남지 않은 2022년을 보내려 하니 여러모로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하고, 새롭게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때마다 하나님과의 조우(遭遇)를 기억하며 그분의 은혜로 살았음을 고백하게 된다. 영적 자서전 … 영성 훈련일지 보통 유명한 사람이 지나온 삶에 대해 쓰는 걸 자서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매일을 기록한 일기나 성찰일지를 쓰고 모으면 이것도 자서전이 될 수 있다. 자서전은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영성 훈련일지이다. 자신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쓴 사람 중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고백록』(Confessiones)이 가장 유명하다. 어거스틴은 책에서 “내 영혼의 의사이시여, 내가 무슨 목적으로 이 고백을 하고 있는지 나로 하여금 확실히 알게 하소서. 당신은 내 과거의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 주셔서 신앙과 성례로 내 생을 변화시키셨고 당신 안에서 행복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내 고백을 읽고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감명을 받고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자서전(spiritual autobiography)은 첫째로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한다. 일반적인 자서전은 자신을 홀로 주인공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영적 자서전은 하나님을 공동 주연으로 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기록하다 보면 그 어떠한 것도 그냥 일어나거나 발생하는 일들은 없다. 영적 자서전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삶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올 한 해 일어났던 고통, 아픔, 시련, 감격, 축복, 후회 등 이 모든 것들의 숨은 의미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셋째, 영적 자서전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특별한 태도가 있다. 바로 감사다. 되돌아보며 … 하나님과의 조우 자서전 쓰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연대기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삶의 어떤 중요한 주제들을 정리해 나가기도 한다. 맥아담스(Dan P. McAdams)는 이 두 가지를 통합시켜 시간과 주제의 양면성 속에서 개인의 영적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하였다. 실제로 써보려면 우선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첩을 열어 시간, 사건별로 사진을 선택해 그 밑에 제목을 적어보자. 결혼, 사별, 취직, 유학 등 외형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수 있고, 지나가던 사람과의 우연한 대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작은 책, 지하철을 기다리다 무심코 읽게 된 하나의 시일 수도 있다. 1월 인생 첫 침례, 3월 병원 입원 등 자신에게 있었던 내용들을 적어보자.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었는지 등을 써 내려간다. 이때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부모, 자녀, 배우자, 친구, 선생님 등을 들 수 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책이나 학문을 통해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견디기 힘들었던 광야의 시간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부어주신 축복, 때마다 결정하고 선택했던 순간들을 통해 다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으로 삶을 재구성하면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들(the meaning of life)을 알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과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써 내려 가게 된다. 모든 것이 … 다 은혜였다 신명기 8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 자서전과 같은 책이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지나온 광야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야 함을 알려주신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살려주셨다. 사도 바울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고 고백하였다. 2022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Think! Thank! Q1. 월별로 어떠한 일들이 있는지 나열해 보세요. Q2.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기억하게 된 시기, 사건이 있으신가요? Q3. 바울의 고백처럼 2022년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해 보세요(고전 15:10).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2.12.09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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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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