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 - 윤성호 목사(선교국장)
  • 독일 헤른후트에 모라비안 공동체가 있다. 체코의 모라비안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피해 독일 작센지방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는데, 그때 진젠도르프 백작은 이들을 자기 영지에 거주하게 했다. 모라비안은 그곳을 주님의 보호(Lord’s Watch)라는 뜻을 가진 헤른후트(Herrnhut)라고 불렀다. 1722년부터 모라비안은 매일 3차례 모임을 갖고 간절히 기도했다. 1727년 8월 13일 기도 중에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8월 18일에는 어린이들까지도 성령 침례를 받았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모라비안은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1732년 레온하르트 도버와 다비드 니츠만을 서인도제도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을 필두로 그린란드, 수리남, 아프리카, 미국, 중국, 이란, 자메이카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특히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와 코코아 농장에서 일할 노예를 매년 10만명씩 데리고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일부 모라비안은 스스로 노예로 자원했다. 그들은 노예와 같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성경을 가르쳤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930년까지 3000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 오지에 파송하여 근대선교에 불을 지폈다. 모라비안은 독일 작센지역에 있던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그 공동체가 보여준 선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복음을 전하다 죽으라 그리고 잊혀져라’라는 모토를 갖고 전 세계로 흩어져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철저히 잊혀졌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그로 인해 수많은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되었고 근대선교를 주도했던 것이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 6:9). 여기서 ‘무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우메노이’는 ‘무시당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땅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땅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천국에서는 유명한 자다. 이들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이며 영원한 상급이 예비된 유명한 자이다. 제49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개최된다. 전 세계 63개국에서 사역하시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600여 명의 선교사들이 참석한다.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로서 타 문화권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드러내고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을 중보하고 후원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무명한 자일지 모르나 천국에서는 유명한 자로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 2023.05.26

    ‘여의도순복음교회’라는 브랜드의 특징 -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우리 교회가 창립 65주년을 맞았다. 1958년 5월 18일 대조동 천막 교회에서 시작된 교회가 불과 15년 만에 서대문 성전을 거쳐 지금의 여의도 성전으로 옮겨, 한 때 등록 성도 80만 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조차 일종의 ‘브랜드’가 된지 오래이다. 또 한 번의 교회 창립일을 맞아 이 브랜드, 다시 말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특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하면 ‘대한민국 최대 교회’, 아니 ‘세계 최대 교회’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 교회에 초청 받은 국내외 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어떻게 수요 예배에, 그리고 새벽 예배에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일 정도로 모이는 데 있어서는 단연 으뜸을 자랑한다. 또한 강단에서 선포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야말로 우리 교회를 특징짓는 주요한 요소이다. 설립자이신 영산 조용기 목사뿐만 아니라 2대 당회장 이영훈 목사의 말씀 충만, 성령 충만의 강력한 설교는 인본주의적 철학 강연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다가온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이 오순절 성령 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탄생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재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성령 사역이다. 따라서 온 성도가 성령 충만 받아 방언을 말하며 신유를 체험하고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열매 맺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열정적으로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순복음 신앙의 유명한 특징이다.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통성 기도, 안수 기도, 방언 기도, 중보 기도는 우리 교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외 선교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도 여의도순복음교회 브랜드의 장점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우리 사회와 세계 여러 나라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일 년 예산의 3분의1 이상을 구제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그 밖의 각종 헌금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방침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을 갖고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 뿐만 아니라 어떤 부서 어떤 조직이든지 전 구성원이 합심해서 ‘원 팀’으로 사역하는 신앙, 지구역 식구들을 내 가족처럼 섬기고 아끼는 신앙,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절대긍정, 절대감사’를 실천하는 신앙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자랑스런 특징을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 65년의 세월 동안 잘 가꾸어왔다. 이제 교회 창립 70주년, 더 나아가 100주년을 바라보며 이 같이 보석보다 귀한 브랜드를 더욱더 갈고 닦아 하나님께 더욱 크게 영광 돌리고, 21세기 세계 부흥을 선도하는 교회로 우뚝 서기를 기대하며 기도드린다.
  • 2023.05.19

    부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 성영목 목사(개척국장)
  •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지정된 역에서 냉동차가 역에 들어오면 객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냉동이 가동되지도 않은 객차 안에서 싸늘하게 얼어 죽은 시체 한 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냉동차는 일단 역에 들어오면 스위치를 뽑아 놓고 공기도 순환 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얼어 죽거나 질식해 죽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시신이 발견 되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나중에 조사를 해본 결과 이 사람이 죽은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열차 안에 갇히자 ‘아~ 냉동차 안에 갇혔으니 이제 얼어 죽겠구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이 그를 사로잡자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실제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죽을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제 냉동차 안에서 죽는구나’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얼어 죽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들의 삶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평안한 자리를 고통의 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부요의 자리를 궁핍의 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자리를 나 홀로의 자리로 만들어서 절망하고 낙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만들고, 어렵고 힘든 일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그 일을 이루게 되고, 질병의 고통에서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자리일지라도 부정적인 마음을 물리치고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선택함으로 매일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순복음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인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2023.05.12

    어린이날=교회학교의 날 - 이상영 목사(교회학교장)
  • 세계의 많은 나라가 어린이날을 지정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나라마다 어린이날로 정해진 날짜도 다르다. 태국의 어린이날은 1월 둘째 주 토요일이다. 일본은 3월 3일을 여자 어린이날로, 5월 5일을 남자 어린이날로 나누어 기념하고 있다. 인도는 최초의 수상이었던 네루 수상의 생일인 11월 14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리스는 5월에 어린이 주간이 있다. 어린이 주간에는 한 주 내내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각종 공연과 즐거운 행사들도 열린다. 우리나라는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을 만들어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했다. 이후 1945년 광복 이후에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정했다. 이렇게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은 어린이날에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5월 5일을 어떻게 보낼까? 많은 가정이 어린이날을 자녀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길 원하고 특별한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그래서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학부모들은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린이날에 자녀들과 교회 안에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교회에서 누리는 기쁨을 자녀들에게 채워 주어 앞으로도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는 2009년 5월 5일부터 어린이날을 교회학교의 날로 제정하여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미래 꿈나무들의 축제의 날로 개최해왔다. 올해도 우리 교회는 어린이날인 5일 ‘와’라는 주제로 교회학교의 날을 개최했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모든 친구들은 교회로 와서 예배를 통해 은혜를 나누면서 “와”,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와”, 버블&벌륜쇼와 인형극을 보고 “와”, 푸드트럭에서 맛있는 간식을 먹고 “와”, 교회 곳곳에서 게임과 체험을 통해 “와” 탄성의 소리가 가득 넘쳐났다. 교회가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추억의 장소 됐다. 예배를 통해 은혜가 가득한 장소가 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 2023.05.05

    다윗과 사울의 군사 - 정대원 목사(구로대교구장)
  •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가 대치한 상황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 나와 싸움을 돋을 때 사울의 군사 중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키가 여섯 규빗 한 뼘(2.9m)이나 되고 온몸에 놋 갑옷을 두른 골리앗의 위용 앞에 모두가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군사로서 자신들이 맡은 임무도 잊은 채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에 감히 맞서지 못했다. 군인이라면 마땅히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할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상대가 무섭다고 꽁무니를 감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들이 전쟁을 위한 훈련 받은 군사였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전장에 서 있던 또 한 사람, 다윗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다윗은 블레셋과 싸울 목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있던 것도 아니요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은 군사도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하기 위해 에바 골짜기에 갔었고, 그곳에서 적들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적의 장수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이다. 무엇의 차이였는가? 바로 믿음이다. 사울의 군사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을 목격했음에도 골리앗이라는 커다란 문제 앞에 믿음이 약해졌던 반면, 다윗은 자신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까울까? 다윗인가 아니면 사울의 군사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사는 신앙인들이 많다. 예배의 현장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영적인 전쟁터와 같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군사라면 마땅히 전장에 나아갈 믿음이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시기이다. 그간 우리가 받아온 성경에 대한 가르침과 훈련들은 바로 이때를 위한 믿음의 훈련이 아니었던가. 지 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다면 원수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예배 회복의 새 역사를 이루게 할 것이다. 예배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임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길 바란다.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 2023.04.21

    충성을 회복하라 - 김진태 목사(서대문대교구장)
  • 요즘 젊은이들인 MZ 세대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로 대화를 나눈다면 권위적인 사고를 사진 어른을 뜻하는 ‘꼰대’라고 불리기 십상이다. 이 꼰대들은 직장에서는 40대 중반 이후의 이들로 퇴근 시간이 지나도 업무가 끝나지 않으면 퇴근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리고 주말에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 꼰대들은 이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MZ 세대라고 불리는 20~30대들은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근무시작이면 8시 59분에 출근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회사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더 중요하고 현재의 직장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게 최근 나타나는 현상은 조용한 퇴사 문화이다. 이것은 직장을 퇴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업무 외의 일들을 그만두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직장에서 받는 돈 만큼의 일을 하며 회사의 편의에 따른 업무 외의 일을 시키거나 퇴근 후에 일을 하게 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교회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초기에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을 정말 가슴 아파했다. 이처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성도님들 가운데 신앙에 있어 조용한 퇴사를 하는 모습들이 대면예배, 봉사, 전도의 현장 등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우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드린다거나, 현장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까지 가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TV나 인터넷, 모바일로 대체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조용한 퇴사 문화가 교회와 신앙 속에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충성하는 자의 모습은 내 중심의 삶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이다. 이렇게 신앙과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성도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부흥의 파도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 2023.04.14

    사실에 근거한 부활 신앙의 중요성 - 배정호 목사(영산수련원장)
  •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 신앙은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인간이 누구이고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 죄의 형태가 어떻길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이해입니다. 기독교는 타 종교와 분명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이 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하고 부활에서 결론을 맺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사실을 논하는 종교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계명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것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기 힘듭니다. 신앙생활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목이 먼저 적용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인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옳으신 절대 선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은 늘 의로운 것이고 정당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논하면서 “받은 것이요”, “보이시고”, “보이셨느니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측면에서 합의하거나 이해하거나 하는 개념적인 접근을 전혀 시도하지 않습니다. 사실에 대한 선언으로 접근합니다. 사도바울이 보았던 부활의 사건이 사실에 대한 진술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부활을 보았다고 단언합니다. 자신만 본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가감 없이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사실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부활은 한 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더불어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침내 재림하셔서 모든 죄악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이점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신앙생활에 나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내용을 담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담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에서 오는 행복감일 것입니다.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그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재림 예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부활절이 되길 바랍니다.
  • 2023.04.07

    부흥을 주도하자! - 이재하 목사(마포2대교구장)
  • 세계적 예언가로 알려진 신디 제이콥스 목사는 작년 세계오순절대회에 참여하여 “10년 내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다”고 예언했고, 지난 3월 12일에는 “이영훈 목사를 세계 도처에 부흥을 일으키는 자로 택하였다”는 주님의 음성을 전했다. 부흥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을 이루실 때 도구와 통로로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부흥의 파도를 타야 한다. 나아가 도구와 통로로 부흥을 주도해야 한다. 지금은 부흥의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주도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려야 한다. 지금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신앙과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 그러나 신앙과 삶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주도권을 넘긴다는 것은 인간적인 힘을 빼는 것이다. 인간의 힘이 빠질 때, 하나님의 힘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삶의 주도권을 넘겨드릴 때 성령께서 우리를 부흥의 통로와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둘째, 부흥을 갈망하고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갈망하고 사모하며 기도했던 그들을 도구와 통로로 부흥을 주도하게 했다. 웨일즈 부흥의 주역 이반 로버츠 목사, 평양대부흥을 이끈 길선주 목사, 조용기 목사를 중심으로 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처럼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들을 부흥의 도구와 통로로 사용하셨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을 주목해야 한다. 부흥의 때에 사람을 주목하거나, 환경과 현상을 주목하는 것은 부흥의 때를 단명하게 하는 독약과도 같다. 오직 부흥의 파도를 일으키시며 그 파도 위에 도구와 통로로 사람을 세우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회개와 구원, 위로와 치유를 일으키시는 성령님을 주목하는 것만이 부흥을 지속하는 지름길이다. 부흥은 어느 시대나 세대를 초월해서 경험할 수 있지만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부흥의 때이다. 우리 모두가 도구와 통로가 되어 부흥을 주도하는 성령의 사람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 2023.03.31

    생각을 바꿔라 - 박찬대 목사(반석대교구장)
  • 지금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번은 인문학을 저술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년 책 한 권씩을 집필했는데 요즘은 책을 쓰다보면 세상이 또 다르게 변화되어 다시 책을 써야하는 상황이 와서 책을 집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십년이면 세상이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 시대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세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20여 ㎞에 이르는 견고한 성벽과 강풍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마르마라 해변과 폭이 800m에 불과한 골드혼(금각만)으로 둘러싸여 난공불락의 성으로 불렸다. 그런데 오스만제국은 1000년 이상 버텨온 철옹성을 불과 2개월 만에 차지했다. 오스만제국은 도저히 공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략을 펼쳤다. 황소와 병력, 장비를 총동원해 군함을 산으로 끌어 올린 후 기름칠을 한 목재 레일을 이용해 약 2㎞ 떨어진 골드혼에 이동 배치했다. 이렇게 70여 척의 군함이 골드혼에 배치되자 이 광경을 목격한 비잔틴 군대는 공포에 휩싸였다. 오스만은 육군과 해군의 협공으로 57일 만에 천해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처럼 고정관념의 틀에 빠져 무사 안일한 콘스탄티노플성과 생각의 틀을 바꾼 오스만제국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멈춤이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때 우리는 생각의 틀을 깨야한다. 갈수록 교회의 부흥은 어려워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한다. 그러나 이때가 다시 부흥의 시작이 될 것이다. 태풍이 불어와 바다를 다시 정화 하듯이 문제의 폭풍은 우리의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고, 2023년 2월 8일 수요일에 채플 후 현장에 남아 있던 19명의 학생들의 찬양과 기도로 시작된 미국의 애즈베리 부흥은 다시 새로운 부흥의 파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그 파도를 타고 전 세계에 부흥의 파도를 몰고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라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의 믿음으로 배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보자. 산에 오르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 2023.03.24

    지워짐의 은혜 - 오혁진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전문적 의견과 성과를 토론하기 위해 만든 것이 엣지재단(Edge Foundation, Inc.)이다. 회장인 존 브록만(John Brockman)은 각 분야의 지성인에게 지난 2천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무엇인가를 물어 『지난 2천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이란 책을 편집했다. 지성인들답게 대부분이 개념(교육, 민주주의, 과학적방법론 등)과 과학기술(인쇄, 컴퓨터, 인터넷 등)을 답했고, 특이하게 제시된 발명품으로 보온병, 말가죽, 클래식 음악 등이 있었다. 작가이자 평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이 질문에 ‘지우개’라고 답했다. 컴퓨터의 ‘del’키, 수정용 화이트, 헌법 수정 조항, 그 밖에 인간의 실수를 수정하는 모든 것들을 꼽았다. 돌아가서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면 과학, 정부, 문화, 도덕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우개는 우리의 참회소이자 용서하는 자며 타임머신이기도 하다.” 지우개는 실수를 지우고 깨끗하게 하면서 또한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준다. 시대와 도구가 다양한 만큼 지우는 방법들도 다양하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판에 잘못 쓴 글자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마르기 전에는 젖은 헝겊으로, 잉크가 마른 다음에는 칼날로 긁어냈다. 돌에 잘못 새긴 글자는 쪼아내고 석회로 메운 뒤 다시 쪼아 새긴다.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은혜가 지우개이다.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죄와 죄 자국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대신 지워주셨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지워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옷 입은 우리를 의인이라 여겨주시고 만나주신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3). 십자가는 실수와 실패, 상처와 미움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주신다. 새로워질 주님의 기회를 나와 우리에게 허락하신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8~19).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를 묵상하자. 지워짐의 은혜는 다시 시작하는 놀라운 기회임을 기억해보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 2023.03.17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Change or Die) - 변원중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미국의 교회 컨설팅으로 명성을 떨치는 톰 레이너 목사는 그의 책 『죽은 교회를 부검하다』에서 한 환자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그녀는 무척이나 아팠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철저한 변화가 없다면 그녀가 가진 모든 희망은 결코 현실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의사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변화도 한사코 거부했다. 의사는 최대한 연민의 감정을 담아 이야기하려 했지만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전하는 것만이 그녀를 정말 위하는 일임을 알았다. 기껏해야 5년이지… 5년도 길게 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사의 소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단호함과 저항, 분노를 담아 “저는 전혀 죽어가고 있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고는 5년 이상을 살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10년을 더 생존하는 끈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말이 살아 있는 것이지 고통과 질병과 절망으로 가득한 채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죽었다. 저자는 그녀의 이름을 ‘교회’라고 알려준다. 거창한 비전 가운데 탄생했을 교회이지만 문을 닫는 교회들을 수도 없이 보며 저자는 그 교회의 갖은 실패의 원인을 부검하여 생명을 잃어가는 교회에 즉각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잘 지켜온 부자 청년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다고 말씀하신다. 이렇듯 영생을 위한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바울 사도는 성도와 교회가 생명력이 넘치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롬 12:2). 성도와 교회는 이 세상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요구를 뛰어넘는 변화가 필요함을 알려준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교회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사순절 기간 주님의 수난이 우리에게 소망이 됨은 고난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회인 성도는 고난의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의 자리에서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 2023.03.10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김용권 목사(서대문성전 담임)
  • 다니엘서의 마지막 12장은 세계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말해 주고 있으며 성경 곳곳에서는 세계 종말의 징조로 도덕적 타락, 폭력, 가치관의 혼돈과 재난, 전쟁을 특징으로 말씀한다. 현재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전쟁, 지진, 기근 등을 체험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군 10만명, 러시아군 20만명 등 약 3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또한 2월 6일 튀르키예 지진으로 사망자가 앞으로 1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UN(국제연합)은 이번 지진으로 전 세계의 단층들이 흔들려 연쇄적인 지진과 화산폭발이 염려된다고 전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3년 넘게 진행된 코로나로 지난 1월까지 6억 7000만명 확진되고 사망자는 670만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암울한 소식들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나타날 징조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예언은 우리 삶에서 하나씩 성취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를 통치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하며 만물의 마지막 때를 잘 준비하는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날마다 기도에 힘써야 한다(벧전 4:7). 우크라이나와 튀르키예의 절망에 빠진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특히 구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한다. 바울이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청하는 것을 보게 된 것처럼(행 16:9) 우리 교회는 재난 소식과 함께 발빠르게 2주간의 재난 지원금을 모금하여 튀르키예에 10억원을 보내는 계획을 발표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의 구제와 선교를 통해 절망에 빠진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예수님 십자가 사랑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와 전도자의 사명이다. 세상 종말의 때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고 했다. 우리는 복음의 사명자이다.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세상 종말의 마지막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다.
  • 2023.03.03

    영적 지진 대비법 -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담임)
  • 2월 6일 튀르키예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해 4만 6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에르진’이란 도시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사망자 ‘0’, 무너진 건물 ‘0’이란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019년에 에르진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엘마소글루는 당시 튀르기예 법원에서 지진 대비법이 통과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취임 직후부터 지진 대비법을 기준으로 도시 내 건축물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내진 규제 강화법에 따라서 지진 취약 지역의 신축 건축물에 고품질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사용하라고 지시했으며 기존 건물 중 지진에 취약한 건물들을 철강으로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에르진 시민들은 새로 임명된 시장의 지시에 큰 불만을 가졌고 자신의 건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민원이 발생했다. 엘마소글루 시장은 타협하지 않고 단오하게 지진 대비 보강공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지난 6일 튀르키예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지만 에르진 시민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4년 전에 엘마소글루 시장을 비난하고 욕했던 에르진 시민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준 시장에게 큰 감사를 하고 있으며 엘마소글루 시장은 튀르키예 온 국민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큰 전쟁이나 큰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묵상해야 할 성경구절이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감람산 토론 중에 한 제자가 예수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또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종말의 때에 영적 지진 대비법도 말씀해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4~27).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는 광야를 건너 전쟁과 지진이란 여리고성을 만났지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법인 성경의 가르침대로 반석 같은 신앙의 집을 짓길 소망한다.
  • 2023.02.24

    희망의 빵 - 김석수 목사(금옥성전 담임)
  • 루이지 코멘치니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코미디 장르 영화의 거장 중에 한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빵과 사랑과 꿈’(Pane, Amore E Fantasia)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195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실직과 가난, 질병 등으로 패배감과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는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한 노인이 시골 길가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마을의 파출소장이 노인에게 “영감님, 무엇을 드시고 계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노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곰보빵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파출소장이 “빵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어보자 노인은 손에 쥐고 있던 빵을 반으로 잘라 보이며 “빵 속에 꿈이 들어 있다오!”라고 대답했다. 사실 노인이 보여 준 빵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고 노인은 마른 빵만 먹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원래 곰보빵 속에 고기나 치즈, 야채 등을 듬뿍 넣어서 먹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은 가난으로 빵 속에 아무것도 넣을 수 없어 속이 빈 빵으로 끼니를 때웠지만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영화였다. 희망을 가졌다고 해서 배가 부르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참기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우리를 돕고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 죽음까지도 물리칠 수 있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진 등 세상의 현실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희망이 생긴다. 내일에 대한 꿈이 생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임을 항상 기억하자.
  • 2023.02.17

    교회에서의 오픈 런(Open run) - 서상현 목사(은평성전 담임)
  • 최근 TV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오픈 런’이라는 단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원래 ‘오픈 런’의 의미는 종료일을 지정하지 않고 공연을 지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농구 수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장, 열림’을 뜻하는 Open과 ‘달리다’의 뜻을 가진 ru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개장과 동시에 (뛰어가서) 입장하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런(run)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느긋하게 천천히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듯이 뛰어 들어갈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매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 런(Open Run) 현상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 다른 이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짐으로서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행동이 오픈 런에 숨어있는 속뜻입니다. 대부분 존재 자체의 행복이 아닌 소유가치의 행복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오픈 런의 원조는 아마 우리 교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73년 여의도로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학교 초등부에서부터 지내 온 기억에 의하면, 당시 대성전에 들어오기 위한 성도들의 발걸음은 항상 오픈 런이었습니다. 1시간 이상 성전 밖에 서서 기다리며 예배를 사모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 아래 ‘예배, 선교와 전도, 교육, 교제, 봉사’ 등 다섯 가지 기본 기능을 수행합니다. 우리 교단 헌법은 제24조 교회의 구별의 항목에서 교회를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기능 가운데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예배가 가장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최근 병원과 대중교통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곳에서 마스크 해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예전처럼 예배 자리를 향한 오픈 런을 기대해보며 부모, 형제, 자매, 친구, 가정, 이웃, 동료들을 전도하여 복음의 오픈 런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길 꿈꾸어 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 2023.02.10

    리추얼 라이프, 영으로 의식하라 - 권병수 목사 (복지사업국장)
  • 새해가 되어 우리 가족은 MZ세대 감성의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각 장의 메모장에는 요즘 자주 사용하는 ‘리추얼’(Ritual)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리추얼’은 의식적이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사실 리추얼은 ‘종교상 의식’이나 ‘제의적 의례’의 뜻을 담고 있다. Ritual의 어원적 뿌리는 라틴어 ‘Ritus’에 있다. 리투스 (Ritus)는 ‘성스러운 관습’을 뜻한다. 이는 한 시대에 통용되는 사회적 습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리추얼과 라이프를 합해진 신조어 ‘리추얼 라이프’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규칙적인 습관을 의미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습관 실천을 통해 코로나 블루와 취업난, 주택난 등에서 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심리적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으려는 MZ세대의 요구가 반영된 라이프 스타일이다. MZ세대들은 이런 리추얼 라이프 실현을 위해 새벽 시간을 활용하여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미라클 모닝은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기 2~3시간 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자기개발을 위해서 이불개기, 물 한잔 마시기, 기도, 독서, 일기쓰기 등 소소한 것부터 자신의 생활 습관(루틴)을 행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 안정감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 계시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먼저 일어나서 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찾을 필요 없이 매일 새벽에 성경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새벽에 예배로 시작하는 것이다. 새벽에 주님과 만나 영으로 의식하며 사는 리추얼 라이프는 미라클 모닝이 되어 하루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삶의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말씀 앞에서 예배하는 미라클 모닝을 실현해 내길 바란다. 주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운명을 거는 한해가 되어 그 능력이 개인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 세계를 향한 비전이 되어질 것을 믿는다. 나의 리추얼 라이프가 영적 라이프(Spiritual life)로 준비되어야 한다. 리추얼 라이프, 영으로 의식하는 한해를 기대한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 2023.02.03

    예배와 식사 - 마웅갑 목사(교회학교장)
  • 러시아 사할린에 가면 다른 러시아 지방보다 색다른 음식 메뉴를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을 설명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 러시아 사할린에는 먹을 것이 없어 러시아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조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인들이 가서 보니 산나물, 미역, 다시마, 조개, 명태, 오징어, 문어 등 당시 유럽 사람들은 알지도 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찾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조선인의 음식을 먹다 보니 지금의 사할린 러시아인들은 유럽 사람들과는 다른 음식 메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하나님의 명령도 그리고 첫 번째 죄도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먹지 말라는 것을 호기심에 잘못 먹었더니 에덴에서 쫓겨나 유한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먹을 것에 대한 관점은 약간 다르다. ‘얼마나 다양한 먹거리를 어떻게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야훼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레 6:18). 아론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고운 곡물가루를 주님께 드린 후에 나머지를 성막에서 나누어 먹었다. 이 식사는 맛이 문제가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소박하지만 나누어 먹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예배와 더불어 식사에서 하나님의 것을 나눔으로 그들도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곳, 성전에서 먹고 나누는 가운데 주의 백성이 되어 간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주님이 정하신 예배는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배이고 두 번째는 공동식사이다. 공동식사를 준비하는 자는 예배를 준비하는 제사장과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영적인 말씀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고 다음은 육을 위한 음식 즉,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이로서 예배는 완성된다. 처음 말씀을 나누는 예배와 다음의 애찬을 나누는 시간도 모두 예배인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설교만 듣는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배와 식사를 나누는 그곳에 성령님은 임하신다. 올해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거룩한 성찬을 온전히 준비하며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모든 모임에서 예배와 교제의 식사가 은혜로 활성화되길 소망한다.
  • 2023.01.27

    새롭다는 것은 - 이일섭 목사(선교국장)
  • 모든 인생에 있어 새롭다는 것,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각각의 인생에 변화와 회복 그리고 희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동경하고 추구하지만 저마다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절망함으로,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 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여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다 인생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언제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였던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그의 저서 일일일생(一日一生)에서 “기독교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 역사의 출발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주님만을 신뢰하기로 믿음으로 결단하고, 전폭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 속에서 전진할 때 변화하고 성장하며 또 다른 소망을 품을 수 있은 단계로 올라서게 됩니다. 헬라어로 ‘새롭다’는 의미를 지닌 ‘카이노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할 때 쓰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씀의 ‘새로운 피조물, 새 것’에 ‘카이노스’가 사용됩니다.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생각과 꿈이 새로워지고, 입술의 고백과 믿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성도는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마침내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믿음으로 선언하고 성령님과 함께 담대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 2023.01.13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 백근배 목사(여의도직할성전 담임)
  • 소망의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바닷가에 진을 치던 때에 애굽왕 바로의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은 홍해요 뒤는 무서운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것입니다. 실로 진퇴유곡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갈 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지난해를 뒤돌아 보지 말고 새로운 새해를 향해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시련의 관문을 만난 것입니다. 이들이 만난 것은 앞은 홍해요 뒤는 애굽 군대이며 양 옆은 험한 산입니다. 축복의 땅에 대한 모든 공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감사와 찬송의 소리가 갑자기 원망과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래도 낙심치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가르침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또 일어나 나가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어떠한 애굽, 홍해, 산이 우리의 앞을 막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대 여성 가운데 한 명이며 영화감독이자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9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축복 된 삶을 살게 된 것은 할머니가 세 살부터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나갈 때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고, 애굽이란 적군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러서지 아니하고 나갈 때 하나님이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한 해도 새 소망과 꿈을 안고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 2023.01.06

    성령 충만한 삶이 드러나는 새해 - 윤광현 부목사(교무)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왜 ‘성령 충만과 술 취하지 말라’가 함께 나타날까요? 이것은 외형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얼굴은 빨갛고 걸음걸이는 휘청거리면서 말은 어눌하고 누가 봐도 술 마신 사람, 술 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적인 인생들의 한 단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와 반대의 삶인 성령과 함께하는 삶,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삶을 우리에게 명령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많은 성도들이 내적인 감흥, 뜨거워지는 것, 주관적인 요소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의 명령은 성령 충만 받은 삶의 모습이 어떤 삶인지를 19절에서 21절까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찬양으로 화답하는 삶입니다.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삶은 입술에 찬양이 넘쳐나고,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각자의 삶 속에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에 서로 섬기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내 뜻은 죽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일하심이 나타날 수 있는 복종의 삶이 드러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았을 때, ‘술에 취한 세상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찬양과 감사, 복종의 삶이 보이는 성령 충만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해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자신의 성령 충만함은 개인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부부, 가정, 사회 환경 속에서도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제2부 예배의 삶은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응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2022.12.30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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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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