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예배와 식사 - 마웅갑 목사(교회학교장)
  • 러시아 사할린에 가면 다른 러시아 지방보다 색다른 음식 메뉴를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을 설명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50년대 러시아 사할린에는 먹을 것이 없어 러시아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조선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계속 입에 넣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었는데 러시아인들이 가서 보니 산나물, 미역, 다시마, 조개, 명태, 오징어, 문어 등 당시 유럽 사람들은 알지도 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찾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조선인의 음식을 먹다 보니 지금의 사할린 러시아인들은 유럽 사람들과는 다른 음식 메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하나님의 명령도 그리고 첫 번째 죄도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먹지 말라는 것을 호기심에 잘못 먹었더니 에덴에서 쫓겨나 유한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먹을 것에 대한 관점은 약간 다르다. ‘얼마나 다양한 먹거리를 어떻게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먹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야훼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레 6:18). 아론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린 고운 곡물가루를 주님께 드린 후에 나머지를 성막에서 나누어 먹었다. 이 식사는 맛이 문제가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소박하지만 나누어 먹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예배와 더불어 식사에서 하나님의 것을 나눔으로 그들도 거룩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곳, 성전에서 먹고 나누는 가운데 주의 백성이 되어 간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주님이 정하신 예배는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예배이고 두 번째는 공동식사이다. 공동식사를 준비하는 자는 예배를 준비하는 제사장과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영적인 말씀을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고 다음은 육을 위한 음식 즉,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다. 이로서 예배는 완성된다. 처음 말씀을 나누는 예배와 다음의 애찬을 나누는 시간도 모두 예배인 것이다. 이는 인터넷에서 설교만 듣는 것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배와 식사를 나누는 그곳에 성령님은 임하신다. 올해는 우리의 예배 가운데 거룩한 성찬을 온전히 준비하며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모든 모임에서 예배와 교제의 식사가 은혜로 활성화되길 소망한다.
  • 2023.01.27

    새롭다는 것은 - 이일섭 목사(선교국장)
  • 모든 인생에 있어 새롭다는 것,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각각의 인생에 변화와 회복 그리고 희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동경하고 추구하지만 저마다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절망함으로,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 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여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다 인생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언제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일본의 개신교 사상가였던 우치무라 간조(1861~1930)는 그의 저서 일일일생(一日一生)에서 “기독교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그 역사의 출발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주님만을 신뢰하기로 믿음으로 결단하고, 전폭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세상 속에서 전진할 때 변화하고 성장하며 또 다른 소망을 품을 수 있은 단계로 올라서게 됩니다. 헬라어로 ‘새롭다’는 의미를 지닌 ‘카이노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할 때 쓰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씀의 ‘새로운 피조물, 새 것’에 ‘카이노스’가 사용됩니다.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성도를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생각과 꿈이 새로워지고, 입술의 고백과 믿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성도는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마침내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믿음으로 선언하고 성령님과 함께 담대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 2023.01.13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 백근배 목사(여의도직할성전 담임)
  • 소망의 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 바닷가에 진을 치던 때에 애굽왕 바로의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은 홍해요 뒤는 무서운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것입니다. 실로 진퇴유곡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앞으로 나가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나아갈 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지난해를 뒤돌아 보지 말고 새로운 새해를 향해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시련의 관문을 만난 것입니다. 이들이 만난 것은 앞은 홍해요 뒤는 애굽 군대이며 양 옆은 험한 산입니다. 축복의 땅에 대한 모든 공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감사와 찬송의 소리가 갑자기 원망과 탄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래도 낙심치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씀합니다.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넘어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가르침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또 일어나 나가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에게 어떠한 애굽, 홍해, 산이 우리의 앞을 막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10대 여성 가운데 한 명이며 영화감독이자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9살 때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14살에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이러한 축복 된 삶을 살게 된 것은 할머니가 세 살부터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고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금년 한 해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희망을 가지고 나갈 때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고, 애굽이란 적군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물러서지 아니하고 나갈 때 하나님이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금년 한 해도 새 소망과 꿈을 안고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 2023.01.06

    성령 충만한 삶이 드러나는 새해 - 윤광현 부목사(교무)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왜 ‘성령 충만과 술 취하지 말라’가 함께 나타날까요? 이것은 외형적인 관점으로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얼굴은 빨갛고 걸음걸이는 휘청거리면서 말은 어눌하고 누가 봐도 술 마신 사람, 술 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세상적인 인생들의 한 단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와 반대의 삶인 성령과 함께하는 삶,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삶을 우리에게 명령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라고 하면 많은 성도들이 내적인 감흥, 뜨거워지는 것, 주관적인 요소들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의 명령은 성령 충만 받은 삶의 모습이 어떤 삶인지를 19절에서 21절까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찬양으로 화답하는 삶입니다.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듯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삶은 입술에 찬양이 넘쳐나고,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런 감사의 삶을 통해 성령 충만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각자의 삶 속에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에 서로 섬기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내 뜻은 죽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일하심이 나타날 수 있는 복종의 삶이 드러날 때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았을 때, ‘술에 취한 세상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찬양과 감사, 복종의 삶이 보이는 성령 충만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해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삶을 나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자신의 성령 충만함은 개인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부부, 가정, 사회 환경 속에서도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제2부 예배의 삶은 성령 충만한 삶으로 응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2022.12.30

    만병통치약! 감사를 바르라 - 홍형기 목사(강서1대교구장)
  • 한 때 겨울철만 되면 부모님들은 겨울 건조한 날씨에 피부보습을 유지하기 위해 바세린을 발라주시곤 하셨다.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바세린은 어느 집이나 하나쯤은 꼭 비치되어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바세린을 바르면 웬만한 병은 다 낫더라는 사실이다. 인생 전반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문제에도 마치 바세린과 같이 만병통치약이라 불릴만한 신앙의 자세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이다. 매사에 감사를 바세린처럼 발라보자. 실제로 아픈 곳이 있으면 낫나 안 낫나 똑똑히 따져서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야 될 것 같지만 이보다 앞서 먼저 ‘감사’를 바르게 되면 그 회복력은 훨씬 빨라진다. 사람들 사이에 생긴 문제 속에 씩씩거리고 화를 주체하지 못할 그때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 때에도 일단 내 마음과 입술에 감사부터 바르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께선 감사로 시작한 그 자리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심을 보게된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지독한 근시가 찾아와 눈앞에 있는 것조차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절망의 자리에 서 있던 그는 그때부터 첼로부분 만이 아니라 다른 악기 파트의 모든 악보까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계속해서 연주자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교향악단은 매우 중요한 아이다(Aida) 공연의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악단을 이끌어야 할 지휘자는 관객들과 소통의 문제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말았다. 공석이 된 지휘자 자리를 두고 웅성거리고 있던 그 때 악단에서는 토스카니니를 떠오르게 된다. 그는 악보 전부를 외우는 유일한 단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맡겨진 지휘봉을 가지고 토스카니니는 일반 지휘자가 해낼 수 없는 자신만의 음악적 감각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지휘자의 길을 걸어간 그는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결국엔 세계적인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다. 토스카니니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신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아라. 좋은 환경이어야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조건들이 많아져야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2022년을 감사함으로 마무리하고 2023년을 감사함으로 시작하게 될 때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누리게 되는 축복의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 2022.12.23

    섬김의 도 - 김종현 목사(동대문성전 담임)
  •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는 교회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하지만 교회와 성도는 이 사회에 절대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가진 자는 주린 자를 돌아보고 성한 자는 병든 자를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 섬기는 자는 늘 허리를 굽혀 상대를 깍듯이 대하는 것이다. 섬김은 먹을 것을 주고 돈도 주고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섬김이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데 섬김의 바른 이해가 없이는 올바른 봉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올바른 섬김을 배움으로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교회와 성도를 바로 세워 가는데 필요한 일꾼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섬김에 필요한 것이 또한 겸손이다. 성경 빌립보서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라고 말씀하고 있다.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남을 업신여기게 되며 그 안에 섬김이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섬김이 허영이 아니기를 바란다. 다툼이 없고 거짓이 없는 겸손으로 섬기는 성도가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청지기란 말은 나에게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일꾼인 것이다. 교회에서 식당일을 많이 한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 일로 인해서 어떠한 현상이 곧 어떠한 열매가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이 섬김이 되고 봉사가 되고 구제가 되고 선교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그냥 일을 한 것이지 섬김도 봉사도 헌신도 아닌 것이다. 올바른 섬김으로 하나님과 교회와 이 사회를 변화 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 2022.12.16

    강한 바람에 둥지를 짓는 새처럼 - 신준우 목사(동작대교구장)
  • 새는 둥지를 지을 때 결코 쉽고 편안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 작은 부리로 얼마 안 되는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흙을 이겨 틈새를 메우는 수고를 수백 수천 번 반복하면서도 낮은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오르기 힘든 높디높은 곳을 골라 둥지를 짓는다. 심지어 그 작은 몸으로 균형 잡기조차 버거운 강풍이 불어도 잔잔해질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을 기다려 둥지를 짓는다. 새가 짓는 둥지는 탐욕스러운 짐승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에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거센 태풍 앞에서 나무가 뿌리째 뽑히거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꺾일지라도 새의 둥지는 허물어지는 법이 없다. 이렇듯 새에게 있어 최악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둥지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그러기에 새는 둥지를 짓는 일에 있어 결코 쉬운 길(easy way)이 아닌 가장 좋은 길(best way)을 선택한다. 최근 매서운 겨울을 알리는 한파 속에 크리스천의 삶의 기반을 흔드는 거센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굳이 사회, 정치, 경제 등 객관적인 지표를 확인하지 않아도 우리 귀에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부정적이다. 이념의 대립으로 사회는 분열된 데다 나라 밖 거친 외풍까지 더해져 한 해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다가올 새해를 기대해야 할 12월의 발걸음이 마냥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강한 바람 앞에서도 새는 움츠리기는커녕 더욱 힘껏 날개를 펴 둥지를 짓듯이 우리 역시 믿음으로 희망이란 이름의 둥지를 지어야 한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별이 더욱 밝게 빛나듯이 모두가 소리 높여 절망을 말할 때 우리는 묵묵히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그때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가장 크고 가깝게 경험할 때인 것이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도 새처럼 쉬운 길이 아닌 가장 좋은 길을 결단하며 거친 비바람과 태풍 앞에서도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 튼튼하고 견고한 둥지를 지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 2022.12.09

    메타버스로 떠나는 성지순례 - 이상영 목사(서대문대교구장)
  •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상세계에서 나만의 아바타를 이용하여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현실세계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룰 수도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되지 못했던 유명인의 삶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메타버스의 세계이다. 특별히 코로나 시기에 메타버스는 더욱 대중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 역시 코로나로 인해 여름수련회를 하지 못했던 시기에 메타버스를 통해 수련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싫든 좋든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세계는 앞으로 우리 곁에 더 발전된 모양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며칠 전 한 장로님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메타버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앞으로는 성지순례도 메타버스를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스라엘을 포함한 성지를 방문해보고 싶어하지 않는가?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재정, 시간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평생 성지를 방문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으로 메타버스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성지순례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예수님 사역의 중심지였던 이스라엘, 바울의 선교 여행지였던 터키 및 유럽 등의 지역도 다녀올 수 있고, 우리 주님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보며 신앙의 유익과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일들은 이제 현실의 기술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고증을 바탕으로 구현된 1세기 팔레스타인 땅을 21세기에 밟아보고, 주님 곁에서 3년 반을 동행했던 제자들의 시점으로 주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엿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미 세상은 가상세계에 대한 수많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교회 역시 가상세계 및 메타버스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신앙적으로 고민하고 전문인들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과 부작용을 경계하는 것 역시 교회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선하고 지혜롭게 활용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2022.12.02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를 위한 기도 - 김남준 목사(청장년국장)
  • 코로나 이후 청년세대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을 가속화시킨 것이 온라인 예배다. 이전까지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형태를 대면 예배에 나올 수 없는 극한 상황 때나 드리는 예배로 생각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말씀을 주야로 들을 수 있는 등 신앙생활을 위한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현실 앞에 다른 선택지가 없던 청년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 예배를 선택하게 되었고, ‘예배’라는 인식이 청년들에게 강하게 심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모임 금지가 해제된 지금에도 청년들은 대면 예배를 드릴지 또는 온라인 예배를 드릴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며 온라인 예배를 ‘예배’로 인식한 세대들에게 더는 온라인 예배에 대한 신앙의 불편함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대면 예배도 ‘예배’, 온라인 예배도 ‘예배’로 인식한다. 그들에게는 단지 방식만 다른 ‘예배’일 뿐이다. 세상은 이처럼 코로나 이후 변화된 트렌드를 쫓아 우리가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방향성은 마가 다락방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초대교회 당시 그들은 모였고, 모여서 함께 기도했고, 모여서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났다. 성령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다시 함께 모여야 하고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며 체험해야 한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외손자이자 미국에서 주목 받는 튤리안 차비진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목마름과 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해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청년세대를 향해서도 복음을 향한 세상과 전혀 다른 메시지를 고수하며 나갈 때, 지금 이 시대 청년들의 알 수 없는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성령의 뜨거운 불을 가진 청년들이 더 깊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도리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구별된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 2022.11.25

    스콴도를 기억하자 -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1603년 3월 24일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평가받는 여왕 엘리자베스1세가 사망했다. 자손이 없었기에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로 즉위한 후 노골적으로 가톨릭 제도를 옹호하며 평소 염증을 느끼던 청교도들을 탄압했다.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620년 9월 16일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 ‘순례자 조상들’(Pilgrim Fathers)이라고 불리게 된 청교도 102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떠났다. 이들은 같은 해 11월 21일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도착한 이듬해엔 첫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 추수감사절이 유래되었다. 사실 ‘순례자 조상들’보다 10년 앞선 1608년 영국 무역상들이 그곳에 먼저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왐파나옥이라는 인디언들을 스페인에 노예로 팔아넘겼는데 그중 스콴도라는 인디언 청년이 끼어 있었다. 그는 스페인의 한 사제에게 팔렸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세 가지 제목을 가지고 늘 기도했다. 첫째는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를 팔아넘긴 백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과 협력하여 고향을 스페인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셋째는 자기 평생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콴도는 그 사제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전염병으로 모두 죽고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한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은 자들을 이끌고 땅을 개간하며 마을을 재건했다. 바로 이때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한 것이다. 스콴도는 유창한 영어로 청교도들을 환영하고 정착을 도왔다. 영국에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청교도 지도자인 윌리엄 브래포드 목사는 그의 일기장에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스콴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준비하신 특별한 도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옥수수를 어떻게 심는지, 낚시를 어떻게 하는지, 땅을 어디에 어떻게 개간하는지 가르쳤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되어 우리를 인도했다.” 첫해가 지나고 청교도들과 스콴도 그리고 인디언들이 칠면조를 잡아 함께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수년 후 그가 열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는 브래포드 목사에게 천국에 편히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면서 부디 이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땅을 축복해주옵소서…” 추수의 계절, 우리 각자의 스콴도는 누구일까? 그 사람으로 인해 감사가 넘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누구보다 우리에게 진정한 스콴도 되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넘치는 감사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자.
  • 2022.11.18

    세상을 구하는 오직 한 길 - 이상일 목사(용산대교구장)
  • 커피 하나로 전 세계 많은 가맹점을 운영하는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사장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워드 슐츠는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출신배경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성공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것저것 손을 대지만 스타벅스는 오직 커피 하나로 3만 4317개가 넘는 가맹점을 갖는 업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장 뒤에는 종업원들을 존경과 품위로 대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라는 책에 보면 ‘성공은 나눠 가질 때 가장 달콤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승선에 혼자 도달하면 공허하지만 한 팀을 이룬다면 기쁨이 크다는 멋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도 스타벅스의 성공원리처럼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조그만 동네 출신으로 많은 사람이 비웃었지만,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름처럼 구원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셨습니다. 훌륭한 의사가 될 수도 있었고, 또 유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종교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직 한 길,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가난한 자,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함께 하셨고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하인들의 역할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에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지시에 역시 묵묵히 순종하며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다. 이어 항아리에 있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져다주라는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아무도 이 맛있는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몰랐지만 하인들만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하인들의 순종이 있었기에 빛을 발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내 스스로의 생각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갈릴리 가나의 하인들처럼 조용히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복음의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2022.11.11

    회복탄력성과 하나님의 은혜 - 한사무엘 목사(종로중구대교구장)
  • 오늘날 스트레스를 빼놓고는 현대인의 삶을 말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질병관리청의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신체활동은 줄고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 스트레스나 삶의 고난을 잘 이겨내는 능력을 의미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다양한 삶의 시련과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과 연관된다. 쉽게 말해서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역경과 고난에 맞설 수 있는 영혼의 맷집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성경은 회복탄력성의 책이고 믿음의 조상들은 강력한 영혼의 맷집을 소유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냈는지가 기록되어 있고 믿음의 조상들이 그 예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련과 역경이 없는 인생은 없고 실패와 고난이 없는 인생도 없다. 따라서 문제는 삶에서 역경과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하느냐이다. 상담가들은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권장하거나 또는 분노 억제 및 현실 인정과 같은 삶의 태도의 변화를 조언하지만, 성경은 특별한 다른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야곱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야곱은 이집트의 바로 앞에서 자신 스스로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할 만큼 고난과 시련이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험악한 삶을 살면서도 야곱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다. 얍복강 건너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야곱은 두 차례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언급한다(창 32:9,12). 파란만장한 삶의 터널에서 야곱을 지탱시켜 준 것은 바로 반드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용기와 힘을 주시며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삶의 시련을 인생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의 디딤돌로 생각한다. 순복음의 열정이 회복탄력성의 은혜를 만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회복될 것이며 우리의 예배와 구역은 다시 부흥할 것이고 우리의 기도와 전도의 열정도 다시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 2022.11.04

    씨앗의 교훈 - 김승만 목사(의례부장)
  • 성경에는 씨앗의 비유가 몇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천국을 소개하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앗의 주체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을 맺는 인간을 뜻한다. 그리고 또 다른 비유에서 바울은 씨앗을 몸의 부활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억지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정확한 사실을 믿는다. 그 정확한 사실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연을 조금이라도 깊게 관찰한다면 부활을 증명할 수 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자연(自然) 또한 스스로 자(自)에 있을 연(然)으로 ‘스스로 있다’라는 뜻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발현되어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정직하며 스스로 잘 유지되어 간다. 하지만 인간의 과욕으로 자연은 손상되고 파괴되고 있음을 최근 지구온난화가 증명해 주고 있다. 자연을 구성하는 씨앗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이 땅에 뿌려져 썩어 죽은 듯하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 싹을 내며 가지가 자라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겨울에 완전히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살아나 또다시 열매를 맺는다. 매년 반복적으로 자연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풍성한 열매를 제공하고 그 덕분으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그 부활의 열매로 인간들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하시며 부활이 있음을 계시하신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사망 권세(죽음)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도록 하셨다. 예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처형 사건 전에는 모두가 예수를 멀리하고 자신들의 몸을 피신하였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목격한 후에는 제자들 모두가 자신들의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순교하였다. 인간이란 확실한 동기가 없이 남을 위해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연 속에 씨앗의 비유와 예수의 부활의 실제적인 사건을 통하여 부활의 사실을 증명하고 계신다. 많은 선조들의 육신은 흙으로 영혼은 하나님 앞으로 떠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자연은 하나님의 역사가 마칠 때까지 영원할 것이다. 죽음은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있기에 이 또한 삶으로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제는 죽음과 부활이 연속적인 우리의 삶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부터라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스데반처럼 열리는 하늘 문을 보고, 사도 바울처럼 삼층 천에 다녀오는 목표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 2022.10.21

    어. 예. 정 - 김진수 목사(상담소장)
  • “내가 알아? 당신이 알아?” 부산 태종대에 갔을 때 길에서 들은 한 부부의 대화다. 보아하니 20년 이상 함께 산 중년 부부가 부산으로 여행 온 모양이었다. 부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져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선명하게 들려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태종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남편의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 아내는 “내가 알아? 당신이 알아?”라며 쏘아붙이고 있었다. 부부의 대화를 우연찮게 듣게 되며 생각한 것은 이렇듯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계속되는 질문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고 답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인생의 다양한 각도에서 오는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으려 한다. 사람들에게서 위로받기를 원하며 격려받기를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처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인정욕구’라고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정욕구야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고 본다. 하지만 이사야 2장 22절의 말씀을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시편 146편 4절에도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단언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와 격려와 지지를 해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뿐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어차피 (예)예수님이 (정)정답이다”라는 공식이 필요하다. 기독교 상담은 기독교라는 ‘신본주의’와 상담이라는 ‘인본주의’ 학문이 더해져 모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의 개입이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상담은 모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목회자로서 상담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에게 기도제목을 여쭤보면 백이면 백 모두 한숨을 내뱉는다. 걱정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내담자에게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들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가로서는 “어차피 예수님이 정답이다”를 전제로 상담에 임하게 된다. 우리 인생의 정답이신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이 염려로 채워지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상담의 핵심이 아닐까. 아직도 삶의 문제 속에서 힘들어하는 지체들에게 권면해본다. <어.예.정>이라는 공식은 우리를 살게 하는 진정한 답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답이 되는 인생이야말로 참된 돌보심이 있는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 2022.10.14

    세계오순절대회를 개최하며 - 김영석 목사(교회성장연구소장)
  • 전 세계 6억 8000만 오순절 성도들의 축제인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Pentecostal World Conference)가 12일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개막 예배를 시작으로 공식적인 막을 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국제 행사인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한국을 포함한 170여 개국에서 5000여 명의 국내외 목회자와 신학생 등이 참여하는 대회로 포럼과 공연, 전문인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사흘 동안 진행한다. ‘세계오순절대회’는 194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으로 3000명의 오순절 지도자와 성도가 모여 콘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3년마다 콘퍼런스가 열렸고 1961년 공식적으로 ‘세계오순절대회’로 명명됐고 이를 계기로 세계오순절협회가 창립됐다. 이번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행사는 14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리는 ‘한반도 평화와 다음세대 부흥을 위한 기도대성회’이다. 이날 행사에는 전 세계 참가자 5000여 명을 포함 약 2만여 명이 참여해 남북한의 화해와 대화 재개를 요청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기도회를 갖는다. 이 기도회는 유튜브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다양한 언어로도 통역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1973년과 1998년에 이어 3번째로 열리는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다음 세대의 오순절 부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 대표대회장 이영훈 목사는 세계 오순절 지도자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세계 선교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번 ‘세계오순절대회’는 오순절 성령운동을 기성세대를 넘어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전수하고 계승해 나갈지 모색한다는 점과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 엔데믹으로 향하는 선교 사역 방향과 전략도 다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960년대~1970년대 오순절적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부흥의 역사를 이룬 것처럼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 교회에 이번 ‘세계오순절대회’가 다음세대 부흥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오순절 성령운동을 통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사회적 성화를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성회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성공적으로 치러지길 소망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 2022.10.07

    보혈의 은혜 - 김범석 목사(반석대교구장)
  •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분홍색 지붕으로 올망졸망하게 지어진 가옥들과 연초록으로 물든 생소한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눈이 가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그것은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짙은 황톳길이었다. 온통 황토로 덮인 그 길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선이 멈추곤 할 때마다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런 찬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정에 따라 선교지 교회를 방문하러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곧 그 황톳길이 곤욕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는 황토 먼지가 팔과 신발뿐 아니라 어느새 입안과 콧속까지 끈적끈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서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온통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그 길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먼지 투성이로, 그리고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숙소엔 깨끗이 씻을 물이 있어 불편하긴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흙먼지로 더럽혀져도 씻을 물이 있으면 다시 깨끗하고 개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간다의 그 황톳길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쳐다만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세상 역시 지나쳐 보면 흙먼지가 풀풀 난다. 누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악의 흙먼지가 몸에 묻거나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세상에서 일렁이는 죄의 흙먼지를 뒤집어써 주홍 같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씻어주시길 간청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양털처럼 희게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복 받은 인생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퍼주고 나누어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이다. 그래서 그 보혈 안에서 우리는 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깨뜨리신 몸과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는 시월의 첫 주 성찬 주일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보혈은 우리에게 묻은 죄악의 먼지를 씻어내 줄 것이다. 그 보혈이 온 마음과 몸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줄 것이라 확신하며 씻어야겠다.
  • 2022.09.30

    인생수업 - 이성광 목사(구로대교구장)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이 진짜 중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호스피스의 죽음체험이라는 것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죽음체험이란 자신의 죽음을 가장(假裝)해서 인생의 마지막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연예인에게 호스피스 한분이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신체 중 가장 소중한 부위 5개를 적으라고 하였다.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눈, 입, 귀 등 5개를 적었다. 그 다음은 가장 소중한 보물, 그 다음은 소중한 가족 이름을, 그 다음은 내 인생에 놓치기 싫은 것들을 적었다. 호스피스 분이 “당신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신에게 안 좋은 병이 생겼습니다. 목록 중에서 5개를 지우세요”라고 하여 5개를 지웠다. 다시 호스피스 분이 “다음날입니다. 당신의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2개를 더 지우세요”하자 계속해서 하나씩 목록을 지워 갔다. 결국 소중한 신체 부위를 다 지웠다. 소중한 일도 지웠다. 소중하게 생각한 집도 지우고 통장도 지우고 계속 지워 나갔는데 마지막 가족만이 남았다. 아이들을 지우려고 했는데 안 지워진다는 것이다. 눈물이 나면서 도저히 가족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호스피스 분의 말이 “죽음을 앞둔 많은 환우 분들이 하고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더 많은 시간 더 웃으면서 추억을 되새기세요.” 그는 머리에 큰 망치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덜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족을 더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되면서 내가 일을 왜 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 2022.09.23

    채움과 비움 - 김태선 목사(마포1대교구장)
  •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은 대부분 부족함 때문에 생기는 것보다 지나침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더 많다. 1960~1970년대에는 잘 먹지 못함이 서러움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문제가 생긴다.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기름진 음식과 과식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진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육체의 비만을 넘어 마음의 비만이 문제다. 우리의 인생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수 없다. 무엇인가 더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욕심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바흠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땅을 얻기 위해 바시키르라는 유목지에 가게 된다. 하루 종일 걸은 만큼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부지런히 땅을 밟게 된다. 그러나 조건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지로 돌아오지 못하면 모두 무효라는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바흠은 하루 종일 많은 땅을 밟기는 했지만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그를 장사하고 묻은 한 평의 땅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흠처럼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멈춰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것으로 더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채움과 비움 사이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 흔들렸고 이방인과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나서는 그의 인생의 채움과 비움을 깨닫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에게 채움은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 외 모든 것은 비움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가을이 시작됨을 느낀다. 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신앙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 거룩한 고민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2022.09.16

    나의 살던 고향은 - 조종현 목사(실업인대교구장)
  • 어릴 적부터 이맘때면 많이 부르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시골 고향의 추억이 없어도 왠지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는다. 하나님이 주신 귀소본능으로 동물조차 서식 장소나 둥지, 태어난 장소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 곳, 내 꿈이 잉태된 곳,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 말한다. TV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기차 또는 자동차로 고생고생하며 귀성 전쟁을 치르면서도 기쁨으로 고향에 가는 뉴스방송을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그런데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있다. 남북의 분단으로 북한에 고향이 있는 분들은 고향에 갈 수 없다. 일본 선교사로 있을 때 한국에 가고 싶어도 비자 문제 혹은 다른 사정으로 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군대시절 휴가 다녀온 동기가 댐으로 고향이 없어졌다고 눈물지었던 모습도 보았다. 실향민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훨씬 더 아픈 것은 영혼의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의 실향민보다 영혼의 실향민이 더 비참하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이 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영혼의 고향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리운 분이 있다. 1년 전 천국 가신 조용기 목사님.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았기에 그리워 눈물이 난다. 목사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천국을 소망하셨다. 사랑하는 자들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하셨고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기도 응답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렸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계승되어 이 땅에서 천국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있는 곳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고향이 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믿어 영혼의 고향을 바라보는 귀한 추석이 되길 소망한다.
  • 2022.09.08

    ‘걷기’와 ‘기도’ - 조지훈 목사(은평대교구장)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론자이다. 그는 자신의 책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서 “이 모든 걷기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 수단 하나에만 몸을 맡긴 채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걷기는 느림, 유연성, 대화, 침묵, 호기심, 우정,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저항 행위이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일상을 전복시켜 내재된 성질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표면 위에서만 살아가며 그 표면을 자신의 유일한 깊이로 삼고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이미지, 스타일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숱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심연처럼 여겨지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걷기는 자신의 신체와 세상을 연결하는 행위이다. 세상적인 기준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다. 느리고, 유연하고, 대화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그래서 호기심과 우정과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또한 걷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이면으로 깊이 파고든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한다. 세상에 좀 더 집중하고 동시에 그 세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내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걷기이다. 따라서 이런 삶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걷기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일 수밖에 없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그대로 우리의 기도 생활에도 적용이 된다. ‘걷기’라는 말 대신에 ‘기도’라는 말을 대입해보아도 거의 동일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신체를 통해 내 자신 밖의 세계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그저 입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영, 혼, 육이 혼연일체가 되어 우리 밖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또 메시지를 받는 행위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세계와 연결이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연결된다. 단순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기도는 일상을 바꾸고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언어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발화된 언어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행한다. 이것이 기도가 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역동적인 행위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전복시키는 역동적인 삶의 소유자인 것이다.
  • 2022.09.0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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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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