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보혈의 은혜 - 김범석 목사(반석대교구장)
  •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분홍색 지붕으로 올망졸망하게 지어진 가옥들과 연초록으로 물든 생소한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정작 눈이 가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그것은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짙은 황톳길이었다. 온통 황토로 덮인 그 길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선이 멈추곤 할 때마다 경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런 찬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일정에 따라 선교지 교회를 방문하러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곧 그 황톳길이 곤욕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는 황토 먼지가 팔과 신발뿐 아니라 어느새 입안과 콧속까지 끈적끈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서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온통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그 길이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먼지 투성이로, 그리고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도 숙소엔 깨끗이 씻을 물이 있어 불편하긴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흙먼지로 더럽혀져도 씻을 물이 있으면 다시 깨끗하고 개운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간다의 그 황톳길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은 쳐다만 보면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세상 역시 지나쳐 보면 흙먼지가 풀풀 난다. 누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죄악의 흙먼지가 몸에 묻거나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세상에서 일렁이는 죄의 흙먼지를 뒤집어써 주홍 같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며 씻어주시길 간청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양털처럼 희게 깨끗이 씻어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복 받은 인생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퍼주고 나누어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아무리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이다. 그래서 그 보혈 안에서 우리는 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깨뜨리신 몸과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는 시월의 첫 주 성찬 주일이다. 지금도 변함없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보혈은 우리에게 묻은 죄악의 먼지를 씻어내 줄 것이다. 그 보혈이 온 마음과 몸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줄 것이라 확신하며 씻어야겠다.
  • 2022.09.30

    인생수업 - 이성광 목사(구로대교구장)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이 진짜 중요한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호스피스의 죽음체험이라는 것을 통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죽음체험이란 자신의 죽음을 가장(假裝)해서 인생의 마지막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 연예인에게 호스피스 한분이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신체 중 가장 소중한 부위 5개를 적으라고 하였다.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눈, 입, 귀 등 5개를 적었다. 그 다음은 가장 소중한 보물, 그 다음은 소중한 가족 이름을, 그 다음은 내 인생에 놓치기 싫은 것들을 적었다. 호스피스 분이 “당신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신에게 안 좋은 병이 생겼습니다. 목록 중에서 5개를 지우세요”라고 하여 5개를 지웠다. 다시 호스피스 분이 “다음날입니다. 당신의 상태가 아주 안 좋습니다. 2개를 더 지우세요”하자 계속해서 하나씩 목록을 지워 갔다. 결국 소중한 신체 부위를 다 지웠다. 소중한 일도 지웠다. 소중하게 생각한 집도 지우고 통장도 지우고 계속 지워 나갔는데 마지막 가족만이 남았다. 아이들을 지우려고 했는데 안 지워진다는 것이다. 눈물이 나면서 도저히 가족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호스피스 분의 말이 “죽음을 앞둔 많은 환우 분들이 하고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더 많은 시간 더 웃으면서 추억을 되새기세요.” 그는 머리에 큰 망치를 맞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덜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가족을 더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되면서 내가 일을 왜 하는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 2022.09.23

    채움과 비움 - 김태선 목사(마포1대교구장)
  •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은 대부분 부족함 때문에 생기는 것보다 지나침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더 많다. 1960~1970년대에는 잘 먹지 못함이 서러움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문제가 생긴다.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기름진 음식과 과식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진단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육체의 비만을 넘어 마음의 비만이 문제다. 우리의 인생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수 없다. 무엇인가 더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욕심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바흠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이 청년은 땅을 얻기 위해 바시키르라는 유목지에 가게 된다. 하루 종일 걸은 만큼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부지런히 땅을 밟게 된다. 그러나 조건이 한 가지가 있었는데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지로 돌아오지 못하면 모두 무효라는 것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바흠은 하루 종일 많은 땅을 밟기는 했지만 출발점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그를 장사하고 묻은 한 평의 땅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흠처럼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멈춰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 것으로 더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채움과 비움 사이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 흔들렸고 이방인과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나서는 그의 인생의 채움과 비움을 깨닫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도 바울에게 채움은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 외 모든 것은 비움의 대상이었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가을이 시작됨을 느낀다. 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신앙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 거룩한 고민과 함께 가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 2022.09.16

    나의 살던 고향은 - 조종현 목사(실업인대교구장)
  • 어릴 적부터 이맘때면 많이 부르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시골 고향의 추억이 없어도 왠지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그리워진다. 많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찾는다. 하나님이 주신 귀소본능으로 동물조차 서식 장소나 둥지, 태어난 장소로 되돌아오려고 한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울음을 터트린 곳, 내 꿈이 잉태된 곳,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정겨운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고향이라 말한다. TV에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기차 또는 자동차로 고생고생하며 귀성 전쟁을 치르면서도 기쁨으로 고향에 가는 뉴스방송을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그런데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있다. 남북의 분단으로 북한에 고향이 있는 분들은 고향에 갈 수 없다. 일본 선교사로 있을 때 한국에 가고 싶어도 비자 문제 혹은 다른 사정으로 가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군대시절 휴가 다녀온 동기가 댐으로 고향이 없어졌다고 눈물지었던 모습도 보았다. 실향민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훨씬 더 아픈 것은 영혼의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의 실향민보다 영혼의 실향민이 더 비참하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돌아갈 본향이 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영혼의 고향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다. 요즘 들어 더욱 그리운 분이 있다. 1년 전 천국 가신 조용기 목사님.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았기에 그리워 눈물이 난다. 목사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천국을 소망하셨다. 사랑하는 자들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하셨고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기도 응답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렸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영훈 담임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계승되어 이 땅에서 천국의 열매로 맺어지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우리가 있는 곳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고향이 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믿어 영혼의 고향을 바라보는 귀한 추석이 되길 소망한다.
  • 2022.09.08

    ‘걷기’와 ‘기도’ - 조지훈 목사(은평대교구장)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론자이다. 그는 자신의 책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서 “이 모든 걷기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 수단 하나에만 몸을 맡긴 채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걷기는 느림, 유연성, 대화, 침묵, 호기심, 우정,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저항 행위이다…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일상을 전복시켜 내재된 성질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표면 위에서만 살아가며 그 표면을 자신의 유일한 깊이로 삼고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이미지, 스타일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숱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심연처럼 여겨지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걷기는 자신의 신체와 세상을 연결하는 행위이다. 세상적인 기준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전유물이다. 느리고, 유연하고, 대화하고, 때로는 침묵하는 그래서 호기심과 우정과 무용성을 우선시하는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또한 걷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걷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이면으로 깊이 파고든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한다. 세상에 좀 더 집중하고 동시에 그 세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내 자신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걷기이다. 따라서 이런 삶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걷기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일 수밖에 없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그대로 우리의 기도 생활에도 적용이 된다. ‘걷기’라는 말 대신에 ‘기도’라는 말을 대입해보아도 거의 동일한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신체를 통해 내 자신 밖의 세계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그저 입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영, 혼, 육이 혼연일체가 되어 우리 밖의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또 메시지를 받는 행위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영적인 세계와 연결이 되고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연결된다. 단순하고 무기력해보이지만 기도는 일상을 바꾸고 전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언어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발화된 언어는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행한다. 이것이 기도가 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역동적인 행위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전복시키는 역동적인 삶의 소유자인 것이다.
  • 2022.09.02

    짬뽕과 기도 - 임 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군산에는 짬뽕이 없다. 대신 ‘군산 짬뽕’이 있다. 기도에도 왕도가 없다. ‘응답받는 기도’만 있을 뿐이다. 기도는 같을지라도 응답은 성도들 각자에게 다르다. 군산 짬뽕이 어느 집을 가도 다른 맛을 내듯이 말이다. 맛은 달라도 재료는 비교불가다. 항구도시답게 낙지와 오징어, 백합과 조개 등 화려한 더블캐스팅이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과 말씀의 두 기둥을 의지해야 한다. 한 시간 새벽예배로 시작하고 날마다 성경 말씀을 한 시간씩 읽는 삶의 혁신이 필요하다. 어느 짬뽕집에서는 낙지 위에 계란프라이가 올라가 있어 비주얼 혁신이다. 하얗고 뽀얀 일본 짬뽕에 비해 군산 짬뽕은 고추기름이 듬뿍 들어가 맵고 빨갛다. 그러나 결코 식도를 뜨겁게 달굴 만큼 맵지 않은 다시 생각나는 매운맛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깊이 들어갈수록 자꾸 생각나는 맛집처럼 기도의 맛에 빠질 수 있다. 목이 터져라 기도하는 통성기도는 소중한 전통이다. 군산 짬뽕의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짜장면의 시작이 인천 차이나타운이고 짬뽕은 군산이다. 짬뽕은 국수 이름이지만 “밥 먹었니?”라는 뜻이 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항상 하던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스스로에게 묻자. “기도했니?” 짬뽕 한 그릇에 행복해지듯 기도로 우리 삶이 윤택해질 것이다. 8월 28일, 오늘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국의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발코니에서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며 연설을 한 날이다. 1963년도의 일이다. 킹 목사 연설의 마지막은 “우리는 마침내 자유로워졌습니다”(We are free at last)라는 선언이다. 우리는 이미 자유로운 존재다. 간구하고 감사함으로 현실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성경을 보면 현실감각이 뛰어났던 두 제자의 모습이 누가복음 24장에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은 후에야 주님임을 알아보았다. 지식을 뜻하는 라틴어 ‘사페레’(sapere)에 ‘맛본다’는 뜻도 있듯이, 짬뽕 한 그릇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더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봄날의 햇살이다. 오시는 분들마다 짬뽕 추천을 요청한다. 아무래도 인플루언서 리뷰보다는 현지인의 추천이 확실하지 않을까. 화끈하게 기도하고 싶은 분들이 믿고 먹는 군산 짬뽕, 국룰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 2022.08.26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 안태경 목사(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 담임)
  •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가? 혹 나와 함께 하신다고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가? 주님이 나와 동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은 그분이 나를 위해 정말 쉬지 않고 일하시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은 첫째, 내게 빛이 있어 캄캄함과 어두움을 이기는가? 둘째, 오늘 내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가? 셋째, 주와 함께 높이서 또 멀리 바라보는 비전이 있느냐이다. 야훼께서 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신다면 내 안에서 말씀의 회복이 일어난다. 신앙의 열정이 뜨겁게 채워진다. 기도할 때 말씀을 힘차게 외치는 힘을 얻게 된다. 회복에 대한 믿음과 비전이 일어난다. 약속의 성취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의지가 생겨난다. 그 어느 것도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가 일하셔야 내가 살아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야훼 하나님과 혼연일체 되어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한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과 물이 하나로 연합되고 신랑과 신부와 하나가 되는 기쁨이 생겨난다. “야훼께서 일하시니 이스라엘아 너희도 함께하자. 힘을 내라, 힘을 내라. 성문을 향해 나아가라, 나아가라. 그의 길을 수축하라, 수축하라. 열정과 믿음과 의지를 다하여 야훼를 찾고 찾으라.”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면 야훼 하나님은 쉬지 못하시게 된다. 그와 맺은 약속을 기억하고 그것을 야훼께 말하라. 외치라. 선포하라. 그렇게 기도하면 야훼께서 쉬지 않고 일하실 것이다. 우리는 담대한 믿음으로 외쳐야 한다. “야훼여! 빛의 속도로 오십시오. 내 안의 생명을 불러일으켜 주십시오. 영광의 광채를 비쳐주십시오. 내 안의 로고스가 살아나게 하십시오. 일어나라 말씀하십시오. 빛을 발하라 선포해주십시오. 내 주변에 덮여있는 어두움을 벗겨주시고 캄캄함을 씻어주십시오. 오래된, 아주 깊이 박혀있는 내 안의 상처와 고통을 닦아주십시오. 나를 묶고 있는 죄와 악의 굴레를 벗겨주십시오. 나를 가두고 있는 저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어주십시오.” 열정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그로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하면 그가 쉬지 못하시고 일하신다.
  • 2022.08.19

    교회를 사랑합시다 - 채지석 목사(여의도순복음이천중앙교회 담임)
  • 지난 3년간 마귀는 코로나19로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의 모임을 방해하여 교회의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지고 성인, 청년, 교회학교의 예배가 극소수로 줄어들었으나 이제 다시 교회의 회복을 위한 뜨거운 소망이 일어나고 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교회를 사랑하라’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것 같지만 하늘에 속하고, 사람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다스리고, 사람이 세운 것 같으나 하나님이 세운 곳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교회 사랑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교회를 어떻게 사랑할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 히브리서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모임 속에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성도는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모이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침체되며 교회의 모든 부분이 약화 되는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교역자와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 나간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헌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헌신은 나를 위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하여 나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을 위하여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사랑은 관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 나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영혼이 자라나는 교회를 위해 나는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나의 마음이 평안을 얻고, 나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소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5).
  • 2022.08.12

    처음 사랑 - 심두진 목사(여의도순복음횡성교회 담임)
  • 강원도 횡성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저의 일상중의 하나가 치매 어르신과의 생활입니다. 교회에서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믿지 않고 입소하신 어르신이 구원 받고 천국을 가실 때는 천하를 얻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치매로 인해 인지능력이 상실되다 보니 기억을 잘 못합니다. 방금 식사하고도 밥 안준다고 생떼를 부릴 땐 난감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폭행에 집을 나와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여 자식을 키웠는데 자식들이 자신을 외면하자 자식 소용없다고 하는 말은 사실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하여 도와주어야 합니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도 노년에 치매의 일종인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셨으며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한경직 목사님도 노년에 치매를 앓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은퇴 후에 남한산성에 기거하셨는데 90세(졸수) 때 제자들이 신년인사를 드렸는데 목사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겁니다. 옆에 있던 제자들이 “목사님 저희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죠”라고 말하자 그때 한경직 목사님이 제자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시면서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한마디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참석하신 목사님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고 합니다. “목사에게 예수 잘 믿으라니”라고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목사님은 “저 말씀이야말로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유언으로 여기고 크게 회개하겠다”고 했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처음 사랑을 잊어버립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의 모든 것이 됩니다. 십자가만 바라보면 눈물이 나고 예배 때마다 은혜의 빗줄기가 내렸습니다. 봉사하면 기쁨이 넘치고 교회생활, 신앙생활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적 치매가 오면 놀라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일반 치매는 과거의 기억이 여전하고 현재 사실에 둔감한데 영적 치매는 정반대입니다. 과거의 은혜는 망각하고 현재의 일들만 불평과 비판으로 기억합니다. 이리되면 신앙생활이 건조하고 가슴에 찬바람만 불기 마련이지요. 한경직 목사님 말씀처럼 예수 잘 믿으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이 여름 말씀과 기도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 2022.08.05

    내일 주님이 오신다면 - 박창호 목사(통일대교구장)
  •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미 지구가 멸망해 있을 수도 있어.” 수년 전 환경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대화하던 중 지인이 던진 말이었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인류가 먼저 멸망할 수도 있다니…’ 그때는 웃고 지나갔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예사롭지 않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 폭염으로 인한 산불과 이상 기후와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 이대로라면 수년 내 지구 해수면이 7.5m가 상승한다고 하니 그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 곤충들도 사라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면 결국 인간이 살 곳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이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다 함께 살 것이냐? 이대로 다 함께 죽을 것인가?” 정말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지구가 먼저 멸망할 수 있을까? 성경적으로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징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난리의 소문과 전쟁과 기근과 핍박. “깨어라! 때가 가까이 왔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만약 내일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셨다. 주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럼 우리가 복음을 들고 가야 할 땅 끝은 어디일까? 가고자 해도 갈 수 없는 나라, 가장 먼 곳, 같은 언어를 쓰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우리의 땅 끝은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맡겨주신 마지막 사명지다. 주 오실 때가 심히 가까운 이때에 우리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으며 한 몸 되어 통일한국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 통일대교구가 신설된다. 주님이 교회에 주신 마지막 지상명령 땅 끝 사역을 완수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는다. 자유를 찾아 내려온 자유시민과 흩어져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모아 통일한국을 준비케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임을 확신한다. 이 말세의 징조들을 보며, 이 마지막 때에 깨어 일어나 하나 되어 통일한국을 향해 기도하며 전진하는 순복음 용사들의 비전을 본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땅 끝에서 기도한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2022.07.29

    우리 인생에 가끔 불이 꺼지는 이유 - 이철 목사(기도원 대교구장)
  • 어느 한 목사님이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차 안에 있는 불을 껐다. “아빠 왜 불을 꺼?” “응, 밖이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야.” 실제 운전을 하다 보면 차 안에 불이 켜져 있으면 밖이 잘 보이지 않고 운전에 방해가 된다. 차 안의 불빛 때문에 시선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차 안의 불을 끄는 것이다. 시골에 가면 밤하늘의 별이 참 잘 보인다. 그런데 요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별을 볼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그것은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서 별이 보이지 않는 거라고. 사실이다. 불빛을 모두 끄면 별이 보인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가끔 불을 끄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더 잘 보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하나님께 더 집중하도록 하기위해서다. 독서실이나 개인적인 공부방에는 불을 환하게 다 켜지 않는다. 공부하는 책상에만 스탠드 불을 켠다. 이유가 무엇인가. 불빛이 있는 곳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체적으로 불이 다 켜져 있으면 산만해지고 집중하기 어렵다. 우리의 눈은 빛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전체가 환하면 집중하기 어렵다. 공연장에는 한 곳에만 집중되는 빛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다. 우리말로 ‘핀 조명’이라 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유는 이곳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빛이 비취는 곳은 환하지만 반대로 다른 곳은 순식간에 어둠에 싸여 캄캄하게 된다. 인생에 고난이 닥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시선을 주님께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7, 8월 세상 사람들은 휴가 계획을 잡기에 바쁘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인 우리들은 하나 더 준비할 것이 있다. 기도의 동산에 올라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 2022.07.22

    참된 쉼 - 이승훈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한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평생 일만 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휴가를 떠나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오히려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휴가를 보낸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더 지치고 피곤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휴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결혼 후 처가댁 식구들과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유명 관광지와 맛집을 검색해 빡빡한 일정을 짰다. 내심 처가에 인정받는 사위가 되고 싶었다. 공항에 내리니 좋은 날씨와 청량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차를 렌트하고 출발하였다. 좋은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짧은 기간 마라도, 우도, 유명한 관광지들을 쉬지 않고 달렸다. 거리가 먼 지역이라도 맛집을 찾아갔다. 가족들이 만족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가족들은 자동차, 비행기, 배로 옮겨 다니며 멀미를 시작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 체면을 생각해 말하지도 못했다. 결국, 아이들이 열이 나고 제주도 병원까지 관광(?)한 후에야 나는 여행 계획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됐다. 가족들에게 남은 건 힘든 일정과 병원에 간 기억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시대 꼭 필요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쉼’이다. 참된 쉼을 얻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성경은 그런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에서는 소 두 마리가 한 개의 멍에를 메고 밭을 갈게 한다. 경험 많은 소가 어린 소와 함께 멍에를 멘다. 힘이 센 소가 힘이 약한 소와 멍에를 멘다. 한 마리가 힘이 약할 때 다른 소가 힘을 낸다. 우리 인생에서 힘들고 낙심될 때가 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 옆에서 이끌어주시고 우리의 짐을 함께 지신다. 올여름 예수님께 나아가자.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자. 예수님께서 힘 되시며 스승 되셔서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신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금식기도대성회가 개최되어 목마른 우리의 영혼에 생명수를 부어 주고 있다. 수련원에서는 참된 쉼과 함께 깊은 영성을 회복하며 주님과 만날 수 있다. 이번 여름 금식기도성회에 참석해 주님과 함께 참된 쉼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 2022.07.15

    건강 하십니까? - 이연섭 목사(강서2대교구)
  • 동네에 새로운 도서관이 생겨 가족들과 방문한 적이 있다. 우선 넓은 공간에 충분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옛날 도서관은 자료열람실에서 책을 빌리고 독서실에서는 독서하거나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열람실과 독서실을 통합으로 운영하고 책을 빌리는 것과 반납하는 것도 기기에 올려놓기만 하면 순식간에 처리 되어 무척 편했다.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이 있어 그 자리에서 읽었던 책이 있는데 『절반만 먹어야 두 배 오래 산다』라는 제목이었다. 책 내용 중에 “미국 코넬대학 매케인 교수는 열량 섭취를 40%줄인 쥐가 음식을 통제하지 않은 쥐보다 두 배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먹고 싶은 만큼 먹은 쥐가 절반만 먹는 쥐 보다 수명이 절반이나 짧다는 거다. 음식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몸의 활동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되는데 금식을 하면 소화에 쓰이는 에너지가 치유, 면역, 해독 에너지로 바뀌어 몸을 회복시키는 데 집중한다는 거다. 그래서 대다수의 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동굴에 들어가 금식하는데 반면 사람들은 몸에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더 먹으려는 욕심이 몸을 망친다고 한다. 금식을 통한 배고픔이 우리 몸에서 순간적으로 일종의 위기상태 경고 알람 신호를 보내고 신체의 생명유지 시스템을 일제히 작동시켜 면역력, 자연치유력, 해독력에 불이 들어와 백혈구 등 면역세포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세포 내에서 해독 작용이 일어나고 온몸의 신진대사 속도가 빨라져 세포가 깨끗해지면서 젊어져 생명이 활기차게 되살아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적게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금식기도를 생각하게 됐다. 지난주에 ‘권사금식 기도대성회’가 오산리기도원에서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이제 7월에 있는 ‘직장금식성회’와 ‘여성금식성회’가 남아있다. 이번 여름에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영 혼 육의 건강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보는 게 어떨까? 금식만 해도 몸에 좋다는데 금식하며 기도하면 육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챙기는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 2022.07.01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랑 - 김도훈 목사(금옥성전 담임)
  • 예전에 수련회에 참가했던 어느 겨울의 일이다. 오전 세미나 후 점심 식사를 마친 참석자들은 바깥 공기로 차가워진 몸을 녹이도록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한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행사장 곳곳에 흩어져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었다. 추워진 몸을 잔뜩 움츠리고 들어선 나는 행사장이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둘러보니 공간에 비해 작아 보이는 히터 한 대가 온기를 만들어내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명을 다하느라 피곤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창가 빈 소파에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늘하던 공간이 더 춥다는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내 히터 가까이로 모여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따뜻한 온기를 찾아 히터로 다가선 사람들은 커피의 달콤함과 함께 따뜻한 온기 안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따스한 바람을 찾아 히터 가까이 다가선 몇 사람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온기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구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따뜻해지려면….’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도 우리만이 아닌 이웃과 함께 호흡하며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해야 될 때이다. 세계 속에서의 대한민국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 모든 사람들도 서로에게 그런 노력을 선물해야 할 때는 아닐까. 나 자신이 누리고 있는 편안함으로부터 한걸음씩 물러서려는 노력으로 서로를 돌볼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뜻해질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코로나19 여파로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다. 온 세계는 코로나와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랑으로 온기가 되어주신 예수님처럼 서로를 보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이 땅을 뒤덮은 냉기가 온기로 뒤바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절망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만이 절대희망이기 때문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 2022.06.26

    세계를 홀린 배려 - 이재하 목사(마포2대교구장)
  • 작년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가 올해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섰다. 그녀는 영화 ‘코다’(CODA)에서 선천적 청각장애인 아버지 역을 열연한 ‘트로이 코처’가 수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화까지 연습하는 열의를 보였다. 실제로 ‘트로이 코처’는 영화에서처럼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윤여정 씨는 남우조연상 후보 5명을 차례로 호명한 후 수상자가 기록된 봉투를 열고 수상자로 선정된 트로이 코처를 배려해 서툴지만 수어를 통해 진심을 표현한 후 수상자를 호명했다. 그리고 윤여정 씨가 등단한 트로이 코처에게 트로피를 전달한 후 다시 빼앗는 듯한 행동은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되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런데 곧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천적 언어 장애인 그가 수상 소감을 수어로 할 수 있도록 트로피를 대신 들어 준 배려였다. 이를 본 참석자들 역시 박수 대신 양손을 들어 흔들어 수어로 축하했다. 배려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주일 예배 후 도망치듯 퇴장하는 성도들이 뒤에서 밀면서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다. 간혹 연세 드신 성도들이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거나 앞을 향해 손을 내밀어 시야를 확보하려 한다. 낙상 예방을 위한 반사작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때 윤여정 씨의 배려처럼 어깨를 내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은 어떨까? 물론 생각지 않게 타인의 손이 신체 일부분에 닿으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어깨와 손을 내밀어 먼저 잡아주면 불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가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윤여정 씨의 작은 배려가 모든 관객과 세계를 홀린 것처럼 어깨를 잠시 내어주거나 손을 잡아주는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리라 본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와 어깨를 내어주시며 기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넘어지려는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어 잡아주심으로 수 없이 많이 넘어질 순간들을 피하게 하셨다. 이제 우리가 이웃을 향해 어깨가 되어주고 손을 내밀 때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 2022.06.19

    노인과 바다 - 김석수 목사(광명성전 담임)
  •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년)는 『노인과 바다』로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쿠바의 하바나 항을 근거 삼아서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자신만의 삶을 위해 근근이 살아간다.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는 이제는 젊은 날의 기력은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소년 마놀린의 도움으로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노인은 바다에서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배에 올라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가 지금까지 잡아 보지 못한 큰 고기를 잡았다. 노인은 자기의 배보다도 더 큰 물고기를 배 옆에 단단히 묶어 두고는 항구로 향했지만 물고기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노인은 상어를 쫓느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지만 고기는 결국 상어들의 밥이 되었다. 그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 많은 사람은 이 소설을 가리켜서 헤밍웨이 삶의 허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흘 동안의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은 고기를 상어 떼에게 빼앗겨버리는 이야기는 인생의 허무함을 말한다. 노인은 수고하여 큰 물고기를 잡았지만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찌 보면 헤밍웨이는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과 같다. 『노인과 바다』 이후에는 아무 작품도 내놓지 못하고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증 그리고 질병에 시달리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엽총으로 자신의 인생을 끝냈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누리며 노벨상을 타고 명성을 얻었을지라도 그 영혼이 주님 안에서 쉼을 누리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결국은 쓰러지게 되어 있다. 자신의 삶에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솔로몬은 하나님이 없이 사는 인생의 수고는 결국 다 헛된 것임을 고백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누린 후에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 2022.06.12

    ‘자유와 평화’ - 김성준 목사(양서성전 담임)
  •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모하는 달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코로나 엔데믹으로 가는 여름의 길목에서 50인 미만이 모인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마스크 속에 나를 숨기는 ‘무책임한 자유’가 편리할 때도 있습니다. 골목 여기저기에 들어선 무인 점포도 처음엔 낯설었는데 실랑이할 사람 없는 가게에서 홀로 ‘이기적인 평화’를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색하게 변해버린 일상의 자유와 평화를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거기 발맞춰 가야지, 꼰대처럼 왜 그래?’라고 넘기기엔 무언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어느 동네교회 이야기입니다. 성도님이 그리 많지 않은 작은 동네교회에선 예배를 마치면 온 성도가 함께 식사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식사하는 성도님들의 표정을 보며 기쁨으로 섬겨주시던 주방의 자매님들은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이 많은 분들로 바뀌었습니다. 주방일이 힘에 부치던 어느 날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해보았지만, 핵가족시대 ‘육아독박’, ‘봉사독박’에 젊은 일손은 도무지 주방에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주방에서 일해주실 분을 채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온 성도가 평화롭게 식당에 앉아 밥을 먹던 어느 날 한 분이 생각합니다. ‘밥은 그리스도인이 먹고, 설거지는 비그리스도인이 하는구나….’ 교회가 세상을 위해 밥을 지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위해 밥을 짓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는 말씀처럼 ‘내가 너희들을 위해 생명의 밥이 되었으니 너희도 눌리고 상한 세상을 위해 밥이 되어 주지 않겠니’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번 주에는 제48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열립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인 선교사님들은 먼 나라 비그리스도인 이웃들을 위해 헌신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와 평화’의 사명을 이야기해 주실 것입니다. 은혜로운 간증의 끝에 선교사님들은 항상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무책임한 자유와 이기적인 평화의 세상으로 우리들을 보내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평화의 복음을 가정과 민족과 열방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 2022.06.05

    밥상머리 교육 - 김민철 목사(은평성전 담임)
  •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늘 강조해 왔듯이 이번 대통령도 ‘소통’을 강조하며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는 결단을 단행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한 국회의원은 “집무실을 옮기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정말 국민과 소통을 잘해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조언을 했다. 역대 실패한(?) 대통령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소통의 단절이었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 어느 공동체이든지 소통이 안 되면 그 공동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부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면 그 부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대화가 단절되면 그 자녀가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2021년 청소년 가출 이유 1위가 부모와의 문제, 즉 소통의 문제(65%)였다고 한다. 소수 민족으로서 세계의 모든 분야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대인들의 교육법 중에 ‘밥상머리 교육’이 있다. 유대인의 식사 문화는 한국의 문화와는 다르게 식사 시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 학업 이야기, 친구 이야기, 이성 문제 등 수 많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이때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남을 배려하고 식사 예절을 익히고 감사하는 배움의 시간으로 식사 시간을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 여기는 것이다. 성적과 스펙이 좋은 한국인 학생과 한국인보다 성적과 스펙이 떨어지는 유대인 학생이 하버드대학교에 지원했다. 면접을 보았는데 결과는 한국인 학생은 떨어지고 유대인 학생이 합격을 했다. 한국인 학생이 유대인 학생에게 “면접이 어렵지 않았니?”라고 물었다. 유대인 학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아버지와 토론하는 것보다 쉬웠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평소에 부모와 자식간에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얼마나 대화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께 늘 기도하셨다. 하물며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께 늘 기도하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혹시 기도하는 시간이 짧아졌거나 기도 생활이 멈추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대화 단절로서 믿음 생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인 기도를 회복하자. 유대인들의 밥상머리 대화가 훌륭한 자녀를 만들어 주듯이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성도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아 누리는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줄 것이다.
  • 2022.05.22

    성경적 교회상 -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담당)
  • 5월 18일 우리 교회는 창립 64주년을 맞는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1958년 대조동 천막교회로 시작된 우리 교회가 1961년 서대문 네거리의 '순복음중앙교회'를 거쳐 1973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시대를 열어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코로나도 진정 국면에 접어든 이 때 우리 교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여겨진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첫째, '하나님의 집'이다(창 28:16~19, 딤전 3:15). 이사야도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 보좌로부터 성전에 가득한 환상을 보았다(사 6장). 무엇보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2b~23). 온 성도가 몸의 지체가 되어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지속적으로 성장해가야 한다(고전 12:12~27; 엡 2:20~22, 4:16). 셋째,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탄생한 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이다(행 2:41~42, 고전 3:16).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곳이어야 하고, 그에 따라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곳이어야 한다(고전 12:8~10, 갈 5:22~23). 넷째,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살아계신 하나님의 지혜와 말씀의 보고(寶庫)이다.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곳이다. 다섯째,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반석 위에 세우셨기 때문에 사탄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마 16:18).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에 그 어떤 박해도 교회를 넘어뜨릴 수 없다. 여섯째,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사 56:7, 막 11:17). 주님께서는 성전 바깥 뜰을 돈 바꾸는 사람들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 점령해 버린 것을 보시고 그들을 다 쫓아내시고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성전을 회복시키셨다. 일곱째, 교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 본부'이다(행 1:8, 13:1~3). 주님의 '지상명령'(마 28:18~20)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사명 중 하나이다(딤후 4:2).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해도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은 달라질 수 없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 교회가 이 같은 모습을 잘 지켜왔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주시고 함께해주셨다. 따라서 나날이 변하는 세상 풍조 속에서도 이를 굳게 지켜 나갈 때 이전에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우리 교회를 들어 크게 사용하실 것이다.
  • 2022.05.15

    나는 어느 등급일까 - 조주석 목사(새성북성전 담임)
  • 어느 글에서 자녀들이 부모를 바라보는 등급을 4가지로 구분을 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S 등급은 부모를 보면 아이가 쫓아가서 안기며 인사한다. A 등급은 웃으면서 인사한다. B 등급은 마지못해 인사한다. C 등급은 딴 길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의 자녀들은 어떤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어쩌면 많은 부분, 자녀가 대하는 태도는 부모가 보여주고 심어 주었던 열매일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균형 있게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잘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결국 그것은 부모가 얻게 될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4가지 차원에서 전인적이고 균형이 있게 잘 성장하신 것을 볼 수 있다(눅 2:40, 52). 먼저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셨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 지고’(40절). 또한 지성도 성장하셨다. ‘지혜가 충만하며’(40, 52절). 그리고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도 잘 맺으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하나님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절).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분으로 자라셨다.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절). 자녀들이 전인적인 측면에서 균형이 있게 잘 자라고 바른 인격체로 세워지려면 먼저 부모가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흔히 가정 사역에서 하는 말이 있다. ‘자녀들은 아버지(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부모가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가치를 배우고 그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말씀으로 충만하고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으며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나누는 삶을 실천해 나갈 때 진정한 영향력이 발휘되고 변화와 성숙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 모든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보면 절실히 느낄 것이다. 부모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허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부모를 자녀가 이 땅에 존재하는 통로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영적 대리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를 마땅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공경해야 한다(잠1:8, 6:20, 23:22).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 인간을 향한 첫 계명이고 축복의 약속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다(출 20:12). 지금까지 혹여 잘못 심은 것들이 있어 아픔이 있을지라도 예수 안에서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부터 좋은 것을 심어나갈 수 있기 위해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길 소망한다.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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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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