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정대 목사(용산대교구장) - 신앙의 구간단속 - 십자가 앞에 멈추는 시간
  • 내가 살고 있는 파주에서 서울로 오가는 길목마다 구간단속 카메라가 있다. 한 지점을 빠져나가던 속도만으로는 과속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시작과 끝, 그 사이를 어떻게 달려왔는지 시간을 계산해서 판단한다. 단속 구간 안에서는 운전자가 속도를 의식해야 하고 스스로 규정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닮아 있다. 예배의 자리에서 은혜를 받고 결단하지만 다시 삶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종종 속도를 잃는다. 세상의 흐름에 쫓기고 분주함에 밀려 주님의 뜻보다 앞서 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신앙의 구간단속’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때로 문제이며 때로 고난이고 갑작스런 멈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징계가 아니라 주님의 초대이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속도를 줄이며 멈추고 방향을 다시 설정하라는 부르심이다. 그 구간에서 우리는 회개의 길에 들어선다. 회개는 단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속도를 자각하는 일이며 내 신앙이 너무 앞서갔는지, 혹은 주님의 마음을 잊은 채 달려왔는지를 직면하는 자리다. 이 멈춤은 두려운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정비이고 영적 점검이다. 또한 그 시간은 말씀을 다시 붙드는 순간이다. 말씀은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목적지를 잊지 않게 하는 나침반이다.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삶의 속도를 조율하기 위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낮추고 다듬는다. 말씀 없는 속도는 결국 탈선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령은 삶의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조용히 말씀하시고 필요할 땐 멈추게 하신다.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 마음에 속도표를 새기신 분이다. 신앙의 구간단속은 결국 십자가 앞에 멈추는 것이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바른 신앙의 기준이다. 세상이 달려가라 말할 때도, 십자가는 멈추라 말씀하신다. 멈춤 속에서 우리는 다시 중심을 잡고, 주님의 속도에 걸음을 맞춘다. 오늘 당신의 삶에 구간단속의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속도를 줄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름 금식성회가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열리고 있다. 잠시 달려가는 길을 멈추고 성회에 참여하여 십자가를 바라보자. 우리의 삶은 바르게 가는 것이 빠르게 가는 것보다 중요하다. 신앙은 도착보다 ‘동행’의 길이며 그 길 위에서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 2025.07.04

    최진용 목사(강서1대교구장) -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
  •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삶을 잠시 돌아보면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얽힌 감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 든다’는 것을 곧 ‘늙는다’고 여겨 한숨을 쉬고 그래서인지 실제로 더 빠르게 노화를 경험하곤 한다. 그런데 이 노화는 단순히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타 히데키는 『사람은 감정부터 늙어간다』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전한다. 그는 “노화는 지력이나 체력보다 감정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능이나 지성은 비교적 늦게까지 유지되지만 감정은 세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감정이 먼저 늙으면 육체도 빨리 따라 늙고 반대로 감정이 젊으면 몸도 자연스레 활력을 되찾게 된다. 그러니 ‘감정의 젊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정의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성경 빌립보서 4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라, 감사하라.” 이 말씀은 단지 마음을 다스리라는 조언이 아니다. 이 네 가지는 감정의 영역이자 믿음의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영적 무기이다. 기쁨, 관용, 감사는 건강한 감정이지만 원망과 염려는 감정을 병들게 한다. 우리 마음이 원망과 불평,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그것은 이미 감정이 늙어버렸다는 증거이다. 감정도 습관이다. 자꾸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어느덧 우울한 것이 일상이 된다. 감정은 기질의 영향을 받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날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를 선포하고 삶에 실천을 해 나가면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을 도우시고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기뻐하고 감사하자! 사랑하고 용서하자! 염려하지 말고 여유 있는 미소로 살자!” 감정의 늙음을 거절할 때 영적 젊음을 지키고 육체도 함께 회복된다. 그것이 곧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이며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 2025.06.27

    김영석 목사(선교국 담당) - 선교의 불을 다시 지필 때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2025년 한국 교회는 복음 선교 14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은 그날의 순종과 헌신은 14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 170개국에 2만1000여 명의 장기 선교사를 파송하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에 불과합니다. 신록이 짙어지는 6월을 맞아 제51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열립니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67개국에 파송된 673명의 선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70주년을 3년 앞두고 열리는 이 대회는 한국교회 선교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지형은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북반구 중심에서 남반구 중심으로, 교회 중심에서 도시와 일상 중심으로, 그리고 현장 선교에서 디아스포라 사역과 디지털 미션으로 그 흐름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도 300만명이 넘는 해외이주민과 다문화 가정,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으로 품고 섬겨야 할 ‘이웃’입니다. 이제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시대를 넘어 현지 교회와의 깊은 협력, 다음세대 선교 인재 양성, 국내 이주민과의 연합 사역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선교 공동체’로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는 140년 전 낯선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들의 심장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사명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성령의 이름으로 선교의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할 때입니다. 모든 성도의 기도와 헌신이 한국 교회에 다시금 뜨거운 선교의 불길을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이 선교의 맨 앞에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선교사들이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2025.06.20

    고영용 부목사(개척) - 교회개척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자 믿음의 여정
  • 우리 교회는 올해로 창립 6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기본 사명인 교회 개척과 선교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사역을 계승한 이영훈 담임목사님도 교회개척 사명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전국에 569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개척과 선교는 단순한 조직의 확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장하는 가장 역동적인 사역입니다. 세계 방방곡곡으로 파송된 선교사들과 전국으로 나아가 교회를 개척하는 개척 목회자들은 낯선 땅과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눈물로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했고, 그 순종의 씨앗은 오늘날 수많은 생명과 공동체의 열매로 자라났습니다. 개척목회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며, 때로는 재정적·정신적 한계 앞에서 좌절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십자가를 지는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을 이 시대의 엘리야로 부르셨습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확실한 하나님을 붙들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불타는 심장을 다시 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개척교회는 뿌리 내리는 과정에서 많은 기도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손과 무릎이 함께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 또한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실 것입니다. 작은 예배당에서 드리는 찬양이 천상의 향기로 올라가고 몇 사람과 함께 드리는 기도가 도시의 영적 기류를 바꾸는 거룩한 파장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새 일은 바로 ‘개척’을 통해 시작됩니다. 이 사명에 함께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위로와 담대함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개척사역을 기억하며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모든 사역자들과 동역자들, 기도해 주시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 2025.06.13

    오수황 목사(대학청년국 담당) - The Holy Spirit Festival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해마다 6월이 되면 우리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믿음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해를 거듭하며 청년들의 뜨거운 믿음과 예배의 열정이 이어져 왔으며 이번에 열릴 ‘2025 The Holy Spirit Festival’ 성회는 17회째를 맞이합니다. 2006년 시작된 성회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순복음의 청년들과 순복음을 넘어 초교파로 한국교회 청년들을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회복의 자리로 초대해 왔습니다. 올해는 6월 14일 장충체육관에서 ‘Keep Moving Forward’(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됩니다. 말씀 선포는 이영훈 담임목사님을 비롯해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줄 최고의 강사진들이 함께 합니다. 이번 성회를 통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이 시대 청년들에게 비전과 사명을 회복시키고 성령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또한 청년들이 옛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각자의 삶 속에 변화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청년의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나라와 민족과 세계와 열방을 품고 나아가는 믿음의 공동체, 선교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꿈을 가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뜨거운 찬양과 기도를 통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불이 내리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과 같은 성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성회를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고 계시는 것도 성회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성회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성회가 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 치유의 자리, 회복의 자리,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음 세대가 일어나는 자리, 회복을 넘어 부흥의 자리가 되기를 선포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만이 영광 받으소서!
  • 2025.05.30

    김정은 목사(교육영성훈련원 선임) -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 우리 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다. 국가의 위기를 기도로 극복하려는 노력은 한국교회의 오래된 전통이다. 국가를 위한 기도회의 역사는 19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은 일제가 우리의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넉 달 전부터 한국교회는 ‘위국기도문’(爲國祈禱文) 1만 장을 배포하여 매일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기도운동을 전개했다. 이 기도문은 1905년 7월 25일자 「황성신문」에 실렸는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침륜에 들었으며 오직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쌍히 여기사 예레미야와 이사야와 다니엘이 자기 나라를 위하야 간구함을 들으심같이 한국을 구원하사….” 나라의 위기가 일본의 야욕이 아닌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았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소할 곳은 어떤 권력자나 열강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 그리고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한 구약의 선지자들을 인용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20년 전 기도문이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한 내용에 놀랐고 그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열린 구국기도회 역시 유명하다. 서울이 3일 만에 점령되고 낙동강 전선까지 무너질 위기 앞에서 전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부산 초량교회 등지에 모여 밤낮으로 통회하고 자복했다. 당시 기도회에 참석한 한 목사님은 이렇게 증언했다. “과거 신사참배를 했던 죄부터 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니 예배당 마룻바닥이 목사님들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습니다.” 이후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 이라고 하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기사회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2024년 12월에 시작한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가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개인의 죄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이사야, 다니엘처럼 민족의 죄를 대신 끌어안고 회개하며, ‘하나님밖에 빌 데 없사와’의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땅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 2025.05.23

    백근배 부목사(교무) - 믿음의 걸음 위에 세워진 교회
  • 1958년 대조동의 작은 천막교회로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어느덧 창립 67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흘린 눈물과 땀, 그 헌신의 흔적 위에 오늘 우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나온 시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세워진 역사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긍정하는 신앙, 모든 상황에 감사하며 드리는 헌신은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기둥이 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성도님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자녀를 예배 자리로 인도하시던 부모들의 손길, 주보를 곱게 접어 성경에 끼워두시던 봉사자들의 모습, 찬양과 기도가 늘 함께하는 성도들의 눈물 등 평범한 일상들이야말로 교회를 이루는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창립기념일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믿음을 심으시고 그 믿음을 통해 교회를 세워 가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고백을 남깁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디모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정 안에 살아 있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말씀과 기도로 전한 믿음은 결국 디모데의 삶 속에서 귀한 열매로 맺어졌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로이스와 유니게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기도로 자녀를 붙들고 감사로 하루를 살아내며 예배와 섬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정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기도하는 가정에서 시작되어 성령의 역사로 연결될 때 가장 강력한 부흥의 통로가 됩니다. 이영훈 담임목사님도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은 신앙의 출발점이며 부모의 기도와 신앙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정에서의 믿음이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립 6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걸어온 길을 감사함으로 돌아보며 앞으로 다가올 시간 속에서도 가정을 통한 믿음의 유산이 더 풍성히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기도로 함께하며 다음 세대에게도 “믿음의 길은 이런 것”이라고 자신 있게 전해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믿음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교회를 통해 이어집니다. 이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성도들이 있기에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든든히 나아갈 것입니다.
  • 2025.05.16

    김나리 목사(전도새가족부 선임) -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 교회학교를 섬기던 어느 주일, 예배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한 아이가 성전에 들어서는데 두 눈이 충혈 되어 있고 얼굴 한 쪽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는 “친구와 싸웠어요”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바라보며 “왜 싸웠는데…”라고 물었지만 아이는 싸운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억울한 표정으로 “씨익~씨익~그 아이가 먼저 선빵 날렸거든요?”라고 소리치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담당 교역자인 제가 할 일은 싸움의 장점과 단점, 싸움이 폭력으로 이어질 경우 나타나는 결과들에 대해 알려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울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고 있던 제게는 그 아이가 잘했든지 잘못했든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향한 제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속상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함께 예배하던 우리 아이였으니까요. 저는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이 아팠지, 약 바르자. 괜찮아질 거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아내고 싶었지만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고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향해 “얼마나 아팠을까, 많이 아팠지! 내가 너를 고치고 내가 너를 회복시킬 거야”라고 말입니다. 단 한 번도 우리에게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또 실패했니? 한심 하구나”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죽음과 고통을 대신하시며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매 주일 새가족들은 세상에서의 처절한 실패와 상처를 가지고 교회를 찾아옵니다. 새가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주셨듯이 우리도 새가족들을 무조건 수용하고 아낌없이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한명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37~40). 예수님을 섬기듯 새가족을 섬길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야훼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 2025.05.09

    홍승원 목사(종로중구대교구장) -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 
  •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정’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해체되고, 본질이 흔들리고 있으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성경적인 가정의 그림이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가족』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눈으로 가정을 바라보는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존스 목사님은 가정을 단순한 사회 구성의 단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세우신 영적 공동체로 봅니다. 가정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연합시키신 그 순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첫 번째 기관입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도록 디자인된 공동체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5장과 6장을 중심으로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세심하게 다루며 각각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명확히 제시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듯 남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도전이 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되 이는 단지 윤리적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신앙의 기초를 이룹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현대 사회가 가정을 무너뜨리는 여러 사상과 풍조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일에 실패할 경우 교회와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교회가 가정을 회복시키는 데 앞장서야 하며 가정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가정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말씀의 권위를 다시 가정 안에 세워야 합니다. 둘째, 예배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에게 ‘보여주는 신앙’을 살아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천돼야 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수많은 가정이 모여 세워집니다. 이 가정의 회복이 교회의 부흥으로 나아가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 우리 각자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다시 세우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시대의 ‘믿음의 가정’으로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2025.05.02

    권혁세 목사(동대문성전 담당) - 분별하는 그리스도인
  •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개발 후 전 세계 인구의 약 67%가 사용하고 있으며 전화 통화는 물론 업무, 쇼핑, 내비게이션, SNS 등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또한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상황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용자의 문제해결 및 의사결정능력을 떨어지게 합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의사 결정을 할 때 챗GPT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방대한 정보 가운데 유튜브와 같은 AI 알고리즘을 통한 맞춤 서비스는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보게 됩니다. 이는 내 생각은 옳고 내 생각은 세상과 같다고 판단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명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진리를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분별은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분별력’에서 일상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아는 영적인 통찰이자 경험지식이 분별이며, 우리가 각자의 소명과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합당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방향에 귀를 기울이며 격려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분별이라고 했습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보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좋아 보여 사명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옳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옳은 것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럽지 않도록 힘쓰는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좋음과 하나님 말씀으로 옳음을 분별하여 좋음이 아닌 옳음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하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는 하나님의 일꾼이며 예수님의 좋은 군사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5.04.25

     차진호 목사(양서성전 담당)  - ‘도마’ 도 부활을 믿었습니다
  • 2023년 7월 서울에서 열린 ‘2023 청소년 사역 콘퍼런스’에서 2021년 26개국 2만4870명의 기독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글로벌 리서치 결과가 발표됐다. 설문 내용 중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부활한 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 기독 청소년은 33%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나 한국 기독 청소년은 28%만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 100명 중 72명은 예수님의 부활 신앙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회학교 학생들의 믿음은 다른 나라 기독 청소년들의 믿음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교회 청소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도마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도마를 기억할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예수님의 몸에 난 창 자국을 만져본 이후에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겠다고 했던 도마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불신앙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의심투성이 도마는 과연 평생 불신앙으로 살다가 죽었을까? 그렇지 않다. 본인은 도마가 불신앙에서 부활 신앙으로 180도 바뀌었다는 증거를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2005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학청년국 월드미션 지도목사로 있을 때 청년들과 인도 남부 지역에 위치한 첸나이라는 도시로 단기선교를 갔다. 그 곳에서는 도마가 엄청 믿음이 좋은 예수님의 제자요 선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도시 곳곳에 도마의 이름이 들어있는 교회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예배실과 복도 벽에 걸려 있는 도마의 순교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림들 속에는 기도 중이던 도마가 한 자객의 창에 찔려 순교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의심 많았던 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 신앙으로 인도에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 도마의 순교를 통해 첸나이를 중심으로 인도 남부 대부분의 도시에는 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영혼을 구원한 도마의 흔적이 남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평상시 의심이 가득했던 불신앙의 도마가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파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마가다락방의 성령 체험이었다.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을 체험함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고 불신앙이 부활 신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100명 중 100명 모두가 부활 신앙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 모든 성도가 부활 신앙으로 거듭난 제2의 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2025년 부활절이다.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 친구들과 각자의 가정의 자녀들에게 부활을 기념하는 달걀을 선물하면서 부활의 예수님도 함께 선물했으면 좋겠다.
  • 2025.04.18

    김남준 목사(남대문성전 담당) - 십자가로 가는 길
  •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과 핍박을 받으신 후 십자가로 가는 길에서 만난 첫 번째 사람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는 온갖 고난과 핍박으로 인해서 더 이상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던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마 27: 32). 그렇다. 그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까지 함께 걸어간다.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을 향해 욕하며 소리치는 사람들과 그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님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구레네 시몬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그때 그의 생각이 나와 있지 않다.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는 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이 구레네 시몬 역시 그의 마음이 뒤흔들렸을 것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지? 왜? 죄도 없으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거지? 왜?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을 저런 긍휼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지?” 하면서 그의 마음이 뒤흔들렸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사건 이후 구레네 시몬은 결국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 구레네 시몬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데, 우리는 그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마서 16장에 그 두 아들 중 루포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사도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향해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구레네 시몬을 통해 결국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우리 역시 때론 억지로 십자가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스스로 자원해서 감당해야 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감당하면 그 속에 은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무엇이 있는지 묵상하고 그 십자가를 반드시 감당해내자. 우리가 십자가를 감당해내면 그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 2025.04.11

    김민철 목사(경인성전 담당) - 간절함이 있는가? 
  • 전도사 시절에 사역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거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날 기도원 강사님은 평소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이셨다. 조금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저분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거야’라는 기대와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강사님은 등단하시자마자 “날 사랑하심~” 찬양을 불렀다. 평소에 별 감동 없이 불렀던 찬양이었는데 그날은 찬양이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눈물이 났다.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는 너무나 익숙한 내용의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레마로 다가와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치료하였다. 간절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갔더니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했던 것이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아온 여인이 나온다. 그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으나 돈만 허비하였을 뿐 상태가 오히려 심해져 갔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그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예수님께 나아갔다. 율법적으로 부정한 여인으로서 많은 인파를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무리 속에 끼어 예수님 뒤에 가서 몰래 그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 즉시 예수님의 능력이 임하여 그녀는 고침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과 몸에 손을 대었는데 왜 그 여인에게만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가서 고침 받게 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손을 대었지만 그 여인은 간절함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 간절함은 기적을 가져온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고 있는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예배가 많다고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드리고 있지 않은가? 혈루병 걸린 여인이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내가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갔던 것처럼 “오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실 거야”, “내 질병을 치료해 주실 거야”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자.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만나주시고 큰 은혜와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 2025.04.04

    김영석 목사(국제사역국 담당) - 믿음의 유산
  • 오늘날 한국 교회의 다음 세대 교육은 심각한 위기 속에 빠져있다. 쓰나미 같은 과학 물질문명과 인본주의의 도전 앞에 가장 무기력한 영역이 다음 세대 신앙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세대 신앙교육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신앙의 교사가 되어 가정에서 다음 세대 신앙의 대 잇기와 양육에 나서야 한다. 레지 조이너(Reggie joiner)는 『싱크 오렌지』라는 책에서 “한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부모보다 아이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뒷짐 지고 있는데 교회가 다음 세대 교육을 논하는 것은 한 손으로 손뼉을 치려는 시도와 다르지 않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빨간색 에너지와 교회의 진리라는 노란색 에너지가 합성되어 오렌지색 에너지를 만들 때 다음 세대는 세상 속에서 작동하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배울 수 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엘리사 선지학교 생도였던 남편이 빚을 많이 지고 갑자기 죽는 바람에 두 아들이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놓인 한 여인이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어려운 운명에 절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엘리사를 찾아가 기도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많이 빌리고 두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빌린 모든 그릇에, 집에 남아있는 한 그릇의 기름을 부으라고 지시했다. 이 과부는 엘리사 선지자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골방에 들어가 아들들과 함께 기름을 빈 그릇에 붓기 시작했더니 마침내 기름이 차고 넘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본문은 “그 여인이 두 아들과 함께 있다”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다. 아들들을 기적의 현장, 말씀이 실현되는 현장에 함께 있게 함으로써 믿음의 기적을 체험하게 했다. 이것이 참 현장교육이다. 이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자녀교육 중에 가장 훌륭한 장면이다. 이 기적을 체험한 아들의 믿음이 어떻게 안 자라날 수 있겠는가?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녀에게 떡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여줘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유일한 야훼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 2025.03.28

    이재용 목사(관악대교구장) - 주셈(主+)의 계산법
  • 학생 시절 수학은 나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 숫자와 공식이 얽혀 있는 문제를 풀다 보면 종종 실수하기도 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복잡한 수학보다 산수만 잘하면 된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 연산만 할 줄 알면 일상생활에서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우리는 여기에 한 가지 연산을 더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주셈(主+)이다. 모든 계산에 주님을 더해서 하는 계산 방식이다.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땅을 보고 같은 환경을 경험했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달랐다. 10명의 정탐꾼은 현실적인 계산만으로 보고했다. “그 땅의 사람들은 거인과 같고,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 그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들의 판단은 인간적인 논리와 계산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상대의 강함과 자신의 연약함을 비교하며 패배를 예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계산에는 결정적 요소가 빠져 있었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다. 그들은 동일한 땅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포함해서 계산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우리가 올라가서 취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들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었다. 똑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10명과 2명의 차이는 바로 주셈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있었다. 10명의 정탐꾼은 인간적인 계산법만을 적용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주셈을 적용하여 두려움 대신 확신을 가졌고 결국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주님을 더하면 두려움 대신 믿음이 생기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전진할 가능성이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과 예측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의 논리와 계산이 아무리 정교해도 신앙의 차원에서 주님을 배제한 계산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주셈을 적용하는 삶은 신앙인이 선택해야 할 필수적인 삶의 태도이다. 주셈이란 단순한 신앙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원리이자 결정 방식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현실을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10명의 정탐꾼처럼 두려움 속에서 인간적 논리만을 따를 것인가? 오늘도 내 삶 속에서 주셈을 적용하며 믿음으로 전진하길 원한다. 보는 것에서, 말하는 것에서, 행동하는 것에서 주님을 더하는 주셈, 그것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 2025.03.21

    신의규 목사(강서2대교구장) - 차안대를 아십니까?    
  •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4~5시간을 스마트폰을 보며 생활한다고 한다. 또한 절반 이상이 하루 2시간 가량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주목할 것은 스마트폰 사용이 정보를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볼 것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과 각종 볼거리들이 우리의 눈을 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은혜이지만 우리 눈은 혹사당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눈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지적하듯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집중력이 붕괴되고 있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며 우리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이는 크리스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화하고 소통하며 정보를 얻고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TV 등을 보며 일상을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한다.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얻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이기 쉽다. 많은 볼거리가 오히려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으며, 신앙생활에서도 마음을 나뉘게 한다. ‘차안대(遮眼帶)’라는 경주용 말에게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 말은 힘이 세지만 주의가 산만한 동물이다. 특히 주변 물체의 움직임에 쉽게 흥분하고 놀라기 때문에 눈가 면에 컵 모양으로 부착하여 시야각을 줄여주는 것이다. 차안대를 통해 불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목적지를 바라보고 달리는 훈련을 통해 경주용 말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 그러나 모든 일을 하지 않으셨고 그럼에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집중하셨다. 너무나 볼 것 많은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 차안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다 보면 안 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며 푯대를 바라보며 집중해 나가야 할 때이다.
  • 2025.03.14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담당) - 천국 스타일
  •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곱씹어 볼수록, 포도원 주인은 단순히 포도원을 운영하기 위해 품꾼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품꾼들을 위해 포도원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사업을 하시는 한 집사님이 찾아와 한숨을 쉬며 푸념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세금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이래저래 쓰고 나니까 남는 게 없습니다. 헛장사한 것 같습니다.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금 다 내셨다면서요? 월급 다 주셨다면서요? 집사님, 이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면서 사시면 편하게 지내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 혼자 잘 살려고 사업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 잘 살게 하려고 사업하는 것은 아무나 못 하는 일입니다. 이제부터 누가 묻거든 ‘나는 세금 잘 내려고 사업한다, 직원들 월급 주려고 사업한다’고 하세요.” 그 말을 들은 집사님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복, 그 자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혼자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 이하에 보면 5000명이나 되는 무리에게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고 오게 하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살아갈 힘을 얻고, 나로 인해 누군가 성공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 풍성함을 누리고,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지고, 나로 인해 5000명이 배부르게 되는 삶, 이것이 바로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우리가 천국 스타일로 살아갈 때 내가 하는 일, 배우는 일, 섬기는 일, 모든 일이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 2025.03.07

    이성준 목사(강서1대교구 담당) -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 요즘 우리나라는 위기이자 비상상황입니다. 국민들은 탄핵반대 집회와 탄핵찬성 집회로 갈라져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반드시 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4장 35~41절에 보면 날이 저물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띄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밤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고 배는 이리 저리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침몰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 말고도 다른 배들도 그 바다 위에 있었습니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막 4:36). 제자들과 예수님이 탄 배와 다른 배에 탄 사람들까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배 후미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 그러자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기 때문에 제자들도 살고 그 바다에 떠 있었던 다른 배의 사람들도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제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배의 사람들까지도 다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움으로 모두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광풍은 불고 있는데 우리끼리 아무리 노를 젓고, 돛을 올렸다 내렸다 해도 광풍이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을 꾸짖을 수 있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워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할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토요일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뜨겁게 기도하며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국가 위기 상황에 다시 한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큰 광풍을 만나 다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 것이 결국 광풍을 잠잠하게 하고 고요하게 했습니다. 2025년을 살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다면 반드시 광풍은 멈추고, 풍랑은 잠잠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기도할 때입니다!
  • 2025.02.21

    손영환 목사(교무국장) - 성령과 전도, 우리의 삶을 전도여행처럼
  • 이 세상에서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 하루하루는 어떤 여행보다도 소중한 전도 여행이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전도 대상이기 때문이다. 2025년 상반기 새신자 전도정착을 위해 모든 부서가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전도할 때 성령의 힘과 능력이 나타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복음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우리가 전할 때 누군가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전도만이 이 시대와 세대를 살리는 길이다.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제 전도대회가 개최되었었는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삶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는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한 삶의 이유와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불신자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더불어 살 길도 열릴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처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성령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는 전도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주시는 것을 열심히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이다. 2025년도 한 해 동안 가족 이웃 친지 지인들을 전도할 마음을 품고 기도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의 역사로 전도의 열매가 가득한 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재정비하여 그동안 잊고 있었던 복음의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복음이기에 복음의 열정을 다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이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적 행복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 모두가 삶으로 드리는 전도 여행을 통해 복된 소식을 전하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전도의 성공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올 한 해 열방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 구원을 위한 위대한 전도자가 되어 주님께서 예비하신 상급과 은혜 그리고 다양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 2025.02.14

    이일섭 목사(교회학교 담당) - 성령 충만한 아름다운 삶
  • 세상에는 가치 있고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가치가 되며 가장 존귀한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주님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기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가장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여 사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현대의 종교는 서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종교다원주의,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 등 연합을 넘어 일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와 성도는 이런 흐름을 수용하거나 조금의 타협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신이시라는 유일신 사상과 오직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며 그 외의 것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극한 대립과 양극화를 통해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양극화와 대립은 초극단에 이르렀다고도 묘사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유사한 상황과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사라져가는 신앙의 1세대와 함께 2세대가 공존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신앙의 불안감과 자신들의 신앙이 맞는 것인지, 언제까지 박해를 견뎌야 하는 것인지, 다시 오신다던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 안에서도 잘못된 이해와 이에 따른 거짓 주장들로 인해 교회에 혼동을 야기하였고 이에 미혹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확실한 것입니다. 변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성령 충만한 사도들과 리더십들은 그러한 모든 거짓된 요소들을 배제하고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타협하지 않으며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와 사명의 인생을 살아갈 것을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는 어느 상황, 어느 자리에서도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세상의 헛된 거짓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혈안이 되어 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말씀을 기초로 믿음을 굳건히 하여 성령님의 절대 도우심을 힘입어 타협이 없는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오직 말씀을 따른 지혜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타협이 없는 성령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올바르게 지도하고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 2025.02.0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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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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