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처음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 이동규 목사(여의도순복음은계교회 담임)
  • 우리는 처음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첫인상이 주는 효과를 ‘초두효과’라고 한다. 대체로 대인관계에서 첫인상이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교회 처음 출석했을 때 교회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교우들의 직업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얼마나 배웠고 재산은 얼마를 가졌는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예수 안에서 서로 존중해주고 세워주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교회 안에서 선후배들과 믿음의 관계를 갖고 같이 봉사하며 한 주간 서로 안부를 묻고 생활하는 것들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교회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교회가 세워진 후 제자들은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져 헬라 지역의 안디옥에도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안디옥 교인들은 이전과는 다른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처음 그리스도인은 어떤 성도들이었을까? 그들은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는데 열정이 있었다. 전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던 소극적인 태도에서 이방 헬라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된 것이다. 이 열정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보다 더 큰 은혜가 또 있겠는가?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열정 있는 성도가 처음 그리스도인의 모습일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런 신앙의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처음 그리스도인에게는 진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았을까? 예루살렘 교회는 제자들 중 존경받는 바나바를 택해 안디옥으로 보낸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처음 그리스도인은 바나바처럼 예수님의 인격이 나타났다. 이를 통해 당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준 것이다. 그리고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배척을 당했던 바울을 찾아내 형제, 동역자로 삼고 바울을 섬기는 모습을 보인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고 무엇이든지 하며 자존심도 버리고 자기가 한없이 낮아져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섬김과 연합의 모습이 처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우리도 ‘처음 그리스도인’처럼 그리스도의 향기와 섬김의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 2023.09.15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 - 이일섭 목사(새성북성전 담당)
  • 탈무드에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는 정의가 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열매가 없자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 없이 오늘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성도가 의외로 많다. 반복된 실패를 경험하고, 기다림에 지쳐 자기는 원래 타고난 실력과 운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며 내일은 불분명하니 오늘이라도 살아내자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 죽음에서 부활하신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신앙,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성령을 믿는 신앙이 그 골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관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과율의 법칙에 따라 현재는 과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흙수저 운명은 벗어나기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된 실패를 경험해 보았는데 더 이상 미래가 있겠는가 하고 자기 인생을 예단해 버린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 현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미래를 향한 과정이다. 10년, 20년 실패가 문제겠는가? 나의 현재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롭게 무에서 창조하실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현실에서 시작하셨다는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의 노예에서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한 후 약속의 땅으로 인도되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인과응보라는 시간법칙도 무시된다. 집 떠난 탕자를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죄의식,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일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죄 사함을 선언하신다. 칭의론의 중심 메시지는 “너는 너 자신을 포기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제발 믿어다오. 그리고 내가 함께 할 미래를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로부터 쌓인 현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 죄의식, 패배의식에 취하여 누군가가 그것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심리까지 작동한다. 예수님과 함께 과거는 다 무덤에 묻어버리고 부활의 주님이 나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것을 기다려보자. 성령님께서는 바람과 같이 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어디로부터 올지 모르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거대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믿음으로 참고 간구하자.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은혜가 우리의 삶과 생활 가운데 넘치도록 임할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 2023.09.08

    아직도 이 시대에 부흥이 일어나는가? - 김영석 목사(남구로성전 담당) 
  • ‘부흥’이란 영적 생명에 힘을 주고 생기가 돋아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죄 때문에 무력해져 있는 생명이 활기를 되찾고 소생하는 일을 ‘부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에 환상을 통해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할 때 마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입혀져 가죽으로 덮혀 사람의 형태가 회복되었지만 아직 살아나지는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와 죽음을 당한 자에게 살아나게 하자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 마른 뼈들의 상태는 이스라엘의 죽어있는 영적 상태이며 또한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나라들과 만물을 움직여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에즈베리대학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부흥운동과는 달리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었다. 평범한 학생들이 찬송하고 기도하며 부흥운동을 이끌어 간다. 에즈베리의 부흥운동은 인터넷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중계되었고 이것은 부흥운동의 역사상 가장 빨리 전 세계에 알려진 부흥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에즈베리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경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21세기에도 부흥은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신디 제이콥스 등 많은 목회자들이 새로운 부흥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한국교회도 놀라운 부흥의 파도를 타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의 부흥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1903년 원산부흥, 1904년 웨일즈부흥운동, 1906년 아주사거리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등 이 모든 전 세계의 부흥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팬데믹 이후 침체된 한국 교회에도 에즈베리대학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와 함께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다시 한번 타오르길 기대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창립 70주년을 바라보면서 올해 5만명 전도 목표를 세우고 있는 가운데 이미 상반기에 약 1만4140명 전도가 달성이 되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기록인데 성령의 생기가 불어오면 가능하다. 이 시대에 아직 부흥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흥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는 분이기에 부흥의 비전을 간절히 사모하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는다.
  • 2023.09.01

    위기 탈출 - 이대현 목사(순복음창원교회 담임)
  • 최근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길을 가던 사람들도 순간 뒤를 돌아보거나 불안해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호신용 무기 구입과 보험에 관한 문의도 쇄도한다고 한다. 요즘 교회에서 성경통독 에스겔을 읽고 있다. 에스겔서를 포함해 선지서 거의 대부분에서 빠지지 않는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만 섬기라. 죄와 악을 버리고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그럽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질문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듣기만 할뿐 순종하지 않고 맞는 말씀으로 동의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시려고 마음이 아프시지만 칼과 전쟁, 기근, 전염병의 위기를 보내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잔혹한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으로 볼 때 구원하고 살리기 위한 것이다. 불안하고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형편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성경말씀도 알고,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되는 것도 알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내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위기가 닥쳤을 때는 맡기지 못하고 더욱 내 방법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머리로는 알지만 결정적일 때 믿음의 방법으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문제와 위기 앞에 서봐야 그 사람의 진가가 나온다. 위기 앞에 여러 반응들이 있다. 피하기, 외면하기, 책임전가, 잠자기, 최선의 내 방법, 사람에게 하소연과 도움요청, 금식, 작정기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지만 결정적일 때 내 방법과 내 뜻, 내 기준을 내려놓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된다. 개혁(改革)은 한자로 고칠(개) 가죽(혁)으로 가죽을 벗겨내는 것처럼 힘든 것이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완고하고 고집 센 마음의 가죽을 베라고 명령하신다. 믿음의 사람은 내 삶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우연이 없고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하심만 있다는 전제하에 진정한 위기탈출은 나를 진짜로 포기하고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 2023.08.25

    기후 위기와 신앙의 지경(地境) - 오장용 목사(마석교회 담임)
  • 이번 여름에도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한국도 폭염으로 예외는 아니었다. 지리적으로 알맞은 기후대(氣候帶)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종(種)들의 다양성에 인간의 지나친 화석연료 사용으로 조기에 멸종되는 생물종들이 발생하는 심각한 수준이 다가오고 있다. 2000년에 들어와서 기후학자들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배출량이 제로(탄소중립)에 이르지 못하면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파멸의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심각한 경고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을 겪었던 상황들이 성경 곳곳에도 등장한다. 팔레스타인지역의 기후대에는 가뭄이 빈번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적절한 강우량이 있어서 목축과 농업을 통한 생계를 과거부터 이어왔다. 구약성경에 요엘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가뭄과 메뚜기떼가 발생하자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이 곧바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았다. 요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회개해야 할 징표로 삼았던 것이다. “슬프다 그 날이여 야훼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 1:15). 요엘 선지자는 지금의 기후변화와 같은 가뭄이나 재앙 수준의 환경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보았다. 우리는 현재 기후변화가 위기의 상황으로 가는 절망적인 지점에 와 있다.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신앙의 지경을 기후변화의 현상으로까지 넓혀야 한다.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날씨의 변화에도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식하고 구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우리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상을 신앙과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은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봐야 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환경으로도 임할 수 있음을 선지자들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치유와 축복의 환경을 허락하실 것이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 2023.08.18

    생명의 빛 - 이성우 목사(여의도순복음동탄교회 담임)
  •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의 저서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 중년 남자의 집에 갑자기 전깃불이 나갔다. 그는 촛불을 켜려고 양초를 모아둔 창고에서 양초 한 자루를 찾았다. 그런데 양초가 말을 한다. “주인님, 나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빛을 밝힐 수 있는지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저를 사용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옆에 있던 다른 양초를 잡자 그 양초도 말을 한다. “주인님, 내가 불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묵상하는 중입니다. 아직 묵상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묵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내 몸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문득 옆에 나란히 서있는 네 개의 양초를 발견했다. 그들 중에 하나의 양초를 가지고 나가려 하니 네 개의 양초가 함께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아직 불을 밝힐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다른 초들이 훨훨 탈 때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어떤 양초로도 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불을 밝힐 양초가 한 자루도 없다고 투덜거리며 나왔다. 아내가 왜 양초를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 물었다.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내가 화를 내면서 “무슨 그런 양초들이 다 있어요. 도대체 그 양초를 어디서 사왔어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양초들은 건너편 마을의 문을 닫은 교회에서 사온 것이다. 그제야 부부는 그 양초들이 왜 그러는지 알았다. 이 시대에 불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교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불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인생은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에 등불 비유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불을 은밀한 곳이나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두어서 비취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등불을 켜기 위해선 기름도 필요하겠고, 크고 작은 수고가 있어야 어둠을 밝힐 수가 있다. 예수님은 어둠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 십자가는 생명의 빛이다. 그것이 영혼 속에 비춰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빛의 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 2023.08.11

    통·곡·기·도 - 안태경 목사(여의도순복음청주교회 담임)
  • 너무나도 애통하고 서러워서 울고 또 울었다. 밤새도록 울어도 울어도 그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히스기야 왕이 야훼 앞에 나아가 통곡하고 울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자 선지자 이사야는 네가 죽고 살지 못할 것이라는 야훼의 말씀을 전했다. 이에 히스기야 왕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 20:3). 지난 14년을 어떻게 지냈는데,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친밀함에 뜨겁고, 하루하루 그 놀라운 역사와 능력에 얼마나 감격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인생을 정리하라니요. 주님, 나 정말 죽어요? 어떻게 죽어요? 어떻게….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검은 구름처럼 그를 덮었다. 절대 절망의 또 다른 위기 곧 죽음의 구름이 몰려왔다. 이대로 죽는가? 이미 경험했던 승리의 경험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인가. 주님과의 친밀함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선지자는 이미 떠났고 더 이상 어디 찾을 곳이 없었다. 그가 눈을 들어 쳐다본 곳은 그저 벽뿐이었다. 주님, 여기가 끝인가요? 이 벽이 끝인가요? 그의 가슴에서 애통함이 솟구쳐 올라온다.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히스기야의 통곡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박하고, 얼마나 간절했는지 성읍으로 나가던 선지자도 다시 돌아왔다. 히스기야를 고칠 방도를 찾았다. 그리고 무화과 반죽을 어찌어찌하여 상처에 붙였더니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는 것 아닌가(왕하 20:7).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다. “야훼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야훼의 성전에 올라가겠고”(왕하 20:5). 살려면 다 사는 길이 있다던가. 히스기야는 다시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선지자의 말을 곱씹으며 병상을 떨치고 일어났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성전으로 나아갔다. 기도하면 산다. 성전에서 통곡하면 살 수 있다. 통곡기도는 정해진 운명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는 통곡으로 만들어진 생명 연장권을 사용해서 15년 생명연장을 받는다. 깊은 애통은 통곡을 위한 눈물을 만들어낸다. 통곡할 눈물이 있으면 산다. 오늘 그대의 눈물은 충분한가.
  • 2023.08.04

    부흥하게 하옵소서 - 이철웅 목사(여의도순복음목포교회 담임)
  • 몇 년 전 목포에 처음 도착 했을 때의 일이다. 목포 KTX 역사를 빠져나오니 크게 두 가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시내 곳곳에 ‘경축 국제 슬로시티 인증 쾌거’라고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슬로시티(Slowcity)란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치따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으로 자연 생태계와 지역의 전통문화, 고유음식들이 잘 보존 유지되어 있어야 그 자격이 주어진다. 슬로시티는 말 그대로 화려하거나 빠르지 않지만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조화와 상생을 통해 발전해 나가자는 취지였다. 또 하나는 교회가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고 인구도 많지 않은 지역인데,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많은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대역사 문화유산이 깃든 항구도시 목포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숨어있었다. 1906년 10월 프레스톤 선교사가 담당하는 목포 지역에서 선교사 하디와 쌍벽을 이루는 거딘(J. L. Gerdine)을 강사로 부흥회가 열렸다. 당시 프레스톤(J. F. Preston)은 부흥회의 모습을 전하며 “이제까지 자신이 참여했던 집회 가운데 가장 강력한 부흥회가 최근 목포에서 열렸다”고 흥분했다. 그러면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외과용 수술 칼처럼 사람의 심령을 깊이 쪼개어 은밀한 죄악들과 영혼의 숨겨진 암세포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는 그것들을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고 고백했다. 목포 전역에서 놀라운 통회와 죄 용서가 이어졌고 성도들은 강력한 성령 체험을 통해 새 생명의 기쁨을 나누었다. 이 소식을 들은 평양의 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강한 도전을 받았고, 그 불길은 다시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다. 목포 대부흥은 서울과 이북 지역 중심의 부흥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최근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처럼 다시 한번 대부흥의 파도가 한국과 전 세계에 다가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잠자는 한국 교회가 깨어나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대부흥이 이 땅에 발흥하기를 소망한다. “야훼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 2023.07.21

    우리가 절망하지 않는 이유 - 임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군산교회 담임)
  • 처음 절망은 2015년 해리 덴트의 『인구절벽이 온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민어의 백미라는 부레를 맛보았을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 2016년 후지타 타키노리의 책 『하류 노인이 온다』를 읽었을 때는 연포탕을 처음 먹게 된 사람이 반들반들한 낙지 머리가 터져 국물이 시커멓게 변했을 때의 절망을 느꼈다. 그 후 9년의 시간이 지났고 사태는 점점 절망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지방소멸이라는 무서운 단어까지 등장했고 서울에만 5만 가구가 고독사 위험에 처해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19년에 우치다 다쓰루가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이라는 처방전이 이미 나왔었다. 절망을 정확히 인식했을 때 희망이 보이는 법이다. 요즘 군산은 날씨 변화가 빠르다. 전국이 장마 가운데 있다는 일기예보에도 군산은 쨍쨍 볕이 좋다. 볕이 좋으니 사람들의 우울감도 호전된다. 기후변화로 흑산도에서 잡히던 값비싼 홍어가 군산 앞바다로 몰려들어 어민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인구변화는 더 흥미롭다. 지방 도시들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군산은 우리 교회가 포함된 조촌동 전입인구가 늘고 있다. 참 하나님의 은혜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이 살고 죽었던 상권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말이다. 예로부터 교회가 많아서 군산에는 큰 사고나 재해가 없었다는 공감대도 한몫하고 있다. 교회 옆집 사시는 어르신 댁에 찐 감자를 몇 개 갖다 드리며 교회 나오시라고 했더니 감사하다며 교회 주차장 관리를 도맡아 해주신다. 주차장 화단에 어디선가 날아온 호박씨가 자리를 잡더니 넝쿨이 무성해졌다. 호박이 언제 열리나 궁금함에 견딜 수 없어서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했는데 어제 오늘 열매가 보인다. 기대는 희망을 낳는다. 희망으로 가는 길에 낙망이라는 징검다리도 있음을 명심하자. 언젠가 교회 앞 화단에 키우던 장미꽃을 도둑맞았다. 애지중지 두 달을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누군가 뿌리째 뽑아간 것을 발견하곤 매우 낙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요나에게 주셨던 말씀이었다. 군산에는 20만명 이상의 불신자들이 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을 통해 희망을 찾길 원하신다. 절망해선 안 되는 이유다. 교회가 희망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0~11).
  • 2023.07.14

    롬팔이팔 - 권성민 목사(금천대교구장)
  • 심리학 용어 중에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일컫는다. 즉,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으려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하는 부분은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믿음에도 이러한 경향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고 암송하는 구절인 로마서 8장 28절을 떠올리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구절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담고 힘을 주어 믿음의 선포를 하듯이 선언한다. 하지만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그동안 뒷부분에 중점을 두고 고백했던 것만큼이나 앞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앞부분인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구절에서 ‘뜻’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프로데시스이다. 이 단어는 ‘뜻’, ‘목적’이라는 의미 말고도 남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진열’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신 뜻은 ‘숨은 뜻’, ‘숨겨진 목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알아차릴 수 있는 ‘뜻’, ‘목적’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앞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듯이 부르심과 목적을 위해 개인마다 감당해야 하는 일이 다르고, 그것으로 인해 살아가는 모습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동일한 목적과 뜻을 위해 부름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고 사명자로 살아갈 때 모두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살아가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야 한다. 로마서 8장 28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함이 드러나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다’라는 구절을 주문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이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길 소망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 2023.07.07

    시선 - 김형식 목사(은평대교구장)
  • 막내아들이 7살 때의 일이다. 집 주변에 작은 생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1주일에 몇 번씩 산책을 했었다. 하루는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선 막내와 함께 걷고 있었다. 집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근처에 이르렀을 때,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여기 큰 꿀벌이 있어요.” “어디, 어디?” 아내와 난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벌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또래보다 키가 10센티미터는 작아서 11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아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둘러보니 아이가 큰 꿀벌이라고 했던 벌은 딱 아이의 눈높이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나와 아내는 우리의 눈높이에서 찾고 있었으니 발견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벌은 꿀벌이 아니라 말벌이었고 산책길에 조성된 난간 손잡이에 붙어 있었다. 우리로서는 허리를 굽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아이에겐 정확히 딱 자신의 눈높이였다. 그때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다. 눈높이의 차이에 따라 볼 수 있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셋은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각자에게 보이는 것만을 보았다. 누군가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다면 우리 셋 모두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본 것과 아내가 본 것 그리고 아이가 본 것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의 주장이나 의견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각자에게 보이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이런 일이 교회 밖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도 여러 시선이 존재한다. 각 세대의 사람들은 각자의 눈높이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험 그리고 신앙의 연륜을 바탕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오류에 빠진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생각에 다른 사람도 동조해주기만을 강력히 바란다. 우리는 내가 나의 시선과 의견을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신앙의 공동체가 서로의 다른 시선을 인정하고, 서로 품어주고 이해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 2023.06.30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 조종현 목사(선교연합회대교구장)
  • 어릴 적 많이 불렀던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이라는 노래가 있다. 기독교인이자 청록파 박두진 시인이 쓴 6·25의 노래이다. 가사에서 오는 슬픔과 비장함이 주님의 보혈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이다. 오늘은 6·25전쟁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한 호국선열의 값진 희생을 감사하며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더 늘어간다. 인류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이 너무 크기에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수많은 허망한 죽음과 큰 아픔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19년 31개 연합국이 프랑스에 모여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다. 그 후 1920년부터 19년 동안 수많은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평화를 다짐한 국가 간의 약속과 협약은 무너졌고 나라와 민족들은 그 전쟁의 아픔과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고통 받았다. 1945년에 51개국 대표들이 모여 국제연합(UN)을 재창설했으나 우리 민족의 아픔인 6·25전쟁을 비롯해 베트남전쟁, 3차에 걸친 중동전쟁 등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경제전쟁, 문화전쟁, 종교전쟁, 이념과 사상전쟁으로 전 세계에서 나라, 민족 단체, 개인 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평화를 지키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가 놓여있는 환경은 수많은 육적전쟁과 영적전쟁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쟁의 땅에서 두려움 없이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평강의 삶을 누리고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그 사랑의 은혜가 있기에 오늘도 전쟁의 폭풍 한가운데서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이 땅의 전쟁을 멈추시고 평화를 이루시는 분은 오직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는 찬송과 함께 탄생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재림의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정한 평화의 왕이시다. 우리는 붉은 피, 보혈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은혜로 노래한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 2023.06.23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영적 행보” - 손영환 목사(양천대교구장)
  •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2023년 새가족 5만 성도 달성을 위한 전도·정착 청백전이 시작된 상반기가 전도 열매의 결실과 함께 대미(大尾)를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미가 깊은 것은 코로나로 묶여 있었던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재충만 하고 구원의 확신과 함께 증인 된 삶을 위한 사명감을 고취 시켰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한다!’라는 구호처럼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불태웠던 상반기였다. 우리의 사명인 전도가 일상에서 지속되어 왔지만 이번에 실시한 ‘전도 청백전’이라는 특별한 진행이 대교구와 지성전의 모든 성도와 교역자를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우리’라는 공동체로 급부상하게 한 영적 행보를 이루었다. 성도가 영혼 구원이라는 증인 된 삶을 다할 때 하나님의 감동이 밀려와 새로운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놀라운 응답과 기적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은혜와 진리로 가득 채워 선포하는 복음은 이 시대의 희망이 된다. 사랑과 섬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인류의 희망 되신 예수님을 만방에 전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날 때 회복과 치료, 기쁨과 생명, 용서와 사랑, 그리고 화목과 행복이 넘쳐난다. 이것이 바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자 혼란과 어수선한 이 세대에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위대한 희망의 메시지이다. 2023년 전도·정착 청백전으로 시작된 영혼 구원을 향한 전도의 열정이 회복과 부흥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를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였다. 모두가 함께 걸어온 2023년 상반기 전도·정착 청백전을 통해 새로운 부흥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그 주인공으로 쓰임 받는 전도자들에게 주님께서 베풀어 주실 예비하신 상급과 축복을 기대하며 가슴 벅찬 영적 설렘으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의 발걸음을 또다시 내딛는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 2023.06.16

    “니가 하냐? 내가 하지!” - 이철 목사(기도원대교구장)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니가 하냐? 내가 하지!”라는 주님의 음성을 두 번 들었다. 오래전 청년들과 함께 사역할 때다. 내가 맡은 청년들의 일순위 기도제목은 결혼이었다. 어느 날 주님이 말씀하셨다. “20쌍 결혼을 선포해라.” 나는 놀라서 다시 물었다. “20쌍 결혼을 선포하라구요?” 나는 웃었다. 주님이 웃지 말고 선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니가 하냐? 내가 하지!” 모임에 가서 말했다.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우리 교구에 결혼 20쌍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들이 웃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커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사역지를 떠나 다른 곳에 왔을 때, 전임 사역지에 20쌍의 커플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교구에서 사역할 때다. 지역예배를 드리던 지역장님이 갑자기 뇌출혈이 왔다.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교구 성도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님, 일하는 지역장님을 이렇게 두시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라.” 나는 깜짝 놀라 다시 기도했다. “주님 그러다가 수술하면은요? 저는 뭐가 됩니까? 거짓말쟁이가 되잖아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니가 하냐? 내가 하지!” 믿음으로 기도처에 모여 기도회를 하며 선포했다. “주님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모두들 할렐루야! 외쳤다. 지역장님은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했고, 나는 기도원 성령대망회를 다녀오면서 전화 연락을 했다. 지역장님의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지역장님 어떻게 되셨어요?” “목사님! 검사 결과 수술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할렐루야! 그 말에 내가 더 크게 소리쳤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상황을 보고 두려워한다. 베드로는 파도를 보고 물속에 빠졌다. 나사로는 죽어 이미 무덤에 갇혔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다. “믿기만 하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겐 환경과 이성, 경험을 초월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요구될 뿐이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야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 2023.06.09

    신앙의 반짇고리 함 - 김정대 목사(통일대교구장)
  • 어릴 적 시골에 가면 형형색색의 천들과 바늘과 실 등을 담아 두었던 함이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양말에 구멍이 나고 옷이 해지거나 찢어지면 할머니께서 “얘야~ 저기 반짇고리 함 가져오너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구멍이 나서 더 이상 못 신을 것 같던 양말도, 찢어져서 속살이 보이던 바지도 감쪽같이 수선해 주셨다. 어린 마음에 마냥 신기해서 눈을 못 떼고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인생을 살다 보면 기쁘고 행복하며 즐거운 나날들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특히 관계 속에서 상처가 많이 생긴다. 마음의 찢겨진 상처는 쉽게 낫지도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상처를 주고, 그런 내가 싫어 나 자신에게 다시 상처를 입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2020년 한해 동안 20대 사망자는 2259명이고, 30대는 3873명이다. 그 가운데 고의적 자해(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20대는 1471명, 30대는 1874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60세 이상 인구 중 정신질환을 앓는 노인이 최근 10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우울증 진료환자는 93만 3481명으로 지난해(84만 8430명)대비 10%상승, 연령대별로는 10대, 20대, 30대순으로 증가율이 높다고 발표했다. 즉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곪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주 희망적인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으면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이 된다. 불치병으로 알고 하루하루 마지못해 사는 인생에 완치약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경험해 보자.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먹어봐야 효과를 알 수 있다. 바지가 찢어져 터덜터덜 집에 왔다가 할머니의 손길로 수선된 바지를 입고 새 옷 인양 마음이 한껏 당당해졌던 어린 시절 아이처럼 주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세상을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오라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야훼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야훼를 알자 힘써 야훼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1~3).
  • 2023.06.02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 - 윤성호 목사(선교국장)
  • 독일 헤른후트에 모라비안 공동체가 있다. 체코의 모라비안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피해 독일 작센지방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는데, 그때 진젠도르프 백작은 이들을 자기 영지에 거주하게 했다. 모라비안은 그곳을 주님의 보호(Lord’s Watch)라는 뜻을 가진 헤른후트(Herrnhut)라고 불렀다. 1722년부터 모라비안은 매일 3차례 모임을 갖고 간절히 기도했다. 1727년 8월 13일 기도 중에 강력한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으며 8월 18일에는 어린이들까지도 성령 침례를 받았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모라비안은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1732년 레온하르트 도버와 다비드 니츠만을 서인도제도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을 필두로 그린란드, 수리남, 아프리카, 미국, 중국, 이란, 자메이카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특히 서인도제도에 사탕수수와 코코아 농장에서 일할 노예를 매년 10만명씩 데리고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일부 모라비안은 스스로 노예로 자원했다. 그들은 노예와 같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성경을 가르쳤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1930년까지 3000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 오지에 파송하여 근대선교에 불을 지폈다. 모라비안은 독일 작센지역에 있던 작은 공동체에 불과했지만 그 공동체가 보여준 선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복음을 전하다 죽으라 그리고 잊혀져라’라는 모토를 갖고 전 세계로 흩어져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철저히 잊혀졌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그로 인해 수많은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되었고 근대선교를 주도했던 것이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 6:9). 여기서 ‘무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우메노이’는 ‘무시당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땅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땅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천국에서는 유명한 자다. 이들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이며 영원한 상급이 예비된 유명한 자이다. 제49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개최된다. 전 세계 63개국에서 사역하시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600여 명의 선교사들이 참석한다.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로서 타 문화권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드러내고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을 중보하고 후원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무명한 자일지 모르나 천국에서는 유명한 자로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 2023.05.26

    ‘여의도순복음교회’라는 브랜드의 특징 -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우리 교회가 창립 65주년을 맞았다. 1958년 5월 18일 대조동 천막 교회에서 시작된 교회가 불과 15년 만에 서대문 성전을 거쳐 지금의 여의도 성전으로 옮겨, 한 때 등록 성도 80만 명에 이르는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조차 일종의 ‘브랜드’가 된지 오래이다. 또 한 번의 교회 창립일을 맞아 이 브랜드, 다시 말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특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하면 ‘대한민국 최대 교회’, 아니 ‘세계 최대 교회’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 교회에 초청 받은 국내외 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어떻게 수요 예배에, 그리고 새벽 예배에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모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일 정도로 모이는 데 있어서는 단연 으뜸을 자랑한다. 또한 강단에서 선포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야말로 우리 교회를 특징짓는 주요한 요소이다. 설립자이신 영산 조용기 목사뿐만 아니라 2대 당회장 이영훈 목사의 말씀 충만, 성령 충만의 강력한 설교는 인본주의적 철학 강연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다가온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이 오순절 성령 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탄생한 사도행전적인 교회를 재현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성령 사역이다. 따라서 온 성도가 성령 충만 받아 방언을 말하며 신유를 체험하고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열매 맺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열정적으로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순복음 신앙의 유명한 특징이다.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통성 기도, 안수 기도, 방언 기도, 중보 기도는 우리 교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외 선교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도 여의도순복음교회 브랜드의 장점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우리 사회와 세계 여러 나라에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일 년 예산의 3분의1 이상을 구제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그 밖의 각종 헌금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방침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을 갖고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 뿐만 아니라 어떤 부서 어떤 조직이든지 전 구성원이 합심해서 ‘원 팀’으로 사역하는 신앙, 지구역 식구들을 내 가족처럼 섬기고 아끼는 신앙,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절대긍정, 절대감사’를 실천하는 신앙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자랑스런 특징을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 65년의 세월 동안 잘 가꾸어왔다. 이제 교회 창립 70주년, 더 나아가 100주년을 바라보며 이 같이 보석보다 귀한 브랜드를 더욱더 갈고 닦아 하나님께 더욱 크게 영광 돌리고, 21세기 세계 부흥을 선도하는 교회로 우뚝 서기를 기대하며 기도드린다.
  • 2023.05.19

    부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생각 - 성영목 목사(개척국장)
  •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지정된 역에서 냉동차가 역에 들어오면 객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냉동이 가동되지도 않은 객차 안에서 싸늘하게 얼어 죽은 시체 한 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냉동차는 일단 역에 들어오면 스위치를 뽑아 놓고 공기도 순환 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얼어 죽거나 질식해 죽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시신이 발견 되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나중에 조사를 해본 결과 이 사람이 죽은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열차 안에 갇히자 ‘아~ 냉동차 안에 갇혔으니 이제 얼어 죽겠구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이 그를 사로잡자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실제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죽을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이제 냉동차 안에서 죽는구나’하는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몸과 마음과 생각을 얼어 죽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들의 삶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평안한 자리를 고통의 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부요의 자리를 궁핍의 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자리를 나 홀로의 자리로 만들어서 절망하고 낙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소망을 만들고, 어렵고 힘든 일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의 마음으로 그 일을 이루게 되고, 질병의 고통에서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우리의 삶이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자리일지라도 부정적인 마음을 물리치고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선택함으로 매일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순복음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인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2023.05.12

    어린이날=교회학교의 날 - 이상영 목사(교회학교장)
  • 세계의 많은 나라가 어린이날을 지정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 행사를 열고 있다. 나라마다 어린이날로 정해진 날짜도 다르다. 태국의 어린이날은 1월 둘째 주 토요일이다. 일본은 3월 3일을 여자 어린이날로, 5월 5일을 남자 어린이날로 나누어 기념하고 있다. 인도는 최초의 수상이었던 네루 수상의 생일인 11월 14일을 어린이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리스는 5월에 어린이 주간이 있다. 어린이 주간에는 한 주 내내 퍼레이드가 벌어지고 각종 공연과 즐거운 행사들도 열린다. 우리나라는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을 만들어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했다. 이후 1945년 광복 이후에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정했다. 이렇게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은 어린이날에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5월 5일을 어떻게 보낼까? 많은 가정이 어린이날을 자녀들과 특별한 추억을 쌓길 원하고 특별한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그래서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는 학부모들은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어린이날에 자녀들과 교회 안에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교회에서 누리는 기쁨을 자녀들에게 채워 주어 앞으로도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는 2009년 5월 5일부터 어린이날을 교회학교의 날로 제정하여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미래 꿈나무들의 축제의 날로 개최해왔다. 올해도 우리 교회는 어린이날인 5일 ‘와’라는 주제로 교회학교의 날을 개최했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모든 친구들은 교회로 와서 예배를 통해 은혜를 나누면서 “와”,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와”, 버블&벌륜쇼와 인형극을 보고 “와”, 푸드트럭에서 맛있는 간식을 먹고 “와”, 교회 곳곳에서 게임과 체험을 통해 “와” 탄성의 소리가 가득 넘쳐났다. 교회가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추억의 장소 됐다. 예배를 통해 은혜가 가득한 장소가 됐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 2023.05.05

    다윗과 사울의 군사 - 정대원 목사(구로대교구장)
  •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가 대치한 상황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 나와 싸움을 돋을 때 사울의 군사 중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키가 여섯 규빗 한 뼘(2.9m)이나 되고 온몸에 놋 갑옷을 두른 골리앗의 위용 앞에 모두가 크게 놀라며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군사로서 자신들이 맡은 임무도 잊은 채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에 감히 맞서지 못했다. 군인이라면 마땅히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할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상대가 무섭다고 꽁무니를 감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들이 전쟁을 위한 훈련 받은 군사였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전장에 서 있던 또 한 사람, 다윗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다윗은 블레셋과 싸울 목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있던 것도 아니요 전쟁을 위해 훈련을 받은 군사도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하기 위해 에바 골짜기에 갔었고, 그곳에서 적들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 적의 장수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이다. 무엇의 차이였는가? 바로 믿음이다. 사울의 군사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을 목격했음에도 골리앗이라는 커다란 문제 앞에 믿음이 약해졌던 반면, 다윗은 자신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누구의 모습에 더 가까울까? 다윗인가 아니면 사울의 군사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사는 신앙인들이 많다. 예배의 현장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영적인 전쟁터와 같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군사라면 마땅히 전장에 나아갈 믿음이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시기이다. 그간 우리가 받아온 성경에 대한 가르침과 훈련들은 바로 이때를 위한 믿음의 훈련이 아니었던가. 지 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다면 원수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예배 회복의 새 역사를 이루게 할 것이다. 예배의 승리자가 곧 인생의 승리자임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길 바란다.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 2023.04.2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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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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