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신의규 목사(강서2대교구장) - 차안대를 아십니까?    
  •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4~5시간을 스마트폰을 보며 생활한다고 한다. 또한 절반 이상이 하루 2시간 가량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주목할 것은 스마트폰 사용이 정보를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볼 것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과 각종 볼거리들이 우리의 눈을 쉬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은혜이지만 우리 눈은 혹사당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눈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지적하듯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집중력이 붕괴되고 있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며 우리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이는 크리스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전화하고 소통하며 정보를 얻고 예배를 드리기도 하며 TV 등을 보며 일상을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한다.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얻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이기 쉽다. 많은 볼거리가 오히려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고 있으며, 신앙생활에서도 마음을 나뉘게 한다. ‘차안대(遮眼帶)’라는 경주용 말에게 사용하는 도구가 있다. 말은 힘이 세지만 주의가 산만한 동물이다. 특히 주변 물체의 움직임에 쉽게 흥분하고 놀라기 때문에 눈가 면에 컵 모양으로 부착하여 시야각을 줄여주는 것이다. 차안대를 통해 불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목적지를 바라보고 달리는 훈련을 통해 경주용 말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묵상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 그러나 모든 일을 하지 않으셨고 그럼에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집중하셨다. 너무나 볼 것 많은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영적 차안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다 보면 안 되고,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며 푯대를 바라보며 집중해 나가야 할 때이다.
  • 2025.03.14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담당) - 천국 스타일
  •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설명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곱씹어 볼수록, 포도원 주인은 단순히 포도원을 운영하기 위해 품꾼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품꾼들을 위해 포도원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 사업을 하시는 한 집사님이 찾아와 한숨을 쉬며 푸념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세금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이래저래 쓰고 나니까 남는 게 없습니다. 헛장사한 것 같습니다.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금 다 내셨다면서요? 월급 다 주셨다면서요? 집사님, 이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면서 사시면 편하게 지내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 혼자 잘 살려고 사업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까지 잘 살게 하려고 사업하는 것은 아무나 못 하는 일입니다. 이제부터 누가 묻거든 ‘나는 세금 잘 내려고 사업한다, 직원들 월급 주려고 사업한다’고 하세요.” 그 말을 들은 집사님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복, 그 자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혼자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 이하에 보면 5000명이나 되는 무리에게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고 오게 하자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살아갈 힘을 얻고, 나로 인해 누군가 성공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 풍성함을 누리고,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지고, 나로 인해 5000명이 배부르게 되는 삶, 이것이 바로 천국 백성의 삶입니다. 우리가 천국 스타일로 살아갈 때 내가 하는 일, 배우는 일, 섬기는 일, 모든 일이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 2025.03.07

    이성준 목사(강서1대교구 담당) -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 요즘 우리나라는 위기이자 비상상황입니다. 국민들은 탄핵반대 집회와 탄핵찬성 집회로 갈라져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반드시 이 상황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마가복음 4장 35~41절에 보면 날이 저물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띄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밤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고 배는 이리 저리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침몰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 말고도 다른 배들도 그 바다 위에 있었습니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막 4:36). 제자들과 예수님이 탄 배와 다른 배에 탄 사람들까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배 후미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 그러자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셨더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기 때문에 제자들도 살고 그 바다에 떠 있었던 다른 배의 사람들도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다면 제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배의 사람들까지도 다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움으로 모두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바다에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광풍은 불고 있는데 우리끼리 아무리 노를 젓고, 돛을 올렸다 내렸다 해도 광풍이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을 꾸짖을 수 있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워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할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믿음의 성도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토요일 ‘국가안정과 국민대통합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뜨겁게 기도하며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국가 위기 상황에 다시 한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큰 광풍을 만나 다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 것이 결국 광풍을 잠잠하게 하고 고요하게 했습니다. 2025년을 살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다면 반드시 광풍은 멈추고, 풍랑은 잠잠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기도할 때입니다!
  • 2025.02.21

    손영환 목사(교무국장) - 성령과 전도, 우리의 삶을 전도여행처럼
  • 이 세상에서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의 삶 하루하루는 어떤 여행보다도 소중한 전도 여행이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전도 대상이기 때문이다. 2025년 상반기 새신자 전도정착을 위해 모든 부서가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전도할 때 성령의 힘과 능력이 나타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복음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우리가 전할 때 누군가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전도만이 이 시대와 세대를 살리는 길이다.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제 전도대회가 개최되었었는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삶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는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한 삶의 이유와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불신자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더불어 살 길도 열릴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는 말씀처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성령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는 전도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을 주시는 것을 열심히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이다. 2025년도 한 해 동안 가족 이웃 친지 지인들을 전도할 마음을 품고 기도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의 역사로 전도의 열매가 가득한 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직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의 신앙을 뜨겁게 재정비하여 그동안 잊고 있었던 복음의 열정을 되찾아야 한다. 바울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복음이기에 복음의 열정을 다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이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적 행복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 모두가 삶으로 드리는 전도 여행을 통해 복된 소식을 전하므로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는 전도의 성공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올 한 해 열방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영혼 구원을 위한 위대한 전도자가 되어 주님께서 예비하신 상급과 은혜 그리고 다양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 2025.02.14

    이일섭 목사(교회학교 담당) - 성령 충만한 아름다운 삶
  • 세상에는 가치 있고 중요하다 여겨지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가치가 되며 가장 존귀한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주님은 헤아릴 수 없는 가치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기에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가장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여 사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현대의 종교는 서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종교다원주의,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 등 연합을 넘어 일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와 성도는 이런 흐름을 수용하거나 조금의 타협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신이시라는 유일신 사상과 오직 예수님만이 절대 진리이며 그 외의 것은 모두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극한 대립과 양극화를 통해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양극화와 대립은 초극단에 이르렀다고도 묘사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유사한 상황과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사라져가는 신앙의 1세대와 함께 2세대가 공존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신앙의 불안감과 자신들의 신앙이 맞는 것인지, 언제까지 박해를 견뎌야 하는 것인지, 다시 오신다던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 안에서도 잘못된 이해와 이에 따른 거짓 주장들로 인해 교회에 혼동을 야기하였고 이에 미혹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확실한 것입니다. 변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성령 충만한 사도들과 리더십들은 그러한 모든 거짓된 요소들을 배제하고 오직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타협하지 않으며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와 사명의 인생을 살아갈 것을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는 어느 상황, 어느 자리에서도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상황에 타협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세상의 헛된 거짓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혈안이 되어 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말씀을 기초로 믿음을 굳건히 하여 성령님의 절대 도우심을 힘입어 타협이 없는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오직 말씀을 따른 지혜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타협이 없는 성령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올바르게 지도하고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 2025.02.07

    오수황 목사(대학청년국 담당) - 주여 삼창의 외침
  • 성경에는 많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순복음의 기도의 특징인 주여 삼창의 기도가 있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라고 시작하는 기도는 마치 뜨거운 용암이 폭발하여 화산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분출된 용암이 흘러가면서 모든 것들을 태우고 새로운 길을 만들게 됩니다. 주여 삼창의 기도가 지나간 자리에도 기도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왜 그토록 주여 삼창을 외치며 열심히 기도하는가?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캄캄하며 삶의 문제들로 인하여 고통 받고 답답한 마음일 때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주여 삼창을 외치며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간증들도 들었습니다. 2025년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와 매주 토요일 국가안정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총동원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순복음의 주여 삼창의 기도는 뜨겁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여 삼창의 기도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9). 주여! 들으소서! 다니엘이 드린 기도는 들어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만이 지금의 상황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상황을 들으소서!! 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주여!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공동체를 위한 회개의 기도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자신의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모들과 조상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서로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고 저주하며 큰 갈등과 대립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이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회개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주여! 행하소서! 라고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다니엘의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들도 다니엘처럼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대한민국이 속히 안정되고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통합되기 위해 함께 모여 주여 삼창을 외치며 다니엘의 영성을 가지고 기도합시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행하소서.
  • 2025.01.31

    김광덕 목사(여의도순복음소하교회 담임) - 성령의 바람 불면
  • 지난 주초 전국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았다. 사무실에서 바라본 세상은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였다.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은 아픔이 한쪽 가슴을 저며왔다. 이렇게 먹먹한 심정으로 새해를 맞이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000년 전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나라의 주권은 로마 제국에 빼앗기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그들을 압제와 절망에서 구원한 메시야를 기다린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하지 못했다.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들만이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온 인류의 구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라난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것처럼 아무리 정치가 죽을 쑤고 경제가 암담해도 새해는 시작되고 어느 해보다도 긴 설 명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새해의 덕담을 나누고 그리웠던 부모 형제들이 만나 정을 나누는 명절이 시작됐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가족과의 행복한 만남이 다툼으로 변질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꼭 부탁할 일이 있다. 가족 간에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힘들다, 어렵다, 막막하다 같은 부정적인 경제 이야기도 금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순복음의 성도들이니 힘들어도 막막해도 답답해도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말과 행동을 권한다. 나라가 걱정되거든 내 의견을 주장하지 말고 가족이 서로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새해에는 주의 은혜가 대한민국에 충만하기를,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구주이신 예수님이시니 주님이 이 나라를 지켜주시도록 기도하자. 아무리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어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이 한반도의 악한 것들을 다 날려버리도록 이 명절에 함께 기도하자.
  • 2025.01.24

    윤성호 목사(여의도직할성전 담당) - “예수님만 의지하라” 
  • 한 목회자가 목회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 리더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면 결정된 사항을 다음날 번복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한 제직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목사는 답답해서 한 성도에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모두 그 분께 도움받은 적이 있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기에 그분의 말을 따라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한 제직이 성도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결국 그 목회자는 제대로 목회하지 못했고 때가 되어 다른 사역지로 이동했다. 오랜 후에 그 사역지를 다시 방문해 보니 교인들 상당수가 흩어져 있었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성경 신명기에는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신 17:16)라고 말한다. 고대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말을 많이 확보해 놓아야 했다. 애굽은 명마 생산지이기에 좋은 말을 구하려면 반드시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말을 의지하지 말고, 말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군사력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권력을 가진 사람, 즉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 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 우리에게 도움을 준 사람, 심지어 형제, 친척, 친구들도 사랑하고 존경할 대상이지 결코 믿고 의지할 대상은 아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나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응답받고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올해 우리가 결정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일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해도 되지만, 어떤 일은 촌음을 다퉈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옳은 것인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아마 바둑 1급 1000명이 머리를 모아도 프로 바둑 기사 9단 1명을 이길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의 경륜과 전문가의 식견보다 예수님 한 분의 지혜가 훨씬 뛰어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유일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생의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 2025.01.17

    성영목 목사(목회기획국 담당) -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는 새해
  • 미국 흑인들의 애환을 그린 유명한 소설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사무실에 이상한 그림을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거북이가 높은 담장의 꼭대기에 혼자 올라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본 많은 사람들은 꼭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이상한 그림을 걸어 놓았소?” 그러면 헤일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난 내가 쓴 작품을 볼 때 ‘어떻게 이런 위대한 글을 쓸 수 있었는가, 어디서 이런 영감을 얻을 수가 있었는가’ 생각하며 스스로 교만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 그림을 보고 생각합니다. 저 거북이가 제 힘으로 스스로 저 높은 담장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2024년을 잘 보낸 것도 또 다가온 2025년을 살아갈 때도 나의 나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니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여러 어려움들이 우리에게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찬양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고 나아간다면 분명 하나님이 우리의 2025년 한 해를 우리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새해부터 우리 교회는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우리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시고 우리 나라를 선한 길로, 축복의 길로 또 우리들을 선한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제 한 주가 지나고, 새롭게 한 주가 남았습니다. 끝까지 열두광주리 가득 기도를 채워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받고 누리는 믿음의 자녀되길 바랍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 2025.01.10

    양승호 부목사(목회담당) - 사잇길로 가신 예수님처럼!
  • 누가복음 17장 11절은 예수님의 특별한 여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길을 지나셨습니다. 단순한 길 안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처럼 양편으로 대립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갈 때 세 가지 경로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길은 요단강 동편을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 마을이 많아 유대인들이 안전을 위해 선호하던 길이었습니다. 두 번째 길은 비교적 긴 거리로 요단강 서편, 즉 지중해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길은 ‘조상들의 길’이라 불리던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사잇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 동안 갈등과 대립 속에 서로를 혐오하고 미워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갈등이 극에 달해 유혈사태가 일어날 정도였기에 이 사잇길을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이 길을 자주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을 걸으신 이유는 서로 갈라지고 대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해와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요? 현재 우리 사회는 태극기와 촛불,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그 어느 때보다 분열과 갈등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극단적인 대치를 중재하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걸으셨던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길’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예수님은 이 길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섞여 있던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셨고,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돕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잇길에서 서로 대립하는 사람들 간에 사랑과 화해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지금 나와 다른 사람들 때문에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정치 논리에 갇혀 마음속으로 분열과 대립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길로 지나가셨다”라는 말씀처럼 새해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그 길을 걸어봅시다. 그 길에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참된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2025.01.03

    안현주 목사(동작대교구장) - 미래를 아는 투자자
  • 몇 년 전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회귀하여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이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은 인생 2회차로서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미리 땅을 매입해 어마어마한 시세 차익을 얻기도 하고, 증시 정보와 성공할 기업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투자하여 큰 성공을 이루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과거에는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도 투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직장을 갖고 일하지 않아도 금융 투자를 통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투자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빠른 정보, 많은 돈,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베팅할 수 있는 배포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돈의 액수도 다르고, 정보의 질과 양도 다르며 건강도 모두 다르다. 유일하게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1년은 12개월이고 365일이며 8760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8760시간을 투자했다. 예배, 기도, 말씀, 전도와 같은 영적인 것에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한 이도 있고, 재정을 버는 일이나 건강을 얻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이도 있을 것이다. 삶의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투자한 이도 있을 것이다. 2024년 마지막 달 각자의 시간 투자에 대한 성과를 모두 받았을 것이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능력이 있다. 그것은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처럼 미래를 아는 지식이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매우 쉽게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미래를 알고 있는 이는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주신 표준전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이다. 큰돈을 벌게 해줄 미래 지식은 적혀 있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갈 지혜가 있고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며 거룩한 삶을 살아갈 힘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시간을 말씀 묵상과, 예배, 찬양, 전도 등의 영적인 것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유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당신은 주어진 2025년(8760시간)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미래를 아는 투자자가 될 것인가? 불확실한 것에 시간을 쏟는 투자자가 될 것인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 2024.12.27

    이성광 목사(마포1대교구장) - 이 세상 최고의 선물 예수 그리스도
  • 옛날에 한 평화로운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어진 임금님의 통치 아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임금님이 심장병에 걸려 곧 죽게 되었다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라의 온 백성들이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임금님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한 가지 있다는 좋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누군가 임금님에게 심장을 내어놓아 이식수술을 하면 임금님이 살아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임금님에게 심장을 드리고 용감히 죽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신하들과 백성의 대표들이 모여 고심한 끝에 공평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백성들을 한 자리에 다 모아놓고 임금님이 새의 깃털 하나를 불어 그 깃털이 누구의 머리 위에 앉든지 그 사람이 임금님을 위해 심장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곧 나라 안의 모든 백성이 다 모였고, 임금님은 깃털을 불어 날렸습니다. 깃털은 바람을 타고 이리 저리 날아다니다가 임금님 근처에 있던 사람의 머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그 사람은 평소에 임금님의 총애를 받던 총리대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깃털이 막 머리에 앉으려는 찰나에 그가 입김으로 ‘훅’ 불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깃털은 다시 바람을 타고 날아가 다른 사람에게로 갔습니다. 그 사람도 또 불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사람도, 그 다음도… 여기서 훅, 저기서 훅… 깃털은 계속 날아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머리, 저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내용은 정말 임금님을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대신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2024.12.20

    김진태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크리스마스, 변화의 시작
  • 열흘 있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놀라운 은혜가 펼쳐짐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하면 가장 원하는 것이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 오심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 오시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동참할 때 우리가 상상치 못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 상상치 못한 은혜는 바로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인류 역사와 개인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는 깊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분의 오심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이 세상에 온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 변화의 상관관계는 여러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영적인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영적인 회복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막혔던 것을 뚫어 주셔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변화를 주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오시는 성령님이 믿는 자들에게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변질된 십계명과 삶의 방식 즉 그 시대의 문화와 가치관을 깨뜨리셨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산상수훈은 사랑, 용서, 겸손, 섬김 등의 가치를 강조하여 인간관계와 사회구조의 변화를 주셨습니다. 특히 사랑의 실천으로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사회적 실천으로는 병자, 가난한 자, 여성, 이방인 등 소외된 이들을 존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나의 안위와 성공이라는 내 중심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섬김과 순종을 실천하는 삶으로 바뀌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크리스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 자녀로의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앞서서 타락한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의 변화를 받아 신앙의 출발을 이루고 다음으로 가치관의 변화, 삶의 목적 변화, 인격의 변화로서 말과 생각과 꿈의 변화를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성탄절에 예수님 오심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우리에게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어제의 내 모습이 아닌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변화를 이뤄나가야 할 것입니다.
  • 2024.12.13

    박현주 목사(용산대교구장) - 2024년 12월 
  • 2024년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12라는 숫자를 한번 생각해보았는데 여러 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1년은 12달로 되어 있고, 12간지 띠가 있고, 12음계이며 연필 한 다스가 12자루이고, 한국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총 12년, 심지어 인간의 뇌신경은 12쌍이랍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1년을 12달, 하루를 낮 12시간과 밤 12시간으로 구분하셨습니다. 성경의 12숫자는 구약의 12지파, 12사도, 12광주리, 12진주문, 생명나무 12과실 등 12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적 능력과 권위에 사용된 상징적 숫자입니다. 오늘은 12월의 첫날로 우리의 마음이 분주할 수 있는데 저는 오늘을 다른 의미로 묵상해 봅니다. 12월은 마치는 시간과 동시에 새로 시작되는 기대의 달입니다. 먼저 올 1년 동안 삶의 현장에서 씨앗을 뿌린 것들이 얼마나 영글었는지, 목표로 한 것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막판 카운트하는 것이 사뭇 기대가 되며 나름대로 수고한 것들에 대해 스스로 박수를 쳐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혹 결실이 부족하였으면 쿨하게 털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해가 곧 오므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달입니다. 1이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만 12는 금방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입니다. 12월 마지막 달이니 세상 사람들은 연말을 실컷 즐기려고 들뜬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틈을 타서 물가는 더 오르고 연말 상술이 극성을 부리기도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필두로 수능 이후 이제 성탄절까지 연말을 맞아 백화점, 마트, 쇼핑 업체의 상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수능생 이벤트에 블랙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까지 많은 프로모션과 할인 상품들이 사람들을 계속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12월엔 세상에 가장 좋은 소식이 전해진 달이 아닙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나님으로서 죄인들을 품으시기 위해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찾아오신 인류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달이요 성도들에게는 가장 감격적인 달입니다. 2024년 12월을 맞아 마음이 쫓기거나 가는 세월에 무상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껏 누리시고 축하하며 사랑을 전하는 최고의 연말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2024.11.29

    조정규 목사(찬양특별교구대교구장) - 절대 감사의 실천 ‘찬양’
  • 지난 추수감사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감사에 대해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등 감사의 찬양들과 함께 감사의 의미 그리고 삶의 실제적인 감사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 많아지고 새롭게 발견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평과 원망은 하면 할수록 삶을 가난하고 초라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감사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또는 행운이 따라와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것, 귀한 사명 주신 것, 나를 영원한 생명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 신실하심이 이미 영원히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하루 시간 시간이 감사할 이유입니다. 감사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감사를 마음과 생각에만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표현해야 합니다. 아무리 감사의 마음이 있다고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고백을 듣기 원하십니다. 감사는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몸과 마음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적극적인 감사의 실천과 표현은 ‘찬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목소리로 즐겁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높일 수 있습니다. 몸의 움직임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모습의 찬양이라도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찬양은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고, 고난 중에도 기뻐하게 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가장 적극적인 감사의 실천과 표현인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그 풍성한 사랑 가운데 거하며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 2024.11.22

    신효영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기쁨의 열매를 거두려면  
  • 신약성경 골로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골로새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에바브라’라는 신실한 사역자에 의해 세워졌고, 양육을 받은 교회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차디찬 감옥에서 골로새에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바로 감사입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마땅한 것이지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든 사도로서 감옥생활은 참으로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 만성적인 질병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옥중에서 쓴 모든 편지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밤중에 찬송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기쁨과 감사를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찬송과 감사로 기도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감옥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감사 기도는 하늘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떤 감사가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내게 필요한 소원을 가지고 아뢸 때가 많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내게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더 큰 것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우리는 항상 잃어버린 것, 손해 본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지금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감사는 내 손에 남아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2024년 한 해를 달려오면서 지금 손에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어떤 분은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이 잃었다고 생각할수록 우리의 가슴은 허전해지고 슬픔에 빠집니다. 그러나 비록 잃었지만 앞으로 채우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 입술에 감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감사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풍성한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 2024.11.15

    황혁 목사(금천대교구장) - 교토삼굴(狡兎三窟)과 믿음의 두 날개
  • 토끼의 지능은 IQ50 정도다. 웬만한 훈련이면 인간 언어에 반응하며 배변을 가리고 장애물 통과도 가능하다. 토끼는 초식 동물이며 먹이 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방이 천적이다. 토끼의 생존전략은 다산(多産)과 독특한 방어기제(防禦機制)다. 토끼들은 방어를 위해 평균 1.5m길이의 굴을 파는데 유사시를 대비해 비상구도 만들고 다른 굴들과 이어지는 통로도 만든다. 이러한 토끼의 기재(奇才)를 잘 표현하는 말이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이 말은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뜻이다. 중국 제나라 맹상군의 식객이 제안한 세 개의 계책으로 재상 자리도 되찾고, 나라도 지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위험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놓는 지혜를 의미하며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로 가득 차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전쟁의 위험, 경제 위기, 사회적 변혁, 기술 발전 등 수많은 요소들로 인해 야기된다. 마치 깊은 숲속을 헤매는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교토삼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교토삼굴의 지혜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가치관조차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흔들림 없이 붙잡아줄 수 있는 절대불변의 믿음이 그 영역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말씀처럼 믿음은 캄캄한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희망과 용기를 준다. 또한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나 소망을 넘어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고 연약함을 치료하고 근심을 해결할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다. 교토삼굴의 지혜는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마치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나는 것처럼, 교토삼굴의 지혜와 믿음이라는 두 날개를 달고 힘차게 펄럭이며 날아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치밀하게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 2024.11.08

    최영권 목사(구로대교구장) - 불안을 극복하는 절대 긍정
  • 2021년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9.3%가 평생 동안 ‘불안장애’를 경험했다고 한다. ‘불안장애’란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정신장애를 의미하는데 대략 10명 중 1명이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바는 심각하다. 불안으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이 정도라면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불안은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경쟁, 개인적인 관계의 스트레스 등 현대 사회가 제공하는 여러 압박 요소들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에 놓이게 한다. 이러한 불안은 종종 우리 내부의 불확실성, 즉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고자 지난 20년간 전 세계의 다양한 실험실에서 불안에 대한 뇌과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불안이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뇌는 불안을 감지하는 두 개의 주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피질과 자율신경계를 작동시키는 편도체이다. 피질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이미지를 만들어낸 후 그것을 곱씹으면 편도체는 활성화되어 결국 불안에 도달하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사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사건 자체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불안에 맞서 피질 기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즉, 불안한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에 긍정적인 경험을 집중시키고 이를 즐기는 방법을 배운다면, 전반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빌 4:8, 새번역)라고 강조했다. 이는 성도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절대 긍정은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더 나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을 줄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 2024.11.01

    차진호 목사(양서성전 담당) - 체온과 면역력
  •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쌀쌀해진 환절기가 찾아왔다. 안타깝게도 추운 환절기가 되면 나이 많으신 고령자가 많이 돌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가 낮은 체온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은 평상시 체온이 낮은 고령자나 환자들은 환절기와 추운 겨울에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운동과 반신욕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체온과 면역력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보니 건강한 성인의 정상체온은 36.5℃에서 36.9℃ 사이이며 어린아이들은 조금 높고 고령자는 0.5℃ 낮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이 정상체온보다 높거나 낮으면 건강하지 않다는 위험 신호라고 한다. 특히 체온이 낮은 경우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우리 몸은 체온이 1℃ 올라가면 면역력은 5배, 기초대사율은 10% 높아지며 바이러스에 강한 몸이 되고 혈액순환이 잘되는 건강한 몸이 된다고 한다. 사람에게 체온과 면역력이 중요한 것처럼 성경에서도 영적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신앙 온도 관리에 실패해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책망 받았다. 하나님께서 신앙 온도조절에 실패했다고 책망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요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지나오면서 성도들의 영적 온도가 많이 떨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동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많으며 교회 각 기관과 부서에서 헌신했던 봉사 생활을 중단한 성도들이 많다. 이제 한국교회는 식어 버린 신앙 온도를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체온과 면역력을 올리기 위해서 보약을 먹고 영양제를 복용하듯이 영적 체온과 영적 면역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적 보약을 복용해야 한다. 예배 보약, 말씀 보약, 찬양 보약, 기도 보약을 복용하면 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더 많은 설교 말씀을 들어야 하며 더 많은 성경 말씀을 읽고 더 많은 찬양을 부르고 더 많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 무엇보다 봉사 시간과 전도 시간을 늘려가며 영적 군사로 사명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성도 개인의 영적 면역력이 올라가서 마귀가 주는 불신앙 바이러스와 게으름 바이러스의 공격에도 신앙생활이 병들지 않고 날마다 승리할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의 불을 받고 영적 체온이 뜨거워진 120명이 초대교회를 부흥시키고 열방을 선교했다. 우리들도 매일 매일 성령 충만 받고 영적 체온을 끌어올려 교회와 교구와 지구역을 뜨겁게 부흥시키길 소망한다.
  • 2024.10.25

    김민철 목사(장년국 담당) - 헌신이 필요할 때 
  • 마가복음 12장에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전 입구에서 헌금함에 헌금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보시고는 부자들이 넣은 것 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칭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부자들은 그 풍족한 것 중에 일부를 넣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즉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두 렙돈을 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5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금액이다. 하루 생활비가 1500원이었다니 그녀가 얼마나 가난한 삶을 살았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비는 비단 의식주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생활비 전체를 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 즉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헌신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다시 말해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시기에 내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실 것이라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내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의 전부를 드리고 있는가? 과부에게 두 렙돈은 생활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한 렙돈만 드려도 큰 희생이 아닐 수 없는데 두 렙돈을 전부 드렸다. 이것은 정말 큰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마음, 희생을 감수하고 드리는 마음으로 헌금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오늘날까지 그녀의 헌신은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봉사자는 많은데 참된 헌신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봉사자와 헌신자의 차이가 무엇일까? 비슷한 단어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봉사자는 내가 시간이 나면 봉사하고 시간이 없으면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자기 희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헌신자는 시간이 없어도 여력이 안 되어도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섬기는 자들이다. 여러분은 봉사자인가? 헌신자인가?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제30차 CGI세계교회성장대회가 우리 교회에서 열린다. 우리 교회의 큰 잔치가 아닐 수 없다. 많은 기도와 더불어 헌신자들이 필요하다. 남의 일처럼 방관하지 말고 헌신자의 마음을 가지고 솔선수범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천국 잔치를 은혜롭게 잘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 2024.10.1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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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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