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순복음
(132)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5>
  • 스스로 높아져 자랑치 말고 우릴 구속하신 예수님만 자랑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아마도 고린도 교인들은 자랑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침례를 베푼 사도들을 자랑했고 신령한 은사들을 자랑했다. 이를 지적하며 사도 바울은 고전 1장에서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다(고전 1:29~31). 아무리 세상 것을 자랑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처럼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큰 자랑거리를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 가진 것이나 이룬 것 자랑치 말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속하신 예수님만을 자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신다(고전 1:26).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육체라도 자랑치 못하도록 연약한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은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자랑치 말라는 의미다. 사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랑도 헛되다. 인생들이 주로 자랑하는 것은 돈·명예·자식·권력·힘 같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 가치가 오래 보존되지 않는다. 육체적이며 세속적인 가치는 그 한계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자랑할 수 없는 사람은 육체적인 가치라도 자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자랑은 영적이기 보다는 육적인 것으로 성경은 기록한다(갈 6:13). 이처럼 자랑은 헛된 것이 대부분이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자랑치 않고 자랑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자랑하면 어색하고 그 가치를 추락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스스로 약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신 예수님만 자랑해야 한다. 우리들의 입에는 하나님 자랑하는 이야기, 예수님 자랑하는 이야기, 성령님 자랑하는 이야기, 우리 교회, 우리 담임목사님 자랑하는 이야기, 성도 자랑하는 이야기 그리고 온전히 예수님을 믿어 복을 받은 이야기만 가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야 복을 받고 병이 나으며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는 거구나 이제 나도 예수님을 믿어야 겠다” 고백하며 교회를 찾아오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번성하고 더불어 예수님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성도의 본분이다(갈 6:1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3.01.13

    (131)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4>
  • 힘써 자신의 강함을 자랑치 않고 스스로 약함과 낮아짐만 자랑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사용한 것을 보니 ‘자랑하는 일’은 성령 충만한 성도들에게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자랑하는 것의 그 밑바탕에는 허영과 교만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랑을 하게 되면 누군가와 자신을 견주어 비교하고 저울질하므로 저절로 시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설사 자랑하는 사람은 그런 의도와 동기가 없다고 해도 어떤 자랑이든 상대방에게는 절망감 혹은 시기와 질투를 유발한다. 예를 들면, 우리 아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하면 다음 날 옆집 아이의 얼굴이 구겨져 있기 쉽고, 우리 남편이 잘해준다고 자랑하면 그날 저녁 옆집 부부의 다툼 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자랑하는 것은 상대적이고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듣는 이들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은 어떠셨는가?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고 가르치시며 스스로 높아지는 자랑이 아닌 스스로 낮아지는 섬김을 몸소 실천하셨다.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스스로 높이는 ‘자기’ 중심이 아닌 먼저 서로를 섬기는 ‘주님’ 중심의 교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전 1:31; 고후 10:17)고 말씀했다. 주안에서 자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첫째, 스스로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하고(대상 16:10; 시 20:7; 44:8; 105:3), 둘째, 세상의 것 세상의 일에 대해 자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자랑해야 한다(롬 15:1; 살전 2:19; 고후 1:14). 셋째, 그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며(갈 6:14) 넷째, 힘써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지 않고 스스로 약한 것과 낮아진 것만을 자랑해야 한다(고후 11:30; 고후 12:5,9; 약 1:9~10).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 약하고 부족함을 고백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시는 예수님을 자랑해야 한다. 우리들의 입에는 하나님만 자랑하는 소리 예수님만 자랑하는 소리 성령님만 자랑하는 소리 십자가만 자랑하는 소리 교회를 자랑하는 소리 성도들 간에 서로를 높이고 자랑하는 소리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며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됐다는 ‘거룩한 자랑’만이 넘쳐나길 소망한다(요삼 1:2). 김에녹 목사
  • 2022.12.16

    (130)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3>
  • 자기 자랑으로 충만한 삶이 아닌 성령 충만의 삶 살아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신실한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각종 광고로 넘쳐나고 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여기저기 광고가 눈에 띄고 듣고 싶지 않아도 각종 광고의 소리에 묻혀 살아간다. 각종 방송매체를 통한 온라인 광고는 물론이요 거리 곳곳마다 건물마다 현란한 광고로 요란하다. 현시대는 범람하는 광고들에 휩쓸려 사는 ‘광고 홍수의 시대’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런 넘쳐나는 광고는 비단 기업들의 광고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각종 인터넷 플랫폼과 사회관계접속망(SNS)을 통해 자신의 외모나 재능 그리고 사생활까지도 당당하게 노출해 광고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현시대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기 광고의 시대’임에 분명하다. 물론 이런 것이 모두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자극적으로 변질해 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심리학에서 어떤 개인의 심리상태를 측정하는 방법 중에 일정한 시간 동안 그 대상자의 연설 대화 혹은 일정한 길이의 문장에서 ‘나’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그 횟수를 측정하는 조사법이 있다. 이에 따르면 ‘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그 심리상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 언어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 Hitler, 1889~1945)는 ‘나’라는 단어를 53단어에 한 번씩 사용했고, 그의 동조자였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 A. A. Mussolini, 1883~1945)는 ‘나’라는 단어를 83단어에 한 번씩 사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나’로 충만했던 두 독재자가 일으킨 전쟁이 온 세계를 절망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 12:16~21)를 살펴봐도 부자의 언어인 짧은 3개의 절(눅 12:17~19)에 ‘내가, 내’라는 자기중심적 단어가 6번이나 등장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삶의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 독특하지만 의미심장한 분석을 본적이 있다. 영어에서 ‘죄’를 의미하는 단어 ‘sin’의 중심에는 ‘나’를 의미하는 단어 ‘i’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는 자기중심적인 ‘자기 충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죄’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제일 무서운 우상은 바로 ‘나’라는 우상이다. 성도는 세상 풍조를 따라 ‘자기 충만’으로 살지 말고 말씀을 따라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김에녹 목사
  • 2022.11.18

    (129)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2>
  • 인간의 모든 자랑은 허무하고 허망한 희망 없는 그림자 같아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신실한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성도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힘 혹은 강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나름대로 훌륭한 삶을 살던 사람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자기 자랑’ 때문인 경우가 많다(렘 9:23~24).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다의 왕 히스기야다. 그는 바벨론의 사자에게 자랑하기 위해 자기의 보물고를 열어 자랑 하다가(왕하 20:13) 결국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지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자손 중에 몇몇은 바벨론의 환관이 됐다(사 39:1~7).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에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결과였다. 둘째, 어떤 권력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다(롬 13:1). 그런 이유로 세상의 모든 권력자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 분을 경외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권력가는 결국 변질돼 교만하게 우쭐대다가 자기도 망하고 백성들도 망하게 한다. 남이 나를 높여 주면 권위가 되지만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권위주의가 된다. 권위는 신뢰를 얻지만 권위주의는 불신을 낳는다(잠 27:2; 시 52:1).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아첨하는 입술과 스스로의 권력을 자랑하는 것 두 가지 모두를 조심해야 한다(고전 3:21). 스스로를 살아있는 신(神)으로 여겨 교만했던 헤롯 왕은 그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그를 쳐서 충이 먹어 죽게 됐다(행 12:21~23). “야훼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시 12:3). 셋째,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잠언 27장 1절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기록한다. 야고보서 4장 13~14절은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하며 안개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도 한 부자의 비유를 통해 유한한 인간이 장래 일을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가르치셨다(눅 12:16~21). 이렇듯 인간의 모든 자랑은 허무하고 허망한 희망 없는 그림자와 같다(대상 29:15; 고전 3:19~21). 김에녹 목사
  • 2022.10.14

    (128)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1>
  • 허탄하고 악한 자랑은 스스로 올무와 함정에 빠지게 만들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특히 ‘자랑’은 그 특성상 풍선처럼 부풀려 과시하며 말하게 되는 습성이 있어 자주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거나 과시하려고 허위로 자신의 이력이나 경력을 부풀려 기록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는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흔한 일이 돼버렸다. 그들의 결말은 너무나 부끄럽고 비참하다. 이처럼 성경은 ‘이생의 자랑’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고 악마적이라고 말씀하며(요일 2:15~16), 이러한 자랑은 허탄한 자랑이며 악한 것이라고 기록한다(약 4:16). 사슴 한 마리가 숲속의 샘에서 물을 먹는데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니 뿔이 얼마나 장엄하고 훌륭한지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와 달리 얇은 다리를 보니 너무 볼품이 없어 불만이었다. 다른 동물들 앞에서도 뽐을 내며 자신의 뿔을 자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자 한 마리가 덤벼들었고 사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자도 빠르지만 평지에서 뛰는 것은 사슴에게 당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사자가 쫓아오자 사슴은 울창한 숲으로 숨어들었다. 아뿔사, 그것은 실수였다. 울창한 나뭇가지에 사슴이 그렇게 자랑하던 뿔이 걸리고 말았다. 사슴은 스스로 뽐내던 장엄한 뿔 때문에 결국 사자에게 잡아먹혔다. 누구든지 자랑을 하다 보면 그것의 올무에 걸리고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도 수려하며 특히 그 머릿결은 여느 여자들보다 아름답고 탐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잘 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아버지 다윗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반란의 우두머리가 돼 아버지 다윗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반역을 꾀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쫓아가다 그 탐스러운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걸리게 됐다. 결국 타고 가던 노새만 빠져나가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다윗의 장수 요압의 군사들이 발견했고 그를 쳐 죽이고 말았다(삼하 18:1~18). 허탄한 자랑이 그를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도들은 자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야훼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야훼의 말씀이니라”(렘 9:23~2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9.16

    (127)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40>
  • 십자가 사랑 체험해 성령 충만한 성도는 결코 자기를 자랑치 않아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 ‘페르페류오마이’는 보다 쉬운 의미로 ‘풍선처럼 부풀려 말하다’라는 뜻과 ‘무익한 잡담을 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고무풍선처럼 부풀려 과시하기를 좋아한다. 자기를 자랑하며 잘난척함을 의미하는 우리말 ‘뻐기다’는 ‘우쭐대며 자랑하다’라는 뜻을 잘 드러낸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자랑은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감추려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진정한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해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결코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갈 6:14). 세계정복을 꿈꿨던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왔던 워털루 전투(1815년)의 영웅 웰링턴(A. Wellesley, 1769~1852) 장군이 승전기념 파티를 열었다. 함께 공을 세운 육해공군의 장군들이 모두 모였다. 우쭐해진 웰링턴은 참석자들에게 보석이 촘촘히 박힌 자신의 지갑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방금까지 있던 지갑이 사라졌다. 깜짝 놀란 웰링턴은 “이 방에 내 보석 지갑을 훔친 범인이 있다. 어서 문을 닫아라!”라고 소리쳤다. 순간 참석자들은 소지품 검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한 노(老) 장군이 소지품 검사를 반대하며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결국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그가 범인으로 소문이 났다. 1년 후에 다시 파티가 열렸다. 1년 만에 파티 외투를 입던 웰링턴은 깜짝 놀랐다. 도둑맞은 줄 알았던 보석 지갑이 외투 주머니에 있었던 것이다. 웰링턴은 황급히 그 노장군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소지품은 검사를 거부했는가?” 노장군은 “사실 그날 밤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서 굶고 있었고, 제 주머니에는 가족에게 줄 빵 몇 조각이 들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에 웰링턴은 눈물을 흘리며 하며 다시 용서를 구했다. 자신이 호화스런 잔치를 여는 동안 부하의 가족은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웰링턴은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자랑치 않음으로 참된 사랑을 실천하길 소망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9~11).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8.19

    (126)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9>
  • 지나친 자랑은 형편 어려운 이웃에게 좌절과 상실감 안겨줘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자랑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원어 ‘페르페류오마이’는 ‘허영심이 강한, 허풍을 잘 떠는’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페로스’에서 유래했다. 주로 쓰이는 의미로는 ‘자만심이 강하다’ ‘허영심이 강하다’ ‘허풍떨다’ ‘자랑하다’ 등이 있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 상대방을 칭찬하며 아부하는 ‘아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단 한 번 사용됐다. 초대교회 중 하나인 고린도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났다. 문제는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자랑거리로 왜곡돼 변질해 버렸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를 경고하며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으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다(고전 1:29~31). 자랑은 시기, 질투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시기와 질투가 다른 이들과 비교해 자신이 열등하다고 여길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자랑은 이웃과 비교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자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연약하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깊은 좌절과 상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는 계기가 돼 다시 메꿀 수 없는 거리감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요일 2:16). 네 명의 아이들이 풍선을 들고 운동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한 아이는 노란 풍선, 다른 아이는 하얀 풍선, 또 다른 아이는 파란 풍선 그리고 나머지 아이는 빨간 풍선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던 중 갑자기 파란 풍선이 ‘뻥’ 터져 버렸다. 그 아이는 노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곁에 있던 하얀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가 순간 자기의 풍선을 꼬집어 터뜨렸다. 그러자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그것을 바라봤다. 바로 옆에 있던 노란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도 자기의 풍선을 꼬집어 터뜨렸다. 뒤이어 빨간 풍선을 갖고 있던 아이는 자기의 풍선을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그 순간 한 아이가 웃기 시작하자 나머지 세 아이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이란 자기를 과시하고 자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행동이다. 성령으로 충만해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깨달아 실천하는 성도들은 결코 자기 자랑을 늘어놓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깊이 인식해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빌 2:3~4).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7.22

    (125)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38>
  • 진정한 사랑만이 시기와 질투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에 이어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우리 속담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그릇된 본성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특징이 있다. 시기는 반드시 질투에서 비롯된다. 시기와 질투는 옛사람의 성품이다. 사도 바울은 시기와 질투에 속한 사람들을 영에 속하지 못하고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로 정의했다(고전 3:3). 심리학자 케이치프 노이드에 의하면 인간이 벗어나기 힘든 6가지 마음의 감옥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소위 공주병이나 왕자병과 같은 ‘자기도취의 감옥’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보고 험담하는 ‘비판의 감옥’이다. 셋째는 온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절망의 감옥’이며, 넷째는 지나치게 과거에 연연해 현재를 낭비하는 ‘과거지향의 감옥’이다. 다섯째는 자기의 것은 하찮고 남의 떡만 더 커 보이는 ‘부러움의 감옥’이고, 여섯째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고 싶어지는 ‘시기와 질투의 감옥’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 유대인의 지혜 모음집 탈무드는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 가지도 올바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을 온전히 볼 수가 없고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마음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통한 진정한 사랑은 시기와 질투를 극복한다. 고난에 처한 자와 함께 슬퍼함은 물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며 다른 사람의 복을 나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롬 12:15). 진실하고 참된 사랑을 가지고 질투를 극복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다. 그는 일국의 왕자였고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그의 친구 다윗은 평민 출신이면서 양치던 사람이었지만 민중의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요나단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요나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 아버지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향한 시기나 질투의 흔적이 없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사무엘상 20장 17절에 있다. “요나단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함이었더라.”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는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2.06.19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