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Israel
반유대주의의 최전선에서 벤구리온의 유지를 이어가다
  • “시오니즘과 이스라엘학 벤구리온 연구소”
    필자가 살고 있는 네게브의 작은 마을인 미드라셋 벤구리온에는 두개의 연구소가 있다. 두 연구소 모두 벤구리온 대학 산하의 연구소로 하나는 지난번에 소개한 사막 연구소이고 다른 하나는 벤구리온 연구소이다. 네게브는 이스라엘 전체 영토에서 약 3분의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광활한 사막지대이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은 유엔에서 제시한 영토 분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그 당시 세계시오니즘기구의 대부분 의원들은 분할 안에 반대했지만 벤구리온은 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네게브를 포함한 이스라엘 영토 안에 찬성해 1948년에 독립할 수 있었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이 독립하기 이전부터 오랜 시간 동안 유대국가(현 이스라엘 국가)의 설립을 위해서 꾸준히 준비해 왔고 이를 위해 동분서주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네게브에 두었다고 한다. 그는 독립 이전부터 이스라엘 땅을 찾아와 살면서 이 네게브의 광활한 광야를 푸르게 만든다면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부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벤구리온 대학 부설 연구소인 벤구리온 연구소 ‘시오니즘과 이스라엘학’(이하 벤구리온 연구소)은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필자도 이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나 전쟁의 위협이 아닌 바로 반유대주의이다. 반유대주의는 영어로 ‘안티세미티즘’이라고 한다. 이는 셈족에 대한 반발적인 흐름을 이야기하며 그 중심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반대주의 흐름이다. 또 반유대주의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유럽과 미국에 많이 대두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흐름이다. 과거 역사 속에서 이 반유대주의 영향에 의해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홀로코스트이다.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럽 유대인들의 학살 배경에는 이 반유대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많은 수의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이 이런 반유대주의 정서를 일으키고 있으며 BDS(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벤구리온 연구소의 주된 목적은 벤구리온의 유산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팽배해져 가는 반유대주의의 흐름을 막기 위한 연구자들을 세우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소는 이스라엘 독립 이전부터 지금까지의 수많은 자료들을 기록보관소에 보관하고 있으며 벤구리온과 연관된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해 연구하고 후대를 위한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구소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해 그들을 통해서 더 다양한 시각으로 이스라엘과 시오니즘 그리고 벤구리온에 대한 객관적 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연구소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시오니즘을 왜 공부하는가 하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시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보기에 다른 나라의 이념을 왜 배우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오니즘은 어떻게 보면 근대 유럽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에 있어서 이해를 가져오는 중요한 이념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스라엘을 이해함에 있어서 시오니즘은 필수불가결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연구소에는 이런 역사의 편린 속에 빛나는 이야기들을 캐내는 연구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와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속에서 왜곡되고 와전되는 유대인들에 대한 인식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바꾸려한다. 그들의 작은 노력들이 현재 많은 글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벤구리온 연구소는 이스라엘 네게브 작은 마을의 한 구석에 있다. 벤구리온의 무덤을 끼고 있는 이 작은 연구소는 큰일을 해나가고 있다. 역사의 한 구석을 집요하게 파내고 한 인물을 통해서 이스라엘 그리고 유대인의 사회를 전 세계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연구소가 큰 세계를 상대로 커다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 학문이라는 필드에서 이들은 반유대주의와 싸우고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어려운 싸움을 해 나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현대의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2000년 동안 나라 없던 백성이 다시금 나라를 얻게 되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학문적으로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이 학교는 작은 거인처럼 세상의 학문들과 맞서고 있다. 오늘도 학교의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반유대주의에 맞서는 이 학교와 학생들의 다짐이 더욱 공고해지기를 기도해 본다. 김요셉 목사
  • 2022.09.16

    광야에서 푸르름을 꿈꾼다- 네게브 벤구리온 대학 사막연구소
  • 필자는 현재 이스라엘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 살고 있다. 이스라엘 영토 중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이곳 네게브 사막이다. 네게브에서 가장 큰 도시인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관계가 깊고 그가 브엘세바 인근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은 것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분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실 중 하나는 이 네게브가 성경에서 유다 지파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파이자 이스라엘 지파 중 사자라고 불리는 유다 지파는 가장 척박한 땅인 네게브를 얻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에도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영토분할이 있었고 그 영토 중의 절반이 네게브 광야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유대인들에게 분할한 유엔의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은 이 네게브에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보았다. 독립한 이후 그는 의회에서도 네게브야말로 이스라엘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네게브는 많은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이곳에는 벤구리온의 무덤이 있고 광야를 탐험할 수 있는 체험 학교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별한 이유는 바로 ‘벤구리온 대학 부설 사막 연구소’(Ben-Gurion University of the Negev Jacob Blaustein Institute for Desert Research)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대학이 여럿이 있다.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 하이파의 테크니온 그리고 브엘세바의 벤구리온 대학이 그들 중 하나이다. 특히 벤구리온 대학은 많은 한국 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농업과 의학 그리고 근래는 사이버보안에 대해서 세계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있다. 더 나아가 네게브 광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사막연구소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매년 모이는 국제 사막연구 세미나를 연다. 전 세계의 석학들은 지구 사막화와 함께 그 척박한 땅을 어떻게 해야 발전시키고 농지화 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광야를 푸르게 만드는 것이다. 일 년 중 비가 오는 날이 채 한달도 안 되는 광야에서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일 년 중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작물을 키우는 것은 이스라엘의 겨울에만 작농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연구소는 겨울만이 아니라 일 년 사계절 동안 광야에서 작농이 가능한 농법과 방법들을 연구하고 더 나은 품종과 강한 모종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얻어진 연구는 인근 키부츠와 농장을 통해 실제적으로 활용되고 또 데이터를 얻고 있다. 농장들은 더 나은 농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연구소는 그 농장을 통해 계속적인 데이터를 얻는다. 최근 들어 네게브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와이너리(포도주 농장)이다. 포도를 심어서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이 네게브가 새로이 추진하고 하는 특산물이다. 한 친구가 연구소에서 포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들었다. 척박하고 물이 적은 땅에서 길러지는 포도주는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한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실험적으로 100그루의 포도나무를 심고 나무마다 같은 토양의 조건에서 각기 다른 물의 양과 주는 시간 등을 달리 하고 비료의 분량과 내용물들에 대한 차이 또한 두어서 3년 동안 연구했다고 한다. 얻어진 포도를 분광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포도의 당도를 테스트한 결과 인근 농장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네게브 와인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많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호평받는 맛이 되고 있다. 네게브를 푸르게 만들겠다는 벤구리온의 꿈과 현대 연구자들의 꿈은 직접 네게브를 방문하고 풍경을 보는 이들에게 ‘과연 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 곳 네게브에 사는 이들은 겨울이 되어 비가 내리고 나면 푸르게 변하는 광야를 보고 알고 있다. 네게브가 푸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이 광야를 푸르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을 우리는 믿고 있다. 기적으로 푸르게 만드실 것을 본다. 이곳 사막 연구소에는 수많은 크리스천 학생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동일하게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허락하신 축복과 약속을 바라보고 왔다. 어쩌면 자신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이 땅을 푸르게 하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께서 이 연구소를 통해서도 역사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이 글을 읽고 이스라엘을 찾아오실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이 곳을 방문하여 네게브 광야의 푸르른 미래를 함께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2.08.19

    부와 명예 속에 감춰진 유대인들의 슬픈 역사
  • 세계에서 가장 권위와 명성이 있는 노벨상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상이다.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개인적 명예임과 동시에 국가적 명예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과학기술 등과 같은 분야에 천문학적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1901년부터 2019년까지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노벨상을 받았고 그 가운데 20%가 유대인이었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들의 출신 국가들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민족적 배경은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을 받은 유대인들의 교육법이 궁금해 탈무드나 하부르타 교육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 가운데 이런 수많은 업적을 이룬 이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세계적인 유대인 과학자, 석학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슬픈 역사가 큰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 유대 민족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강대국의 침략과 그로인해 나라 없이 떠돌며 살아온 유랑의 역사다. 그들은 고대 앗수르와 바빌론에 의해 국가가 멸망한 후 제대로 국가로서 세워진 적이 없다. 아주 짧게 하스모니안 왕조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 된 뒤 나라 없이 1900여 년을 떠도는 민족이 되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산하에서 자신들의 삶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바리새인으로 불리는 율법주의자들과 사두개인이라고 불리는 정치적 종교지도자, 열심당으로 불리는 반 제국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후에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주후 132~135년에 있었던 바르코크바 항쟁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땅에서 살 수 없고 쫓겨나게 된다. 유대인들의 항쟁이 지긋지긋하던 로마는 유대인들을 내어 쫓고 그 땅을 다른 민족에게 내어주고 이름도 유대 사마리아에서 팔레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그 이름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온 세상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고 살았고 그 가운데서 종교적 열심이 더욱 충실해지는 사람들과 더 이상 종교에 붙들린 게 아닌 살 길을 찾아 나서게 된 이들로 나뉘게 된다. 이들을 동화파와 반동화파로 불리게 된다. 동화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영주와 타협을 하게 되고 유대적 요소들을 포기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반동화파들은 자신들의 종교성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매순간 박해와 학대 그리고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 기독교의 가장 암흑기였던 시기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온갖 루머와 누명이 있었다. 그들은 이교집단 혹은 마녀사냥으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고 한 마을이 몰살당한 역사도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태생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된다. 무엇이라도 탁월하게 잘하는 분야를 만들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중세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그들에게는 농노가 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천한 직업이었던 백정이나 청소 같은 일이었고 그 당시 금융이라는 것이 아직 발달 되지 않았을 시기에 돈을 만지는 것은 부정하고 사악한 일로 여겼기에 유대인들에게 허락되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재화의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서 이를 다루던 유대인들은 고금리와 환전 그리고 보석을 통한 거래를 통해 그 당시 유럽 안에서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2등 시민이었고 언제든지 밀려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천금 같은 기회들이 찾아온다. 프랑스의 시민혁명 이후 공교육이 사회적으로 크게 보편화 되면서 유대인들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게 된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것들이 폭발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학업 분야에서 그들이 쌓은 부와 재력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해서 유수의 대학들을 지원하거나 세우게 된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예일과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과 유럽의 소르본대학, 본대학 등 많은 학교들이 있다. 이런 대학들 안에서 유대인들을 인재로 키우는데 엄청난 지원을 하고 그 결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 메치니코프, 에를리히 같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탄생하게 됐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중 누구도 유대식 교육법인 하부르타나 탈무드 교육이라는 체계를 가지고 배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그런 책으로 배우는 교육을 배우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삶 속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님들을 통해서 어떻게 사고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그를 교육한 것은 학교이지만 그에게 창의적 사고와 지혜를 갖게 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유대인들의 놀라운 업적과 명예는 그냥 그들의 교육법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온 뼈아픈 역사 속에서 배워온 성경적 지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허락하신 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슬픈 역사 속에서 일궈낸 명예와 부이지만 그 너머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이들이 깨달았으면 한다. 김요셉 목사
  • 2022.07.22

    절기를 대하는 두 시선…두 개의 오순절 풍경
  • 매년 이스라엘은 다양한 절기로 풍성한 즐거움이 있다. 국가적 위기이면서 전 세계적 위기였던 코로나19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절기는 한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빠르게 백신을 보급하고 3차와 4차까지 예방 접종을 실시해 이스라엘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코로나19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유월절이 열려 많은 가정들이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서로 초대하여 풍성한 식탁을 차리고 즐겁게 먹고 마시는 축제를 즐겼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 후 49일이 지난 후 찾아오는 오순절, 샤부옷은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절기이다. 전통적으로 샤부옷(오순절)은 유월절 이후로 오메르(곡식을 세는 단위) 계수를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날이 바로 초실절, 첫 오메르 계수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표현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우리 기독교인이 이해하는 오순절과는 다르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서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이해한다. 오순절은 성령의 절기인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받은 날이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애굽을 탈출해 홍해를 건너고 하나님의 시내산에 이르게 된다. 그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전통 안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날이 유월절로부터 오메르 계수를 하여 50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오순절에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날로서 기념하고 지키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세 개의 절기를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 절기들은 유월절과 칠칠절이라고 하는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 혹은 초막절이라고 불리는 절기들이다. 이 세 절기는 야훼의 절기라고 하며 절대적으로 지켜야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야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출 34:23). 하나님은 이 세 절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반드시 야훼 앞에 경배하러 나와야 한다고 명령하신다. 이 구절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이 구절 하나로 인해서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찾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칠칠절은 하나님의 절기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이런 율법과 전통을 유대인들에게 기억하게 하시고 그분의 역사를 만드셨다. 교회가 기억하는 오순절 성령 사건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오셨다. 제자들이 방언을 시작하자 그 곳에 모여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놀라고 심지어 불편한 나머지 그들이 취했다고도 한 것이다. 오순절 날의 사건은 두 그룹에게 각기 다른 이해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제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물을 보내신 사건이었다면 다른 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술 취한 이들의 행동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서서 열한 사도와 함께 각기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자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서로 다른 관점이 하나의 진실 된 관점으로 통일된 순간이었다. 그로 인해서 복음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놀라운 은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오순절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직 오시지 않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율법만이 부여된 순간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순간인 것이다. 매년 오순절 날이 되면 믿는 유대인들은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축제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시금 믿음의 수확을 해 주시길 바라면서 다시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고 예배한다. 믿지 않은 유대인들은 이미 오신 메시야를 모른 채 아직까지 율법만을 고수하면서 그 율법의 완성이신 예슈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대로 먹을 것을 지키고 오순절 날에는 유제품 음식을 먹으며 이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대 오순절에 대해서 교회는 어떠할까? 나름 개신교라고 하는 이들이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한 순간만 임했던 사건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유대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지속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부어주시고 계시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이제 과거의 사건과 시간에 멈추어지지 않고 약속이 이루어져 성취된 오늘날과 미래를 바로 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약속의 성취와 미래의 소망을 믿는 유대인들처럼 살아야 하고 율법에 얽매여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실 것이다. 김요셉 목사
  • 2022.06.19

    공산주의자 가정에 나타나신 하나님…요셉 슐람 장로 이야기
  • 살아가면서 누구나 스승을 만난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생님을 찾아간다. 학창 시절에는 어렵기만 했던 선생님들이 나이가 들고 보니 존경이 되 찾아가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삶의 터전이 바뀌면서 스승들의 가르침이 내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걸 깨닫는다. 그 가운데 현재 사역에 있어서 큰 방향성을 주신 분은 조용기 목사님이다. 그분의 설교와 책들, 그리고 직접 만나 들은 조언들은 지금도 나의 삶과 사역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와서 인생에 중요한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 메시아닉 공동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시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수많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을 찾아온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외로움과 혼자만의 두려움을 가진 채 이스라엘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서로를 발견하고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공동체들 가운데 네티비아라는 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요셉 슐람 장로님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로서 1969년에 텔아비브에서 시작하여 1982년부터 현재까지 네티비아 성서 아카데미라는 비영리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비영리단체는 이스라엘 메시아닉 공동체 최초로 유대 그리스도인들 스스로 자신들 고유의 장소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메시아닉 공동체들은 교회의 건물을 빌려 썼지만 네티비아는 최초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물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요셉 슐람 장로님을 만나게 되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된 자리에서 장로님은 너무나 흔쾌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고 많은 도전과 가르침을 주었다. 요셉 슐람 장로님(이하 요셉)은 17살 때 복음을 듣게 되었다. 그분의 가정은 철저한 공산주의 가정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공산주의로자로서 이스라엘의 키부츠에 살면서 공산주의적 사고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온 요셉은 종교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삶에 충실했다. 그런 그가 복음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가 살아온 짧은 생애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이었다. 신약성서에 나온 예수의 가르침은 그를 흔들었고 하나님 안에서 예수가 메시야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났다. 복음을 전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를 쫓아내었고 요셉은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는 조지아주의 시골 마을에 있는 기독교 기숙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 후 이스라엘로 돌아와 히브리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보기를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명절이 되어서 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 가운데 그의 어머니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물어왔다. 요셉은 자신은 누구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을 이해하려면 신약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며칠 뒤 어머니가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요셉의 어머니는 그가 건넨 신약성경을 다 읽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의 가르침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한다. 요셉은 어머니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다르지 않음을 설명했다. 예수가 곧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라는 말에 그녀는 놀라워했다. 어머니는 열렬한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의 변화는 곧 아버지와 가족들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켰다. 공산주의자 였던 어머니의 회심은 가족들 모두에게 도전을 주었고 요셉은 가족 모두에게 침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가족들은 여전히 그의 열렬한 후원자이고 지지자이다. 요셉은 매우 뛰어난 지식과 학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성서고고학과 성서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미국으로 넘어가 신약과 화학을 전공한 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유대교 예시바(신학교)에서 3년 반 동안 유대교를 공부하였다. 그가 이런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 때문이었다. 그는 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는가에 대해서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는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이시며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연합을 위함이다. 그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연합되기를 원하신다고 믿는다.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고 살아온 바탕을 뒤집는 것이다. 요셉 장로님은 나에게 도전을 주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나누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에서 사역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유대 공동체 1세대들의 역경과 승리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청난 숫자적 부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서 역동적으로 일하고 계셨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 되고 있다. 그의 뒷모습에서 50여 년을 지켜온 강인한 힘을 보았다. 지쳐있지 않은 강인함. 그런 그의 모습에 도전을 받으면서 예루살렘의 언덕을 내려왔다. 김요셉 목사
  • 2022.05.15

    유월절 전통을 지키는 식탁 교육
  • 이맘때쯤이면 이스라엘은 가장 큰 절기가 시작된다. 바로 야훼의 절기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을 알린 유월절이다. 올해는 4월 15일부터 일주일간이며 이때 이스라엘에서는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교육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탈무드 교육이라든지 하부르타 교육과 같은 유대인식 교육에 관심이 높다. 한국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유대인식 교육은 일반적으로 유대인 신학교라고 하는 예시바의 교육방식이다. 필자의 아들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서는 탈무드를 읽지도 않을뿐더러 성경의 이야기조차 가르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탈무드나 하부르타 이야기보다 ‘후츠파’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후츠파는 일종의 반대를 의미한다. 나보다 더 위의 사람이나 의견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거기에 반박하는 것을 후츠파라고 한다. 이 후츠파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탈무드나 하부르타, 혹은 후츠파와 같은 교육은 모두 집에서 그리고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이스라엘 문화이자 유대인들의 문화이다. 특히 이런 독특한 교육 문화는 이스라엘의 절기 때 이루어지는 식탁 모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유월절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이해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만찬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는 날이다. 이날은 유대인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세상에 드러난 역사적 순간이며 그들이 억압과 박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해 나아간 순간이었다. 성경은 유월절이 포함된 달을 한해의 첫 달로 기념하라고 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성에 대한 것이다. 유월절이 가까워지면 유대인들은 분주해진다. 먼저 그들은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와 곰팡이들을 제거한다. 그리고 부엌과 창고들을 정리하면서 누룩이 들어간 제품들을 모두 꺼내 동네 어귀에서 소각한다. 그날은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 앞에 모여 이스트가 들어간 빵이나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간 과자 그리고 오래된 이스트 등을 불에 넣고 태운다. 재밌는 것은 이런 청소를 하면서 아빠나 엄마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아이들이 부모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청소를 하는 건가요?” 이스라엘 가정의 교육은 모두 질문에서 시작한다. 무엇을? 왜? 어떻게? 언제? 누가? 등의 질문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월절이 시작되면 온 가족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세 시간이 넘는 저녁 모임을 갖는다. 해가 지고 유월절 저녁이 시작되면 집안의 어머니는 두 개의 초를 켜고 아버지는 유월절 기도문을 읽는다. 식탁에서 진행되는 절기 행사는 아이들이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을 알린다.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왜 오늘은 다른 샤밧(안식일)과 다르게 진행되는지를 물어본다. 그러면 아버지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이때 단순히 출애굽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이집트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 사이 사이에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출애굽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테이블에 놓인 세데르(만찬)접시에 놓인 음식들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먹는다. 만찬 식탁에는 전통적으로 7가지 음식과 재료가 놓여 있다. 양의 넓적다리뼈, 두 종류의 쓴 나물, 소금물, 하로셋(사과와 시나몬을 섞은 것 잼같은 것), 달걀, 3장의 맛짜(누룩없는 빵)이다. 이때도 아이들은 그 의미를 물어보게된다. 왜 이것을 먹는지 이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식사 때도 질문과 답변은 끊이지 않는다. 이후 재밌는 놀이가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3장의 맛짜를 준비하는데 그중 한 장을 반으로 쪼개어서 집안 어딘가에 숨겨둔다. 아이들이 반쪽짜리 맛짜를 찾아오면 선물을 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은 맛짜를 찾으러 집안 곳곳을 뒤진다. 이때도 교육이 이루어진다. 왜 이런 전통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반쪽짜리 맛짜를 찾아온 아이에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를 통해서 가르쳐 준다. 현대에 이르러 이런 전통적인 모습을 찾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이런 전통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유월절이야말로 메시아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교육이 식탁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식탁에서의 교육, 그것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닌 교류와 이해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유대인 친구들의 가정에서의 식탁 모임을 보면서 우리는 하부르타나 탈무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 식탁에서 자녀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요셉 목사
  • 2022.04.17

    부림절 … 드러난 반유대주의와 하나님의 일하심
  •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절기는 페사흐(유월절), 샤부옷(오순절, 칠칠절), 수코트(장막절, 초막절)이다. 이 세 절기는 성경에서 언급하는 가장 큰 절기(히브리어로 하그 하가돌)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절기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온 절기중 부림절이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축제다. 매년 2월과 3월 사이에 있는 부림절에 유대인들은 다양한 코스튬과 화장을 하고 거리에 나선다. 이 절기에는 특별히 구제에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보낸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 가장 큰 퍼레이드가 필자가 사는 지역에서 다시 열리게 됐다. 부림절은 성경 에스더서에 언급되는 절기이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의 왕비로 간택되고 자신의 백성들이 멸절당할 위기 앞에서 초연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왕에게 간청해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의 단면에 담긴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안티세미티즘이라고 하는 이 사상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을 배척하거나 절멸하려는 운동과 이념을 뜻한다. 이런 흐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행해진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을 낳았다. 성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반유대주의는 항상 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어린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끌고 가기도 했다. 에스더서는 그런 가운데 바벨론 포로 시기에 있었던 유대인 말살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시 페르시아가 다스리던 지역은 인도에서부터 에티오피아에 이른다. 거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을 광범위하게 차지했으며 다스리던 왕이 아하수에로였다. 그리고 그의 충실한 총리였던 하만은 유대인인 모르드개를 미워하여 그를 죽이고자 그의 종족인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내려온 칙령은 페르시아 전 지역에 전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유대인들에게 죽음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그 끔찍한 명령을 전해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금식하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왕을 만나러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에스더가 얼마나 지혜로웠는지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알 수 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너머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 부르심에 반응하는 가를 보여준 것이 에스더서이다. 홀로코스트 때 수 많은 유대인들은 물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죽어가던 이들은 계속 되물었을 것이다. '어디에 계신가?' 한 유대인의 간증에서 우리는 그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후 종교를 버리고 철학자가 되었다. 그들의 신앙이 자신들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분노감에 휩싸여 맹렬히 비난하기 위해서 철학자가 되었던 그의 마음에 충격을 준 것이 바로 부림절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전에 어렸을 때 들었던 부림절의 이야기와 그 자신이 읽었던 에스더서의 부림절의 이야기가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그는 고통 받는 유대인들 사이에 이미 하나님이 계셨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며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에스더서에서 왜 하나님의 이름이 안 나왔는지를 아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이미 유대인들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언급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부림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림절이 가까워오면 상점들은 커다란 상자들과 물건들을 진열한다. 바로 부림절 코스튬이다. 미국에서는 할로윈 때 코스튬을 입고 가장 행렬이나 축제를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부림절이 바로 이런 날이다. 그러나 할로윈처럼 귀신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과 옷들을 입는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부림절에 코스튬을 입는 것과 가장 행렬을 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6세기 중엽부터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부림절 가장 행렬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가장 행렬과 코스튬을 입는 전통 안에서 필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게됐다. 반유대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살면서 죽음과 미움과 억압의 시간을 버티고 이겨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서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었다. 마치 에스더가 유대인임을 숨기고 왕비에 간택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가 있었다. 모르드개였다. 그런 그에게 닥친 것은 죽음이라는 위협이었고 그 위협을 벗어나게 한 이는 신분을 숨긴 에스더였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드러나 죽음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다시금 민족이 세상 가운데 완전히 드러나게 되고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나게 하신다. 때론 그것이 아픔과 슬픔을 동반하는 진실의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선한 길로 이끌어 가신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김요셉 목사
  • 2022.03.20

    이스라엘의 시작을 이야기하다 … 고난과 박해를 지나서 새로운 땅으로
  • 현대 이스라엘의 탄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는 20세기에 일어난 유대 민족에 대한 박해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는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였고 한 민족에 대한 끝을 알 수 없는 미움과 악의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 결과 현대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아니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20세기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른 채 지나가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상처와 멸시를 받아왔다. 그 결과 20세기에 이르러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사건이 만들어 진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박해이고 하나는 변절이다. 초대 교회가 생겨난 이후 교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고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교회의 중심은 로마로 옮겨졌고, 기독교가 공인 되면서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교회들이 왕성하게 됐다. 기독교의 발전과 더불어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날로 더해져 갔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민족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그들을 향해서 비난과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그 어느 나라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밀려나게 되고 역사 속에서 언제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등장하는 셔일록이라는 상인은 유대인이었고 그는 잔인하고 냉정한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누구도 왜 그가 그렇게 잔인하고 냉정한 수전노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저 유대인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변한 것은 결국 박해와 핍박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슬픈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그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다. 그 가운데 유대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된다. 철저히 종교적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린 이유를 찾으려는 이들과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타협하여 그들 안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한 투쟁과 융합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전자를 우리는 종교 유대인들이라고 칭하고 후자를 세속 유대인들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 둘은 각자의 선택 후 서로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 종교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자신들의 마을을 세우고 종교적 관습과 형태를 유지해 가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욱 종교적 모습에 매달리게 됐다. 세속 유대인들은 도시와 마을에 들어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그들이 사는 나라와 도시 그리고 문화 안에서 동화되어 사는 길을 택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종교적 관습은 남아있지 않았고 그들은 나름대로 프랑스인으로 독일인으로 유럽인으로 사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19세기에 일어난 민족주의 운동은 이런 유대인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12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있었던 중세 암흑기에 마녀 재판과 이단 심판으로 수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고, 19세기에 이르러 또다시 민족주의 운동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20세기에는 나치에 의해서 민족이 말살될 뻔한 위기에 놓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역사 속에서 교회는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가톨릭교회가 있었지만 20세기에 일어난 박해에는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독일의 개신교 교회들도 침묵으로 일관하여 유대인들의 박해를 방조하거나 묵인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이들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놀랍게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국가로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들의 삶의 터전을 위해서 노력해온 벤구리온과 유대기구(Jewish Agency)는 유대인들이 살 수 있는 국가 건설을 위해서 지금의 이스라엘땅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영국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점령 시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 탄생하게 됐다. 19세기 말 유대국가론을 집필했던 테오도르 헤르츨이 보지 못했던 유대 국가의 탄생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그 민족을 향하여 선포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노력해서 되어질 수 있는 일들이 있지만 결국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의 예언 성취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나라가 선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 성경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이 다 선한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함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당했던 고난이 결코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과 독선적인 종교성에서 비롯된 무지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실수마저도 용납하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에 담긴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는 기독교 세계에 있어서 돌아보아야 하는 큰 역사적 사건이며 성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 55:8). 김요셉 목사
  • 2022.02.20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