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24장 1~6절 부활은 가장 위대한 기적 누구든 예수 믿으면 구원 받아 부활의 승리 온 세상 전하며 복된 삶 사는 믿음의 성도 돼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1. 근심하는 인생 안식 후 첫날 주일 이른 새벽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주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주님이 묻힌 무덤에 왔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섬기며 따라왔던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왔을 때 큰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주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눅 24:2~4). 예수님은 여러 차례 자신이 죽은 후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눅 9:22; 마 17:22~23). 여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 채 주님의 시신을 찾으며 근심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 24:5).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막상 문제와 어려움이 닥치면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난에는 의연하다가도 내가 막상 문제를 만나면 근심하며 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절망적인 현실과 문제만을 바라보지 말고 사망 권세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절망의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있느냐!”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근심하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새 힘을 얻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삶 여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근심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말씀을 기억나게 해주었습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눅 24:6~8). 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주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며 어떤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 인생의 길잡이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운전자가 내비게이션만 켜면 목적지까지 안내받는 것처럼 성경 말씀 속에는 우리 인생의 목적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말씀은 우리의 능력이고 생명이며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을 통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을 전하는 삶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대신 절망하며 탄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속히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도망쳤습니다. 반면 여인들은 십자가 곁을 지켰고 주님의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나아왔으며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고 천사가 전해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눅 24:8~9).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눅 24:11).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의 부활과 기적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은 그날 밤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후에야 믿음을 가졌습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했음에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까지 믿지 못했습니다.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주님은 그런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권능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행 1:8).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모든 제자에게 지상명령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 명령을 따라 부활의 승리를 온 세상에 전파하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눈앞의 문제와 어려움으로 근심하며 낙심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부활의 증인 되어서 생명과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하는 복된 삶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4.05

    나귀를 타신 예수님
  •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 6~9절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 위해 십자가 고난 당하셔 그 사랑 기억하고 겸손하며 주님 은혜로 섬김의 삶 살아야 종려주일은 2000년 전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뜻깊은 주일입니다. 주님이 입성하실 때 모든 백성은 겉옷을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이 입성과 함께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인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들처럼 당당하게 말을 타고 호위 군사를 거느리며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어린 나귀 새끼를 택하여 타셨습니다. 이처럼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복된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나귀 새끼를 택하신 예수님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고 낮아진 모습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약 500년 전에 이 일을 예언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당시 세상 왕들은 자기의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기 위해 전쟁 후 돌아올 때 화려한 행렬이 앞뒤로 호위하면서 말을 타고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은 가장 평범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호위 군사도 없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나귀는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짐을 나르고 사람을 태우기도 하는 일상적인 수단이자 겸손과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진 자와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언제나 약자와 평범한 자의 편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평범하고 힘없는 나귀 같은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오실 때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겉옷을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것입니다. 나귀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보고 기뻐하며 박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귀와 같은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 때문에 받는 칭찬과 영광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생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우리는 늘 나귀처럼 겸손히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우리가 예수님께 쓰임 받으려면 주님을 본받아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강한 성격과 고집과 교만은 내 주변에서 사람들을 떠나게 하지만 온유와 겸손은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의 사람들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들 우리가 오늘 기억할 것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통치하는 모든 나라에 군사를 보내서 많은 세금을 거두었고 로마 정권에 아부하는 세리들은 중간에서 더 많은 세금을 물려 가로챘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해방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를 해방해 주신다”라는 구원의 약속을 붙들고 있던 그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 메시야라는 소식에 주님을 로마에서 구원해 줄 왕으로 생각하며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마 21:8). 고대 사회에서 자기 옷을 땅에 펴는 행위는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복종과 충성을 다짐하는 행위였습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복종의 결단이자 전적인 충성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 예후가 왕이 될 때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왕하 9:13). 이스라엘 백성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그 가지를 길에 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당시 유대 나라에서 승리와 해방의 상징이었습니다. 무리는 소리 높여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그들은 ‘로마를 무너뜨릴 메시야가 오셨다’라는 뜻을 담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를 외친 것입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특히 다윗의 자손은 메시야를 상징하는 칭호였기에 백성들은 예수님이 강력한 정치적 메시야가 되어 다윗의 왕권을 회복해 주시기를 갈망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하던 무리들이 닷새 만에 돌변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강력한 힘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해방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성전의 장사꾼을 내쫓으시고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하시며“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자 실망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로마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가 아니라며 마음을 돌렸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성난 군중으로 바뀌었습니다.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 15:12~14).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이 무리들이 우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사소한 일에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우리도 이 무리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고난주간을 보내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져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린 나귀와 같은 우리를 주님이 택하여 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심에 감사드립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닮아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은 우리가 철저히 깨어지고 낮아져서 첫사랑을 회복하고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4~7절 절망은 삶의 끝이 아닌 새로운 희망 향한 과정 마음의 평안 임할 때까지 기도하는 삶 살아야 올해로 106세가 된 김형석 교수님은 장수의 비결로 마음의 평안을 강조하며 그 평안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처럼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평안은 우리의 삶 가운데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날마다 기쁨 충만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1. 기쁨 충만의 신앙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 그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기록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일컬어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데 이 서신들에는 주님이 주신 기쁨이 충만하게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는 자신을 염려하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주님이 주신 기쁨을 전하며 항상 기뻐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삶의 지혜를 담은 잠언에서도 마음의 기쁨,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5:13, 17:22).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마음이 즐겁고 기뻐야 합니다. 모든 병의 근원이 마음의 스트레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얻은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말씀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시 119:92). 고난 중에도 말씀이 기쁨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재물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162).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그러므로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 충만의 신앙 성경은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염려는 염려를 낳고 근심은 근심을 낳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은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와 우리 마음과 육신의 건강을 파괴할 뿐입니다. 기도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문제 속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세상의 소리와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불안이 찾아오고 결국 스스로 무너집니다. 인생의 고난을 만나 마음이 아프고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가 바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이라는 절망적인 현실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욘 2:1~2).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가 매 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대화이자 고백이라면 간구는 간절히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감사는 응답과 기적을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늘 문을 열어 복을 내려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를 체질화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평안이 넘치는 신앙 우리는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의 불안과 초조함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기도할 때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언제나 성령 충만해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마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 평강, 평화, 화평은 모두 같은 의미로,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평안이 우리 마음에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부활하신 주님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메시지도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 21).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무장해 승리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뢰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할 때까지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 주시는 그 평안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22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립보서 2장 13~16절 하나님의 거룩한 꿈과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겸손과 온유의 삶을 통해 넉넉히 이기는 신앙인 돼야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너무 쉽게 부정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정적인 말을 할지라도 거기에 동조하지 말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1.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가게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두 꿈꾸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면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이란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는 이러한 믿음을 가진 5% 미만의 꿈꾸는 사람, 즉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진행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또 받고 또 받으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거룩한 꿈을 꾸며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꿈꾸는 사람,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꿈꾸지 않는 사람이나 부정적인 사람과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서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엡 3:20). 2. 절대 긍정의 믿음의 삶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전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가정과 직장, 이웃 간의 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원망과 불평, 시비와 다툼이 사라져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입만 열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이는 결국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홍해가 가로막았다고 불평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들은 결국 40년 동안 광야를 돌고 돌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긍정적인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요셉 또한 형들에게 팔려 가고 억울한 일을 당해 감옥에 갔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그를 높이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큰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분노와 다툼이 있으면 안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시비하고 다투기보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며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과 외로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겸손과 온유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의 삶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만사형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고 순전한 자가 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습니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1,33~34).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비난하고 공격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죄악 된 세상에 살면서 그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간신히, 겨우, 가까스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고 순전한 자녀로 살아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거룩한 꿈과 소원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긍정과 감사의 고백으로 전진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넉넉히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15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1~5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는 생각이 결국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삶을 무너뜨리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생각은 삶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때 이 세상이 행복한 세상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1.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사랑의 공동체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상처 입은 이들을 사랑으로 위로하고 성령 안에서 깊이 교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빌 2:1~2).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그다음은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우리가 늘 예배드리며 바라보는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결합입니다. 수직선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수평선은 나와 이웃 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상징을 넘어 우리 삶의 모습이 되길 바랍니다. 분열과 다툼, 미움과 갈등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죄짓고 타락시켜 하나님과 분리되게 했고,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가인의 마음에 미움을 집어넣어 살인을 저지르게 했습니다. 그 후 인류는 죄의 뿌리로 인해 끊임없이 다투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약 268년(7.8%)에 불과할 정도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경고합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편 가르기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요 17:21).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며 사랑 안에서 서로를 존중함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뤄가야 합니다. 2. 주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서로를 존중하며 어떤 경우에도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서로 다투지 않으려면 내 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상담의 기본이 경청이듯이 우리가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그 사람은 자기가 존중받고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은 성숙한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더 배웠거나 가졌다는 이유로 남을 무시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힘을 가졌을 때 힘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고, 그 힘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나 중심적으로 살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평생 ‘내가 최고’라고 하는 교만이 우리 삶의 숙제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은 초보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내 속에서 나는 죽고 주님이 존귀케 되시며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택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겸손과 사랑으로 온 세상을 품으셨습니다. 우리가 겸손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우리 마음은 참된 쉼을 얻게 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우리가 주님을 닮아 이웃을 사랑하고 돌볼 때 비로소 주님의 기쁨이 우리 삶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3.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삶 우리가 먼저 주님의 기쁨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일을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4).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학생은 학생으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 사업가는 사업가로, 의사는 의사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이처럼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때 비로소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되고 겸손하게 충성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C. 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목적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처럼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 닮은 모습으로 이웃을 섬길 때 이웃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영적 지도자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나는 죽고 겸손과 사랑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주님의 겸손을 따라 이웃을 섬길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겸손하고 충성되게 주님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오직 주님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3.08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장 15~18절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 가까이 할 때 능력 받고 복음 전하는 증인된 삶 살게 돼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며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후에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성령 안에서 담대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지혜있는 자가 되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5~17).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령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말씀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세상의 부정적인 음성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이 우리의 일생에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살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2. 세월을 아끼라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세월을 아끼라”라는 의미는 헬라어 원문으로는 “기회를 사라”, “기회를 포착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매 순간 하나님의 기회를 붙들어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 90:9). 단 한 번뿐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기 위해서 각자 자리에서 주어진 재능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은 때가 악하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예배가 멀어지게 하는 모든 부정적인 것은 마귀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원망과 불평, 미움과 시기, 질투와 분노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흔들리지 않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악한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입니다. 절대 긍정의 말씀을 붙잡고 보혈의 능력으로 마귀를 대적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해서 전진 또 전진하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은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자제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르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 충만을 받고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와야 합니다.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고 삶의 모든 모습이 달라져야 합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 충만으로 탄생한 교회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 받고 말씀을 선포할 때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38, 41). 또한 예루살렘교회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행 2:44~45). 긍정의 신앙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 처한 이들을 건져내고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며,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사랑이 충만하니까 사람들이 몰려오고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그들은 모이면 합심으로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흩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행 4:31). 모두가 성령 충만을 받아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오직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2.22

    주 안에서 빛이라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에베소서 5장 8~11절 우리가 빛의 자녀 된 것은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 세상에 희망의 빛 전하며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주 안에서 빛이라 성경은 우리를 주 안에서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어둠이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와 허물이 많은 죄인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죄를 지으며 염려와 근심, 걱정과 불안 가운데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절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죄 없고 흠 없으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빛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전 2:9).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는 한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어둠을 밝힐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4~15). 하나님은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기를 원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의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의 빛을, 상처가 있는 곳에 치료와 회복의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열매 맺는 삶 빛의 자녀가 된 우리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우리는 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는 나만 복 받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때 세상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는 의로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의로운 삶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시는 삶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때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 의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마 6:33; 시 1:1~2). 우리가 모든 문제를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우리는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는 경건하고 의로운 것 같이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때 온갖 더러운 죄악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함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든 혼자 있을 때든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행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거짓 입술은 야훼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 12:22).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자녀로서 착함, 의로움,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우리가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 5:10).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의 육신에는 여전히 죄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습관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끊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우리 삶 가운데 있는 모든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우리 인생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사도 바울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건강, 재능을 자기 욕심을 위해 헛되이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이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고난 중에도 기쁨으로 찬양할 수 있고 범사에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빛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2.15

    심령이 새롭게 되어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24절 부정적인 옛 습관 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때 주님 주신 평안 누리며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삶 살게 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그런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노예로 살면서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우리는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옛사람의 모습인 과거와 단절하는 것입니다. 이 과거가 평생 우리를 붙들고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사야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 하지만 마귀는 우리가 죄 가운데 살았던 옛 모습을 기억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많은 사람이 과거에 붙잡혀서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즐겼던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유혹에 빠지기도 하며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분노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런 모습이 있었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옛 모습을 내던져 버려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다스려서 분노하던 모습이 점점 사라져야 합니다. 하루에 열 번 화를 내던 사람이 점차 횟수를 줄여가며 화를 내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옛사람에 붙잡혀 있으면 다시 죄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옛사람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옛사람에게 붙잡혀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절망 그 자체일 뿐입니다. 새사람으로 변화된 우리는 과거에 매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성령 충만을 계속해서 받고 또 받아서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성령으로 충만할 때 고집과 교만으로 굳어진 마음이 깨어지고 우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이 제거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2.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가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24). 세상 풍조를 따라 죄 짓고 불의하고 방탕하게 살던 옛사람의 옷을 내던져 버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우리를 의롭다 만들어 주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마음을 갖고 새롭게 사는 것은 매 순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갑자기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새로워지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될 때는 과감하게 내 뜻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르면 과감하게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어떠한 변화도 다가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받아서 새로워진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된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이고 섬김과 낮아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자리와 높은 지위, 그리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원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가장 많이 가지신 분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아지셨습니다. 모든 권력을 가진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내어주시며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우리는 조금도 손해 보는 인생을 살지 않으려 하고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면 참지 못하고 분노하곤 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짓말하고 화를 내고 남에게 함부로 하던 옛 습관을 다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내 마음속에 주님의 의로우심이 임하고, 죄와 미움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주십니다. 어떤 환난 풍파가 다가와도 마음속이 늘 평안한 ‘샬롬’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그 평안함이 밖으로 나타나 기쁨과 희락이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가 우울하고 괴롭고 낙심하는 것은 아직도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새 사람으로 옷 입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부정적인 모습과 잘못된 모습을 내던져 버리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옛사람의 옷을 입고 살았던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은혜로 옛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길 원합니다. 새 사람을 옷 입고 의와 진리로 무장해 주님의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삶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2.0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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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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