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마태복음 8장 23~27절 거센 인생의 풍랑 앞에 함께 하시는 구원자 예수님 절대 긍정의 믿음 선포하면 풍랑 이기고 승리하게 돼 우리는 지금 혼돈과 불안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재해, 전쟁, 경제적 위기, 질병 등 말세의 징조들이 세상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은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야훼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1. 인생의 풍랑이 다가올 때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마 8:23~24).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인생의 풍랑이 다가오면 마음은 염려와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날 제자들의 배에는 예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고난이 없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성경은 고난은 크리스천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온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때로는 주님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불순종하며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 때는 하나님이 사랑의 채찍으로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인생의 풍랑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 건강을 잃는 극심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도 건강을 잃거나 재정적 어려움, 가족 간의 갈등 등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풍랑을 ‘만나느냐 안 만나느냐’가 아니라 그 풍랑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 익숙한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풍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스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풍랑은 점점 더 거세졌고 배는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습니다(막 4:37). 사람들은 환난을 만나면 누구나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이끄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고쳐주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2. 구원자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가 만난 풍랑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 8:24~25). 큰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은 잠들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기에 풍랑이 다가와도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버티다가 결국 두려움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 보려 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불평하고 남 탓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배에는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선장님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주님은 우리를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거친 풍랑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깨우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깨운다는 것은 간절히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어떤 풍랑 속에 있든지 주님께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로 주님을 깨우기만 하면 그분의 말씀이 풍랑을 잔잔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기도만이 인생의 풍랑을 이기는 길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세상의 방법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배의 노를 내 힘으로 젓기보다 기도의 노를 붙들고 주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때로는 주님이 주무시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과 축복이 반드시 임합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b).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자 주님은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고 곧바로 풍랑은 잠잠해졌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 8:26). 우리 모두 인생의 풍랑 앞에서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자 거센 풍랑이 곧 잠잠해지고 바다는 고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바람과 파도까지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때때로 예상치 못한 풍랑이 몰아칩니다. 사탄은 사람과 환경, 물질을 통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음의 선포를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풍랑을 가져오는 흑암의 권세는 물러갈지어다!” 이 믿음의 고백에 주님은 응답하시고 우리 인생의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과 자녀, 직장과 사업, 육신의 질병까지, 예수님이 “잠잠하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모든 것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할 때 우리 삶에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담대히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8:26). 마가복음에서는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며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지만 풍랑 앞에서는 여전히 두려워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작은 문제 앞에 염려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인생의 풍랑 앞에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절대 긍정의 믿음’입니다. 잠시 인생의 풍랑이 몰아칠 수 있지만 예수님이 명하시면 그 어떤 풍랑도 반드시 잠잠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담대히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과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빠질 때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7.06

    예수님의 절대 지상명령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며 성도가 감당할 하나님의 뜻 성령으로 증인된 삶 살아가며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크리스천이 순종해야 할 절대 지상명령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며 성령의 능력을 받은 성도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선교하는 나라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1. 가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죄와 절망, 질병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함께 예배하는 성도의 모임이자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일 때에는 예배와 기도에 힘쓰고 흩어져서는 전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한 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서 사도들을 제외한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진 그곳에서 오히려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4).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라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담대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고 전도의 길을 나설 때, 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시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와 직장 그리고 온 열방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이념을 넘어서 우리는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의지하고 용기 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제자를 삼으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복음을 받은 이들을 제자로 삼기까지 책임과 열정을 다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a). 오늘날 교회에 신자는 많지만 참된 제자는 적다는 사실을 우리가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예수님이 거룩한 사명을 믿고 맡기실 수 있는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길 소망하며 확고한 믿음의 정체성을 세워나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온 세상에 온전히 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크리스천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우리가 속한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은혜 안에 있기에 더 이상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지배당하거나 이끌려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명의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따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우리는 끊임없이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신앙이 자라지 않으면 환난이 닥칠 때 쉽게 무너지고 상처를 받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믿음을 잃고 세상으로 돌아갈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기력한 신앙에서 벗어나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체계적으로 배우며 암송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은 참된 제자가 되려면 삶 속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말씀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며 점차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사는 제자들이 되어 우리가 받은 은혜를 세상에 전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3. 침례를 베풀라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b). 여기서 침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 새롭게 거듭난 크리스천으로 세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로마 시대에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박해는 10명의 황제를 거치며 약 25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은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흐르는 물가로 나아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위해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다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침례를 받을 때 생명의 위협은 없지만 침례는 여전히 우리의 목숨을 다해 예수님께 충성하고 내 모든 삶을 그분께 드리겠다는 믿음의 고백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로마 제국의 크리스천들은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랜 박해가 마침내 끝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며 로마를 변화시킨 결과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당시 로마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8%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단 8%만이 온전히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 한 나라가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곳곳에 위험과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기에 맡은 사명을 다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연약했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그들과 동행하시며 모든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우리가 복음을 들고 제자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마 28:20).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권세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죄와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29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스더 4장 13~16절)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말씀과 기도로 나아갈 때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이 실패를 승리의 길로 이끄셔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며 지금도 하나님은 세계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구약 에스더서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뒤 페르시아 땅에 흩어져 살던 유다 백성이 직면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온 절망적 상황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했고 남유다 또한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했습니다. 이후 남유다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하며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사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바사 곧 페르시아 제국은 아하수에로 왕 통치시대에 세력이 더욱 확장되어 애굽에서 인도까지 127개 지방을 관할하는 최대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은 즉위 3년에 자기 명을 거역한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전국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그중에서 왕비를 뽑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 포로로 끌려와 살고 있던 유대인 에스더가 수많은 후보자 가운데 새 왕비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에 2:16~17). 에스더는 일찍 부모를 잃은 고아였으나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그녀를 딸처럼 키웠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의 왕궁 문 앞에서 일하는 신하였습니다(에 3:2).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을 모든 대신들보다 높이고 백성들에게 그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라고 명령했는데, 하나님만 섬기던 모르드개는 왕의 명령일지라도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분노한 하만은 유대인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도록 왕의 허락을 받아 조서를 전국에 반포했습니다(에 3:13~14).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전멸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크리스천이 핍박과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릎 꿇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모르드개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믿음을 굳건히 지켰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고 살아가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2. 기도와 결단의 신앙 왕의 조서가 전국 각처에 전달되어 유다 민족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온 유대인은 애통하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에 4:3).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저리 뛰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전갈을 보내어 왕 앞에 나아가 유다 민족을 위해 간청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아가는 자는 왕이 금 규를 내밀지 않는 한 곧바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에 4:11). 그럼에도 에스더는 유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 3일간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5~16). 이처럼 믿음은 결단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여 문제 앞에서 망설인다면 어떤 일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갈 때 기적이 임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절망의 상황을 희망과 축복으로 바꾸는 능력은 기도에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의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우리가 문제 앞에서 에스더와 같이 결사 각오의 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3.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에스더가 예복을 갖추어 입고 왕궁 뜰에 서자 아하수에로 왕은 그녀를 기쁘게 맞이하며 금 규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에 5:2~3). 에스더는 자신의 요청을 곧바로 말하지 않고 지혜롭게 왕과 하만을 연회에 초청합니다. 기분 좋게 연회에 다녀온 아하수에로 왕은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역대 일기를 가져오게 하여 읽다가 마침 왕을 암살하려던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해 막았던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를 높이기 위해 왕복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워 성중 거리를 돌게 하며 그가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백성들 앞에서 공표하게 합니다. 왕이 모르드개의 충성과 왕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알게 된 것은 에스더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더와 유다 민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모든 일을 친히 주관하신 것입니다. 에스더는 두 번째 연회 자리에서 왕에게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유다 민족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며 그들을 말살할 음모를 꾸민 자가 하만임을 폭로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에스더의 소원대로 유다 민족을 구원해 주었고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준비한 장대에 자신이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에 7:10). 하만이 유대인을 멸하려고 정한 아달월 13일은 오히려 유다 민족을 치려고 하던 자들이 멸망한 날이 되었고, 그다음 날은 ‘부림절’이라 불리며 유대인들 사이에 오늘날까지 기쁨의 축제로 지켜지게 되었습니다(에 9:31). 하나님은 절망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꾸셨고 실패처럼 보인 상황을 승리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동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 때때로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 모든 문제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27

    그의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언 8장 30~31절) 하나님 곁에 머물며 숙련된 창조자의 자세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감당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 끼쳐야 사랑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줍니다. 이처럼 삶의 근원이 되는 참된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이자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은 사랑의 하나님 곁에 머물며 그분과 깊은 교제 가운데 동행할 때 시작됩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잠 8:30a). 우리가 하나님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믿음으로 결단하며 하나님을 붙들면 주님은 평생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앞길을 친히 인도해 주십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야훼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6).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곁을 떠나 멀어지게 되면 다시 죄를 짓고 방황하는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믿음의 주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회복시켜 주신 본래의 형상대로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창조적 삶을 누리게 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또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신 그 은혜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곁에 머물며 그분의 뜻을 따라 세상 가운데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 가야 합니다. 2. 창조자가 되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창조자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잠 8:30b). ‘창조자’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몬’인데, 이를 성경 원어의 의미로 풀어보면 어떤 일을 능숙하게 감당하는 숙련된 기술자 또는 장인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장인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에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뤄가야 합니다. 절망이 가득한 곳에는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는 기쁨을, 원망과 불평이 들리는 곳에는 감사와 찬송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숙련된 기술자가 되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사업가는 사업장에서, 예술가, 교육자, 의료인, 정치인 등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나 절망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인생에서 지나가는 한 과정일 뿐 우리를 멈추게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과거를 되짚으며 실패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후회하고 주저앉습니다. 과거의 실패를 아무리 되돌아본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성공의 자리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과거에 매여서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나 미래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이전의 아픈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희망의 내일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밝고 찬란한 미래를 향해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숙련된 창조자의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그의 기뻐하신 바 되었으며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신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 8:30c).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가 삶 속에서 감당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자 곧 하나님의 일입니다. 아무리 작고 평범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재능으로 이를 감당할 때, 그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찬양과 기도뿐만이 아니라 일터에서의 수고도, 가정에서의 섬김도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칭찬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침례를 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크리스천의 삶은 자기 욕심과 탐욕을 쫓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죄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존경하고 칭찬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며 소외된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면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전해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잘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상에 전하라는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허물을 덮어주시고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무엇보다 사랑은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낙심되는 상황을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은혜와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 91:14).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하나님의 곁에 머물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 속에 맡겨진 모든 일을 믿음으로 성실히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15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1~13절)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주시는 평안 누리고 진심으로 주님께 기도하면 거룩한 꿈과 소망 얻게 돼 세상에는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두 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1.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평안 성경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평안이라고 말씀합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오늘날 세상은 불안과 근심, 염려로 가득하기에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안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는 참된 평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평안을 얻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근심과 고통에 빠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죄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평안을 구하려고 애쓰는 대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평안을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또한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예수님이 주신 평안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늘 성령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평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위대한 사도인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도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우리의 인격과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평안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고 예수님이 주신 평안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평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인정하시며 도우신다는 믿음의 확신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시 4:8).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며,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와 희망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함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멸망을 앞둔 절망의 때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낙심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비록 눈앞의 현실은 고난과 슬픔만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지금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로 이끄시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절망은 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눈앞의 문제만 바라보고 쉽게 좌절하며 절망합니다. 이는 어둡고 부정적인 세상에 익숙해져서 불안을 견디고 이겨낼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들은 무속에 기대어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불안을 더욱 깊게 만들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참된 꿈과 희망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눈앞의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믿으며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승리와 축복을 주시고 기적의 내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세상이 절망과 어둠을 이야기할지라도 우리는 희망과 미래를 선포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보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이 세상의 시간표라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시간표입니다. 고난의 저녁이 지나가면 희망의 새벽, 축복의 새벽, 기적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와 희망을 품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렘 29:12).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듯이 우리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 중에도, 평안할 때도, 외롭고 지치거나 병들었을 때도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크고 은밀한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야훼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시 3:4).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 인생에 고난의 밤이 지나가고 희망의 새벽이 밝아올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평안과 희망임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다가오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와 씨름하거나 사람을 찾기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형편과 처지를 보고 안타깝게 여길 수 있지만 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할 때까지 계속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평안 가운데 하나님이 거룩한 꿈과 소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 모든 문제를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꿈과 소망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불안과 염려, 근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안과 미래의 소망을 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함으로써 놀라운 응답과 기적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 안에서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우리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08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지도자
  •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시편 72편 1~7절 세계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십자가 신앙 위에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무장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창조적 소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크리스천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1. 공의로운 지도자 하나님은 공의로운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공의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시 72:1). 하나님은 악을 멸하시고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인정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 가운데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의 자리에 오르고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습니다(왕상 3:5). 이에 솔로몬은 듣는 마음 곧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솔로몬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분별력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까지도 함께 허락하셨습니다(왕상 3:12-13). 지도자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기준 삼아 모든 일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해야 하고, 겸손히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공의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시 72:2~3). 우리는 선한 일을 이루는 데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기를 소망하며,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약한 자의 편에 서는 지도자 세상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자 앞에 줄을 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0~11).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울 때, 이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우리 삶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3~4).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시 72:5).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하시며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야훼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1, 23).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힘썼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우리 역시 바울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3대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처럼 예수님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이를 채워줌으로써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위에 평안과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시 72:6). 서로를 격려하고 용서하며 화합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평화를 가져오는 지도자 오늘날 세상은 전쟁과 기근, 각종 재난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합니다. 우리나라 또한 분열과 갈등 속에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한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참된 평화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만이 분열과 상처로 얼룩진 이 시대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정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길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입니다. 이 땅 가운데 평화를 이룰 사명을 품은 크리스천과 지도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시 72:3, 7) 극심한 분열과 갈등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이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유하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불안과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우리도 세상에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대로 세상을 섬기는 영적인 지도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01

    일어나서 함께 가자
  •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아가 2장 10~12, 15절 고난의 시간 겪을 때 하나님 뜻 잘 분별해 뜨거운 사랑 회복하고 선한 영향력 나타내야 우리의 신앙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믿음의 주시며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 아가서는 이 믿음의 여정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비유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 말씀합니다. 1.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인 교회와 성도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은 솔로몬 왕입니다. 그는 많은 여인 중에서 술람미 여인을 특별히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이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우리를 사랑하시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에서 일하느라 햇볕에 그을려 얼굴이 검게 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솔로몬 왕은 그녀를 택하여 매우 사랑했습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6).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에 겉모습이 햇볕에 그을려 검게 되었어도 자신의 내면은 왕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아 1:5).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하는 대신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품고 긍정적인 자화상을 세워가야 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때로는 삶이 절망스럽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하여 절망과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에게 다가오는 희망의 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고난의 겨울이 지나가면 축복의 봄이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떤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는 곧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문제는 응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11~12).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병까지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아 2:5).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겨울과 같은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듯한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고난의 겨울을 겪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강하게 훈련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우리 삶 속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서 죄의 모습을 제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겨울이 찾아왔다고 해서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기로 결단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기쁨의 꽃과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아 2:13).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전진하며 희망의 봄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여우 같은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라 포도원을 망치는 주범은 곰이나 사자와 같은 큰 맹수가 아니라 몰래 나타나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고 도망가는 작은 여우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 우리의 신앙에도 은혜와 기쁨을 앗아가는 작은 여우들이 찾아옵니다. 영혼에 해를 가져오는 작은 여우, 곧 불신앙의 요소들을 우리는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큰 죄를 범할 때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리지만 사소해 보이는 죄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사라지고 받은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며 예배의 열정마저 식어버렸다면 이는 이미 ‘작은 여우’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왔다는 신호입니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거짓말, 말씀에 대한 불순종, 영적 나태함,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 부정적인 생각, 쉽게 화내는 태도, 남을 헐뜯고 비판하는 것, 다투고 분열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작은 여우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작은 잘못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만 자기 잘못은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경고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 중에 그리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숨겨진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점검하고 작은 죄까지 철저히 회개하며 모든 불신앙의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앙과 사랑의 관계를 해치는 어떤 모습도 우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날마다 믿음 안에서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삶의 중심이며 전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마음과 영혼에 품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능히 이겨내고 우리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늘 우리와 동행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인생에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찾아와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일어나 믿음으로 전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 안에 불신앙의 요소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5.25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장 20~22절 교회는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구원의 방주이자 축복의 통로입니다. 또한 교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교회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우리는 교회 안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의 터 위에 세워지는 일이 없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기 뜻을 앞세우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이들은 교회 안에 분열과 갈등을 불러오며 파벌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섬김의 자리로 주어진 직분을 권력으로 오해해 도리어 성도들에게 섬김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모습들을 경계하고 우리의 신앙에서 멀리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는 섬김의 마음으로 무장한 성도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사랑과 기쁨, 감사로 서로를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안에 충만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이며 온 인류의 참된 희망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나님은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높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교회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 2:21). 성전의 벽과 기둥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것 같이,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겸손, 온유,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하나 됨은 성령의 역사이며 분열하고 나뉘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서로 마음이 갈라져 다투고 갈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깊은 상처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손에 쥔 모든 비난의 돌을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서로를 품어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우리의 얼굴에 눈, 코, 입이 있고 또 손과 발이 있어 하나의 몸을 구성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며 하나의 교회로서 공동체를 이룹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모든 지체가 조화롭게 협력할 때 몸이 제대로 기능하듯 우리도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교회를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가야 합니다. 때로는 교회가 계획하며 준비한 일들이 내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목표라면 기꺼이 뜻을 모아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며 교회를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엡 4:2~3). 우리가 하나 됨의 본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기뻐하심으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3. 날마다 성장하는 교회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날마다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완전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날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날마다 성숙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이웃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인격과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면 복음 앞에서 굳게 닫혀 있던 마음들이 열리고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명령 곧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복음 증거와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과거 유럽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유럽 각국은 부강한 나라가 되어 복음 증거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이후 복음의 열정이 미국으로 옮겨 심어지면서 미국은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시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복음 증거의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 한 나라가 부강해지고 진정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부흥을 일으키는 주역이요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우리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고 복음 증거의 열정으로 부흥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부르시고 사랑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맡겨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길 원합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이 세대에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25.05.18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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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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