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영적 갈급함의 은혜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42편 1~2절 하나님을 갈망할 때 모든 문제 해결 받고 주님의 도우심 간구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우리는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영혼의 갈급함과 마음의 우울함으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갈급함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참된 쉼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1. 하나님을 갈망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 영혼의 갈망을 채울 수 없고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온 산을 뛰어다니듯 우리 영혼도 날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하나님만이 자신의 피난처와 복이 되심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야훼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 16:1~2).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도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2~13).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통곡의 눈물을 흘리시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2, 44).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찾고 갈망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 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라 우리는 때때로 극한 절망과 고난 가운데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우리의 삶에 고난과 어려움, 문제를 만났을 때 세상의 소리와 사람들의 말, 과거의 실패와 상처가 들려주는 부정적인 음성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가장 필요한 때에 응답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절망과 문제, 슬픔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일어서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라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깊은 절망 가운데 마음이 무너지고 삶의 의욕과 기쁨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시 22:14~15). 다윗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1~2).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말 못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신 평안함을 노래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3). 절망 가운데 있던 다윗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 힘을 얻자 두려움이 떠나가고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야훼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시 18:18~19).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선포할 때 절망과 외로움,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시 18:29).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주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시 100:4). 날마다 주님의 치료와 회복을 사모하며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새 힘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문제를 만나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며 간구할 때 우리를 만나 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27

    회개의 열매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장 17절 예수님께 삶의 초점 맞추고 회개하며 변화된 인생 살면 믿음의 열매 풍성히 맺고 성령 충만한 은혜 누리게 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로 가득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이 있는 존재인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을 뉘우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을 때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예수님 안에 거하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은혜 가운데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주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주님이 우리를 택하고 부르셔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주님께 집중하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아온 것이 있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때때로 우리 삶의 초점이 흐려져 세상의 유혹에 한눈을 팔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바로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내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다시 예수님께로 돌이켜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베드로는 풍랑이 이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물 위를 걷던 그는 거센 바람을 바라보자 두려워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문제와 절망과 유혹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 거하며 그분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2. 말과 마음이 일치하라 예수님 당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예수님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교만과 외식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마 23:3). 우리도 이처럼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뜻과 생각을 앞세우고, 말씀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말과 마음이 일치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삶에서 돌이켜 실제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회개한다고 말하고 다시 잘못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며 잠시 뉘우친 것일 뿐입니다. 뉘우침과 회개는 다릅니다. 참된 회개는 말에 그치지 않고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잘못된 것을 끊어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더 이상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거나 붙잡혀 있지 말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말뿐 아니라 마음과 삶까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 앞에 바로 서라 하나님의 보좌는 의와 공의 위에 세워져 있으며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의’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올바르고 흠 없으신 분이심을 뜻하고, ‘공의’는 의로우심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셔서 공의의 심판을 내리시며 회개하고 돌이키는 주님의 자녀를 인자와 긍휼로 대하십니다. 바울도 먼저 자신을 살피고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1~32).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흠이 된 모든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늘 예수님 안에 거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해 주시니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27

    산당을 제거한 히스기야 왕
  •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훼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열왕기하 18장 3~4절 우리 삶의 ‘우상’ 내려놓고 날마다 하나님 은혜 기억하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갈 때 복 받고 나누는 삶 살게 돼 이 세상에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주야로 묵상합니다. 열왕기를 보면 많은 선한 왕들이 우상을 없앴지만 산당까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우상과 산당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우리도 악한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선하고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1. 산당을 없애지 못한 이유 이스라엘의 왕들이 산당을 없애지 못한 이유는 백성들이 편리함과 익숙함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지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의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그들이 섬기던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의 음란한 제사 풍습이 혼합되어 이스라엘의 산당 예배는 우상숭배와 타락의 온상이 됩니다(사 65:7). 이후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었음에도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보다 자신들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산당에서 타협하며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당시에 백성 대부분이 편리함에 빠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왕들도 이를 쉽게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에서 응답하신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그의 백성들이 와서 예배드리며 그곳에서 홀로 영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왕상 9:3).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가장 순수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산당 제사의 가장 큰 문제는 종교 혼합주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우상숭배 방식과 타락한 종교 풍습으로 예배하는 일에 전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타협적인 신앙의 모습은 신앙의 순수성을 무너뜨리며 정성껏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도록 만듭니다. 남 왕국 유다의 선한 왕으로 평가받은 여덟 명 중에 오직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 두 사람만이 모든 우상과 산당을 없애는 개혁을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산당의 문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상과 산당을 단호하게 제거했습니다(왕하 18:3~4). 요시야 왕도 산당의 제사장들을 폐하고 산당을 모두 허물었습니다(왕하 23:5, 8).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타협한 모든 죄의 모습을 내려놓고 참되게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산당 오늘날 우리에게도 ‘자기만족’이라는 산당이 있습니다. 예배의 기준이 자기의 감정이 된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맞으면 기쁘고 감사하지만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섭섭하고 시험에 드는 것이 산당 예배의 모습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교회를 삶의 중심에 두기보다 내가 편한 대로 주님을 섬기려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처음 은혜받았을 때처럼 매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며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더불어 내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크리스천이기에 제직이기에 오래전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족’이라는 산당을 세워놓은 예배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며 원망 불평하고 있다면 우리 속에 산당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설교가 내 마음에 들 때만 은혜받았다고 여기거나 나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모습 역시 ‘자기만족’을 중심에 둔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자기만족’의 신앙을 철저히 버리고 이제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께만 영광 돌리는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께 예배드린 것처럼 ‘자기만족’의 신앙을 버리고 예수님만 높이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산당 대신에 세워져야 할 성전 우리 삶에서 모든 산당을 제거했다면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중심의 신앙에서 예수님 중심, 성전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 삶의 전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과 산당을 모두 제거했듯이 우리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이 우리의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지위, 권세, 부귀, 자녀, 사업까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하셨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 이삭이 그에게 우상이 되지 않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치고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창 22:11~12). 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7~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복을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모든 우상과 자기만족의 산당을 제거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갈 때 모든 복을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님 제일주의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집착하며 우상 삼았던 모든 것과 자기만족의 예배 모습을 버리길 원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제일주의의 삶으로 은혜 누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3

    아사 왕의 개혁
  •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야훼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야훼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열왕기상 15장 11~15절 죄악과 타협하지 않고 모든 우상 과감히 제거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되면 삶에 형통의 복 채워주셔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의 삶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남유다 아사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우상을 제거하고 나라를 개혁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삶을 날마다 돌아보며 죄악된 모습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 아사 왕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야훼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곧 ‘코람데오’를 마음에 품고 유다 백성 가운데 우상과 죄악을 제거하며 선을 행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야훼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 14:2).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거짓과 악과 타협하며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죄의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죄의 유혹에 끌려가지만 죄의 유혹을 단호히 차단해야 합니다. 나쁜 것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과 악과 손을 잡으면 결국 파멸의 길로 가게 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은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린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교만에 빠져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반면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기에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 우리가 잘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잘되고 형통하고 칭찬받을 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아사 왕은 다윗 왕의 길을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유다에서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 삶을 형통의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남색하는 자와 우상을 없앰 아사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를 일삼던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고 조상들이 만든 우상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왕상 15:12).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말씀에 어긋나는 죄악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과감하게 제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도록 창조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2~24).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고 왜곡된 욕망을 따랐습니다. 당시 유다 땅에 있던 ‘남색하는 자들’은 이방 종교와 관련된 성적 행위를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죄악을 결코 방치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가증한 물건들을 제거하고 야훼의 제단을 다시 세웠습니다.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야훼의 낭실 앞에 있는 야훼의 제단을 재건하고”(대하 15:8). 우리 삶에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면 물질이 우상이 되고, 권력이나 명예, 인기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면 삶을 무너뜨리는 영적 걸림돌이 됩니다. 아사 왕처럼 삶에 잘못된 것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개혁에 문제가 되는 가족도 정리함 아사 왕은 개혁의 과정에서 우상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가족의 문제도 단호하게 정리했습니다. 태후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들자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습니다.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왕상 15:13). 그의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와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나라에 있는 산당을 모두 제거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사 왕의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 온전했다고 평가합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야훼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야훼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왕상 15:14~15). 우리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우상을 내려놓고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어 떤 이유로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맡겨진 곳에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아사 왕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해도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하나님보다 앞세우고 사랑했던 모든 우상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026.09.11

    응답하시는 하나님
  •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야훼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열왕기상 18장 36~38절 우리 앞에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하면 주님이 우리 기도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셔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문제와 깊은 절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문제만 바라보거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유일하신 하나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기에 앞서 먼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수축하되”(왕상 18:30). 엘리야가 무너진 야훼의 제단을 수축한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먼저 주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하나님은 온 인류의 유일하신 하나님이며 구원자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찬양과 영광과 경배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며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 경고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징계받을 때 잠시 돌이켰다가 다시 우상의 길로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우상이 있습니다. 돈과 물질, 권력과 명예, 인기와 성공의 우상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우상은 ‘나’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과 뜻을 앞세우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사 55:7).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내려놓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2.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 종의 삶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을 ‘주의 종’이라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우리는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동시에 주님의 종입니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인생이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자 주님의 종인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꿈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각자의 자리에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종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과 헌신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주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님의 뜻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어려움과 절망도 이겨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이 다가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내게 응답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야훼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야훼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 18:37). 엘리야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핥았습니다(왕상 18:38).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주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렘 33:3). 응답이 더디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응답 되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엎드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야훼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야훼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 18:39).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과 멀어졌다면 이제는 돌이켜 처음 은혜받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망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세상의 우상을 찾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기도의 사람, 순종의 사람, 말씀의 사람으로 귀하게 쓰임받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함께하시며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보다 앞세웠던 것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23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 여러분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소망을 잃고 마른 뼈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26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깊은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사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마른 뼈를 보게 하셨습니다. 1. 마른 뼈 인생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겔 37:1∼2).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며 각종 중독과 고통에 빠져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예배와 신앙생활이 습관과 형식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도 영적으로 마른 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섬기기보다 비판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의 촛대를 친히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 2:5). 우리가 하나님과 어디에서부터 멀어졌는지 돌아보고 마음을 찢어 회개하면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요엘 선지자는 말씀합니다(욜 2:13).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다시 처음 사랑과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2. 주님의 권능 마른 뼈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에스겔 역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 믿음으로 구했으면 환경과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포를 통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 날마다 전진 또 전진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의 역사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자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이 생기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겔 37:7). 그러나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기를 향해 대언하자 하나님의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와 그들에게 들어갔고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겔 37:9~10). 이 생기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성령께서 바람같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 세워져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영적인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6.08.21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 6장 19~23절 고난 중에 기도하고 절망 중에 감사할 때 우리 삶에 희망 가득차고 하나님 주신 축복 받게 돼 하나님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으며 사람이 세운 나라와 권세는 때가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새로운 제국으로 세워진 것처럼 역사의 모든 흐름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섬기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다니엘은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한 뒤 왕의 신임을 받아 포로에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습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단 2:48).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존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은 벨사살 왕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고 나라를 바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며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단 5:4). 그 결과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제국의 바사 다리오 왕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120명의 고관을 세우고 그들을 감독할 세 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이미 여든이 넘은 고령이었지만 탁월한 지혜를 인정받아 세 총리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온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단 6:3). 하나님은 시대와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시고 높이셔서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다니엘을 붙드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십니다. 환경이나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기보다 하나님만 신뢰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무리들 하나님의 사람이 쓰임받을 때 이를 시기하고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고 높은 위치에 오르자 고관들과 총리들은 그를 시기하며 어떻게든 끌어내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충성된 다니엘에게서 그들은 아무 허물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우리도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할 때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비방으로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또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바사의 고관들은 신실한 다니엘의 신앙을 빌미로 삼아 왕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단 6:7). 그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서 해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다리오 왕은 이를 모른 채 금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을 기억하시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3. 기도의 사람 다니엘 다니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그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롬 14:8).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니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도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길 바랍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이유로 참소하는 자들에 의해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실한 믿음을 잘 알고 있었던 다리오 왕은 밤새 금식하며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단 6:18~20). 하나님은 왕의 바람처럼 기도하는 다니엘을 보시고 이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고, 그의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단 6:24).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 때 악인의 세력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1:6).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늘 지키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니엘처럼 기도와 감사를 잃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자를 지키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09

    참 평안
  •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열왕기하 4장 25~26절 고난의 때 낙심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감사와 은혜의 삶 누리게 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힘써야 할 일 중 하나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쁘고 평안한 마음은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하지만 근심은 삶을 메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절망적 현실을 만난 여인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이 만난 절망적인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늦은 나이에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왕하 4:16). 그러나 기적처럼 찾아온 아들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평생의 기쁨이었던 아들을 잃은 여인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질병, 실패, 배신 등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너진 그때 주저앉아 낙심하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결국 그 원인이 자신임을 안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습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 속에서 요나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깊은 물이 그를 영혼까지 에워쌌지만 요나는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구원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했습니다(욘 2:5, 9).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로 내보내셨습니다(욘 2:10).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성경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절망의 때나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앙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왕하 4:27~28). 여인은 아이를 엘리사가 머물던 방 침상에 눕혀 둔 뒤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발을 안고 엎드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여인의 사연을 들은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먼저 보냈습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왕하 4:29). 다른 일에는 눈길도 주지 말고 오직 아이에게로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게하시가 명령대로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왕하 4:31). 그럼에도 수넴 여인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왕하 4:30).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 주님 곁에, 교회 곁에, 주의 종 곁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절망을 기적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왕하 4:35).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집에 이르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아이 위에 엎드리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배경에는 수넴 여인의 절대 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왕하 4:26). 엘리사는 급히 달려오는 여인을 멀리서 보고 큰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여 게하시에게 그 안부를 묻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평안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심을 믿었기에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평안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나 문제를 만났어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갖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평안이 올 때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날마다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환난과 고통이 다가와도 마음을 지키며 문제보다 크신 주님께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살리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역사하셔서 날마다 주님의 평안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0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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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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