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근심
  •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장 8~10절) 세상 근심은 절망에 빠지게 해 절대긍정 절대감사는 승리의 길 영적으로 깨어 기도, 회개하면 주님 주시는 위로 소망 얻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기치 않은 문제와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염려하고 근심하는 대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마음의 평안함도 선물로 주십니다. 1.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 근심 고린도는 무역과 상업이 매우 발달했지만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음란했으며 도덕적으로 부패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때 이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눈물로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헌신했습니다. 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바울은 교회를 견고히 만든 후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선교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안에 파벌이 생겨 성도 간에 서로 갈등하고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들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소식은 바울에게 전해졌고 바울은 근심하며 그들을 강하게 책망하는 서신을 두 차례 보냈습니다. 이때 바울이 보낸 서신이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두 종류의 근심 중 세상이 가져다주는 근심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립니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할 뿐입니다(잠 17:22). 다윗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내용을 보면 마음의 근심이 얼마나 그의 육신까지도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시 22:14~15). 문제는 이렇게 염려와 근심으로 고난의 밤을 지나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근심과 절망에서 누가 우리를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셔서 우리를 모든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절망에 처한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제 예수님께 나아가 세상이 가져다주는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염려하며 살지 마십시오. 오직 마음을 지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마음으로 세상의 근심을 이기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7:9). 이렇게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거룩한 근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통해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돌이키는 거룩한 근심을 해야 합니다. 다윗도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거룩한 근심을 하며 엎드린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시 38:17~18). 다윗처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거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근심으로 몸부림치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근심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 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늘 살펴보며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일을 할 때 거룩한 근심이 생겨나게 되고 이 근심으로 인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가지신 하나님은 우리를 늘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용서하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사 42:3). 죄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상처와 아픔을 사랑으로 싸매시고 치료해주시는 것입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그러므로 거룩한 근심이 생길 때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위로하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근심은 우리를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거룩한 근심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장차 하나님이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은 3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목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목사님은 매일 이렇게 기도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바른 것을 분별하는 지혜와 바른 것을 실천하는 용기와 바른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바르게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붙드시고 위로하셨기에 목사님은 목회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고 마무리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어떤 환난과 문제가 다가와도 거룩한 근심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면 우리에게 넘치도록 위로와 새 힘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이 맡기신 귀한 일들을 잘 감당하게 하십니다. 이런 경험이 삶 속에 가득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3~5). 그러므로 이제 세상 근심으로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을 이겨내고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 문제로 근심하지 않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마음으로 문제를 이겨내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거룩한 근심만 허락하사 우리에게 회개와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흐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9.10

    존귀한 자
  •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이사야 32장 8절) 우리는 주님께 택함받은 존귀한 자 임을 깨닫고 거룩한 꿈꾸고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살아야 세상의 많은 사람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술, 마약, 도박과 게임 같은 것들에 중독이 되거나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존귀한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을 대신 내어주시고 구원해주실 만큼 존귀한 자라는 정체성을 깨닫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존귀한 자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존귀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사 32:8).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나를 지으신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은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지명해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이며 감사할 내용입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영원 전부터 예정하시고 지명해 부르셔서 구속해 주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2). 그러므로 어떤 환난과 시험도 우리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해치지도 못합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십시오. 죄와 절망의 노예로 살던 우리를 하나님의 택함 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늘 마음에 새기십시오(벧전 2:9).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날마다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존귀한 일을 계획함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꿈꾸고 계획하며 믿음으로 전진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사 32:8).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연약하고 실수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존귀한 일을 꿈꾸고 계획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찬란한 미래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기뻐하시며 그에게 풍성하게 상을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러므로 지금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 삶의 문제와 상처를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존귀한 일에 서 있음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에 서 있어야 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사 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이 넘쳐나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을 알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비참한 지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존귀한 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성경 속 인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적으로 긴장하고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는 존귀한 자, 복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세 가지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첫째, 복 있는 사람은 절대로 악인들의 생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자신을 비롯해 남을 상처 입히고 절망에 빠뜨리는 생각,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죄인들의 잘못된 삶의 방향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셋째, 죄인들의 길에 서면 안 됩니다. 죄악 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들을 가볍게 여기고 악인들과 같이 살아가면 하나님께 심판과 책망을 받습니다. “악인들은 …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4~6). 그러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편 1편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낮이나 밤이나 늘 묵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성령으로 충만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형통의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단해야 합니다. 악인들과 같이 죄악 된 길을 걷다가 하나님께 심판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존귀한 자답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시겠습니까? 한평생 주님의 손에 붙들려 존귀한 자로, 존귀한 일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2023.09.03

    예수님께 묻지 아니하고
  •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야훼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여호수아 9장 14~15절) 인생의 큰 결정의 시간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 날마다 승리의 삶 살아야 모든 사람은 평생 배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단지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켜 행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신앙도 퇴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교훈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여호수아를 속인 기브온 주민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에 이어 아이 성까지 함락시키자 가나안에 살던 기브온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꾀를 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평화조약을 맺기 위해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꾸몄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수 9:3~6).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를 속이기 위해 곰팡이 난 떡, 포도주가 담긴 낡은 부대, 낡은 옷과 신발을 보여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수 9:12~13).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기브온 주민들의 겉모습만 보고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거짓을 일삼는 사람과 교제하면 우리 삶에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진실한 신앙인과의 교제는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도록 돕기 때문에 그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나 만나지 말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여 진실한 신앙인을 만나야 합니다. 2.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한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그들과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야훼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4~15). 여호수아는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가나안 주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수 9:16). 여호수아의 성급함은 결국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삶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도 실수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과의 전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과의 전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과 물건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로 묻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음에도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크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아간을 심판하고 교만했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한 후에야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스라엘이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마귀의 교묘한 속임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늘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크든 작든 성급히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았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 그러므로 이제 매 순간 가장 먼저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 말씀을 통해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영적 교만은 문제를 가져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브온 주민과 조약을 맺고 난 후에 큰 갈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수 9:18). 평화조약으로 인해 가나안 족속을 모두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게 된 백성들이 족장들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족장들의 경솔함으로 인해 내부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교회 지도자의 경솔한 결정은 교회에 갈등을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쓰임 받아야 합니다. 둘째, 남을 속이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수 9:22~23). 기브온 주민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속인 결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대대로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힘들고 궂은일을 담당해야만 했습니다. 셋째, 어떤 일이든 먼저 하나님께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듣고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 여의도에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여의도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커서 성전 건축과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기 목사님은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순종했고 결국 여의도에 성전을 건축해 이전했습니다. 이후 우리 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종종 실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이런 일들을 가감 없이 기록한 것은 그 실수를 통해 우리가 교훈 얻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사람의 음성을 듣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매 순간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8.27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태복음 8장 14~17절) 죄와 사망에 놓인 우리를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신 예수님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할 때 모든 질병 고치시고 자유함 주셔 이 세상에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통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누워있는 베드로 장모의 손을 붙잡으셨고 그 순간 그녀의 열병이 떠나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이 기적의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이 귀신 들린 사람과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모든 병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1. 죄 사함과 치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의 죽음, 환경의 저주, 육신의 질병과 사망이라는 삼중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삼중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형벌을 받는 삶에서 축복받는 삶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든 문제와 질병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중요한 것은 죄를 용서받고 질병을 치료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성전에서 병자를 다시 만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요 5:14). 병 고침을 받기 전에도 죄를 멀리해야 하지만 병 고침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아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열병이 떠나감 예수님은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열병으로 앓아누운 그의 장모의 손을 붙드셨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우리도 베드로의 장모처럼 크고 작은 열병을 앓습니다. 그리고 그 열병은 전염병처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열병은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면 가족 전체가 감염되듯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와 마음을 점령하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를 부정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은 자살위험을 최고 66배까지 높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살사망자의 89%가 정신과 질환 진단을 받았거나 질환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20대 우울증 환자가 5년 사이 127%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2021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보다 우울증 등의 이유로 자살한 사람의 수가 8000명이나 더 많았다는 사실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이 얼마나 전염되기 쉬운 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질병을 치료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의 병이 다가올 때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모든 병의 치료자이신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 장모의 손을 붙들고 그녀를 치료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들 때 그 순간 우리는 우울증, 불면증, 노이로제, 각종 정신질환과 같은 마음의 병에서 깨끗하게 치료받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귀신을 쫓아내심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후에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마 8:16).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각종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탐욕, 음란, 미움, 분노,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영, 참소하는 영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우리는 이런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온 귀신들도 쫓아내 주십니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이 무덤 사이에서 살던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 그의 안에는 ‘군대’라고 불리는 수많은 귀신이 들어가 있었고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도 그를 쉽게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막 5:9). 그러나 군대 귀신도 예수님의 명령에 저항하거나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그 사람 안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때 귀신이 곧 떠나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 안에 들어갔고 돼지들은 물에 빠져 몰사했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은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정으로 돌아가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선한 일을 행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많은 병을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어떤 질병도, 어떤 마음의 병도 고침을 받을 수 있고 고통을 주는 마귀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에만 머무는 분이 아니라 현재에도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하시며 역사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그러므로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를 통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질병과 고통이 다가올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을 모두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8.2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장 9~10절) 내게 있는 연약함으로 주님의 능력 나타내고 넘치는 은혜 주시므로 참된 자유 누리게 돼 사람은 평생 온갖 갈등과 대립 속에서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원인이 외부의 환경보다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것이 수시로 삶의 수면 위로 올라와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그에게도 고질적인 질병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세 차례나 간구했지만 주님은 바울의 질병을 고쳐주시는 대신 바울에게 이미 주신 은혜가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9). 바울에게 질병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진리를 깨달은 바울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질병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은혜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우리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면 영혼의 참된 만족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평생을 부모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을 탓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산다고 해서 마음의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후에는 자신의 질병과 고난을 문제로 보지 않고 신앙의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자신에게 있는 어려움이 자신을 교만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도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를 절대긍정의 눈으로 바라볼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평생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무장할 때 모든 문제가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 함이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지금’ 우리에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은혜가 충만한지 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바울은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주님을 늘 의지했기에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약함조차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바울과는 반대로 자신의 약점에 붙잡혀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문제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당당하게 살지 못합니다. 사실 자신이 약점처럼 생각하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에게는 그것이 핸디캡이 되어 마음이 편치 않고 그것에 눌려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과거의 내가 불행했다고 해서 현재의 나까지도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해서 상처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상처와 실패와 절망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것이 되었습니다. 가슴을 펴십시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열등감 속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절망의 종, 상처의 종, 실패의 종이 되지 말고 새롭게 변화된 자신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깨어지고 낮아져 겸손하게 되고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고난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이후에 다가오는 주님의 은혜를 더 크게 체험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깨닫고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억울했을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바울이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을 때 감옥이 흔들리고 손과 발에 매인 것이 다 풀어졌던 것처럼 우리도 절망과 고난 중에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면 하나님이 우리가 갇힌 절망과 고난의 감옥을 흔들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를 억압하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임한 은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죄수들이 탈옥한 줄 알고 자결하려던 간수를 말린 후에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1~32). 바울이 체험한 은혜와 기적은 복음 전파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간수와 그의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환난은 축복의 전주곡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다가와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위대한 선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망을 품고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우리의 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약함을 바라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이겨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8.13

    손을 내밀라
  •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마가복음 3장 1~6절 손 마른 자 같은 신앙이라도 회개하고 첫사랑 회복해 믿음으로 주께 손 내밀어 기적과 은혜 체험해야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절망 중에 몸부림치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가 진열된 책장을 보면 무기력, 우울, 공허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가운데 어떻게 자기 마음을 지킬 수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가득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마음의 문제를 두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적절한 조언이나 훌륭한 의학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진정한 치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1. 회당 안에 손 마른 사람 예수님이 공생애 가운데 회당 안에서 손이 말라 있던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는 공관복음, 즉 마태·마가· 누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건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 예배당에 모이듯 예수님은 안식일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회당 안에 들어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손이 마비되어 말라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은 그 말라 있던 손이 오른손이었다고 기록합니다(눅 6:6). 오른손은 성경 속에서 의롭고 바른 손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런데 오른손이 말라버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그 사람의 손이 불능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심령이 메말라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몸은 예배당 안에 있을지라도,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메말라버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회당 안에 손 마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상태, 곧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바로 못 서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신앙의 열정과 기쁨, 감사가 사라질 때 더욱 심해집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이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실 때 그들이 첫사랑을 잃은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오늘날 우리는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지만 회당 안의 손 마른 사람처럼 기쁨 없이, 감격 없이, 메마른 영적 상태로 오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잘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고 돌이켜 영적인 생명력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2.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사람 손 마른 사람이 있었던 그 회당 안에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책잡아 고발하려 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날은 안식일이었기에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안식일에 주님이 병을 고치시는지를 주목했다가 이를 고발의 근거로 삼고자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눅 6:7).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예배 외에 그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기서 안식일의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죄의 혐의를 씌우고자 하는 악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그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지’를 엿본 행동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영혼을 그 병으로부터 해방하는 행위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예수님의 치유를 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책잡으려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들의 신앙을 이끄는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오늘날로 바꿔 말하면 교회 지도자 역할을 하는 제직들의 신앙과 삶이 올바르지 못하고 도리어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나아가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들이 된 형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이제 막 신앙에 발을 들인 초신자나 평신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여러 직책을 맡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기쁨과 겸손의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의 행동을 책잡고자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오히려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막 3:3). 그리고는 사람들을 향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 것 중 무엇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막 3:4). 사실 예수님의 질문은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도 쉬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고발할 근거만 찾고 있던 이들은 이런 단순한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해 탄식하시며 그들이 입술로 대답하지 못한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 3:5). 예수님께 안식일보다 중요한 것은 손이 메말라 생기를 잃어버린 한 영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네 손을 내밀라” 말씀하셨습니다. 손 마른 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손을 내밀자 그 손이 곧 회복되었습니다. 메마른 영혼과 굳어진 마음, 병든 몸을 전인적으로 회복시켜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선을 실천하시는 분, 우리 구주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우리의 메마른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의 갈급한 영혼, 무미건조한 심령, 말라 힘없게 된 육신을 주님께 내어드리면 주님이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한 번뿐인 인생,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께 손을 내미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선하신 예수님이 가장 복된 길, 형통한 길,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우리의 메마른 손을 주님께 내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8.06

    나는 누구인가?
  •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이사야 41장 8~9절) 마귀의 종이었던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주인 되신 주님과 동행하며 기도와 감사의 삶 살아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나와 하나님의 올바른 관계를 다음 세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종은 주인의 뜻에 무조건 순종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늘 충성해야 합니다. 자기 의지와 뜻, 자신의 소유 없이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이 베푸는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악한 마귀의 종으로서 죄와 질병, 가난과 저주 아래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된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 41:9). 그러나 이러한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우리는 때때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과 어긋난 길을 갈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의 죄를 짓고 하나님께 심판받아 전쟁에 패배하고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자식이 잘못하고 부모의 속을 썩여도 변함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자식 사랑보다 더 큽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14).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외면하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가장 좋은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뜻이 내 뜻이고, 주님의 일이 내 일입니다. 철저히 주님이 명령하시는 일, 주님이 기뻐하는 일만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택한 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민족보다 특별하거나 잘난 것이 있어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허물투성이였고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세계 만민 가운데 아주 작은 민족이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무조건적으로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야훼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야훼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10:15).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나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죄의 노예로 살고 있던 우리를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절대감사와 절대긍정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친구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 하나님과의 교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와 찬양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하나님은 친구인 우리와 동행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사 41:8)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표현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의 후손들에게도 변함없이 주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이고,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 한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로, 하나님의 친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종으로, 택한 자로, 친구로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일평생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7.30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시편 62편 5~8절) 우리나라는 이번 장마와 국지성 호우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재산 피해를 크게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재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 파괴로 비롯된 지구 온난화가 급격한 기후 변화를 일으켜서 폭우, 폭설, 폭염, 가뭄 등의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문제도 심각합니다. 오늘날 사회에는 거짓 뉴스, 마약, 도박, 동성애 등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들이 난무하는데,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도 없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찬양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합니다. 1.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는 상황은 너무도 괴롭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1, 5)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고백한 것은 그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서 ‘잠잠히’라는 말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어려운 순간을 마주할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거나, 절망하고 불평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해결해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야훼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 33:20),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우리도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망, 불평,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감사의 고백을 드리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문제의 해결자 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모든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2. 나의 소망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우리 삶에 소망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냈던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 62:6~7).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하는 견고하면서도 영원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많은 사람이 살면서 어려움이 다가오면 건강, 지식, 부, 명예, 인맥 등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견고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은 것을 의지하는 삶은 요동치는 바다 위에 있는 배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의 고백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이시며 모든 대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산성 되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께 나아가 모든 문제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주님을 의지했던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야훼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0~11).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 그 누구에게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어떤 적이 공격해와도 마침내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옥에서 절망할 법도 한데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서 그들은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수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난과 절망이 다가와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환난이 홍수처럼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를 승리와 축복과 평안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시시로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다윗은 고난의 때에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이처럼 우리는 고난의 때에 주님께 엎드려 마음을 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즉시 응답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합니다. 백성들에게 기도하라고 권면했던 다윗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1~2).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심각한 위기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과 같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 받을 응답을 확신하며 다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21).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던 다윗은 기도를 통해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때에 그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온갖 역경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지은 시를 보면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4~5). 다윗처럼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간절히 부르짖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도 우리를 지키고 돌보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잠잠히 구원의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3.07.2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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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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