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두려워하지 말라
  •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이사야 41장 14~16절)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고난이 희망으로 변화되고 승리하는 삶 살게 돼 현재 우리는 마치 폭풍 속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듯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a)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깊은 어둠 속에서 빛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무가치하고 연약한 인생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사 41:14a)라고 부르셨습니다. ‘버러지’는 개역한글판 성경에서 ‘지렁이’로, 영어 성경에서는 ‘worm’(벌레 또는 지렁이)으로 번역되었으며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방 땅에서 포로가 된 그들은 지렁이처럼 힘없고 소망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모습과도 유사합니다. 죄 가운데 살던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하나님께 심판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시고 부르셔서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성경은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4~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때로는 지렁이같이 무가치하고 연약하게 느껴질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놀라운 은혜를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후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인생의 여러 문제로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사 41:14b)라고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1~2, 7~8). 하나님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돌봐주십니다. 우리 삶에 온갖 고난이 닥쳐와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모든 고난을 이길 새 힘을 주십니다. 또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시험을 몸소 겪으신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우리의 슬픔, 아픔, 고통, 외로움, 절망을 누구보다 깊이 아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은 지렁이처럼 연약한 우리를 홀로 두지 않고 늘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내려놓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를 능력의 사람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십니다.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사 41:15). 타작기는 알곡을 걸러내고 쭉정이는 다 잘라내는 농기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만드셔서 산과 같은 모든 문제를 깨뜨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마침내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무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네가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네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야훼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주께 돌리리라”(미 4:13). 하나님은 우리를 능력의 사람으로 세우셔서 어떤 문제와 대적이 닥쳐와도 능히 이기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야훼의 말이니라”(렘 1:18~19).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37). 어떤 문제와 고난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버러지처럼 연약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던 우리를 사랑으로 택하시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1.12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리스도와 하나 될 때 꿈꾸고 소원한 일 이뤄지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2025년 축복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날들에 고통과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으로 희망의 내일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한 해를 향해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앙 우리가 신앙과 삶 가운데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고후 5:17a). 우리가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여 인생을 헤쳐 나가려고 하면 문제와 어려움과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심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160회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이 평생토록 예수님과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체험했던 수많은 기적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우리가 꿈꾸고 소원한 일들이 예수님의 뜻 안에서 완전해져서 우리의 일생이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흘러넘쳐 예수님의 선한 영향력을 우리의 이웃에게도 끼치게 됩니다. 성경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요 15:5a)라고 말씀합니다. 포도나무가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우리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하나님은 연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를 사용하여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2. 이전 것을 버리는 신앙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과거의 기억입니다. 실제로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붙잡혀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패와 배신의 경험들 버려지고 배신당한 경험들은 우리를 옭아매어 미움과 분노, 증오 속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고후 5:17c)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과거의 기억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과 회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거에 붙잡혀 사는 삶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쓴 뿌리와 실패, 배신의 경험이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 모두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찬송가 337장의 고백처럼 우리의 모든 시험과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면 주님이 근심에 싸인 우리를 돌보시고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과거가 짐처럼 무겁게 느껴질 때 예수님께 그 짐을 맡기십시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과거의 늪에 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우리 대신 그 짐을 져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의 고통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과거의 상처에 묶여 있는 분이 있다면 눈을 들어 예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바라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우리는 절대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아픈 과거는 더 이상 나를 얽매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기적의 내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우리는 한때 죄와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있던 옛 사람이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3. 새롭게 변화된 존재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사람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c).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상처에 머무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의 약속을 주시며 우리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우리를 위해 거친 광야에 시온의 대로를 열어주시고 메마른 사막 같은 땅에 은혜의 강물을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삶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하나님의 새 일을 경험하려면 먼저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3~24). 이러한 변화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변화된 심령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위대한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을 통해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꿈과 소망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가슴에 품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품은 꿈이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신하며 나아갈 때 그 믿음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 과거의 절망과 고통 그리고 아픔을 모두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정복해 나가는 순복음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정적인 과거는 십자가 아래 모두 내려놓고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길 원합니다. 새해에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1.05

    우리의 결산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데살로니가전서 1장 2~4절) 예수님께 시선 고정하고 감사로 새해를 시작할 때 세상에 선한 영향력 끼치며 하나님께 기쁨되는 삶 살게 돼 교회는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구원의 방주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인 주님의 몸이자 세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온 지역에 믿음의 본이 된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람에게 칭찬받는 모습으로 지내왔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믿음의 결산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믿는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7). 데살로니가 교회는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주변의 모든 교회가 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전에 우상을 숭배했던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살전 1:9).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할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모든 삶의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행함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힘을 잃고 맙니다. 결국 그런 믿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 17).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린 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주변을 섬기지 못하고 크리스천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머리와 가슴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삶이 변화되면 그 변화는 우리 삶에만 그치지 않고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능력이 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거듭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귀한 통로로 쓰임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사랑의 결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의 ‘사랑의 수고’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 바울이 말한 ‘수고’는 육체적으로 피로를 느낄 만큼 고된 일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을 힘써 실천하며 이웃을 향한 헌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이를 가장 완전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고 구원의 문을 여신 헌신적 사랑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병자와 굶주린 자, 나그네, 과부와 고아를 돌보기 위해 가난한 형편에도 구제에 힘썼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교회의 본이 되고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우리 것을 이웃과 나누고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처럼 이웃에게 사랑의 수고와 섬김을 아끼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소망의 결산 우리는 한 해의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의 소망을 결산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데살로니가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이방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가정, 일터,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핍박을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러한 환난 속에서도 소망의 인내를 잊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로마 시대의 기독교 박해는 네로 황제 시기인 AD 60년경에 시작되어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약 25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던져지거나 불에 타서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처형을 면하더라도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도시에서 추방되는 등 극심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변치 않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면 우리는 인생의 모든 시련과 환난을 이기며 믿음의 시험들로부터 견딜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거룩한 소망을 품고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우리의 믿음 생활에는 항상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해도 전도의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이웃과 가족에게 핍박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인내로 하나님의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반드시 우리로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는 우리의 참된 소망 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고 새해를 시작합시다. 우리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선을 행하고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위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의 본을 따라 살아가길 원합니다. 새해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2.29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Ⅳ)
  •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 3~6절, 9절 온유와 겸손을 가지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사랑·화해·용서함으로 거룩한 사명 감당해야 오늘날 세상은 여전히 갈등과 혼란 속에 놓여 있고 많은 사람이 참된 정의와 평화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류의 희망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1. 공의로 심판하시는 예수님 공의로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사 11:3). 공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고자 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을 바탕으로 사역하셨기에 세상을 외형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었습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사 11:4). 사람은 누군가를 처음 볼 때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처럼 당시 멸시받고 천대받던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제자를 선택하실 때도 평범하고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외모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인정받고 그분의 은혜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따라 온유와 겸손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면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서의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군사적 영웅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의 의를 회복하실 공의로운 재판장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 우상숭배와 탐심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로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도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회칠한 무덤과 같아 그 안에 더러운 죄성이 가득했습니다(마 23:27). 결국 그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공의의 심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불의와 탐욕과 거짓이 떠나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구원이란 곧 의의 회복입니다.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던 우리를 예수님의 보혈로 덮어 변화시키시고 의롭게 변화된 사람으로 만드시는 놀라운 은혜가 바로 구원의 역사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우리가 의롭게 살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겸손히 예수님과 동행할 때,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넘치는 평안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참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야훼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예수님이 공의로 통치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샬롬’ 즉 평화입니다. 이처럼 서로를 향한 이해와 배려가 가득한 사회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평화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여전히 미움과 다툼, 전쟁과 폭력, 불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든 악의 근원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의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세상에 갈등을 불러오고, 마귀는 이를 틈타서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도록 유혹합니다. 요즘 신문과 뉴스를 살펴보면 세상은 끊임없는 혼란과 폭력, 살인과 전쟁의 소식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렇게 죄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고통과 불안에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를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없는 참된 평화의 나라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용서를 받은 우리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를 버리고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를 힘입어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 우리가 마음에 있는 모든 미움과 아픔을 내려놓고 용서의 삶을 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이 가져오신 평화를 세상에 전해야 할 우리의 거룩한 사명을 마음에 되새깁니다.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온전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며 용서함으로써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용서, 평화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 가운데 살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의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합당한 의의 모습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한평생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안과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2.22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Ⅲ)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장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 최대의 기적이자 기쁨 감사와 순종의 삶 통해 성령 충만한 성도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적이자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절망 가운데 살아가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과 메시야이신 예수님 위에 성령이 강림하실 것에 대한 예고의 말씀입니다. 1. 지혜와 총명이 임하신 예수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지혜와 총명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의 위에 야훼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사 11:2).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눅 1:35), 침례를 받으실 때는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마 3:16).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보여주신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신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십니다. 지혜와 총명은 통치자와 지도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입니다. 지혜란 정확한 판단력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며 최선의 행동을 끌어내는 자질이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총명은 지적 통찰력이자 이해력이며 인간관계에서 옳은 일을 행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눅 4:14~15). 성령은 지혜의 영이시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성령의 지혜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체험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이 예수님과 함께하셨기에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었습니다.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여 세상을 분별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모략과 재능의 영으로 오신 예수님 성령은 예수님에게 모략과 재능의 영으로 임하셨습니다.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모략은 지혜로운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요 재능은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모략과 재능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계획을 세우셨고 이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략과 재능으로 죄와 절망에 눌린 모든 자가 자유를 얻게 하시고 그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오늘날에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마귀를 쫓아내고 모든 착한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큰 능력을 얻게 됩니다. 곧 성령이 주시는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권능은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로 ‘두나미스’인데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폭발적인 힘을 가진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성령은 폭발적인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이는 우리가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 힘으로는 이룰 수 없던 하나님의 어떤 사명도 우리는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 받기를 사모하고 이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도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은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지식과 야훼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이 지식은 우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도록 이끕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이끄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가 야훼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사 11:3).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일평생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신 성령이 우리 안에도 와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우리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중심의 삶을 살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예전엔 자기의 뜻과 생각에 집착하며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것과 자기 소유를 늘리는 일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지를 고민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정하시고 형통의 복을 채워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평생의 기쁨으로 여기고 감사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예수님 믿게 하시며 구원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참된 기쁨으로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2.15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Ⅱ)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장 6~7절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야 이사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9장은 이 땅에 참된 생명과 기쁨을 가져오실 메시야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이사야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사 9:6a).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메시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인류의 모든 죄와 저주, 질병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이었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9~10). 우리는 위대한 승리자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떤 절망과 어려움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모든 환난 속에서도 넉넉히 이길 힘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는 연약하고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과 함께하면 우리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다윗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고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2.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오신 예수님 우리 주 예수님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사 9:6b).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표현은 ‘영원하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며 부모님이 자녀에게 베푸시는 것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우리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죄인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의 삶 속에 과거의 실패와 절망, 상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하여 주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는 그리스도가 영존하시는 것처럼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영생을 얻은 새 피조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늘 마음에 되새기고, 절대 긍정의 믿음을 품고 절대 감사의 고백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시 72:17). 영존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복 받은 삶을 살게 하시고 장차 천국에서도 영원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께 날마다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수많은 문제와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c). 이사야서 말씀에 나오는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샬롬’입니다. 이 ‘샬롬’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평강, 평화, 화평, 평안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강과 평화의 왕이시며 우리에게 화평과 평안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이렇게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오신 우리 예수님 앞에 이 땅의 모든 미움과 갈등, 재난과 전쟁은 무릎 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십자가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채로 한 손을 뻗어 하나님의 손을 붙드시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인간의 손을 붙드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신 것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모든 담도 허무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3~1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기억하며 하나 됨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아가 분열과 반목,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여전히 지구촌에는 전쟁과 다툼이 그치지 않고 있지만 예수님이 장차 가져오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직 사랑과 평화, 하나님의 공의가 흐르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시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언제나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하며 화목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쓰임 받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2.08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Ⅰ)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장 6절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 4주 동안 예수님의 성탄절과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대림절이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이 땅에 오셨고,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밝히 보여줍니다. 1.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 죄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사 9:6a).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을 대신할 피의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동물들이 인간을 대신해 피 흘려 죽어야 했는데, 이러한 제사는 일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셨으나, 그와 동시에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고 사랑으로 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2. 우리의 통치자 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통치자로 오셨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사 9:6b). 새번역 성경은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더 쉽게 번역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마치시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신앙이란 천지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고, 그분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삶에 문제와 어려움이 많은 이유는, 여전히 내 힘으로 삶을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통치자로 모시고 내 삶을 온전히 그분께 맡길 때, 예수님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도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위대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을 기쁨과 평안으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살기 때문입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만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인생을 예수님이 통치하시도록 내어 맡기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형통해질 것입니다. 3. 놀라운 상담자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상담자이자 조언자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사 9:6c). 새번역 성경은 이 말씀을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외로운 인생길을 걷는 우리와 동행해 주시고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십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오늘날의 많은 사람, 특별히 청소년의 고충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이에게는 놀라운 상담자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모든 아픔을 아뢰면 예수님이 위로하시고 용기와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상담자이신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의 고충을 들으시는 것을 넘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족 및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 초대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혼인 잔치는 일주일간 열렸는데, 잔치가 진행되는 중에 중요한 음식인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알아차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찾아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하셨고,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채운 후 다시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요 2:7~8).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항아리에 부었던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문제를 아뢰니 예수님은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위대한 상담자가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며 살아갈 때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무가치했던 인생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으로 변화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날마다 인정하며,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2.01

    성공이란 무엇인가?
  •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훼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야훼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장 1~3절 우리의 능력으로는 삶의 모든 문제 해결 못해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께 인도받고 인정받는 삶 누구나 성공을 꿈꿉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며, 더 많은 명예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성공으로 보일지 모르나 크리스천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1. 인간의 길과 하나님의 뜻 사람이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할지라도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훼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 16:1). 인생에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인간의 길을 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길을 가는 길에서 역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의 삶 위에 하나님의 뜻을 세우십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야훼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요셉은 하나님을 따르는 길 위에서 역경을 극복한 후 하나님의 세워주심을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7세의 요셉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수시로 꿈을 꾸며 그 꿈을 가족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7). 요셉이 꾼 꿈의 내용은 그가 크게 성공하여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다가온 현실은 그가 꾼 꿈과 정반대였습니다. 자신의 꿈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에게 시기를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노예의 신분이었음에도 열심히 일해 주인에게 인정받고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이후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 요셉은 감옥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30세의 나이에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가 되어 13년 전 꾸었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창 41:40~41).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야훼시니라”(잠 16:9).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향하신 뜻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2. 우리의 심령을 살피시는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살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야훼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2).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에게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남들의 시선에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지를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부족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복된 사람입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권력자들을 찾아가 인사하고 선물을 보내곤 합니다. 유력한 사람의 연줄에 닿기 위해 다양한 수를 동원합니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이 없듯이 10년 가는 권세도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늘 바뀌는 법이고, 사람의 위세는 언젠가는 꺾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하고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다스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시면 우리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면 우리 일생은 형통하게 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4~5).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에 의해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맡기는 삶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 인생을 감당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우리의 능력으로는 개인의 문제, 자녀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야말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삶이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말씀에서 우리는 ‘먼저’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함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신앙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신앙입니다. 입술의 고백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신앙입니다. 나의 고집, 교만, 미움, 불신앙의 모습을 십자가 밑에 모두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롭게 태어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역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꿈을 품고 나아가는 길 가운데 고통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을 기억하시고, 그의 심령을 헤아리시며 그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마음에 새기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제 삶을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11.2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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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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