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요약본
일어나라
  •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5장 41~43절) 절대 절망의 자리에서 주님 음성듣고 일어나면 절대 긍정의 믿음 얻고 복된 삶을 살게 돼 모든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절망과 씨름하고 고통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절망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절망은 축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1. 절망에 처한 인간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의 회당장이었던 야이로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 5:22~23). 야이로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금했기에 예수님을 찾아가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외동딸이 곧 죽어가는 긴급한 상황이 되자 어떤 비난도 각오하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그는 신분이나 체면, 자존심 같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야이로처럼 절망적인 문제나 어려움을 만나면 예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딸을 고쳐달라는 야이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녀를 고치시기 위해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다가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 5:25~28). 이 여인은 열두 해 동안 하혈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병이 즉시 나았고 이 사실을 아신 예수님은 그녀를 찾으셨습니다.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렸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 예수님은 지금도 혈루증 여인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면 예수님은 그 믿음에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혈루증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야이로의 집에서 그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막 5:35). 이처럼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해도 상황이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악화되거나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더욱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능히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절대 절망의 문제 속에서 우리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서 우리 삶의 모든 절망이 물러가는 기적이 임할 것입니다. 2. 믿음의 전진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속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막 5:36).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망적인 문제나 심각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흔들림 없이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절대 절망 속에서 눈을 감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 5:41). 이에 예수님의 사랑의 손, 치료의 손에 붙들린 그 아이는 곧 일어나 걷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은 큰 놀라움에 휩싸였습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막 5:42). 오늘날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삼중 저주를 받은 이후 모든 사람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등감과 비교 의식으로 인해 늘 어두운 마음을 품고 있거나, 과거의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평생을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죽어있는 모든 사람은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영적 죽음의 환경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질병과 저주, 절망이 떠나가고 우리는 믿음의 승리자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38년 동안이나 절망의 자리에 누워있던 병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가끔 천사가 내려와 연못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병자는 혼자 힘으로는 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절망만이 가득했고 그의 마음과 육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곧 생명의 능력이 되어 절망에 사로잡힌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셨고, 그는 육신의 병에서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실패의 자리에 누워있다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으로 변화된다는 믿음을 붙들고 늘 힘차게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비추게 하실 것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아직 절망 속에 살고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모든 죄와 불신앙을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새것과 같이 깨끗이 하여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말씀을 붙들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절망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복된 삶을 살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29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창세기 28장 1~5절) 갈등과 상처의 인생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의지해 은혜와 축복의 삶 살아야 인생의 많은 문제 중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특히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족 간의 갈등은 인간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가족 간 갈등을 겪은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동생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 이 일로 형제간의 갈등이 깊어져 에서는 야곱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1. 아버지의 기도와 당부 기도의 사람인 아버지 이삭은 야곱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 28:1~2). 기도하는 부모 아래 자라는 자녀는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녀의 일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녀가 평생토록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자녀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축복의 기도를 해 준 이삭은 야곱에게 반드시 믿음의 가정을 이루라는 중요한 당부를 남겼습니다. 이를 위해 이방 여인 중에서 아내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 가운데서 아내를 택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함께 교제하며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평생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안 한 자녀가 앞으로 배우자를 택할 때 무엇보다 믿음 생활을 철저히 하고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권면하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과 교제하는 것은 배우자 선택에만 국한되지 않고 친구 관계나 직장,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사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 성격이 굽어진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남에 대해 험담을 잘하는 사람, 불신앙의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들의 태도에 상처받고, 그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생관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남의 축복을 받고자 기도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품 좋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은혜의 삶을 누려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께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해달라고 구하는 동시에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믿음 있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른 이들이 존경하고 따를 만한 믿음의 본을 보이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2. 복 주시는 하나님 이삭은 야곱의 일생을 책임지시고 복 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뿐임을 축복의 기도를 통해 분명히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창 28:3).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세상의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을 빼앗거나 복 주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이 성취됨으로 그를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창 17:1~2).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부어주시며 우리의 삶을 그분의 은혜 가운데 친히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나는 하나님께 복 받은 인생입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믿음을 인정받으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복이 임하여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복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죄를 짓기 전의 모든 인류에게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이 땅에서 믿음의 백성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자녀를 낳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저출생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지금, 자녀를 낳아 건강하게 양육하는 일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모든 가정이 하나님의 복에 대한 큰 믿음을 갖고 많은 자녀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이삭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손자인 야곱과 그 후손도 함께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창세기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이 복을 이미 다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께 복 받은 인생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그분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우리가 과거에 어떤 절망을 겪었더라도, 이제 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저주받은 인생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고후 5:17).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처럼 우리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뜻에 두고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복 받은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이 예비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복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나누는 삶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되게 하옵소서.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22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2장 1~5절 신앙생활이란 천국에 이르는 날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써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갑니다. 나아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천국에 가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 신앙의 모든 과정에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 문제의 해결자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서북쪽 해안에 있는 도시인데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말씀을 전하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 장소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시자 소문이 온 지역에 퍼져나가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막 2:1-2). 그 동네에는 중풍병으로 절망 속에 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네 명의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서 들것에 실려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중풍병자는 그동안 증상이 호전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예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친 우리 영혼에 기쁨을 회복시키시고, 부정적인 세상 속에서도 삶의 참된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문제의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면 누구든지 병을 고침받는 베데스다 연못이 등장합니다.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요 5:3-4). 우리가 예배하는 현장은 베데스다 연못과도 같습니다. 물이 끓어오르듯이, 우리의 심령이 성령의 감동으로 뜨거워지면 문제의 해결과 치료의 응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매년 여름, 중화권 성도들이 오산리 기도원에 와서 일주일간 금식하며 예배하고 기도하는데, 그들 중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던 홍콩의 한 의사 부부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예배 후 안수기도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 그 부부가 다시 이곳을 찾아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응답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다른 교회의 한 성도님은, TV로 우리 교회의 생중계 예배를 드리던 중에 약으로도 차도가 없던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간증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문제와 절망 속에 있더라도, 믿음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얻고 기적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2. 불가능을 극복하는 믿음 네 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 앞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막 2:2). 많은 인파로 인해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막 2:4).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병상을 아래로 내릴 수 있을 만큼 큰 구멍을 만들었고, 마침내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우리는 네 친구들의 물러서지 않는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많은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지만, 우리는 포기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인생의 장애물을 뛰어넘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시험을 가져오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퇴진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들어갈 때도, 그들 앞에 흐르던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넜고, 난공불락의 요새이었던 여리고를 7일간 돌고 나서 그 성을 믿음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할지라도,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불가능을 극복하게 하시고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 예수님은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네 명의 친구와 중풍병자의 믿음을 주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케 했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시며 병을 고치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 딸이 귀신들린 딸을 둔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마 5:22).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아주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예수님이 모진 말씀을 하신 것은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외면하는 듯한 차가운 말 앞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25:27). 가나안 여인의 말과 믿음에 예수님은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우리는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님이 감동하실 만한 믿음,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인정받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붙잡고, 믿음으로 인정받은 일꾼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환경은 변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히 13:8), 그렇기에 예수님께 한 번 인정받으면 그분은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기억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붙들어 주십니다. 천국에 이르는 그날까지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셔서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믿고 의지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불가능도 극복하는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모든 일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15

    나그네 길 가는 인생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브리서 11장 13~14절) 나그네 같은 험한 인생 주님과 함께 고난 이겨내고 영원한 천국 본향 바라보며 하나님 주신 사명 이뤄야 평생토록 힘쓰고 수고해서 많은 것을 얻을지라도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방향에 대해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모든 즐거움을 다 누렸던 왕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나그네 길 인생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에 기록된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 믿는 자들은 이 땅을 영원한 정착지로 여기지 말고 오직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은 야곱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은 자기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외삼촌의 집이 있는 하란 땅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창 28:10).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약 900㎞나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 길은 낮에는 한없이 뜨겁고 밤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드는 광야 길이었지만 야곱은 홀로 이 외롭고 힘든 길을 가야 했습니다. 야곱처럼 우리 인생에도 외로움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심연에는 본질적인 영적 고독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절망적이며 고독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늘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영원한 본향인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그네 같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꿈을 꾼 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의 삶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 47:9). 130년의 인생이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고백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나 회한이 아니었습니다. 험악한 세월이었음에도 하나님이 동행하셨기에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삶을 의미 있게 살아내어 왕 앞에 설 수 있었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도 나그네 같은 인생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가야 할 본향 성경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영원한 본향을 찾아가는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4). 이 세상은 우리가 머무를 영원한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이 계신 나라, 즉 천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본향의 집을 예비하시고자 먼저 그곳으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늘에 있는 우리 영혼의 본향으로 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우리의 본향인 영광스러운 천국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1~5). 우리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 목적을 두고 살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우리 영혼의 고향인 천국으로 가는 길은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바로 구원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영생을 선물로 받아서 장차 천국에 가게 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으로서 큰 업적을 남기고 왕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의 본향인 천국에 소망과 목표를 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 29:1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다윗의 마음은 그가 성전을 건축하려는 꿈을 꾸도록 이끌었습니다. 비록 그가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렸기에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었지만(대상 22:8), 그는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인생의 길에서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어도 이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천국의 소망을 품고 살아갈 때 우리도 인생의 모든 문제와 고난을 이겨낼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이같이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예수님은 곧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힘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만나는 날에 그분은 우리의 수고를 격려하시며 우리를 반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가운데 언제나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의 본향을 품고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을 품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천국 백성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08

    믿음의 경주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2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 바라보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큰 은혜 임하고 믿음의 경주 완주할 수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24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4년간 온 힘을 다해 훈련한 결과 금, 은, 동을 합쳐 총 메달 32개를 따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목표한 최고의 상을 향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운동선수와 같이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이르도록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해나가야 합니다. 1. 버려야 할 것 성경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히 12:1). 육상선수가 가장 간편한 복장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위해 달려 나가려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무거운 것’이란 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의미하며, 강한 성격과 고집, 교만, 부정적인 생각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빨리 지쳐 멈추게 하고, 많은 문제에 직면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는 동안 우리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우리를 죄로 이끄는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내려놓고 오직 믿음만을 붙들고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사탄의 유혹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을 모든 고난과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셨기에 연약한 우리를 깊이 공감하시며 친히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우리는 삶과 믿음을 파멸의 함정에 빠뜨리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1). 늘 말씀을 붙잡고 깨어 기도하며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모든 유혹과 시험을 물리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향해 온전히 달려갈 수 있습니다. 2. 인내로써 경주함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믿음의 경주를 인내로써 끝까지 완주해야 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15가지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중에 인내와 관련된 용어가 무려 네 가지나 나옵니다. 그만큼 인내는 우리가 주님의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구원을 경험한 후에도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한번은 그들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러 물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때 분노한 모세는 바위에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쳤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10~12).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모세는 딱 한 번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분노했지만 그 결과는 그토록 그리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마음에 새겨 모든 상황에서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주의하며 늘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받은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 10:35).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하여 사명의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과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의 큰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을 바라봄 육상선수가 목표 지점만을 향해 달려 나가듯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크리스천들은 믿음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여기에서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은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람과 환경을 볼 때는 낙심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으나,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가 사명의 길을 어떻게 달려가고 있는지에 대해 전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우리가 나침반을 기준 삼아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생각과 모든 기준을 예수님께 맞추어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면 평생토록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샛길로 빠지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을 앙망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과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믿음의 경주에서 자기 힘이나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오더라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발걸음을 움직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하나님의 상급이 있는 자리까지 완주할 수 있습니다.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만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셔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9.01

    꿈을 주시는 하나님
  • “이 후에 야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중략)…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야훼니라”(창세기 15장 1~7절) 하나님의 거룩한 꿈 꾸며 불가능의 장막 벗어나 약속의 말씀 의지해 승리하는 삶 살아야 사람은 동물과 달리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살아가지 않고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통해 그분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거룩한 꿈을 붙잡고 날마다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1.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75세 때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 집의 충성된 하인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했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창 15:2~3).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꿈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신하며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을 다시 말씀으로 확증해 주셨습니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창 15:4).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며 능력과 기적, 치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날마다 절대 긍정의 생각으로 바꾸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불가능의 장막을 벗어나라 하나님은 비좁은 장막 안에서 부정적인 생각, 불가능의 생각에 갇힌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게 하셨고 아브라함은 이 별들을 세며 장차 생겨날 자손들을 꿈꿨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눈에는 수많은 별이 아이들의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이 아브라함의 마음속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꿈과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언급하며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라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우리도 꿈을 이루려면 먼저 불가능하다고 믿는 우리의 생각과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내지 못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좌절합니다. 또한 부정적인 말을 듣고 이것을 마음에 둠으로써 원망과 불평이 생기고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할 수 없다, 안 된다, 나는 못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려는 과정인가 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선포하며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천막 안에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나고 하얀 백발이 되어가는 아내를 바라볼 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깊게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장막 밖으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믿음의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도 과거와 실패, 절망과 불가능의 장막을 벗어나 별처럼 빛나는 새로운 꿈을 바라봐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과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라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약속의 말씀을 붙잡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정받은 그분의 자녀를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를 이끈 사람들도 믿음의 사람,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이룹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의 조상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증거를 얻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그 꿈을 더욱 아름답게 빚으시고 선한 길로 이끄시어 이루십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꿈을 붙잡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이루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선한 기적을 일군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남편 짐 엘리엇과 함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남편 짐 엘리엇 선교사가 먼저 에콰도르의 선교지로 떠났으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의 창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슬픔을 뒤로하고 1년간 간호학교에서 훈련받은 후, 남편이 순교한 선교지로 직접 찾아가서 원주민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그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섬김에 감동한 원주민 중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10년 후에는 짐 엘리엇을 살해했던 키모라는 원주민이 부족의 첫 목사가 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었고 남편과 함께 꿈꾸었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위대한 사랑이자 꿈과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갖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기적을 이루십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복된 꿈을 꾸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날마다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의 꿈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 삶에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8.25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서 4장 8~12절 하나님 가까이 하고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와 이웃 섬기며 예수님 사랑 전해야 크리스천은 세상 가운데로 보냄을 받은 소금과 빛 같은 존재입니다. 소금이 들어가는 곳에는 음식의 맛이 더해지고 빛이 임하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가듯이 크리스천이 있는 곳에서는 삶의 기쁨과 행복, 밝은 생기가 임해야 합니다. 이러한 존재 목적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도 우리와 가까이하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죄를 멀리하는 것’이며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로 나아가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모든 일에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문제와 소원을 아뢰지 않고 고집대로 모든 일을 행하면 삶에 많은 문제가 다가옵니다. 이처럼 문제가 생기거나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무엇보다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든 죄와 허물이 있다면 우리는 엎드려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 4:9).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사람에게서 받는 위로는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위로는 우리 영혼을 회복시키는 참 위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모든 과정과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넘치는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주 앞에서 낮추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사람은 태생적으로 교만하며 이기적인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야훼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시 147:6).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겪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겸손할 때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살리시는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와 동행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고만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예수님이 겸손을 강조하신 이유는 우리가 교만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연약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교만이 우리 안에 자리 잡으면 이것은 끊임없이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의 자세로 겸손하고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마지막 길에서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도리어 예수님이 겸손을 친히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성경 곳곳에서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이는 겸손이 우리를 하나님의 성실한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축복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겨야 합니다. 3. 서로 비방하지 말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성도들, 특별히 교회 리더들에게 서로 비방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약 4:11). 우리가 서로 비방하는 것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위치에 우리가 대신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율법의 완성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야훼이니라”(레 19:18).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비방하며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 용서, 화합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와 613개나 되는 많은 율법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교회 안의 갈등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갈등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과 함께 서로 사랑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두 사명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 하나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웃에 실천하면 그 모습을 통해 감동받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교회와 이웃을 섬기며 온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참된 크리스천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친히 만나주시며 우리를 항상 하나님 가까이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겸손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의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8.18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
  •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2장 17~18절, 4장 16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셔 누구에게나 인생길은 힘겹고 고단합니다. 좋은 환경에 거하는 사람이라도 삶에 찾아드는 외로움과 영적인 고독까지 피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겪는 모든 실존적 고통과 아픔을 몸소 경험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도우실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1. 도우시는 예수님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 2:9).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음에도, 우리 때문에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는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인생 가운데 당하는 모든 시험과 고난을 경험하셨기에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구세주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절망과 환난에서 건져 주시며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시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언제나 화목하도록 도우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며 우리의 모든 슬픔을 헤아리시고 절망에서 건져 주시며 삶의 순간순간, 인생의 고비와 어려울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고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2. 긍휼을 베푸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돌봐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만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과 응답의 과정에서 우리의 어려움에 공감하시고 참된 위로를 주시며 우리가 문제를 이겨나가도록 도우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눈물을 흘리신 장면이 세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였고(요 11:35), 또 한 번은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시며 장차 무너질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실 때였습니다(눅 19:41~42).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실 때는 피 같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히 5:7).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성도 개개인과 주님의 백성들 그리고 온 인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보시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로부터도 응답과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막 1:40~41). 성경에 나오는 나병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의사 한센이 병원균을 발견하면서 오늘날에는 한센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이 병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형벌이라고 여겼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외딴곳에 격리되어 외롭게 살아가야 했고 혹시 그들이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돌을 던져 내쫓거나 그들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온 한센병 환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직접 그에게 손을 대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실패하고 병이 들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지만 예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 곁을 지키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굳게 붙드시고 우리의 마음과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힘겨운 인생길을 사는 동안 사람과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께 나아가 진정한 위로와 평안을 얻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은혜의 보좌에 계신 예수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쌌을 때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시며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굳센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이를 귀 기울여 들으시고 우리에게 은혜의 응답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 눈물을 씻어 주시며 우리를 쉴만한 물가, 즉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천국의 소망을 품음과 동시에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야훼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 22:24, 26). 이처럼 예배는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보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선한 목자처럼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도움 아래에서 참 행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험한 인생길에서 우리를 항상 도우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친히 위로해주셔서 날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8.11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