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104) 나오미와 룻
  •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단한 두 여인 ‘신앙, 효, 사랑’이 삶 바꿀 수 있어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고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혈육이 아니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부 갈등이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룻은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원래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다. 남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아들들은 모압 여인인 오르바, 룻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도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당시 남편이 없는 여성, 아들이 없는 여성은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였다. 남자들이 모두 죽었기에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고 세 과부만 남겨졌다. 이방 땅에서 과부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나오미는 고통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며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유다 땅을 향해 같이 길을 나섰지만 나오미는 이내 두 며느리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가도 며느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오미는 슬픈 이별을 고한 것이다.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룻은 야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믿음의 백성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한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아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생활 기반이 없기에 하루 종일 밭에서 이삭을 주웠고 그의 희생적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들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위로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마침내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룻은 나오미의 뜻에 따라 비록 보아스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이 둘 사이에서 장차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룻 4:13∼17). 하나님은 룻에게서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셨다.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족보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 소망도 의지할 곳도 없던 두 여인이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정하고 나아갔을 때 개인의 삶만 바뀐 게 아니라 멸절됐던 가문이 이어지고,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나오미와 룻이 지닌 신앙과 서로에 대한 효와 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 2024.03.01 / 복순희 기자

    (103) 유니게
  • 신앙교육과 기도는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 말씀으로 디모데 양육한 믿음의 어머니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도의 어머니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유니게이다. 디모데의 어머니인 유니게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신앙은 유니게의 어머니인 로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고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을 시키며 지혜로운 아들이 되도록 늘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쳤고 거짓이 없고 남에게 칭찬을 받는 훌륭한 인물로 양육했다. 사도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배우고 본받아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고 사도 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믿음을 크게 칭찬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교하기 전에 남긴 편지에서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적 가르침을 귀히 여기고 디모데를 무척 아꼈던 마음이 담겨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유니게라는 이름의 뜻은 ‘유명한 정복자’라는 의미이다. 유니게는 루스드라 출신의 헬라계 유대인으로 당시 불신 세계라 할 수 있는 헬라 사회에서도 믿음과 전통을 지킨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유대인인 로이스와 유니게는 순결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유니게는 이방인(헬라인)과 결혼하여 디모데를 낳았다. 사도행전 16장 1절에서 디모데에 대해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방인과 결혼한 유니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 여자가 이방 민족과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협받기에 더욱 꺼리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사회가 부계 중심의 사회인데도 성경에 디모데의 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만 언급된 것으로 보아 남편이 일찍 죽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결혼 생활이 평온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니게는 철저한 신앙으로 아들을 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줬고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큰 힘이 되고 초기 교회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참된 부모의 역할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고,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외국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신다.
  • 2024.02.01 / 이미나 기자

    (102) 기드온
  •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사 300명 용사들과 보인 믿음과 순종이 낳은 결과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물은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 기드온이다. 므낫세 지파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아들로 태어난 기드온은 ‘벌목하는 사람’이란 뜻을 가졌으며 오브라라는 성읍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이스라엘의 소산을 모조리 망쳐놓으며 괴롭힘을 일삼았다. 기드온은 이러한 미디안을 피해 타작마당이 아닌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했다. 그런 그에게 야훼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며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할 것을 명하게 된다. 하지만 기드온은 자신의 연약함을 나타내며 상황을 피해보려 한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사용하시겠다 하자 표징을 구한다. 그리고 반석 위에 올려놓은 희생제물이 야훼의 사자로 인해 불살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곳에 제단을 쌓아 ‘야훼 살롬’이라 불렀다(삿 6:24). 그리고 그날 밤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고 여룹바알(바알과 더불어 논쟁하는 자)이란 별명을 얻는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기드온은 전쟁에서의 승리 표징으로 또 다시 하나님의 표적을 구한다. 그 증거물로 타작마당에 있는 털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땅은 마르는 역사와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 이슬이 내리는 기적을 체험하며 소명을 확신한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싸울 용사를 모집하고 추려내는 과정은 유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인 3만2000명 중 기드온은 두려움에 처한 이와 엎드려 물을 마신 이를 제외하고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 먹는 용사 300명만 선발한다(삿 7:1~8). 하나님이 소수의 인원을 의도적으로 택하신 까닭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을 경험함으로 보다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크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 300용사가 적진으로 뛰어들며 준비한 무기는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 항아리 안에 숨긴 횃불이 전부였다. 300명이 동시에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높이 들며 “야훼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치자 적진은 대혼란이 일었다. 결국 기드온과 300용사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생포하는 등 대승을 거두고, 이스라엘 지경을 요단강까지 확장하게 된다(삿 7:22~23; 8:1~21).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던 요인은 기드온의 믿음과 용사들이 보여준 순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도 실수는 있었다. 백성이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할 때 거절한 것은 좋았지만 전쟁에서 탈취한 귀고리로 에봇을 만들어 오브라에 둔 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이 됐고, 기드온과 그 집안의 올무가 됐다(삿 8:24~27). 또 기드온 사후 71명의 아들 중 세겜의 첩이 낳은 아비멜렉이 막내 요담을 제외한 형제 모두를 살해하는 등 이스라엘은 다시 혼란으로 빠져 들고 만다.(삿 9:1~6).
  • 2024.01.05 / 오정선 기자

    (101)브리스길라와 아굴라
  •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부부
    평신도 사역자로 가정 교회 이끌며 복음 전해 바울 선교 사역 동역하며 유럽 복음화의 기반 닦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부부로 기록된 이들이 있다.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이다. 이들은 훗날 유럽 복음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바울과 함께 복음의 씨앗을 뿌린 부부로 기억되고 있다. ‘브리스길라’(행 18:2)는 ‘브리스가’의 애칭이며 ‘작은 노부인’이란 뜻을, 남편 ‘아굴라’는 ‘독수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성경에서 늘 나란히 언급되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에서 간혹 브리스가가 남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 브리스가가 먼저 언급된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브리스가는 남편 아굴라보다 신앙심과 열정이 뛰어나고, 교회 활동에서도 그가 더 추진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각각 로마 귀족, 유대 사람 출신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통치할 당시(41~54년) 유대인 동족 간 벌어진 유혈 폭동으로 인해 추방되어 고린도로 이주했다(행 18:2). 당시 천막 제조업에 종사했던 이들 부부는 고린도에서도 천막을 만들었는데 항구도시였던 고린도는 각종 올림픽 경기와 행사로 사시사철 천막 수요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이들 부부는 이때 2차 선교여행으로 고린도를 방문한 사도 바울과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됐고 거처를 제공하고 함께 천막을 제작하며 사도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됐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일터의 일부를 사도 바울에게 제공함으로 바울이 자연스럽게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왔고 작업장은 곧 선교 본부가 됐다. 바울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하며 자신의 집 또한 성도들을 위한 가정교회로 제공하며 평신도 사역자로서 바울이 유럽선교의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다. 바울은 이들을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3~4)고 소개하며 이들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의 표본이라 자랑한다. 바울은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와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동해 함께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들 부부는 에베소에 머물며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 역할을 했고 가정에서 예배드리며 교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에베소에서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 학자인 아볼로에게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일러주는데 아볼로는 이를 계기로 바울과 동역하며 고린도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기도 했다. 바울이 소천 받기 전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고 말하며 끝까지 이들 부부를 아끼고 사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숨을 내어놓고 도왔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까지 주저하지 않고 헌신한 이 시대에 본이 되는 부부로 여겨지고 있다.
  • 2023.12.08 / 금지환 기자

    (100) 드보라
  • 유일한 여자 사사
    책임감과 사명감 다한 인물 고대 이스라엘은 성차별이 상당히 심했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지배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드보라는 유일한 여자 사사로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이스라엘 에훗이란 사사가 80년 동안 이스라엘을 평온하게 잘 이끌었다(삿 3:30). 그런데 그가 죽고 이스라엘 자손이 또 우상을 섬기며 야훼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4:1). 그래서 야훼는 그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를 받게 하셨다. 야빈은 철전차 900대를 소유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인 하솔을 20년간 지배하며 잔인하게 통치했다. 공물을 바치고 신앙적 박해까지 받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4:2~3). 이러한 때에 사사로 부름을 받은 자가 드보라이다. 그녀는 랍비돗의 아내로 사사이자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다.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드보라는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재판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에브라임 산간 지대,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재판석을 마련했고(4:5) 이스라엘 백성은 소송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녀에게 나아갔다. 발언권도 가지기 힘든 당시 여성들의 지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드보라의 통치 아래 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인품과 능력을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기 문명을 갖고 이를 활용해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가나안 군대가 여전히 후기 청동기 문명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땅으로 진격해 오는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드보라를 택하셨다. 드보라는 납달리 땅 게데스에 사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다가 그에게 야훼의 뜻을 전하고(4:6) 그와 함께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뽑은 1만명의 군대를 이끌며 야빈과 맞선다. 드보라와 바락의 군대는 잘 훈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해주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 야빈의 군대를 이겼다. 가나안과의 전쟁 중에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셨고 비로 인해 땅이 질척거려 강력한 철병거가 무용지물이 됐다. 기손 강은 다볼 산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드는데 야빈의 군대는 물이 불어난 기손 강의 거센 물결에 빠져들었다. 드보라는 가나안 지역의 지리적 특징을 이용해 적은 군대로 야빈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대승리를 거뒀다. 이스라엘은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야빈왕과 그 백성을 멸망시켰다(4:24). 사사기 5장에는 드보라와 바락의 시가 나온다. 이 시를 통해 드보라는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한다. “야훼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5:31). 공의로운 정치가, 의로운 재판관, 뛰어난 전략가이자 히브리 산문시 중 가장 유명한 시를 쓴 사사 드보라는 여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여성이었다.
  • 2023.11.03 / 김주영 기자

    (99) 마가
  • 마가 다락방의 주인, 마가복음의 저자
    약했던 사람도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어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이다. 마가복음은 네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인 책으로서 예수님의 행동과 능력을 강조해 기록됐다.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다. 이것은 당시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고난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적극적으로 고난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가는 구브로 출신으로 바나바의 조카다. 그의 히브리식 이름은 요한, 로마(헬라)식 이름은 마가다. 그래서 때로 그를 마가 요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그는 예루살렘의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기 집을 가정교회로 제공했다(행 12:12). 그의 집은 상당히 큰 집이었고 다락방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을 정도여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진 것도 그곳이었고 오순절 기도회, 후일 베드로가 투옥됐을 때 그의 석방을 위해 열린 기도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마가는 집을 방문한 사도들과 자연스레 교제를 나누며 성장했다. 아마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의 수종자가 되어 선교여행에 동참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교여행 도중 구브로 선교 사역을 마치고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자 돌연 중도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게 된다. 다음 선교여행 때 마가의 동행 여부를 놓고 바울과 바나바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마가의 동행을 반대한 바울은 결국 실라와 선교여행을 떠난다. 마가복음 내용 중 예수님을 따르다가 예수님이 체포되자 겉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도망갔던 자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가 마가 자신이었을 것이라고 본다(막 14:51,52). 이처럼 연약한 모습도 보였던 마가였지만 고난 받고 있는 로마의 기독교인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난과 환난을 당하게 되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예수님의 고난을 소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이다. 후에 바울은 마가를 영적 아들로 받아들이고 로마에서 그와 함께 지냈다. 바울은 마가에 대해 ‘나의 위로가 된 사람’, ‘나의 동역자’, ‘나의 일에 유익한 사람’이라고 칭했다. 마가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었다. 또 베드로전서 5장 13절은 로마에 있는 베드로와 마가의 동반자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곳에서 마가는 베드로의 설교와 증언을 통역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후일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교회들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결국 순교했고 그 유골은 베니스로 옮겨져 성 마가 교회 아래 묻혔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마가를 통해 과거에는 약했던 사람일 지라도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고난을 통해 장성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2023.10.06 / 복순희 기자

    (98) 라합
  • 창녀에서 믿음의 선진 반열에 오른 여인
    우리가 성경 속 여호수아 이야기를 할 때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기생 라합에 관한 이야기다. 라합은 성경에서 여호수아 2장과 6장 그리고 마태복음(1:5), 히브리서(11:31), 야고보서(2:25)에 언급돼 있다. 라합은 우상을 숭배했던 아모리 족속 여인으로 여리고의 정복 시기에 살았으며 거리에서 몸을 파는 직업을 가진 천한 신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집에 여리고 성 점령을 앞두고 여호수아의 지시로 성에 잠입한 정탐꾼이 숨어들었다. 라합은 적군인 이스라엘 정탐꾼을 고발하기는커녕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성 밖으로의 탈출까지 도와준다. 그리고 정탐꾼의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날, 라합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요청하며 약속의 증거로 여호수아와 부하들이 볼 수 있도록 붉은 줄을 창문 밖에 내어 두겠다고 말한다. 라합이 제시한 증표인 붉은 줄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 곧 환난 날 구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라합과 가족을 살린 이 붉은 줄을 두고 강해설교자로 알려진 W.A. 크리스웰 박사는 ‘구속의 붉은 줄’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창녀였던 라합은 구원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시대에서 가나안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새 시대의 관문을 열어준 여인으로 변모한다. 또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의 흐름을 생생하게 파악한 혜안 덕분에 메시야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인물로 은혜를 입게 된다. 거침없이 무너져버린 여리고 성 사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라합은 유다 지파 살몬의 아내가 됐고 살몬과의 사이에서 보아스를 낳았다. 그의 아들 보아스는 훗날 룻과 결혼해 오벳을 낳았고 오벳이 낳은 아들 이새에게서 다윗 왕이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윗 왕의 계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라합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믿음의 선진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라합에 대해 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표현했고, 야고보는 그녀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약 2:25)고 이야기했다. 라합의 이야기는 곡절과 시련이 많고 변화가 심하던 삶이 긍정적인 쪽으로 형세가 바뀌는 인생역전을 말해준다. 누구도 차별치 않으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면 우리의 삶은 이처럼 인생역전을 경험할 수 있다. 이영훈 목사는 지난 1월 주일예배에서 ‘라합의 믿음’을 제목으로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이끈 라합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비록 천한 신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여 여리고를 무너뜨리는데 공을 세우게 하시고 그 위대한 다윗 왕의 조상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게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면 우리는 죄에서 용서받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계획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의 증표인 ‘구속의 붉은 줄’(보혈)의 능력을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에 나서야 한다.
  • 2023.09.01 / 오정선 기자

    (97) 다비다 
  • 구제와 섬김으로 그리스도 향기 나타낸 믿음의 여인
    부활 기적 체험하고 많은 영혼 주님께 인도해 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님 여제자로 인정 받기도 생전에는 구제와 섬김으로, 죽어서는 다시 사는 기적을 체험하며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한 여인이 있다.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욥바에 거주하던 다비다이다. 다비다는 헬라어로 도르가(Dorcas)라고 불리며 이는 ‘노루 같은 여성’ 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영양’(Gazell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이름처럼 심성도 아름다웠다. 성경은 다비다가 소외된 약자들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다했다고 말한다.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다비다는 많은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었는데 특별히 과부들을 돌보는 일로 유명했다. 그녀는 이들을 위한 속옷과 겉옷을 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당시 과부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가난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비다 또한 과부였다는 의견이 있다. 욥바의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선원이었다. 배를 타고 나가면 조난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기에 일찍이 이 지역에는 남편을 여읜 여성이 많았을 것이고 이에 다비다 또한 과부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 비추어 보면 다비다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다. 늘 선행과 구제에 힘쓰던 다비다가 갑작스레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때마침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복음 전파에 매진했던 베드로가 욥바에서 20㎞정도 떨어진 룻다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이에 욥바 지역의 제자들은 베드로에게 오기를 간청했다. 다비다가 누인 다락방에 도착하자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생전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이며 그녀의 선행을 알렸다. 이때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다비다의 시체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선포했다. 베드로의 강력한 선포에 죽은 다비다가 일어나 앉는 기적이 일어났다(행 9:40). 이는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요 14:12)이라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일전에 예수님께서 죽은 회당장의 아이에게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말하자 다시 살아나는 기적과 동일한 일이 베드로에게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막 5:38~43). 이 사건으로 온 욥바 사람이 다비다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알게 됐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됐다(행 9:42). 욥바는 예수님의 여제자로 불린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행 9:36) 여제자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나타난다. 바느질로 먹고 사는 평범한 여인이 예수님의 여제자로 인정을 받은 것도 부활의 영광을 체험하는 축복을 누린 것도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평범한 자신의 재능을 통해 주변 사람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사용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비다와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구제와 선행을 실천한다면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될 줄 믿는다.
  • 2023.08.04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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