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라.  - 존 그레이 -
  • 흔하게 잘못 사용되는 어법 중에 ‘다르다’와 ‘틀리다’가 있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의 형용사다. 한자로는 다를 이(異)나 별(別)이다. 이 말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으로 말하는 이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롭다. 영어로는 ‘디퍼런트’(different)이다. ‘틀리다’는 ‘옳은 것이 아닌 상태가 되다’는 뜻의 동사이다. 오류라는 한자어도 있듯이 한자로는 그르칠 오(誤)나 류(謬)이다. 이 말은 가치 측면에서 부정적이고 옳지 않으며 나쁜 것이라는 의미이다. 황희 정승에 관한 일화이다. 집안 노비 둘이 다투다가 한 노비가 다른 노비의 잘못을 고했다.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이어서 또 다른 노비가 와서 앞서 다녀간 노비의 잘못을 고하자 “네 말도 옳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정경부인이 “아니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고 하면 대체 어느 쪽이 틀렸다는 말씀입니까?” 하자 “오호, 그 말도 옳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서로 “너는 틀렸다”고 하는 상호비방과 손가락질이 난무한다. 일제 식민치하, 군사독재의 잔재 그리고 극단적 진영논리로 우리의 의식 혹은 무의식에 ‘다른 것은 틀린 것’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뿌리 박힌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바닥엔 ‘모든 것은 같아야만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획일주의가 버티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은 끝이 없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달라야 당연하고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당신과 같이 싸우겠다. - 볼테르
  • 2024.07.12

    절대 긍정의 믿음
  •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에서 100년 전 가장 빠른 기록은 알렉시스 알그렌이 세운 2시간 36분이었다. 이후 과학적인 훈련법의 발달로 마라톤 기록은 2시간 초반대로 단축됐지만 연구를 하면 할수록 2시간은 인간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다. 스포츠 생리학자들은 마라톤은 결코 2시간 이내 완주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마라톤 서브 2’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케냐의 국민 영웅이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엘리우드 킵초게는 2시간의 벽을 깰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많은 회의적인 시선과 우려 속에 킵초게는 2시간 25초의 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킵초게는 “이제 25초만 더 단축하면 된다”라며 다시 훈련에 매진했고, 2019년 1시간 59분 40초의 기록으로 마의 2시간의 벽을 무너뜨렸다. 모든 사람들의 회의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 이루어낸 불굴의 기적이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만, 할 수 있다고 도전하는 사람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한다. 지금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도전해 보자.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두려움을 없애고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도전하길 응원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 2024.06.28

    시원한 여름이 오기까지
  • 연일 심한 무더위가 전 세계에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여기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북유럽의 사람들이 있다. 밤에는 기온이 10℃ 아래로 떨어져 아직 두꺼운 이불이 필요하고 한낮에도 크게 덥지 않아 에어컨을 설치한 집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백야현상도 있어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의 여름은 참 밝고 쾌적하다. 지난 한 주간 이곳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여름성경학교가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더위가 아니라 추위였다. 성전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한여름에 장작을 꺼내 불을 붙이고 밤새 온풍기를 돌리며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시원한 여름을 맞이하기까지 북유럽의 사람들은 혹독하게 춥고 어두운 시간을 오랫동안 견뎌야 했다. 작년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올해 4월까지 7개월 넘게 이어졌고 이때는 해도 뜨지 않아 온 땅이 내내 칠흑같이 어두웠다. 우박과 폭우가 쏟아지며 거센 바람이 부는 날들이 더 많았는데 지금 잠시 이곳에 밝고 시원한 여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주어진 현실에 절망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기쁜 날만 주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깊은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일수록 다가올 내일은 더 밝고 형통하다는 것을 주안에서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형통할 때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곤고한 날을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2024.06.21

    ‘원영적 사고’
  • ‘원영적 사고’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이 단어는 ‘긍정적 사고’라는 말 대신에 신문 기사에서조차 사용할 정도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원영적 사고’란 “K팝 걸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의 긍정적 태도에서 비롯된 유행어”라는 설명이 인터넷에 친절히 소개가 되고 있는데 탄생 배경은 이렇다. 장원영이 스페인의 한 빵집에서 빵을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오자 빵이 다 팔렸고, 이제 새 빵을 먹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장원영은 불평 대신 카메라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 사람이 제가 사려던 빵을 다 사가서 너무 럭키(lucky·운이 좋은)하게 제가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야!” 그 후 Z세대는 장원영의 초긍정적 태도에 열광했다. 장원영의 말투를 따라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은 빠르게 퍼졌고, 조회수도 수백만 회를 찍었다. 심지어 장원영의 말투를 이용해 현재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이해 주는 ‘원영적 사고 챗GPT’까지 등장했다. 이에 언론에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 등 부정적 신조어가 난무했던 Z세대의 변화에 반색하고 있다. 또 긍정적 사고가 가져다주는 유익에도 새삼 관심을 표현했다. 우리 젊은 세대가 이런 변화를 계기로 ‘절대긍정’의 사고와 생활을 실천하게 되어 그들의 삶이 보다 건강할 뿐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반짝반짝 빛내주기를 기도해 본다.
  • 2024.06.14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러시아 시인 푸쉬킨(A. S. Pushkin)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일부다. 어떻게든 코로나19 팬데믹만 끝나고 나면 모든 상황이 회복돼 나아질 줄 알았던 많은 이들의 소망은 한낮 ‘신기루’였을까? 삶은 여전히 우리를 속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 기후 위기와 더불어 국내외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녹록지 않은 상황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기 불황 금리 상승 물가폭등의 여파로 불안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김밥 한 줄도 맘 편히 먹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안타깝고 우울하다. 이런 까닭에 있는 이들은 있는 이들대로 없는 이들은 없는 이들대로 각자 자신들이 가장 힘들다고 항변하는 시대의 모순은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고통의 밤을 지내고 있다. 특히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 계층들의 고통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칠흑같이 어둡기만 한 고뇌의 밤. 그래도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깊은 어둠의 밤이라도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한 아직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는 한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밝은 아침을 간절히 소망하며 묵묵히 견뎌내자.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중에서 -
  • 2024.06.07

    노르웨이 ‘재능기부 나눔 섬김이’
  •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재능기부나눔센터가 있다면 노르웨이에는 김종채 성도님의 재능기부 섬김이 있다. 교회가 있는 오슬로에서 120㎞이상 떨어진 할렌(Halden)에 거주하시는 성도님은 교회에 공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달려와 일을 도맡아 주신다. 핵공학 박사 출신의 김 성도님은 노르웨이에서 수년간 자신의 집을 지은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이곳저곳을 수리해 주신다. 한 달간 높은 곳에 매달려 교회 전체 페인트 도색을 혼자 해주시기도 했고, 교회의 노후 된 창문을 20개나 직접 갈아주셨다. 지금은 교회 마당에 나무 창고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일주일 넘게 땀을 흘리고 계신다. 나도 톱과 망치를 들고 성도님을 도와 함께 공사를 거드는데 몸에 생기는 많은 상처와 검게 타는 피부를 보면서 목수의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 곳에서 달려와 이렇게 힘들게 일하시고 또 먼 길을 돌아가시는 성도님께 여러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식사와 교통비를 드려보았지만 항상 “제 이름으로 헌금해 주세요”라는 대답만 하며 받기를 거절하셨다. 인건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북유럽에서 아무 대가 없이 매일 달려와 상처 나고 땀 흘리며 교회를 섬기시는 이유는 그동안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재능으로 보답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늘도 남은 공사를 위해 이른 아침 교회로 달려오신 성도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낀다.
  • 2024.05.24

    진짜진짜 러브스토리는?
  • 서울대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내 마음의 인터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어느 사회복지사의 이야기가 며칠 전 신문에 실렸다.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분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편지인 셈이다. 지난 11년 동안 257명과 만나서 쓴 편지들 중 기자가 전한 몇 편을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그중 한 편이 특히 와 닿았는데, 대장암으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난 어느 60대 남편에게 쓴 아내의 마지막 편지였다. “날 위해서라도 기운 내라고 했더니 당신이 그랬잖아. 악착같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이 섭섭하더라. 왜 내 생각은 안 하는 거야. (눈물) 그런데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지만 여전히 섭섭해. 그래도 여보,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날 기다려 줄 것 같아서 좋아. 날 꼭 기다려.” 남은 사람이 떠난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아내가 이 편지를 자신의 귓가에 읽어주고 나서 나흘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기자는 마치 아내가 마음의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난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가장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함께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 온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라는 말. 부모님 사랑과 부부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이 우리 인생에 줄 수 있는 큰 위로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큰 사랑 하나는 아마도 그들 곁에서 오래오래 함께 머물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 푸른 5월 가정의 달에 엉뚱할지도 모를 인사를 드려본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 2024.05.17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시인의 “꽃” 중에서- 언제부턴가 각종 뉴스나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익숙해진 표현이 있다. A모씨 K군 B양 등 이름 같지만 이름 같지 않은 어색한 표현들. 물론 숨겨야 할 이유가 있어 저런 표현을 사용했겠지만 이런 것을 보면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름은 사전적 의미로 ‘물건 사람 장소 생각 개념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을 의미한다.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의식의 표출이며 친밀한 관계 형성의 시작이다. 사실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이 노출돼 ‘정보 과잉’의 시대이다. ‘나’를 드러내고 노출하는 것에 피곤해졌고 ‘남’의 노출까지도 귀찮고 식상해졌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마도 이름을 숨기는 ‘익명’(匿名)이라는 방식일 것이다. 군부독재시절 ‘익명’은 하나의 자기방어적 기재였다. 현시대의 ‘익명’도 그런 의미일까? 혹시 비겁함과 책임회피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 이 시대의 익명은 마음껏 악플을 달고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위한 자기쾌락적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보낸 사람이 그리운 이의 이름으로 씌어 있어 봉투를 뜯는 기다림조차 설레던 그 첫사랑의 편지들 같은 마음이 아쉽고, 누군가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그런 관계들이 못내 그립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2024.05.10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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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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