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가장 빠른 길
  •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진행되는 금식성회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북유럽에서 성회 장소까지의 거리는 왕복 2800㎞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을 지나야 했다. 가족이 함께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비행기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나라들을 지나갈 수 있다는 이유도 있어 운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린 자녀가 있고, 아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며 한주 내내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2800㎞의 여행은 결코 쉽지 않았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달래며 하루 9시간씩 이동하면서 우리 가족은 4일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불과 2시간 안에 우리 가족을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는 비행기가 얼마나 빠른 이동 수단인지 운전을 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힘들게 도착한 금식성회에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단번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구부러지고 험한 인생길을 영원히 달려도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인데,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단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의 모든 조급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렇게 빠른 길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하게 됐다.
  • 2024.04.26

    내 인생 안단테 칸타빌레
  • 바이올린을 만드는 김호기 마에스트라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녀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과 우아한 모양새에 매료되어 20년 넘게 연주자로 바이올린과 한 몸처럼 지냈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일원으로 보낸 8년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왼손가락에 이상이 생겼고 더 이상 연주자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는 운명 앞에서 그녀는 오래 울지 않고 이번에는 바이올린 제작자의 길을 선택했다. 곧장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언어의 장벽과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바이올린 제작자로서 마에스트라 자격을 땄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녀는 절망의 순간 또 하나의 문이 열린 셈이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라는 악상기호를 자기 인생의 악상기호로 여겼다고 한다. ‘천천히 노래하듯이’. 안단테 칸타빌레의 대표적인 연주곡이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곡 제1번 제2악장인데 편안하고 다정다감한 선율이 마음의 위안을 주는 명곡이다. 톨스토이가 처음 이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고 전해지는 곡이다. 어쩌면 그 곡처럼 그녀의 삶도 천천히 노래하듯 일궈낸 삶이었는지 모른다. 온갖 장애물을 넘어 마침내 꿈을 맛본 그녀의 삶은,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노래하듯 경쾌하게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렇다. 세상일은 한 번의 좌절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 것, 느리더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 무엇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삶이라는 악보를 연주해 나갈 것, 그렇게 우리 자신에게 말해주자.
  • 2024.04.19

    분노는 무분별하게 시작되어 후회로써 끝을 맺는다 - 피타고라스 -
  • 2022년 제94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윌 스미스가 질병으로 인해 탈모증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빗대 농담을 했던 동료 배우 크리스 락이 서 있는 시상대에 직접 올라가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날 바로 사과했으나 그는 아카데미 징계 위원회에 회부됐고 그를 주인공으로 제작하려던 각종 영화는 보류 및 취소됐다. 한 번의 분노에 이은 폭행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결과다. 사실 ‘분노’는 강력범죄의 주요 동기이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20년 발생한 전체 강력범죄 2만 6971건 중 9228건(34.2%)이 ‘분노’ 범죄였다. 건강보험공단은 2022년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진료 건수가 1만 869건으로 7년 전인 2015년(6977건)에 비해 무려 55%나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빅토르 위고의 단편 『93년』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큰 배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났다. 배에 실려 있던 수송용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은 큰 풍파에 끊어졌다. 대포들은 배를 파괴하며 무섭게 굴러다녔고 선원들은 결사적으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를 붙잡는다. 작가는 이 배를 인생에 비유한다. 이처럼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고 바로 배 안의 대포인 미움과 원한 무엇보다 ‘분노’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짜증나는 일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세 번만 해보자. 분노는 기묘한 사용법을 가진 무기이다. 다른 무기는 인간이 사용하지만 분노란 무기는 반대로 인간을 사용한다. - 몽테뉴 -
  • 2024.04.12

    그리스도의 십자가
  •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아, 골고다’라는 곡을 쓸 때였습니다. 바흐의 아내 안나는 남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 달려가 보니 바흐가 책상에 성경을 펴놓고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작곡을 위해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가 온 것도 모르고 펑펑 우는 남편을 두고 밖으로 나온 안나도 큰 감동을 느껴 복도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훗날 안나는 『내 남편 바흐』라는 책을 통해 이 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그토록 힘겨운 고통을 느끼며 곡을 쓴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아마 완성된 곡을 듣는 사람들도 몰랐겠지요. 남편은 이 모든 순간을 오직 하나님과만 공유하길 원했기에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겪으신 고난, 성경이 믿는 자들에게 약속한 축복, 부활과 천국을 향한 소망 등 성경의 말씀들을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모든 고난과 구원, 축복의 약속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며 말씀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 2024.03.29

    작은 것의 소중함
  • 세계 최고의 해양자원을 가진 노르웨이에는 크고 질 좋은 해산물들이 언제나 많다. 마트에 가면 깨끗한 물에서 자란 연어, 대구, 킹크랩과 같은 큰 생선들이 잘 손질되어 항상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런 큰 생선들로 스테이크나 훈제 요리를 만들어 빵이나 감자 등과 함께 먹곤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해산물이 몇 있다. 우리가 늘 먹던 멸치다. 큰 물고기들이 주로 잡히는 곳이다 보니 반대로 멸치와 같은 작은 생선은 잡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멸치 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조개류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다. 미역이 없으니 김도 없고, 큰 새우는 많아도 작은 새우는 없다. 당장 국을 끓여야 하는 한국인들은 이곳에 멸치가 없어 어려움에 처하곤 한다. 여기저기 마트를 돌아다니다 결국 소고기나 닭고기로 국을 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타국에서 돌아오시는 분들이 가방 한가득 멸치를 사와 나눠주실 때는 큰 생선을 받을 때보다 더 기쁜 마음이 든다. 큰 것도 귀하지만 작은 것도 소중하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노르웨이에서 깊이 깨닫게 된다. 주 안에서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귀하지 않은 일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번 한 주도 예수님처럼 모든 영혼을 존귀하게 대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 2024.03.22

    한 끼 밥상의 큰 뜻
  • 건강한 식단을 차리고 한 끼 밥상에서도 그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밥상을 받을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밥은 땅에서 자랐으나 하늘에서 온 생명의 밥입니다. 오늘 내가 이 밥을 주님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배식을 받은 뒤에는 “여기 이 밥에 하나님의 영이 깃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듯 이 밥을 신령한 마음으로 내 안에 모시겠습니다”하고 또 기도합니다. 그릇을 비운 뒤에는 “주님, 거룩한 당신의 밥을 쓰레기로 버리는 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그릇을 비우듯 내 마음도 비우고 그 빈 데를 주님으로 충만하게 채우겠습니다”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상을 치우면서는 “생명의 밥으로 오신 주님, 우리도 세상에 나아가 이웃과 자연의 밥이 되는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하고 기도합니다. 매일 대하는 밥상머리에서 이렇게 기도하며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끼 밥상에도 이토록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을 때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가 더욱 충만해질 것입니다. 간단하고 무심하게 드리는 식사기도이지만 가끔은 한 끼 밥상의 큰 의미를 생각하며 먹기 전에 기도하고, 먹으면서 기도하고, 먹고 나서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잘먹고 잘산다는 말은 그저 굶지 않고 배불리 먹고 산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땅을 살리는 농사와 건강을 담보하는 음식과 타인을 위해 사랑하며 살기로 마음먹는 일까지를 포함하는 말일 테니까요.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이야말로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일이라 믿습니다.
  • 2024.03.15

    “불신은 비싼 대가를 치른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한국인들이 정말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그거 진짜야?” 누군가의 말에도 시장의 물건을 고를 때도 자주 쓰고 듣게 되는 말이다. 습관적 의심일까? 선거철에 넘쳐나는 많은 공약들과 함께 이런 불신은 점점 더 팽배해 가고 있다. 비단 타인에 대한 불신을 넘어 각종 정보와 뉴스 그리고 정부의 정책까지도 그 진위여부를 의심하는 불신(不信)의 시대. 진영논리 및 집단이기주의에 가로막혀 서로 서로를 맘 편히 믿고 신뢰할 수도 없는 뿌리 깊은 이 시대 불신의 자화상은 참 안타깝고 씁쓸하다. 사회적 신뢰가 낮은 모습은 개인적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정치권과 언론 및 전문가집단 즉 사회지도층에 대한 불신은 심각하다. 2020년 통계지표에 따르면 공공기관(19.8%)과 정부(22%)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았으며 언론(18.8%)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에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집단은 정치권으로 겨우 3.7%에 불과했다. 정치인을 믿는 사람들이 100명 중에 단 4명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언젠가 H 마트 과일 가판에서 봤던 문구가 떠오른다. “오늘 딸기는 산지에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달고 조직이 다소 무릅니다. 수박과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덜 답니다. 구매에 참고하세요.” 참 솔직한 문구에 절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이 난다. 불신의 시작은 말과 행동의 서로 다름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를 향한 손가락질보다는 바로 우리부터 언행일치(言行一致)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믿을 만한 ‘믿을 맨’이 되어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자! 나는 너에게 이 말을 선물로 준다. “나는 너를 믿는다” - 파스칼
  • 2024.03.08

    참된 안식을 주는 지도자
  • 사람마다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삶에 안식을 주는 지도자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 것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모세는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무려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동족을 애굽의 손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백성들 앞에서 므리바의 바위를 내리치며 분노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결국 출애굽한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였으며 모세 또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성경은 이러한 모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난과 배신 속에서 끝까지 참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려고 했던 곳보다 더 좋은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누구도 주지 못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셨다. 너무나도 각박한 이 땅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이 세워져 모든 사람들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워진 지도자들이 모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잘 인도하도록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3~4).
  • 2024.02.2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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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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