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QT
하나님의 심판대
  • 북유럽에서 사역하면서 현지 교회에서 진행하는 장례식에 여러 번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고인을 추모한다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있었다. 먼저 기독교 국가였던 전통에 따라 누구나 장례식을 교회에서 치른다는 것이다. 평소 교회에 잘 나오지 않던 사람도 지역 교회에서 예배를 맡아주도록 되어 있어 사람들은 병원이 아닌 교회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 한 가지 새롭게 다가온 것은 목회자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관 앞에 서서 고인의 삶을 출생부터 죽음까지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인이 하나님 나라와 타인을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사람들 앞에서 길게 설명한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사람들은 고인의 삶을 생각하고 동시에 남은 인생 더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하고 있다. 북유럽의 장례에서 뿐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죽음 뒤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모든 이 앞에 삶에 대한 판단을 받게 될 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복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 2025.04.25

    그림자: 고난의 시간, 빛이 곁에 있다는 증거
  • 그림자는 어둠의 상징이지만 사실 빛이 있을 때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짙은 그림자라도 그것은 결국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림자 같은 시간이 찾아옵니다. 예기치 않은 고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설명되지 않는 기다림…. 그 속에서 우리는 종종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 같고 기도는 응답 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편 23:4).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을 쳐다보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그림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빛의 방향이 더 선명해지듯 우리의 신앙도 그 어둠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순전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짙은 그림자 속에서 세워졌습니다. 세상은 그분을 향해 등을 돌렸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임하셨고 그 어둠은 결국 부활이라는 찬란한 빛으로 이끌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내 삶의 어느 부분이 짙은 그림자 속에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아직 빛이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림자는 결코 빛을 몰아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빛과 함께 있을 때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고난의 깊이를 지나며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가장 깊은 그림자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 곁에 계십니다.
  • 2025.04.18

     “겨울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봄은 그 순서를 건너뛰는 법이 없다.” - 할 볼란드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시작되는 1922년에 발표된 영국 시인 엘리엇(T.S.Eliot)의 유명한 시 ‘황무지’를 떠올려 본다. 엘리엇은 예언가였던 걸까? 유독 굴곡이 많았던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4월은 우리에게 정말 잔인한 달이 돼 버렸다. 1948년 4월 3일 ‘제주 4.3사건’과 1960년 4월 19일 ‘4.19의거’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그리고 올해 4월 4일은 대통령 파면이라는 탄핵 판결. 이에 덧붙여 꽃피는 4월을 맞이하기 불과 5일 전인 2010년 3월 26일에 일어난 북한 잠수정의 피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까지. 시 ‘황무지’가 의도했던 원래 의미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4월은 잊지도 지우지도 못하는 아픔의 기억과 갈등으로 여전히 잔인하게 흘러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런 아픔들은 이제 그만 묻어두자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애써 위로했던 생각조차 더 서늘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렇듯 사람의 혈과 능으로는 할 수 없으니 예수님 주신 평안과 위로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4월은 예수 그리스도가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의 달’이다. 이제 잔인한 4월의 아픔 갈등 상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과 십자가의 은혜로 위로받고 온전히 치유되길… 그렇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영원한 봄으로 다시 소생하길 소망해 본다. “겨울은 내 머리 위에 있다. 하지만 영원한 봄은 내 마음 속에 있다” - 빌 게이츠 -
  • 2025.04.11

    마시멜로 실험
  • 한 심리학자가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탁자 위에 간식을 두고 15분을 기다리면 2배로 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 아이들의 상태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한 그룹은 15분을 기다리고 간식을 2배로 받았고, 다른 그룹은 15분을 참지 못하고 간식을 먹었다. 심리학자는 이 실험을 토대로 아이들의 인생을 추적 관찰했는데 그 결과 15분 동안 간식을 기다린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삶을 살았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월터 미셸이 창안한 ‘마시멜로 실험’이다. 이를 통해 미래를 위해 당장의 욕구를 참을 수 있는 ‘자제력’이 인생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간식에 시선을 둔 아이들은 15분을 기다리지 못했지만 다가올 2배의 간식에 시선을 둔 아이들은 더 큰 보상을 받았다. 주님의 자녀인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말로만 이웃 사랑을 고백하고 세상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에 시선이 향해 있지는 생각해 본다. 우리의 시선은 천국에서 주님이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세상의 즐거움에 한눈을 팔지 않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 2025.03.28

    사순절의 세 가지 가르침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다. 어려운 시국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순절의 세 가지 가르침을 기억해 보자. 첫째로 ‘온전한 순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40일간 시험을 당하셨고,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십자가를 지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셨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셨다. 둘째로 ‘회개와 절제’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으로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요한에게 나아가 침례를 받으셨고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다. 뿐만 아니라 일생 물질과 권세의 유혹을 물리치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을 사셨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된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순절의 마지막 가르침은 ‘부활과 승리’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고통과 죽음에서 끝나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고난 뒤에는 반드시 승리와 기쁨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지금 잠시 우리가 고통과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사순절 기간 예수님이 주시는 가르침을 통해 다가올 밝은 내일을 바라보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 2025.03.21

    레가토: 이어지는 삶, 연결하는 사랑
  • 음악 용어 ‘레가토(Legato)’는 부드럽고 끊어짐 없이 이어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개별적인 음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음악은 더욱 깊은 감동을 줍니다. 독일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도 “음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음과 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하나의 음이 끝나기 전에 다음 음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끊어짐 없는 선율이 특징입니다. 우리 삶은 수많은 만남을 통해 이뤄집니다. 어떤 만남은 깊은 관계로 이어지고 어떤 만남은 스쳐 지나갑니다. 만남도 음악 같아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이 단절되지 않고 잘 이어져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고 서로에게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관계들이 풍요로운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말과 행동입니다. 잘못된 말과 행동은 관계를 단절시킬 뿐 아니라 상처를 남깁니다. 반대로 친절한 말 한마디는 들인 공에 비해 생각보다 그 영향력이 오래 남습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9)라며 우리가 애써야 할 바를 잘 설명해 줍니다. 혹시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지 않나요?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아름다운 레가토가 되어 부드럽고 따뜻하게 서로를 연결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 2025.03.14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 1760년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화는 세계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처럼 서구사회가 근 200년 동안 이뤄낸 것들을 우리나라는 겨우 50년 정도의 세월 동안 이뤘다. 그 놀라운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 발전과는 달리 매우 더디게 진행돼온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후진성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분배의 불균형으로 인한 노사갈등이나 노노갈등,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입시와 취업 문제 등등. 모든 문제의 원인은 바로 한 걸음부터 차근차근 정당한 방법보다는 소위 ‘부모 찬스’나 학연 지연 인맥 재력 등을 총동원해 불법과 탈법의 사다리를 이용하려는 욕심에 있다. 이런 상황은 대다수의 선량한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고 있다. 그 실례로 어느 정권이든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공직 후보자들이 불법적인 ‘자녀 스펙 쌓기’ 논란 때문에 낙마했는지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 같은 나무줄기에서 생기고 9층의 탑도 한 줌의 흙을 쌓는 데서 시작되며 천리의 여행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 쓸 수는 없다. 이제 더디더라도 첫걸음부터 당당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환영받으며 결국 그런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얻게 되는 진정 살맛 나는 세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좋은 시작은 이미 절반을 끝낸 것과 같다. 시작이 반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 2025.03.07

    마지막 사명
  • 북유럽에서 홀로 사는 69세 한인 여성분이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5개월 전 췌장에서 암이 발견되었는데 더 이상 병원에서 손을 쓸 방법이 전혀 없고 이제 불과 생명이 1~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이곳은 한인교회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차로 4시간이 넘게 떨어져 있는 우리 교회로 긴급하게 기도요청을 보내온 것이었다. 비록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분이지만 같은 한인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드리고자 성도 두 분과 함께 왕복 8시간의 심방을 떠나기로 했다. ‘남편도 잃고 자녀도 없는 말기 암 환자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울까?’ 차를 몰고 가는 동안 내내 염려했지만 막상 직접 만난 성도의 얼굴은 빛이 날 정도로 밝았고 마음은 평안해 보였다.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강하게 성도를 붙잡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도 예수님이 계속 평안을 주세요. 홀로 있지만 주변 성도들이 저를 도와주세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 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저의 마지막 사명은 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고백으로 인해 눈물과 탄식으로 가득할 것 같았던 심방의 자리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다시금 발견하게 됐다.
  • 2025.02.2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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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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