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변원중 목사(영등포대교구장) - 멀티를 능가하는 힘, 연합과 사명
  • 하나의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일을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이라고 한다. 카페에 가면 음료를 마시면서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펼쳐 작업을 하는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여러 가지의 일을 한 번에 할 수 없다고 신경과학자들은 이야기한다. 통화하면서 걸어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행동은 가능하지만, 노래를 부르면서 공부하는 의식과 의식의 행동을 인간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하는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뇌 스위치의 on/off를 잘하는 것이다. 이렇듯 뇌 전환이 빠른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 인간의 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한 기업에서 실험을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어떤 일이든 할 일을 계속하면 방해받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무엇이든 간에 할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데 여러분은 많은 양의 이메일과 전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그룹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마지막에 두 그룹의 IQ를 측정한 결과 방해받지 않은 그룹이 방해받은 그룹보다 평균 10점이 더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그룹이 많은 업무를 소화해 내는 유능한 사원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는 업무 처리의 효율이 높을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 이유는 스위칭 코스트(Switching Cost)가 발생했기 때문인데, 스위칭 코스트란 처음 제품이나 서비스를 비용을 들여 구매하게 되면 추후에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옮겨갈 때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인간은 한 가지 일을 하다 다른 일로 전환하게 될 때 버퍼링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업무의 속도나 질이 감소하는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울한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이 버퍼링 시간은 점점 길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조석으로 변하는 환경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없도록 강요당한다. 더욱 바쁜 일상 중에도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면서도 스마트폰과 SNS에는 깊이 빠져 시간과 집중력을 도둑맞으며 살고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길 원한다면 개인 위주의 시간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연합하여 함께 사고하며, 이야기를 나눌수록 잃어버린 집중력을 다시 높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의 사명을 갖고 연합할 때 성도 서로를 온전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견고하게 세울 수도 있게 된다(엡 4:12). 멀티가 교회의 힘이 아니고 각자에게 주신 사명으로 연합하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힘이다.
  • 2024.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몰입(沒入)에 대한 묵상 - 오혁진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내 삶의 모든 조각을 다 맡겨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작품을 만들어 주셨다 / 내 행위를 깨끗이 하자, 내게 새 출발을 허락해 주셨다 / 진정, 나는 하나님의 도(道)에 늘정신을 바짝 차렸고, 하나님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다 / 매일 나는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을 유심히 살피며,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길을 걷는 듯,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내딛는다 / 내 마음을 열어 보여드리자, 하나님께서 내 인생 이야기를 다시 써 주셨다.” 다윗이 지은 ‘승전가’의 일부로 사무엘하 22장 21~25절의 ‘메시지성경’ 표현이다. 시를 묵상하며 다윗이 경험한 한 사건이 떠올랐다.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되돌아온 언약궤가 20년째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자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시기 위해 3만명의 사람을 모아 행렬의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갑자기 소가 뛰고, 수레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옆에서 모시던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고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다. 웃사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하나를 꼽자면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위해 언약궤의 이동시킨 행렬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니었고 하나님은 멈추려 하셨다. 그런데 웃사가 하나님의 멈춤을 알지 못하고 행렬을 안전하게 진행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 본 다윗은 야훼가 두려웠고 언약궤는 급히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졌다. 석 달 뒤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진 것을 알았다. 언약궤의 행렬은 예루살렘을 향해 시작되었고, 다윗은 이전과는 달라졌다. 하나님의 마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분의 일하시는 방식을 유심히 살피며 마음을 열어 보여드렸다. 야훼 앞에 자신을 낮추고 낮춰 어린아이보다 더 낮아지길 원했다. 다윗은 야훼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옷이 흐트러지도록 춤을 추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선과 백성들의 시선 사이에서 야훼께만 적극적으로 몰입했다. 하나님 앞에서 몰입의 춤이 기쁨의 춤으로 변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내 삶의 모든 조각이 하나님께만 다 맡겨지도록 몰입의 춤을 추고 싶다. 우리도 세상 눈치 보지 말고 성령님과 함께 몰입의 춤을 추자.
  • 2024.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적 충돌감지 기능이 작동하게 하라 - 이성준 목사(강서2대교구장)
  • 몇 년전 자동차 사고가 크게 나서 차를 폐차한 적이 있다. 경인고속도로에서 부천IC 진입로에 차가 정체가 되어 멈춰 서있는데 뒤따르던 차량이 내차를 추돌한 것이다. 잠시 후에 내 휴대폰에서 “사고 나셨어요? 119입니다! 지금 어디인 줄 아시나요? 저희가 지금 위치 검색했으니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는 음성이 들렸다. 휴대폰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자꾸 어딘가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서 “네~ 네~”하고 대답만 했다. 알고 보니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의 ‘충돌감지기능’이 작동하여 충돌을 감지하고, 내가 반응이 없자 119에 신고를 했던 것이다. 잠시 후에 119가 도착했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처치는 물론 이후 입원 치료까지 잘 받아 지금은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만약 아무도 없는 외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면, 신고해줄 사람도 없는데 어땠을까?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요즘은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스마트워치의 ‘충돌감지기능’이 사고가 나면 도움을 요청함으로 골든타임이 지나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우리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와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는 정신이 혼미하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있게 된다. 이때 우리에게 영적인 충돌감지기능이 필요하다. 영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시대적인 상황과 나에게 일어나는 상황들을 빠르게 분별하고 판단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분명히 영적인 위기 상황인데도 멍하니 있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빠르고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게 하는 영적인 충돌감지기능이 잘 작동하게 하려면 평상시 신앙의 훈련이 중요하다. 예배 잘 참석하고, 기도 많이 하고, 찬양 많이 하고, 열심히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평소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면 혹시 우리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영적충돌감지기능이 작동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야훼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암 5:6).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남으로, 봄꽃들이 아름답게 만개하는 이 시기에 우리의 신앙도 믿음 안에서 활짝 피어나길 기도한다.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90) 로마로 압송되는 바울
  • 드디어 바울은 로마를 향해 떠난다. 사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롬 1:15).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기에 모든 길은 로마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도 바울의 로마행은 번번이 가로막혔다(롬 1:13, 15:22). 이제야 비로소 로마에 가게 되었는데 자유인의 신분이 아니라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한 죄수로서 압송 되었다. 바울의 로마까지의 호송 과정(행 27~28장)은 다시 1인칭 복수 시점인 ‘우리’로 서술된다(“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행 27:1).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이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목격자의 진술이며 역사적 신빙성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기술적인 문제로 긴 항로를 한 번에 직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안에 바짝 붙어서 단거리를 항해하는 여러 배편을 요즘 말로 ‘환승’해 가면서 목적지에 이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탄 배는 소아시아 해변의 여러 지역에 기항하는 ‘아드라뭇데노’라는 이름의 배였다. 아구스도 부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 및 여러 죄수를 로마까지 호송할 책임을 맡았는데 그 배에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바울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탔다. 이튿날 시돈 항구에 도착했는데 백부장이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곳의 지인들에게 가서 대접받는 것을 허락했다. 그곳을 떠나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해 항해하며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市)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이달리야로 가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만나 백부장이 갈아타도록 했는데 배가 더디 가는 관계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풍이 너무 거세어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 삼아 항해하며 간신히 라새아 시에서 가까운 미항(美港)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미항에서 순풍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됨에 따라 ‘금식하는 절기’(대속죄일, 보통 10월 초)도 이미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태한 상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9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는 항해가 위태한 기간이었고, 11월 11일 후에는 탁 트인 바다에서 하는 모든 항해가 겨울이 끝날 때까지는 중지되었다(C. H. 탈버트 등). 그래서 바울은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치리라”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어차피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그레데의 항구인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남풍이 순하게 불기에 그들의 뜻대로 되는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했는데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 향후 2주일 이상을 표류하다가 파선하기에 이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바울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 성전 옆 안토니아 요새에 구금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말씀하신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어떤 환난에서도 주님의 말씀은 그것을 극복할 힘과 용기와 소망을 공급해 준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9) 바울의 아그립바 2세왕 앞에서의 증언
  • 총독 벨릭스와 그의 후임자 베스도는 바울의 결백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관할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그를 계속 구금해 놓자 바울은 로마 시민의 권리 중 하나인 황제(가이사)에게 상소하는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로마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그가 로마로 떠나기 전에 베스도 총독과 가까이 지냈던 헤롯(아그립바 2세)왕이 베스도를 찾아와서 교제를 나누다가 바울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도 그를 한번 심문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베스도가 총독 접견실에 고관들을 부르고 바울을 심문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바울은 발언권을 얻자 먼저 아그립바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것에 착안해서 유대교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바리새인으로서 죽은 자의 부활을 굳게 믿어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유대교에 대한 열심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해서 그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다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행 26:13)을 보고 땅에 엎드러졌는데,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그 즉시로 이 명령에 순종해서 다메섹과 예루살렘 사람,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라고 전하자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까지 살아서 증언한 것이 “선지자들과 모세”(즉 구약성경)가 장차 반드시 되리라고 예언한 것, 즉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실” 것 뿐이었다고 강변했다. 바울이 여기까지 말하자 베스도 총독이 제지하면서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했다. 그러자 바울은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라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아그립바에게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 선지자를 …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이에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자, 바울은 담대하게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과 왕비 버니게 그리고 베스도 총독과 참석자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라고 했다(행 26:31). 그래서 아그립바는 최종적으로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행 26:32)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먼저 이야기 한 것(행 25:17~21)까지 포함해서 바울의 무죄를 로마제국의 고위 관리들이 세 차례에 걸쳐서 증언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 증언한 것(눅 23:4, 15, 22)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가 저술한 2부작 ‘누가복음-사도행전’은 기독교 복음의 위대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은 모두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되었지만 사실은 로마의 최고위층의 세 번에 걸친 무죄 선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로마제국에 항거한 정치범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 있다. 바울의 심문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세를 통해서도 그의 백성의 정당성을 밝혀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학장)
  • 2024.03.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8) 세 번째 반복되는 바울의 회심 이야기
  • 예루살렘 성전 곁 로마의 안토니아 요새의 천부장 루시아는 유대인의 암살 흉계로부터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 총독의 거주지인 가이사랴로 이송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의 성화에 총독 벨릭스와 그의 후임자 베스도는 바울의 결백을 알면서도 그들의 환심을 사느라 바울을 계속 억류하자 그는 마침내 로마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청한다. 베스도는 바울의 호소를 받아들여 로마로 압송하기로 했다. 그러는 중에 아그립바 2세왕과 버니게가 그를 찾아오자 베스도가 그들에게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흥미를 느낀 아그립바는 자신도 한번 바울을 심문하겠다고 하자 베스도는 자신의 관저 접견 장소에서 여러 고위층을 초대하고서 심문을 시작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말하라고 하자 그는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그립바에게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바울의 말을 잘 이해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바울은 자신의 젊은 시절 예루살렘에서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심문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 즉 죽은 자의 부활을 전파한다는 이유(바리새인들의 신앙! 참조. 행 23:6~8) 때문이라고 밝힌다. 급기야 그는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라고 항변하기까지 한다(행 26:8). 그리고는 예수 믿는 자들을 극렬히 박해했던 지난날을 술회한다.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그들을 죽일 때에 찬성투표를 했으며, 회당마다 가서 박해하여 강제로 예수를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 도시에까지 가서 박해했는데 그러다가 다메섹까지 가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이야기가 뒤따른다. 다메섹을 향해 가는 중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자 땅에 엎드러졌는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즉 ‘나를 박해하는 것은 너만 고생하는 일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서,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여쭸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는 말씀이 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장차 바울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한 말씀이 들려왔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6~18). 사도행전에는 중요한 기사가 세 번 반복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울의 회심 이야기(행 9, 22, 26장)가 대표적이다. 각 기사마다 다소간의 차이점과 특이점이 있는데, 첫째는 사도행전 저자 자신의 설명이고 둘째는 바울의 유대인 폭도들에 대한 연설이었으며 셋째는 아그립바 왕에게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설명이다. 이처럼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그의 변화로 인해 복음이 이스라엘 땅을 넘어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멀리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김호성 목사(목회 담당 부목사 겸 영산성서연구원 원장)
  • 2024.02.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65) 종교개혁⑤
  • 16세기 초 교회와 경건<4>
    에라스무스는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에게도 세 가지 악이 활동하고 있기에 여전히 은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 가지 악이란 영적인 무지함, 육적인 정욕, 그리고 육체의 연약함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이성이야말로 이러한 육과 영의 대립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빛 가운데로 이끄는 은총의 길잡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라스무스는 신약성서와 함께 종교적 경건을 위해 교부들의 글을 연구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히에로니무스, 푸아티에르의 힐라리우스, 크리소스토무스,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이 편집되어 쏟아져 나왔다. 에라스무스는 교부들의 작품들을 읽고 연구하는 이성적 노력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개혁신학은 16세기 초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히 넓게 확산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당시 종교적 경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것이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회를 중심으로 한 금욕주의적 경건이었다. 당시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원 회원이자 수련원장이었던 팔츠의 요하네스, 그리고 독일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원 총 책임자였던 슈타우피츠의 요하네스 등이 16세기 전환기에 하나님의 은총 아래 금욕주의적 경건을 강조하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여기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과 영성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스스로의 경건으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건은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라는 은총이 있을 때 큰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루터가 왜 그토록 혹독한 경건의 삶을 고수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갈망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16세기 초 종교적 경건의 마지막 형태가 신비주의였다. 중세후기의 신비주의는 세 가지 노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요하네스 타울러와 하인리히 수소에게 이어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독일 신비주의이다. 둘째는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사색적인 신비주의이다. 셋째는 보나벤투라, 클레르보의 베른하르트, 요한 게르손 등의 소위 가톨릭적 신비주의이다. 이 세 가지 신비주의는 각기 16세기 전환기에 뜨거웠던 종교적 경건의 형성에 독특한 근거를 제공했다. 먼저, 클레르보의 베른하르트가 강조한 것은 ‘관조’(contemplatio)였다. 명상과 사색을 통해 신을 관찰하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밖에서의 자아 인식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관조를 위해선 무엇보다 초월적 경험이 중요한데 이는 진리를 명상함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감성적인 이성이 매우 중요했다.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건운동은 독일 라인강을 따라 물결치기 시작했다. 특히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들에게서 활발했기 때문에 도미니칸 신비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을 일컫는 호칭은 ‘하나님의 친구들’(amici dei)였다. 이들은 중세 가톨릭의 미사를 통한 신앙에 반대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내적인 체험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자기 부인의 길을 통해 인간의 욕구와 의지를 극단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믿었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인간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일치와 연합이 목표였다. 마지막으로 디오니시우스의 아레오파기타의 신비주의는 6세기 이후로 유통되고 있던 신비서적에서 비롯되었다. 교회전승에 따르면 디오니시우스는 아덴의 첫 번째 감독이었다. 그의 신학은 부정신학(via negativa)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정의를 부정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려던 신학이었다. 이를 통해 모든 인간의 객관적인 사고를 벗어나 계시의 말씀 건너편에 숨어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던 중세 스콜라신학과는 서로 대치될 수밖에 없었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2024.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4) 종교개혁④
  • 16세기 초 교회와 경건<3>
    지난 회에서 살펴보았듯이 15~16세기 무렵 성서를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와 함께 내면의 종교적 경건에 힘쓰고자 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성서연구와 경건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를 ‘작은 예수로서의 삶’으로 보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직접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거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들은 경건한 삶을 통해 스스로를 개혁하고 더 나아가 당시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이러한 16세기의 경건운동은 먼저 요하네스 폰 베젤 수도사에게서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당시 글을 통해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한편, 설교를 통해서도 직접 일반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는 신앙이 아니라 이성으로 성서를 이해하려 했던 변질된 스콜라신학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억압하는 가톨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그는 면죄부 판매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는 루터보다도 앞선 종교개혁적 요구였다. 비록 그는 종교재판에 넘겨져 죽었지만 그가 노력했던 경건운동과 신앙의 개혁은 요하네스 폰 고흐, 베젤 강스포르트,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 그리고 마르틴 루터에게까지 이어졌다. 마르틴 루터는 훗날 자신의 칭의론과 유사한 사상을 전개했던 베젤 강스포르트를 가리켜 “나는 모든 것을 베젤 강스포르트에게서 넘겨받았다”라며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에라스무스는 원어로 성서 본문을 연구하고 주해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라틴어 번역본이었던 불가타를 중심으로 한 전통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본래의 말씀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아래는 1516년 출판한 신약성서의 서문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인문주의적인 개혁신학의 목적을 밝히고 있는데, 신학을 전공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신약성서의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는 사시고, 숨 쉬고, 오늘 우리를 위해 말씀하신다.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셨을 때보다 더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직접 그분을 보고 들은 것보다, 당신은 복음서에서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있다. 당신은 단지 눈과 귀만 열면 된다. 내게는 참된 신학자란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빙빙 돌려 말하는 삼단논법이 아니라 (성서를 통해 얻은) 내적인 감동, 직접적인 체험 그리고 실천하는 삶으로 이 세상의 부를 경멸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보화에다 그의 신앙을 올려놓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전심으로 하늘을 신뢰해야 하며, 불의에 대응해서는 안 되며, 저주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동일한 것을 설교하고, 깊은 감동을 주며, 권면하고 초대하며 격려하는 사람은 그가 노동자이건 직물업자이건 간에 정말로 참된 신학자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모두 성서의 위대한 저자들을 연구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성서를 항상 우리 곁에 두지 못하는가? 항상 성서를 손에 쥐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연구하고 찾으라. 무엇 때문에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주석과 그것이 지닌 모순된 의견에 거의 모든 우리의 생을 허비하는가? 물론 그 주석들 안에는 신학자들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 없이 성서 그 자체는 장래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의 학교가 될 것이다.”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부원장)
  • 2024.03.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63) 종교개혁③
  • 16세기 초 교회와 경건<2>
    중세 후기 교회가 내세웠던 신학적 교리들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다. 당시 보편(universals)이 실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교리들은 로마 교회와 그 주교인 교황을 여러 개별 교회와 신자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게 했다(2022년 12월 23일 자 기사 참조).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가르쳤으며 자신들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따르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가르침은 16세기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고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까지 요구했으며, 결국 평범한 예배나 성례전만으로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중세 후기 스콜라 신학과 그 체계를 무너뜨린 것은 유명론이었다. 이에 따르면 보편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일 뿐이므로 결국 그들이 말하는 궁극적인 제1보편자로서 하나님의 실존은 증명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만으로 증명될 수 없는 분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계심을 증명하는 것은 이성의 일이 아니라 신앙의 일이다. 신앙에 관한 일들은 이성을 통해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유일한 원천은 성경이다. 성경은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며 믿음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르침과 진리에 대한 유일한 근거 역시 성경뿐이다. 성경이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면 교회의 교리는 교황이나 로마 가톨릭교회에 좌우될 수 없다. 교황은 절대무오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로마 교회는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해선 안 된다. 교황이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없고 세속의 정치적인 일들에 간섭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신학적 인식의 대전환은 경건한 신앙에 갈급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을 품게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삶을 최고의 덕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들은 성경을 묵상하고 주석과 성경 본문을 매일 낭독했다. 과거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수도원주의와 달리 16세기 경건운동은 성경을 읽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확신하는 데 있었다. 당시 대표적인 경건 서적은 토마스 아 켐피스(1379/1380~149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그는 네 권으로 나누어 경건한 삶에 관해 설명했는데 1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요 8:12). 이것은 우리가 진실로 빛을 발하고 마음의 모든 눈먼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할 때 얼마만큼이나 우리가 그분의 삶과 성품을 본받아야 하는가를 권고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깊이 숙고하는 일에 우리의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자들의 모든 가르침보다 뛰어나며 영이 있는 사람은 바로 여기서 감춰진 만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복음서를 자주 읽기는 하지만 배고픔과 갈증이 없이 생명의 떡을 찾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완전하게 배우고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온 삶이 작은 예수의 삶(=제2의 예수로서의 삶)이 되도록 전심을 다해 힘써야만 한다.
  • 2024.02.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47)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60>
  • 모든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과 십자가 앞에 겸손히 스스로 낮아져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교만은 ‘마음의 중심’에 깃들며, 자기중심적인 자만심으로 비정상적으로 툭 튀어나온 부풀어진 마음의 상태이다. 구약성경 오바댜 1장 3절은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라고 기록한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 ‘거짓된 안전의식’에 빠져 있던 자를 책망하는 말씀이다. 15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중에 사보나롤라(G. Savonarola, 1452∼1498)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수도사로 부임한 성당에서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성당 앞 성모 마리아상 앞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중년 부인 한 사람이 경건한 모습으로 성모상에 참배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이튿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똑같은 시간에 그 부인을 그 자리에서 만났다. 그렇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같은 시각에 와서 마리아상 앞에 참배하는 신실한 부인의 모습에 사보나롤라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보나롤라는 동료 사제와 산책을 하는 도중에 또 그 부인을 보게 됐다. 그가 그 부인을 가리키면서 “여보게 내가 저 부인을 가만히 살펴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어.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치나 꼭 같은 시간에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단 말이야. 참 신앙심이 대단해 보이지 않나?” 그랬더니 옆에 있던 동료 사제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아직 마리아상과 저 부인에게 얽힌 사연을 잘 모르는구먼. 오래전에 이 성당에 저 마리아상을 처음 조각하도록 위임받은 조각가가 그 대상이 되는 모델을 찾았을 때, 선정된 사람이 바로 저 부인이라네. 어리고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의 저 부인이 바로 그 모델이었던 거지. 그래서 저 부인은 저 마리아상이 완성돼 저곳에 놓인 그 이튿날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 빠진 일이 없다네.” 사실 그 부인은 신앙심으로 그 자리에 매일 왔던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매일 그 자리에서 젊은 시절 자기 얼굴을 보고 자기를 즐기고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죄의 뿌리이다. 사탄은 에덴동산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와 첫 번째 유혹을 이렇게 던졌다.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이처럼 교만은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시킬 때 바로 그것이 교만이다. 연약한 인간은 죄를 범할 수 있으며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이런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과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자기를 상대화시켜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5:3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46)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9>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가장 앞장서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악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하는 가장 큰 죄를 7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다. 그것은 ① 교만 ② 시기 ③ 탐식 ④ 색욕 ⑤ 분노 ⑥ 탐욕 ⑦ 게으름이다. 소위 ‘7가지 대죄(大罪, Capital Sins)’라는 이 목록은 교황 그레고리 1세(Gregorius I, 540~604)가 분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성경에는 ‘대죄’라는 말은 없다. 비슷하게 ‘사망에 이르는 죄’(요일 5:16),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사함을 얻지 못하고(마 12:31),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는 죄’(히 6:4~6),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죄’(고전 6:9~10)가 있다. 7가지 대죄와 비슷한 성경 말씀은 잠언 6장 16절부터 19절에 “야훼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죄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막 7:21~22). 그 일곱 가지 ‘대죄’ 중에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오래되고 유명한 신앙 도서 『참회록』의 저자 성 어거스틴(S. A. Augustinus, 354~430)이 말하기를 “교만은 인간이 빠지기에 가장 쉬운 것인 동시에 인간이 극복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교만’의 죄가 빠지기 쉬운 죄이고, 또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교만의 죄는 그 결과가 매우 치명적인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교만의 죄로 인해 실패하고 좌절하며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가장 아름다운 지위를 가졌던 천사 루시퍼도 교만으로 인해 사탄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사 14:13~14). 잠언 16장 18절은 엄중히 경고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가장 앞장서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악이다. 그렇다면 교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그 충만한 성령과 함께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교만하지 말라’고 친히 말씀해 주실 것이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야훼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 13:15).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3.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45)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58>
  • 스스로 잘못했으면서도 더 큰소리치는 것이 교만한 자의 특징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 바울이 두 번에 걸쳐 서신을 보냈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근심하며 경고할 만큼 교만했다(고전 4:6). 바울과 아볼로는 신실하고 겸손한 주님의 종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높이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높임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파를 만들고 아볼로파를 만들었다. 거기에 게바파와 더 나가 그리스도파까지 만들어 편을 나눠 당을 짓고 서로 대적했다.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라고 말했다(고전 4:18~19).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대적하며 편을 나눠 다투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그들은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사도 바울이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마음이 높아져 ‘이미 배울 것들을 모두 배웠다’는 교만으로 가득해 우월감과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사실 그들 가운데 음행을 저지른 자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계모를 성적으로 범한 자도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방인의 법이었던 로마법에서조차 엄격하게 금지하는 악행이었다. 하지만 더 나쁜 것은 그런 추악한 음행을 저지르고도 회개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도 역시 ‘교만’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 잘못했으면서도 더 큰소리치는 것이 교만한 자의 특징이다(고전 5:1~2).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서는 시장에서 파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 때문에 분쟁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꺼림칙하니까 아예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지 않았다. 심지어는 친척의 잔칫집에 가서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고기는 어디까지나 고기에 불과하며 이방신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는 이들도 있었다. 이 두 가지 모습 모두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였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말씀한다. 사랑 없는 지식은 교만해져서 형제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상처를 주고 교만함을 뽐내는 ‘지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온전한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에 관심가져야 한다(고전 8:13).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마음이 높아져 교만했기 때문에 서로를 대적했고 음행을 저질러도 회개할 줄 몰랐으며 더 나아가 신앙공동체인 형제자매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성령 충만한 주님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교만을 벗어 버리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 스스로 낮아지는 사람이며, 또한 겸손히 믿음의 형제자매를 섬기고 교회에 충성하며 봉사와 나눔에 힘쓰는 성령의 사람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4.02.16 / 김용두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Ⅱ)
  • 안디옥교회의 문자적 성경해석을 따라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한 것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라고 주장해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가지는 권위는 설교자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오는 권위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 교수는 “설교자들이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고 그 받은 주님의 말씀을 설교할 때라야 그들의 권위가 인정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성경 해석과 성경적 설교』, P.34).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해석하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해석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여왔다. 바로 알렉산드리아교회가 사용하던 알레고리적(풍유적) 해석과 안디옥교회가 사용하던 문자적 해석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의 생애와 설교 방법론을 살펴보면서 이미 설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 방법론을 다루기 전에 그가 사용했던 문자적 해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랐던 안디옥교회의 영향 때문이었다.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은 알렉산드리아교회의 지도자들이 강조했던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을 거부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성경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성경 단어들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요, 성경에서 상식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처럼 성경 본문 속에 숨어있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의 문자가 가지는 직접적이고, 표면적이고, 문법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특히나 안디옥교회의 성경 읽기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의 사건들을 위한 예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의식적으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베르너 진론드, 『신학적 해석학』, P.43).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 알레고리적이고 영적인 해석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알레고리로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왕대일, “성서해석사에서 배우는 설교의 과제”, P.29). 결론적으로 알레고리적 해석과 문자적 해석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성경해석법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디옥교회가 성경 본문의 단어와 문법이 가진 중요성을 강조할 때, 알렉산드리아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 본문이 가진 보다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왕대일, P.29).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데 이 방법론들은 좋은 도구들이다. 안디옥에서 나고 자랐으며 신학교육을 받은 크리소스토무스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던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자적 성경해석을 옹호했던 그는 성경을 읽을 때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문법적인 의미와 역사적 의미를 선호했다. 문법적인 의미는 성경이 가지는 상식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었고 역사적 의미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온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폴 스콧 윌슨, 『그리스도 설교의 역사』, P.55~56). 특히 그는 성경에서 발견되는 은유적인 표현이 성경 밖에 존재하는 의미를 가리키기보다는 성경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성경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를 강조했던 크리소스토무스의 성경해석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첫째,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이해했다. 그는 구약성경을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예언한 글’로 생각했다. 또한 구약 시대의 유대 절기를 더이상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진리 자체[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폴 스콧 윌슨, P.56). 둘째, 크리소스토무스는 복음서 연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복음서 사이의 차이점을 불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조화들이 “모든 의심들로부터 복음서를 건져주고 오히려 [복음서] 저자들의 특징에 대해 더 명확하게 말해준다”라고 믿었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P.97). 또 마태복음 서두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에서 마리아 이전에 등장하는 세 여인, 즉 다말, 룻, 밧세바 등 3명만 언급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다. 셋째, 크리소스토무스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했다. 그는 사도행전의 주제가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에 주목했고 그 저자가 바울의 동료였던 누가라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그는 바울의 편지가 회중을 위한 감사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했고, 로마서가 기록된 이후에 골로새서가 기록됐고, 다음으로 디모데후서가 기록됐다고 추론했다. 이런 크리소스토무스의 성경해석법은 “당대의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오늘날의 신약학자들과 더 유대감이 있어 보인다”(O. C. 에드워드, P.98).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4.04.12 / 이미나 기자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Ⅰ)
  • ‘황금의 입’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위대한 설교자 알레고리적 해석이 아닌 문자적 해석 배워 기독교 부흥기에 불의와 압제에 과감히 맞서 기독교 역사에서 주후 4세기는 엄청난 변화의 시기였다. 설교학자 에드워드 다간은 이 시기가 인류 문명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으며 기독교의 역사와 기독교 설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Edward Dargan, History of Preaching 1, P.60~61). 주후 64년 로마 대화재로 촉발된 기독교에 대한 길고 긴 박해의 시대가 가고 로마제국을 기독교의 깃발로 뒤덮을 놀라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첫 그리스도인 황제라고 평가받는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이 있다. 3세기 후반 로마제국은 외적의 침략, 내전, 역병,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결국 나라를 네 개로 나눠 네 명의 통치자가 다스리는 ‘4두 체제’(Tetrarchy)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제시되었고 실시됐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287년 시작된 4두 체제는 324년 콘스탄티누스가 모든 정적을 물리치고 통일된 로마의 유일한 황제에 오르면서 마무리됐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적 자유를 얻은 기독교는 이후 통일 로마의 황제에 오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제국의 종교로 부상했다. 제국 전역에 통일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콘스탄티누스는 교회 내에 존재하는 교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다. 이것이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중요한 이유이다. 이제 기독교는 법의 보호 아래 번성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종교에 대한 국가 지원이 끊기면서 로마 사회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귀족들과 시민들의 관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유럽의 많은 지역에 큰 교회당을 지었고 이를 통해 기독교가 그 지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국가 지원은 물론 개인적인 지원이 끊기면서 그들의 신전은 기독교회로 바뀌는 경우도 자주 일어났다(알리스터 맥그래스 『기독교의 역사』, P.101~102). 이제 기독교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종교가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 적응하며 차츰 제국의 종교가 되어가던 344년(혹은 345년)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 있던 안디옥에서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가 태어났다. ‘크리소스토무스’라는 말은 ‘황금의 입’(golden mouth)라는 의미로 위대한 설교자였던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요한네스의 아버지는 로마의 고위 공무원이었지만 그가 유아였을 때 죽었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그의 어머니 안투사는 기독교 신앙에 헌신하며 아들 양육에 전념했다. 그는 당시 뛰어난 수사학자였던 리바니우에게서 수학하면서 웅변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375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약 6년을 머물면서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이 기간 그는 스승 디오도루스로부터 당시 유행하던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이 아니라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성경 연구 방법을 배웠다. 381년 처음 집사에 임직된 크리소스토무스는 386년 안디옥의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가 설교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387년에 일어난 폭동 때문이었다.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흥분한 안디옥 시민들은 황제와 황후의 동상을 부수며 격렬히 항의했다. 이때 크리소스토무스는 “조각상들에 관하여”라는 21편의 설교를 연속으로 행했고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약 12년 동안 안디옥에서 활동하던 그는 397년 지방 총독의 소환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에 올랐다. 50세가 채 되지 않은 젊은 감독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말씀을 전했다. 특히 자신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사치를 멀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것을 권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설교에 반응했지만 부자들과 고급 관리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처음에 그를 열렬히 환영했던 서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부부(특히 황후 유독시아),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하려던 알렉산드리아 감독 데오빌로스 그리고 지역의 종교 관계자들은 절제와 온유와 구제를 강조하는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에 분개했고 고발장을 작성해 그를 추방하고 말았다(404년). 그러나 여전히 그를 추종하던 더 많은 사람이 그의 귀환을 요구하며 궁전을 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황후 유독시아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크리소스토무스를 복귀시켰다. 복귀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설교를 통해 귀족들의 화려한 생활을 비판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대성당에 세워진 자신의 은조각상을 세운 황후 유독시아를 구약의 ‘이세벨’과 비교하며 비판했다. 이 일로 다시 추방된 그는 흑해의 고립된 마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407년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조지훈 목사(순복음선교연합회 담당)
  • 2024.03.08 / 이미나 기자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Ⅲ) 
  • 설교 역사에서 최초로 설교 형식을 제시한 오리게누스 성경 본문의 역사적, 문법적인 연구 강조 성경 주석에 기초한 설교 발전시켜 성경 해석에 있어서 오리게누스가 사용한 알레고리라는 방법론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어떤 설교학자는 “공상에 더 가까운 비유적 해석에 빠져 들어가서 성서의 설명과 적용에서 이탈되곤 했다”라고 평가한다(정장복, 『인물로 본 설교의 역사(상)』,P.42). 그렇다면 그는 성경 본문 해석에서 어떤 식으로 알레고리를 사용했던 것일까? 그가 행한 설교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아브라함의 3일 간의 여행은 탐색, 갈망, 분별을 상징한다; 창세기의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가리킨다; 요셉이 입은 자색옷은 다양한 지식을 의미한다; 부정한 고기에 대한 규칙들은 검소함에 대한 가르침을 뜻한다;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깨끗한 짐승은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성찰하는 정통주의자(the orthodox)를 의미한다…보리떡과 기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미하고 물고기는 헬라 철학을 상징한다”(Hugh Thomson Kerr, Preaching in the Early Church, P. 113~114). 그러나 설교학자 클라이드 팬트(Clyde E. Fant)는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방법으로 인해 오리게누스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알레고리 성경 해석은 오리게누스가 발전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팬트는 그가 기독교 설교 역사에 행한 일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팬트는 오리게누스가 설교 역사에서 두 가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Clyde E. Fant, 20 Centuries of Great Preaching: Biblical Sermons to Savonaola, 1971, P. 32~33). 첫째, 오리게누스는 설교 역사에서 설교의 형식을 제시한 최초의 설교자였다. 그에게 설교는 설교자가 택한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설이었다. 설교자는 자신이 택한 성경 본문을 연구한 후에 그것을 청중들에게 설명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오리게누스가 생각한 설교였다. 그러나 오리게누스가 지금과 같은 설교 형식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행한 설교의 구조는 수사학적인 이론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즉, 그의 설교들은 “논리적 형식이나 또는 수사학적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P. 43). 둘째, 오리게누스는 성경 본문의 역사적이고 문법적인 연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최초의 설교자였다. 그는 설교를 위해 선택된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본문의 문법적인 사항을 주의 깊게 주석(exegesis)하는 것이 설교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보다 깊이 있는 성경연구를 위해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후에 6개의 성경 번역문을 하나로 묶은 ‘헥사플라’(Hexapla)를 만들었다. 또한 어떤 본문에 있는 단어가 다른 본문에서는 어디에서 발견하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상징을 개발했다. 기독교 설교 역사의 초창기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설교는 학습되지 않은 것이었고 구조적으로도 엉성한 것이었다. 오리게누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학자층과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오리게누스는 설교자가 성경에서 3가지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폴 스콧 윌슨, 『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P. 48~49). 첫째, 육적이거나 문자적인 의미이다. 이 해석 방법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성서 해석의 잘못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둘째, 혼(魂)적 또는 도덕적인 의미이다. 이 해석법은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영혼을 일깨워준다. 셋째, 영적 혹은 신비적-종말론적인 의미이다. 이것은 “한 사람을 진리에 연합시키려는 목적”의 방법론이다. 오리게누스에게 육적이고 혼적인 성경 연구방법은 성서의 영적인 의미를 찾아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즉, 그에게 “문자적인 해석이란 단순히 성서 본문의 의미를 보다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성서 해석의 한 단계”였던 것이다(폴 스콧 윌슨, P. 49). 오리게누스는 기독교 설교 역사의 막을 열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알레고리 성경 해석을 행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로서 그의 업적은 기독교를 이방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었다는 것과 다양한 성서 해석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를 좀 더 깊이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의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본문의 주석에 기초한 설교를 생성시킨 그의 공로는 기독교사에 그 본격적인 첫 장(章)을 펼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설교의 역사를 이끌어 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정장복, 『인물로 본 설교의 역사 (상)』,P. 43~44). 조지훈 목사(순복음선교연합회 담당)
  • 2024.02.08 / 이미나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문화의 장벽을 넘어
  •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표현 양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렇기에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종교를 설명할 수 없고 복음의 선포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교차 문화’(cross-cultural)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차문화란 일반적으로 두 개 이상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지역의 장벽을 넘어 ‘함께’(together) 공유되는 것, ‘나’(I)에서 시작한 것이 ‘우리’(We)로 끝맺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가 이 같은 교차 문화가 빈번히 일어나는 교류의 장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2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OTT 서비스 산업의 대표주자로서 세계 각지의 영화를 선별하여 소개하거나 최고의 이야기를 발굴해 시리즈로 제작하여 190여 개국의 이용자들에게 공유하는 일을 한다. 그 결과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서로 다른 ‘내’(I)가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를 공유하고 ‘우리’(We)라는 글로벌 공동체를 형성하여 같은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특정 나라의 콘텐츠가 넷플릭스 상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 놀이와 음악과 언어 등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음을 모두가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교차 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향유 속에서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보편성을 갖게 한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보편성을 확산시키는 것을 교차 문화라고 한다면 음악 분야에서는 팝 음악을 교차 문화의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팝 음악은 ‘파퓰러 뮤직’(Popular Music) 즉 대중음악이라는 말에 기원을 두며 본래 특정 계층이 아닌 동시대 대중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음악을 지칭했다. 대중음악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음악 지식이 없어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말한다.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팝 음악은 지역 간 문화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고, 5000㎞나 떨어진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소위 ‘K팝’(Korean pop music)으로 불리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영국과 미국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영어권이 아닌 동양에 있는 한 작은 나라의 가수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그 나라의 언어로 된 노래가 뉴욕 한복판에서 헬싱키와 산티아고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재밌는 사실은 팝 음악의 형성기에 교회음악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초기 팝 음악에는 기독교적 내용이 녹아 있었고 대중들은 이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곡을 뽑는다면 미국의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이다. 이 곡은 노예 상인 출신이었던 존 뉴턴 목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지은 가사에 곡조를 붙여 만든 찬송가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한국어 제목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다. 음악 역사학자 길버트 체이스(Gilbert Chase)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찬송가 중 하나로 종교적인 목적과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대중적인 찬송가다. 현재는 원래의 종교적 측면을 훨씬 넘어, 과거의 인종적 또는 정치적 의미도 초월하여, 오늘날 대중문화의 필수적인 노래가 됐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말처럼 북미의 인디언 체로키 부족도 이 찬송가를 애송했고 남북전쟁, 흑인 운동,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도 이 찬송가가 불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던 날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을 때도,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을 때도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졌다. 이런 의미에서 찬양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함께’(together)의 가치를 공유하는 교차 문화의 수단으로서 효과적인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음의 메시지가 음악을 타고 전 세계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국제신학연구원>
  • 2024.04.19 / 김용두 기자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항상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262×205㎝ 크기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이 작품은 누가복음 15장에서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탕자의 귀향>은 명암을 따라 세 가지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의 품에 무릎을 꿇고 안겨있는 작은아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작은아들은 집을 떠날 때만 해도 부잣집 아들답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저분하고 낡은 옷을 걸치고 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신발은 다 닳아졌다. 길었던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머리숱이 없는 삭발한 모습이다. 그의 행색은 집을 떠나 먼 곳에서 겪은 수모와 고통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 있는 단검이 눈에 띈다. 모든 걸 탕진하고 처참한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왜 단검만은 팔지 않고 남겨둔 걸까. 칼이 과거에는 신분이나 명예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단검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끝까지 단검을 지킴으로써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이 아직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붙잡았다. 결국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신분이 그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리도록 이끌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모습을 살펴보자. 렘브란트가 묘사한 아버지는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닌 인자한 노인의 모습이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붉은 색 망토로 아들을 휘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림 전체에서 가장 빛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과는 상관없다. 아버지에겐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의 누추한 모습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가슴에 폭 안겨 참회하고 있는 아들을 포근하게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양손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왼손은 강인하면서 남성적이다. 오른손은 왼손과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부드럽게 표현된 손등과 가지런히 배열된 손가락이 마치 여성의 손과 같다. 근육질의 왼손이 아들을 단단히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라면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듯한 오른손은 위로와 평안을 주는 어머니의 손이라고 볼 수 있다. 돌아온 아들을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결연한 의지와 동시에 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따뜻한 사랑이 탕자를 감싼다. 마지막으로 큰아들을 살펴보자. 렘브란트는 큰아들을 화면 우측에 공간을 크게 할애하여 다룬다. 아버지의 빛에서 곧바로 반사되는 빛은 다른 조연들과는 달리 그가 장자임을 가리킨다. 동생이 돌아온 사실에 함께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큰아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와 동생을 관조하고 있다. 그의 손을 주목해보자. 어두운 오른손이 왼쪽의 밝은 손을 짓누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활짝 반기는 양손과 대조를 이룬다. 자신의 빛나는 손을 짓누르는 어두운 손을 통해 그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동생의 귀향을 보고 분노와 시기에 사로잡힌 큰아들은 외적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잃어버려진 상태이다. 어쩌면 그는 숨은 탕자가 아닐까. 렘브란트는 젊은 나이에 화가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부를 누렸으나 그의 말년은 화구와 몇 벌의 옷만이 재산으로 남았을 만큼 지극히 초라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자식을 셋이나 잃고 아내마저 죽게 된다.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려 1남 1녀를 낳았지만 아들과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이어 첫 부인이 낳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도 죽는다. 가족을 잃는 슬픔과 함께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수직으로 추락했다. 그의 삶은 탕자 그 자체였다. 실패와 슬픔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려진 <탕자의 귀향>은 렘브란트 자신의 영적인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은아들의 상실이나 큰아들의 상실 모두가 그의 삶에서 발견되는 모습이었다. 렘브란트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두 아들 모두 치유하고 용서하는 아버지의 포옹이 필요함을, 자신의 잘못으로 부서져 버린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버지의 따뜻한 품,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렘브란트의 63년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끝에서 그려진 이 마지막 신앙고백은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탕자와 같이 본래의 거처인 하나님의 품을 떠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더 먼 곳으로 떠나 방황하는 우리의 인생을 본다.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용서’로 하나가 된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냉담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교만하며 분노하는 큰아들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우리를 따스한 빛이 감싼다. 궁극적으로 빛의 근원이시며, 사랑과 용서와 연민과 화해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우리를 그 빛으로, 아버지의 따듯한 품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3.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공감의 언어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의 언어가 있다면 단연 음악일 것이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라는 문학 시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음악은 인류의 보편적 언어이다.” 그저 리듬과 높낮이로 이루어진 소리일 뿐인데 그 소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게 한다. 이는 경계를 초월하고 다른 문화를 연결하며 내면의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놀라운 능력이 음악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다른 이해와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음악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즐거움과 아름다움, 감동과 역동의 세계를 경험한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K팝 열기에 지칠 줄 모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데 이어 2023년 1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상’에서 단독 공연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2022년 10월 신종 코로나 사태 중에 BTS가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엔 전 세계 191국에서 100만명의 관객이 모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국빈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버킹엄궁에서 만찬을 가졌을 때 한국 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특히 찰스 3세는 “영국에 비틀스(The Beatles)의 렛잇비(Let It Be)가 있다면 한국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BTS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왜 이토록 BTS에 열광할까? 2019년 영국의 ‘타임스(Times)’를 통해서 기사화되었지만 이는 ‘변방’이었던 영국에서 시작된 비틀스 신드롬이 미국을 급습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1960년대 문화현상)’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 역사를 바꾼 일련의 과정과 같이 BTS의 영향력을 그와 유사하게 보기 때문이다. 마치 비틀스는 1950년대에 젊은이들의 반항이나 욕구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던 로큰롤을, 희망 가득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BTS도 세대를 공감하는 메시지, 나아가 기대와 희망에 찬 음악으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K팝이 서구의 음악 팬들이 비(非)서구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라고 간주하며 K팝의 대중성을 널리 알렸다. K팝의 인기만큼 한국 교회 성도에게 잘 알려진 찬양이 있다. 2020년 12월에 첫 음반을 내고 2022년 한 해 동안 3000만 회 이상 공유된 찬양으로 손경민 목사가 작사·작곡한 ‘은혜’라는 찬양이다. 고려신학대학교 변종길 교수는 “K-찬양의 탄생”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찬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코로나 시기에 발매된 이 음반은 당시 코로나로 힘들어하던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질병과 생활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여 괴로워하며 힘들어했던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시간 등 인생의 세찬 바람으로 인해 고난과 절망을 가슴에 묻어두며 힘겹게 걸어야 했던 순간들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때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를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Story)에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되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이야기에 ‘나’만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나’ 홀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지체들도 ‘나’처럼 힘겹게 걸어온 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 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이 당연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삶의 고백이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함께 공감의 눈물로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음악이란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는 소통의 언어이다. 이런 점에서 찬양은 ‘하나님’의 이야기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국제신학연구원>
  • 2024.02.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선교 뉴스
    백형두 목사 북미 선교사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24일 성전비서실에서 미국 뉴저지 선교사로 파송되는 백형두 목사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안수했다. 이영훈 목사는 “북미 지역 복음화 및 교회 부흥”을 당부하며 맡겨진 소명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백형두 목사는 뉴저지 갈보리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파송되며 그동안 동대문성전 담당으로 사역해 왔다.
  • 2024.04.25 / 오정선 기자

    오요한 목사, 미국 선교사로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7일 성전비서실에서 미국으로 파송되는 오요한 목사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안수했다.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 부교역자로 파송되는 오 목사는 목회기획국, 교무국, 양천·용산·영등포대교구에서 사역했다.
  • 2024.04.11 / 오정선 기자

    권세열 목사, 미국으로 선교사 파송
  •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24일 미국으로 파송되는 권세열 목사에게 파송장을 수여하고 “성령의 불길을 일으켜 미국에 다시 부흥이 임하도록 선교 사역에 헌신하길” 안수기도했다. 권세열 목사는 미국 중부에 위치한 캔자스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찬양교구장, 예배부장을 역임했고 용산·영등포·관악·금천대교구에서 사역했다.
  • 2024.03.29 / 오정선 기자

    선교지 소식
    서장원 선교사(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의 희망은 오직 ‘교회’ 뿐 지난 2월 물가상승률 254.6%로 세계 최고 수치 기록 절대긍정 절대감사 신앙으로 국가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이 노래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은 1946년 아르헨티나 29대 대통령을 지냈던 후안 도밍고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이다. 영부인 시절,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일명 ‘데스카미사도(셔츠를 입지 못한 자)’라 불리던 가난한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후한 복지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후 ‘페로니즘’이라는 에바 페론을 모방한 아르헨티나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생겨났고, 에비타(에바 페론 별명)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지지 속에 쉽게 정권을 쥐는 모습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조건 퍼주기(?)식의 복지정책과 피고용인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진 노동법 때문에 국고는 점점 바닥을 드러냈고, 자국 및 해외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꺼려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몇 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강경책으로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페로니즘’에 익숙해진 기존의 정치인들과 기성세대들이 현 정부의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은 254.6%로 세계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돼 국민들의 고통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암울하기만 한 아르헨티나 땅의 희망은 오로지 교회 밖에 없다. 특히 우리 아르헨티나순복음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 속에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이 땅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6개의 현지인 지교회도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줄어드는 성도들이 다시 교회로 모일 수 있도록 방문 전도와 특별 기도회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아르헨티나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만난 현지인 성도들은 더욱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삶 속에서 간증하고 있다. 또한 지교회 중 한 곳은 출석 성도 대부분이 일용직으로 삶을 이어가는 분들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예배당을 증축하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자원하며 나섰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만큼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건물의 윤곽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피부로 경험한 성도들이 주 앞에 헌신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재하신 야훼 하나님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 본다. 광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으로 주와 동행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순복음교회와 여러 지교회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최태진 목사(호주)
  •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순복음 영성으로 불 붙이다 2002년 교회 개척, 교민들의 ‘영적 쉼터’ 역할 성령 충만과 다음 세대 부흥 위해 간구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는 정치, 행정의 중심지이며 계획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캔버라’라는 말은 호주의 원주민 언어로 ‘만남의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의 수도를 영적인 수도로 변화시킬 목표와 사명을 가지고 지난 2002년 1월에 캔버라순복음교회를 개척했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그리고 절대긍정과 절대감사의 신앙을 통해 이곳에 순복음의 신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의 역사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지난 3년여 동안 코로나 여파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 출석의 제한으로 성도들의 신앙은 퇴보하고 생업을 위해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성도의 수는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회복을 고민하면서 방법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다가 영성회복과 본질회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먼저 지난 3년 동안 전 성도에게 성경 66권 말씀을 집중 교육함으로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견고히 했습니다. 또한 매일 ‘6789 집중기도’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6789 기도시간’이란 매일 아침 6시부터 7시, 저녁 8시부터 9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전성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개인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성도들의 신앙 회복을 위해 모든 셀(Cell)을 재정비하고 셀리더들 재교육을 시행했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마치 22년 전 이곳 캔버라 땅에 교회를 개척할 당시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한 주간 동안 두 분의 선교사를 캔버라에 초청해 영적쇄신 부흥성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서 성도들의 침체되었던 신앙이 회복을 이루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호주는 한때 기독교 국가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며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자행하면서 스스로 평강하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호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곳에서 교육받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어느 부서보다 미래의 주역인 주일학교 교육에 투자하고 다음세대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4년 그 어떤 것보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성령으로 충만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각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로 세움받기 위해 1월 1일부터 21일까지 매일 저녁시간에 부모님들과 함께 어린이들이 직접 참석하는 신년 다니엘 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1월 말에는 성령 충만 받기 위한 주일학교 어린이 캠프가 진행됐습니다. 또한 이국 땅 외로운 이민 생활 속에서 교민들이 기쁨을 찾는 곳이 다름 아닌 캔버라순복음교회이고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기쁨을 얻게 하는 일에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2024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 표어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성도를 행복하게, 이웃을 전도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육이 회복(Restore)되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신앙의 재출발(Restart)을 다짐하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영적 부흥(Revival)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온 성도가 성령 충만하고 100% 예배참석과 성경 66권 통독, 하루 1시간 이상 기도하기를 실천함으로 다시 한번 영적 부흥을 이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비록 먼 곳에 있지만 올 한 해도 선교지를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곳 캔버라에서도 모교인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 2024.03.01 / 오정선 기자

    명요한 선교사(태국) 
  • 선교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치앙마이에서 중국인 교회 세워 제자사역 아시아 복음화 위한 교두보 역할 기대 ‘새로운 도시’란 의미를 가진 치앙마이는 태국 방콕에서 북쪽으로 700㎞ 떨어진 곳으로 1250개의 불교사원(절)과 4000여 명의 승려 그리고 6500명의 수도승이 있는 북부 불교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1867년 맥길버리 선교사 부부가 이곳에 복음을 전하면서부터입니다. 저는 2005년 A국으로 파송 돼 제자훈련 및 현지인 사역자 양성에 주력하다 추방되면서 2014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로 임지를 이동하게 됐습니다. 마음의 상처로 얼룩진 저희 부부에게 주님은 말씀으로 치유하시고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사명을 주셔서 태국 현지인과 그 곳에서 생활하는 중국인을 말씀으로 세우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의 인도로 2019년 태국에서 중국인 교회(생명국제순복음교회)를 개척해 이들을 주님의 제자삼아 열방으로 보내는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세계로 흘러 들어가는 중국인 디아스포라들 즉 전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는 ‘중국인 신 이민자들(new Chinese immigrants)의 거대한 파도’는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추세요 새로운 선교적 기회의 문으로 여겨집니다. 중국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복음이 들어간다면 세계 선교 사명을 완성하는데 이들이 크게 이바지 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치앙마이에 사는 중국인은 약 8만명 정도 됩니다. 대부분 대졸 이상 학력자들로 경제적 중상류층 이 많습니다. 대륙 전 지역에서 온 이들은 이곳에서 복음을 처음 들어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죄인임을 고백하며 회개하고 침례 받아 변화되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감격이고 감동입니다. 중국에서 평생 공산당원으로 살다가 정년퇴임해 이곳에 온 한 형제는 침례 받는 날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겠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중국에서 교수로 생활하다가 이곳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된 자매는 훈련 후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12살 된 아이는 뇌종양이 발견 돼 6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나 다시 종양 4개가 발견돼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성도들의 기도와 주님의 은혜로 모든 종양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곳에서는 사도행전 29장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장이며,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그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태국 캄보디아까지 이어지는 남북축,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을 연결하는 동서축,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남부축 등 크게 세 개 방향으로 나뉘어 다양한 도로, 철도망을 건설되고 있습니다. 이는 메콩강 경제권을 하나로 묶을 ‘아시안 하이웨이’가 될 것이며 2025년 계획이 완성되면 메콩강 경제권 5개국 2억 3000만명의 인구가 이 철도를 이용하게 될 전망입니다. 메콩강 경제권(GMS)은 인구 2억 3000만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가 중국 13억명, 인도 11억명, 아세안 6억명을 고려하면 30억명이라는 거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지역을 선교의 교두보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등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오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이미 많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불교, 이슬람, 힌두교 등 대표적인 종교들이 분포하고 있는 지역으로 기독교 복음화가 현저히 낮아 이곳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사역자들을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중국인들을 잘 훈련해 중국교회와 세계교회로 파송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에 흩어진 화교(華僑)들과 중국인들에게 세계선교 비전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저희 교회는 이곳에 와 있는 중국인 10%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이들을 십자가 복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 제자로 양성하여 전세계로 파송하는 안디옥 교회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태국 선교역사상 1938년 중국 선교사였던 존 성(John Sung)에 의해 교회 부흥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중국교회가 십자가 복음과 성령으로 충만해 부흥의 불씨가 되는데 값지게, 제한 없이 쓰임받길 소망합니다.
  • 2024.02.02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원요한 선교사(I국)
  • - 그레이스 교회 성전 건축이 잘 이뤄지도록 - 교회 개척지 선정이 속히 될 수 있도록
  • 2024.04.26 / 오정선 기자

    유다니엘 선교사(J국)
  • - 이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 성도들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 성전 건축 설계도 작성을 위해 - 모든 행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속히 끝나기를
  • 2024.04.19 / 오정선 기자

    김경 선교사(캄보디아)
  • - 캄보디아의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일어나 참된 예배자가 되도록 - 크리스천들이 각 분야 리더들로 세워지도록 - 쁘레이벵믿음의교회, 뻐쁘믿음의교회, 스봐이언또행복한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되도록 - 현지인 사역자들이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도록 - 가족의 건강과 자녀의 진로를 위해
  • 2024.04.12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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