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김현동 목사(마포2대교구장) - 호국 보훈의 달, 감사를 알아야 합니다
  • 군생활 시절 전남 장성에 있는 육군 상무대 포병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상무대 안에는 각종 병과학교들이 있는데 포병학교를 비롯하여 보병학교, 기계화학교, 화생방학교, 공병학교가 있어서 군사 교육을 담당한다. 각 학교는 특성에 맞게 구호를 외치는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구호에 담은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이를테면 보병은 ‘나를 따르라’이고 공병은 ‘시작과 끝은 우리가!’, 화생방학교는 ‘알아야 산다’는 구호를 갖고 있다. 보병은 리더가 솔선수범,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공병은 전장의 길을 트고 이후 뒷마무리를 지어야 하며, 화생방은 생존 지식을 갖추어야만 살 수 있다는 강조점을 구호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교육을 받게 된 포병학교의 구호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한다!’ 다른 병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포병은 특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 포 한 발이 발사되기까지 4개 분야(관측/전포/사격지휘/측지 및 통신)가 통합적으로 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적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에 포(包) 사격이 이루어지려면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 대한 관측, 포탄을 발사하는 곳의 전포대 운영, 포탄을 사격하기 위해 제원을 계산하는 사격지휘소, 측지 및 통신 운영에 대한 정확한 지식 및 계산 없이는 발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포탄을 쏘기만 했던 사람은 나중에 포탄이 낙하하는 지점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본인이 쏜 ‘포탄이 이렇게 떨어지는구나’하고 놀라게 된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현충일을 비롯하여 나라 사랑에 대해 각자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렸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시간이다. 6·25 한국 전쟁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렸다. 국군은 13만여 명이 전사했고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 16개국 군인들은 4만여 명이 전사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며 이를 위해 죽은 밀알(요 12:24)의 사명을 다한 사람들 때문에 보존되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들을 희생을 통하여 이 나라를 지켜주셨음을 반드시 알고 감사해야 한다. 호국 보훈의 달,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알고 각자의 자리에서 마땅히 감사할 것에 감사했는가? 이 시간 이후 이러한 구호를 마음에 새기며 뜻 깊은 6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 2026.06.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차진호 목사(교회개척국 담당) - 개척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자 
  •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금까지 576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곳을 지원하며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열린 제23회 ‘교회 개척의 날’ 행사는 지치고 낙심하기 쉬운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뜨거운 기도와 성령 충만한 예배를 통해 위로와 재충전을 얻는 은혜의 자리가 됐다. 사실 개척교회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재정적인 어려움, 성도 정착의 한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 수많은 파도가 목회 현장을 엄습한다. 그러나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의 든든함도 필요하지만 지역 사회 구석구석에서 상처 입은 영혼들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모세혈관과 같은 존재가 바로 개척교회다. 이들이 무너지면 한국 교회의 영적 생태계가 무너지고, 이웃들의 영혼을 치유할 치료소마저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땅의 개척교회들을 위해 눈물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기도는 가장 강력한 후원이자 영적 동역이다. 우리의 중보기도를 통해 외롭게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새 힘이 공급될 것이다. 오늘 하루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복음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개척교회들을 기억하며 이렇게 함께 기도하기를 원한다. 첫째, 모든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엘리야에게 주셨던 성령의 권능과 갑절의 영감을 더하여 주옵소서. 지친 몸과 마음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치유하여 주시고, 끝까지 사명의 길을 걸어갈 영육의 강건함을 주옵소서. 둘째, 개척교회가 지역 사회 속에서 ‘마음의 병을 고치는 영적 병원’이 되게 하옵소서. 낙심한 자, 상처받은 자들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 영혼의 자유함을 얻게 하옵소서. 셋째, 필요한 재정과 동역자를 붙여주셔서 물질과 사람으로 인해 복음 전파의 길이 막히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가정과 교회가 회복되는 부흥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핏값으로 사신 개척교회들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든든히 서 갈 때, 우리 사회의 어둠은 물러가고 생명의 역사가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이 거룩한 부흥의 여정에 중보기도의 등불을 밝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2026.05.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정용훈 목사(선교국 담당) - 선교사의 밤은 길다
  • 선교지에서 맞이하는 밤은 유난히 더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낮에는 사역으로 분주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현지의 필요를 채우며 하루를 쉼 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낮 동안 애써 묻어두었던 마음 깊은 곳의 생각들이 조용히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받은 상처,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역의 무게들…. 그 시간은 결국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밤마다 하나님께 수없이 같은 기도를 올려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님, 지금도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제 마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 139:2~3). 칠흑 같이 짙고 어두운 밤 기도할 때마다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선교지 위에 있다고 하신 말씀이 귀에 생생합니다. 하나님은 선교사의 앉음과 일어섬뿐 아니라 긴 밤 뒤척이는 시간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낯선 땅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역의 무게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숨겨진 것이 없습니다.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사역 초기 언어도 서툴고 관계도 쉽지 않아 마음이 많이 지쳐 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성전에 홀로 앉아 십자가만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평소 연락이 뜸하던 한 성도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오늘 기도하다가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주님이 지금도 선교사님과 함께 계십니다. 선교사님, 힘내세요.”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메시지가 그날 밤을 버틸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시간,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위로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긴 밤 선교사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흘려보내시는 위로의 통로입니다. 성도님들이 선교사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낯선 땅의 긴 밤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됩니다. 하나님은 선교사의 낮뿐 아니라 그들의 밤도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를 통해 선교사들을 위로하십니다. 다가오는 제52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앞두고 오늘 문득 마음에 떠오르는 선교사님이 있으십니까? 그 이름 을 불러 한 번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짧은 한 줄의 메시지를 보내보십시오. 그 기도와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긴 밤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작은 빛이 될 것입니다.
  • 2026.05.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115) 교회 창립 68주년 기념 “사도행전적 교회”
  •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8주년을 맞게 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조용기 목사님의 삼중축복, 오중복음, 4차원의 영성 그리고 이영훈 담임 목사님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 작은 예수의 영성과 섬김의 제자도를 통해 오래 전부터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위치에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있기까지 수많은 성도님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수고와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무성하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일이 일상화 된 이 때에, “희망의 70년”을 넘어 그 이후까지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즉 “사도행전적 교회”로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첫째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교회가 탄생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결과였습니다. 사도들뿐 아니라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자 놀라운 은사들이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가 삶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말씀으로도 충만한 교회입니다. 사도들의 성령 충만한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반응했습니다(행 2:37). 그 결과로, 하루에 삼천씩(행 2:41), 오천씩(행 4:4) 회개하고 침례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셋째로, 늘 기도하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구하는 교회입니다.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더라.”(행 1:14, 2:42)라는 구절은 사도행전적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말해 줍니다. 교회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행 4:24)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하고,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함을 받는(행 4:31)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넷째로, 표적과 이사가 넘치는 능력 충만한 교회입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게 되었을 때 병자들이 고침 받고, 귀신이 쫓겨 가는 놀라운 기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의 사역을 초대교회가 성령 안에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다섯째로, 땅 끝까지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 구원의 복음이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해 나갔습니다. 여섯째로, 그 어떤 고난과 박해에도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며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의 시작부터 흑암의 세력들은 교회를 파괴하고자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공격해왔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도들의 굳센 믿음으로 이를 이겨내고 더욱 부흥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곱째로,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사도들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은 무리들이 집과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와 온 성도들과 나눔으로써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되는”(행 4:33~35) 경제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도행전 교회의 주요 특징이 지난 68년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역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사역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미래의 모습이 더욱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될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6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5.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4)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⑩
  • 이번 호에서는 베스도 총독으로부터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아그립바 왕이 그를 심문하는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7) 상황: 아그립바 2세 왕의 심문 시 바울의 자기 “변명”(26:1~32) (1) 대상: 아그립바 왕, 왕비 버니게, 천부장들, 시중(市中) 높은 사람들, 베스도 총독(25:23) (2)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자기 변명(26:2~23) ① 우호적인 인사(2~3절) ② 바울의 젊은 시절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음(4~8절) - 나를 고발한 자들도 “내가…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라고 할 것(5절) - 지금 심문 받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6~7절) -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8절) ③ 바울의 그리스도인 박해 설명(9~11절) -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함 ④ 다메섹 도상 체험 설명(12~18절) -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감(12절) - 정오에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추자 일행이 다 땅에 엎드러지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소리가 들림(13~14절) - 내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여쭙자, 주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심(15~18절) ⑤ 바울의 전도 사역과 체포 과정 설명(19~23절) -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순종하여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 자” 함(19~21절) -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증언하는 것: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22~23절) (3) 결과 ① 아그립바 왕: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28절) ② 바울: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③ 왕, 총독, 버니게, 함께 앉은 사람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30~31절) ④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32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4.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3)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⑨
  • 이번 호에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이송되어 심문 받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6) 상황: 가이사랴에서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 받을 때 바울의 자기 변론(24:1~27) (1) 대상: 벨릭스 총독, 대제사장 아나니아, 어떤 장로들, 변호사 더둘로 더둘로의 바울 고발(1~9절): ①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5절). ② “그가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음”(6절). (2) 바울의 “변명”(반론) (24:10~21) ① 그들의 고발의 무고성(11~13절): -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11절). -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12절). -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다.”(13절) ② 바울의 신앙고백(14~16절) -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14절).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15절). -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16절) ③ 나의 예루살렘 여행은 동족 구제 여행: 여러 해 만에 내 민족을 구제 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음(17~18a절). ④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나를 반대할 것이 있었다면 당신께 와서 고발하면 되었을 것(18b~19절). ⑤ 아니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20~21절). (3) 결과: ① 벨릭스가 “이 도[기독교 복음]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올 때까지 심문을 연기함(22절). ② 백부장에게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명령함(23절). ③ 며칠 후,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들었는데,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자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함(24~25절). ④ 벨릭스가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함(26절). ⑤ 이 년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 총독이 될 때까지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둠(27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03.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쉽게 풀어 쓴 교회사 산책
    (90) 종교개혁㉚
  • 스위스의 종교개혁 II - 장 칼뱅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 문제를 계기로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다면 장 칼뱅은 루터와는 다른 길을 걸으며 종교개혁의 또 다른 중심 인물이 되었다. 칼뱅의 개혁은 수도사나 신학 교수로서가 아니라 인문주의 교육과 법학 훈련을 받은 젊은 지식인으로서 성경을 깊이 읽고 교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었다.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북부 누아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교회 행정 관련 일을 했는데 그 영향으로 칼뱅은 어려서부터 교회 및 학문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1523년 열네 살의 칼뱅은 파리로 유학을 떠나 라 마르슈 콜레주와 몽테규 콜레주에서 라틴어와 철학, 논리학 등을 배웠다. 당시 프랑스에는 에라스무스주의의 영향 아래 성경 원전과 고전 문헌을 새롭게 읽으려는 학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칼뱅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경과 고전 문헌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익혔으며, 이는 훗날 그의 종교개혁 사상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이 점에서 칼뱅은 수도원과 신학 강단에서 죄와 은혜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했던 루터와 구별된다. 칼뱅은 열여덟 살 무렵 오를레앙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법학자의 길을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다른 질문이 싹트고 있었다. 교회는 과연 성경이 말하는 교회인가.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가. 당시 프랑스에는 종교개혁 운동이 전파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억압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었다. 칼뱅은 이 긴장 속에서 종교개혁 사상에 심취해 갔다. 칼뱅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회심이 일어난 것도 이때쯤이었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갑작스러운 마음의 변화를 통해 자신을 복종하게 하셨다고 고백하였다. 그의 회심은 뜨거운 감정의 체험이라기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생각과 삶의 방향이 바뀌는 사건이었다. 그는 중세 가톨릭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성경 중심의 구원 이해로 나아갔다. 프랑스에서 종교개혁 사상이 강하게 억압받던 1533년 니콜라 코프 사건이 터졌다. 코프는 파리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개신교 복음주의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고, 이 일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칼뱅도 박해의 위험에 놓였고 결국 파리를 떠나 피신해야 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칼뱅은 스위스는 물론, 이탈리아, 독일 등을 다니며 여러 종교개혁자와 교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유랑의 시간 속에서 그의 종교개혁 사상은 더욱 분명해졌다. 1536년 칼뱅은 바젤에서 『기독교강요』 초판을 출간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 개신교 성도들이 무정부적 재세례파나 과격한 이단으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그들의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프랑스 왕에게 변증하고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였지만 곧 종교개혁 신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의 핵심을 명료하게 설명하였다. 훗날 제네바의 목회자로서 종교개혁을 이끌어가기 전부터 칼뱅은 성경 말씀과 교회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한 젊은 학자였다. 아직 본격적인 개혁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종교개혁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때론 광장의 외침으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책상 앞에서 성경을 읽는 한 젊은이의 조용한 순종 속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총장)
  • 2026.05.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9) 종교개혁㉙
  • 스위스 종교개혁 - 그 외 츠빙글리의 개혁과 죽음 츠빙글리의 개혁은 예배 개혁이나 성만찬 논쟁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개혁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 세례의 의미 그리고 스위스 여러 지역으로의 확산 속에서 더 큰 긴장과 갈등을 낳았고 마침내 그의 생애 마지막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맞이하게 됐다. 츠빙글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가 바로 서야 할 뿐 아니라, 그 믿음이 공동체의 삶과 사회의 질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세속 정부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공적 권위로서 평화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이것은 츠빙글리 개혁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츠빙글리는 더 급진적인 개혁자들과 부딪히게 됐다. 그들은 교회가 국가 권력과 가까워져서는 안된다고 보았고 믿음을 스스로 고백한 사람들만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차이는 세례 문제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인정했지만 재세례파는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다고 보며 믿음의 고백을 재확인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갈등은 단순히 세례 방식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또 교회와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취리히 시의회는 재세례파를 도시 질서를 흔드는 세력으로 보았고 결국 강하게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재세례파는 다른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이 로마가톨릭과의 갈등만이 아니라 개혁 진영 안에서도 깊은 긴장을 안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성 갈렌, 베른, 바젤 같은 스위스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같은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도시는 개혁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가톨릭 편에 선 도시들도 있었다. 이렇게 스위스는 신앙의 차이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가운데 점점 더 큰 긴장 속으로 빨려들었다. 츠빙글리는 개혁을 위해 도시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보았고 종교개혁은 점차 신학 논쟁을 넘어 현실 정치적인 문제와 맞물리게 됐다. 1529년 한 차례 충돌은 가까스로 진화했지만 결국 1531년 제2차 카펠전쟁이 일어났다. 츠빙글리는 종군목사로 전장에 나갔다가 10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츠빙글리의 죽음이 곧 스위스 종교개혁의 끝은 아니었다. 그의 뒤를 이어 하인리히 불링거가 개혁을 더 안정되게 이끌었다. 그러나 교회를 새롭게 하려 했던 개혁자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은 당시 종교개혁이 얼마나 치열한 현실 속에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츠빙글리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신앙은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어떻게 세상 속에서 책임 있게 드러나야 하는가. 츠빙글리는 완전한 답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 씨름한 개혁자였다. 그는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삶과 사역은 스위스 종교개혁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총장)
  • 2026.04.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8) 종교개혁㉘
  • 스위스 종교개혁 - 성만찬 논쟁 츠빙글리의 사상은 여러 저술과 편지를 통해 전해진다. 소시지 사건과 관련해 쓴 “음식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1522.3.9.)는 그의 첫 종교개혁 저술로 금식 규정을 어긴 일이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콘스탄츠 감독에게 보낸 진정서’(1522.7.2.)와 “하나님 말씀의 명백성과 확실성에 대하여”(1522.9.6.)에서는 성직자 독신 제도의 폐지와 성경적인 복음 설교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교회와 신학을 개혁하는 가장 중요한 권위는 오직 성경이라고 주장했다. 취리히 시의회는 성경적 설교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자 1523년 1월 29일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츠빙글리가 제시한 ‘67개 논제’는 성경의 권위에 기초한 교회 개혁의 방향을 밝힌 문서로서 스위스 종교개혁의 출발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선언이었다. 토론 과정에서 아무도 츠빙글리의 67개 논제를 반박하지 못하자 시의회는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누구나 성경에 근거하여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신앙이 약한 이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쓴 “기독교 입문서 요약”(1523.11.17.)에서 그는 성상 금지와 미사 폐지 등을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취리히에서는 1524년 4월 사제들의 결혼이 이루어졌고, 기도 행진과 의전 행렬, 순례 등이 차례로 폐지되었다. 1524년 9월부터 1525년 3월 사이에 쓴 “참 종교와 거짓 종교에 관한 주석”에서 츠빙글리는 교황권, 미사의 희생 개념, 성인 숭배 그리고 행위로 얻는 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별히 성만찬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면서 이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상징적 예식으로 이해했다. 그가 로마가톨릭의 화체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보는 주장이 자칫 골고다 십자가의 단번의 희생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만찬의 빵과 잔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아니라 그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요 6:63).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루터와 끝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루터는 츠빙글리와 달리 “이는 내 몸이다”라는 말씀을 상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에게 성만찬은 단순히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자리였다. 루터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다고 해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어디에나 임하실 수 있다고 이해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에 계시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 안에 실제로 계실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루터는 떡과 잔에 주님의 살과 피가 함께 임재함(공재설)을 주장하면서 두 사람의 견해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 논쟁은 1529년 마부르크 회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헤센의 필립은 루터와 츠빙글리를 한자리에 모아 개혁 진영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였다. 양측은 여러 항목에서 의견을 같이했고 미사가 은혜를 얻는 반복적 희생이 아니라는 점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어떻게 임재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끝내 뜻을 모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완전한 일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서로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함께 동의한 후 헤어졌다. 성만찬 논쟁은 단순한 예식 이해의 차이를 넘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둘러싼 종교개혁 내부의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김형건 목사(영산신학연구원 학장)
  • 2026.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뿌리깊은 순복음
    (172)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5>
  • 사랑은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거룩한 초대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한 배경을 살펴보면, 이것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처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은사가 더 우월하다고 제각기 주장하며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우상숭배의 제단에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는 문제에서는 자기에게 먹을 자유가 있다는 권리를 내세워 믿음이 연약한 형제의 신앙을 흔들었다. 성찬식에서는 형편이 넉넉한 이들이 먼저 와서 배불리 먹는 바람에,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굶주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오직 남을 위함이 아닌 오직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으며(고전 10:33), 사도로서 사역에 대한 수고비를 받을 권리(고전 9:11~12, 18)와 결혼을 할 수 있는 권리(고전 9:5)도 충분히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스스로 그 권리들을 내려놓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이 아예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건강하게 자신을 돌보는 일까지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며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라는 것도 아니고, 불의를 보고도 입을 다물라는 뜻도 아니다. 바울 자신도 꼭 필요한 순간에는 사도로서의 권위를 분명히 밝혔고, 베드로가 잘못했을 때는 면전에서 거침없이 지적하기도 했다(갈 2:11~14). 사랑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강함 가운데서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다. 권리가 있는 줄 몰라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내 권리를 충분히 알면서도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이 사랑의 가장 완전한 모습은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다(빌 2:6~7). 온전히 모든 권리를 가지신 분이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의 완전한 표본이며, 동시에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송두리째 완전히 소멸시키라는 거룩한 초대이다. 그것은 ‘이것은 나의 권리인데’라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 권리 행사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먼저 헤아리는 것이며, ‘스스로가 옳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옳고 그름보다는 상호 관계와 상대방의 유익을 먼저 떠 올리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무게와 위치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3).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5.22 / 김용두 기자

    (171)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4>
  • 참된 사랑은 마음 깊이 뿌리내린 자기의 유익을 위한 자기중심성 거부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여기서 말하는 ‘자기의 유익’을 의미하는 말은 원어를 번역하면 ‘자기 자신의 것들’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이익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자기의 권리, 방식, 편의, 명예, 의견 등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현대의 영어 번역들이 이 구절을 “자기 방식을 주장하지 않는다”(ESV),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NIV)로 다양하게 옮기는 것도 이 구절이 품고 있는 넓은 의미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자기중심성을 거부하라는 사랑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성이 왜 그토록 위험할까? 그것은 세 가지 뚜렷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 자기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둘째, 자기 생각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별로 관심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세 가지가 언제나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다. 자기가 기준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뜻을 밀어붙이게 되고,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과 형편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삼중 구조가 인간관계를 통해 작동하면 그 결과는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은 결국 외로움, 우울, 분노, 미움, 배신, 심지어 질병까지 줄줄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전혀 문제없어, 저 사람이 문제지’라고 쉽게 단정 짓는 사람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남매를 키워 결혼시킨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가 딸네 집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위가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 눈에는 딸을 아껴 주는 사위가 참 대견하게 보였다. 그런데 아들네 집에 갔을 때, 아들이 똑같이 혼자 아침을 해 먹고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한없이 측은하고, 며느리가 몹시 괘씸하게 느껴졌다. 일어난 상황은 똑같은 데,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적 주관성의 민낯이다. 우리의 삶 곳곳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발견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남이 천천히 운전하면 소심한 것이고, 내가 천천히 운전하면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딸은 남편을 잘 다스려야 한다. 우습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이런 이중 잣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 근본 원인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대한 맹신과 자기중심성이 단단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성도는 스스로 자기 안에 남아있는 자기중심성을 부인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은 이중 잣대를 내려놓고 자기중심적 주관성을 솔직히 인정하며, 상대방을 자신과 같은 동등한 무게와 위치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사랑의 핵심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70) 순복음의 7대 신앙-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3>
  •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 아닌 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돼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참된 사랑은 절대로 이기적일 수 없다. 유대인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만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옷을 벗겨 거의 죽을 만큼 그를 때렸고 그대로 길에 버려두고 도망갔다. 때마침 그곳에 유대인 제사장 한 사람이 지나갔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지만,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잠시 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 한 사람이 지나갔지만, 그도 멀찌감치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지나쳐 버렸다. 얼마 후, 사마리아인 한 명이 그곳을 지나게 됐다. 그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상종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배척했다. 그럼에도 그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에게 다가와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 주었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와서 그를 보살폈다. 또한, 치료에 필요한 추가 비용까지도 부담할 것을 약속했다(눅 10:25~37).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은 같은 동족이었던 제사장도 레위 사람도 아닌, 자기의 유익을 생각지 않고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사라미아 사람이었다. 이처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동화집이 있다. 이 동화는 어떤 나무가 자신을 다 버리기까지 한 소년을 사랑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 나무는 어린 시절 소년의 그네가 돼 주었고, 놀이터가 돼 주었다. 소년이 성장한 후에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자기 열매를 주어 장사할 밑천으로 내어준다. 나이가 든 소년이 집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나뭇가지를 잘라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했고,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남아있는 자신의 몸통을 잘라 배를 만들도록 허락한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 돌아온 그 소년이 쉴 곳이 없어 하자 “편히 쉬기에는 나무 밑동만 한 곳은 없지”라고 하며 겨우 남아있는 뭉툭하게 잘린 밑동을 휴식을 위한 의자로 제공한다. 이처럼 사랑의 실천은 나 자신의 필요가 아닌 상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된다. 혈연, 지연, 학벌, 재산의 규모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이웃을 구분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태도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강도 만난 자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던 것처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성경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한다(레 19:18, 마 22:39).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마치 강도 만난 사람처럼 죄와 사망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오셨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3.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독교 설교자 열전
    그레고리 대제(2)
  • 알레고리적, 도덕적 성경 해석 권장해 목회 규칙』 통해 목회자들에게 설교 중요성 알려 이방인 개종과 성도 교육의 가장 좋은 수단 설교자로서 그레고리 대제는 매우 성실했다. 그는 설교를 행하고 설교를 통해 회중을 가르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다. 그의 설교문은 모두 62개가 남아있다. 그중 22개가 에스겔서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복음서를 설교한 것이다. 이 설교문들은 주로 그가 작성한 것이며 어떤 것들은 속기사가 기록한 후에 그레고리 자신이 수정했다고 한다. 그레고리의 설교는 주로 짧은 것들이었지만 때로는 상당히 긴 것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근거하며 본문을 의역한 후에 도덕적인 적용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다간은 그레고리의 설교가 종종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사상이 깊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솔직한 내용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일반 회중이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그레고리 대제의 설교의 특징 중 눈에 띄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발견하는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예화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회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성경 밖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져왔다. 그는 이미 6세기에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레고리는 단순히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만을 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성경을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했다. 첫째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었고, 둘째는 알레고리적으로 보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었다. 때로 그는 3중의 방법 모두를 사용해서 성경 본문을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교부들의 설교』, 180). 또한 그레고리의 설교는 신앙생활에서 묵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그는 “활동적인 생활과 명상적인 생활을 영적 성장에 있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단계”로 보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4). 이런 그의 모습은 수도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생각과 훈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는 기독교 예배에서 설교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리 대제는 목회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관심들이 『목회 규칙』(Pastoral Rule)이라는 논문에 담겨있다. 『목회 규칙』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Nazianzen)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현직에 있는 목회자들과 앞으로 회중을 이끌 목회 후보생들을 위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회중들의 특징에 따라 다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대목은 눈여겨볼만 한다. 모두 네 권으로 쓰여진 『목회 규칙』은 제1권에서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사항들과 그들이 목회 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교구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구 설교자는 침묵과 언어에 있어서 신중할 것,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맞서 단호히 대처할 것, 자신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말 것, 성경을 자주 묵상할 것과 같은 내용들이 담겨있다. 제3권은 다른 책들보다 거의 두 배 정도의 분량인데,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설교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듯 목회자들을 위한 그레고리의 『목회 규칙』의 주제는 설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가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후에 이 『목회 규칙』은 알프레드 황제(Alfred the Great)에 의해 앵글로색슨어(Anglo-Saxon)로 번역되었고,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가 제정한 제정한 법령들을 통해 권장되었다(Dargan, A History of Preaching 01, 128). 앞서 언급한 대로 그레고리 대제는 설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설교를 통해 성경의 복음이 선포될 때, 사람들이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간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교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그것에 의하여 이교도들이 개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신실한 신도들이 기독교적인 삶 안에서 교육받고, 이단들이 융화되며, 교회가 개혁되기 때문이다”(『교부들의 설교』, 181). 다간에 따르면 그레고리의 성품과 그의 설교를 포함한 저작들은 그를 고대 교회와 중세 교회를 있는 파라오가 되게 했다(History of Preaching 01, 129). 즉, 그는 고대와 중세를 이어줌으로서 초대교회의 설교적인 유산을 고스란히 담아 중세교회에 넘겨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이미나 기자

    그레고리 대제(1)
  • 사회와 교회를 함께 섬겼던 그레고리 대제 유력 집안에서 태어나 수사학 등 최고 교육 받아 교황임에도 수도원 머물며 수도사로 생활해 그레고리 대제(540-604년) 역시 설교의 침체기 또는 암흑기로 말해지는 7-8세기에 활동하던 설교자이다. 로마의 명망 높은 아니키우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정치적 위상과 영적 유산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과 두 명의 교황(펠라기우스 2세, 펠릭스 3세)가 이 집안 출신이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 고르디아누스는 로마의 행정관을 지낸 재력가였고 그의 어머니 실비아와 그의 두 고모는 훗날 성인으로 추대될 만큼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레고리가 태어나던 6세기 중반에 로마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있었다. 당시 동로마제국이 황제였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서로마의 재정복을 목표로 서방 영토 회복에 주력했따.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정복하고,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정복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남겼고 제국의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과정에서 도시 로마는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도시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와 하수도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특히 589년 티베르강의 대홍수로 도시가 잠겼고, 뒤이어 들이닥친 흑사병으로 교황 펠라기우스 2세를 포함해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레고리 대제가 태어났고 교황으로서 활동했다.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초대교회와 중세교회 시대의 지도자들은 모두 당시 최고 교육인 수사학과 법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레고리 대제 역시 수사학, 법학, 변증학을 섭렵했다. 30대 초반 그는 아버지를 따라 로마 시의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의 직위에 올랐다. 이 시기의 활동에 대한 내용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는 정부를 위한 상당한 활동을 했었던 것 같다. 집정관으로서의 재직을 마쳤을 때, 그는 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그는 “기도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려는 그 자신의 열망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도록 그가 받은 많은 부름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후에 진술한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1). 그러나 그의 갈등은 어떤 면에서 기우처럼 생각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성직자의 활동은 물론 로마 시민들을 위한 구제사업 역시 활발히 벌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상당한 재산을 모두 팔아 시칠리아 섬에 6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로마의 중심지에 있던 자신의 집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자신의 집을 수도원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 맺음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열망은 5년 정도 이어졌을 뿐이다. 교황의 부사제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579년 그레고리는 교황 펠라기우스 2세의 사절이 되어 콘스탄틴노플에 있는 최고 관구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7년을 머물렀다. 590년 흑사병으로 교황 펠라기우스 2세가 선종했을 때, 그레고리는 황제의 승인을 받아 교황의 직을 물려받았다. 당시 서로마제국은 476년 이미 멸망한 상태였고 동로마(비잔티움)제국은 서로마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흑사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드족의 공격 가운데 교회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황제 그레고리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한마디로 교황 그레고리가 이끄는 교회가 ‘정부’의 기능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서로마에는 ‘시민 정부’가 존재했었다. 원로원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고 행정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젊은 시절 집정관으로서의 그레고리의 경험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중세역사에서 그레고리를 기점으로 교황이 세속적 군주로서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적인 업무로 인해 그레고리가 영적인 삶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목자가 아니라 세속 통치자가 된 것 같다.”라고 탄식했던 그는 수도사로 남아 계속 공동체 생활을 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주된 사업이 구제가 아니라 ‘영혼구원’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 우선순위에 대한 그의 의식은 세상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그의 확신으로 인하여 더욱 강렬해졌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3).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이미나 기자

    아를의 체사리오(2)
  • 모든 성직자가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의 설교문을 다른 성직자들이 사용하도록 허용해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교해 아를(Arles)의 체사리오(Caesarius, 470-542년경)의 설교는 약 250편이 남아있다. 그의 설교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7세기에 활약했던 마우리스트들(the Maurists) 덕분이었다. 마우리스트로 알려진 사람들은 프랑스 마우리스트 수도회에 속해있던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17-18세기에 걸쳐 학문적 연구와 역사 편찬에 주력했다. 역사학, 문헌학, 고문서학 등에 탁월했던 그들은 교회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분석해서 방대한 양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우리스트들의 연구 전까지 체사리오의 설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O. C. 에드워드는 체사리오의 설교가 그런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체사리오 자신의 모호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그 자신이 설교를 해야 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주교들과 사제들도 설교를 해야 하며, 심지어 부사제들도 교부들의 설교들을 읽을 수 있다고 믿었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65). 그래서 자신의 설교를 다른 성직자들이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설교가 그의 것이라는 사실이 가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주교 외에는 설교권을 가질 수 없었다. 529년 바이송 공의회에서 “주교의 허락과 감독 아래에서 사제도 공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라는 원칙이 확립되기 전까지 사제들은 설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시 교회 성직의 단계를 잠시 살펴보자. 교회 성직은 모두 세 가지였다. 첫째, 주교(bishop / 라틴어 episcopus / 헬라어 episkopos)이다. 주교는 감독으로도 불리며 한 지역 교회를 책임지는 최고 목회자였다.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의 계승자로 이해되었고, 성경에 대한 가르침과 교회 치리의 최종적인 책임자들이었다. 또한 주교들은 교구 안에서 공식적으로 교리를 해석하는 성직자들이었고 모든 성사를 집전하는 목회자들이었다. 사제 임명, 본당 배치, 교회 재산 관리, 교회 제도 및 규율 관리 등 주교들은 교구의 행정 책임자이기도 했다. 교구 내에서 설교는 주교들에 의해 행해졌다. 사제(priest, presbyter)는 주교의 권한 아래 설교와 교육을 담당했던 목회자들이다. 주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지만 새롭게 목회자를 세우는 ‘성품성사’만은 할 수 없었다. 한편 부제(deacon)은 교회 성직 질서에서 첫 단계에 위치한 성직으로서, 섬김과 봉사의 직분으로 이해되었다. 부제들은 예배와 성사에서 성경 봉독이나 성찬 보조와 같은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다. 세례, 혼인성사 장례 예식 등은 집전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성사는 인도할 수 없었다. 체사리오의 설교에는 그가 직접 행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성당 안에 마련된 미래 성직자를 위한 훈련센터에서 미래의 설교자들을 위해 분배용으로 허락된 설교들도 있었다. 체사리오는 자신의 설교를 다른 성직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설교자들에 따라 서론이나 결론이 추가되기도 하고, 어휘가 단순화되기도 했으며, 불필요한 단어들은 제거되고 편집되곤 했다. 실제로 7-9세기 많은 주교가 그의 설교를 사용했다고 한다. 체사리오의 설교는 5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첫째,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권고들로 이것은 온전한 설교 형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 정식 설교 형식을 갖춘 강해설교들, 셋째, 교회력에 따른 절기 설교들, 넷째, 성인들과 축일들을 위한 설교들, 마지막으로 수도원 공동체에서 행한 연설들이다. 그의 설교에서는 풍유적 성경해석이 자주 발견된다. 풍유적 해석이란 보통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하는 것으로 성경 본문 속에서 영적,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성경해석법이다. ‘풍유’는 빗대어 말하다라는 의미로 성경 본문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 구원, 영적 삶을 가리키는 표지(sign)으로 해석했다. 무엇보다도 체사리오의 설교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로 설교되었다. 그는 “단순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는 설교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배운 사람들을 향하여 하는 설교는 단순한 사람들에 의해 전혀 이해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체사리오는 회중이 이해하지 못한 설교는 실패한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김용두 기자

    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1998년 개봉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영화 <타이타닉>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실제 타이타닉호는 1912년 당시 축구장 3개를 합친 것보다 긴 269의 길이에 높이는 53로 아파트 20층 규모 정도였다. 이 배는 인간의 기술력이 정점에 달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배 안에는 수영장과 체육관, 목욕탕이 있었고 실내 장식도 최고급 목재와 금빛 조명, 대리석 등으로 인테리어 되어 그 가치를 더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고 만다. 영화는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침몰 직전 갑판 위에서 연주를 이어가던 악단의 모습이다. 배가 가라앉는 순간에도 악단은 경쾌하고 빠른 합주곡부터 다양한 노래를 연주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그들이 연주를 멈추려는 순간,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혼자 남아 찬송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흩어지던 다른 연주자들이 다시 모여 끝까지 연주를 이어간다. 이때 울려 퍼진 찬송가가 새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이다. 이 곡은 창세기 28장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야곱은 형을 피해 도망하던 중 홀로 돌베개를 베고 잠들 만큼 고생을 한다. 형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 야곱은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꿈속에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다리와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다. 최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이다. 잠에서 깬 야곱은 돌베개를 세워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짓고 기념한다. 이 찬송가의 작사가인 사라 플라워 아담스 또한 고통 가운데 이 가사를 썼다. 영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고, 이후 시와 찬송시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던 중 출석하던 교회의 윌리엄 폭스 목사와 함께 찬송집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이 찬송시를 쓰게 되었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든 야곱의 모습은 병과 고난 속에 있던 자신의 삶과도 겹쳐 보였다. 결국 그녀는 고통마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찬송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최초로 악보가 있는 찬송가집 「찬양가」에 수록하며 소개했다. 이 찬송가는 한국인들이 부를 수 있도록 7·5조(일곱 글자, 다섯 글자)에 맞춘 형식으로 번역되어서 한국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찬송가에는 1절에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2절에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3절에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라는 가사가 나온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야곱과 같은 고난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고난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야곱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하늘 사다리를 보았다. 절망의 장소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로 변화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지만,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듯이 ‘십자가 짐 같은 고난’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과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고난의 순간마다 두려움과 원망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야곱이 돌베개 위에서도 하나님을 만났듯이, 우리의 삶 속 작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러므로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찬송은 형편이 좋아질 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해 올려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의 시선은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두려움은 소망으로 바뀌게 된다. 고난의 시기가 하나님을 만나는 때이다. 외로울 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때이다. 절망의 순간이 하나님의 임재가 이뤄지는 때이다. 힘든 상황이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때이다. 고통의 길을 걸을 때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때이다. 이 ‘때’에 참된 생명이 있다. 이 ‘때’에 참된 기쁨이 있다. 이 ‘때’에 참된 평안이 있다. 이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고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 2026.05.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
  • 1562년 네덜란드 판화가 위제 알라드(Huijeh Allardt)가 새긴 한 장의 그림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준다. <성경의 무게(The Weight of the Bible)>라 불리는 이 판화는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오직 성경’을 가장 직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저울이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이 저울은 작품 전체를 좌우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저울에 달린 양쪽 접시 위에는 서로 다른 물건들이 놓여 있어 긴장감을 자아낸다. 왼쪽 저울 접시 위에는 화려한 것들이 가득하다. 교황의 절대 권위를 상징하는 삼중관(Tiara), 베드로의 열쇠 그리고 수 세기 동안 교회를 지탱해 온 방대한 교회법전과 전통의 기록 등이 쌓여 있다. 반면, 오른쪽 접시에는 단 한 권의 책, 성경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다르다. 온갖 물건들이 쌓인 접시는 가볍게 위로 솟아올라 있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성경 쪽 접시는 바닥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알라드는 이 극적인 대비를 통해 진리의 힘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거창해도 말씀이라는 실재적인 무게 앞에서는 깃털처럼 가볍다는 사실이다. 저울이 성경 쪽으로 기울자 당황한 수도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접시 위로 올라가 무게를 더하고 어떤 이는 체중을 실어 저울의 줄을 아래로 끌어당긴다. 심지어 그들 틈에는 사탄의 기만과 속임수를 상징하는 이미지까지 가세하여 저울을 조작하려 애쓴다. 이 장면은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나 인위적인 노력이 진리를 이길 수 없음을 풍자한다. 성경에 담긴 진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증명한다. 성경 주변에 서 있는 루터와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을 보라. 그들은 저울을 붙들거나 조작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말씀이 지닌 본연의 무게가 승리하는 과정을 확신에 찬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다. 종교개혁가들의 머리 위 벽면에는 둥근 초상화들이 걸려 있다. 이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이전에 먼저 믿음의 길을 갔던 초대교회 사도들과 교부들이다. 알라드는 이 장치를 통해 종교개혁이 결코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혁명이 아님을 나타낸다. 성경의 무게를 지지하는 이들은 교회의 가장 뿌리 깊은 선조들이었다. 종교개혁은 변질된 전통의 가벼움을 걷어내고, 사도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말씀의 묵직한 정통성을 회복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성경 한 권이 지닌 무게 속에는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고백했던 진리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제 알라드의 저울은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 앞에도 놓여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저울 위에 수많은 가치를 올려둔다. 나의 경력, 사회적 평판, 쌓아 올린 지식, 안정적인 미래라는 이름의 무거운 짐들을 한쪽 접시에 가득 채우곤 한다. 때로는 그 무게가 너무나 대단해 보여서 그것이 내 인생을 지탱해 줄 절대적인 무게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고난의 폭풍이 불어오고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화려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볍게 흩어지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우리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의 무게를 견디는 신앙이란 내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을 그 묵직한 성경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때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불편함일 수도 있고 나의 자아를 짓누르는 거룩한 부담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잡힌 인생을 살 수 있다. 위제 알라드가 묘사한 저울의 바늘은 지금도 변함없이 성경을 가리키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과학적 이론과 화려한 문화를 동원하여 저울의 균형을 맞추려 해도 진리의 질량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저울 접시 위에 더 많은 장식품을 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유혹하는 가벼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려, 바닥에 묵직하게 닿아 있는 말씀의 무게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성경의 무게를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종교 개혁가들처럼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2026.04.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가짜가 진짜로 변화되는 기적
  •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도심 곳곳에 수놓은 듯한 붉은 십자가를 보고 놀란다고 한다. 이 풍경을 본 그들은 ‘한국이 기독교 국가였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밤새도록 십자가 조명을 켜두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가 2025년에 발표한 ‘세계 기독교 박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3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기독교인을 가장 심하게 박해하는 나라로 꼽힌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과 같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온갖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겪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른다. 성경 한 권을 소지하거나 짧은 기도문을 외우는 것조차 발각될 경우 잔혹한 구타와 고문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과 아픔을 안겨준다. 작년 말에 개봉되어 100만명이 넘게 본 영화 ≪신의 악단≫은 북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찬양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자아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상상하여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북한 당국은 국제 NGO로부터 약 2억 달러(약 2750억원)의 지원금을 지원받기 위해 ‘가짜 찬양단’을 조직했다. 사실 영화 속 가짜 찬양 단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하기에 그들은 철저히 신앙을 숨기고 당의 지시와 감시 아래 찬양을 연습한다. 그러던 중 그들을 감시하던 북한 고위 간부들조차 직접 찬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놀랍게도 치밀하게 연출된 예배 속에서 당의 지시에 따라 찬양을 부를 때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부르는 「은혜」, 「광야를 지나며」, 「주 예수 나의 산 소망」과 같은 찬양이 그들의 억눌렸던 마음을 어루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가짜’의 연기가 ‘진짜’의 고백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특히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였다’라는 찬양을 부를 때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던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당연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던 그들에게 ‘은혜’라는 단어는 생소하면서도 강렬한 빛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삶 속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이다. 곡조 있는 기도가 선율을 타고 울려 퍼지자 북한의 주체사상으로 세뇌되었던 그들의 완고한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후 사방이 흰 눈으로 뒤덮인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전율에 가까운 은혜를 선사한다. 그 순간의 찬양은 더 이상 외화를 벌기 위한 수단이나 연기가 아니었다. 발각되는 즉시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그들이 온 마음을 다해 찬양했던 이유는 죽음조차 빼앗아갈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자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모든 장면 중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장면은 북한 고위 간부가 찬송가 272장(통 330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를 부르는 대목이다. 이 찬양은 억압과 굶주림이라는 고난의 현실을 넘어 영혼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의 처절하고 소망 찬 고백이었다. 이 간절한 고백은 북한의 비극적인 실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고통의 멍에’를 메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고통스러운 질병의 멍에를, 누군가는 무거운 물질의 멍에를, 또 누군가는 무너진 관계의 멍에를 메고 신음한다. 그러나 영화 ≪신의 악단≫이 증명하듯, 찬양은 우리의 마음과 괴로운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가짜 찬양도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되었는데, 하물며 전심을 다해 올려드리는 우리의 찬양에 하나님이 어찌 역사하지 않으시겠는가. 찬양은 모든 결박을 푸는 열쇠이자, 가장 깊은 절망도 소망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다. 영화 속 인물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누렸던 그 참된 평안이 오늘 우리의 찬양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임하길 소망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를 얽매던 모든 멍에가 벗겨지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희락이 강물처럼 넘칠 것이다. 오늘도 그 찬양의 능력을 힘입어,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전심으로 주를 높이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6.03.20 / 김용두 기자

    선교 뉴스
    장로회 등 교회 안팎에서 선교대회 후원 잇달아
  • 장로회는 27일 여의도 더 파티움에서 선교사 초청 만찬을 열고 세계 각지에서 헌신하다 고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을 위로했다. 최경래 장로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선교사들을 환영하며 “선교대회가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장로회 외에도 안수집사회, 권사회,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제자교회 등도 선교대회 후원에 적극 동참해 선교사들을 응원하며 신앙공동체의 미덕을 함께 보여줬다.
  • 2026.05.29 / 오정선 기자

    유럽오세아니아선교회, 선교사 환영예배 드려
  • 사단법인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유럽오세아니아선교회는 26일 세계선교센터 6층 연합회 예배실에서 선교사 환영예배를 드리고 선교 사역을 위한 뜨거운 기도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예배는 황영호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지헌 순복음오세아니아총회장의 대표기도에 이어 김용복 순복음유럽총회장이 ‘생각의 법칙’(롬 8:5~8)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김 총회장은 하나님 뜻에 마음을 두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강조하며 참석자들에게 은혜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회원들은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는 선교회, 기도와 섬김으로 하나 되는 선교회, 성령의 횃불을 들고 나아가는 유럽오세아니아선교회!”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선교사들의 사역과 영적 승리를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했다. 예배 후에는 선교보고와 총회별 후원금 전달식이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선교 현장의 사역을 나누고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황영호 회장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선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2026.05.29 / 오정선 기자

    미주선교회, 선교사와 함께하는 예배 개최
  • 사단법인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미주선교회 ‘선교사와 함께하는 예배’가 26일 예루살렘성전에서 은혜 가운데 열렸다. 김영석 부목사(국제)는 마태복음 24장 14절을 본문으로 ‘하나님 나라의 끝이 어디인가요?’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김 목사는 북미와 남미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격려하며, 기도와 물질로 선교를 후원하는 선교회원들에게도 복음 전파의 사명에 함께 동참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미주선교회 찬양팀의 특송이 있었고, 이원일 증경회장은 축사를 통해 한 해 동안 선교 현장에서 수고한 선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정연 회장도 환영사를 통해 선교사들의 헌신에 감사와 격려를 전했다. 또한 진유철 순복음북미총회장과 전용태 순복음중남미총회장은 답사를 통해 선교지를 위해 기도와 사랑으로 후원해준 성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미주선교회는 이날 우수 선교사를 시상하고 선교사들에게 후원금과 선물을 전달했다. 예배는 김영석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으며, 이후 참석자들은 식사 교제를 나누며 은혜의 시간을 이어갔다.
  • 2026.05.29 / 김용두 기자

    선교지 소식
    김경식 목사(호주)
  • ‘사명자·헌신자·선교사’를 세우는 것이 교회 비전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서 27년 째 목회 사역 순복음 성령 사역으로 다음 세대 일으켜 샬롬! 저는 호주 동부에 위치한 골드코스트에서 27년째 목회하고 있는 김경식 선교사입니다. 골드코스트는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해변, 풍부한 자연환경 그리고 편리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구 유입이 늘면서 교통 체증도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사랑하는 도시입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는 1993년 시드니순복음교회의 지교회로 개척되었습니다. 저는 다섯 번째 담임목사로 1999년 이곳에 파송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주 동안 주일예배를 돕고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후임자가 세워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맡게 되었고 어느덧 지금까지 사역을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목회를 꿈꾸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호주에 왔습니다. 목회보다는 선교와 학문적인 사역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저를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돌아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목회는 제 인생 최고의 특권이며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저는 주저 없이 목회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저는 다른 사람을 따라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와 장점에 집중했습니다. 특별히 청년 사역 경험을 살려 교회 전체를 청년부와 같은 열린 분위기 속에서 섬기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감격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 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배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설교와 찬양, 기도 가운데 성도들이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감동받는 예배를 추구해 왔습니다. 또한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 방언의 은사를 강조하며 성도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한 사람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면 교회 전체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공동체 문화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약 250명 성도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유학생들과 젊은 세대의 유입도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 아내인 홍효정 전도사가 오랜 시간 예배인도자로 섬기며 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저는 목회 초창기부터 제자훈련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은혜를 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로 성장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핵심 비전은 ‘사명자, 헌신자, 선교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저는 늘 성도들에게 “은혜를 받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질문하며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도전해 왔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서 훈련받은 청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회 철학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저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기보다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자주 나누는 인사말이 “주님이 지금도 잘해 주고 계십니다” 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결국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역은 성경 통독입니다. 특별히 바울서신 집중 통독을 통해 성도들이 복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반복해서 수백 번 읽도록 권면하며 성경을 분석하기보다 먼저 많이 읽도록 강조합니다. 많은 성도가 반복 통독을 통해 성경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고,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큰 은혜를 경험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령운동과 말씀운동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른다면 말씀 통독은 그 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장작과 같습니다. 앞으로도 성령의 역사와 말씀 중심의 신앙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합니다. 현재 골드코스트순복음교회의 주요 기도 제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명자와 헌신자, 선교사를 계속 세워가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증가하는 성도들을 위해 자체 예배당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 강당을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공간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성전 구입을 중요한 비전으로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목회 여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저와 성도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성령과 말씀을 통해 다음 세대를 세우며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들을 배출하는 교회로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 2026.06.05 / 오정선 기자

    박민규 선교사(싱가포르)
  • 동남아 허브 싱가포르에 세워진 순복음교회 예배 및 문화 사역 등 ‘미션 허브’로 쓰임 받길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 동남아시아의 허브 싱가포르에서 사역하는 박민규 목사입니다. 제가 섬기는 싱가포르순복음교회는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로 개척된 한인교회입니다. 그 시작은 1985년 네 가정의 기도모임으로부터였습니다. 담임 목회자가 없는 상태로 2년간 지속된 기도모임은 공동체를 넘어 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담임교역자 파송을 의뢰하여 첫 담임목사가 부임한 이래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9만 달러에 이르는 경제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물가의 급상승으로 인한 높은 생활비 감당은 정부로부터 특별한 혜택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생활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환경입니다. 한인 성도들은 코로나 이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실제 국내 유수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높은 물가와 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주재원 파견을 주저하는 현실입니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국가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엄격한 규제와 법 적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인 전도활동이 불가능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20%가 기독교인이며 교회가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청소년과 청년 기독교인의 비중이 늘고 있어 기독교의 미래는 참으로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에는 한인들이 대략 2만5000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11개의 한인교회가 연합해 한인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교단을 초월해 다양한 교회들이 꾸준히 연합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싱가포르순복음교회는 작지만 단단한 교회로 저력이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많은 것을 함께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운영과 유지를 위한 막대한 재정도 기도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가운데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나 하나님 품으로 나아와 그 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교회 공간 중 일부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일환으로 기독교 서점을 운영하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래서 준비중인 서점 이름도 ‘StayinG(Stay in God의 약자)로 정했습니다. 한인들에게 좋은 글과 책, 소품들을 제공하며 관련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기독교 문화에 젖어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려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에도 한국 기독교 서점이 없는 상황이라 미션허브(Mission Hub)로도 쓰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 안에는 미얀마와 필리핀 등에서 건너온 헬퍼(도우미)나 근로자들이 많아 서점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각자의 나라로 복음을 들고 역파송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하는 많은 이들로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지어져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순복음교회에 새로운 성도들, 특히 초신자가 많은 것이 감사합니다. 비록 교인 수는 작지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집 같은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더불어 사택을 이용해 환대(Hosting)사역도 진행 중인데 이 사역이 한국과 각지에서 방문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좋은 통로 역할이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서 중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6.04.03 / 오정선 기자

    안진희 선교사(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메단에 심겨 열매 맺은 순복음 신앙 교회 개척, 제자 양육에 힘써 일꾼 만든 20여 년 지난해 11월 큰 수해 겪으며 선교 중요성 다시 깨달아 할렐루야! 인도네시아 북부수마트라섬에 있는 메단이라는 도시에서 선교하는 안진희 선교사입니다. 2004년 12월 1일 파송 받아서 남편 최명수 선교사와 함께 메단에 온지 벌써 21년째입니다. 처음 메단에 도착해서는 이곳이 적도 지역이다보니 날씨가 낮에 50도까지 올라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이끌어주셔서 임마누엘순복음원주민교회를 개척해 지난해 20주년이 되었습니다. 메단 지역은 무슬림이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5%, 나머지는 힌두교와 불교가 분포돼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우리는 매일매일 동네 구석구석에 다니면서 어린아이들과 청년, 어른들을 전도했습니다. 당시 전도한 어린이들과 성도들은 모두 가난했습니다. 이 가난을 이기려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해서 가난을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비를 도와주기 시작해 지금도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금으로 대학교까지 졸업해 교사, 공무원이 됐고 직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학비 후원 뿐 아니라 순복음 신앙으로 말씀과 기도, 성령 충만으로 아이들을 양육할 때 이 청년들이 교회 기둥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복음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 속에서도 교회를 지을 때 무슬림의 방해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 기도했고, 그 결과 교회가 완공돼 지금까지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과 더불어 우리는 유치원을 세워 20년 동안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쳐 믿음이 자라나게 했습니다. 무슬림 지역에서 복음전도자가 되도록 양육한 것입니다. 제자들과 평신도 사역자들도 순복음의 신앙으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꾸준히 순복음 신앙으로 제자를 양육하고 지교회를 세우고, 구역장을 세워 전도에 힘써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오직 성령님을 의지해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1월 엄청난 수해를 겪었습니다. 메단과 수마트라섬에 내린 폭우로 메단 시내 전체가 물에 잠기고 시골은 산사태가 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사역하는 곳은 교회에 물이 들어오기 전 비가 그쳤습니다. 하지만 몇 성도들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회에서는 12월 내내 홍수 피해 성도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나눠주고 부서진 집을 수리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번 홍수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20년 동안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했을 때 우리를 본 성도들이 이제는 어려운 일 앞에서 함께 돌보고 베풀고 나눠준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선교지에서의 20년 동안 하나님이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메단 땅에 순복음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가겠습니다. 수많은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이 중보기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 2026.02.26 / 오정선 기자

    선교사를 위한 중보 기도
    최성규 선교사(홍콩)
  • - 홍콩순복음교회 비전센터 설립을 위해 - 교회의 영적부흥과 성장을 위해 - 전성도 성령 충만으로 하나 됨을 위해
  • 2026.06.05 / 오정선 기자

    추석우 선교사(스페인)
  • - 사랑순복음교회 제2성전이 잘 세워지도록 -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 되도록 - 말씀을 늘 읊조리며 기도 충만, 성령 충만한 삶 되도록 - 가족 모두 영육 간 강건하고 평안하도록
  • 2026.05.29 / 오정선 기자

    김한수 선교사(독일)
  • - 베를린순복음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돼 충만한 사역 감당 - 다음 세대 위한 교사와 리더, 좋은 양육 환경 허락 - 교회 건물이 잘 보수되어 안전하고 은혜로운 처소가 되길
  • 2026.05.22 / 오정선 기자

    순복음영성스케치
    기도의 종류(Ⅳ) - 중보 기도
  • 세계적인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고 말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그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던 무명의 기도 동역자들의 영적 지원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그의 사역에 있어 중보 기도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만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 백 명을 원했다고 한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탱해주고자 하는 중보 기도는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로 이어질 때 더욱 강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1. 중보의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 중보(intercession)의 문자적 의미는 ‘사이에 나아가다’, ‘상치하는 양자를 화해하기 위해 행동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법정에서 의뢰인을 돕는 변호사나 법률적 행위를 대신해주는 대리인의 개념을 갖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8절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는데, 앞선 중보의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을 중보하는 최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 2.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훈련 모델 능력 있는 중보 기도자가 되고자 소원하는 사람은 단연코 최고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중보 기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 기도자로서의 소원과 결심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훈련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의 최우선 순위는 기도였는데 어떠한 때에 기도하셨는지를 알아보면 중보 기도자로 서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다(눅 3:21~22). (2)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전성기 때에 많이 기도하셨다. (3) 진리에 대한 계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4) 제자들을 선택하고 훈련하실 때 기도하셨다. (5) 사랑과 용서가 필요할 때 기도하셨다. 3. 중보 기도의 올바른 태도 중보 기도자로서 훈련을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아래의 5가지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효과적인 중보 기도자로 설 수 있다. (1) 자발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억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이다. (2)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라 중언 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마 6:7). 구체적인 기도는 응답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된다. (3) 올바르게 중보하며 구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고 정당한 것을 구해야 한다. 응답이 올 때까지 찾고 두드리는 실행의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4) 전심으로 중보하며 구하라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약 1:8).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막는 실제적인 방법은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다. (5) 쉬지 말고 중보 기도하라 기도는 호흡이요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많은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자주 드리는 기도가 효과적이다. 4. 영적 지도자를 위한 중보 기도 중보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를 위한 기도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지도자를 판단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시 66:18).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영적 지도자의 영성과 생활과 사역의 3가지 영역에서 중보하며 기도하면 사역에 큰 능력이 나타난다. (1) 영성을 위하여(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기도) 지도자의 위치에서 듣게 되는 비난과 겪게 되는 억울한 일들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생활을 위하여(개인적인 삶을 위한 기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며, 행복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을 위하여(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끝까지 사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끝> 김현동 선임목사(교무국 기도처지원팀)
  • 2023.12.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Ⅲ) - 방언 기도
  • 올해는 우리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이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로서 한국의 복음화를 위한 오순절 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순절 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서 성령 침례의 결과가 방언, 신유, 능력으로 나타남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도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강조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신유 사역과 사회 참여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부흥의 큰 원동력이 된 방언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방언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의 영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다짐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한다. 1. 방언 기도의 의미와 성경 상의 언급 방언 기도는 영적인 언어로 말하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가능하게 하며 개인 신앙 발전에 큰 유익을 주는 기도이다. 방언은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이며 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 침례의 표적으로 나타난 방언 기도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행 2:1~4), 둘째는 베드로가 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의 성령의 임재(행 10:44~46), 덧붙여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의 성령의 임재(행 19:5~6)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 현대 오순절 운동과 방언 기도 성경 상에 등장하였던 방언 기도는 20세기 초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재발견된다. 1901년에 감리교 목사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은 그가 가르치는 신학교 학생들과 함께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던 중, ‘방언이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이렇게 발견한 말씀의 내용을 철저히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침례와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방언 기도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은 1906년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의 아주사 부흥으로 이어졌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 신유 등이 강력하게 나타났던 아주사 거리 집회는 무려 3년이나 지속되며 기도의 불길을 이어갔다. 3. 방언 기도의 유익 성령 침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방언 기도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1) 방언 기도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준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방언)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증거하고 있다(행 2:4). 한편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한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막 16:17). 성령 침례를 받으면 방언이라는 표적을 통하여 분명하게 성령 충만의 증거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방언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나 듣는 자에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령 충만의 확신을 가져다준다. (2)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을 나누는 비밀한 언어이다. 방언 기도에 대해 비교적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방언을 하나님과 비밀한 영적 교통을 나누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하면서 또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방언 기도는 하나님과 비밀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탄도 알아듣지 못한다. (3) 방언 기도는 자기 신앙의 덕을 세운다. 성경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의 원어적 의미는 ‘집을 지어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방언 기도를 통하여 마치 집을 짓듯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할 수 있다. (4) 방언 기도는 마음을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시켜준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잠재 의식 속에 있는 모든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상처 입은 것을 깨끗이 청산해 준다. 마음의 공간이 방언 기도를 통하여 깨끗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어 절대긍정의 마음으로 변화 된다. (5) 방언 기도는 연약함을 돕는 탄식의 기도이다. 성경은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하고 있다(롬 8:26~27). 방언 기도를 통하여 탄식하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6)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한다. 방언 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서 기도를 오래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인 지금은 성도 개개인이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영성을 회복하고 교회 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부흥을 꿈꾸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교회 성령 충만과 부흥의 토대가 된 오랜 시간의 깊은 방언 기도를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 모두가 부흥으로 향하는 최선의 지름길을 제공해 줄 것이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1.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기도의 종류(Ⅱ): 대적 기도
  •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한 영들과의 영적 전쟁은 선택 사항이 아닌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과정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에 대해 무의미하게 여기거나 막연히 신비적인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오늘날도 실제적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체험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적 기도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늘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신 권세(창 3:15)에 힘입어 선포하는 대적 기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대적 기도의 의미와 특징 대적 기도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에 힘입어 악한 영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형식이지만 대적 기도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으로 간구가 아닌 명령과 선포의 형태를 지닌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눅 10:19). 이 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악한 영들을 대적함으로써 승리하였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믿고 명령하며 선포함으로써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2. 성경에 나타난 대적 기도 성경은 영적 전쟁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면서 대적 기도의 상대인 악한 영들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1) 대적 기도의 대상 성경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거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한다. 이러한 성경의 언급을 통해 우리의 대적이 바로 ‘마귀’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대적 기도의 사례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는 방법(막 9:25)과 명하여 내어 쫓는 방법(눅 8:29)을 통하여 대적 기도를 행하셨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에 힘입어 빌립보의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명하였고,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는 명령과 선포는 오늘날 대적 기도의 대표적인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3. 대적 기도의 방법 대적 기도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영적 대결이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비장한 각오로 준비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1) 보혈을 의지하는 기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예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보호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출 12:13).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흘려주신 보혈의 권세를 갖고 있으므로, 보혈에 의지하는 기도는 마귀에게 대적하는 가장 큰 기초가 된다.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특별히 개인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환경 가운데 보혈을 뿌리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는 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시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상실한 권세를 회복해 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셨으나 부활하셔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8:1). 이러한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요 1:12).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의지할 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고(마 16:18), 매고 푸는 권세가 있어서 마귀들을 묶고 포로된 자들을 구원하는 권세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마 16:19). (3)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는 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대적의 수중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겼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패배 의식에 빠지고 좌절과 낙심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셨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으며, 흉악과 결박에서 놓임 받게 해주심을 굳게 믿고 마귀를 대적하며 기도해야 한다. 4. 대적 기도의 실제와 유익 대적 기도를 통하여 의심, 두려움, 교만, 불안, 낙심과 염려 등 마음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적 기도는 육체의 치유와 믿음의 회복도 가져다준다. 우리는 각종 암, 우울증, 중풍, 고혈압, 당뇨병, 만성 피로 등 육체의 질병에 대해 꾸짖고 명령하고 선포하여 승리할 수 있고, 영적 성장과 신앙생활에 방해를 주는 악한 영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대적하며 기도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괴롭히는 악한 원수 마귀야! 지금 즉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러한 선포를 통하여도 우리는 마귀와 효과적으로 대결하고 영적 전쟁의 승리에 다가설 수 있다. 김현동 선임목사(목회자제직훈련소)
  • 2023.10.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 성경읽기
    (19)영적 무장을 위한 3대 신앙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은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로 했다면 영적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영적 무장이다. 영적 무장이 없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전쟁에 임하는 병사가 무장 없이 맨몸으로 나서는 법이 없듯이 영적 전쟁에서도 영적 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무장, 곧 3가지 신앙적 무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창조 신앙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자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장본인이시다. 이 세상 모든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아무리 과학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진화론과 같은 이론으로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해도 그런 과학은 극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어느 날 과학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과학이 발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과학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나님이 답하셨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면 네 말대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보아라. 대신 네 흙으로 해라.” 이 우화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 우주의 근원은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렇다면 창조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절대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올려 드리며 살아야 한다. 2. 십자가 신앙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을 얻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얻은 것이다. 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말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빼놓고서는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갈라디아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예수님이 율법이 정한 대로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셨다. 그렇다면 십자가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담대한 복음 증거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앞에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고 모든 저주의 굴레에서 해방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삶의 형편과 조건, 세상의 시선에 위축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3. 부활 신앙 기독교 신앙의 위대함은 부활 신앙에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그 증거가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 둘째, 부활의 목격자들이 있다. 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8).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실 때 비겁한 도망자들이 되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그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자까지 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부활이 거짓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이런 증거에도 부활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셋째,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거짓이 20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거짓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었겠으며 자기 인생을 헌신해 가며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부활은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렇다면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단코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안개처럼 쉽게 사라지는 인생길을 걷고 있으며 잠시 왔다가 떠날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단기 선교 온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9). 이 세상에 얽매여 잠시 잠깐뿐인 헛된 것을 찾다가 인생의 허망함에 무릎을 치며 후회하지 말고 부활 후 누릴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살아가자. 오정섭 목사
  • 2022.07.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절대긍정의 믿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정의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복음 증거만큼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이 주목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에서 찾는다. 따라서 성경을 삶의 원리 원칙으로 삼는 성경적인 삶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성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절대긍정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결론은 성도의 최후 승리를 말하고 있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이 성도의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 땅을 정탐 다녀온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응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이 지녀야 할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을 선발해 모두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그들은 40일간 그 땅을 돌아본 후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며 그 땅의 과일들은 극상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이 누리는 것은 풍요롭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내놓는다(민 13:25~27).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인 의견 2명, 부정적인 의견 10명으로 갈린다.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두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갈렙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민 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취하고자 하는 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비관적인 전망과 비판적인 어조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고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과제 앞에 불안, 염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시고 자녀 된 우리의 삶을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놓고 계신 분이시다. 로마서 8장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한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 14:7~9). 그러나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육신의 눈으로 확인되는 그 땅 주민들의 어떠함에 주목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땅에 대해 악평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며 자신들에 대해서도 악평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에 부정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지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하나님은 그 땅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고, 모세에게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실 때도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했기에 그 땅을 차지하는 데에 긍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성경 말씀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책이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좋은 약속을 붙잡는 적극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긍정의 믿음을 소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거룩한 원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자.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구속사적인 삶 - 감사(2)
  • 대한민국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은 헌법이다. 헌법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행복추구권이다. 그런데 행복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국가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해 줄 따름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해진 조건이 있으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국민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1. 행복의 근원, 감사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 있을까?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감사가 저절로 되거나 쉽게 되지 않는다. 만약 감사가 저절로 되고 쉽게 되는 것이면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니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사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다. 감사가 쉬운가? 불평이 쉬운가?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한 달 동안 5층 집까지 매일 걸어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억지로라도 계단을 오를 일이 생겨 운동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까? 아니면 곧바로 불평할까? 감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원망 불평이 자연스러운 우리 본성이라는 중력, 그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가 등산처럼 힘든 이유다. 그러나 등산도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감사가 그렇다.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시야다.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감사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못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불평하는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일들 외에는 제대로 못 본다. 불평하는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물론 해결이 돼도 불평할 거리는 또 있다. ‘왜 이제야 해결이 되는 거지?’ 감사하는 사람은 시야가 다르다. 보이는 것이 다르다. 눈에 거슬리는 것보다 세상 아름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보이는 게 다르니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감사하는 사람의 말에는 여유가 있다. 타인에 대한 포용의 한도가 그만큼 크다. 원망 불평으로 마음의 용량이 늘 마이너스가 되어 가면 타인에 대한 용납의 한도가 계속 줄어든다. 감사를 결단하고 훈련하자. 감사한 다음에 기쁨이 따라오고 불평한 다음에 짜증이 따라온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가지만 불평은 사탄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감사의 종점은 천국이고 원망 불평의 종점은 지옥이다. 2. 그리스도인의 감사, 넘치는 감사 우리의 감사가 어떠한 감사가 되어야 하는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 삶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께 우리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이리저리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수님 안에 콕 박혀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는 여정이다. 말씀대로 살면서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셨으니 예수님 안에 뿌리내리고 말씀 따라 사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 감사하는 사람이다. 내 믿음의 강도는 감사가 말해 준다. 내 믿음이 명품인지 불량품인지는 감사가 보여 준다. 감사는 명품 믿음의 보증서다. 감사가 없다면 불량품 믿음이다. 감사는 넘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넘치는 감사다. 자기 분량 이상의 감사를 하는 것이다. 내 기준 이상의 감사, 내 판단 이상의 감사, 내 감정 이상의 감사, 내 선택 이상의 감사다. 그러려면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가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기 때문이다. 주는 ‘주인’을 말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니까 감사하라는 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으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했으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직분, 예수는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강조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스도가 먼저 나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강조점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떠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나의 주님이 되셔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책임져 주신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성경이 다시 쓰이기 전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형편과 조건은 오락가락해도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해 주실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형편, 조건, 기분, 감정과 상관없이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 무조건 감사, 일평생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될 때 감사하자. 감사하면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영적 시야가 넓어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관계가 회복되고 인생이 달라지고 행복해진다. 아니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Thanksgiving’뿐만 아니라, ‘Thanks-living’하자! 오정섭 목사(국제신학연구원 신학연구소)
  • 2022.05.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 김용두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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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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