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의 행복편지
우리의 결산
  • 2025.01.03

    기적의 시작
  • 많은 사람에게 새해는 소망하는 바를 꿈꾸고 계획하는 희망의 해이지만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간절히 기적을 바라는 해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얼어붙은 경제로 말미암아 모두가 어려운 이때,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기적을 써내려간 제프 핸더슨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제프 핸더슨은 라스베이거스의 최고급 호텔인 벨라지오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총주방장이 된 유능한 요리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렸을 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프 핸더슨은 마약을 두고 온갖 범죄가 난무하는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동네에서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으며 많은 어머니들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이 같은 주변 환경 속에서 제프 핸더슨도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했습니다. 그 여파로 어린 시절부터 도둑질을 일삼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역시 청소년기에 마약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고, 결국 마약 밀거래 죄로 체포되어 징역 19년 7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교도소에 간 그는 주방에 배정되어 하루에 세 번 1500명 분량의 식기를 닦아야 했습니다. 뜨거운 솥에 살갗을 데었으며 끝없는 설거지로 손은 퉁퉁 붓고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제프 핸더슨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설거지부터 온갖 잡일을 거치며 성실하게 기술을 익혔고, 이를 통해 10년 만에 보호관찰로 석방되었습니다. 석방된 이후에는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요리사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자리가 바로 그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제프 핸더슨은 메리어트 호텔, 리츠칼튼 호텔, 벨에어 호텔, 레르미타주 호텔의 주방을 거쳐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팰리스 호텔 주방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 테이스팅 협회 선정 2001년 최고의 요리사 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총주방장이 되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제프 핸더슨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나는 희망이다(Impossible is Nothing)』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의 성공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오늘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예수님을 만나면 그 절망의 자리가 기적의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의 새해를 써내려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5.01.03

    사랑하면 할 수 있지요
  • 매해 겨울이 되면 대한결핵협회에서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합니다. 지금은 범국민적으로 시행된 결핵 퇴치 사업이 성과를 거둬 결핵 환자가 많이 줄었지만, 결핵은 오랫동안 인류의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으로 우리나라 역시 결핵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온 의료선교사들도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중 1949년부터 1974년까지 25년간 한국의 결핵 환자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준 미국의 허버트 카딩턴 선교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카딩턴 선교사는 우리나라 땅을 밟기 전 미국 뉴욕주 코넬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시에 있는 유니언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미국 남장로교를 통해 한국에 파송되어 목포프렌치병원에 부임해 활동하다가 1951년 광주제중병원의 제5대 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66년까지 광주제중병원장을 역임했고 1967년부터 1974년까지 결핵과 과장으로 재직하며 결핵 퇴치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렇게 의료선교를 위해 일생을 바친 카딩턴 선교사는 선교병원만큼은 가난한 환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어려워 진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도 기꺼이 진료하고 처방을 내주었습니다. 또한 결핵은 전염력이 강해 치료하는 사람도 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딩턴 선교사는 전혀 거리낌 없이 환자를 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 몸을 안아 일으키고 수혈이 필요하면 자신의 팔을 걷어붙였으며 응급 시에는 직접 인공호흡을 해 기도에 막힌 핏덩이를 빼내곤 했습니다. 어느 날 동료 선교사가 어떻게 이런 힘든 선교를 할 수 있는지 묻자 카딩턴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면 할 수 있지요.” 이후 카딩턴 선교사는 1974년에 한국보다 의료 환경이 더 열악한 방글라데시로 떠나 1999년까지 25년간 콜레라, 결핵, 한센병 환자를 돌봤습니다. 이처럼 의료선교를 하며 50년을 보낼 동안 두 자녀를 잃었고, 아내는 병들었으며 본인 역시 암에 걸렸지만 끝까지 가난한 환자의 곁을 지킨 카딩턴 선교사는 ‘결핵 환자의 아버지’, ‘작은 예수’, ‘바보 성자’ 등의 여러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카딩턴 선교사는 죽음을 앞두고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라고 묘비에 써달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유언처럼 우리는 모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며 올겨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11.29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역경을 마주합니다. 어떤 이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낙담하거나 좌절하지만 이와 반대로 꿋꿋하게 역경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각 장애를 딛고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큰 가르침이 됩니다. 강영우 박사는 13살 때 친구들과 공놀이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실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얼마 후 홀로 계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마저 세상을 떠나 그는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고아가 되기 직전 누나의 손에 이끌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대조동 천막교회를 찾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강영우 박사의 삶은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영의 눈을 뜬 것과 더불어 해외 유학의 꿈을 꾸었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아내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3년 8개월 만에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렇게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된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7억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2012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강영우 박사의 꿈은 아내 석은옥 여사와 두 아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석은옥 여사는 남편의 뒤를 이어 시각 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여 ‘제2의 강영우’가 될 인재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첫째 아들은 안과의사로, 둘째 아들은 변호사로 어머니와 함께 장학사업에 힘쓰며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던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유고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에서 삶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저에게 장애는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저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장애는 불편함일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은 아닙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생각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의 장애를 뛰어넘어 나의 장애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꿈은 이뤄집니다 …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제 생애는 결코 고통의 시간들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을 낙심하게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내게 닥친 역경이 태산처럼 너무나 커 눈앞을 캄캄하게 가릴 때 그 역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믿음으로 나아가면 어느새 그 꿈을 모두 이루는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2024.11.01

    시선
  •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상황을 마주하고 다양한 장면을 목격하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선한 행동을 보며 감동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유혹과 어둠이 가득한 세상을 마주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에 시선을 고정하는가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마음과 생각이 형성되고 나아가 우리의 행동까지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풍랑과 바람에 시선을 빼앗겨 두려워하는 순간 물에 빠졌습니다(마 14:30).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흔들림 없는 믿음과 평안을 가질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반대로 세상의 두려움과 어려움에 시선을 빼앗기면 곧 혼란과 불안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오래된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창문은 오랜 세월 동안 먼지와 얼룩으로 가득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주인은 창문을 방치한 채 살면서 창밖을 보며 이웃의 집이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매일 창밖을 보며 ‘왜 저 집은 그렇게 엉망일까?’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찾아왔고 집 주인은 친구에게 이웃집이 얼마나 더럽고 정리되지 않았는지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잠시 창문을 유심히 보더니 “창문을 한 번 닦아보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못해 창문을 닦기 시작한 집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창문이 깨끗해지자 이웃집이 전혀 지저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깔끔하고 정리된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창문에 묻은 먼지로 인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시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창문을 닦아야 바른 시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우리 마음과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과 불안, 편견에 사로잡혀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시선을 고정할 때 비로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평안과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시편 123편 1절)라는 고백처럼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곳은 언제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삶은 우리에게 혼란과 불안을 이겨내고 평안을 누리는 길을 열어줍니다. 세상의 불안이 우리를 덮치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집중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를 점검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두움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소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2024.10.04

    모두를 위한 길
  • 넓은 숲속에 두 개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무의 마을’, 다른 하나는 ‘꽃의 마을’이라 불렸습니다. 나무의 마을은 나무를 가꾸는 데 뛰어나고 꽃의 마을은 꽃을 장식하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마을 사이에는 큰 나무 벽이 있어 서로 단절된 채 살았습니다. 어느 날 두 마을의 어린 소녀들이 우연히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벽을 넘어서 서로의 마을을 방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벽이 허물어진 후 나무의 마을 사람들은 꽃의 마을에서 꽃 장식법을 배우고, 꽃의 마을 사람들은 나무의 마을에서 나무 가꾸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이렇게 두 마을은 서로의 장점을 살리며 협력하여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동서양에서의 대규모 토목사업을 연상케 합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선으로 국경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중국은 외부와의 교역 및 문화적 교류가 제한되었고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로마제국의 도로망은 제국 전역을 연결해 군대의 이동을 빠르게 하고 상업과 무역을 활성화했습니다. 도로망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교류할 수 있었고 이는 로마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확산을 통해 더욱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방송은 과거의 교역로처럼 문화와 사상을 교류하며 보다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구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의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사회구조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의미하며 협력과 공유의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독점과 소유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은 방어적이고 폐쇄적인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보호하고 외부와의 소통을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방어적인 자세와는 달리 모든 이에게 열린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그들과 소통하셨습니다(요 14:6). 예수님은 죄인과 세리와도 함께 식사하시며 정죄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이해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 편견과 갈등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벨탑처럼 성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용납하고 허용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력과 나눔을 통해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해야 합니다. 서로의 길을 열어주고 이해와 사랑으로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 2024.08.30

    주님을 따르는 인생
  •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합니다. 같은 나무를 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자는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여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듭니다. 나무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시인은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나무를 존재하게 한 창조주를 찬양하는 신앙인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도록 인도합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시각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헛된 가치를 좇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입니다. 잘못된 가치에 매몰되면 삶은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고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기 어렵게 됩니다. 진짜 가치를 바라보지 못하고 가짜에 속는 어리석음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가로서 귀한 물건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6개월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는데 그사이 자신의 귀한 골동품이 도난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동네 뒷골목의 화방에 가서 값싼 그림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그림 밑에 값비싼 가격표를 붙여두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예상대로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은 진짜 귀한 골동품은 그대로 둔 채, 가짜로 비싼 가격표를 붙인 그림들만 훔쳐 갔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종종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가치에 속아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탄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거짓 행복에 비싼 가격을 붙여 놓고 사람들이 거기에 몰두하게 만듭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탄이 붙여 놓은 가짜 행복에 속아 하나님이 예비하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따르며 살아야 할까요. 답은 간단하고 명확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하나님만 따르며 사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떠올려보십시오. 태양을 바라보고 걸으면 우리 뒤에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아무리 그림자를 떨쳐내려고 애써보아도 태양을 보고 걸어가는 한 그림자는 언제나 우리 뒤에 붙어 있습니다. 반대로 태양을 등지고 걸으면 우리 앞에 그림자가 생깁니다. 앞에 있는 그림자를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집니다. 그 누구도 결코 이 그림자를 잡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등지고 복을 구하며 사는 사람에겐 그 복이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손에 닿을 듯 잡힐 듯 보이지만 절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 따라옵니다. 축복은 우리의 노력이나 계획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따를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등지고 얻는 축복은 일시적이고 헛된 것이며 참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복잡한 인생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 2024.08.02

    진정한 친구
  •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은 뛰어난 문학적 통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인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와 가난한 군인 바사니오는 모두 신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느 날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청혼을 위한 경비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안토니오는 모든 재산이 해상무역을 하는 상선에 있어 당장 빌려줄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를 위해 자기 재산을 담보로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러 갑니다. 샤일록은 기한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받아가겠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줍니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에게 빌린 돈으로 청혼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곧 도착할 줄 알았던 안토니오의 상선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해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에 샤일록은 가슴살 1파운드를 독촉하며 안토니오를 재판장에 세웁니다. 심장 근처의 살을 1파운드나 내놓으라는 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서 바사니오는 샤일록에게 원금의 3배를 갚아주겠다고 말하며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샤일록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계약서대로 살을 떼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안토니오의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계약서에는 가슴살 1파운드만 가져간다고 되어 있지 피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따라서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됩니다. 만약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되면 계약을 위반한 죄로 당신의 땅과 재산은 베니스 정부로 귀속될 것입니다.” 변론을 들은 재판장은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했고 샤일록은 아무 소득 없이 패소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명판결과 같은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끝까지 신뢰를 지킨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 때문일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친구 바사니오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합니다. 바사니오 역시 빌린 돈의 3배를 갚겠다며 친구 안토니오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의 다윗과 요나단 이야기 역시 참된 우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장남이자 블레셋 군사를 여럿 쓰러트린 용맹한 용사로 실력으로나 혈통으로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나단에게 다윗은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였지만 그는 다윗을 진심으로 위하며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놀라운 친구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고, 예수님을 따라 제자의 길을 가는 우리를 친구라 부르십니다.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가 되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힘입어 우리도 이웃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4.07.05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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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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