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 - 카라바조의 ‘목자들의 경배’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의 문을 연 거장이자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논란 많은 인물이다. 그는 화폭에서는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불렸지만 현실에서는 분노와 폭력에 휘말려 살았다. 1606년 로마에서 테니스 경기 중 사소한 시비가 결투로 번졌고 그는 상대를 살해하고 말았다. 화려하던 명성은 한순간에 ‘살인자’라는 낙인으로 바뀌었고 도망자 신세가 됐다. 1609년, 시칠리아 메시나에 도착한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폴리와 몰타를 전전하며 쫓겨 다닌 그의 내면은 죄책감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했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카라바조의 작품 <목자들의 경배>는 ‘가장 낮은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거룩한 밤을 그려냈다. 성경은 그 밤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8~11). 구원의 첫 소식은 왕궁이 아닌 들판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목자들은 ‘암 하아레츠(땅의 백성)’라 불리며 멸시받던 유대 사회 최하층민이었다. 안식일을 지킬 여유도, 회당에 들어갈 자격도, 법정에서 증언할 권리도 없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카라바조는 이 장면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찬란한 천사도, 웅장한 건물도 없다. 낡은 나무 기둥, 거친 돌바닥, 메마른 짚더미가 흩어진 초라한 마구간이 전부다. 그러나 이 초라함이야말로 성육신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는 사실을 그는 가감 없이 담아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놀라운 신비가 일어난다.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에게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온다. 카라바조는 등잔도, 횃불도 그리지 않았다. 아기 예수가 유일한 빛의 근원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는 말씀이 마구간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된 셈이다. 이 빛은 지친 산모 마리아를 어루만지고 목자들의 거칠고 주름진 얼굴을 따뜻하게 감싼다. 화폭 속 목자들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투박한 양털 옷, 흙투성이 맨발, 굽은 등, 굳은살 박인 손까지 양을 치다 급히 달려온 목자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아기 예수에게 모인다. 지팡이에 기댄 늙은 목자도, 허리를 깊이 숙인 젊은 목자도 경외감에 잠겨 있다. 가장 작고 연약한 아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신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역설을 카라바조는 빛과 구도로 표현했다. 그의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는 말씀처럼 주변의 어둠이 짙을수록 아기 예수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빛은 차별이 없다. 왕이든 목동이든 그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오히려 가장 낮고 가난한 이들이 이 빛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어쩌면 살인자이자 도망자였던 카라바조에게 이 그림은 처절한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내면에 깃든 어둠은 목자들의 밤보다 훨씬 깊고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붓끝으로 빛을 그려내며 자신이 갈망하던 용서와 구원을 화폭에 담았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어둠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영혼은 메마르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은 더 깊어진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리를 향한 갈증은 더욱 커진다.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탄은 한 가지 사실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 속으로 친히 들어오셨다. 2000년 전 마구간에서 시작된 그 빛은 시공간을 넘어 오늘 우리의 어둠 속에도 여전히 비추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더라”(눅 2:20). 목자들은 경배를 마친 뒤 다시 척박한 들판으로 향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들 안에는 이제 ‘빛’이 있었다. 어두운 현실을 견딜 이유, 희망의 근거가 생긴 것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카라바조가 어둠 속의 빛을 그려 넣은 것처럼 400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진리를 건넨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희망의 빛은 존재하며 그 빛은 가장 낮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먼저 닿는다는 사실을. 성탄절을 맞아 목자들처럼 꾸미지 않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그 빛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마구간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생명의 빛이, 우리 삶에 드리운 어둠까지 따뜻하게 밝혀 주기를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성탄이 주는 약속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2.19

    다 감사드리세
  • 17세기 초 유럽은 깊은 혼란 속에 있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의 갈등이 여전히 심각했다. 이러한 갈등은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러 왕의 야망과 얽히며 더욱 정세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1618년 보헤미아(체코)에서 개신교 탄압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이 불씨가 되어 유럽 전역을 피로 물들인 ‘30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일은 이 전쟁의 주 무대가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그중에서도 작센 지역의 작은 도시 아이렌부르크(Eilenburg)가 가장 참혹한 상황을 겪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가 안전할 것이라 믿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도시는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거리 곳곳에는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쓰러진 시신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마틴 린카르트(Martin Rinkhart, 1586~1649)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목회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흑사병까지 기승을 부리던 1637년 그는 혼자 하루에 50여 명의 장례를 치렀으며 그해 집례한 장례만 4000건이 넘었다.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깊은 슬픔을 겪었다. 그러나 린카르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믿으며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가진 것을 내어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설교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잃지 말자고 권면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수많은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는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날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봐야 했다. 그들이 대부분 믿음의 형제자매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있음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흘러나왔다. 그날 저녁 린카르트는 온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를 다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눈앞의 현실은 절망과 고난으로 가득했지만 그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감사가 넘쳐났다. 시를 즐겨 쓰던 그는 식사 전 드리던 감사기도를 바탕으로 한 찬송시를 지었다. 그 찬송시가 바로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Nun danket alle Gott)이다. 찬송가 가사에는 그의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 감사드리세 온 맘을 주께 바쳐/ 그 섭리 놀라워 온 세상 기뻐하네/ 예부터 주신 복 한없는 그 사랑/ 선물로 주시네 이제와 영원히” 참혹한 고난 속에서도 린카르트는 과거부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여전히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찬양을 올려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함께 계셔/ 기쁨과 평화의 복 내려주옵소서/ 몸과 맘 병들 때 은혜로 지키사/ 이 세상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그는 전쟁의 폐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며 지켜주심을 굳게 믿었다. 참된 기쁨과 평화는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주님만이 이 세상의 악과 고난에서 건져주실 진정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했다. “감사와 찬송을 다 주께 드리어라/ 저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 주님/ 영원한 하나님 다 경배하여라/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린카르트는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자 통치자 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높여드렸다. 그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전에도 이제도 장래도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 성도로서 마땅한 삶임을 깨닫게 한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날이다. 감사는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기쁨의 순간뿐 아니라 눈물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절망의 한가운데일지라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와 영생의 소망을 붙들며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리자.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고백이 모든 어둠을 이기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1.14

    그리스도의 얼굴
  •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200㎞, 피레네산맥 기슭의 작은 마을 타훌에 가면 1123년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성 클레멘트 교회의 제단 뒤편 공간을 가득 채운 이 그리스도상은 900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매일 기다리던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물고기, 어린양과 같은 상징으로만 표현했다. 인격적인 얼굴을 그리려는 시도는 수백 년이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마치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의 못 자국을 만져보려 했듯이 그들도 예수님을 형상으로라도 만나고자 열망했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의 용모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교회는 시대마다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왔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얼굴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라고 고백한 신앙의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시대마다 달랐다. 초기에는 아폴로를 닮은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때로는 철학자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로마 카타콤에서는 선한 목자로 비잔틴 시대에는 만유의 주로서 위엄 있게 표현되었다. 중세 서유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강조되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상적인 인간미가 부각되었다. 이처럼 각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에 맞게 그리스도를 표현했다. 특히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자 박해받던 교회의 상징이던 예수님은 황제의 모습처럼 왕좌에 앉아 세계를 다스리는 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타훌의 그리스도상도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아몬드형 광채 안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구원자이시다. 푸른색, 흰색, 붉은색으로 장식된 옷은 믿음과 순결, 희생을 상징한다. 이 벽화에서 예수님은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베푸시는 손짓을 하고 왼손에는 책을 들고 계신다. 그 책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은 독특한 긴장감을 담고 있다. 크게 뜬 눈과 정면을 향한 시선은 보는 이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그리스도상은 동방교회 성화의 초월성, 서방교회 성화의 인간성, 아프리카 교회의 흑인 그리스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자 그리스도라는 다양한 측면을 모두 담아낸다. 벽화의 세부적인 표현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님 후광의 십자가, 알파와 오메가, 네 생물의 상징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성과 구원 사역을 증언한다. 세 개와 다섯 개의 점들은 삼위일체와 창조의 신비를 암시한다. 모든 장식과 추상적 무늬는 하나의 목적을 지향한다. 그것은 성육신의 신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신 경이로운 사건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가? 성공과 번영만을 약속하는 그리스도인지 내 편만 들어주는 그리스도인지 아니면 고난 받는 이웃 속에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인지 말이다. 초기 교회가 당시 문화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표현했듯이 우리도 오늘의 언어로 그분을 증언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분은 심판자이면서 구원자이시고, 왕이면서 종이시며 멀리 계시면서 가까이 계신다. 무엇보다 그분의 눈은 오늘도 우리를 바라보신다. 요구하기보다 베풀어주시고 정죄하기보다 용서하시며 파멸이 아닌 구원을 원하시는 사랑의 눈으로. 성전에 들어가 이 벽화를 올려다본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그분의 눈이 우리를 꿰뚫어 보실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우리는 심판이 아닌 은혜를 정죄가 아닌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시대마다 다르게 그려진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사실이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지금도 우리를 비추고 있다. 그 빛은 어둠을 밝히고, 길을 잃은 이들을 인도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준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이 우리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 밝게 비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0.17

    샘물과 같은 보혈은
  • 피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 땅의 수많은 생물이 피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보혈(寶血)’이라 불린다. ‘보혈’은 문자 그대로 ‘보배로운 피’를 의미하며 신학적으로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를 가리킨다. 이 보혈의 참된 의미와 능력을 깊이 깨닫고 시로 고백한 인물이 있다. 바로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이다. 1731년 영국 하트퍼드셔에서 태어난 쿠퍼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허약한 체질에 우울증까지 겹친 그는 오랜 시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간신히 학업을 마친 후 변호사가 되었지만 극심한 불안 증세로 인해 법정에 한 번도 서지 못했다. 이후 쿠퍼는 의회 서기직 면접을 준비하던 중 갈수록 커지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공황장애를 겪었다. 마음의 병이 늘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조차 그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 단정했다. 끝내 세 차례에 걸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고 인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쿠퍼는 요양원에 입원한 후 신실한 그리스도인 코튼 박사의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를 묵상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 이 말씀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위해서도 보혈을 흘리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구원이 자격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쿠퍼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그의 인생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올니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한 쿠퍼는 그곳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을 만나 그의 목회를 돕게 되었다. 뉴턴은 쿠퍼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쿠퍼는 점차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며 신앙 또한 더욱 깊어졌다. 뉴턴은 쿠퍼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찬송시를 쓰도록 격려했다. 쿠퍼는 펜을 들고 지난 고통의 나날과 회심의 순간을 떠올렸다. 지나온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그러던 중 말씀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이 말씀에 영감을 받은 쿠퍼는 보혈의 은혜를 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나오게 된 찬송시가 오늘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다. 이 찬송의 영어 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Emmanuel’s veins”(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다). 쿠퍼에게 예수님의 보혈은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샘과도 같았다. 샘이 목마른 자에게 생명을 주고 더러움을 씻어내듯 예수님의 보혈은 죄로 인해 죽은 자를 살리며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 쿠퍼는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 속에서 자신을 건져낸 샘물 같은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예수님의 보혈은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다. 때로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찬송가 ‘샘물과 같은 보혈은’의 가사처럼 예수님의 보혈에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혹시 지금 어둠 가운데 있거나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혈의 샘이다. 예수님의 피로 가득한 그 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와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오늘 이 찬송의 가사를 묵상하며 마음 다해 불러보자.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를 힘입어 다시 일어설 용기와 소망을 얻게 될 것이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8.22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을 바라보며
  • 성령강림절이 지나고 교회력은 다시 ‘보통의 시간’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성령은 ‘보통의 시간’에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 이때 오래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의 <성령강림>(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이다. 반 다이크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출신으로 16세에 이미 자신의 화실을 가질 만큼 탁월한 재능을 지닌 화가였다. 루벤스의 조수로 활동하며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세기 중반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르네상스와 베네치아 화풍을 배웠다. 또한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색채와 구도에서 큰 영향을 받으며 더욱 성숙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후 영국 궁정화가로 초빙되어 왕과 귀족들의 초상을 다수 그리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를 계승하면서도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특히 그는 성경 인물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기보다는 실제 인간의 감정과 몸짓을 담아내어 그림을 보는 이가 그 장면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바로크 시대가 강조한 ‘극적인 순간’과 ‘신앙의 감각적 체험’을 탁월하게 구현해낸 그의 작품이 바로 <성령강림>이다. 이 그림은 1620년경 반 다이크가 루벤스의 화실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한 성령강림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날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림 상단에는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있던 제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요 20:19). 그러나 그 구름을 뚫고 삼각형 모양으로 빛이 내려온다. 삼각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며 그 빛 위쪽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이 빛은 명확한 경계 없이 아래로 퍼지며 방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닿는다. 그림 속 인물은 총 14명이다. 열두 사도, 마리아로 보이는 한 여성 그리고 오른쪽 기둥 뒤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은 성별, 나이, 옷차림, 표정, 자세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성령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하셨음을 보여준다. 가운데 푸른색 옷을 입은 마리아는 두 손을 모은 채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 앞에 강한 바람에 밀려 넘어질 듯한 인물은 성령의 임재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강력하고 실제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림 오른쪽 기둥 아래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독서대 위에 펼쳐져 있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놓여 있다. 이는 오순절 날이 이르기 전에 제자들이 기도에 힘쓰며 읽었던 구약의 율법서나 시편을 상징한다(행 1:14). 반 다이크는 이를 통해 성령 충만이 말씀과 기도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오른편 한 사도는 기둥에 팔을 두르고 있다. 기둥은 교회를 상징하며(딤전 3:15), 이 장면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진리의 기둥을 붙잡고 서 있는 성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눈길이 머무는 곳 오른쪽 가장자리 기둥 뒤에 얼굴이 가려진 인물이 있다. 반 다이크는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려놓았다. 그는 누구일까? 열두 사도도 아니고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다. 반 다이크는 이 인물을 통해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자리는 바로 당신의 자리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속으로 참여하라는 부르심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회복되어야 할 현재의 역사다. 성령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지 않는다. 성령은 오늘, 지금 여기에,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신다.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은 다시금 우리의 시선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끈다. 지금은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실한 때이다. 지나온 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하게 기도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대한민국과 세계 온 열방 위에 예수 그리스도 참 소망의 빛이 비치길 간절히 구하자. <국제신학연구원>
  • 2025.07.18

    살아있는 예배로의 첫걸음 … 회중 찬송
  • 예배 중 성도들의 찬송이 대성전을 가득 메우는 순간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선포하는 거룩한 예배 행위이다. 우리는 찬송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을 고백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회중 찬송’은 우리의 신앙고백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모인 우리가 한마음으로 찬송할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연합하며 하나님 앞에 하나 된 공동체임을 드러내게 된다. 회중 찬송의 기원은 성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미리암의 인도를 따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은혜에 응답했다(출 15장).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레위 사람들을 세워 회중과 더불어 찬송하게 함으로써 예배 가운데 찬양을 공식화했다(대상 16장).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세 차례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며 시편을 함께 노래했다(시 120~134편). 초대교회 역시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고(행 2:47), 바울은 성도들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권면하며 회중 찬송의 전통을 이어갔다(골 3:16).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부르는 찬양 속에 은혜의 감격과 공동체의 연합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 회중 찬송의 자리는 위축되기도 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회는 제도화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찬송 가사에 이단적 사상이 스며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4세기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공인된 성가만을 허용하고 회중 찬송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결정은 이단 사상의 확산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회중의 예배 참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찬송은 성직자와 성가대의 전유물이 되었고, 일반 성도는 예배에서 소극적인 위치에 머물게 됐다. 이 흐름을 뒤흔든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의 핵심 취지 중 하나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의 주체가 되는 회중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 과정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도 중심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그는 음악을 “신앙을 지키고 영혼을 맑게 하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 표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음악을 통해 마음에 새겨질 때 믿음이 자라고 굳건해진다고 강조했다. 루터는 특히 성도들이 함께 찬송하며 열정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러한 유익이 더욱 커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찬송의 주체를 다시 회중에게 돌려주고자 했고 그의 열정은 결국 독일 개신교의 대표적인 회중 찬송인 ‘코랄’(Choral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당시 예배에서는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가 사용되어 주로 성직자와 전문음악인만이 부를 수 있었다. 루터는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찬송의 가사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복잡한 다성 음악을 단순한 단선율로 개편하여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524년 자신이 창작한 37곡의 코랄을 엮어 『기독교 가곡집』(Etliche Christliche Lieder)을 출간하면서 회중 찬송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중 오늘날에도 널리 불리는 곡이 바로 새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된 회중 찬송은 단순히 음악에 참여하는 차원을 넘어 성도들이 예배의 주체로서 하나님 앞에 능동적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찬송을 통해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며 더 깊은 신앙으로 자라났다. 나아가 회중 찬송은 성도 간의 연합을 북돋아 공동체 중심의 예배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회중 찬송은 시대마다 문화와 언어를 달리하며 발전해왔고, 그 중심에는 늘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부르는 믿음의 노래’라는 본질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찬양곡이 넘쳐나는 가운데 회중 찬송은 여전히 교회 예배의 핵심 축을 이룬다. 그러나 때로는 찬송이 예배 전 의례적인 순서처럼 여겨지거나 의무적이고 습관적으로 불리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럴수록 우리는 회중 찬송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응답이며 살아있는 신앙고백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묶인다. 찬송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믿음의 다리이자 세대를 넘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영적 유산이다. 이 귀한 유산을 소중히 지켜가며 찬송을 통해 예배가 살아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찬송이 대성전을 넘어 하늘에 닿아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고 교회가 새롭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5.16

    고통의 십자가상
  • 라인란트(Rheinland)는 라인강 유역에 있는 독일 서부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세 근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로 풍부한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받아들여 독창적인 스타일과 기법을 형성함으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세 후기 라인란트에서 만들어진 그리스도 수난상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경건하고 신성하게 묘사되었으나 14세기와 15세기의 라인란트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을 강조한 십자가상이 유행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십자가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지만, 라인란트에서는 열십자(十) 형태가 아닌 Y자 형태의 십자가상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십자가상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여 ‘고통의 십자가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라인란트에서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4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 흐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수소(Heinrich Suso, 1295~1366)를 들 수 있다. 하인리히 수소가 태어난 13세기 말 독일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교황과 황제 간의 대립이 심화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와 흑사병의 유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시민계급과 수공업자의 등장으로 사회 구조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운동은 도미니크 수도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수소는 13세의 나이에 이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 공부에 매진하며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그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고귀한 표현으로 이해했고 금욕적인 생활과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추구했다. 14세기에 그의 사상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성도들 역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모방하고 참회의 삶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권위 있고 위엄 있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보다는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그리스도를 필요로 했던 시대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며 그리스도와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려고 했다. 이것이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라인란트의 ‘고통의 십자가상’ 중 대표적인 작품은 쾰른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십자가상이다. 1304년경 제작된 이 작품은 독일에서 제작된 가장 초기의 Y자형 십자가 중 하나이다. 이 조각상에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50㎝의 몸체에서 상체는 비율에 맞지 않게 과장되어 있다. 늑골은 앙상하게 드러나 있으며 채찍에 맞고 창에 찔린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축 처진 머리로부터 가시관에 찔려 새어 나온 피가 얼굴 전체를 타고 흘러내린다. 힘겹게 미간을 찡그린 채 양 눈을 감고 겨우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은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케 한다. 그리스도의 두 팔은 Y자형으로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못 박혀 있다. 이 자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상태를 더욱 고통스럽고 불안정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겉가죽이 벗겨진 손바닥을 관통하는 길고 두꺼운 대못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절한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하체는 천 한 조각으로 간신히 가려져 있고 앙상한 두 다리는 하나의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못이 박힌 발등 사이로는 갈라진 근육과 드러난 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십자가상은 예배를 드리러 온 이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깊은 묵상에 잠기거나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온몸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은 죄악 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절대 멈추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확증하신 사랑은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고통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묵상해보길 권한다. 우리의 죄인 됨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깊이 잠길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뜨겁게 우리를 덮을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4.11

    마태수난곡
  •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이다. 이 절기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까지 이어지는 40일간의 영적 여정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연단을 받았고,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셨다. 이러한 성경적 배경에서 초대교회는 40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금식과 기도, 회개 등의 영적 훈련을 실천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를 통해 경건한 시간을 보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음악이 있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독일 작센주 아이제나흐에서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암부로지우스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루터교 신앙에서 자란 그는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시작하여 평생에 교회와 궁정에서 활동하며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바흐는 기독교 정통주의가 무너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음악이야말로 기독교적 경건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다. 이후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어 기독교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이러한 신념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1727년에 완성된 ‘마태수난곡’이다. 마태수난곡은 총 78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으로써 1부는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까지의 이야기, 2부는 체포 이후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곡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흐가 예수님의 고난을 음악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 곡은 예수님의 두려움과 고통, 슬픔과 죽음을 나타내는 구절이 등장할 때마다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을 사용하여 불안감과 애절함을 극대화한다.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부점 리듬을 활용하여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천둥과 번개가 치는 장면에서는 빠른 연주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거나 등장인물의 독백이 있는 대목에서는 현악기가 은은하게 깔리면서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예를 들어 마태수난곡 78곡 중 제47곡 아리아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는 장면이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알토의 아리아(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있는 서정적 독창곡)로 시작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um meiner Zahren willen) 나를 보시옵소서 (Schaue hier)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울고 있는 (Herz und Auge weint vor dir)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Bitterlich)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아리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의 마음이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베드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닭이 울자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베드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 22:61)라는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말씀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1~32).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하여 넘어지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는 사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깨어지고 상한 심령으로 애통해하며 눈물로 참된 회개를 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마태수난곡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실패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3.2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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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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