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항상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262×205㎝ 크기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이 작품은 누가복음 15장에서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탕자의 귀향>은 명암을 따라 세 가지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의 품에 무릎을 꿇고 안겨있는 작은아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작은아들은 집을 떠날 때만 해도 부잣집 아들답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저분하고 낡은 옷을 걸치고 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신발은 다 닳아졌다. 길었던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머리숱이 없는 삭발한 모습이다. 그의 행색은 집을 떠나 먼 곳에서 겪은 수모와 고통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 있는 단검이 눈에 띈다. 모든 걸 탕진하고 처참한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왜 단검만은 팔지 않고 남겨둔 걸까. 칼이 과거에는 신분이나 명예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단검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끝까지 단검을 지킴으로써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이 아직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붙잡았다. 결국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신분이 그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리도록 이끌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모습을 살펴보자. 렘브란트가 묘사한 아버지는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닌 인자한 노인의 모습이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붉은 색 망토로 아들을 휘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림 전체에서 가장 빛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과는 상관없다. 아버지에겐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의 누추한 모습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가슴에 폭 안겨 참회하고 있는 아들을 포근하게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양손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왼손은 강인하면서 남성적이다. 오른손은 왼손과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부드럽게 표현된 손등과 가지런히 배열된 손가락이 마치 여성의 손과 같다. 근육질의 왼손이 아들을 단단히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라면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듯한 오른손은 위로와 평안을 주는 어머니의 손이라고 볼 수 있다. 돌아온 아들을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결연한 의지와 동시에 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따뜻한 사랑이 탕자를 감싼다. 마지막으로 큰아들을 살펴보자. 렘브란트는 큰아들을 화면 우측에 공간을 크게 할애하여 다룬다. 아버지의 빛에서 곧바로 반사되는 빛은 다른 조연들과는 달리 그가 장자임을 가리킨다. 동생이 돌아온 사실에 함께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큰아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와 동생을 관조하고 있다. 그의 손을 주목해보자. 어두운 오른손이 왼쪽의 밝은 손을 짓누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활짝 반기는 양손과 대조를 이룬다. 자신의 빛나는 손을 짓누르는 어두운 손을 통해 그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동생의 귀향을 보고 분노와 시기에 사로잡힌 큰아들은 외적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잃어버려진 상태이다. 어쩌면 그는 숨은 탕자가 아닐까. 렘브란트는 젊은 나이에 화가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부를 누렸으나 그의 말년은 화구와 몇 벌의 옷만이 재산으로 남았을 만큼 지극히 초라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자식을 셋이나 잃고 아내마저 죽게 된다.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려 1남 1녀를 낳았지만 아들과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이어 첫 부인이 낳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도 죽는다. 가족을 잃는 슬픔과 함께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수직으로 추락했다. 그의 삶은 탕자 그 자체였다. 실패와 슬픔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려진 <탕자의 귀향>은 렘브란트 자신의 영적인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은아들의 상실이나 큰아들의 상실 모두가 그의 삶에서 발견되는 모습이었다. 렘브란트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두 아들 모두 치유하고 용서하는 아버지의 포옹이 필요함을, 자신의 잘못으로 부서져 버린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버지의 따뜻한 품,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렘브란트의 63년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끝에서 그려진 이 마지막 신앙고백은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탕자와 같이 본래의 거처인 하나님의 품을 떠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더 먼 곳으로 떠나 방황하는 우리의 인생을 본다.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용서’로 하나가 된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냉담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교만하며 분노하는 큰아들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우리를 따스한 빛이 감싼다. 궁극적으로 빛의 근원이시며, 사랑과 용서와 연민과 화해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우리를 그 빛으로, 아버지의 따듯한 품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3.15

    공감의 언어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의 언어가 있다면 단연 음악일 것이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라는 문학 시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음악은 인류의 보편적 언어이다.” 그저 리듬과 높낮이로 이루어진 소리일 뿐인데 그 소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게 한다. 이는 경계를 초월하고 다른 문화를 연결하며 내면의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놀라운 능력이 음악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다른 이해와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음악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즐거움과 아름다움, 감동과 역동의 세계를 경험한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K팝 열기에 지칠 줄 모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데 이어 2023년 1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상’에서 단독 공연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2022년 10월 신종 코로나 사태 중에 BTS가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엔 전 세계 191국에서 100만명의 관객이 모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국빈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버킹엄궁에서 만찬을 가졌을 때 한국 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특히 찰스 3세는 “영국에 비틀스(The Beatles)의 렛잇비(Let It Be)가 있다면 한국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BTS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왜 이토록 BTS에 열광할까? 2019년 영국의 ‘타임스(Times)’를 통해서 기사화되었지만 이는 ‘변방’이었던 영국에서 시작된 비틀스 신드롬이 미국을 급습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1960년대 문화현상)’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 역사를 바꾼 일련의 과정과 같이 BTS의 영향력을 그와 유사하게 보기 때문이다. 마치 비틀스는 1950년대에 젊은이들의 반항이나 욕구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던 로큰롤을, 희망 가득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BTS도 세대를 공감하는 메시지, 나아가 기대와 희망에 찬 음악으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K팝이 서구의 음악 팬들이 비(非)서구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라고 간주하며 K팝의 대중성을 널리 알렸다. K팝의 인기만큼 한국 교회 성도에게 잘 알려진 찬양이 있다. 2020년 12월에 첫 음반을 내고 2022년 한 해 동안 3000만 회 이상 공유된 찬양으로 손경민 목사가 작사·작곡한 ‘은혜’라는 찬양이다. 고려신학대학교 변종길 교수는 “K-찬양의 탄생”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찬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코로나 시기에 발매된 이 음반은 당시 코로나로 힘들어하던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질병과 생활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여 괴로워하며 힘들어했던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시간 등 인생의 세찬 바람으로 인해 고난과 절망을 가슴에 묻어두며 힘겹게 걸어야 했던 순간들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때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를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Story)에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되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이야기에 ‘나’만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나’ 홀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지체들도 ‘나’처럼 힘겹게 걸어온 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 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이 당연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삶의 고백이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함께 공감의 눈물로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음악이란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는 소통의 언어이다. 이런 점에서 찬양은 ‘하나님’의 이야기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국제신학연구원>
  • 2024.02.16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 
  • <최후의 만찬>을 통해 본 성찬
    우리 교회는 매월 첫째 주일에 성찬 예배를 드린다. 성찬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여 떡과 포도주를 나누라는 말씀을 따르는 성례전이다(마 26:17~30; 막 14:12~26; 눅 22:7~23; 요 13:21~30; 고전 11:23~25).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미술계에서도 많이 그려졌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에 있는 한 수도원 성당에 그려진 벽화였는데, 현재는 같은 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널리 유명해져서 여러 화가가 본떠서 그렸고 많은 교회와 성당에 사본이 걸렸다. 오늘 살펴볼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Elder, 1447~1553)가 그린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 중 ‘최후의 만찬’도 다 빈치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라는 미술 작품은 앞뒷면에 각각 4개의 그림이 그려진 형태이다. 그중에 ‘최후의 만찬’은 앞면 가운데에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원형 테이블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유심히 살펴보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품에 안긴 사랑받는 제자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가룟 유다도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림 오른쪽에 있는 한 남자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장면이다. 여기서 포도주잔을 건네는 사람은 마르틴 루터이고, 잔을 받는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크라나흐의 아들이다. 크라나흐는 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루터가 자기 아들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장면을 그려 넣었을까? 여기에 크라나흐가 말하려고 하는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먼저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종교개혁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당시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철저하게 사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성경도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어서 사제들만 읽을 수 있었다. 설교도 라틴어로 해서 성도들이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성찬식에는 사제들이 떡과 잔으로 참여하는 반면에 성도들은 떡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관습을 통해 사제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한없이 높이고 성도들이 자신들을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루터는 이러한 일들에 반대하여 모든 시민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고, 설교도 독일어로 했다. 그리고 성찬식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라나흐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여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루터는 사제를 대표하고 크라나흐의 아들은 성도를 대표한다. 루터가 크라나흐의 아들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모습은 예수님 앞에서 사제가 성도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성도들도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을 그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냈다. 또한 루터 옆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루터의 성경을 최초로 인쇄했던 한스 루프트라는 인물이다.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이며 『루터의 재발견』(복있는사람, 2017)을 집필하고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복있는사람, 2023) 등을 번역한 최주훈 박사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을 제외한 인물들은 당시 비텐베르크시에 사는 주민들이라고 말한다. 즉, 이 그림은 성찬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라나흐의 작품을 통해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을 보니 우리 교회에서 성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한편으로 ‘혹시 우리가 사제들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우리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모든 성도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진수가 담긴 떡과 포도주가 돌아가게 했듯이 우리도 내가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하자.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성찬에 참여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1.19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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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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