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샘물과 같은 보혈은
  • 피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 땅의 수많은 생물이 피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보혈(寶血)’이라 불린다. ‘보혈’은 문자 그대로 ‘보배로운 피’를 의미하며 신학적으로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를 가리킨다. 이 보혈의 참된 의미와 능력을 깊이 깨닫고 시로 고백한 인물이 있다. 바로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찬송가 작사가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이다. 1731년 영국 하트퍼드셔에서 태어난 쿠퍼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허약한 체질에 우울증까지 겹친 그는 오랜 시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학교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간신히 학업을 마친 후 변호사가 되었지만 극심한 불안 증세로 인해 법정에 한 번도 서지 못했다. 이후 쿠퍼는 의회 서기직 면접을 준비하던 중 갈수록 커지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공황장애를 겪었다. 마음의 병이 늘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녔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조차 그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라 단정했다. 끝내 세 차례에 걸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고 인생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쿠퍼는 요양원에 입원한 후 신실한 그리스도인 코튼 박사의 따뜻한 돌봄을 받으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를 묵상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 이 말씀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예수님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위해서도 보혈을 흘리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는 구원이 자격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임을 믿게 되었다. 그렇게 쿠퍼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고 그의 인생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올니라는 작은 마을로 이주한 쿠퍼는 그곳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을 만나 그의 목회를 돕게 되었다. 뉴턴은 쿠퍼에게 든든한 친구이자 믿음의 동역자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쿠퍼는 점차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며 신앙 또한 더욱 깊어졌다. 뉴턴은 쿠퍼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찬송시를 쓰도록 격려했다. 쿠퍼는 펜을 들고 지난 고통의 나날과 회심의 순간을 떠올렸다. 지나온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그러던 중 말씀 한 구절이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 13:1). 이 말씀에 영감을 받은 쿠퍼는 보혈의 은혜를 글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나오게 된 찬송시가 오늘 우리가 부르는 새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다. 이 찬송의 영어 원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Emmanuel’s veins”(임마누엘의 핏줄에서 흘러나온 피로 가득 찬 샘이 있다). 쿠퍼에게 예수님의 보혈은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샘과도 같았다. 샘이 목마른 자에게 생명을 주고 더러움을 씻어내듯 예수님의 보혈은 죄로 인해 죽은 자를 살리며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 쿠퍼는 한 줄기 빛조차 없는 암흑 속에서 자신을 건져낸 샘물 같은 보혈의 은혜를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예수님의 보혈은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역사하는 능력이다. 때로 우리는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찬송가 ‘샘물과 같은 보혈은’의 가사처럼 예수님의 보혈에는 지금도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혹시 지금 어둠 가운데 있거나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혈의 샘이다. 예수님의 피로 가득한 그 샘은 오늘도 우리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든지 와서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오늘 이 찬송의 가사를 묵상하며 마음 다해 불러보자.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를 힘입어 다시 일어설 용기와 소망을 얻게 될 것이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8.22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을 바라보며
  • 성령강림절이 지나고 교회력은 다시 ‘보통의 시간’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성령은 ‘보통의 시간’에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신다. 이때 오래된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의 <성령강림>(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이다. 반 다이크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출신으로 16세에 이미 자신의 화실을 가질 만큼 탁월한 재능을 지닌 화가였다. 루벤스의 조수로 활동하며 종교화와 초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세기 중반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르네상스와 베네치아 화풍을 배웠다. 또한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와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색채와 구도에서 큰 영향을 받으며 더욱 성숙한 작가로 성장했다. 이후 영국 궁정화가로 초빙되어 왕과 귀족들의 초상을 다수 그리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루벤스의 화려한 색채를 계승하면서도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특히 그는 성경 인물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기보다는 실제 인간의 감정과 몸짓을 담아내어 그림을 보는 이가 그 장면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바로크 시대가 강조한 ‘극적인 순간’과 ‘신앙의 감각적 체험’을 탁월하게 구현해낸 그의 작품이 바로 <성령강림>이다. 이 그림은 1620년경 반 다이크가 루벤스의 화실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 위에 불의 혀처럼 임한 성령강림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오늘날 성령 충만을 사모하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림 상단에는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있던 제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요 20:19). 그러나 그 구름을 뚫고 삼각형 모양으로 빛이 내려온다. 삼각형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며 그 빛 위쪽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이 빛은 명확한 경계 없이 아래로 퍼지며 방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닿는다. 그림 속 인물은 총 14명이다. 열두 사도, 마리아로 보이는 한 여성 그리고 오른쪽 기둥 뒤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인물이 포함된다. 이들은 성별, 나이, 옷차림, 표정, 자세가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머리 위에 성령의 불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성령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임하셨음을 보여준다. 가운데 푸른색 옷을 입은 마리아는 두 손을 모은 채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녀 앞에 강한 바람에 밀려 넘어질 듯한 인물은 성령의 임재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강력하고 실제적인 사건임을 보여준다. 그림 오른쪽 기둥 아래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독서대 위에 펼쳐져 있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놓여 있다. 이는 오순절 날이 이르기 전에 제자들이 기도에 힘쓰며 읽었던 구약의 율법서나 시편을 상징한다(행 1:14). 반 다이크는 이를 통해 성령 충만이 말씀과 기도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오른편 한 사도는 기둥에 팔을 두르고 있다. 기둥은 교회를 상징하며(딤전 3:15), 이 장면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진리의 기둥을 붙잡고 서 있는 성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눈길이 머무는 곳 오른쪽 가장자리 기둥 뒤에 얼굴이 가려진 인물이 있다. 반 다이크는 그 사람을 의도적으로 가려놓았다. 그는 누구일까? 열두 사도도 아니고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다. 반 다이크는 이 인물을 통해 시대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이 자리는 바로 당신의 자리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구경꾼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속으로 참여하라는 부르심이다. 성령의 충만함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회복되어야 할 현재의 역사다. 성령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지 않는다. 성령은 오늘, 지금 여기에,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신다. 반 다이크의 <성령강림>은 다시금 우리의 시선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끈다. 지금은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절실한 때이다. 지나온 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하게 기도하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대한민국과 세계 온 열방 위에 예수 그리스도 참 소망의 빛이 비치길 간절히 구하자. <국제신학연구원>
  • 2025.07.18

    살아있는 예배로의 첫걸음 … 회중 찬송
  • 예배 중 성도들의 찬송이 대성전을 가득 메우는 순간은 언제나 감격스럽다. 찬송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선포하는 거룩한 예배 행위이다. 우리는 찬송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을 고백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회중 찬송’은 우리의 신앙고백이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모인 우리가 한마음으로 찬송할 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연합하며 하나님 앞에 하나 된 공동체임을 드러내게 된다. 회중 찬송의 기원은 성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미리암의 인도를 따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은혜에 응답했다(출 15장).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 레위 사람들을 세워 회중과 더불어 찬송하게 함으로써 예배 가운데 찬양을 공식화했다(대상 16장).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세 차례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며 시편을 함께 노래했다(시 120~134편). 초대교회 역시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고(행 2:47), 바울은 성도들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권면하며 회중 찬송의 전통을 이어갔다(골 3:16).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부르는 찬양 속에 은혜의 감격과 공동체의 연합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서 회중 찬송의 자리는 위축되기도 했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회는 제도화되며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찬송 가사에 이단적 사상이 스며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4세기 라오디게아 공의회는 공인된 성가만을 허용하고 회중 찬송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결정은 이단 사상의 확산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회중의 예배 참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찬송은 성직자와 성가대의 전유물이 되었고, 일반 성도는 예배에서 소극적인 위치에 머물게 됐다. 이 흐름을 뒤흔든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의 핵심 취지 중 하나는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예배의 주체가 되는 회중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이 과정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도 중심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그는 음악을 “신앙을 지키고 영혼을 맑게 하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 표현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음악을 통해 마음에 새겨질 때 믿음이 자라고 굳건해진다고 강조했다. 루터는 특히 성도들이 함께 찬송하며 열정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러한 유익이 더욱 커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찬송의 주체를 다시 회중에게 돌려주고자 했고 그의 열정은 결국 독일 개신교의 대표적인 회중 찬송인 ‘코랄’(Chorale)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당시 예배에서는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안 성가가 사용되어 주로 성직자와 전문음악인만이 부를 수 있었다. 루터는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찬송의 가사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복잡한 다성 음악을 단순한 단선율로 개편하여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524년 자신이 창작한 37곡의 코랄을 엮어 『기독교 가곡집』(Etliche Christliche Lieder)을 출간하면서 회중 찬송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그중 오늘날에도 널리 불리는 곡이 바로 새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된 회중 찬송은 단순히 음악에 참여하는 차원을 넘어 성도들이 예배의 주체로서 하나님 앞에 능동적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찬송을 통해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며 더 깊은 신앙으로 자라났다. 나아가 회중 찬송은 성도 간의 연합을 북돋아 공동체 중심의 예배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회중 찬송은 시대마다 문화와 언어를 달리하며 발전해왔고, 그 중심에는 늘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부르는 믿음의 노래’라는 본질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찬양곡이 넘쳐나는 가운데 회중 찬송은 여전히 교회 예배의 핵심 축을 이룬다. 그러나 때로는 찬송이 예배 전 의례적인 순서처럼 여겨지거나 의무적이고 습관적으로 불리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럴수록 우리는 회중 찬송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경건한 응답이며 살아있는 신앙고백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묶인다. 찬송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믿음의 다리이자 세대를 넘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는 영적 유산이다. 이 귀한 유산을 소중히 지켜가며 찬송을 통해 예배가 살아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찬송이 대성전을 넘어 하늘에 닿아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고 교회가 새롭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5.16

    고통의 십자가상
  • 라인란트(Rheinland)는 라인강 유역에 있는 독일 서부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세 근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로 풍부한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받아들여 독창적인 스타일과 기법을 형성함으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세 후기 라인란트에서 만들어진 그리스도 수난상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경건하고 신성하게 묘사되었으나 14세기와 15세기의 라인란트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을 강조한 십자가상이 유행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십자가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지만, 라인란트에서는 열십자(十) 형태가 아닌 Y자 형태의 십자가상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십자가상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여 ‘고통의 십자가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라인란트에서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4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 흐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수소(Heinrich Suso, 1295~1366)를 들 수 있다. 하인리히 수소가 태어난 13세기 말 독일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교황과 황제 간의 대립이 심화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와 흑사병의 유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시민계급과 수공업자의 등장으로 사회 구조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운동은 도미니크 수도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수소는 13세의 나이에 이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 공부에 매진하며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그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고귀한 표현으로 이해했고 금욕적인 생활과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추구했다. 14세기에 그의 사상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성도들 역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모방하고 참회의 삶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권위 있고 위엄 있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보다는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그리스도를 필요로 했던 시대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며 그리스도와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려고 했다. 이것이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라인란트의 ‘고통의 십자가상’ 중 대표적인 작품은 쾰른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십자가상이다. 1304년경 제작된 이 작품은 독일에서 제작된 가장 초기의 Y자형 십자가 중 하나이다. 이 조각상에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50㎝의 몸체에서 상체는 비율에 맞지 않게 과장되어 있다. 늑골은 앙상하게 드러나 있으며 채찍에 맞고 창에 찔린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축 처진 머리로부터 가시관에 찔려 새어 나온 피가 얼굴 전체를 타고 흘러내린다. 힘겹게 미간을 찡그린 채 양 눈을 감고 겨우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은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케 한다. 그리스도의 두 팔은 Y자형으로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못 박혀 있다. 이 자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상태를 더욱 고통스럽고 불안정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겉가죽이 벗겨진 손바닥을 관통하는 길고 두꺼운 대못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절한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하체는 천 한 조각으로 간신히 가려져 있고 앙상한 두 다리는 하나의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못이 박힌 발등 사이로는 갈라진 근육과 드러난 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십자가상은 예배를 드리러 온 이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깊은 묵상에 잠기거나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온몸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은 죄악 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절대 멈추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확증하신 사랑은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고통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묵상해보길 권한다. 우리의 죄인 됨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깊이 잠길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뜨겁게 우리를 덮을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4.11

    마태수난곡
  •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이다. 이 절기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까지 이어지는 40일간의 영적 여정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연단을 받았고,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셨다. 이러한 성경적 배경에서 초대교회는 40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금식과 기도, 회개 등의 영적 훈련을 실천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를 통해 경건한 시간을 보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음악이 있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독일 작센주 아이제나흐에서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암부로지우스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루터교 신앙에서 자란 그는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시작하여 평생에 교회와 궁정에서 활동하며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바흐는 기독교 정통주의가 무너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음악이야말로 기독교적 경건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다. 이후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어 기독교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이러한 신념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1727년에 완성된 ‘마태수난곡’이다. 마태수난곡은 총 78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으로써 1부는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까지의 이야기, 2부는 체포 이후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곡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흐가 예수님의 고난을 음악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 곡은 예수님의 두려움과 고통, 슬픔과 죽음을 나타내는 구절이 등장할 때마다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을 사용하여 불안감과 애절함을 극대화한다.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부점 리듬을 활용하여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천둥과 번개가 치는 장면에서는 빠른 연주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거나 등장인물의 독백이 있는 대목에서는 현악기가 은은하게 깔리면서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예를 들어 마태수난곡 78곡 중 제47곡 아리아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는 장면이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알토의 아리아(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있는 서정적 독창곡)로 시작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um meiner Zahren willen) 나를 보시옵소서 (Schaue hier)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울고 있는 (Herz und Auge weint vor dir)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Bitterlich)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아리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의 마음이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베드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닭이 울자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베드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 22:61)라는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말씀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1~32).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하여 넘어지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는 사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깨어지고 상한 심령으로 애통해하며 눈물로 참된 회개를 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마태수난곡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실패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3.21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등장한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 시날 땅에 정착한 노아의 후손들은 하늘까지 닿을 만큼 크고 높은 탑을 세우려고 했다. 이는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건축이 중단되도록 하셨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바벨탑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 시기에 바벨탑을 주제로 한 그림만 백 점이 넘게 그려졌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다. 브뤼헐은 바벨탑을 소재로 세 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오늘 살펴볼 작품은 그가 1563년 안트베르펜에서 완성한 것이다. 브뤼헐은 1525~1529년경 네덜란드 남부 브레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개신교도를 탄압하고 처형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브뤼헐은 그림의 세부 묘사를 통해 스페인의 압제를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네덜란드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바벨탑> 역시 단순히 성경에서 말하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긴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원형 구조로 된 바벨탑은 중앙에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나선형 형태를 띠고 있다. 브뤼헐은 이 탑을 그릴 때 로마의 콜로세움을 참고했으며, 당시 고대 문헌 중 유일하게 바벨탑을 묘사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건축이 끝나지 않아 탑의 내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배경에는 들판과 바다가 펼쳐져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구약 시대의 바벨탑 배경이 아닌 16세기 네덜란드의 도시 풍경과 건축 기술, 선박 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상황을 바벨탑 사건과 연결 지으려는 화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는 한 왕이 수행원들과 함께 건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으며 석공들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로마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에서 바벨탑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 니므롯 왕이라고 기록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니므롯은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인물이었으며 독재적으로 바벨탑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브뤼헐은 이 점을 통해 니므롯 왕을 당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에서 왕에게 절하는 석공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 국민을 상징하며 바벨탑 자체는 스페인의 억압적 통치를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벨탑은 구름보다 더 높이 솟아 있다. 바닷길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건축자재, 무거운 돌들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거대한 쳇바퀴가 달린 기중기, 탑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수백 명의 일꾼이 보인다. 그러나 탑은 애초부터 수직으로 곧게 세워지지 않고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아래층이 완성되기도 전에 위층을 쌓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탑의 일부가 이미 무너져 내렸고 기초가 되는 반석에는 금이 가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구조는 바벨탑이 붕괴될 것을 암시하며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은 결국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전달한다. 브뤼헐이 수백 년 전에 그린 <바벨탑>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벨탑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탑의 크기나 높이에 달려 있지 않다. 더 높아지려는 욕망과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은 결국 불행과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온다. 오늘 브뤼헐의 <바벨탑>을 묵상하며 혹시 내 안에도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돌아보자. 만약 그렇다면 교만한 마음을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주님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내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국제신학연구원>
  • 2025.02.14

    예수가 거느리시니
  • 2025년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혼란과 무안공항 비행기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조셉 길모어(Joseph Gilmore) 목사님이 작사한 ‘예수가 거느리시니’(He Leadeth Me)라는 찬송가는 불안과 혼돈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 찬송가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한창일 때 길모어 목사님이 전한 설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여러 차례 새해를 맞이했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희망보다는 늘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전쟁하는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웠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1862년 3월 26일 길모어 목사님은 필라델피아 제일침례교회에서 시편 23편 말씀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날 목사님과 성도들은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경험했다. 예배 후 길모어 목사님은 한 성도의 집에 초대를 받아 여러 성도와 함께 받은 은혜와 간증을 나누었다. 그때 성도들이 받은 감동을 잊지 못한 목사님은 설교원고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인도하시네.” 길모어 목사님은 이 찬송시를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아내는 이것을 목사님에게 알리지 않고 『파수꾼과 반사경』(Watchman and Reflector)이라는 정기 간행물에 기고했다. 이후 작곡자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radbury)가 이 찬송시에 곡을 붙여 1864년에 그의 찬송곡집 『황금빛 향로』(The Golden Censer)에 수록하면서 이 곡이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3년 후인 1865년 길모어 목사님은 뉴욕 로체스터 제2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첫 설교에 어울리는 곡을 찾으려고 찬송가를 뒤적거리다가 아내에게 찬송시를 건네줬던 게 기억났다. 그는 절망과 불안 속에 지친 성도들에게 시편 23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던 찬송가의 가사를 떠올리며 이렇게 설교했다. “성도 여러분, ‘예수가 거느리신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삶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주님은 낮과 밤에 깨고 자는 것까지 돌봐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인도자이십니다. 때로는 병들고 실패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고쳐주시고 일으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길에서 질병의 고통, 이별의 아픔, 궁핍과 상실감, 외로움을 만나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과 이별할 때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이 땅의 짧은 번영은 허무함과 절망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기쁨은 영원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혼란하다. 하지만 이러할 때일수록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와 함께 거느리시는 예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해야 한다. 어떤 위기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굳세게 살아가는 소망의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아멘. <국제신학연구원>
  • 2025.01.17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
  • 대림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며 보내는 절기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바로 ‘수태고지’(受胎告知), 즉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고 특히 누가복음에서 그 내용이 더욱 세밀하고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이어지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마리아의 찬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수많은 화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와 마주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만 해도 120여 점이 넘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의 <수태고지>는 고딕 미술의 걸작으로 불린다.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인 마르티니는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배제하고 고딕 양식 특유의 정교하고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을 활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의 대표작인 <수태고지>는 이러한 고딕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배경과 정교하게 묘사된 인물 및 사물을 통해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속에서 마리아는 책을 읽던 중 천사 가브리엘이 갑자기 나타나 잉태 소식을 전하자 굳은 얼굴로 옷깃을 여미면서 몸을 뒤로 젖힌다. 그러한 몸짓과 함께 그녀가 입은 어두운 옷이 황금색 배경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천사 가브리엘의 위로 솟은 날개와 펄럭이는 망토는 그가 하늘에서 막 내려온 듯한 인상을 준다. 무릎 꿇은 천사의 오른손 검지가 화면 중앙 위쪽에 있는 비둘기를 가리키며 이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할 것임을 암시한다.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천사와 마리아 사이에 백합이 담긴 물병이 놓여있는데 이 부분이 주목해볼 만하다.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태고지를 묘사한 많은 작품에서 가브리엘은 백합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마르티니는 특이하게 백합 대신 올리브 가지를 선택했다. 백합이 피렌체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독립 도시국가들의 집합체로 시에나와 피렌체는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시에나 출신인 마르티니는 천사가 백합을 들어 마치 피렌체의 영광을 구현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순결을 나타내는 백합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기에 그는 백합을 화병에 담아 중앙 뒤에 배치하고 천사에게 시에나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쥐여주는 묘안을 떠올렸다. 가브리엘이 들고 있는 올리브 가지와 머리에 쓴 올리브 화관은 평화와 왕권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마리아가 잉태할 아기는 세상에 평강과 승리를 가져올 왕과 같은 존재임을 나타낸다. 또한 가브리엘의 입에서 마리아의 귀로 이어지는 문자들은 누가복음 1장 28절의 말씀인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단의 둥근 장식 무늬 안에는 구약시대에 메시아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 이사야와 미가가 등장하여 구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됨을 암시한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는 평면적이고 뾰족한 고딕 양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우아한 감수성과 감미로운 색채로 수태고지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리아를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고 그녀의 입에서 순종의 고백이 나온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결국 마리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드리기로 결심했다. 12월이 되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과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의 참된 의미가 흐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힌다(마 1:21).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은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때로 마리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아의 순종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의 순종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풍성한 은혜를 주실 길을 열어줄 것이다. 대림절 기간에 마르티니의 작품을 묵상하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나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다가오는 성탄을 기대하고 준비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12.20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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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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