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고통의 십자가상
  • 라인란트(Rheinland)는 라인강 유역에 있는 독일 서부지역이다. 이 지역은 중세 근대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 중 하나로 풍부한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다양한 예술적 흐름을 받아들여 독창적인 스타일과 기법을 형성함으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세 후기 라인란트에서 만들어진 그리스도 수난상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미술사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경건하고 신성하게 묘사되었으나 14세기와 15세기의 라인란트에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을 강조한 십자가상이 유행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십자가형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지만, 라인란트에서는 열십자(十) 형태가 아닌 Y자 형태의 십자가상이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십자가상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여 ‘고통의 십자가상’으로 불리게 되었다. 라인란트에서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14세기 초 독일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확산되었다. 이 흐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하인리히 수소(Heinrich Suso, 1295~1366)를 들 수 있다. 하인리히 수소가 태어난 13세기 말 독일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교황과 황제 간의 대립이 심화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지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와 흑사병의 유행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시민계급과 수공업자의 등장으로 사회 구조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독교 신비주의 운동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 운동은 도미니크 수도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수소는 13세의 나이에 이 수도회에 들어가 신학 공부에 매진하며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그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고귀한 표현으로 이해했고 금욕적인 생활과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추구했다. 14세기에 그의 사상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성도들 역시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모방하고 참회의 삶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권위 있고 위엄 있는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보다는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으로서의 그리스도를 필요로 했던 시대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끼며 그리스도와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려고 했다. 이것이 ‘고통의 십자가상’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다. 라인란트의 ‘고통의 십자가상’ 중 대표적인 작품은 쾰른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의 십자가상이다. 1304년경 제작된 이 작품은 독일에서 제작된 가장 초기의 Y자형 십자가 중 하나이다. 이 조각상에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50㎝의 몸체에서 상체는 비율에 맞지 않게 과장되어 있다. 늑골은 앙상하게 드러나 있으며 채찍에 맞고 창에 찔린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축 처진 머리로부터 가시관에 찔려 새어 나온 피가 얼굴 전체를 타고 흘러내린다. 힘겹게 미간을 찡그린 채 양 눈을 감고 겨우 숨을 쉬는 듯한 모습은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케 한다. 그리스도의 두 팔은 Y자형으로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못 박혀 있다. 이 자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상태를 더욱 고통스럽고 불안정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겉가죽이 벗겨진 손바닥을 관통하는 길고 두꺼운 대못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처절한 고통을 실감하게 한다. 하체는 천 한 조각으로 간신히 가려져 있고 앙상한 두 다리는 하나의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못이 박힌 발등 사이로는 갈라진 근육과 드러난 뼈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십자가상은 예배를 드리러 온 이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준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깊은 묵상에 잠기거나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온몸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은 죄악 속에서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절대 멈추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확증하신 사랑은 우리의 자격이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고통의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겨보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묵상해보길 권한다. 우리의 죄인 됨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깊이 잠길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뜨겁게 우리를 덮을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4.11

    마태수난곡
  •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이다. 이 절기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까지 이어지는 40일간의 영적 여정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연단을 받았고,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 내셨다. 이러한 성경적 배경에서 초대교회는 40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금식과 기도, 회개 등의 영적 훈련을 실천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와 기도를 통해 경건한 시간을 보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음악이 있다.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마태수난곡’(Matthaus-Passion)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흐는 독일 작센주 아이제나흐에서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암부로지우스의 여덟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루터교 신앙에서 자란 그는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시작하여 평생에 교회와 궁정에서 활동하며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바흐는 기독교 정통주의가 무너지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음악이야말로 기독교적 경건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었다. 이후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을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어 기독교적 교훈을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이러한 신념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1727년에 완성된 ‘마태수난곡’이다. 마태수난곡은 총 78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작품은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으로써 1부는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까지의 이야기, 2부는 체포 이후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곡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바흐가 예수님의 고난을 음악적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이 곡은 예수님의 두려움과 고통, 슬픔과 죽음을 나타내는 구절이 등장할 때마다 불협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을 사용하여 불안감과 애절함을 극대화한다.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부점 리듬을 활용하여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천둥과 번개가 치는 장면에서는 빠른 연주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거나 등장인물의 독백이 있는 대목에서는 현악기가 은은하게 깔리면서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효과를 연출한다. 예를 들어 마태수난곡 78곡 중 제47곡 아리아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는 장면이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알토의 아리아(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있는 서정적 독창곡)로 시작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Erbarme dich Mein Gott)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um meiner Zahren willen) 나를 보시옵소서 (Schaue hier)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울고 있는 (Herz und Auge weint vor dir)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Bitterlich)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아리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의 마음이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베드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고 닭이 울자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베드로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 22:61)라는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말씀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1~32). 베드로는 자신이 실패하여 넘어지는 순간에도 예수님이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다는 사실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끝까지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깨어지고 상한 심령으로 애통해하며 눈물로 참된 회개를 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마태수난곡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실패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시는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03.21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사건이 등장한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 시날 땅에 정착한 노아의 후손들은 하늘까지 닿을 만큼 크고 높은 탑을 세우려고 했다. 이는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건축이 중단되도록 하셨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바벨탑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 시기에 바벨탑을 주제로 한 그림만 백 점이 넘게 그려졌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의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다. 브뤼헐은 바벨탑을 소재로 세 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오늘 살펴볼 작품은 그가 1563년 안트베르펜에서 완성한 것이다. 브뤼헐은 1525~1529년경 네덜란드 남부 브레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를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개신교도를 탄압하고 처형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브뤼헐은 그림의 세부 묘사를 통해 스페인의 압제를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네덜란드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바벨탑> 역시 단순히 성경에서 말하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긴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원형 구조로 된 바벨탑은 중앙에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나선형 형태를 띠고 있다. 브뤼헐은 이 탑을 그릴 때 로마의 콜로세움을 참고했으며, 당시 고대 문헌 중 유일하게 바벨탑을 묘사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 건축이 끝나지 않아 탑의 내부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배경에는 들판과 바다가 펼쳐져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구약 시대의 바벨탑 배경이 아닌 16세기 네덜란드의 도시 풍경과 건축 기술, 선박 등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상황을 바벨탑 사건과 연결 지으려는 화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는 한 왕이 수행원들과 함께 건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으며 석공들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로마의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에서 바벨탑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 니므롯 왕이라고 기록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니므롯은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인물이었으며 독재적으로 바벨탑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브뤼헐은 이 점을 통해 니므롯 왕을 당시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속에서 왕에게 절하는 석공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 국민을 상징하며 바벨탑 자체는 스페인의 억압적 통치를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벨탑은 구름보다 더 높이 솟아 있다. 바닷길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건축자재, 무거운 돌들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 거대한 쳇바퀴가 달린 기중기, 탑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수백 명의 일꾼이 보인다. 그러나 탑은 애초부터 수직으로 곧게 세워지지 않고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한 아래층이 완성되기도 전에 위층을 쌓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탑의 일부가 이미 무너져 내렸고 기초가 되는 반석에는 금이 가 있다. 이러한 불안정한 구조는 바벨탑이 붕괴될 것을 암시하며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은 결국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전달한다. 브뤼헐이 수백 년 전에 그린 <바벨탑>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벨탑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탑의 크기나 높이에 달려 있지 않다. 더 높아지려는 욕망과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집착은 결국 불행과 재앙을 불러올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온다. 오늘 브뤼헐의 <바벨탑>을 묵상하며 혹시 내 안에도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돌아보자. 만약 그렇다면 교만한 마음을 겸손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리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주님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내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국제신학연구원>
  • 2025.02.14

    예수가 거느리시니
  • 2025년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정치적인 혼란과 무안공항 비행기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 분위기는 어둡기만 하다.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조셉 길모어(Joseph Gilmore) 목사님이 작사한 ‘예수가 거느리시니’(He Leadeth Me)라는 찬송가는 불안과 혼돈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 찬송가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한창일 때 길모어 목사님이 전한 설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 당시 사람들은 여러 차례 새해를 맞이했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희망보다는 늘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전쟁하는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웠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1862년 3월 26일 길모어 목사님은 필라델피아 제일침례교회에서 시편 23편 말씀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날 목사님과 성도들은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경험했다. 예배 후 길모어 목사님은 한 성도의 집에 초대를 받아 여러 성도와 함께 받은 은혜와 간증을 나누었다. 그때 성도들이 받은 감동을 잊지 못한 목사님은 설교원고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인도하시네.” 길모어 목사님은 이 찬송시를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아내는 이것을 목사님에게 알리지 않고 『파수꾼과 반사경』(Watchman and Reflector)이라는 정기 간행물에 기고했다. 이후 작곡자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radbury)가 이 찬송시에 곡을 붙여 1864년에 그의 찬송곡집 『황금빛 향로』(The Golden Censer)에 수록하면서 이 곡이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3년 후인 1865년 길모어 목사님은 뉴욕 로체스터 제2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첫 설교에 어울리는 곡을 찾으려고 찬송가를 뒤적거리다가 아내에게 찬송시를 건네줬던 게 기억났다. 그는 절망과 불안 속에 지친 성도들에게 시편 23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던 찬송가의 가사를 떠올리며 이렇게 설교했다. “성도 여러분, ‘예수가 거느리신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삶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주님은 낮과 밤에 깨고 자는 것까지 돌봐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인도자이십니다. 때로는 병들고 실패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고쳐주시고 일으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길에서 질병의 고통, 이별의 아픔, 궁핍과 상실감, 외로움을 만나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과 이별할 때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이 땅의 짧은 번영은 허무함과 절망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의 기쁨은 영원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혼란하다. 하지만 이러할 때일수록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와 함께 거느리시는 예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해야 한다. 어떤 위기가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굳세게 살아가는 소망의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아멘. <국제신학연구원>
  • 2025.01.17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
  • 대림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고, 다시 오실 날을 소망하며 보내는 절기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바로 ‘수태고지’(受胎告知), 즉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고 특히 누가복음에서 그 내용이 더욱 세밀하고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이어지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마리아의 찬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쁨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수많은 화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와 마주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만 해도 120여 점이 넘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의 <수태고지>는 고딕 미술의 걸작으로 불린다.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인 마르티니는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배제하고 고딕 양식 특유의 정교하고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을 활용하여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의 대표작인 <수태고지>는 이러한 고딕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배경과 정교하게 묘사된 인물 및 사물을 통해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속에서 마리아는 책을 읽던 중 천사 가브리엘이 갑자기 나타나 잉태 소식을 전하자 굳은 얼굴로 옷깃을 여미면서 몸을 뒤로 젖힌다. 그러한 몸짓과 함께 그녀가 입은 어두운 옷이 황금색 배경과 강렬하게 대비되어 화면 전체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천사 가브리엘의 위로 솟은 날개와 펄럭이는 망토는 그가 하늘에서 막 내려온 듯한 인상을 준다. 무릎 꿇은 천사의 오른손 검지가 화면 중앙 위쪽에 있는 비둘기를 가리키며 이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할 것임을 암시한다.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천사와 마리아 사이에 백합이 담긴 물병이 놓여있는데 이 부분이 주목해볼 만하다. 백합은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그래서 수태고지를 묘사한 많은 작품에서 가브리엘은 백합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마르티니는 특이하게 백합 대신 올리브 가지를 선택했다. 백합이 피렌체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독립 도시국가들의 집합체로 시에나와 피렌체는 치열한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시에나 출신인 마르티니는 천사가 백합을 들어 마치 피렌체의 영광을 구현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순결을 나타내는 백합을 배제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기에 그는 백합을 화병에 담아 중앙 뒤에 배치하고 천사에게 시에나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쥐여주는 묘안을 떠올렸다. 가브리엘이 들고 있는 올리브 가지와 머리에 쓴 올리브 화관은 평화와 왕권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마리아가 잉태할 아기는 세상에 평강과 승리를 가져올 왕과 같은 존재임을 나타낸다. 또한 가브리엘의 입에서 마리아의 귀로 이어지는 문자들은 누가복음 1장 28절의 말씀인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단의 둥근 장식 무늬 안에는 구약시대에 메시아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선지자 이사야와 미가가 등장하여 구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됨을 암시한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는 평면적이고 뾰족한 고딕 양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우아한 감수성과 감미로운 색채로 수태고지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마리아를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인간적인 고뇌와 두려움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고 그녀의 입에서 순종의 고백이 나온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결국 마리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드리기로 결심했다. 12월이 되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과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장식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의 참된 의미가 흐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밝힌다(마 1:21).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은 어떤 선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때로 마리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을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아의 순종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한 것처럼, 우리의 순종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풍성한 은혜를 주실 길을 열어줄 것이다. 대림절 기간에 마르티니의 작품을 묵상하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길 바란다. 나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다가오는 성탄을 기대하고 준비하기를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12.20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 새는 날개를 단지 하늘을 날기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때로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날개를 사용한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 어미 새는 두 날개를 활짝 펴서 새끼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다. 뜨거운 햇볕을 등지고 있어서 자신은 입을 벌리고 헉헉거리면서도 새끼를 위해 날개로 그늘을 마련하는 것이다. 어미 새의 날개는 새끼에게 피난처이자 안식처이다. 우리의 피난처와 안식처는 어디일까? 찬송가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Under His Wings)를 작사한 미국 출신 윌리엄 쿠싱(William Cushing) 목사는 우리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바로 ‘주님의 날개 아래’에 있다고 전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던 해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리자 심히 괴로워했다. 병세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아내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목사의 아내로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헌신했지만, 넉넉하지 못한 생활과 남편의 바쁜 사역을 내조하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던 것이다.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쿠싱 목사는 깊이 고민한 끝에 아내를 위해 사역지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하며 아내와 첫사랑을 나눴던 시어스버그로 돌아가면 아내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는 그곳으로 이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쿠싱 목사는 목회 사역과 아내 간호로 인한 과로로 피로가 누적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목소리는 점차 쉰 소리로 변해갔다. 나중에는 성대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사람들과 글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목소리까지 잃게 된 것이다. 목숨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낙심한 쿠싱 목사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주님, 저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아내도 데려가시고 이제는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제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말조차 하지 못하는 이 몸을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절망에 빠진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너는 내 것이다. 말하지 못하는 입술도, 병든 네 몸도 모두 내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쿠싱 목사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백했다. “주님, 건강한 몸으로 주님께 충성하지 못했지만, 이제 병든 몸으로라도 충성하고자 합니다. 제가 할 일을 알려주세요.” 그 후 그는 돈도 명예도 건강도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며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의 가사가 되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찬송가 1절 가사처럼, 그는 ‘밤 깊고 비바람 부는’ 삶의 어려운 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좌절과 절망을 넘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하심 아래 있는 “주 날개 밑”이다. 그의 고백처럼 “주 날개 밑”은 모든 성도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고 예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한 안식과 참된 소망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여전히 예수님은 주의 날개 아래에 거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보호해주신다. 삶에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나아가 참된 평안과 안식을 경험하자.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는 “주 날개 밑”에 거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시 91:4). 국제신학연구원
  • 2024.11.15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하프를 켜는 다윗 왕>
  • 홀로 하프를 연주하는 노인이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그의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세고 얼굴과 손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품격 있는 손끝으로 섬세하게 하프를 켜는 노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평화로움을 자아낸다. 어둠 속에서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며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이 노인은 바로 노년에 이른 다윗이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의 이름은 848번 등장한다. 이는 구약성경의 모든 인물 중 가장 높은 빈도이다. 그만큼 다윗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성경에 묘사된 다윗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미술사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대부분 예술가는 다윗을 젊고 용맹한 모습으로 표현하여 그의 강인함과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려고 했다. 다윗을 모티브로 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역시 탄탄한 근육과 강인한 얼굴을 지닌 젊은 다윗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바로크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달랐다. 루벤스가 그린 다윗은 힘이 넘치는 청년이나 위엄 있는 권력자가 아닌 그저 홀로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늙은 악사의 모습이다. 루벤스가 노년의 다윗을 화폭에 담은 이유는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루벤스의 고향 안트베르펜이 있다. 루벤스는 이곳에서 미술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23세에 안트베르펜을 떠나 이탈리아에 머물며 고대미술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화법을 배웠다. 이로 인해 루벤스의 작품에는 사물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알프스 북부의 화풍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탈리아 고전주의의 특성이 모두 나타난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구성과 생생한 색채로 이루어진 루벤스의 그림들은 당대의 이목을 끌었으며 바로크 미술이 확립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끼쳤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루벤스의 삶은 말년까지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지병인 통풍이 심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루벤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화상을 보면 통풍으로 뒤틀린 오른손을 장갑 안에 숨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루벤스는 63세의 나이에 통풍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하였고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얀 보에크호르스트(Jan Boeckhorst, 1604~1668)가 그림의 왼쪽과 하단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날의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이 탄생했다. 말년의 루벤스는 나날이 쇠약해지는 육체와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허무함을 깨닫고 혈기 왕성한 청년 다윗보다 노년의 다윗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은 그의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던 기존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보다 사색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앙심이 깊었던 루벤스는 40년 권력의 무게를 내려놓고 홀로 하프를 켜며 찬양하는 다윗을 그리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찬란했던 인생은 한때 피고 지는 꽃과 같으며 결국 주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시며 피난처 되신다고 스스로 되새겼을지도 모른다. 다윗은 이를 그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믿음으로 순종했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영원히 지속할 왕위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순식간에 죄악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는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로 인해 큰 슬픔과 좌절을 경험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 혈육 간의 살상, 부하들의 배신 등 많은 아픔으로 얼룩진 말년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더욱 통렬히 깨달았을 것이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함은 완전함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데에 있었다. 위엄 있는 왕관과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하나님을 바라보며 정성스레 찬양을 올려드리는 다윗의 모습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또한 삶의 끝자락에서 어떤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잡으려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오늘 이 그림 속 다윗을 깊이 묵상해보자.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고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을 우리도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 역시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그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길 바란다. 또한, 사라질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일평생 하나님 앞에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을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10.17

    내 평생에 가는 길
  • ‘꽃길만 걷자’라는 유행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꽃길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걷지만 어떤 때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눈물을 흘린다. 갈림길이 나오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서성인다. 막다른 길을 만나면 지나온 인생을 후회하면서 방황하기도 한다. 이렇듯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이러한 인생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을 작사한 호래이쇼 스패포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의 길을 걸으라고 말한다. 그는 부유한 변호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들이 계속되면서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42세가 되던 해에 급성 전염병 피부질환으로 아들을 잃고 다음 해인 1871년에 시카고에서 일어난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었다. 사랑하는 네 딸을 모두 잃게 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당시 아들과 전 재산을 잃은 충격으로 인해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했던 그는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처리해야 할 급한 업무가 생겨서 아내 안나와 어린 네 딸(11살, 9살, 5살, 2살)을 유럽행 여객선 ‘빌르 드아브로’에 먼저 승선시켰다. 이때 1873년 11월 15일 313명을 태운 여객선이 뉴욕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중 영국 범선 ‘로크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아내인 안나를 포함한 87명은 구조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네 딸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그는 배를 타고 사고지점에 도착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르짖었다. “주님, 저는 주님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주님을 사랑했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절망 속에 탄식하며 부르짖던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 날 아침 선실 창가 사이로 햇살을 비추시며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왕하 4:26). 그는 이 말씀 속에 ‘평안’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았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깊은 평안을 경험했다.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God’s will be done.) 그렇게 주님이 주신 영감으로 한 편의 시를 써 내려갔는데, 그 시가 ‘내 영혼 평안해’(It is well with my soul)이다. 이후 시카고로 돌아와 무디 목사님에게 인정을 받아 음악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립 블리스에게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의 고백과 시에 감동을 받은 블리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곡을 붙여주어 탄생하게 된 찬양이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다. 스패포드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붙잡아 참된 평안을 경험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을 ‘이해’라는 방법으로 걷지 않고, 예수님을 붙잡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참된 평안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원의 은혜를 믿는 것(엡 2:8; 벧전 2:24)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끝까지 신뢰(시 36:5~6)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믿고 신뢰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걷고 있든 참된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을 붙잡지 않으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 설령 그 길이 휘파람이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꽃길이라 해도, 예수님이 없다면 그 끝에는 허무와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걷더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 길이야말로 참된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길이 될 수 있다. 스패포드가 작사한 찬송가의 1절 가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어떤 길을 걷든 예수님만을 따르는 믿음의 길을 걸으며 참된 평안을 경험하자.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에 우리의 길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 있고 축복된 길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가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8.16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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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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