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렌즈로 보는 문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다. 약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이는 뛰어난 예술 작품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오늘 다루게 될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0~1528)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도 그중 하나이다. 그뤼네발트에 관해서는 16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했다는 점 외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남긴 26점의 회화와 37점의 소묘작품은 모두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후기 고딕 양식과 북유럽 회화로부터 사실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은 그뤼네발트는 강렬하고 과장된 표현방식으로 20세기 초 표현주의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이젠하임에 위치한 성 안토니오 수도원의 종교 제단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2.7m 높이와 3m 너비의 여러 패널에 그려진 이 제단화는 당시까지 전례 없는 크기였으며, 수태고지,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의 장면 등 총 9개의 유화로 이루어져 있다. 완성되기까지 4년이 걸린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콜마르의 운터린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라는 제목은 이 제단화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그림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림에서 비롯되었다. 그림 속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참혹한 모습은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종교화에서 추구했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예수님을 성스럽고 근엄하게 표현한 기존 작품들과 달리 매우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뤼네발트의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사도 요한과 심하게 몸이 휘어지면서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침례 요한이 등장하는데, 그의 얼굴 옆에는 라틴어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illum oportet crescere me autem minui)는 요한복음 3장 30절의 말씀이 적혀있다. 예수님 발아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요 1:29). 한마디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요한복음의 요약판이라 부를 만하다. 짙고 어두운색으로 그려져 있는 십자가의 종렬은 거기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의 핏기 없는 몸과 잘 대비된다. 예수님의 머리 상단에는 INRI라 쓰인 팻말이 붙어있는데, 이는 라틴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를 의미한다. 숨이 다한듯한 예수님의 고개는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구어져 있다. 십자가의 휘어진 횡렬 위에 끊어질 듯 양팔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예수님의 실재적인 무게감과 함께 죽음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면류관이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 난 머리, 미간에 깊게 잡힌 주름과 감긴 눈, 치아와 혀를 드러내며 새파랗게 질린 채 말라버린 입술은 예수님이 견뎠을 극심한 괴로움을 짐작게 한다. 이와 함께 움푹 들어간 배와 한껏 부풀어 오른 갈비뼈의 대비는 예수님이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숨을 들이쉰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십자가의 뒤쪽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큰 대못이 박혀 뒤틀려 있는 손은 마치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자신을 바치는 듯한 묘사를 하고 있다. 예수님의 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푸릇푸릇한 반점과 상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는 당시 유행한 맥각병의 상처와 매우 유사하다. 여러 전염병이 확산했던 중세 후기에 성 안토니오 수도원 병원은 주로 맥각병 환자를 돌보았다. 맥각병은 곡물에서 발생하는 균으로 인해 피부가 손상되고 상처가 깊이 들어가 신경과 혈관을 훼손하여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시로 보면 1500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인데 왜 그뤼네발트는 예수님의 몸에 맥각병으로 보이는 상처들을 그려 넣었을까? 이는 그림을 접하는 환자들이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계신 예수님을 통해 위안을 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수도원은 환자들을 제단화 앞으로 데려가 그림을 묵상하도록 권면했고 그들은 그림 속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뤼네발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상기시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여 스스로 대속 제물이 되사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대신 지셨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겪어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매주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마주한다. 그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가득 차는가? 어쩌면 우리는 십자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매일의 삶에서 그 가치를 깊이 묵상하는 일에 소홀해지지 않았을까. 십자가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기 어렵다. 오늘 그뤼네발트의 작품을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은혜가 당연하게 되어버린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절대 긍정의 믿음과 소망을 얻기를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7.19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 나뭇잎 위에 화려하게 내려앉은 계절의 빛깔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햇살이 머물다 간 자리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한 적이 있는가? 프랑스의 소설가인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산문집 『예찬』(Celebrations)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우리가 자연과 인생을 바라볼 때 깊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깊은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차고 우리의 입술에서는 예찬이 흘러나오게 된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는 스웨덴 민요의 선율에 예찬시를 덧붙여 만든 찬송가이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솜씨에 대한 기쁨과 감사, 경탄과 경외감이 담겨있는 이 찬송가의 가사는 원래 ‘오 스토어 구드’(O Store Gud: O Great God)라는 시로서 1885년에 스웨덴의 시인이자 평신도인 칼 보버그(Carl Boberg)가 쓴 것이다. 찬송가학자 J. 어빙 에릭슨(J. Irving Erickson)에 따르면 이 시는 보버그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뇌우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을 경험하고 뒤이어 활짝 갠 하늘의 태양과 숲의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놀라운 창조 솜씨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의 경험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가사는 스웨덴 전통 민요와 만나서 시가 쓰인 지 3년 후인 1888년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불렸다. 이후 이 찬송가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독일어, 러시아어로 번역 및 각색되었다. 그러다 1920년대 초 영국 감리교 선교사 스튜어트 하이네(Stuart K. Hine)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고 현대식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오늘날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하이네는 원가사의 핵심 줄거리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내용을 추가했다. 하나는 러시아의 어느 한 마을에 있던 사람의 회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근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영국 서머싯(Somerset)에 정착한 폴란드 난민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이네는 실향민이 된 그들이 큰 고난을 겪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찬송가의 가사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 두 절은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위엄을 찬양하고, 후반부 두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을 기대한다. 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 들과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뇌성은 시편 기자가 기록했듯이 하나님의 권능이 야훼의 소리(시 29:1~11)로서 위대함을 선포하고(1절), 숲의 새와 고요히 흐르는 시냇물은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시 46:4)하는 찬양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솜씨가 온 만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보여준다(2절). 이는 창조주의 위엄이 만물을 통해 드러나고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고전 8:6).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땅에 행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이 구원의 위업인데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3절). 죄가 하나도 없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믿는 모든 이에게 영생을 주신 일은 주 예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영광을 받기 위함인 것이다(요 3:16; 살후 1:12). 나아가 영원한 나라, 저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그날을 기대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4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근심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의 양식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승리의 나팔 소리와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고대하며 찬송가는 마무리된다. 칼 보버그와 스튜어트 하이네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그저 감탄하는 데서 멈추고 그 안에 숨겨진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와 같은 찬송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다.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제신학연구원>
  • 2024.06.14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
  • 세리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순간을 화폭에 담은 화가가 있다. 바로 서양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이다. 카라바조는 1599년 로마의 산 루이지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에 전시할 작품을 의뢰받았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마태를 주제로 하여 <성 마태의 소명> <성 마태와 천사> <성 마태의 순교> 세 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중에 오늘 살펴볼 <성 마태의 소명>은 카라바조의 대표작이자 바로크 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카라바조는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인 빛과 어둠의 대조를 활용하여 성경에서 한 문장으로 기록된 마태의 소명 장면을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광경으로 재구성했다. 그림 속 장면은 독특한 화면 구성 방식을 통해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협소한 공간에 인물들을 모아놓고 주의를 산만하게 할 다른 요소들은 과감히 생략하여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또한 어둠으로 짙게 쌓인 공간에 직선으로 강렬하게 침투하는 빛을 그려 넣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는 카라바조가 창안해 낸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는 명암법이 적용된 것으로 인물의 내면세계와 동작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한 표현 방법이다. 그림에서 빛은 공간 전체를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에 묘사된 인물들의 표정을 빠짐없이 읽을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다섯 명의 사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돈을 세고 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을 들어 마태를 가리킨다.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과는 달리 수척한 얼굴에 남루한 옷 아래로 맨발을 드러낸 예수님과 베드로의 모습이 보인다. 예수님이 등장하는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이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이때 두 명은 예수님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동전을 세고 있다. 나머지 세 명은 고개를 돌려 제각기 다른 눈빛으로 입구 앞에 서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를 보고 있다. 탁자에 앉은 다섯 명 중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로 묘사된 마태는 한 손에 동전을 집은 채 예수님의 부르심에 놀란 눈빛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고요한 손짓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의 아담의 손과 흡사하다. 실제로 카라바조는 아담의 손에 영감을 받아 예수님의 손을 그렸다고 한다. 하나님이 손을 통해 아담에게 생명을 주는 것처럼 예수님 역시 손을 들어 새로운 소명을 부여하시는 걸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태만이 그 부르심의 손짓에 반응한다. 탁자 주변의 인물들은 마태가 살았던 로마 제국 시대가 아니라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행하던 의상을 입고 있다. 이는 그림에 현재성과 현장감을 불어넣어 성경 속 이야기가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한 화가의 의도로 보인다. 또한 예수님 옆에 있는 베드로는 탁자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생생한 색채의 옷차림과는 달리 헝클어진 머리와 초라한 행색을 하고 있다. 베드로와 같은 위대한 인물을 성스럽고 위엄있게 표현했던 종래의 전통에서 벗어나 평범한 서민과 같이 소박한 모습으로 그린 카라바조의 시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작품이 걸려있는 콘타렐리 예배당은 실제로 그림의 오른쪽에 창이 있어 빛이 들어오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현실의 공간과 그림의 공간이 하나인 듯한 느낌을 주어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실감이 나게 만든다. 카라바조는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 속의 빛을 연장함으로써 그림과 현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빛은 세속적인 욕심에 잠겨 있는 어둠을 밝히는 구원의 빛으로 표현된다. 그 강력한 빛 한 줄기를 직시하고 있는 마태는 동족에게 세금을 착취하여 멸시와 배척을 받던 세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또한 다섯 명의 사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한 자리가 비어 있다. 이것은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화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마태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신 예수님은 지금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부르신다. 우리는 그림 속에 있는 사내 중 누구와 같이 반응하는가? 그저 동전을 헤아리는 데 정신을 빼앗겨 부르심을 외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마태와 같이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머물던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살다 보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우리를 불러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떠올려야 한다.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5.17

    문화의 장벽을 넘어
  •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표현 양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렇기에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종교를 설명할 수 없고 복음의 선포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교차 문화’(cross-cultural)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차문화란 일반적으로 두 개 이상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들이 지역의 장벽을 넘어 ‘함께’(together) 공유되는 것, ‘나’(I)에서 시작한 것이 ‘우리’(We)로 끝맺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가 이 같은 교차 문화가 빈번히 일어나는 교류의 장이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2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OTT 서비스 산업의 대표주자로서 세계 각지의 영화를 선별하여 소개하거나 최고의 이야기를 발굴해 시리즈로 제작하여 190여 개국의 이용자들에게 공유하는 일을 한다. 그 결과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서로 다른 ‘내’(I)가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를 공유하고 ‘우리’(We)라는 글로벌 공동체를 형성하여 같은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특정 나라의 콘텐츠가 넷플릭스 상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 놀이와 음악과 언어 등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음을 모두가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교차 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 그리고 향유 속에서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보편성을 갖게 한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보편성을 확산시키는 것을 교차 문화라고 한다면 음악 분야에서는 팝 음악을 교차 문화의 한 예로 꼽을 수 있다. 팝 음악은 ‘파퓰러 뮤직’(Popular Music) 즉 대중음악이라는 말에 기원을 두며 본래 특정 계층이 아닌 동시대 대중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음악을 지칭했다. 대중음악이란 말 그대로 특별한 음악 지식이 없어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말한다. 196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미국의 팝 음악은 지역 간 문화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고, 5000㎞나 떨어진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소위 ‘K팝’(Korean pop music)으로 불리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영국과 미국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영어권이 아닌 동양에 있는 한 작은 나라의 가수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그 나라의 언어로 된 노래가 뉴욕 한복판에서 헬싱키와 산티아고의 거리에서 울려 퍼지게 될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재밌는 사실은 팝 음악의 형성기에 교회음악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다. 초기 팝 음악에는 기독교적 내용이 녹아 있었고 대중들은 이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곡을 뽑는다면 미국의 국민가요라 할 수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이다. 이 곡은 노예 상인 출신이었던 존 뉴턴 목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지은 가사에 곡조를 붙여 만든 찬송가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한국어 제목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다. 음악 역사학자 길버트 체이스(Gilbert Chase)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찬송가 중 하나로 종교적인 목적과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가장 대중적인 찬송가다. 현재는 원래의 종교적 측면을 훨씬 넘어, 과거의 인종적 또는 정치적 의미도 초월하여, 오늘날 대중문화의 필수적인 노래가 됐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말처럼 북미의 인디언 체로키 부족도 이 찬송가를 애송했고 남북전쟁, 흑인 운동,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에도 이 찬송가가 불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던 날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었을 때도,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져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을 때도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졌다. 이런 의미에서 찬양은 문화의 장벽을 넘어 ‘함께’(together)의 가치를 공유하는 교차 문화의 수단으로서 효과적인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복음의 메시지가 음악을 타고 전 세계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각기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국제신학연구원>
  • 2024.04.19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항상 많은 관람객으로 붐빈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262×205㎝ 크기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진 이 작품은 누가복음 15장에서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탕자의 귀향>은 명암을 따라 세 가지 관점으로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아버지의 품에 무릎을 꿇고 안겨있는 작은아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작은아들은 집을 떠날 때만 해도 부잣집 아들답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저분하고 낡은 옷을 걸치고 있다. 먼 길을 걸어오느라 신발은 다 닳아졌다. 길었던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머리숱이 없는 삭발한 모습이다. 그의 행색은 집을 떠나 먼 곳에서 겪은 수모와 고통을 말없이 보여준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 있는 단검이 눈에 띈다. 모든 걸 탕진하고 처참한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왜 단검만은 팔지 않고 남겨둔 걸까. 칼이 과거에는 신분이나 명예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단검은 그의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끝까지 단검을 지킴으로써 삶의 밑바닥에서 자신이 아직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붙잡았다. 결국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신분이 그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돌리도록 이끌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의 모습을 살펴보자. 렘브란트가 묘사한 아버지는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닌 인자한 노인의 모습이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붉은 색 망토로 아들을 휘감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그림 전체에서 가장 빛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과는 상관없다. 아버지에겐 모든 것을 탕진한 아들의 누추한 모습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가슴에 폭 안겨 참회하고 있는 아들을 포근하게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양손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왼손은 강인하면서 남성적이다. 오른손은 왼손과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부드럽게 표현된 손등과 가지런히 배열된 손가락이 마치 여성의 손과 같다. 근육질의 왼손이 아들을 단단히 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이라면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듯한 오른손은 위로와 평안을 주는 어머니의 손이라고 볼 수 있다. 돌아온 아들을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결연한 의지와 동시에 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따뜻한 사랑이 탕자를 감싼다. 마지막으로 큰아들을 살펴보자. 렘브란트는 큰아들을 화면 우측에 공간을 크게 할애하여 다룬다. 아버지의 빛에서 곧바로 반사되는 빛은 다른 조연들과는 달리 그가 장자임을 가리킨다. 동생이 돌아온 사실에 함께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큰아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아버지와 동생을 관조하고 있다. 그의 손을 주목해보자. 어두운 오른손이 왼쪽의 밝은 손을 짓누르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의 활짝 반기는 양손과 대조를 이룬다. 자신의 빛나는 손을 짓누르는 어두운 손을 통해 그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동생의 귀향을 보고 분노와 시기에 사로잡힌 큰아들은 외적으로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잃어버려진 상태이다. 어쩌면 그는 숨은 탕자가 아닐까. 렘브란트는 젊은 나이에 화가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부를 누렸으나 그의 말년은 화구와 몇 벌의 옷만이 재산으로 남았을 만큼 지극히 초라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자식을 셋이나 잃고 아내마저 죽게 된다.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려 1남 1녀를 낳았지만 아들과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이어 첫 부인이 낳은 하나 남은 아들마저도 죽는다. 가족을 잃는 슬픔과 함께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수직으로 추락했다. 그의 삶은 탕자 그 자체였다. 실패와 슬픔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인생의 황혼기에서 그려진 <탕자의 귀향>은 렘브란트 자신의 영적인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작은아들의 상실이나 큰아들의 상실 모두가 그의 삶에서 발견되는 모습이었다. 렘브란트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두 아들 모두 치유하고 용서하는 아버지의 포옹이 필요함을, 자신의 잘못으로 부서져 버린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버지의 따뜻한 품,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렘브란트의 63년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끝에서 그려진 이 마지막 신앙고백은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탕자와 같이 본래의 거처인 하나님의 품을 떠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더 먼 곳으로 떠나 방황하는 우리의 인생을 본다.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용서’로 하나가 된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냉담하게 바라보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교만하며 분노하는 큰아들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우리를 따스한 빛이 감싼다. 궁극적으로 빛의 근원이시며, 사랑과 용서와 연민과 화해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우리를 그 빛으로, 아버지의 따듯한 품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3.15

    공감의 언어
  •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의 언어가 있다면 단연 음악일 것이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라는 문학 시인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음악은 인류의 보편적 언어이다.” 그저 리듬과 높낮이로 이루어진 소리일 뿐인데 그 소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여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게 한다. 이는 경계를 초월하고 다른 문화를 연결하며 내면의 심오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놀라운 능력이 음악 안에 담겨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다른 이해와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음악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즐거움과 아름다움, 감동과 역동의 세계를 경험한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K팝 열기에 지칠 줄 모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데 이어 2023년 1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상’에서 단독 공연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2022년 10월 신종 코로나 사태 중에 BTS가 개최한 온라인 콘서트엔 전 세계 191국에서 100만명의 관객이 모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국빈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버킹엄궁에서 만찬을 가졌을 때 한국 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특히 찰스 3세는 “영국에 비틀스(The Beatles)의 렛잇비(Let It Be)가 있다면 한국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BTS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왜 이토록 BTS에 열광할까? 2019년 영국의 ‘타임스(Times)’를 통해서 기사화되었지만 이는 ‘변방’이었던 영국에서 시작된 비틀스 신드롬이 미국을 급습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1960년대 문화현상)’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 역사를 바꾼 일련의 과정과 같이 BTS의 영향력을 그와 유사하게 보기 때문이다. 마치 비틀스는 1950년대에 젊은이들의 반항이나 욕구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던 로큰롤을, 희망 가득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BTS도 세대를 공감하는 메시지, 나아가 기대와 희망에 찬 음악으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K팝이 서구의 음악 팬들이 비(非)서구권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라고 간주하며 K팝의 대중성을 널리 알렸다. K팝의 인기만큼 한국 교회 성도에게 잘 알려진 찬양이 있다. 2020년 12월에 첫 음반을 내고 2022년 한 해 동안 3000만 회 이상 공유된 찬양으로 손경민 목사가 작사·작곡한 ‘은혜’라는 찬양이다. 고려신학대학교 변종길 교수는 “K-찬양의 탄생”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찬양이라고 소개하였다. 코로나 시기에 발매된 이 음반은 당시 코로나로 힘들어하던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위로를 주었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질병과 생활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여 괴로워하며 힘들어했던 시간,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시간 등 인생의 세찬 바람으로 인해 고난과 절망을 가슴에 묻어두며 힘겹게 걸어야 했던 순간들이 인생이다. 그런데 그때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나’를 다듬어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Story)에 내가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되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이야기에 ‘나’만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나’ 홀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지체들도 ‘나’처럼 힘겹게 걸어온 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찬양의 가사처럼 “내가 걸어온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이 땅에 태어나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이 당연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삶의 고백이 ‘나’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함께 공감의 눈물로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음악이란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는 소통의 언어이다. 이런 점에서 찬양은 ‘하나님’의 이야기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마음으로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국제신학연구원>
  • 2024.02.16

    루카스 크라나흐의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 
  • <최후의 만찬>을 통해 본 성찬
    우리 교회는 매월 첫째 주일에 성찬 예배를 드린다. 성찬식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받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여 떡과 포도주를 나누라는 말씀을 따르는 성례전이다(마 26:17~30; 막 14:12~26; 눅 22:7~23; 요 13:21~30; 고전 11:23~25).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미술계에서도 많이 그려졌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에 있는 한 수도원 성당에 그려진 벽화였는데, 현재는 같은 지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널리 유명해져서 여러 화가가 본떠서 그렸고 많은 교회와 성당에 사본이 걸렸다. 오늘 살펴볼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Elder, 1447~1553)가 그린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 중 ‘최후의 만찬’도 다 빈치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비텐베르크시 교회의 제단화>라는 미술 작품은 앞뒷면에 각각 4개의 그림이 그려진 형태이다. 그중에 ‘최후의 만찬’은 앞면 가운데에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원형 테이블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유심히 살펴보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품에 안긴 사랑받는 제자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가룟 유다도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림 오른쪽에 있는 한 남자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장면이다. 여기서 포도주잔을 건네는 사람은 마르틴 루터이고, 잔을 받는 사람은 이 그림을 그린 크라나흐의 아들이다. 크라나흐는 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장면에서 루터가 자기 아들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장면을 그려 넣었을까? 여기에 크라나흐가 말하려고 하는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먼저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종교개혁의 배경을 알아야 한다. 당시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철저하게 사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성경도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어서 사제들만 읽을 수 있었다. 설교도 라틴어로 해서 성도들이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성찬식에는 사제들이 떡과 잔으로 참여하는 반면에 성도들은 떡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관습을 통해 사제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한없이 높이고 성도들이 자신들을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루터는 이러한 일들에 반대하여 모든 시민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고, 설교도 독일어로 했다. 그리고 성찬식에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라나흐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여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루터는 사제를 대표하고 크라나흐의 아들은 성도를 대표한다. 루터가 크라나흐의 아들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모습은 예수님 앞에서 사제가 성도에게 포도주잔을 건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성도들도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을 그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릴 수 있는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냈다. 또한 루터 옆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루터의 성경을 최초로 인쇄했던 한스 루프트라는 인물이다.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이며 『루터의 재발견』(복있는사람, 2017)을 집필하고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복있는사람, 2023) 등을 번역한 최주훈 박사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을 제외한 인물들은 당시 비텐베르크시에 사는 주민들이라고 말한다. 즉, 이 그림은 성찬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사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라나흐의 작품을 통해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을 보니 우리 교회에서 성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한편으로 ‘혹시 우리가 사제들처럼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우리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모든 성도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진수가 담긴 떡과 포도주가 돌아가게 했듯이 우리도 내가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하자.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성찬에 참여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4.01.19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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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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