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설교자 열전
설교자 베드로(Ⅱ)
  •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희망, 새로운 시작 뜻하는 종말론적 설교 전해 성경 뜻 풀고 적용시켜 크리스천의 삶 가르쳐 베드로의 설교가 갖는 세 번째 특징은 종말론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종말’을 강조하고 왜곡하는 많은 이단으로 인해 한국교회에서 ‘종말’ 또는 ‘종말론’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될 때가 많다. 종말은 단순하게 역사의 끝이나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서 구원을 이루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종말은 하나님의 뜻이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사 22:2; 미 4:1; 렘 3:17). 하나님의 평화와 공의가 세상에 있을 것이며(사 2:4) 자연에는 평화가 깃들 것이다(사 11:6, 65:25). 하나님의 율법이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될 것이다(렘 31:31~34). 베드로는 구약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종말의 시간, 곧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완성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선포했다. 또한 성령 강림 사건이야말로 종말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증거라고 강변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 2:16~18). 예수님의 부활은 베드로를 비롯해 오순절 날 성령 침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종말론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이전의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예수의 부활로 인해 종말은 이미 시작됐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되는 종말의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행 2:20~21). 예수님의 재림은 그와 같은 종말의 시간의 완성을 의미한다. 넷째로 베드로는 자신의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제시한다. 설교는 크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의미를 풀어주고 그 의미를 삶 속에서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벧전 1:1)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베드로전서는 전반부에 신학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이후에 실천적인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다룬 뒤에 곧이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자신의 설교를 통해 말씀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베드로에게 그의 청중들은 ‘거듭난’ 사람들이고(벧전 1:3), “산 소망”(벧전 1:3)이 있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얻고(벧전 1:4),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보호해주시는 사람들(벧전 1:5)이다. 이제 그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며(벧전 2:9),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사람들이다(벧전 2:10).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답게 이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①먼저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영원히 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킨다(벧전 2:11). 이 땅에 잠시 머물고 떠나는 방문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본향은 천국이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를 기다리며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 ②베드로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상태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까지 그들은 죄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죄와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금할 수 있다. 그들 안에 있는 욕심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어하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계속해서 거리를 두라”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고 권면한다(벧전 2:12). 육체를 제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내면의 노력이라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외적으로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는 그들을 향해 악행한다고 비방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선을 행함으로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자인 동시에 종이다(벧전 2:16). 결론적으로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벧전 2:17)고 설교하고 있다. 조지훈 목사(굿피플 사목)
  • 2023.03.09

    설교자 베드로(Ⅰ)
  • 베드로 설교의 큰 특징은 성령 충만 담대히 복음 전할 때 3000명 구원 받아 고대 사회에서 ‘편지’(서신)는 그 편지를 보낸 발신인과 동일시됐다. 편지는 발신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대변했고 그것을 읽는 수신인들은 편지를 통해 발신인을 만난다고 믿었다. 특히나 통신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교회의 문제를 다룰 때 편지만큼 좋은 수단은 없었다. 편지는 그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서신을 하나의 설교로 보려는 학자들이 많다. 설교자들이 각 지역 교회의 문제를 다룰 때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설교를 행했다는 것이다. 폴 스캇 윌슨 교수는 신약의 서신들 가운데 처음부터 설교로 작성된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성경에 담긴 베드로나 바울의 서신들은 그들의 설교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호에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후서를 중심으로 베드로의 설교가 갖는 특징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 충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베드로의 설교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사도행전 2장이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했고 그들은 여러 나라의 말, 곧 방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다(행 2:11).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베드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설교하기 시작했다. 성령침례사건은 구약성경 요엘서 예언의 성취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사건과 부흥의 결과라는 것이 오순절날 베드로 설교의 요지이다. 오순절날 베드로가 행한 설교의 모든 과정은 성령님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성령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임했고(행 2:1~4), 이로 인해 베드로가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행 2:14~40), 그날 3000명의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행 2:41). 성령 충만을 통해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이다. 둘째,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 중심(Jesus-centeredness) 설교였다. 예수님 중심 설교란 단순히 설교 가운데 예수님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설교가 아니다. 예수님 중심 설교란 설교의 전 과정, 곧 성경 해석으로부터 청중을 이해하고 실제 설교를 행하는 모든 과정을 예수님과의 연관성 속에서 행한다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님 중심적이다. 먼저 그는 성령침례 사건의 근거를 구약 요엘서에서 가져온다. 요엘 2장 28~32절에 기록된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예언이 지금 성취되었다는 것이 베드로의 주장이다. 그가 요엘서의 예언이 지금 성취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승천 전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때문이다(행 1:5, 8). 또한 베드로는 시편 16편 8~11절 역시 예수님을 통해 해석한다(행 2:25~28). 베드로의 구약 해석은 철저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해석된 구약성경 이야기를 자신의 청중들(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에게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예수님 중심성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그는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다윗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고 동시에 그들이 얼마 전 십자가에서 처형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대 율법에 대한 그들의 지적인 면과 예수 처형이라는 경험적인 면 모두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베드로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님 중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계속>
  • 2023.02.09

    설교자 예수
  • 신학자 알프레드 가비는 “어떤 주제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주제의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속 설교자들을 살펴보는 것은 기독교 설교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들의 삶과 설교를 살펴봄으로써 말씀 기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설교자 열전’을 통해 기독교 역사 속 설교자들의 삶과 설교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시작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아들 되신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향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선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라는 요한복음의 내용과 맥이 닿아있다(요 1:14).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셨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분이기도 했다. 기독교의 시작점인 예수님이 기독교 설교의 출발점인 이유가 이것이다. 예수님의 설교 속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은 설교자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아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명확히 알고 계셨다. 바로 복음 전파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눅 4:43). 이와 같은 자신의 임무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은 갈릴리 회당에서 처음으로 행했던 설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선포하심으로써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다. 둘째, 예수님의 설교는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하나님 나라를 청중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셨다. 비유는 예수님의 설교가 가지는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설교 방법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막 4:34). 그것은 비유라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전달될 수 없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그러기에 비유라는 설교 방법을 통해 예수님은 청중에게 일상적인 풍경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인도하셨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요청하셨다. 양들을 통해(눅 15:3~10), 처녀들을 통해(마 25:1~13), 누룩(마 13:33)과 동전(눅 15:3~10)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셨다. 특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시며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가르치셨다(요 14:6). 그러기에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주께서 내게 이르시기를”이나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셋째,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대상들은 대부분 일반인이었다. 당시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 중에 예수님의 설교를 청종했던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다. 넷째, 예수의 설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약부터 있어 온 예언자들과 회당의 랍비들이 계속해 온 하나님 말씀의 선포와 해석이었다. 다섯째,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설교를 행하셨다. 복음은 언제 어디에서나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여섯째, 예수님은 자신의 복음 선포 사역을 제자들에게 일임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조지훈 목사(은평대교구장, 한세대 설교학 겸임교수)
  • 2023.01.06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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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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