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4월 20일(토) -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는 삶
  • ◎ 말씀 : 삼하 12:22~23 ◎ 찬송 : 393장(통 447장)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죄를 회개한 다윗은 용서하셨지만 죄에 대한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이를 치신 것입니다. 다윗은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밤새도록 기도했지만 결국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는 삶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이 모든 형편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행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절대 주권 가운데 모든 것을 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19일(금) -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 ◎ 말씀 : 고후 11:29~31 ◎ 찬송 : 310장(통 410장) 사도 바울은 간교한 자랑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며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주장하는 거짓 사도들을 향해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반론합니다. 그 근거로 그는 진정한 사도로서 자신이 겪은 숱한 고난과 극심한 고통을 말합니다. 그리고 굳이 자기도 자랑해야 한다면 차라리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많은 굴욕을 당하면서도 약해진 지체를 위해 약해졌고 실족한 지체를 위해 애통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약함이 자기의 자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드러남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의 약함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실만 자랑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4월 18일(목) - 주님이 주신 권세
  • ◎ 말씀 : 고후 10:7~8 ◎ 찬송 : 454장(통 508장) 고린도교회 안에 침투한 거짓 사도들은 사도 바울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의 사도직을 의심하며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고린도교회 성도 중에 이들의 영향을 받고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책망하면서 자신의 사도직은 세상의 권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는 영혼을 살리는 영적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은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이 주신 권세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권세가 아닌 주님이 주시는 권세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그 권세로 이웃을 세우는 데 쓰임 받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05) 오네시모
  • 비천한 종에서 위대한 종으로 변화된 인물
    “나의 형제여, 성도들에게 베푼 그대의 사랑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고, 또한 내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얻었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그대에게 아무 쓸모없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대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 편지 내용은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쳤던 종을 용서하고 더 이상 종이 아닌 주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바울의 편지 내용이다. 1장으로 구성된 신약의 빌레몬서는 바울이 사랑과 믿음의 일꾼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편지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주인에게서 도망치고 감옥에 갇혔다가 바울을 만난 인물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준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에 회심하고 개종한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다. 빌립보서 4장에는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오네시모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신실한 형제”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빌레몬에게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직접 보내며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빌레몬에게 전한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자신을 대하듯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줄 것’을 당부하며 “오네시모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 돌리라”고 까지 언급한다. 당시 로마법은 주인과 종(노예)의 관계가 엄격해 도망친 종은 주인에 의해 생사가 갈렸다. 바울은 ‘감옥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바울의 조력자로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했다. 결국 오네시모는 바울의 헌신과 사랑,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로 종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쓸모 있는 자’라는 오네시모의 뜻처럼 유익한 하나님의 종으로 후에 에베소 교회 감독으로 쓰임 받는다. 비천한 신분이었던 오네시모가 위대한 일꾼이 된 것은 복음이 지닌 위대한 능력의 결과다.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신 구속의 이유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오네시모처럼 우리 역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쓸모 있는 자로 이 땅에서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104) 나오미와 룻
  •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단한 두 여인 ‘신앙, 효, 사랑’이 삶 바꿀 수 있어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고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혈육이 아니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부 갈등이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룻은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원래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다. 남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아들들은 모압 여인인 오르바, 룻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도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당시 남편이 없는 여성, 아들이 없는 여성은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였다. 남자들이 모두 죽었기에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고 세 과부만 남겨졌다. 이방 땅에서 과부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나오미는 고통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며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유다 땅을 향해 같이 길을 나섰지만 나오미는 이내 두 며느리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가도 며느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오미는 슬픈 이별을 고한 것이다.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룻은 야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믿음의 백성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한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아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생활 기반이 없기에 하루 종일 밭에서 이삭을 주웠고 그의 희생적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들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위로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마침내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룻은 나오미의 뜻에 따라 비록 보아스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이 둘 사이에서 장차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룻 4:13∼17). 하나님은 룻에게서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셨다.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족보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 소망도 의지할 곳도 없던 두 여인이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정하고 나아갔을 때 개인의 삶만 바뀐 게 아니라 멸절됐던 가문이 이어지고,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나오미와 룻이 지닌 신앙과 서로에 대한 효와 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 2024.03.01 / 복순희 기자

    (103) 유니게
  • 신앙교육과 기도는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 말씀으로 디모데 양육한 믿음의 어머니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도의 어머니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유니게이다. 디모데의 어머니인 유니게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신앙은 유니게의 어머니인 로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고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을 시키며 지혜로운 아들이 되도록 늘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쳤고 거짓이 없고 남에게 칭찬을 받는 훌륭한 인물로 양육했다. 사도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배우고 본받아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고 사도 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믿음을 크게 칭찬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교하기 전에 남긴 편지에서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적 가르침을 귀히 여기고 디모데를 무척 아꼈던 마음이 담겨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유니게라는 이름의 뜻은 ‘유명한 정복자’라는 의미이다. 유니게는 루스드라 출신의 헬라계 유대인으로 당시 불신 세계라 할 수 있는 헬라 사회에서도 믿음과 전통을 지킨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유대인인 로이스와 유니게는 순결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유니게는 이방인(헬라인)과 결혼하여 디모데를 낳았다. 사도행전 16장 1절에서 디모데에 대해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방인과 결혼한 유니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 여자가 이방 민족과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협받기에 더욱 꺼리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사회가 부계 중심의 사회인데도 성경에 디모데의 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만 언급된 것으로 보아 남편이 일찍 죽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결혼 생활이 평온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니게는 철저한 신앙으로 아들을 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줬고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큰 힘이 되고 초기 교회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참된 부모의 역할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고,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외국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신다.
  • 2024.02.01 / 이미나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누가복음 7장 11~16절) 온 인류의 기적 예수님 부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 살 때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되고 하나님 은혜와 축복 임해 예수님의 부활은 온 인류에게 절대 절망의 삶이 절대 희망의 삶으로 변화가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와 사망, 질병,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죄의 결박을 풀어주셨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절망에 처해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1. 깊은 절망에 처한 여인 누가복음에는 깊은 절망에 처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눅 7:11~12). 예수님이 나인 성으로 가실 때 죽은 사람의 관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며 장례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살아가던 과부의 유일한 희망과 삶의 의미는 그 외아들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과부에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이 임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때때로 절망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절망 중에 가장 큰 절망은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 앞에 모든 사람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망이라는 절망은 죄의 결과로 다가온 형벌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자 육신의 죽음과 저주와 가난이 형벌로 다가온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으십니다. 2. 불쌍히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 7:13). 불쌍히 보신다는 원어의 의미는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과부의 슬픔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느끼시면서 죄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면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해야겠다’라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라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7). 바디매오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히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1~52). 또한 예수님은 한센병 환자를 불쌍히 보시고 다가가셔서 고치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한센병에 걸리면 “저 사람은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서 저런 병에 걸렸다”라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멀리한 그를 불쌍히 보셨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막 1:40~41). 하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목자 잃은 양같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간절히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셨을 때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무리가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 음식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셔서 모두가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막 6:38~44).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간절히 외치십시오. “주여, 나를 불쌍히 보소서! 나를 절망에서 건져 주옵소서! 나를 고난에서 건져 주옵소서!”라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3.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예수님이 관에 가까이 가셔서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시자 그 순간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눅 7:14~15). 조금 전까지 통곡하며 관을 따라가고 있던 과부는 눈앞에서 아들이 살아나자 너무나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붙잡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끊임없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어떤 절망도, 슬픔도, 고통도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절대 희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 7:16).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큰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도 감사로 승리해야 합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고 맡겨진 사명을 힘써 감당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5~58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죄와 사망 권세 무너져 우리는 복받은 하나님 자녀 희망 품고 믿음으로 전진해야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대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 최대 기적이자 축복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지고 영생으로 향하는 축복의 길이 우리에게 열렸습니다. 1.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바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절대 절망에서 절대 희망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죄를 짓고 타락하여 이 세상에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동물과 달리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사람의 코에 하나님의 영인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영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영이 죽게 되었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영의 죽음은 이어서 육신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 누구도 육신의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대 절망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로 이 세상을 지배하던 죄와 사망의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부활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은 모든 삶이 끝이 나는 절망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며 애도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죽는 순간 그 영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통곡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노예로 절망 가운데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희망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2. 율법의 형벌에서 복 받은 인생으로 바뀜 예수님을 믿은 후 우리는 모든 율법의 형벌에서 놓여남을 받고 복 받은 인생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인간이 율법을 어겨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우리 인간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죄를 지은 결과로 율법의 심판이 임해서 우리가 저주 가운데 거하게 된 것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이제 더 이상 죄와 사망, 가난과 저주, 질병과 고통이 우리를 묶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받은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과 함께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이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절망 가운데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가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줘야 합니다.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방에 전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승리자의 삶으로 바뀜 예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된 우리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죄와 사망의 권세가 심판받았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에서 복 받은 인생으로, 실패자와 낙오자의 삶에서 승리자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떤 환난과 핍박이 찾아와도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 안에서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위대한 승리자이신 예수님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절망과 문제도 이겨내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일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잠깐 있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고 복 받은 인생을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의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3.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4~5절)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 우리 위해 고난 당하신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님 사랑과 은혜 전해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받으실 고통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죄로 인해 발생한 모든 고통과 고난을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이 겪은 고난을 하나님의 징벌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우리의 죄악을 대신해 예수님이 그 값을 자신의 피로 속량하신 것입니다. 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사 53:5)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에 기록된 말씀처럼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로 말미암아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막 15:17). 또한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는 커다란 못이 박혔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마 27:35).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이 같은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죄를 대신해 가시관에 머리를 찔려 피를 흘리셨고, 우리가 손과 발의 행위로 지은 죄를 대신해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를 흘리셨으며 우리의 마음으로 지은 죄를 대신해 심장에서 가까운 옆구리에 창을 찔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짓고 불의한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허물이 많은 인생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에 예수님이 머리와 손과 발, 옆구리를 찔리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허물의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려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2.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성경은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고 말씀합니다. ‘상함’이라는 표현은 피부가 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상함’의 히브리 원어는 ‘메둑카’인데, ‘메둑카’의 원형인 ‘따카’는 뼈가 완전히 으스러지는 치명적인 상해를 말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은 같은 구절을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이처럼 처절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나요?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예수님은 몸이 완전히 으스러질 정도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제멋대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죄의 짐을 예수님께 모두 지우시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고 피를 흘리신 그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3. 그가 징계 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또한 성경은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 53:5)라고 말씀합니다. 본래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길을 가로막았으나, 예수님이 우리 대신 징계를 받아 그 죄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었지만, 예수님의 대속적 고난으로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 2:16~1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실 때 대제사장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져 열렸고 이후로 누구든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징계 받으시므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주님, 제가 왔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치료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4.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도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마 27:26).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때린 채찍은 그 끝에 날카로운 쇳조각이나 뼛조각이 있어 그 채찍으로 맞을 때마다 예수님의 온 등이 갈라지고 살점이 파여 예수님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주먹과 손으로 때렸으며,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 27:30).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면서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몇 차례나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결과로 다가온 질병에서 온 인류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이 같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인 병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고난은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모진 핍박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떤 고난일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우리는 고난 가운데 처한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문화 가정, 장애인, 자유시민(탈북민), 노숙인, 미혼모 가정 등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어떤 고난이 찾아올지라도 고난을 이겨내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3.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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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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