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1월 3일(토) - 하나님이 기억하사
  • ◎ 말씀 : 창 8:1~5 ◎ 찬송 : 419장(통 478장) 홍수로 온 땅이 물에 잠겼습니다. 방주에 갇힌 노아와 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방주에 함께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는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곧 행동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기억하셨을 때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심판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노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린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삶이 힘들 때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신다”라는 사실을 꼭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늘 기억하시고 돌보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월 2일(금) - 성령님이 일하심
  • ◎ 말씀 : 마 3:15~17 ◎ 찬송 : 183장(통 172장)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임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성령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공생애 동안에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도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계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할 힘을 주시며 옳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순종할 때 성령님은 연약함을 능력으로,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십니다. 새해에는 더욱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성령 충만을 받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월 1일(목) - 빛이 있으라
  • ◎ 말씀 : 창 1:1~5 ◎ 찬송 : 550장(통 248장)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어둠이 온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시작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혼돈에 질서를 주며 생명을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우리 인생도 때로는 혼돈과 공허, 흑암에 덮일 때가 있습니다. 절망이 마음을 짓누르고 앞날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어둠은 물러가고 희망의 빛이 우리 삶을 밝힙니다.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혼돈은 질서로, 절망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과 함께 걷는 한 해, 절대 긍정의 삶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올해도 주님의 빛 가운데 행하게 하시고, 꿈과 소망을 품고 절대 긍정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4. 갈보리 십자가 신앙
  •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야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중 ‘순복음 7대 신앙’은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의 기초를 제시한다. 곧 갈보리 십자가 신앙,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좋으신 하나님 신앙,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나누어 주는 신앙이다. ‘갈보리 십자가 신앙’은 순복음 교리의 핵심이며 인간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철저히 믿는 신앙이다. 1.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삶을 누렸으나,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따먹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한 불순종의 죄였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지고 두려움 속에 숨는 존재가 되었다. 땅은 저주받고, 고통과 질병,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으나 가릴 수 없었고, 하나님은 짐승의 가죽옷으로 입히셨다. 이는 죄 사함을 위해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함을 예표한 것으로, 장차 흠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것을 상징한다(히 9:22).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운데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태에 놓여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구약 시대엔 짐승의 피로 속죄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제사로 반복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다. 그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바울도 그 사실을 증언했다(고전 15장).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보증한다. 3. 거듭남의 은혜 크리스천은 두 번 태어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는 사건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듭남은 회개와 믿음으로 온다. 회개는 ‘메타노이아’, 곧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그 결과 구원받은 자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칭의). 우리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되었다. 그래서 참된 크리스천은 “예수님만이 나의 의이며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론적으로 순복음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과 부활을 통해 죄 사함 받았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 신앙’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5.12.05 / 오정선 기자

    3. 강건함의 축복
  • 믿음의 기도와 거룩한 삶, 헌신 속에서 완성되는 강건의 복 단순한 치유 넘어 하나님 중심된 삶 이뤄야 순복음 신앙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전인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게 된 영적·육체적·환경적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복을 ‘삼중축복’이라 한다. 이러한 전인적인 축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삼서 1장 2절이다. 이 삼중축복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복이 ‘강건함의 축복’이다. 강건함(Good Health)은 단순한 육체의 건강을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강건함을 근간으로 한 온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강건함의 복을 마땅히 구하며 살아야 한다. 강건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선포하는 창조적 믿음의 고백이다. 몸이 연약하거나 질병 중에 있을지라도 “나는 건강하다”, “나는 평안하다”고 믿음으로 선포할 때 그 긍정적인 믿음의 언어가 현실을 변화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는 말씀처럼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치유보다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둬야 한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도이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죄와 음행, 탐욕, 중독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고 정결함을 지킬 때 마귀가 틈타지 못하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다스리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몸으로 주를 섬기고 이웃을 위해 ‘봉사와 헌신하는 자’에게 강건의 복을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17세에 폐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섰다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 받았다. 이후 조용기 목사는 “건강해야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강건함은 사명을 위한 복”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육체의 건강은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사명의 자원이다. 그러므로 건강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도구이다. 건강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건강해야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말씀을 통해 단순한 병이 낫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강건함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드려야 할 믿음의 기도와 거룩한 삶, 봉사와 헌신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에서 시작된다. 복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둘 때 우리의 영혼은 견고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주님이 주시는 강건함으로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그것이 바로 삼중축복 신앙의 완성이자 순복음 신앙의 본질이다.
  • 2025.10.31 / 금지환 기자

    2. 범사가 잘되는 축복
  • 하나님 안에서의 나눔은 ‘플러스’ 우리는 저주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받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됐다. 하나님은 본래 뜻대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지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인간의 삶은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이게 됐다(창 3:17~18). 그 결과 인간은 땀 흘려야 먹고 사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으며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의 저주 가운데 살게 됐다. 인간은 이런 저주와 고통의 운명을 바꾸려고 애썼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이러한 인간의 저주받은 운명을 회복시킨 분이 예수님이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저주를 짊어지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는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갈 3:13~14).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모든 저주에서 벗어나 범사에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일이 저절로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오히려 하나님께 힘과 지혜를 구하면서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가며 요한삼서 2절에 기록된 ‘범사에 잘되는’ 형통의 복을 실제로 경험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발적인 가난이나 청빈한 삶만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의 축복 신앙을 단순한 기복 신앙으로 오해한 데서 나온 생각이다. 물론 물질적인 축복만을 추구하는 태도는 문제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복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복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그 복을 흘려보내길 원하신다. 영혼뿐 아니라 범사에 임하는 복은 크리스천이 마땅히 구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다(출 20:6). 크리스천은 물질에 지배당하는 자가 아니라 물질을 다스리며 사는 자이다. 그래서 헌금은 하나님께 받은 복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며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거짓이나 속임이 없이 온전해야 한다(말 3:8~10).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은 이웃과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때 진정한 복이 된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세상의 방식과 다르다. 하나님 안에서의 나눔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다. 하나님은 나누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신다(눅 6:38). 그렇기에 우리는 받은 복을 움켜쥐고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나누는 자에게 더욱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시는 분이다. 우리를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서라도 축복해 주실 것이다.
  • 2025.10.03 / 김주영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
  •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누가복음 1장 46~55절) 하나님 앞에 교만 내려놓으며 겸손과 섬김의 삶 살아갈 때 성령 충만을 선물로 받고 위대한 복음의 증인 될 수 있어 마리아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메시야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 전하였고 그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임을 선포했습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부르심 앞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마리아의 찬양은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1. 긍휼함을 베푸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메시야의 오심이 곧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의 역사임을 증언합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0~54). 죄와 허물 가운데 태어나 스스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병들고 문제 있는 자, 사회로부터 무시당하며 고통 중에 살고 있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 살아가던 나병 환자와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자도 주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막 1:40~41; 10:47, 52). 우리는 사람에게 불쌍히 여김을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그곳에서 참된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귀히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주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교만한 자를 징계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뿐 아니라 동시에 교만한 자를 징계하십니다. 마리아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1~52).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던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이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교만의 DNA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하는 교만입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언제나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며 하나님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을 올려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쉽게 마음이 상하거나 분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권력자들 역시 이러한 교만에 사로잡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그들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교만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마 3:7~8). 그럼에도 스스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한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시고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셨던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교만한 세상의 권력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겸손과 온유, 화평의 삶을 몸소 사시며 끝까지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마 5:5, 9; 11:29).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 또한 섬김이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교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고 낮아지며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는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눅 1:53). 이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여전히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비록 부족해 보일지라도 주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시 107:9).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간절히 구할 때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행 1:8). 하나님은 우리와 날마다 동행하시며 죄와 상처로 지친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 날마다 인자와 긍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우리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교만을 내려놓고 눈물로 기도하며 우리의 남은 인생이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섬김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Ⅱ)
  •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누가복음 3장 4~6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기쁨의 성탄 감사하며 주님 영광 위해 살아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감사로 맞이해야 합니다. 굽어진 길을 곧게 하고 높아진 마음을 낮추며 빈 골짜기를 은혜로 채워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해야 합니다. 1. 굽은 것이 곧아지고 침례 요한은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굽어진 부분이 곧아져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눅 3:5). 여기서 ‘굽은 것’은 굽어진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짓되고 교활한 마음, 위선과 뒤틀린 생각이 바르게 펴져야 합니다(렘 17:9). 마음이 굽은 사람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입니다.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남을 비방하길 즐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며 남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기 쉽습니다. 이런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로 인해 사회에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성경은 이 같은 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며 분함과 악의와 위선과 거짓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골 3:8~9; 벧전 2:1).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 굽어진 부분을 주님 앞에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정직과 진실로 우리의 마음을 곧게 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좀 가진 게 있다고, 좀 더 배웠다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 무시하고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것 역시 굽어진 마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녀들로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돕고 힘을 합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굽은 곳을 곧게 펴주십니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사 42:16).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부러진 마음을 다 펴야 합니다. 구부러진 마음을 모두 펴서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어려운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성탄의 계절에 이웃을 돌보는 삶을 통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성경은 험한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눅 3:5). 험한 길은 여러 산이 몰려 있는 지형으로 사람들이 쉽게 지나가기 어려운 거칠고 험한 땅입니다. 이는 거친 마음, 즉 황폐한 심령을 의미합니다. 험한 길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기 고집만 부리고 성격이 거칠어 남과 늘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성격이 난폭하고 거칠어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거친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과 행동, 삶이 달라져 모든 사람에게 존귀함을 받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험한 길은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죄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자리한 죄의 습관은 우리의 마음을 점점 황폐하게 만듭니다. 음란,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동성애와 같은 험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음주 문화와 알코올중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험한 인생의 모습을 던져버리고 죄의 사슬을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온유한 심령으로 변화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우리는 온유와 겸손으로 변화되어 이웃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선을 행하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주님이 앞서가시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사 45:2). 우리 인생의 굽은 길이 펴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우리가 굽은 길을 펴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할 때 성경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6). 우리 삶 속에 자리한 교만의 산은 낮아지고 우리는 겸손과 온유로 무장해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굽어진 모습은 정직과 진실로 바르게 펴야 합니다. 죄의 습관과 거친 성격으로 인해 불화가 계속되던 험한 길은 화평의 길로 평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눅 3:5). 이처럼 우리의 잘못된 모든 모습이 치료받고 변화될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가 온 세상 가운데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야훼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10). “야훼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시 98:2~3).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때 예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강물처럼 넘쳐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주님이 그 삶을 은혜가 충만한 삶으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삶으로, 참으로 복 받은 인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한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에 있는 잘못된 모든 것들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길 원합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이 때 우리가 먼저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한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세상에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Ⅰ)
  •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누가복음 3장 4~6절) 교만의 산 깎아내고 이기적 태도와 고집 깨뜨려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낮아짐 본받아야 대림절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달간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회개와 믿음으로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고 굽어진 길을 바르게 하여 주님을 맞이하는 준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눅 3:4). 여기서 말하는 ‘길’은 사람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르게 정돈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죄와 불신앙, 불순종과 부정적인 삶의 모습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를 뜻하는 헬라어 ‘메타노이아’는 방향을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동쪽을 향해 걷던 사람이 돌아서서 서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단순한 후회나 뉘우침은 회개가 아닙니다. 잘못을 뉘우치면서도 다시 그 잘못을 반복하면 계속해서 문제에 사로잡히고 결국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을 깨닫고 그 길에서 완전히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도 바로 이 회개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7~38).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40~41). 한국교회 초기의 부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의 원산 부흥회와 1907년 평양 부흥회 모두 철저한 회개로 시작된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도 철저한 회개를 통해 굽은 마음을 바로 세워 정결함과 변화된 삶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해야 합니다. 2.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침례 요한은 주님 오실 길을 곧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골짜기를 메워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눅 3:5). 골짜기는 땅이 움푹 파여 마차나 사람이 제대로 다닐 수 없는 길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로 심령이 골짜기같이 파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 믿었던 사람의 배신, 반복되는 실패, 사업이 망했던 경험, 돈을 떼인 경험 등이 마음에 상처로 남아서 마음 깊은 곳에 골짜기를 만듭니다. 상처와 미움, 절망과 원망, 시기와 질투, 외로움과 열등감이 더해질수록 이 골짜기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의 심령이 황폐해집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 파헤쳐진 골짜기를 메워야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메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아무리 채우려 해도 이 골짜기는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보혈의 능력만이 이 골짜기를 메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공허한 골짜기를 만족과 평안으로 채우십니다. 원망의 골짜기는 감사로, 절망의 골짜기는 희망으로, 불신의 골짜기는 믿음으로 채워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의 골짜기는 긍정과 확신으로, 미움의 골짜기는 사랑과 용서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크고 작은 문제로 인해 상처를 받지만 그때마다 즉시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주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파헤쳐진 골짜기를 메워 주실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에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와 모든 상처와 고통이 치료받고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산이 낮아지고 주님 오실 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산들이 낮아져야 합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눅 3:5). 여기서 ‘산’은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교만은 죄의 뿌리이며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크고 작은 교만의 산들을 깎아내야 합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마음, 남보다 물질이나 권력이 조금 더 있다고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하고 낮게 여기는 것,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는 행동, 심지어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신앙적 열심마저도 교만의 산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모든 교만의 산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잠언은 교만을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말씀합니다(잠 8:13). 교만은 관계를 파괴하고 다툼을 일으키며(잠 13:10) 결국 패망과 넘어짐의 앞잡이가 된다고 말씀합니다(잠 16:18). 그러므로 이 말씀을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교만의 산을 깎아내기 위해 내 자아와 평생 싸우며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했듯이 내가 죽을 때 참된 자유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내 자아가 살아 있기 때문에 교회를 오래 다녀도 갈등을 일으킵니다. 실제로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은 초신자나 평신도들이 아니라 직분을 계급장처럼 여기며 회의마다 고집을 부리고 큰 소리를 내는 자아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영적 바리새인입니다.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려면 자기중심의 태도와 고집을 깨뜨리고 오직 주님만 높여드려야 합니다(눅 14:11; 요 3:30).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 2:5~7). 또한 주님이 보여주신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셨습니다(마 11:28~29). 주님의 길을 따를 때 우리 마음에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낮아진 마음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주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깊이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대림절을 맞아 주님이 오실 길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온전한 회개로 우리의 상처 난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아진 교만의 산이 낮아져 주님 오실 길을 바르게 준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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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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