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1월 10일(토) -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 말씀 : 마 14:22~27 ◎ 찬송 : 408장(통 466장)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시고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제자들이 탄 배는 거센 바람을 만나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새벽녘,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인생에도 깊은 밤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센 파도에 흔들리며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풍랑보다 크신 주님이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도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기며 담대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찾아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두려움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1.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월 9일(금) - 이삭의 순종
  • ◎ 말씀 : 창 22:6~8 ◎ 찬송 : 549장(통 431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백 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순종의 길을 떠났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삭의 태도입니다.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하자, 이삭은 더 묻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를 따랐습니다. 이삭의 순종은 단순한 효심을 넘어,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할 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예비하십니다. 오늘도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시고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1.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월 8일(목)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 ◎ 말씀 : 마 11:27~30 ◎ 찬송 : 337장(통 363장)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규례를 더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먼저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뒤, 지친 백성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각자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짐을 벗어낼 수 없습니다. 참된 쉼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주어집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고 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혼자 짊어지려 애쓰지 마십시오. 모든 염려와 수고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평안이 마음 가득 임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무거운 인생의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1.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5.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 지금도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 성령 충만의 삶은 곧 예수 충만의 삶 주님과 동행하며 인격적 신앙 갖춰야 사도행전 2장 1~4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일은 오순절 성령강림이라 불리며 교회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초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드리는 감사절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가 기도할 때에 성령님이 임했다. 이 때 먼저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있던 집에 가득 했다. 또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임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 모두 다른 언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방언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말한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의 성취이자 성령 시대의 개막이었다. 성령님은 나이·지위·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고, 오늘날에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 충만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됨을 믿으며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한다. 순복음 신앙은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보혜사로 함께하시며(요 14:16),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요 14:26), 예수님을 증언하도록 우리를 세우신다(요 15:26). 또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8,13). 하나님은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부족함 없이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 체험은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으로 나눌 수 있다. 성령 침례는 성도가 성령 안에 완전히 잠기는 체험을 말한다. 순복음 신앙에서는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를 방언이라고 믿는다.성령 침례를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성령 충만은 외적인 성령의 은사와 내적인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 침례이후에도 계속해서 성령으로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성도는 성령 충만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권면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사랑, 희락, 화평), ‘나와 이웃과의 관계’(오래 참음, 자비, 양선),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충성, 온유, 절제)로 분류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소개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증거다. 오순절 신앙은 매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불길은 지금도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순복음의 성도는 날마다 그 불길을 사모하며 성령의 은사로 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한다.
  • 2026.01.02 / 이미나 기자

    4. 갈보리 십자가 신앙
  •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야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중 ‘순복음 7대 신앙’은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의 기초를 제시한다. 곧 갈보리 십자가 신앙,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좋으신 하나님 신앙,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나누어 주는 신앙이다. ‘갈보리 십자가 신앙’은 순복음 교리의 핵심이며 인간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철저히 믿는 신앙이다. 1.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삶을 누렸으나,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따먹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한 불순종의 죄였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지고 두려움 속에 숨는 존재가 되었다. 땅은 저주받고, 고통과 질병,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으나 가릴 수 없었고, 하나님은 짐승의 가죽옷으로 입히셨다. 이는 죄 사함을 위해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함을 예표한 것으로, 장차 흠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것을 상징한다(히 9:22).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운데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태에 놓여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구약 시대엔 짐승의 피로 속죄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제사로 반복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다. 그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바울도 그 사실을 증언했다(고전 15장).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보증한다. 3. 거듭남의 은혜 크리스천은 두 번 태어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는 사건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듭남은 회개와 믿음으로 온다. 회개는 ‘메타노이아’, 곧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그 결과 구원받은 자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칭의). 우리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되었다. 그래서 참된 크리스천은 “예수님만이 나의 의이며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론적으로 순복음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과 부활을 통해 죄 사함 받았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 신앙’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5.12.05 / 오정선 기자

    3. 강건함의 축복
  • 믿음의 기도와 거룩한 삶, 헌신 속에서 완성되는 강건의 복 단순한 치유 넘어 하나님 중심된 삶 이뤄야 순복음 신앙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전인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게 된 영적·육체적·환경적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복을 ‘삼중축복’이라 한다. 이러한 전인적인 축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삼서 1장 2절이다. 이 삼중축복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복이 ‘강건함의 축복’이다. 강건함(Good Health)은 단순한 육체의 건강을 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강건함을 근간으로 한 온전한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강건함의 복을 마땅히 구하며 살아야 한다. 강건함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믿음의 기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선포하는 창조적 믿음의 고백이다. 몸이 연약하거나 질병 중에 있을지라도 “나는 건강하다”, “나는 평안하다”고 믿음으로 선포할 때 그 긍정적인 믿음의 언어가 현실을 변화시킨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는 말씀처럼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치유보다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둬야 한다.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도이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므로 죄와 음행, 탐욕, 중독 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고 정결함을 지킬 때 마귀가 틈타지 못하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다스리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몸으로 주를 섬기고 이웃을 위해 ‘봉사와 헌신하는 자’에게 강건의 복을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17세에 폐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섰다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 받았다. 이후 조용기 목사는 “건강해야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강건함은 사명을 위한 복”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육체의 건강은 단순한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사명의 자원이다. 그러므로 건강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도구이다. 건강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건강해야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말씀을 통해 단순한 병이 낫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강건함의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드려야 할 믿음의 기도와 거룩한 삶, 봉사와 헌신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믿음에서 시작된다. 복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둘 때 우리의 영혼은 견고해지고 삶은 새로워진다. 주님이 주시는 강건함으로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그것이 바로 삼중축복 신앙의 완성이자 순복음 신앙의 본질이다.
  • 2025.10.31 / 금지환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 “할렐루야 내 영혼아 야훼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야훼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편 1~5절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영광과 찬양 올려드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날마다 승리의 삶 살게 돼 한 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도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요, 마지막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크신 은혜에 넘치는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우리는 날마다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야 합니다. 1. 주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자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하며 평생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야훼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야훼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1~2). 이 고백은 찬양과 감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마땅한 본분임을 보여줍니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평생 감사하고 찬양할 것밖에 없습니다. 만약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죄와 절망 가운데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는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넘치는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하나님은 감사하고 찬양하는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다윗이 찬양할 때 악신이 떠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던 것처럼 우리 삶에 감사가 넘쳐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반면 하나님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남 탓을 하는 부정적인 사람과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도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 죽은 이유는 위기의 순간마다 쏟아낸 원망과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절대 긍정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절대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그러므로 한평생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2.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시편 기자는 세상의 권력자나 도울 능력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3~4). 우리 삶의 많은 문제는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본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결국 상처를 입고 큰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존재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우리 인생의 문제에 올바른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는 가룟 유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재정을 맡을 만큼 신뢰를 받았지만, 결국 은 삼십에 주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주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셨지만 그는 탐욕에 눈이 멀어 배신의 길을 택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가룟 유다의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비록 연약하여 실수했을지라도 베드로처럼 즉시 회개하고 돌아와 다시 주님만 의지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구세주이자 해결자가 되십니다. 사람에게 기대어 낙심하지 말고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주님만 끝까지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우리는 일평생 사는 동안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우리 삶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아갈 때 주님은 지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새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독수리는 폭풍이 불어도 그 바람을 타고 5000m 하늘까지 날아오릅니다. 100m만 겨우 올라가는 참새처럼 낮은 곳에 머물지 말고 우리는 독수리같이 날아올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큰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도움이자 피난처가 되십니다(시 121:1~2). 환난을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사람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찬양과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참된 복은 이 세상에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에 있지 않고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기도와 말씀, 감사와 찬양을 잃어버릴 때 찾아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26년 한 해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주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람을 의지하여 상처받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만복의 근원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 찬양과 감사로 무장하여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독수리같이 날아오르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
  •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누가복음 1장 46~55절) 하나님 앞에 교만 내려놓으며 겸손과 섬김의 삶 살아갈 때 성령 충만을 선물로 받고 위대한 복음의 증인 될 수 있어 마리아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메시야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 전하였고 그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임을 선포했습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부르심 앞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마리아의 찬양은 이 땅에 오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1. 긍휼함을 베푸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은 메시야의 오심이 곧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의 역사임을 증언합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0~54). 죄와 허물 가운데 태어나 스스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병들고 문제 있는 자, 사회로부터 무시당하며 고통 중에 살고 있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 긍휼히 여김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 살아가던 나병 환자와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자도 주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막 1:40~41; 10:47, 52). 우리는 사람에게 불쌍히 여김을 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구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그곳에서 참된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할 때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귀히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주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교만한 자를 징계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뿐 아니라 동시에 교만한 자를 징계하십니다. 마리아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1~52).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입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 했던 인간의 교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이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교만의 DNA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하는 교만입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언제나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며 하나님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을 올려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쉽게 마음이 상하거나 분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권력자들 역시 이러한 교만에 사로잡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그들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침례 요한은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교만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마 3:7~8). 그럼에도 스스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자부한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시고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셨던 예수님을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교만한 세상의 권력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이 땅에서 겸손과 온유, 화평의 삶을 몸소 사시며 끝까지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마 5:5, 9; 11:29).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 또한 섬김이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교만을 제거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삶을 내려놓고 낮아지며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마리아는 부족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눅 1:53). 이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여전히 공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비록 부족해 보일지라도 주님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시 107:9).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간절히 구할 때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행 1:8). 하나님은 우리와 날마다 동행하시며 죄와 상처로 지친 인생을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 날마다 인자와 긍휼로 우리를 덮으시고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어 우리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교만을 내려놓고 눈물로 기도하며 우리의 남은 인생이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섬김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Ⅱ)
  •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누가복음 3장 4~6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기쁨의 성탄 감사하며 주님 영광 위해 살아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감사로 맞이해야 합니다. 굽어진 길을 곧게 하고 높아진 마음을 낮추며 빈 골짜기를 은혜로 채워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해야 합니다. 1. 굽은 것이 곧아지고 침례 요한은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굽어진 부분이 곧아져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눅 3:5). 여기서 ‘굽은 것’은 굽어진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짓되고 교활한 마음, 위선과 뒤틀린 생각이 바르게 펴져야 합니다(렘 17:9). 마음이 굽은 사람들은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입니다. 편견과 오해에 사로잡혀 남을 비방하길 즐깁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며 남에게 피해와 고통을 안겨주기 쉽습니다. 이런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로 인해 사회에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성경은 이 같은 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며 분함과 악의와 위선과 거짓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골 3:8~9; 벧전 2:1).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 굽어진 부분을 주님 앞에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정직과 진실로 우리의 마음을 곧게 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좀 가진 게 있다고, 좀 더 배웠다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 무시하고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 발견합니다. 그것 역시 굽어진 마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녀들로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돕고 힘을 합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굽은 곳을 곧게 펴주십니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사 42:16).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부러진 마음을 다 펴야 합니다. 구부러진 마음을 모두 펴서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어려운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성탄의 계절에 이웃을 돌보는 삶을 통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2.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성경은 험한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눅 3:5). 험한 길은 여러 산이 몰려 있는 지형으로 사람들이 쉽게 지나가기 어려운 거칠고 험한 땅입니다. 이는 거친 마음, 즉 황폐한 심령을 의미합니다. 험한 길의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기 고집만 부리고 성격이 거칠어 남과 늘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성격이 난폭하고 거칠어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거친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과 행동, 삶이 달라져 모든 사람에게 존귀함을 받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험한 길은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죄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자리한 죄의 습관은 우리의 마음을 점점 황폐하게 만듭니다. 음란,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동성애와 같은 험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음주 문화와 알코올중독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러한 잘못된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험한 인생의 모습을 던져버리고 죄의 사슬을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온유한 심령으로 변화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우리는 온유와 겸손으로 변화되어 이웃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선을 행하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주님이 앞서가시며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사 45:2). 우리 인생의 굽은 길이 펴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우리가 굽은 길을 펴고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할 때 성경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 3:6). 우리 삶 속에 자리한 교만의 산은 낮아지고 우리는 겸손과 온유로 무장해야 합니다. 부정적으로 굽어진 모습은 정직과 진실로 바르게 펴야 합니다. 죄의 습관과 거친 성격으로 인해 불화가 계속되던 험한 길은 화평의 길로 평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눅 3:5). 이처럼 우리의 잘못된 모든 모습이 치료받고 변화될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가 온 세상 가운데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야훼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10). “야훼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시 98:2~3).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때 예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강물처럼 넘쳐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 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주님이 그 삶을 은혜가 충만한 삶으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삶으로, 참으로 복 받은 인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가오는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한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의 삶에 있는 잘못된 모든 것들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길 원합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이 때 우리가 먼저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한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세상에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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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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