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8월 29일(토) -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소서
  • ◎ 말씀 : 요 17:14~16 ◎ 찬송 : 288장(통 204장)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앞두시고, 제자들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동안 악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어려움을 만나고,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는 일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휩쓸려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악한 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답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28일(금) - 하나님 품 안에서의 쉼
  • ◎ 말씀 : 시 131:1~3 ◎ 찬송 : 412장(통 469장)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붙들고 애쓰지 않겠다고 말하며, 하나님 품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겠다고 노래합니다. 그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품 안에서만 깊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쉼은 문제가 다 사라져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힘을 내려놓고 삶의 무게를 하나님께 맡길 때 주어집니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복잡해져 몸과 영혼이 지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혼자 해결하거나 버티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염려를 쏟아 놓으면 우리의 영혼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오늘도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듯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과 새 힘을 얻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삶에 지쳤을 때 하나님의 품에 안겨 쉼을 얻게 하옵소서. 그 쉼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27일(목) -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 ◎ 말씀 : 시 127:1~2 ◎ 찬송 : 379장(통 429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헛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집을 짓듯 하루하루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인생의 집을 지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초와 중심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만족과 욕망을 두고 집을 완성한다면,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 집은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세상의 풍파 앞에 망가지고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집을 지을 때 무엇보다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삶의 주권을 온전히 그분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집은 든든히 세워질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12. 절대 감사
  • 감사는 믿음의 척도 성도의 삶은 감사의 삶이 되어야 한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봉사, 헌신 등은 모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골 3:16).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범사’라는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것에’라는 의미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모든 환경에서”라고 번역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명하시는 감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우리는 절대 감사의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절대 감사를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핍밥을 당했다. 그런데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권면했다(빌 4:6~7).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감사함으로 구하는 기도는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욥은 다복한 가정, 사회적 명예와 재물 등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을 받아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도 잃었다. 아내는 그를 원망하며 떠났고 친구들은 그를 정죄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주신 분도, 거두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임을 고백했다(욥 1:21).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신 은혜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다.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시는 대가를 치르셨다. 더욱이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게 아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는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깊은 곳까지도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듣길 원하신다. 감사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기를 실천하자.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감사를 드렸고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옥터가 흔들리고 닫혔던 문이 열리며 손과 발에 매인 것이 모두 풀어지는 기적을 베푸셨다. 감사 안에 기쁨, 평화, 사랑, 회복이 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넘치는 감사로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 2026.07.31 / 김주영 기자

    11. 절대 긍정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기다리는 힘 말씀 묵상, 기도로 훈련할 수 있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절대 긍정은 단순한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론도 아니다. 절대 긍정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면서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신앙의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이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절대 긍정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 100세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해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권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결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고난을 승리로 바꾼 절대 긍정의 근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대 긍정의 신앙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절대 긍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해야하고 노력과 훈련도 필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절대 긍정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꿈을 주신다. 이 꿈을 삶에서 실현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는 언어도 긍정적으로 바꿔야한다. 가나안에서 돌아온 열두 정탐꾼에게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고 선포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 2026.07.03 / 복순희 기자

    10. 나누어 주는 신앙
  • 나누는 삶, 크리스천의 본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본받아 복 나누는 청지기의 삶 살아야 크리스천의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가득 차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이다. 나눔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가르침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또한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게 하셨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는 빚으로 잃어버린 삶과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와 질병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눴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의 기근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보냈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눔에 동참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받으며 부흥 했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이웃에게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고 교회와 선교, 구제와 사랑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과 건강, 직분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관리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며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청지기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 사회복지 사역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실천해 왔다. 매년 예산의 약 3분의 1을 선교·전도·구제에 사용하며 국내외 선교와 취약계층 지원, 장학사업, 재난구호, 사회복지 사역에 힘쓰고 있다. 교회가 받은 축복을 세상과 나누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시간과 재능, 관심과 사랑, 기도와 봉사 모두가 나눔이 될 수 있다. 성도들도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돌보며 사회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쁨으로 나누어 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 2026.06.04 / 이미나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 여러분은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소망을 잃고 마른 뼈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26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깊은 절망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사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마른 뼈를 보게 하셨습니다. 1. 마른 뼈 인생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마른 뼈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겔 37:1∼2).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살며 각종 중독과 고통에 빠져 마른 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예배와 신앙생활이 습관과 형식에 머물고 있다면 우리도 영적으로 마른 뼈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섬기기보다 비판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의 촛대를 친히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 2:5). 우리가 하나님과 어디에서부터 멀어졌는지 돌아보고 마음을 찢어 회개하면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는다고 요엘 선지자는 말씀합니다(욜 2:13).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다시 처음 사랑과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2. 주님의 권능 마른 뼈와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에스겔 역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 믿음으로 구했으면 환경과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여서 기적이 일어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포를 통해 우리 삶에 놀라운 기적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서 날마다 전진 또 전진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성령의 역사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자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이 생기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겔 37:7). 그러나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기를 향해 대언하자 하나님의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와 그들에게 들어갔고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겔 37:9~10). 이 생기는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의미합니다. 오순절 날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성령께서 바람같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 세워져 마귀를 대적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영적인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흑암의 권세가 물러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2026.08.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 6장 19~23절 고난 중에 기도하고 절망 중에 감사할 때 우리 삶에 희망 가득차고 하나님 주신 축복 받게 돼 하나님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으며 사람이 세운 나라와 권세는 때가 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새로운 제국으로 세워진 것처럼 역사의 모든 흐름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섬기는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다니엘은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한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한 뒤 왕의 신임을 받아 포로에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이 되었습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단 2:48).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존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은 벨사살 왕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고 나라를 바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며 우상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단 5:4). 그 결과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새로운 제국의 바사 다리오 왕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120명의 고관을 세우고 그들을 감독할 세 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이미 여든이 넘은 고령이었지만 탁월한 지혜를 인정받아 세 총리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온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단 6:3). 하나님은 시대와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지키시고 높이셔서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다니엘을 붙드신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십니다. 환경이나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기보다 하나님만 신뢰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무리들 하나님의 사람이 쓰임받을 때 이를 시기하고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고 높은 위치에 오르자 고관들과 총리들은 그를 시기하며 어떻게든 끌어내릴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충성된 다니엘에게서 그들은 아무 허물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우리도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할 때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비방으로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며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또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바사의 고관들은 신실한 다니엘의 신앙을 빌미로 삼아 왕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단 6:7). 그들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서 해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다리오 왕은 이를 모른 채 금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을 기억하시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3. 기도의 사람 다니엘 다니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그는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롬 14:8).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다니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도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길 바랍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이유로 참소하는 자들에 의해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실한 믿음을 잘 알고 있었던 다리오 왕은 밤새 금식하며 하나님이 다니엘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단 6:18~20). 하나님은 왕의 바람처럼 기도하는 다니엘을 보시고 이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고, 그의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단 6:24).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 때 악인의 세력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1:6).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 감사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늘 지키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니엘처럼 기도와 감사를 잃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자를 지키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참 평안
  •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열왕기하 4장 25~26절 고난의 때 낙심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감사와 은혜의 삶 누리게 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힘써야 할 일 중 하나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쁘고 평안한 마음은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하지만 근심은 삶을 메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절망적 현실을 만난 여인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이 만난 절망적인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늦은 나이에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왕하 4:16). 그러나 기적처럼 찾아온 아들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평생의 기쁨이었던 아들을 잃은 여인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질병, 실패, 배신 등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너진 그때 주저앉아 낙심하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결국 그 원인이 자신임을 안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고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습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 속에서 요나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깊은 물이 그를 영혼까지 에워쌌지만 요나는 그 절망 속에서 오히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구원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했습니다(욘 2:5, 9).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로 내보내셨습니다(욘 2:10).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자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성경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절망의 때나 문제를 만났을 때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앙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왕하 4:27~28). 여인은 아이를 엘리사가 머물던 방 침상에 눕혀 둔 뒤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발을 안고 엎드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알렸습니다. 여인의 사연을 들은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먼저 보냈습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왕하 4:29). 다른 일에는 눈길도 주지 말고 오직 아이에게로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게하시가 명령대로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에 놓았지만 아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왕하 4:31). 그럼에도 수넴 여인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왕하 4:30).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 주님 곁에, 교회 곁에, 주의 종 곁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절망을 기적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왕하 4:35).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집에 이르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아이 위에 엎드리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배경에는 수넴 여인의 절대 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왕하 4:26). 엘리사는 급히 달려오는 여인을 멀리서 보고 큰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여 게하시에게 그 안부를 묻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지 않고 “평안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심을 믿었기에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평안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나 문제를 만났어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며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갖고 나아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평안이 올 때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날마다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환난과 고통이 다가와도 마음을 지키며 문제보다 크신 주님께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살리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역사하셔서 날마다 주님의 평안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8.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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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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