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5월 4일(토) - 예수 안에서 행하라
  • ◎ 말씀 : 골 2:6~8 ◎ 찬송 : 314장(통 511장) 바울은 제자 에바브로를 통해 골로새교회 안에 이단과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투옥 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단 세력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고 올바른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해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 안에서 행하는 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것들을 따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은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굳게 뿌리박힌 신앙을 가질 때 세상의 거짓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서 어떠한 유혹과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3일(금) - 이어지는 신앙
  • ◎ 말씀 : 왕하 2:8~9 ◎ 찬송 : 455장(통 507장) 아합과 아하시야 시대에 선지자로 활동했던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회오리 바람에 들려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자신에게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같은 바람대로 엘리사는 갑절의 능력을 얻게 되었고, 이후 약 50년간 엘리야의 뒤를 이어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스승이었던 엘리야의 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임했던 성령의 능력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엘리사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갑절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엘리사와 같이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엘리사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갑절의 영감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2일(목) - 부름의 상을 받기까지
  • ◎ 말씀 : 빌 3:13~14 ◎ 찬송 : 347장(통 382장) 사도 바울은 율법 아래서 흠결 없는 삶을 살았던 자였으나 한편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자에게 주실 상을 위해 신앙의 경주를 해나가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신앙의 경주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간 영광도, 과거의 실패도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라보았던 푯대를 향하여 신앙의 경주를 모두 마친 자들에게 주시는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여 부름의 상을 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05) 오네시모
  • 비천한 종에서 위대한 종으로 변화된 인물
    “나의 형제여, 성도들에게 베푼 그대의 사랑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고, 또한 내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얻었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그대에게 아무 쓸모없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대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 편지 내용은 주인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도망쳤던 종을 용서하고 더 이상 종이 아닌 주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바울의 편지 내용이다. 1장으로 구성된 신약의 빌레몬서는 바울이 사랑과 믿음의 일꾼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편지에 등장하는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주인에게서 도망치고 감옥에 갇혔다가 바울을 만난 인물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주의 복음을 전하며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준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에 회심하고 개종한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다. 빌립보서 4장에는 바울이 오네시모를 가리켜 “오네시모 역시 우리가 사랑하는 신실한 형제”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 교회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빌레몬에게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직접 보내며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빌레몬에게 전한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자신을 대하듯 ‘종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줄 것’을 당부하며 “오네시모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 돌리라”고 까지 언급한다. 당시 로마법은 주인과 종(노예)의 관계가 엄격해 도망친 종은 주인에 의해 생사가 갈렸다. 바울은 ‘감옥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용서해 바울의 조력자로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길 기대했다. 결국 오네시모는 바울의 헌신과 사랑, 주인인 빌레몬의 용서로 종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쓸모 있는 자’라는 오네시모의 뜻처럼 유익한 하나님의 종으로 후에 에베소 교회 감독으로 쓰임 받는다. 비천한 신분이었던 오네시모가 위대한 일꾼이 된 것은 복음이 지닌 위대한 능력의 결과다. 복음 앞에서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신 구속의 이유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오네시모처럼 우리 역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삶의 변화를 체험하면 하나님의 쓸모 있는 자로 이 땅에서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 2024.04.05 / 오정선 기자

    (104) 나오미와 룻
  •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단한 두 여인 ‘신앙, 효, 사랑’이 삶 바꿀 수 있어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고부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혈육이 아니고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부 갈등이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나오미와 룻은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원래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다. 남편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다. 아들들은 모압 여인인 오르바, 룻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멜렉이 죽었고, 두 아들도 자녀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당시 남편이 없는 여성, 아들이 없는 여성은 부모 없는 고아와 같은 처지였다. 남자들이 모두 죽었기에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고 세 과부만 남겨졌다. 이방 땅에서 과부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나오미는 고통과 슬픔밖에 남지 않은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며 이스라엘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유다 땅을 향해 같이 길을 나섰지만 나오미는 이내 두 며느리에게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에 가도 며느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나오미는 슬픈 이별을 고한 것이다. 오르바는 떠났고 룻은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룻은 야훼 하나님을 언급하며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믿음의 백성으로 남겠다는 결단을 한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아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헌신적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 생활 기반이 없기에 하루 종일 밭에서 이삭을 주웠고 그의 희생적 모습이 보아스의 눈에 들었다.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위로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룻에게 호의를 베푼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마침내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룻은 나오미의 뜻에 따라 비록 보아스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이 둘 사이에서 장차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아이가 태어났다(룻 4:13∼17). 하나님은 룻에게서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셨다. 이방 여인 룻이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으로서 족보에 들어가게 됐다. 아무 소망도 의지할 곳도 없던 두 여인이 하나님만 따르기로 결정하고 나아갔을 때 개인의 삶만 바뀐 게 아니라 멸절됐던 가문이 이어지고, 한 국가의 운명이 달라졌다. 나오미와 룻이 지닌 신앙과 서로에 대한 효와 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 2024.03.01 / 복순희 기자

    (103) 유니게
  • 신앙교육과 기도는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 말씀으로 디모데 양육한 믿음의 어머니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도의 어머니 중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유니게이다. 디모데의 어머니인 유니게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 신앙은 유니게의 어머니인 로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디모데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유니게와 로이스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고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으로 철저히 교육을 시키며 지혜로운 아들이 되도록 늘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쳤고 거짓이 없고 남에게 칭찬을 받는 훌륭한 인물로 양육했다. 사도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배우고 본받아 진실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고 사도 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믿음을 크게 칭찬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순교하기 전에 남긴 편지에서 유니게와 로이스의 신앙적 가르침을 귀히 여기고 디모데를 무척 아꼈던 마음이 담겨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유니게라는 이름의 뜻은 ‘유명한 정복자’라는 의미이다. 유니게는 루스드라 출신의 헬라계 유대인으로 당시 불신 세계라 할 수 있는 헬라 사회에서도 믿음과 전통을 지킨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유대인인 로이스와 유니게는 순결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유니게는 이방인(헬라인)과 결혼하여 디모데를 낳았다. 사도행전 16장 1절에서 디모데에 대해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방인과 결혼한 유니게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유대 여자가 이방 민족과 결혼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위협받기에 더욱 꺼리는 일이었다. 또한 당시 사회가 부계 중심의 사회인데도 성경에 디모데의 아버지가 아닌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만 언급된 것으로 보아 남편이 일찍 죽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결혼 생활이 평온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니게는 철저한 신앙으로 아들을 키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줬고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큰 힘이 되고 초기 교회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믿음의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참된 부모의 역할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고,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부모의 손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외국 속담처럼 하나님께서 부모의 손길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신다.
  • 2024.02.01 / 이미나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불신앙을 극복하라
  •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중략)…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24~29절 은혜의 자리 이탈해 신앙의 침체에 빠질 때 참 기쁨과 회복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만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외부의 어떤 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신앙의 공동체를 지키며 우리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불신앙을 걷어내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 신앙 공동체에서 이탈하지 말라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그리스도인들의 결속을 굳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기에 예배, 말씀, 기도의 자리를 함께 지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불신앙은 이런 신앙 공동체를 이탈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예수님과 동행했던 충성스러운 제자이자 일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을 무릅쓰고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신다고 하셨을 때도 도마는 죽음도 불사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했던 제자였습니다.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요 11:16).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자 중 유일하게 도마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며 숨어있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강을 전하셨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부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그 은혜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제자들이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지만 그는 자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신앙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부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도 못했고 전해주는 증언을 믿지도 못하는 불신앙의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절대로 주일 예배를 빠지지 마라. 주일에는 예배드리는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은혜의 자리를 지키니 하나님이 제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빼앗기지 않는 은혜, 그것은 신앙의 공동체를 이탈하지 않을 때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가 은혜의 자리를 잠시 이탈해 신앙의 침체에 빠져도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8일이 지난 뒤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는 도마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요 20:26). 도마는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그의 마음을 아셨던 예수님은 그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예수님은 창에 찔리고 못에 박혔던 상흔을 도마로 직접 확인하게 해주시면서 침체된 그의 영혼에 믿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과 멀어진 분이 계십니까?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쉽게 나오는 분이 있으십니까? 섬김의 자리를 떠나 비판하는 잘못된 자리에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어떤 이유로든 예수님과 멀어진 분이 계시면 우리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는 말씀처럼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려 할 때조차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기쁨과 회복, 참사랑과 헌신의 길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도마의 고백과 헌신 대못이 박혔던 양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의 상흔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신앙이 회복되어 경외감과 감격 속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자기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음의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도마를 향해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복된 믿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예수님은 도마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자 하늘에서 성령이 임했고 성령 충만해진 그는 파르디아(고대 이란족 국가), 인도, 에티오피아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인도 남부 지역에 7개의 교회를 세우고 A.D. 72년경에 순교했습니다. 도마는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순교했는데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인도 첸나이에는 도마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도마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도마처럼 사람은 누구나 신앙의 자리에서 이탈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를 떠나 불신앙의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상태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회복한 후에는 맡겨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절망이나 문제의 자리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278장에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주 은혜를 잊었네/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함께 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라는 가사를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주님께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통해 믿음의 자리, 신앙의 공동체를 굳게 지키며 평생토록 우리 주님께 헌신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잠시 신앙의 공동체를 떠나 불신앙의 상태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회복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가까이하며 주님이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십자가의 축복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린도전서 1장 18절, 2장 1~2절)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시대에 사는 우리 섬김과 복음 전파 힘써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어떤 종교 지도자도 죽음 이후에 부활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고, 인도의 산치에는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무덤이 있습니다. 또 중국 취푸시에는 유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 공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의 무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1. 구원의 축복 십자가는 본래 죄와 저주, 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십자가는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이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구원은 선한 일을 많이 하거나 커다란 업적을 남긴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때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이런 구원의 역사가 충만히 나타났습니다. 오순절에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깨닫고 마음에 심한 찔림을 받게 되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이 남자 어른만 3000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41).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자신의 정욕과 욕망대로 살아왔다면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기억하며 항상 하나님 앞에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부요의 축복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짐과 섬김의 본이 되어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부요함으로 우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가난과 저주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하여 다가온 형벌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래 지금까지도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이 영적, 육체적 굶주림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2023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기아로 고통 받는 인구가 7억 35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가난과 저주를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만 행복하게 살라고 부요의 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8~19). 우리 주변에는 사랑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다문화 가정, 탈북자 가정, 한부모 가정, 부모가 없이 보육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 특히 출생신고도 없이 버려져 주민등록번호도 없이 자라는 아이들 등 돌봐야 할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을 아낌없이 나눌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 더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성령의 약속 소외되고 헐벗은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은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우리가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으로 공생애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더불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은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중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또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이에 실제로 오순절 날이 되자 성령이 강림하셨고 제자들은 권능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행 2:17~18). 사도 베드로의 선포처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령 충만이 꼭 필요함을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능력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혜도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소외되고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누가복음 7장 11~16절) 온 인류의 기적 예수님 부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 살 때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되고 하나님 은혜와 축복 임해 예수님의 부활은 온 인류에게 절대 절망의 삶이 절대 희망의 삶으로 변화가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와 사망, 질병,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죄의 결박을 풀어주셨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직도 절망에 처해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1. 깊은 절망에 처한 여인 누가복음에는 깊은 절망에 처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눅 7:11~12). 예수님이 나인 성으로 가실 때 죽은 사람의 관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며 장례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살아가던 과부의 유일한 희망과 삶의 의미는 그 외아들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과부에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이 임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때때로 절망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절망 중에 가장 큰 절망은 죽음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 앞에 모든 사람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망이라는 절망은 죄의 결과로 다가온 형벌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자 육신의 죽음과 저주와 가난이 형벌로 다가온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으십니다. 2. 불쌍히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 7:13). 불쌍히 보신다는 원어의 의미는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느낀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과부의 슬픔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통을 느끼시면서 죄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실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면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해야겠다’라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라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7). 바디매오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절히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1~52). 또한 예수님은 한센병 환자를 불쌍히 보시고 다가가셔서 고치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한센병에 걸리면 “저 사람은 하나님께 형벌을 받아서 저런 병에 걸렸다”라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멀리한 그를 불쌍히 보셨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막 1:40~41). 하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목자 잃은 양같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간절히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셨을 때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무리가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 음식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게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셔서 모두가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막 6:38~44).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 간절히 외치십시오. “주여, 나를 불쌍히 보소서! 나를 절망에서 건져 주옵소서! 나를 고난에서 건져 주옵소서!”라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3.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예수님이 관에 가까이 가셔서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시자 그 순간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눅 7:14~15). 조금 전까지 통곡하며 관을 따라가고 있던 과부는 눈앞에서 아들이 살아나자 너무나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붙잡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끊임없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어떤 절망도, 슬픔도, 고통도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절대 희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 7:16).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큰 문제가 우리를 둘러싸도 감사로 승리해야 합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만 바라보고 맡겨진 사명을 힘써 감당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4.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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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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