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7월 25일(토) - 피난처 되신 하나님
  • ◎ 말씀 : 시 46:8~11 ◎ 찬송 : 370장(통 455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과 창을 꺾으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싸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전쟁과 같은 상황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쉽게 요동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자리에서 서둘러 움직이기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면 주님이 앞서 일을 행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입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4일(금) -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것
  • ◎ 말씀 : 막 6:3~5 ◎ 찬송 : 27장(통 27장)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돌아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래 안다는 이유로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했고 그 불신 때문에 예수님은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익숙함은 오히려 믿음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어 왔지만 어느새 익숙한 이름으로만 부르고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뜻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익숙함에 가려진 믿음을 다시 세우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익숙함에 가려진 믿음의 장벽을 버리고 친밀함과 경외감을 품고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3일(목) -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 ◎ 말씀 : 시 39:8~11 ◎ 찬송 : 305장(통 405장)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모든 죄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하며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러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징계와 고난을 겪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에는 죄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비는 정죄로 끝나지 않고 회복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죄로 인해 마음이 무겁고 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자신을 정죄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방황할 때도 회개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11. 절대 긍정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기다리는 힘 말씀 묵상, 기도로 훈련할 수 있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절대 긍정은 단순한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론도 아니다. 절대 긍정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면서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신앙의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이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절대 긍정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 100세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해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권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결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고난을 승리로 바꾼 절대 긍정의 근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대 긍정의 신앙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절대 긍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해야하고 노력과 훈련도 필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절대 긍정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꿈을 주신다. 이 꿈을 삶에서 실현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는 언어도 긍정적으로 바꿔야한다. 가나안에서 돌아온 열두 정탐꾼에게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고 선포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 2026.07.03 / 복순희 기자

    10. 나누어 주는 신앙
  • 나누는 삶, 크리스천의 본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본받아 복 나누는 청지기의 삶 살아야 크리스천의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가득 차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이다. 나눔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가르침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또한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게 하셨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는 빚으로 잃어버린 삶과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와 질병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눴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의 기근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보냈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눔에 동참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받으며 부흥 했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이웃에게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고 교회와 선교, 구제와 사랑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과 건강, 직분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관리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며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청지기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 사회복지 사역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실천해 왔다. 매년 예산의 약 3분의 1을 선교·전도·구제에 사용하며 국내외 선교와 취약계층 지원, 장학사업, 재난구호, 사회복지 사역에 힘쓰고 있다. 교회가 받은 축복을 세상과 나누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시간과 재능, 관심과 사랑, 기도와 봉사 모두가 나눔이 될 수 있다. 성도들도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돌보며 사회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쁨으로 나누어 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 2026.06.04 / 이미나 기자

    9. 다시 오실 예수님
  • 재림 신앙의 의미와 성도의 자세 말씀과 기도 충만,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그네처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이며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영원한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1. 재림에 관한 성경의 증언 ‘재림’이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환상 가운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단 7:13~14),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한다. 신약성경은 더욱 명백하게 재림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제자들에게 친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승천 당시 천사들도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선포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 재림의 목적과 그때 일어날 일들 예수님은 세 가지 목적으로 재림하신다. 첫째, 구원받은 성도들을 예비하신 하늘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다(요 14:2~3). 둘째,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기 위해 오신다(고전 15:52). 셋째,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된다. 먼저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7년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그동안 지상에서는 적그리스도의 7년 환난이 벌어진다. 환난이 끝나면 예수님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어 아마겟돈 전쟁과 최후 심판을 통해 악을 멸하시고, 천년왕국을 여신다. 이후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지고, 구원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계 21:4).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예상치 못한 때에 임할 것이다(벧후 3:10).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쟁과 기근과 지진, 사랑이 식은 세상, 복음의 땅 끝까지 전파 등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 가지 자세로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구하는 삶이다. 둘째,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종말의 징조 가운데 하나인 만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한다. 셋째, 천국 소망을 품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재림 신앙 때문이었다. 우리의 소망을 이 땅에 두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두자.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의 어떤 고난과도 비교할 수 없다(롬 8:18).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2026.05.01 / 오정선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부족함이 없는 삶
  •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4편 9~10절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참된 평안과 만족 누리고 사랑과 말씀으로 하나 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 살아야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부족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물질의 풍요와 성공 그리고 명예를 얻는다 해도 마음의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을 떠난 삶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쁨과 만족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만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 성도들아 야훼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시 34:9).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의 삶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잠 1:7; 전 12: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깁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고”(신 10:12). 하나님은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는 자를 기뻐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떤 형편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62:1~2).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를 보호하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 34:7; 잠 14:27). 절망과 외로움, 슬픔의 순간마다 낙심하지 말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절망과 외로움, 슬픔으로 흔들리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도 만족 없이 마음의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세상의 위로와 즐거움으로는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나아갈 때 참된 위로와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 나아가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반드시 만나주시고 은혜와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찾으라 우리는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부족함과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의 목자가 되셔서 삶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고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며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주 안에서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영혼에 참된 평안과 쉼을 허락하십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등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아뢰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된 답을 줄 수 없지만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참된 평안과 만족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야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인생을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염려와 고난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불쌍하고 상처 입고 연약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고난의 때 엎드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6). 주님은 우리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위로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어떤 절망 속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크고 은밀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1~2).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입니다. 과거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는 하나님밖에 의지할 분이 없었기에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부르짖음은 점차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은 더욱 공허해졌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와 우리의 삶이 참된 회복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모든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 우리를 붙드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말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어 사회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은혜와 기적이 나타나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우리를 늘 돌보시고 채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형편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며 간절히 부르짖을 때 응답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하나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진정한 예배자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5~20절 주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로 영적 상태 늘 점검하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회개와 회복의 은혜 누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는 예배자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예배자의 삶이란 삶의 모든 자리와 영역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삶은 하나님을 삶의 가장 첫 자리에 모시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명예, 권세, 물질, 자녀, 우리 자신까지도 하나님보다 앞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삶에 첫 번째 자리에 모시고 살아갈 때 우리는 다윗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야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시 108:1~4). 호흡이 있는 모든 순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우리는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찬양 가운데 역사하셔서 옥문이 열리게 하시고 손과 발의 매인 것이 풀어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찬양은 이 땅에서 천국에 이르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성경은 천국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향한 찬양으로 가득한 곳임을 말씀합니다(계 5:9~13, 계 15:3~4). 우리가 지금 드리는 예배와 찬양은 장차 천국에서 드릴 영원한 예배의 시작입니다. 오늘도 천국의 소망을 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진정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영적인 문제를 발견해야 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지배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이 사라졌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풍성함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영적인 빈곤을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이 극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주님을 간절히 찾다가 삶에 여유가 생기면 물질의 풍요로움에 빠져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이 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영적인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성령의 불이 식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때 기쁨과 감사가 회복됩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3. 회복의 은혜 우리는 영적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불로 연단한 금은 시련을 통과한 순수한 믿음을,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입는 구원의 은혜를, 안약은 영적으로 어두워진 눈을 밝히시는 성령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우리는 첫사랑의 감격과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첫사랑과 식어버린 신앙의 열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0~21).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풍성한 은혜와 참된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회복은 주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영적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자로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늘 돌아보게 하시고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성령 충만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회개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0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진리 되신 예수님과 말씀 안에서 하나되고 주님의 제자된 삶 살 때 참된 자유 누릴 수 있어 사람은 누구나 죄와 욕심, 미움과 분노 등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속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눌린 자를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요 8:31~32). 1. 제자의 삶 우리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삶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요 8:31).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삶을 살 때 모든 문제가 생겨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원망, 불평에 사로잡히면 그 삶은 결국 파멸의 길로 갑니다.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로 우리의 생각을 지키고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복에 복을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제자의 길을 가려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 되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장로교 창시자 칼뱅은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십자가를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진리를 체험하는 삶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것뿐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길과 진리, 생명이 되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우리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참 하나님이신 구세주 예수님께 나아올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인생의 참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요한복음 1장에는 진리되신 예수님을 말씀과 하나님으로 표현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와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 신약은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의 중심 요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을 만나면 일생이 변화됩니다. 막달라 지역에 살던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려 고통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마리아는 온전히 치유 받고 한평생 예수님을 섬기는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으며,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행 7:59~60, 빌 3:8). 예수님을 만나면 이러한 변화 받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자유함을 누리는 삶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참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자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끝없이 다가오는 죄의 유혹과 시험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물리치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5). 또한 죽음 이후에 우리에게는 영생 천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주님이 주신 천국 소망을 가짐으로 위로함을 받고 늘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과 저주로부터 놓여나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물질의 노예가 아닌 물질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다스림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바르게 다스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실과 근면함과 인내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마음의 병, 육신의 병에서 놓여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땅에 치료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과 힘을 쏟으신 것이 병 고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마 4:23~24).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돌보시고 고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붙들고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주님께 맡기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치유와 회복,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날마다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6.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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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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