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7월 20일(토) - 지상명령
  • ◎ 말씀 : 마 28:19~20 ◎ 찬송 : 505장(통 268장)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가장 중요한 말을 남기곤 합니다.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셨고,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대 위임명령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예수님이 4가지 명령(가라, 제자를 삼으라, 침례를 베풀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을 하시는 것처럼 번역되었지만, 원어 성경에는 ‘제자를 삼으라’는 한 가지 명령만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로서 보내심을 받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나요? 주님의 지상명령에 내 삶의 실천들을 비추어 확인해 봅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의 모든 행위가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19일(금) - 위기와 찬양
  • ◎ 말씀 : 시 34:1~3 ◎ 찬송 : 370장(통 455장)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도망갔지만 그곳에서도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다윗은 문짝을 긁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흘리기도 하는 등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국 자신을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을 항상 송축하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문제와 고난의 연속이고,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인지조차 불확실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문제와 위기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반드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며 하나님만 찬양하는 성도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18일(목) - 용서받은 자가 누리는 기쁨
  • ◎ 말씀 : 시 32:5~11 ◎ 찬송 : 369장(통 487장) 시편 32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사지로 내몰아 죽인 죄를 참회하며 쓴 시입니다. 이 시는 일반적인 참회시와 달리 이미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다윗이 기쁨에 겨워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죄를 지은 후의 태도입니다. 죄를 범하고도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양심을 채찍질하시기 때문에 심령이 메말라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속히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죄에서 멀어지게 하시고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한없는 용서를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08) 삼손
  • 블레셋을 물리친 괴력의 사사
    유혹에 빠져 성령 떠나게 돼 성령 충만이 중요한 이유 알려줘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한 삼손은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기독교가 아닌 사람도, 어린 아이도 삼손의 이야기는 알고 있다.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들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해 그려 걸작을 남겼고, 렘브란트 또한 삼손과 관련해 두 작품을 남겼다. 또한 삼손의 이야기는 오페라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사기 13~16장에 삼손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 동안 통치를 받고 있을 때 태어났다(삿 13:1∼5). 그의 아버지 마노아는 이스라엘 단 지파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임신하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삿 13:5)고 말해 주었다. 마노아는 아내가 아들을 낳자 ‘태양과 같다’라는 의미를 담아 삼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던 삼손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힘이 매우 강했다. 삼손은 블레셋에 의해 억압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웠고,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또한 그는 블레셋의 사원을 파괴하고 군대를 물리쳤다. 하지만 삼손은 욕망에 빠져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사사기 16장에는 삼손의 가장 유명한 일화이자 죄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하게 된 그의 비극적인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됐다. 블레셋 방백들은 삼손의 놀라운 힘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들릴라를 돈으로 매수하여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게 했다. 삼손은 들릴라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결국 머리가 밀리면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만다. 삼손의 비밀을 알게 된 들릴라는 자기 무릎에서 삼손이 잠든 때에 그의 머리털을 밀어버렸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었고 성령이 떠나갔다. 하나님의 사람인 삼손이 나실인의 율례를 범하자 성령이 떠나 더 이상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이 뽑힌 채 놋 줄에 묶여 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야 삼손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야훼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라며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고,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생포한 것을 기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리고 죽었다. 그 결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이 떠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 2024.07.05 / 이미나 기자

    (107) 에바브로디도
  • 바울에게 충성한 믿음의 사람
    사명 위해 헌신한 빌립보교회 성도 바다를 가로지르면 1200㎞, 육로로 이동하면 2000㎞ 대략 서울에서 대만까지의 거리를 육박하는 선교 여정을 다녀온 한 성도가 있다. 빌립보교회의 성도 에바브로디도이다. 그는 빌립보서에 딱 2번(2:25, 4:18) 언급된다. ‘사랑스럽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에바브로디도는 성경에 언급된 횟수와 달리 빌립보교회와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충성된 믿음의 사람이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 중인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자이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로마 제국에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빌 1:12~13) 선교 후원금 전달자이자 위로자로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관계가 깊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뎠는데 그 도시가 바로 빌립보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로 인해 자결하려는 간수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됐고 유럽 땅에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교회를 세우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당시 빌립보교회가 있던 마게도냐에서 로마까지의 거리는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나홀로 가는 길이 두려웠을 법도 했지만 기꺼이 선교의 길에 나섰다. 치안이 열악해 선교에 필요한 재정과 재원 강탈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협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고 어떠한 해도 입지 않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런 그를 바울은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너희 사자’ ‘내게 쓸 것을 돕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동역자로서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얼마나 충성된 주님의 자녀인지 알려주고 있다(빌 2:25). 하지만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서 다시 빌립보교회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얼마나 로마에 체류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을 돕다 그만 병에 걸리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에바브로디도가 오랜 여정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옥바라지를 하면서 로마에 돌고 있는 열병에 전염됐다는 의견도 있다. 에바브로디도는 아픈 와중에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염려할까 근심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30)라고 말하며 에바브로디도가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설명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에바브로디도의 행적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걸고 사역에 임하는 선교사들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간과 물질, 마음을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헌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는 선교사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 2024.05.31 / 금지환 기자

    (106) 입다
  • 암몬과 에브라임 무찌른 입다
    잡초 같은 삶에서 아홉 번째 사사로 이스라엘의 아홉 번째 사사 입다는 길르앗 유지와 무명의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 많은 핍박을 받았다. 이복형제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이스라엘 변방에 있던 돕으로 떠난 입다는 타고난 언변과 지도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두목 노릇을 하며 약탈을 일삼는 부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했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청산하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발탁되는 사건을 맞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힌 암몬이 작정하고 땅을 빼앗기 위해 길르앗에 쳐들어온 것이다. 암몬을 막아낼 방법이 없던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다는 장군의 지위와 승전 후 영구적인 지도권을 자신에게 보장할 것을 장로들에게 요청했다. 장로들에게 약속을 받은 입다는 암몬을 무력으로 상대하기 전에 역사적인 근거를 암몬 왕에게 제시해 싸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암몬 왕은 입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 상황으로 볼 때 입다는 고향을 떠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제안을 거절한 암몬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암몬은 전쟁을 치뤘고 하나님께서 입다의 손에 암몬을 넘겨 주셔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다는 전쟁에 임하기 전 하나님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영접 나온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라는 서원을 했다.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하나뿐인 딸이었다.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지만 하나님을 향해 서원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야훼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삿 11:35). 평소 길르앗 사람들을 업신여겼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승전하고 돌아온 입다에게 ‘암몬과의 전쟁에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 ‘길르앗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입다는 에브라임의 모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워서 승리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퇴각하는 요단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했다.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나루턱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하게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이 되지만 당시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4만2000여 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찾아내 죽였다. 입다는 암몬과 에브라임을 격퇴해 이스라엘을 구하고 무력을 앞세우기 보다 싸우지 않도록 제안하는 지략을 가졌지만 경솔한 서원으로 무남독녀를 잃게 됐다. 입다를 통해 배경도 없고 연약한 삶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감정에 이끌린 서원으로 괴로운 마음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 2024.05.03 / 박찬웅 기자

    선교 열전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13) 코리 텐 붐 여사
  • 전 세계에 용서의 복음 전한 위대한 전도자
    나치 독일로부터 800여 명의 유대인 구출하고 전쟁 후유증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전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전쟁을 일으킨 당시 나치 독일은 도시 곳곳에서 유대인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까지도 학살했다. 이때 죽음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도운 사람이 바로 네덜란드의 전도자 코리 텐 붐 여사이다. 코리 텐 붐 여사는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교육을 받아온 그녀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을 도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 난민들을 숨겨주고 탈출하는 일을 도왔다. 당시 나치 독일 정권이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이때 텐 붐 여사가 탈출시킨 유대인은 8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944년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앞두고 독일 나치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발각돼 그녀의 일가족이 체포됐다.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이후 나치 수용소에 수감 된 그녀는 열흘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그 누구보다 가장 많이 의지했던 아버지의 소천 소식에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였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몰래 들여온 성경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수용소에서 언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텐 붐 여사는 매일 밤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수감자들과 군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절망이 드리운 수용소에 복음은 한 줄기 희망이 됐고 수감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기적적으로 석방된 그녀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이 회복할 수 있는 재활센터를 설립했다. 텐 붐 여사는 가족과 친척을 잃은 고아,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그리고 전쟁 중 독일과 협력했던 실직한 자국민들까지도 센터에 입소시켰다.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음을 실천한 것이었다. 코리 텐 붐 여사하면 널리 회자 되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한 교회에서 용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나왔는데 강제수용소에서 언니 베시를 고문했던 악랄한 간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텐 붐 여사는 그를 본 순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를 용서하게 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전한 텐 붐 여사는 그녀의 삶의 여정이 담긴 『주는 나의 피난처』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은 그녀는 1983년 4월 15일 91번째 생일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2022.10.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로뎀 나무 아래서
  •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열왕기상 19장 4~8절) 부정과 비판의 말로부터 말씀과 기도로 마음 지키고 십자가 밑에서 새 힘 얻어 주님 주신 사명 감당해야 태초에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그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실 때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라는 계명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쉼 없고 피곤한 인생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날마다 누리고 이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1. 부정적인 말에 무너진 엘리야 북이스라엘 아합왕 때 사역했던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850명과 맞섰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나님의 불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우상 숭배자들을 모두 결박하여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다음 날에는 그를 똑같이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 19:2). 방금 전만 해도 담대하게 우상 숭배자들을 진멸했던 엘리야였는데 이세벨의 이 말을 전해 듣고 엘리야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광야로 도망가 하나님 앞에서 죽기를 자청했습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왕상 19:3~4). 이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도 피곤하고 지칠 때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에 특히 마음을 잘 지킬 것을 권면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부정적인 이야기와 비판적인 이야기에 우리 마음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듣더라도 목표를 향하여 가던 길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음성에 귀를 닫고 우리를 살리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는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마음을 지키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로뎀 나무 아래 주저앉은 엘리야 엘리야는 이세벨로부터 도망하여 브엘세바까지 갔다가 다시 하룻길을 더 들어가 로뎀 나무가 있는 한 장소에 다다랐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왕상 19:4).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절망하여 기도하다가 그만 쓰러져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쓰러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일으켜 주시고 음식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왕상 19:5~6). 엘리야는 천사가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천사는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여 그가 먹게 하였고, 엘리야가 회복하도록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몸과 마음에 새로운 힘이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피곤과 절망에 지쳐 누웠던 로뎀 나무 아래를 쉼과 회복의 자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갈보리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쉼과 안식을 누리게 하는 로뎀 나무 그늘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절망과 고통, 아픔과 근심, 죽음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인생의 무거운 짐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러므로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인생의 무겁고 곤비한 짐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안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지쳐 쓰러진 영혼을 위로하고 돌봐줌으로써 그가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힘든 상황에 있는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쳐 꿈과 희망을 나누어 주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다시 사명자의 길 간 엘리야 하나님의 손길과 양식으로 다시 힘을 얻어 일어난 엘리야는 40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8). 그가 호렙산에 도착하여 그곳 굴에 머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그는 그곳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새로운 왕과 선지자를 기름 부어 세워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엘리야가 낙심하여 로뎀 나무 아래에 왔을 때, 그리고 40일을 더 걸어서 호렙산에 왔을 때도 그는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넌 혼자가 아니다. 이스라엘에 준비된 7000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이렇게 우리가 인생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믿음과 기도의 동역자들을 우리 곁에 보내어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항상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주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적을 베푸시며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약함은 주님 안에서 강함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십자가 그늘 밑에서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난 우리에게 주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사명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치고 힘들 때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주위의 상처받고 쓰러진 이웃들에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섬김과 위로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7.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
  • “그들이 이르되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야훼께 복을 받은 자니라” 창세기 26장 28~29절 일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헌신을 통해 믿음으로 순종하면 삼중축복의 은혜 누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크고 귀한 복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삶의 모든 면에서 참된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삶을 살펴보면 그가 한평생 복 받은 인생을 산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가서 모리아산에 도착한 후 이삭을 결박해서 번제로 바치고자 했습니다. 이때 이삭은 20대 청년으로서 100세가 훌쩍 넘은 아버지의 손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기 아버지의 결단에 무조건 순종해 순순히 제물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던 찰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말리시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 대신 번제할 양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만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드렸던 이삭의 순종과 헌신도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헌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자신을 바쳐 영원한 제사를 이루심으로 인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이처럼 진정한 헌신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기도와 예배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나아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5). 이렇게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인정해 주시고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 헌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 이삭은 단번에 자신을 드려서 한평생 큰 복을 받았습니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창 24:60). 하나님은 이삭이 현숙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될 리브가를 만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해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는데 야곱은 장차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물질의 복도 넘치게 받았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 26:12~13). 흉년이 들어 수확을 많이 거두기 힘든 시기에도 하나님은 이삭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삭이 100배의 소출을 거두어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삭은 땅을 파면 우물이 터져 나오는 놀라운 복도 받았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야훼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 26:22). 아프리카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물을 파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맥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땅을 몇 번씩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우물을 파는 것은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삭은 땅을 팔 때마다 우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우물을 거주민들에게 여러 번 양보하고도 다시 판 우물마다 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삭과 동행하여 주셔서 이삭은 가는 곳마다 범사가 잘되고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은 이삭 이삭은 삶의 최우선 순위를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두었습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야훼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창 26:23~25). 그는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솟아 나온 것도, 농사를 지을 때 100배의 소출을 얻은 것도, 예배하는 그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을 목격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삭과 평화롭게 지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야훼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 26:28~29).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세상 사람들이 먼저 와서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가 되면 주변 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 북한과도 평화통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삭처럼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었습니다. 그는 노예해방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남북전쟁까지 치러야 했습니다. 초반 전황이 매우 불리했음에도 그는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명언을 남기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결국 전쟁에 승리해 노예제도를 폐지할 수 있었습니다. 생전에 그는 전쟁 중에 언제든지 자신이 암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전쟁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습니다. “만약 내가 암살자의 손에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분명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노예해방이라는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며 참된 헌신을 드리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일 가운데 형통의 복을 누리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인도하셔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예배와 기도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께 우리 삶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을 믿음으로 이뤄나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3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꿈꾸는 인생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사도행전 2장 17~18절) 거룩한 꿈을 꾸며 주야로 말씀 묵상할 때 형통의 복을 받고 온 세상에 하나님 영광 드러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거룩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꿈은 성령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성령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 땅 가운데 실현되도록 역사하십니다. 1. 성령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800년 전 요아스 왕 시대에 활동했던 요엘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이 믿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8). 이 예언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던 날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음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성령의 오심을 선포했습니다(행 2:17~18). 이때로부터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20세기 초 LA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오순절 성령 운동은 불과 110년 만에 온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현재는 세계 오순절 운동에 참여한 숫자가 6억 8000만명이나 됩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의 쾌락에 빠지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세상의 모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으로부터 승리해 나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거룩한 꿈을 꾸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성령의 사람들, 꿈꾸는 사람들은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2000년 전 사도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해당하는 아시아 쪽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고자 하여도 성령이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행 16:6~7). 그러던 중 그들이 드로아에서 머무는 어느 날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였는데 그것은 유럽의 마게도냐 지역 사람이 나타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라고 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성령이 보여주시는 환상 가운데 꿈을 품고 선교의 발걸음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겼는데, 이후 그들의 선교를 통해 온 유럽이 복음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을 태우고 빌립보로 건너갔던 그 배가 바로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배였으며, 유럽 문명사의 미래를 안고 가던 배였다.” 미국에 흑인 차별이 심했던 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거룩한 꿈을 꾸었습니다. 1964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한 유명한 연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연설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의 인권이 존중받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살아갈 날이 곧 다가올 것을 꿈꾸었습니다. 놀랍게도 45년 후에 그의 꿈이 이루어져서 미국 역사 최초로 흑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거룩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꿈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 크리스천들의 삶의 기준인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그러기에 우리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곧 성령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품는 일의 기초가 됩니다. 꿈을 우리 삶에 구체화하기 위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 때 꿈이 우리 내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자주 문제와 어려움에 빠지고 시험에 드는 이유는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과 뜻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자신의 감정 때문에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칭함을 받던 모세도 단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림으로 인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12).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닌 말씀의 종이 되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시편 1편은 복 받은 인생에 대해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형통의 복은 신명기 28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 우리는 너무나도 짧은 인생길을 살고 있지만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써 성령 충만해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고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을 받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날마다 성령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꾸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룩한 꿈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복도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4.06.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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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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