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5월 3일(토) -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 말씀 : 빌 3:8~9 ◎ 찬송 : 94장(통 102장) 바울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고 깨달은 지식이었습니다. 바울은 과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동안 열정을 다해 좇던 삶의 목적과 가치가 배설물처럼 여겨지는 큰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 변화를 통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야말로 진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꿀이 달다는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맛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꿀의 달콤함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그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사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그분께 드리는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주님을 체험함으로 최상의 가치가 예수님께 있음을 깨닫는 우리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2일(금) - 사랑의 표현
  • ◎ 말씀 : 빌 1:3~8 ◎ 찬송 : 85장(통 85장) 바울은 그가 선교를 시작할 당시부터 교류했던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의 머리말에서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기쁨으로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도들에게 잘 보여서 호의를 얻기 위한 아첨의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친밀한 사귐은 표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거나 주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사랑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담아두지 않고 겉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처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나아가 그 사랑의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이웃과 더욱 깊은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와 이웃을 바라보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1일(목) - 고난 속에서 굳건해지는 믿음
  • ◎ 말씀 : 왕상 17:24 ◎ 찬송 : 370장(통 455장) 사르밧 지역에 한 과부가 살았습니다. 그 과부는 아들과 함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엘리야가 그 집에 찾아왔습니다.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음식을 준비한 과부는 음식이 계속해서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과부는 엘리야를 원망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로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는 엘리야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름 없는 한 과부의 속사정까지 헤아리고 도와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실 리가 없습니다. 고난과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 오늘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④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하나님의 의를 찾을 때 영적 허기 채워지고 만족 얻어 산상수훈의 팔복 중 네 번째 말씀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받는 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배고픔과 목마름은 인간 생존에 중요한 요소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육체적 갈망을 넘어서 영적인 갈망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영적인 만족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의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신 규율과 정의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법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의 도덕적 기준은 상황에 따라 지나치게 높거나 이중적이기도 해서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상실감을 경험하고 그 결핍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자연으로 들어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단단한 마음을 갖고 정도를 걷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수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왕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고 그 인도하심을 간구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1~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하나님을 갈망하며 의를 구했던 다윗도 인간적인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해 깊은 자책과 회개를 경험했다. 양치기 소년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하나님의 길과 인간적인 선택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지 성경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먼 길을 떠나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위시리스트에 적어두기도 한다. 육체적인 갈급함은 쉽게 느껴지지만 영적인 갈급함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의 영적 상태는 지금 배부른 상태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열망하는 마음이 첫 번째요, 그 길을 잊지 않고 의를 실천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습관’을 기르는 자가 아닐까. 이렇게 하나님의 의로 삶을 채워 나갈 때 주님이 우리의 영적 허기를 채워주시고 진정한 만족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 2025.04.04 / 김주영 기자

    ③ 온유한 자
  • 땅을 기업으로 받을 복이 주어져 인내와 겸손으로 예수의 성품 품어야 마태복음 5장에 명시된 팔복 중 세 번째는 온유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한 내용이다. 성경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하고 있다. 온유한 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순종하고 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동물 중 양 같은 사람이다. 양은 순박하고 온순해 떼를 지어 살면서도 동료 간 우위다툼을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모세가 온유한 자로 민수기 12장 3절은 모세에 대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누구보다 온유의 대명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이사야 53장 7절은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온유의 주님을 전하고 있다. 팔복에는 이처럼 온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땅(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시편 37편 7~11절은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 온유한 자가 취할 태도는 인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연단을 받을 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좌절이 다가올 때 온유함을 가지고 야훼 앞에서 참고 기다리라 말씀하신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않으면 온유한 자를 위해 하나님이 맹수로부터 양을 보호하는 목자가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며 푸른 초원을 맘껏 뛰어다닐 수 있도록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2~13)라는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이 같은 마음의 태도를 갖추고 살아갈 때 온유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있고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025.03.07 / 오정선 기자

    ② 애통하는 자
  • 지금은 애통하며 기도해야 할 때 자신의 부족함 탄식하며 회개해야 하나님 위로 얻고 절망이 희망으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산상수훈의 팔복 중 두 번째 복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애통하는 자’란 자기 자신의 부족과 죄를 계속해서 회개하고 탄식하는 사람을 말한다. 모든 일에 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탓으로 여기고 탄식하며 슬퍼하는 것이 애통이다. 자신의 믿음이 약하고 부족한 것을 고백하며 애통하는 사람은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게 된다. 또한 믿음이 굳건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성경을 읽고 말씀에 순종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애통하여 마음이 상하고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위로를 주신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가슴을 치고 애통하고 회개할 때 용서와 구원과 성령 충만의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죄를 짓고 세속을 쫓아 사는 것을 애통하고 통탄하게 여기고 이것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올 때 그 마음에 하늘나라의 평강과 위로가 채워진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한 면을 바라보고 애통해야 한다. 우리의 죄와 불의함을 애통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신앙생활 뿐 아니라 자기의 부족을 애통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발전도 있다.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애통해 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부족과 죄로 인해 애통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가 다 청산되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위로를 주신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신다. 이 세상에서 애통하는 자에게 주어질 위로는 오직 십자가뿐이다. 우리가 삶의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는 말씀대로 애통함을 갖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애통하게 여기고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큰 위로가 다가온다. 삶이 변화되고 어려움과 고난에서 놓여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위기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애통하며 기도해야 할 때이다. 네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얻고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다.
  • 2025.01.31 / 이미나 기자

    선교 열전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15)로티 문(Lottie Moon) 선교사
  • 일평생 중국 복음화 위해 헌신한 선교사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일평생 수 만명의 중국인에게 찬양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한 독신 여성 선교사가 있다. 미국 남침례교에서 파송한 로티 문이다. 1840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티 문은 어릴 적부터 침례교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로티의 본명은 샬롯 딕스 문(Charlotte Diggs Moon)이다. 미국 버지니아 알베말 출신인 로티는 18세가 되던 해에 브라더스 목사의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했다. 이후 대학에서 성경 공부와 기도 모임을 주도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버지를 일찍이 여읜 로티는 당시 남녀 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적 배경에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등교육까지 받아 미국 남부에서 가장 학식이 높은 여인이 됐다. 1873년 중국에서 학원 사역을 펼치고 있었던 선교사 부부를 돕기 위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로티는 평일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전도에 매진했다. 로티는 1885년 외국인이 한 명도 없고 외국인 보호 조약과 거리가 먼 지역인 핑투라는 곳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현지인 복음화에 앞장섰다.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교지에서 관계 전도를 이어갔던 그는 현지인과 같은 옷을 입고 활동하며 마을에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핍박이 거셌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에서 로티가 가르치는 성경을 비난하고자 참석했던 중국인 리 쇼우팅이 성경을 접하며 개종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리 쇼우팅은 사도 바울처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북부를 다니며 전도하고 1000여 명에게 침례를 베풀며 귀하게 쓰임 받았다. 38년간 중국에서 헌신한 로티의 노력으로 16개 교회와 56개 학교가 세워져 많은 학생을 배출하게 하는 열매를 맺었다. 또한 남성 전도사 42명, 여성 전도사 14명의 현지인 제자를 세웠고 이들을 통해 2000여 명 현지인이 침례를 받았다. 1912년 로티는 미국 남침례교의 재정 상황의 악화로 더 이상 선교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거기에 기근까지 들어 아이들이 굶주리게 되자 자신의 식사를 나눠주며 본인은 금식을 하다 결국 25㎏까지 몸무게가 줄었다.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지만 미국으로 가는 길에 72세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추리아 호에서 소천을 받았다.
  • 2024.02.23 / 금지환 기자

    (14) 서만수 선교사
  • 한국 교회 최초 인도네시아로 파송 된 선교사
    정글 지대 순회하며 현지에 384개 교회 세워 현지인 사역자 양성 위해 스틴신학교도 설립 한 평생 인도네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주의 종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384개의 교회를 세운 그는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로 파송한 서만수 선교사이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난 서만수 선교사는 6·25 전쟁 중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남한에서 주의 종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다 1970년 9월 아내 정소라 선교사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았다. 그는 파송 1년 만에 한국인과 인도네시아 현지인 25명과 함께 최초의 한인교회인 자카르타한인연합교회를 개척했다. 교회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지 않았는데 한인들은 이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다. 한인 공동체가 형성되자 그는 한인들의 고민이었던 자녀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한인 유치원을, 그 이듬해에는 자카르타 한인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 선교사는 한인교회 사역과 동시에 정글 지대를 순회하며 각 지역에서 전도집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다. 차가 갈 수 없는 오지 촌락은 말과 당나귀를 타고 순회 선교를 이어갔는데 그는 식인 풍습이 남아있는 수마트라와 이리얀자야 지역을 다닐 때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했다. ‘녹슬어 없어지기보다 닳아 없어지겠다’는 조지 휫필드처럼 그는 인도네시아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그런데 1997년 그의 선교 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글 순회 사역의 후유증으로 근무력증을 진단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순회 선교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서 선교사는 “선교사는 아프다는 것을 피난처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귀국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외국인이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는 제한이 많았다. 이에 서 선교사는 정부와 마찰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지인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틴(STTIN) 신학대학교를 설립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신학교육과 교회개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전도종족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에서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선교하던 서만수 선교사는 2009년 9월 16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소천 받았다. 그는 생전에 자카르타에서 추진하던 종합대학교 건립 부지 근교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인도네시아에 3000개 교회 개척을 목표로 삼았던 서만수 선교사. 우리는 그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 그가 이룬 인도네시아 선교가 앞으로도 계속해 발전해 나아가도록 힘써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 2023.07.21 / 금지환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부활의 은혜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20장 19~23절) 예수님 부활로 구원받은 우리 죄 용서하신 은혜 기억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 전하며 작은 예수 되어 사랑 나눠야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이자 기쁨과 감격의 사건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전하신 본문 속 말씀에는 모든 믿는 자들을 향한 위로와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1.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닫은 채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 21). 예수님이 주신 평강의 말씀은 당시 절망에 찼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인류를 향한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평강 곧 ‘샬롬’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닌 영, 혼, 육의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전인적으로 회복되길 원하십니다.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이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참되고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두려움과 불안의 뿌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주신 평강은 십자가를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값지고 소중한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2.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신 후에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이 모습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은 생명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는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성령님의 임재 없이는 누구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고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비로소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권능으로 우리는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우리 삶에 맺히게 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님과 동행하는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며 머무는 곳마다 예수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 땅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이자 부활 메시지의 완성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23).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고 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값없이 용서받은 자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기꺼이 용서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에 강물처럼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마음에 담고 살아갑니다. 상처는 미움과 증오를 낳고 결국 우리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의 모든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싸움은 상대를 용서할 때 끝나며 용서를 통해서만 참된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야훼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 25:21~22).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도 그 안에 용서에 대한 말씀을 담아 두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누군가를 용서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 삶에 임하고 기도의 응답이 다가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못 박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모든 인간은 연약하기에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지은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하고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음속의 모든 미움과 원한을 내려놓고 기꺼이 용서함으로 부활의 은혜 안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강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용서하는 삶을 살며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나누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
  •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1장 1~5절) 온 인류 죄 대신하기 위해 희생 제물 되신 예수님 십자가 사랑 기억하고 겸손히 이웃 섬기며 살아야 부활주일을 한 주 앞둔 주일을 ‘종려주일’이라 부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앞두고 겸손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종려주일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겸손과 순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겸손의 종으로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히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는 이 일을 예언했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세상의 왕들이 자신의 권세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행렬로 입성하는 것과 달리 예수님은 가장 낮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애는 온유와 겸손 그리고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겸손보다 교만이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던 사람도 직분을 받은 후에는 그것을 마치 계급장처럼 여겨 교만해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은 크리스천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모습이기에 성도는 늘 자기의 교만과 고집을 깨뜨려야 합니다. 언제나 남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며 남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은 섬김의 모습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그들에게 겸손과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은 평생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섬기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겸손은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하게 섬김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나귀의 주인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구 벳바게에 도착하셨을 때 두 제자에게 마을로 들어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귀를 내어드린 이름 없는 나귀 주인의 순종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주께서 쓰시겠다”라고 전했을 때 그는 아무런 질문도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유를 묻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삭 대신 예비하신 숫양을 받으시고 이삭을 통해 자손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는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형통한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우리가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부어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절대 순종,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8). 예수님이 보여주신 순종의 모습은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큰 모범이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마치신 후 가룟 유다가 앞장서 데리고 온 무리에게 붙잡히셨습니다.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마 26:47). 그 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받으시며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한마디 변명도 없이 침묵으로 고난을 견디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마 27:1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히 9:28).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는 완전히 무너졌고 그로 인해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우리 삶에 큰 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삼중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권력과 지위를 얻으면 남을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를 기억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고 세상 또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고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겸손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섬김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십자가 신앙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 안에 예수님 모시면 세상의 수많은 유혹 이기고 승리하는 삶 살 수 있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평생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우리가 십자가 신앙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a).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이끌리며 이기심과 분노, 미움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이는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본성을 따르려는 옛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먼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라는 말은 우리의 옛사람 곧 육에 속하여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과거의 옛 모습이 죽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더라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옛사람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옛사람은 우리로 미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며 결국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철저히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고백하며 이렇게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그는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서던 사람이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철저히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 나갔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이렇게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은 사도 바울은 가문이나 지위, 학식 등을 자랑거리로 삼지 않고 겸손히 사역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어떤 감정도, 자기주장도 없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분노와 다툼, 여러 문제가 우리의 삶에 틈타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이제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사시게 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b). 우리가 주인이었던 이전의 삶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 자리에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렇게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실 때 염려와 두려움은 떠나가고 하나님의 평안과 은혜가 우리 삶에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신 삶은 더 이상 죄의 유혹이나 부정적인 생각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죄의 종이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삶의 주관자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30). 침례 요한의 고백처럼 우리가 예수님만을 높여드릴 때 연약했던 옛사람의 모습은 우리 안에서 사라지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가득한 삶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c). 사도 바울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와 문제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는 세상 속의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우리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는 죄 씻음을 받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은 우리 믿음의 중심이자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맡겨진 삶의 자리에서 모든 일을 감당할 힘을 얻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을 이루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상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함께 하시며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절대 긍정의 보고를 전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 믿음으로 온 유럽을 복음화시키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부정적인 마음과 불신앙을 버리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힘입어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을 섬기는 작은 예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거듭나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자아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4.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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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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