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담임목사 주일설교
조용기 원로목사 주일설교
오늘의 묵상
5월 9일(토) -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 ◎ 말씀 : 왕하 16:2~4 ◎ 찬송 : 546장(통 399장) 오늘 말씀은 남유다의 아하스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살지 않았을 때 그 불순종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방의 가증한 풍속을 본받아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보다 이방의 산당과 제단을 의지했고 심지어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악행까지 저질렀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 왕들의 묘지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대하 28:27).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시며 모든 행동을 아십니다. 어떤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5.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8일(금) - 복음을 전하는 삶
  • ◎ 말씀 : 살전 2:7~9 ◎ 찬송 : 285장(통 209장)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여정을 떠올리며 자신이 그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섬겼는지 고백합니다. 그는 자녀를 돌보는 유모처럼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그들을 섬겼고 공동체에 짐이 되지 않으려 밤낮으로 수고를 멈추지 않는 지극한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에게 전도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그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일은 가장 소중한 사명입니다.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5.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5월 7일(목) -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 ◎ 말씀 : 왕하 9:6~9 ◎ 찬송 : 213장(통 348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엘리사의 제자를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심으로써 그를 북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셨습니다. 예후의 등극은 개인의 야망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 아합 가문의 뿌리 깊은 죄악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부르심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주님의 도구로 쓰이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소명을 다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온전히 실현하는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거룩한 도구로 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5.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9. 다시 오실 예수님
  • 재림 신앙의 의미와 성도의 자세 말씀과 기도 충만,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그네처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이며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영원한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1. 재림에 관한 성경의 증언 ‘재림’이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환상 가운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단 7:13~14),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한다. 신약성경은 더욱 명백하게 재림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제자들에게 친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승천 당시 천사들도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선포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 재림의 목적과 그때 일어날 일들 예수님은 세 가지 목적으로 재림하신다. 첫째, 구원받은 성도들을 예비하신 하늘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다(요 14:2~3). 둘째,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기 위해 오신다(고전 15:52). 셋째,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된다. 먼저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7년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그동안 지상에서는 적그리스도의 7년 환난이 벌어진다. 환난이 끝나면 예수님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어 아마겟돈 전쟁과 최후 심판을 통해 악을 멸하시고, 천년왕국을 여신다. 이후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지고, 구원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계 21:4).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예상치 못한 때에 임할 것이다(벧후 3:10).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쟁과 기근과 지진, 사랑이 식은 세상, 복음의 땅 끝까지 전파 등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 가지 자세로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구하는 삶이다. 둘째,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종말의 징조 가운데 하나인 만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한다. 셋째, 천국 소망을 품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재림 신앙 때문이었다. 우리의 소망을 이 땅에 두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두자.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의 어떤 고난과도 비교할 수 없다(롬 8:18).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2026.05.01 / 오정선 기자

    8.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 십자가에서 완성된 치유의 은혜 오늘날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저 천국을 소망함과 동시에,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경에 나타난 동일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대하고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질병까지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그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우리는 질병에서 나음을 얻고,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질병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성경은 그 근원이 죄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질병과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질병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한센병, 중풍병, 수종병, 열병, 혈루증, 간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자, 말이 어눌한 자, 손 마른 자, 다리를 저는 자, 귀신 들린 자 등 각양각색의 병을 예수님은 치유하셨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때 치유가 임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우리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육신의 병, 마음의 병, 환경의 병, 우리의 전인적인 영역을 모두 치료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픈 형제, 자매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하고 병 고침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믿음으로 병이 나은 모습을 바라보며 병이 나았다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치유가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치유는 복음 전파를 위한 표적이다. 사도행전에도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는데 이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이처럼 치유와 기적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일 뿐, 그 자체가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별히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신앙을 품은 순복음 성도들은 오늘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치유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고침 받은 자의 삶은 그 자체로 복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치유 경험과 간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고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줄 믿는다. 주님이 주신 강력한 무기인 보혈의 능력을 힘입고, 날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해 승리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 2026.04.03 / 금지환 기자

    7. 좋으신 하나님 신앙
  • 사랑과 공의의 완전하신 ‘좋으신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믿고 믿음의 전진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동행하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이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타난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성품이다(요일 4:8). 하나님의 사랑은 일반적인 인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흔들리고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뤘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확증된 것이다(롬 5:8). 또한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하시고, 모든 일을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신 32:4). 하나님의 공의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아모스 선지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불의를 행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비판하며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통로가 되길 원하신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며, 우리의 믿음은 삶의 선한 열매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전지성, 전능성, 편재성, 영원성, 불변성 등의 속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보호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절대주권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데, 이 섭리를 통해서도 우리를 향한 좋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고난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절망하면 안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부모가 자식에게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마 7:11).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종종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된다. 다윗의 인생은 고난과 문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 23:6)라며 주님이 늘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렇기에 ‘좋으신 하나님 신앙’을 가진 순복음의 성도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음의 전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좋으신 하나님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고 복 주시는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김주영 기자
  • 2026.02.27 / 김주영 기자

    선교 열전
    (18) 김창식 목사
  • 머슴 출신 한국인 최초 목회자 박해 속 복음 지키며 ‘한국의 바울’로 불려 한국 초기 교회사의 빛나는 별 중 한 사람인 김창식 목사는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의 목사가 됐다. 한평생 순회 전도인으로 살아간 그는 당시 선교사들의 회고록에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굳게 붙들었던 ‘한국의 바울’로 기록되어 있다. 1857년 황해도 수안군 성동면 생금리에서 태어난 그는 머슴살이를 하던 시절, 선교사들에 대한 괴소문을 접했다. 당시 “아이들의 간을 떼어 약을 만든다”, “눈을 빼어 만든 것이 카메라다”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북감리교 올링거 선교사의 집에 잡부로 취직해 선교사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행동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오히려 올링거 부부의 인격과 겸손한 삶에 감동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8년 4월 아펜젤러에게 침례를 받은 뒤 선교사들의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김창식 목사가 ‘한국의 바울’로 불린 가장 큰 계기는 1894년 평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인 박해 사건이었다. 이때 김창식도 잡혀가 죽을 지경의 고문을 받았으나, “나는 기독교가 옳다는 사실을 안 이상 기독교 신자로 살 것이며 나가서도 복음을 전하겠다”며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는 말씀과 함께 “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석방 직후 곧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평양은 격전지가 됐고 교회와 병원은 피난민들의 은신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창식은 홀 선교사와 함께 남아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홀 선교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김창식 목사는 평양 선교 전반을 홀로 맡아 감당했다. 이후 그는 노블 선교사와 함께 평양 이북 지역의 교회를 이끌었다. 거리와 산골을 누비며 복음을 전해 ‘길바닥의 목사’, ‘민중 전도인’으로 불렸던 그는 1901년 5월 서울 정동교회에서 한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사역 동안 김창식 목사는 48개 교회를 개척하고 전국 170여 교회를 돌보며 교파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순행 사역자로 전국을 누비며 목회에 헌신했다. 교인들에게 스스로 신앙을 세우고 전도하는 ‘자립·자전’ 정신을 강조했던 김창식 목사는 1929년 1월 29일 향년 72세로 소천 받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장 작은 자’라 칭하며 겸손과 헌신의 삶을 살았다.
  • 2025.08.29 / 금지환 기자

    (17) 존 로스
  •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으로 선교 토대 마련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하고 이후 신약성경 전체를 번역하는데 기여한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조선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스는 조선의 복음화를 꿈꾸며 한글 성경 번역에 자신의 젊은 날을 헌신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입학한 로스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비롯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공부했다.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로스는 “예수님은 너희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당연히 많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학생 시절 로스는 중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강연에 참석해 “중국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채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했다. 1872년 중국에 도착한 로스는 먼저 선교 중이던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길거리에서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나눠주며 전도를 시작했다. 로스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유창한 어학 실력을 갖추게 된 후에는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순회 전도를 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교적 표현을 이용해 기독교 교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고 현실에 지쳐 불교·도교 사원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당시 만주 지역에는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 러시아인, 일본인 등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주했다. 주변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을 알게 된 로스는 만주 지역에서 전도하며 머지않아 조선에도 복음의 문이 반드시 열릴 것을 확신했다. 그는 “조선인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한글 성경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않겠습니까?”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글 성경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번역에 힘썼다. 그는 당시 한문으로 된 성경은 이미 있었지만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을 통해 복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로스는 자신이 한글을 공부하면서 정리한 내용과 예문을 바탕으로 조선을 방문할 선교사들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 교재인 ‘조선어 첫걸음’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비록 그는 조선의 쇄국 정책과 기독교 박해로 조선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선과 가까운 중국 만주를 선교 거점으로 삼고 조선인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해 조선에 공식적인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도록 기틀을 마련한 선교사다.
  • 2025.05.23 / 금지환 기자

    (16) 말콤 펜윅
  • 초기 한국기독교 토대 마련 성경·찬송 번역하며 46년간 헌신한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은 국내에서 헌신하며 신약성경과 찬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선교사다. 찬송이 수록된 『복음찬미』, 전도를 위한 성경 구절을 모은 『만민됴흔긔별』 발간뿐 아니라 1919년에는 『신약젼셔』 를 출판했다. 캐나다인인 그는 26살 때 초교파 모임인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참석해 성경을 공부하던 중 인도 선교사로 활동한 로버트 와일더의 “사막에서 애타게 물을 찾으며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유리 주전자에 담긴 물이 아닌 오직 물이다”라는 간증을 듣고 선교사로 결단했다. 1889년 입국한 펜윅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며 250여 개의 교회를 세웠다. 펜윅은 장로교 조사 서경조와 동행하며 한국어를 배워 황해도 송천에서 ‘예수 사랑하심은’(Jesus Loves Me), ‘나는 참 기쁘다’(I am so glad) 찬송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해 소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마을의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성경 공부를 이끌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념을 갖고 개신교 선교부가 없는 원산으로 이동해 자립 선교의 토대 마련을 위해 농장을 운영했다. 1906년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한 펜윅은 다른 사람이 전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 정책으로 삼고 원산을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까지 소외된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교단의 목사와 전도사는 순회사역자가 되어 전국에서 전도 활동을 펼쳤고 교인들도 전도 현장에 투입돼 복음 전파에 앞장섰다. 펜윅은 전도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했고 가는 곳마다 사경회를 개최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집회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해 원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단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펜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교에 힘썼다. 복음 전파를 향해 기관차처럼 달려온 그는 원산의 자택에서 72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갔다. 말콤 펜윅은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이래 46년간 선교하며 어떤 교파에도 의지하지 않고 한국인 사역자와 함께 초기 한국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했다.
  • 2025.01.31 / 박찬웅 기자

    주일설교 요약본
    천국을 소유할 자
  •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태복음 18장 1~5절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높은 자리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 내가 꼭 필요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제자들의 관심 –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 18:1).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붙잡히시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소유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 안개 같이 잠시 있다 사라지는 세상의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한평생 개인의 유익과 만족만을 위해 살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아침 안개와 같이 금세 사라지는 세상의 것을 목표로 삼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는 높아지고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는 우리의 모습은 감춰지고, 오직 예수님만 나타나는 자리입니다. 사람의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바뀝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어도 기한이 다하면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영원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찬양하는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 복된 사람은 예배와 찬양에 힘쓰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느냐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불러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2~3).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는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람을 계수할 때 여자와 아이를 빼고 성인 남자를 위주로 세었습니다. 출애굽의 60만 명도, 오병이어의 5000명도 모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졌기에 소외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돌이키라’는 것은 마음을 온전히 돌이켜 행동까지 변화되는 진정한 회개를 의미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의와 노력, 지식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오직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해지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세상의 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높은 지위나 권력을 탐하지도, 이익을 위해 두 마음을 품지도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더 배우려고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그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더 큰 자가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교만과 탐욕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는 순수하게 충만한 기쁨과 감사가 넘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순수한 열정과 헌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는 제자들 앞에 어린아이를 세우심으로 영적 순수함을 회복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이제 우리는 순수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탐욕과 교만, 이기주의와 고집불통의 자아를 깨뜨려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어 회개하고 말씀 붙잡고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천국에서 큰 자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 우리는 대접받고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하늘나라의 법칙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막 9:35). “뭇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은 주님 앞에 겸손히 낮아져서 철저히 섬김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섬김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세상의 리더십이 다스림의 리더십이라면 천국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섬기는 자는 내 중심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허물을 비난하기보다 그를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섬김이 필요한 250만의 다문화 가족, 3만 5천의 탈북자 가족, 3만 천의 미혼모 가정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이 많습니다. 섬김과 겸손, 낮아짐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주님은 친히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수님을 높여 모든 만물이 그 발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6-11). ‘나’라는 교만을 버리고 한평생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낮아져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낮아짐을 기억하고 우리 역시 날마다 자신을 낮추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5.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 12~14절 악을 선으로 이기고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고 감사와 행복한 삶 살게 돼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의미 있고 보람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 우리는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여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들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우리는 죄와 허물투성이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하나님 앞에 긍휼하심을 받은 자로서 이웃에게도 긍휼함을 베풀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우리는 언제나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늘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따뜻하고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정의하며 가장 먼저 나오는 말씀이 오래 참음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 7). 성격이 급하면 할 말, 안 할 말을 다 하게 되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속상하고 답답하며 괴로워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용서하며 사는 삶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받은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남에게 준 상처에는 둔감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갈등과 다툼은 한쪽의 문제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지라도 그것을 내가 참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했기에 문제가 더 커진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좀 짓궂고 밉게 굴었어도 용서하고 풀어야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이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면 온 세상이 비방과 악의적인 댓글로 가득합니다. 자기가 당한 것뿐만 아니라 보고 느낀 것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비난하며 공격하는 문제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속상하고 괴로우면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께 다 맡기시길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9~20). 용서는 모든 갈등과 미움, 다툼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말씀 중 하나도 바로 용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또한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3). 이 시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미움과 아픔, 증오, 섭섭함과 속상함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이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는 최고의 치료제입니다. 3. 사랑의 사람이 될 것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은 사랑으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예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 위대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사람은 이기적이라서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사랑을 주고받지만 불편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돌아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무조건적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옷 입을 때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드리신 기도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랑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이는 마귀가 우리를 분열시키려 하기 때문에 우리가 힘써 사랑으로 하나 되고 화목하여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풍파가 다가와도 우리는 마음에 평안함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평안 가운데 날마다 감사하며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와 허물뿐인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옷 입고 용서를 실천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분열과 갈등의 세상 속에서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감사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4.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넘치는 감사
  •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장 5~7절 감사의 근원되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감사로 사명 감당할 때 하나님 우리 일생 책임지셔 감사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감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게 하고 상처 입은 과거를 치유하며 오늘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믿음, 소망, 사랑에 한 가지를 더하라고 한다면 감사를 더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가 풍성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넘치게 임합니다. 1. 믿음의 굳건함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골 2:5).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쉽게 시험에 들고 상처받아 넘어지는 것은 여전히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로 날마다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 6:1~2). 성경은 제자리걸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완전한 모습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의 근원이자 믿음의 주 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 낙심하며 실망하고 부정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지만 절대 희망이신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 되심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확실한 시대에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우상은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며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삶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에 우리는 바른길을 갈 수 있고 진리를 깨달으며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우리 삶의 중심에 주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주님이 주인 되셔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가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주님 안에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엡 5:17). 주님께 모든 일을 맡기면 주님이 이루어 주십니다(시 37:5). 우리가 감사로 나아가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해도 기도와 감사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일생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감사는 주님 안에서 행하는 삶의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3. 넘치는 감사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동안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1690년에 증기기관의 핵심 기술을 발명해 낸 프랑스 물리학자 드니 파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세 가지로 인해 늘 감사한다. 첫째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요, 둘째는 몸의 건강이요, 셋째는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감사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 몸의 건강 그리고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고 감사할 때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성경은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행위이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우리가 한평생 감사하며 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나에게 어려움과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요셉은 꿈을 꾼 후 13년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13년을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견뎠기에 주님이 그를 서른 살의 나이에 당시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로 높여주셨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굳건한 믿음으로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감사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한평생 넘치는 감사로 주님께 나아가며, 날마다 주님의 은혜와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4.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경 인물
    (113) 사랑의 사도, 요한
  • 요한복음 등 저서 통해 복음 전파 예수님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돼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이며 기독교에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제자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고 신약성경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을 썼다.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에서 어부로 지내던 중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바로 예수님께 달려가 제자가 됐다. 예수님을 따른 이 두 형제는 예수님께 사랑받는 열 두 제자에 속했지만 감정이 격발할 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소란을 뜻하는 의미의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실 정도였다. 요한은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었지만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급하고 폭력적이던 성격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됐다. 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했을 때에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갔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 중에 유일하게 그곳을 지킨 제자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맨 먼저 달려간 사람도 요한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에게 의탁하셨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극진히 모셨다. 초대교회 설립의 핵심 인물이었던 요한은 사도 바울에게 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라고 칭함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에베소에서 설교와 저술활동으로 보내던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시에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죄목으로 밧모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신약의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계시록을 저술했다. 사면되어 다시 에베소로 귀환한 그는 교회들을 지도하고 성경을 기록하며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 요한은 요한복음에 자기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던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늘 예수 그리스도였다. 우리 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강조하며 불신자와 믿는 자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했다. 그가 남긴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에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전도지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이 성경 구절 안에 사도 요한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겨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 2024.11.29 / 이미나 기자

    (112) 한나
  • ‘간절한 기도의 여인’ 표상 문제 앞에 탄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얻게 돼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괴로움을 극복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 한나를 통해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에브라임 산지 여로암의 아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다. 소실인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이름의 뜻인 ‘은총’과는 달리 자녀가 없었다. 매년 고통을 겪어야 했던 한나는 고통 중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통곡의 기도를 드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야훼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야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야훼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0~11). 한나가 주께 드린 기도는 처절한 절규였으며 가슴에 멍이 드는 탄식의 간구였다. 그런 한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한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성경 사무엘상 2장 1~10절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격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야훼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은 먼저 자녀를 두어 그동안 한나를 업신여겼던 브닌나의 교만을 꺾어주시며 가정의 질서 또한 바로 세워주셨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삼상 2:5).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 2:9). 한나의 고백적 탄원과 언약의 서원을 보면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몇 가지 교훈도 얻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헤아리신다는 것이다. 한나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응답을 얻을 때까지 기도했다. 또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의 절박하고 애끓는 기도를 드렸다. 기도 없이는 결코 응답을 얻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은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 신다. 자녀가 없던 한나는 브닌나의 업신여김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나가 간구할 때 ‘은총’을 허락하셨고 고난의 주인공에서 영광의 주인공으로 그 삶을 변화시켜주셨다. 셋째, 한나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기도의 깊은 통찰력과 겸손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사무엘을 낳은 후 자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자녀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다(시 127:3). 이 땅에 사는 동안 청지기 사명을 가지고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자라도록 욕심을 버리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며 한나와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 2024.11.01 / 오정선 기자

    (111) 안디바
  •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주님을 섬기는 일에 타협 없던 안디바 한 사람의 순교가 지역 변화시켜 소아시아 버가모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로 유명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갖은 이유로 타협하고 우상숭배를 할 때 단 한 사람, 안디바는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그는 뛰어난 석공이었지만 로마 황제의 신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놋 가마 위에서 순교했다. 안디바는 로마 제국의 명령을 거절한 대가로 철판 위에 산 채로 구워져 순교를 당했지만 버가모교회 부흥의 씨앗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높여주셨다. 안디바라는 이름도 ‘모든 사람을 반대하는 자’라는 뜻이다. 안디바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로마 관리들에게 당당했다. 그는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니 예수 외에는 내가 절하지 않겠노라”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순교를 통해 책망받던 초대교회 중 하나인 버가모교회가 변화됐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나온 삶을 끊지 못한 채 죄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던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순교를 보고 180도 달라졌다.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흔들리던 이들이 우상숭배로 만연한 지역에서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외치게 된 것이다. 버가모교회가 있는 지역은 해발 300m의 높은 지역에 있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탄의 권좌’라고 불리는 무려 12m나 되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과 로마 황제를 예배하는 신전도 있었다. 라틴 교부였던 터툴리안의 『순교자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안디바에 대해 알 수 있다. 당시 버가모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들은 할례, 음식에 대한 규제, 율법을 지키는 것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이지만 기독교인이 된 헬라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거리낌 없이 해 왔던 우상숭배, 성적인 문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한 삶을 지켜가는 것에서 갈등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당당히 하나님께 순종한 안디바의 신실한 믿음은 신앙이 흔들리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다. 생계를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타협하고 고난과 박해가 두려워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의지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를 기억하자.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 2024.10.04 / 박찬웅 기자

    예수님의 팔복
    ⑧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
  • 의를 위한 고난은 복된 길 산상수훈은 신앙생활의 핵심 천국 소망 갖고 믿음 지켜야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말씀이다. 기독교 윤리와 신앙생활의 핵심을 담고 있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도 불린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마지막 팔복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 가장 도전적인 말씀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는 말씀은 고난이라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늘의 상과 위로를 선포한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윤리적 정의를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한다. 인간의 행위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의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곧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어둠을 드러내는 의와 진리는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격려한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덧붙인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러한 복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증거다. 예수님 때문에 조롱받고 오해받는 그 길은 하나님이 그 위에 함께하신다는 확증이 된다. 베드로전서 4장 14절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씀한다. 세상에 빛과 소금되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가장 많은 핍박을 받으셨다. 빛은 어둠을 불편하게 하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 거부감을 일으킨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과 갈등하게 마련이고 박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열매인 것이다. 팔복의 시작과 끝은 모두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동일한 복으로 연결된다. 이는 팔복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궁극적 소망을 드러내는 말씀임을 보여준다. 믿음의 길에는 고난이 따르지만 가장 복된 길이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미 천국의 시민이며 하늘의 상이 예비 됐기 때문이다.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으로 이어지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고난이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자. 그 길 끝에는 주님의 상급과 위로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다.
  • 2025.07.31 / 이미나 기자

    ⑦ 화평하게 하는 자
  • 피스메이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 평화의 왕 예수님 세상에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복 누려야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복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 소개하는 팔복에서 일곱 번째로 소개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헬라어 ‘에이레네포이오스’로 ‘에이레네’(평화)와 ‘포이에오’(만들다)의 합성어이다. ‘팔복’에서 화평은 성경의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일명 ‘피스메이커’(Peace Maker)이다. 성경이 말하는 피스메이커는 혼자 평화롭게 살면서 평화의 열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공동체를 화해시키는 어려운 일에 자신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피스메이커로는 예수님이 있다. 그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처한 인류의 ‘피스메이커’로 오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됐다(롬 5:1). 독단과 분열이 가득했던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화평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군림하고 누리는 삶을 살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기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셨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갈등과 분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삶을 본받아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받는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이다(사 52:7).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평화가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곧 평화를 이루는 핵심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처럼 우리도 세상의 화해자가 되어야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25.07.04 / 금지환 기자

    ⑥ 마음이 청결한 자
  • 천국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볼 수 있어 예수님의 보혈 의지해 마음 지켜 나아가야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한 이영훈 목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정결해야 했다.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었다”면서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지기 위해서는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함을 입고 변화 받아야한다. 주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가 정결한 모습으로 흠이 없는 모습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닌 무소부재하신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율법적으로 온전하고 정결해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 자세만큼은 순전하고 순수할 수 있다. 이는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을 청결히 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 음란의 죄, 누추함의 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회개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마음을 청결히 하고 매 순간 성령님께 마음을 드리고 정결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 조용기 목사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해를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달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별들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꽃 한 포기를 봐도 ‘아! 하나님이 묘하게 지으셨구나’ 사람들을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이쁘고 아름답게 사람을 만드셨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밉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미운 가운데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나의 환경을 바라보게 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전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만 바라볼 때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처럼 이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다.
  • 2025.05.30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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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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