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영산 신학과 목회
영산의 세계선교
  • 선교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꿈과 비전으로 충만하게 된다(행 1:8). 성령님은 영산에게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부터 세계선교의 꿈을 부어주셨다. 그때부터 영산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은빛 날개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꿈’을 품었다. 그 꿈처럼 영산은 당시 해외 여권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때 이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주님의 교구입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영산의 고백은 절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머물렀던 수많은 선교 현장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장소였다. 영산이 세계선교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된 배경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5월 세계오순절총회를 마친 영산은 100일 동안 18개국, 39개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밑에 놓인 엽서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으니 이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종이 되리라”라는 글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적고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다. 다시는 못 일어날 만큼 쇠약해졌던 영산의 몸은 이튿날이 되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때의 체험은 영산의 사역 가운데 세계선교를 항상 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산은 유럽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 교회성장을 위해 봉사하는 국제기관을 조직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11월 4일 국제교회성장연구원(이하 CGI: Church Growth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영산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성장에 관한 노하우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부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CGI는 설립 이래 2022년 현재까지 한국을 비롯한 100여 개국 이상에서 총 600회 이상 CGI 콘퍼런스를 개최했고, 여기에 전 세계에서 연인원 120만명이 참석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세계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한 CGI는 2022년 10월 이영훈 목사를 제2대 총재로 만장일치 추대하면서 ‘다음 세대의 부흥’을 외치며 제2기 사역에 돌입하게 되었다. 영산은 세계선교의 사역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0년 3월 28일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을 설립했다. 이 기구를 통해 전 세계 선교지와 선교단체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선교 자원의 교류에 힘썼다. DCEM은 교파를 초월해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복음의 사명을 심어주는 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영산은 그 목회 사역 동안에 약 600회 이상의 해외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런 왕성한 사역은 성령님이 주시는 비전과 열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영산의 선교 사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서 비서구권의 기독교 인구가 서구권의 기독교 인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기독교 신학이나 선교가 서구권 교회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서구권 교회는 갈수록 쇠퇴를 거듭했고, 반대로 비서구권의 교회는 급속히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영산의 세계선교 사역은 기독교 선교의 주체를 서구권 교회에서 비서구권 교회로 전환하는 데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영산은 선교가 ‘순복음’의 최우선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선교하는 교회가 진정한 ‘순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이고 선교하는 성도가 진짜 ‘순복음성도’(Full Gospel Christian)이다. 교회가 선교를 멈추는 순간 침체와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산 안에 넘쳤던 복음의 확신과 순복음의 영성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나도 하나님 사명에 쓰임 받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David Yonggi Cho’라는 이름은 안다”라는 말이 수많은 증인에 의해 회자된 것만 보아도 그가 가진 세계선교의 열정과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나아가 선교하는 삶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선교에 평생을 바친 영산의 삶이었고, 그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순복음 성도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배의 본을 따라 인내로써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히 12:1). 오늘날 교회가 영산으로부터 반드시 전해 받아야 하는 믿음의 영적 바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선교의 바통’이다. 이제 영산의 뒤를 이어 우리도 성령 충만함 가운데 ‘선교 바통’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세계선교의 꿈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1.25

    영산의 신유 사역 
  •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그의 핵심적인 목회 철학 중 하나였다. 영산은 신유의 기적이 과거 예수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역임을 확고히 믿었다.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으면 믿음으로 값없이 병 고침 받는 것도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산이 믿었던 신유의 은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은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영산에게 신유 사역은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자 ‘아직’, 그러나 반드시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었다. 영산은 치유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믿는 자의 부활을 보았다. 그래서 영산은 목회 현장이나 부흥회 사역에서도 병 고침을 강조했는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거리는 수없이 많다. 영산이 이같이 신유를 강조하게 된 것은 어떤 특정한 치유 신학을 공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를 ‘신유의 종’으로 만든 것은 그가 처한 삶의 현장 속에서 실제 경험했던 치유의 하나님 때문이었다. 폐결핵 3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주님을 만나서 완치되었던 경험이 그것이다. 또 대조동 천막교회 시절 중풍에 걸린 여인이 낫고 걷지 못했던 소년이 일어나 뛰며 듣지 못했던 사람이 듣게 되는 기적이 나타났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영산은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과 목회 현실에서 신유의 역사를 분명하게 체험했기에 영산은 가는 곳마다, 서는 곳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영산의 신유 사역은 교회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영산의 개척교회가 빈민촌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치유의 기적이었다. 그래서 영산은 신유를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표적으로 보고 목회 사역에 열심히 적용하고 실행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 신유 사역”(막 16:18)이 복음 전파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회고할 때도 신유 사역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복음에 저항적이던 사람들이 육체의 질병을 치료받고 은혜를 받아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나아가 강력하게 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 공동체를 신유 공동체로 보았다. 영산의 신유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믿음이다. 영산은 그 어느 목회자보다도 병 고침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선포했고 신유의 기적도 많이 행했지만 정작 자신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성령이 필요에 따라 자신을 통해 은사를 나타내실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산 자신이 분명히 받았다고 주장하는 은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은사’였다. “내가 받은 은사를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보다 앞선다고 하지 않습니다. 표적이 여러분의 믿음 뒤에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역사는 천막교회 시절에 나타났다. 걷지 못하던 소년이 영산을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그가 낫는다는 것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영산이 한 시간이 넘도록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뭉게구름 같은 믿음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은 그때의 기분이 마치 지구를 자기 손으로 밀면 지구가 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믿음으로 기도하고 선포할 때 영산은 그 소년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 영산은 오늘날 병 낫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의 기도를 잘 드리지 못하거나 주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영산에 따르면 신유의 역사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때까지 성령님이 살아 역사하셔서 은사를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일으키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산은 신유가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임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성도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신유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아픈 부분에 손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영산을 통한 성령의 신유 사역은 여의도순복음교회뿐 아니라 국내외 수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신유의 복음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순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주었다. 앞으로도 영산의 신유 사역의 원리를 계속 연구하고 실행함으로 새로운 신유행전의 역사가 계속 나타나길 희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10.21

    문서·방송 선교의 선구자…1988년 기독교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 영산은 미디어의 활용이 미미하던 시절,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사역에 적용한 선구자였다. 영산은 자신이 가진 뜨거운 선교적 영성을 담아내어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 놀라운 교회 성장을 이루었다. 순복음의 신앙이 한국과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 멀티미디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문서 전도』의 저자 조지 버워는 “기독교 문서는 인쇄된 선교사”라고 말한 바 있다. 문서 선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영산은 누구보다도 문서 선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역에 적용하였다. 1964년 당시 순복음교회 성도들에게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순복음지』를 발간했다. 이것이 점점 발전하여 1978년에 이르러서는 영산의 설교와 칼럼, 성도들의 신앙 간증과 구역 성경 공부 및 교회 소식을 담은 『순복음뉴우스』가 되었다. 이후 『순복음가족신문』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문서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영산은 또한 순복음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 잡지 『신앙계』를 창간함으로 문서 선교의 폭을 확장했다. 『신앙계』는 기독교의 대중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양지, 불신자들을 위한 전도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기독교 잡지로서 자리매김했다. 해방 이후 대중적인 기독교 잡지로는 『신앙계』를 능가하는 잡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신앙계』가 말씀에 기초한 성령운동의 건전한 보급과 한국교회 평신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인 박명수 박사는 “『신앙계』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한국교회에 널리 전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영산의 문서 선교의 열정은 『순복음가족신문』과 『신앙계』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1987년 한 이단 종교 단체가 일간 신문을 발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산은 만약 그 단체에서 신문을 발간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기독교 일간지 창간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1988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계 일간지 『국민일보』가 창간되었다. 정부와 사회에 기독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언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산은 신문사를 설립하는 과정 가운데 막대한 재정적 부담과 근거 없는 비난의 목소리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믿음의 확신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복음 실은 일간지 『국민일보』는 매일 하나님의 복음을 한국 땅에 전파하는 발 없는 전도사로서 한국 기독교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기독교 정신으로 발간된 최초의 기독교 일간지로서 한국 교계의 대사회적인 발언의 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나아가 기독교 문화의 채널로써 한국 사회에 기독교 세계관을 전파하는 사명도 이뤄가고 있다. 영산의 『국민일보』 창간은 대한민국 1200만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매스컴 선교의 새 장을 열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가진다. 영산은 문서 선교뿐 아니라 방송 선교를 통해서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당시 영산은 복음 전도의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방송 선교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았던 영산은 1966년 라디오 설교와 1979년 컬러TV 방송을 송출했다. 영산의 라디오 설교 방송은 1979년, 1980년 연속, 전국 청취자 애청 프로그램 조사 결과 청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이처럼 한국교회 방송 선교의 선구자는 단연 영산이었다. 당시 흑백 TV에 익숙했던 공중파 제작자들이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견학을 올 정도였다. 방송 선교는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는 데 중요한 매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일반인들에게 오순절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영산의 방송 선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설교 말씀을 듣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또 위성과 인터넷을 활용한 예배와 설교 실황은 각 지성전 및 지교회 설립과 더불어 교세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영산의 방송 선교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국경을 초월하여 복음이 전파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회사인 KCWC사의 특별 기획으로 주일 예배 실황이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이스라엘, 홍콩, 필리핀, 남아공 등 25개국에 동시 위성 중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영산의 성령 충만의 복음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함께 전 세계에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산은 커뮤니케이션의 대가였다. 설교뿐 아니라 설교를 전달하는 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라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산의 설교와 성령 충만의 영성은 멀티미디어 사역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 곳곳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역이 세계 교회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산의 멀티미디어 사역이 우리에게 남겨준 값진 유훈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9.23

    구역조직
  • 1964~1965년 영산은 건강을 잃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이때 그는 성령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성경에서 나타난 ‘가정교회’와 ‘평신도 리더’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초창기 영산은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서야 그러한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성도를 성실하게 치리할 수 있을지 성령님께 물을 수밖에 없었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가운데 가정모임을 만들어 모든 성도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러한 모임을 이끌어갈 수 있는 평신도 리더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 영산은 목회가 자기 개인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를 구역조직 체계를 통해 구체화했다. 구역조직의 도입 이후 교회는 날마다 성장했다.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1980년 15만명의 교인과 1만 구역이었던 교세가 1990년대 초반에는 50만명의 교인과 1만5000여 개의 구역으로 늘어났고 2008년에 이르러서는 75만명의 성도와 2만개의 구역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조용기 목사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구역조직’이라는 용어는 1978년 그가 직접 집필한 『성공적인 구역조직』이라는 책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역조직은 영어로 셀 그룹(cell group)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성공적인 구역조직』을 『Successful Home Cell Group』이라는 영어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판한 것에서 기인한다. 영산의 구역조직은 셀 교회 운동 이론에 기초가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세계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영산은 구역조직을 통해 평신도와 동역하는 것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과 내가 동역하고 나와 성도들이 동역하는 것이 나의 목회였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사역을 훈련된 평신도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영산은 자신에게 부여된 많은 일을 평신도들과 나누어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일이 더욱 풍성하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1983년 시작된 구역장대학과 같은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평신도들이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지식과 자질을 지속적으로 함양할 수 있게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목회 철학 때문이었다. 영산은 구역조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역예배를 고안했다. 교회가 부흥하고 커질수록 모든 구성원이 골고루 목회적 돌봄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 혼자서 모든 예배를 감당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산은 ‘교구, 지역, 구역’으로 구성되는 조직체계를 고안하여 구성원 모두가 소외됨 없이 목회적 돌봄을 받음과 동시에 예배와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특별히 영산은 구역을 조직하면서 이를 관리하고 인도할 구역장에 여성을 임명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여성을 리더로 세운다는 것은 당시 사회적인 통념과 인식에 비추어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깊은 고민 가운데 영산은 성경에서 바울도 많은 여성과 동역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6장 1절은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사도 바울의 권위 아래에 있긴 했지만, 교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울은 그녀를 로마 교회에 위탁했고 이에 뵈뵈는 설교자로서의 권위를 갖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영산은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 내에서 그들과 동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역조직의 확장과 이를 통한 부흥 성장의 발판에는 이러한 여성 구역장들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들이 바로 지금까지 ‘빨간 가방’으로 회자되는 놀라운 부흥의 주역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 나아가 당시 억압받던 한국 여성들의 지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여성을 등용하여 이뤄낸 혁신적인 평신도 사역은 앞으로도 한국 교회사 가운데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영산의 구역조직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성도들 하나하나가 작은 공동체로 연합되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소그룹으로 이루어진 조직은 예배와 기도모임, 그리고 친교와 같은 신앙생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교회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다. 영산은 구역조직의 핵심이 바로 이러한 연합, 유대감 형성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교회를 부흥으로 이끄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확신했다. 더 나아가 영산은 구역조직을 ‘세포조직’으로 비유한다. 세포조직이 자생력을 가지고 스스로 성장하고 확장하는 것처럼 구역조직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분할하여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이지만 동시에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들의 모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도들은 자신의 조직이 나누어지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구역이 성장하여 분할될 때 가장 기초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야말로 가장 생명력 넘치는 구조임을 강조했다. 우리 교회의 DNA와도 같은 구역조직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구역장의 사명과 역할을 소중히 감당하여 영산의 꿈이 우리 가운데 풍성히 열매 맺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제신학연구원 목회연구소 제공
  • 2022.08.26

    영산의 설교 신학
  • 설교학자 에드윈 다간은 자신의 명저 『설교의 역사』에서 설교야말로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Edwin Dargan, A History of Preaching, 8~9). 설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했고, 새로운 문화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인간의 윤리, 관습, 예술, 사회, 과학 등이 변화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회 내적으로도 설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설교와 교회 부흥이 언제나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 선포가 강력하게 진행되는 곳에는 말씀의 아름다운 역사들이 강하게 일어났으며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는 부흥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설교자들이 등장해 각 시대의 설교를 갱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러한 노력들은 설교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능력의 회복과 함께 설교가 다시 적절하게 되어지는 설교의 부흥을 경험”했던 것이다(김운용,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100). 이런 의미에서 조용기 목사의 삶이야말로 설교의 능력을 회복하고 설교를 통해 교회의 부흥을 경험했던 삶임을 알 수 있다. 설교야말로 영산 조용기 목사의 인생이었던 것이다. 영산은 목회 초기부터 설교자가 ‘설교 철학’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목회나 설교에 있어서 한 베이스, 즉 한 철학이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을 거기에 받아들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조용기, 『설교와 목회자 관리』, 129). 그렇다면 영산의 설교 철학, 곧 설교 신학은 무엇인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다. 영산의 설교는 철저히 성경 중심, 예수님 중심, 십자가 중심의 설교이다. 그와 같은 설교의 중심에 오중복음, 곧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 용서받은 것(중생의 복음),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성령 충만의 복음), 질병에서 치료받는 것(신유의 복음), 저주에서 해방을 얻는 것(축복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것(재림의 복음)이 있다. 또한 영산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심을 증거했다는 점에서 그의 설교의 중심에 삼중축복이 놓여있음도 알 수 있다. 영산은 오중복음을 바탕으로 성도들이 삼중축복을 받는 것을 설교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조용기, 『설교와 목회자 관리』, 139). 한편 영산 설교 신학의 근거가 되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은 그의 성경해석과 설교의 내용을 구성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영산은 말한다. “삼박자 축복을 외침과 동시에 저는 오중복음의 진리도 외쳤습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주님과 화목을 이루고, 병 고침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영생 천국까지 얻게 되니 사람들에게 강력히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메시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쉬지 않고 삼박자 축복과 오중복음의 전인구원을 외치니 그들은 점차 희망을 갖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조용기, 『교회성장과 성도관리』, 45~46). 즉, 영산은 창조-타락-구원-축복이라는 삼중축복의 틀을 통해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오중복음의 내용을 자신의 설교 속에 녹여냈던 것이다. 영산은 보기 드물게 목회자로서 설교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것은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서울말씀사, 1984)와 『설교는 나의 인생』(서울말씀사, 2005)이다. 이 책들은 단순히 그의 설교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나의 설교문으로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그의 경험을 담아낸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들은 단순한 경험담을 진술한 것이 아니다. 현대 설교 이론에 근거해 설교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설교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성삼위 하나님 중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는 언제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중심성을 가진다. 이것은 현대 설교학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현대 설교에서 하나님 중심성이 차츰 옅어지면서 “예수님의 복음의 메시지가 약화되고 대신 윤리적인 삶과 성공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조지훈,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설교 신학”, 78). 또한 설교에 있어서 성령의 강조 역시 영산 조용기 목사가 한국교회 설교 사역에 끼친 영향 중 하나이다. 영산은 성령님을 지금 이곳에서 체험되는 분으로 인식했고 이를 통해 설교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을 강조했다. 설교와 관련해 영산이 이해한 성령님의 역할은 ‘현재성’과 ‘우발성’으로 요약된다. 성령님은 시대와 공간과 문화를 초월해 지금 이곳에서 역사하시는 ‘현재적인 성령님’이시다. 또한 ‘우발성’이란 ‘즉흥성’과 같은 의미로 설교 현장에서 설교자의 생각이나 계획과는 달리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설교가 행해지는 ‘지금’ 이곳에서 성령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시도록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셔 들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고 기도를 통해 성령과 교통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조지훈,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설교 신학”, 81).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영산 조용기 목사의 육성 설교를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설교학적 유산은 여전히 한국교회의 부흥과 설교 발전을 위해 필요한 디딤돌이다. 그 디딤돌을 딛고 일어설 후배 설교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한국교회 가운데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7.29

    영산의 기도 신학
  • 영산 조용기 목사의 목회 활동에서 기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을 세 시기로 구분하면서 이영훈 목사는 첫 번째 개척기의 특징 중 하나로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조용기 전도사를 중심으로 행해지던 ‘능력의 기도’를 꼽고 있다(Younghoon Lee, The Holy Spirit Movement in Korea, 95-96). 초대교회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침례를 경험했던 제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듯이 1958년 대조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조용기 전도사 역시 기도를 강조했고 기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새벽에 기도했고, 금식하며 기도했고, 철야하며 기도했다. 기도는 그의 사역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그가 기도를 얼마나 강조했는가는 그가 행한 설교를 모아놓은 『조용기 목사 설교전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두 20권으로 되어있는 이 설교전집에서 ‘기도’라는 제목으로 분류된 설교는 31편에 이른다. 조용기 목사에게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대화”였다(조용기, 『조용기 목사 설교전집 2』, 297). 기도를 통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통로이며 이를 통해 영적인 눈이 뜨여지고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조용기,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21). 그는 기도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능력의 사람이 된다. 둘째, 하나님 앞에 완전히 깨어져 쓰임받게 된다. 셋째, 기도를 통해 겸손한 자가 된다. 넷째, 기도를 통해 시련을 이겨내고 믿음의 건물을 지어갈 수 있다. 다섯째, 사탄을 이기게 된다. 여섯째, 기도는 성령 충만을 받는 통로이며 이를 통해 신앙생활이 형식적인 종교 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부흥의 비밀이 기도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기도는 교회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며 “교회의 부흥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기도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조용기,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29). 조용기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기도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주여 삼창’ 기도이다. 이와 같은 주여 삼창 기도는 시편에 기록된 탄원시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시편의 탄원시는 보통 네 가지 순서로 구성된다. ‘하나님을 부름, 탄식, 기도, 구원의 확신’이다(소태영, “‘주여 삼창’의 순복음교회 기도 양식에 내재된 탄식의 영성과 교육”, 112). 고난에 처한 시인은 가장 먼저 야훼 하나님을 부르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간구한 뒤에 구원의 확신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자신의 기도를 마친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이 기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의 고백은 마침내 주님을 향한 찬송으로 변하게 된다. ‘주여’ 혹은 ‘야훼여’로 시작되는 시편의 탄원시는 “하나님 ‘부재’에 대한 절망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임재’의 희망을 외치는 것이다”(소태영, “‘주여 삼창’의 순복음교회 기도 양식에 내재된 탄식의 영성과 교육”, 113~114).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여 삼창 기도 역시 절망 가운데 희망을 소망하는 것이요 지금 직면한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탄식시의 분위기 급변은 현실적인 고난과 고통의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주여’라고 절규하는 순간 기도자의 생각, 믿음, 꿈, 말의 변화가 발생한다는 영산의 4차원의 영성과도 일맥상통한다”(소태형, “‘주여 삼창’의 순복음교회 기도 양식에 내재된 탄식의 영성과 교육”, 114). 또한 조용기 목사는 인내하며 낙망치 말고 간청하며 기도할 것을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앞서 언급한 그의 설교전집에 수록된 기도 관련 설교 31편 중 9편의 본문이 누가복음 18장 1~8절 ‘불의한 재판관과 간청하는 과부의 비유’이다. 이 설교들을 통해 조용기 목사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좌절하거나 낙망치 말고 계속해서 끈질기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데 있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올바른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김동수, “영산의 기도록: 강청(强請)하는 기도는 가능한 것인가?”, 124). 조용기 목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는 막연함을 가지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또한 진심을 담아 온 힘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고 고함치며 밤새도록 외치고 몸부림치는 기도는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그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이다(조용기, “변화와 기적을 가져오는 믿음”, 주일예배설교, 2009. 9. 12). 또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한 기도는 계속해서 물러서지 않고 하는 기도이며 믿음으로 고백하는 기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응답받는가? 조용기 목사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만약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도의 내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자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필수조건”이라며 “성경을 상고하여 우리가 간구하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부합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권면한다(조용기, 『기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 77-78). 또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마귀의 방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마귀의 방해를 물리치고 응답이 될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영산 조용기 목사는 강청기도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감사기도, 순종의 기도, 묵상기도, 방언을 통한 깊은 교통의 기도 역시 강조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영산 조용기 목사의 기도 신학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이다. 그는 어떤 기도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뜻을 바꾸셔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깨닫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산 조용기 목사의 기도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 2022.06.26

    영산의 성경관
  • 영산 조용기 목사에게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다. 설교자로서 목회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라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의식이 있었다.(조용기, 『하나님의 말씀』 제1권, 7). 그가 이와 같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오랜 목회 생활을 통해 “오직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며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성장시키는 위력(偉力)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완전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속 깊이 체험”했기 때문이다(조용기,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36). 성경에 대한 그의 연구는 설교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신학교를 갓 졸업한 후 개척교회를 시작한 그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복음과 지식을 가지고 설교 사역에 임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설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설교를 통해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설교는 주로 기독교 윤리와 도덕, 천국과 지옥, 영적 축복과 은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설교에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배부르고 속 편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장식품이며 사치품”일 뿐이었고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당장 허기를 채울 따뜻한 밥 한 공기, 약 한 봉지”였다(조용기, 『설교는 나의 인생』, 30). 이런 상황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복음과 삶의 연관성’이었다.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성경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 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자리에서 위로해 주셨으며(요 8:1~11),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마 9:1~8), 배고픈 자들을 먹여 주셨고(막 6:30~44),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요 11:43, 44)”(조용기, 『설교는 나의 인생』, 33). 그는 성경이 예수님을 통한 죄 용서함과 더불어 생활의 축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중복음·삼중축복의 신학은 이와 같은 새로운 성경 읽기를 통해 정립된 것이었다. 즉, 그의 성경 읽기는 단순히 지식적인 읽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역사하시는 말씀으로서의 성경 읽기였다. 또한 이와 같은 성경 읽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실제 삶에 역사하는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각기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40여 명의 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계적으로 말씀을 받아적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특성과 자질에 따라 각기 특색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조용기, 『순복음의 진리 (상)』, 2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거룩하며 인간 구원을 위해 부족함이 없고, 신성한 권위를 가지며 역사적이고, 우월하며 영원하다. 또한 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율법학자, 의사, 어부, 농부, 왕, 군인, 시인, 사업가, 목자 등 출신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의해 기록된 책이다. 그러나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성경 전체의 내용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주제, 즉 예수 그리스도로 통일되어 있다”(조용기, 『하나님의 말씀』, 13). 조용기 목사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성경 본문을 세밀히 연구할 것, 성경 본문의 문맥을 살필 것, 성경을 전체적으로 해석할 것,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해석할 것(조용기,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170). 특히 조용기 목사의 성경 해석에서 중요한 것이 ‘로고스’와 ‘레마’라는 개념이다. ‘로고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반면 ‘레마’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김희성은 조용기 목사의 로고스/레마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로고스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특별히 주어진 말씀, 곧 선포된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특별히 말씀해 주시고 그 말씀에 의해 믿음이 생길 때 들려온다. 여기서 믿음이 생기게 하는 말씀이 레마이다”(김희성,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 115).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와 레마로 구별하는 조용기 목사의 성경 이해는 앞서 살펴본 대로 기록된 말씀이 성도 각자의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목회 경험에 근거한 것이며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그의 성령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성령님은 기록된 말씀을 성도의 삶의 자리에 선포되고 적용되게 하시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다. 성도가 성경에 기록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실제 삶에서 체험하기 위해 성령 충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 충만할 때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성경 읽기는 언제나 ‘현재적 성경 읽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신문철, 김향란, “영산 조용기의 성령론적 성경관”, 20).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5.22

    4차원의 영성
  • ‘4차원의 영성’은 오중복음, 삼중축복과 더불어 영산 조용기 목사의 신학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4차원의 영성’은 1979년 미국에서 출판한 『4차원: 응답받는 기도의 신세계 발견하기』(The Fourth Dimension: Discovering a New World of Answered Prayer)라는 책에서 시작됐다. 이 책이 출판될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수는 5만명이었지만 이 책의 한국어 번역판 『4차원의 영적 세계』(서울말씀사, 1996)가 출판됐던 1996년에는 70만 명이 넘었다. 18년이 흐르는 동안 14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했던 조용기 목사의 믿음이 있었다. 4차원의 영성은 그가 성경에서 발견하고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믿음의 법칙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조용기 목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책에 기록된 믿음의 법칙은 모두 성경 말씀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가능케 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하나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4차원의 영적 세계』, 저자의 글). 조용기 목사는 4차원의 영적 세계의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삶과 목회에 대변혁이 일어났다고 고백했다(『4차원의 영적 세계』, 61). ‘4차원’이란 기하학에서 빌려온 말이다. 두 개의 점을 찍고 그것을 이으면 선이 된다. 이것이 1차원이다. 선과 선들이 연결되면 면이 되는데 이것이 2차원이며, 면과 면이 만나 만드는 입체가 3차원의 세계이다.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는 3차원에 속한다. 물질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이다. 시간적이고 공간적이며 물질적이다. 4차원의 세계는 비시간적이고 비공간적이며 비물질적인 ‘영의 세계’이다(최문홍, “4차원의 영성: 영산의 삶과 목회와 신학의 원동력”, 「영산신학저널」 29호, 96). 1차원은 2차원에 속하고, 2차원은 3차원에 속하며, 3차원은 4차원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세계인 4차원의 세계가 3차원의 세계를 지배한다. 영이신 하나님은 영적 세계인 4차원에 계신다. 사탄 역시 4차원에 있다.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물질세계인 3차원과 영적 세계인 4차원에 존재한다. 4차원 안에 하나님, 사탄,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4차원 중에 가장 낮은 4차원, 마귀는 중간 4차원, 하나님은 가장 높은 4차원”에 있다(조용기, 『4차원의 영성』, 33). 4차원에 속한 마귀는 인간을 지배하고 점령해서 하나님을 대항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인간적 4차원, 마귀적 4차원에서 건져냄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4차원에 들어가게” 된다(『4차원의 영성』, 33).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4차원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과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4차원으로 가득 차게 된다. 따라서 3차원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4차원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4차원의 변화는 그것을 이루는 4가지 요소인 생각, 믿음, 꿈,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4차원의 영성』, 39). 4차원 영성의 첫 번째 요소는 생각이다. 인간의 생각은 4차원에 속해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은 4차원을 변화시키고 결국은 3차원에 긍정적인 역사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을 변화시킬 것인가? 성경 말씀을 통해서다. “믿는 사람들은 성경의 4차원, 즉 성경 말씀을 따라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4차원의 영성』, 42). 4차원 영성의 두 번째 요소는 믿음이다. 믿음이 4차원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 “믿음은 4차원의 세계를 통해 3차원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4차원의 영성』, 42). 믿음은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항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을 삶 속에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믿음의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즉, “나는 구원자 예수님을 믿습니다”, “병이 나았음을 믿습니다”, “복 받은 것을 믿습니다” “나는 부활하고 영생천국을 얻은 것을 믿습니다”와 같은 고백을 통해 믿음을 계속해서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4차원 영성의 세 번째 요소는 꿈이다. 꿈 역시 4차원의 세계를 프로그래밍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 안에서 꾸는 4차원의 꿈은 인간적인 욕망이나 욕심과는 다르다. 그와 같이 4차원의 꿈을 가진 사람은 3차원의 삶이 주는 고난에 좌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3차원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전진해간다. 조용기 목사는 4차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도할 때 우리의 꿈이 분명해지고, 금식할 때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 자신이 변화될 때, 4차원의 세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4차원 영성의 네 번째 요소는 말이다. 부정적인 말은 4차원에 부정적인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지만 긍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바꿀 것인가? 이 역시 성경을 통해서다.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4차원에 굉장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다(『4차원의 영성』, 47). 영산 조용기 목사는 생각, 믿음, 꿈, 말의 변화를 추구하는 4차원의 영적 원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또한 수많은 사람이 4차원의 영적 원리를 통해 놀라운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 4차원의 영성은 지금도 이 세상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기 원하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신앙의 원리이다. “[4차원의 영성에 대한] 영산의 강조점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순례 여정이 생산적이고 인격적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키이스 와링턴, “4차원, 말씀과 성령님”, 「영산신학저널」 18호, 70). 생각, 믿음, 꿈, 말의 변화를 통해 4차원의 영성을 추구하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은 21세기에도 놀라운 부흥과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22.04.2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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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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