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힐링
바닥이라는 은총
  • 인생길 가다 보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현실에서 바닥을 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바닥을 쳤다는 절망감에서 삶의 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바닥을 치는 것은 쓰라린 경험이지만 믿음의 측면에서는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바닥으로 내려갔을 때 하늘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바닥에서야 삶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자력(自力)이 아니라 타력(他力)임을 깨닫게 된다. 성경 속 믿음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바닥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살 소망도 끊어졌다”고 고백했다. 바닥을 쳤을 때 살 소망이 끊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바닥에서 우린 진짜로 죽을 수 있다. 나의 자아와 목적, 의지의 죽음을 경험하고 진정한 소망과 삶의 원동력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회복은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바닥으로의 추락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일 수 있다. 천양희 시인의 시 ‘새가 있던 자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새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쳐야/하늘에다 발을 옮기는 것일까/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그렇다.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믿음의 영역에서 바닥으로의 추락과 거기로부터의 회복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다. 오늘도 바닥을 쳤다고 꺼이꺼이 우는 이들에게 “바닥이야말로 하나님 만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말로 위로를 하고 싶다. 살 소망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 참 소망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비상(飛上)의 은총이 임하기를….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05.17

    풍성한 삶의 비결, 기도
  • 우리는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한다. 부를 축적하거나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사람들이 마음 깊숙하게 원하는 것은 뭔가 꽉 찬 것 같은 풍성한 삶, 충만한 삶이다. 물론 부나 건강도 그 충만한 삶의 필요 요소이긴 하지만 충분 요소는 아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살아갈 삶이 살아온 삶보다 적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더 깊은 여정에 들어가고 더 깊이 사랑하며 살기 원한다. 그것이 풍성한 삶이라고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가. 믿음의 선배들의 말을 종합하면 풍성한 삶의 비결은 기도하는 것이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하고 일을 하십시오. 일을 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기도하고, 그런 다음 다시 일을 하십시오. 평생 하루도 거르지 말고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풍성한 삶의 비결은 간단하다. 기도하고 일하고, 일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루의 모든 삶에서 기도가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늙어갈수록 기도를 더 많이 하십시오. 그래야 신령한 일에 냉랭해지지 않습니다.” 뭔가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찰나의 욕망이 영원에 대한 갈망을 밀어내는 것 같을 때의 처방전은 단순하다. 삶에서 기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은 “기도한다는 것은 모든 삶과 모든 사랑의 중심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라고 했다. 기도의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보자. 기도의 나날이 축적될 때 어느 순간 충만한 사랑의 삶을 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04.19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
  •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말했다. 믿음은 결코 우리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이상(理想)이 아니다. 믿음은 실상이며 생생한 증거다.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이다. ‘고아의 아버지’로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은 조지 뮬러가 평생 추구했던 것은 바로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이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최고 목표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합 가운데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믿음은 도달하고 싶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이 아니었다. 생생한 실재였다. 그럼 어떻게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조지 뮬러는 믿음이 실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럴 때라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상은 기적과 사랑의 연속이 된다. 신자로서 우리 모두 조지 뮬러와 같이 하나님과의 연합 가운데 믿음이 실재가 되는 삶을 사는 여정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개인과 교회, 나라의 부흥도 가능하다. 이 소망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 믿음은 이상이 아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이 글을 접하는 모든 분들이 믿음이 실재가 되는 거룩한 도전을 하시기 바란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03.15

    행복한 의존자
  • 기독 작가 브레넌 매닝은 “신뢰의 길은 말할 것도 없이 모험의 길이다”라고 말했다. 보람을 느끼지 못해 돌연 직종을 바꾸는 것, 늙으신 부모를 힘겹게 봉양하는 것, 한적한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침묵과 고독 속에 꼬박 사흘을 보내는 것,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후 환멸을 이겨내는 것 등 모든 도전은 기꺼이 미지의 세계를 걸으려는 모험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려는 각오를 요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그분에 대한 우리의 신뢰일 것이다. 우리가 신뢰하는 대상은 만군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신뢰할 때 우리는 행복한 의존자(依存者)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신뢰의 길을 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뢰의 대상이신 그분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에 우리는 의존자가 되기보다는 자존자(自存者)가 되려 한다. 자존자로서 철저히 자기의 힘, 즉 자력(自力)을 믿고 나간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삶은 대부분 자력이 아니라 타력(他力)에 의해 이끌려진다. 이츠키 히로유키는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어떤 경우에도 그분께 의지하는 의존자가 되는 것이 신뢰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을 향한 신뢰의 길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삶이 정돈되며 행복해진다. 신뢰라는 모험을 포기할 때, 우리는 삶을 버리는 모험을 하는 셈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02.16

    갈라진 틈에 서는 자
  • 지금 우리 주변의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갈라져 있는 것 같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남북관계 등에서도 갈라진 틈이 좁혀지기는커녕 더욱더 커지는 것만 같다. 최근 남북 간의 긴장 수준은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고,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만일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강 대 강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정치계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그야말로 피 튀기듯 싸우고 있다. 포용과 타협, 조화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진영이 철옹성처럼 강화되고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갈라져 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겔 22:30, 표준새번역).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선 자를 찾지 못했다며 탄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지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은 갈라진 틈 사이에 서서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이다. 주님은 평화이시고,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다. 자신의 몸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담을 허무신 분이다. 오늘 이 땅을 바라보시며 갈라진 틈에 선 자를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때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01.19

    여호사밧의 기도
  • 미국의 기독교 저자인 스탠리 게일은 삶의 무게에 처절히 짓눌려 있을 때, ‘대적불가’(對敵不可)의 적을 만날 때엔 ‘여호사밧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혈통을 계승한 아사 왕의 아들로 남유다 왕국의 네 번째 왕이다. 하나님의 의로운 법도를 신실하게 지켰던 선한 왕인 그 앞에 모압과 암몬 자손이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대적불가의 적이었다. 여호사밧이 직감적으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이었다. 여호사밧은 절규하듯 기도한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이에 하나님이 말하신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내게 속한 것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형통하리라.” 오직 주 앞에 엎드려 모든 것을 맡긴 그의 겸손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고 응답하셨다. 역대하 20장 30절에는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다”고 나와 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 온갖 종류의 대적불가의 적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여호사밧의 기도를 드려볼 것을 권해본다. 그때 내 문제는 하나님의 문제가 되어 그분이 풀어주실 것이다. 기도는 최후의 방법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이다! 기도로 2023년 한해를 마감하자.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3.12.15

    86세의 복음 전도자 허봉랑 선교사
  • 요즘 인터넷상에서 86세의 복음 전도자인 허봉랑 선교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 있는 허 선교사의 설교와 간증을 듣고 은혜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에 열광하는 것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힘 있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기능적인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전혀 꾸밈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원색적 복음의 메시지들이 나른하고 세련된 신앙생활에 젖었던 우리들을 깨우기 때문이다. 그가 전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엄청난 울림이 있다. “신앙은 전투요.”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어야 한다고요.” “은혜는 깨닫는 것이고, 열매는 고치는 것입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 못갑니다.” “믿음은 무조건 뛰어드는 겁니다.” 전혀 가식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허 선교사를 통해 크리스천들은 다시 한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복음만 붙들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사는 비결은 이런 원색적 복음과 찬양,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지상이 아닌 하늘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개 없이 부흥도, 천국도 없다. 그것을 지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이 86세의 복음 전도자 허봉랑 선교사가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3.11.17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중동은 물론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스라엘 최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장막절 마지막 날 안식일 새벽에 전개된 하마스의 돌연한 공격은 너무나도 놀랍다.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수천 발의 미사일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아이언돔을 무력화시켰다. 이어 전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인해 양측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전쟁이 확전되어 제5차 중동전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전쟁은 얼마든지 예기치 않게 발생할 수 있고, 우리의 안전은 언제라도 여지없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의 음악 축제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환호하는 장면 뒤로 행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오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오버랩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한국인들은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통해 자연스레 남북이 대치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DMZ를 넘어 북한군이 탄 행글라이더가 날아오고, 장사정포에서 발사된 수만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장면이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전쟁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지금은 깨어 기도해야 할 때이다.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해서, 한반도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3.10.1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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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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