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힐링
삶으로 배운 나의 성장원리
  •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그때,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여유도 없이 쫓기듯 살아왔던 나였다.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었다. 문과생이었던 내가 춘천으로 가서 아이들의 수학을 가르치며 점심엔 엄마 식당 장사를 돕기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움직이고, 블로그 이웃 50명으로 엄마 식당의 반찬을 온라인으로 팔기 시작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렇게 몸을 먼저 움직였더니 신기하게도 내안의 불안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해낸 일들이 쌓이면서 작지만 분명한 성취가 만들어졌다. 그 성취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고 반복은 능숙함을, 능숙함은 자신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나를 온라인 교육 플랫폼 ‘플리크’의 대표이자 40만 인플루언서로 성장시켰다. 잘하는 일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쌓아올린 결과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꾸준함의 시간들’은 내가 하는 일을 능숙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좇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최선이 나를 성장시켜 준다는 것을 삶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작은 일에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나를 위해 준비될 더 큰일을 기대하며 신뢰하는 것! 그래서 나는 여전히 성장의 시간들을 쌓아가는 중이다.
  • 2025.08.15

    어른의 성장통 
  • 어린 시절 호되게 아플 때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미솔이가 또 훌쩍 크려나 보네.” 성장을 앞두고 찾아오는 성장통은 비단 어린시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때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난의 시간 뒤엔 어느새 그만큼 자라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예고 없이 닥친 가난 앞에 우리 가족은 컨테이너 집에 살게 되었고 그 후에도 단칸방, 반지하, 창고를 개조한 집을 전전하며 돈과 투쟁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내면은 온통 ‘생존’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투자만이 제가 가진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눈앞의 환경에 휘둘려 꿈마저 가난해지지 않는 것, 나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제게 주어진 생존법이자 가난이 준 성장의 열매였습니다. 지독한 가난을 겪고 나니 가난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밭이 생겼습니다. 돈에 휘둘려본 사람으로서 돈 때문에 가능성이 막힌 친구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제 안에 심어 주셨으니까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 성장을 향한 통증이 찾아올 때면 이제는 그 말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지금 더 크게 성장할 순간이 찾아온 것일지 모릅니다.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열매가 될 것을 믿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염미솔(플리크 대표)
  • 2025.07.18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날 때
  • 비행기를 타고 가다보면 ‘기류변화’로 인해 기체가 요동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류변화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좌석 팔걸이를 꽉 붙들게 된다. 사실 기류변화가 심할 때 시트벨트를 매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내가 좌석 팔걸이를 붙드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류변화로 비행기가 요동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조속히 기류가 안정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인생이 능동태라는 확신이다. 인생은 자력(自力)에 의해서, 나의 분투노력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나 삶이 요동칠 때 자력과 능동태의 삶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비행기나 인생이 추락하는 순간 자력보다는 타력(他力)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일본의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는 “타력(他力)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이라면서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한한 인간의 삶은 철저히 수동태다. 특히 믿음의 삶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이 아니다. 인생에 기류변화가 일어날 때 나의 날개를 접고 내 삶의 조종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는 수동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만히 있으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부동의 신뢰자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 기류가 안정됐습니다. 시트벨트를 풀어도 됩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게 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5.16

    부활을 믿는 대한민국
  • “성경이 남겨 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부활을 믿어 나사렛 예수를 믿을 수 있고, 부활을 믿지 않아 나사렛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있다.” 기독 작가 브레넌 매닝의 말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용기를 동원해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하는 부활에 “예”라고 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활이란 어디까지나 ‘현존하는 부활’로 체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복음서의 핵심 기적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나 오병이어나 모든 극적인 치유사건을 다 합쳐 놓은 것이 아니다. 복음서의 기적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다!” 매닝의 말대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현존하는 부활을 삶의 순간마다 체험한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깨어진 모든 관계와 빼앗긴 소망이 회복됨을 믿는 것이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주님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한다는 뜻이며 옛 본성을 벗어버리고 새 본성을 입는 것,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주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열방을 새롭게 하신다.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움이 필요한 시기다. 부활의 주님이 이 민족의 운명까지도 새롭게 해주시기를…. 형언하기 어려운 능력으로 독생자를 살리신 하나님이 이 땅의 온 백성들을 참 생명으로 이끄시기를….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4.18

    최후변론
  •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 측의 최후진술을 끝으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마쳤다. 윤 대통령과 국회 측은 이날 ‘최후변론’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후변론’이라는 엄중한 단어를 생각해보았다. 이 땅을 사는 누구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지면 별문제 아니지만 인생들 누구나 마지막에 ‘판결의 골짜기’에 서게 된다. 거기서 헌법재판관과 같이 우리의 영원을 좌지우지할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최후변론을 하게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때 어떤 말로 자신을 변호할 것인가. 아니, 이 땅을 떠나기 전 우리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 될 것인가. 1945년 4월 9일 나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목회자의 목회자’로 불린 유진 피터슨 목사는 2018년 10월 22일,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함께 가자(Let’s go)”란 말을 남겼다. “이제 함께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가자”란 뜻이다. 복음주의 지성 댈러스 윌라드 박사는 2013년 5월 8일, “땡큐(Thank You)”란 단어를 남기고 떠났다. 평생 주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감사하며 본향으로 떠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살아온 방식대로 죽는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최후변론을 하고 저 하늘의 본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사람들이다. 그날, 판결의 골짜기에서 어떤 최후진술을 할지 생각한다면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원 대표)
  • 2025.03.14

    행복한 사람
  •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칼 융은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심각한 정신 질환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과 불행감”이라고 말했다. 요즘 대한민국의 상황을 돌아보면 더욱 이해가 되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불안하다. 개인의 삶이, 가정이, 공동체가, 나라가 불안하다. 불안감은 불행감으로 이어진다. 불안한 사회에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지내야 할 아이들도 일찍부터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불안감과 불행감을 단절해야 한다.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행감을 느끼는 사람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전도법은 크리스천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불행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을 주목하며 질문하게 된다. “도대체 당신의 행복 비결은 무엇이요?” 그때 행복의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신자들이 행복한 이유는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이 행복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행복한 분이셨다. 행복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자는 누구나 상황과는 상관없는 초자연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신 33:29).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해야 한다. 그분을 붙들어야 한다. 행복한 크리스천들이 넘쳐나고 그들이 행복 전도사가 될 때 이 사회의 불안감과 불행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5.02.14

    배 안에 계신 예수님
  • 마태복음 8장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큰 풍랑으로 침몰 위기에 처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제자들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예수님을 깨우며 다급히 외친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시고,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당시 제자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을 상상해본다. 그들은 거센 물결에 금방 뒤집혀질 것 같은 배 안에서 패닉 상태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주무시던 예수님이 일어나 말씀 한 마디로 바다를 진정시키셨다. 공포와 두려움, 혼동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평안이 찾아왔다. 초자연적인 위기 속에서 그들이 간과했던 것은 배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존재였다. 배 안에 계신 분은 다름 아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하나님이신 주님이셨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분의 놀라우신 능력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풍랑이 일시에 잠잠해지자 놀라며 말했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거센 풍랑 속에 좌초될 위기의 배와 같은 상태에 처해 있다. 모두가 당혹함과 놀람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호는 좌초 위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의 배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분이 일어나 한 마디만 하면 이 모든 혼동은 일시에 잠잠해질 것이다. 다시 대한민국호에 평온이 찾아오리라. 이 믿음 간직하며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하자.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5.01.17

    하나님의 다스림
  • 지금부터 51년 전인 1973년에 전 세계는 모로코의 지진, 리비아의 홍수 등 극심한 기상 이변과 재난으로 공포에 휩싸였다. 기상이변 뿐 아니라 심각한 영적 타락이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만연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교회 담임이었던 데이비드 윌커슨 목사는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의 시선으로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일과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해 분별하자면서 온갖 혼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대야말로 하늘을 가르는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생명의 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극심한 혼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할 엄중한 상황이다. 언제 이 혼동이 종식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확신해야 하는 것은 윌커슨 목사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여전히 이 대한민국을 다스리고 계시다”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지금 한국을 지켜보고 계신다. 하늘 아버지이신 그분은 우리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모든 것이 인간의 잘 조직한 계획과 음모, 야망으로 진행되는 것 같이 보여도 이 땅의 현실을 이끌고 가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분의 손길이다. 인간의 헛된 기도와 음모는 분쇄되고 끝내 그분의 뜻만이 우뚝 서게 된다. 지금은 다른 때가 아니다. 기도할 때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이 땅의 현실을 바르게 정리해달라고 구해야 할 때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 대한민국을 다스리고 계심을 확신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해 나가자.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장)
  • 2024.12.13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