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이제 역전되리라 
  • 퇴근길 차 안에서 기독교 복음방송인 극동방송을 듣는데 CCM가수 시와 그림의 ‘이제 역전되리라’는 찬양이 시작됐다.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 바로 역전되리라.” 가사를 듣는 순간 ‘아!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지’라는 생각이 들며 감사를 고백하게 됐다. 탄탄대로의 삶을 사는 것만 같아도 인생에서 한번쯤은 크든 작든 힘든 시련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힘든 상황과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애써도 도저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또 이런 시련이 한꺼번에 몰려오게 되면 불안과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순간 마음이 상하고 기가 막히고 말문도 막혀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 기독교인이라도 이럴 때에는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순간에 주님만이 나의 능력, 나의 돌파구가 되심을 믿고 끝까지 기도하면 주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주님이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 주님만이 내 아픔을 아시고 어루만지신다. 기도로 힘든 고비를 넘긴 사람은 고난의 의미를 고민하는 작은 신앙인에서 그것을 초월한 위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복을 주시는 것도 화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달려야 할 것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모든 고난에는 끝이 있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께 드러내고 하나님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갈 때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된다. 역전의 주님이 이 고비를 넘긴 내게 최고의 상급을 주신다.
  • 2023.04.28 / 김주영 기자

    목표를 향한 정진
  •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이 다양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해를 열심히 달려 나갈 것이다. 나도 체력증진과 다이어트를 목표로 러닝을 시작했다. 스마트워치에서 제공하는 러닝메이트는 나에게 가벼운 워밍업과 함께 초심자에게 맞는 러닝 코스를 추천해줬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느리고 운동 강도도 약해 답답했다. 조금 더 앞서 나가려고 했지만 지정한 속도를 초과하면 러닝메이트는 심박수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며 목표 달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나는 하루하루 추천해준 페이스에 맞춰 20분, 30분 나아가 60분까지 달릴 수 있게 됐다. 목표를 달성할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과 함께 새로운 목표를 달성해야겠다는 도전 의식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문득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 만약 내가 의욕만 넘쳐 달렸다면 과연 목표를 달성 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즐겁게 러닝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하게 행동하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시간적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가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은 것부터 하나씩 이루어가야 한다. 작은 행동들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훗날 이전보다 발전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혹시 지금 의욕이 앞선 나머지 새해 목표를 포기하진 않았는가. 2월을 바라보는 지금, 푯대를 향해 다시 정진하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 2023.01.27 / 금지환 기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부흥이 다가온다 
  • “21세기는 오순절 영성을 가진 교회가 이끌 것”이라는 하비 콕스 하버드대 교수의 말처럼 10월 12~14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제26차 세계오순절대회에 참석한 교계 리더들은 한국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부흥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기자로 대회에 참석한 나는 3일간 진행된 예배와 포럼, 워크숍 등 모든 일정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했다. 실제로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체험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명이 있다. 임파워드21의 차세대 북미 공동 의장인 엘리 보니야 주니어 목사가 “할아버지께서 1973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세계오순절대회에 참석해 ‘눈먼 자가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는 설교를 하셨다. 할아버지가 하셨던 설교를 이어받아 오늘 내가 ‘눈을 뜨게 하옵소서’에 대해 설교를 하게 됐다”며 가슴 벅차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1973년 엘리 보니야 목사의 할아버지는 그의 손자가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같은 제목의 설교를 전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엘리 보니야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이번 대회의 주제였던 ‘다음세대의 오순절 부흥’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우리의 사명인지 다시 깨달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3년과 1998년에 이어 24년만에 다시 세계오순절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전 세계 교회가 오순절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부흥의 새바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열방에서 귀한 열매를 맺길 기도한다. 잊지 못할 대회 그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미나 기자
  • 2022.10.28 / 이미나 기자

    사랑으로 함께 배우고 나누는 ‘사랑의교실’
  • 며칠 전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대교구가 운영하는 ‘사랑의 교실’을 방문했다. ‘사랑의 교실’은 장애인 성도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언어와 인지교육, 건강과 예능 활동을 실시하는 주간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었던 3년간 운영이 중지됐다가 최근 문을 다시 열었다. 요즘 다시 급격해진 코로나의 확산 때문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몸짓들이었지만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대한 나에게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해주고 손하트나 브이 표시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신나는 찬양과 율동, 큰 종이에 자유롭게 획을 그어대는 힘찬 손끝, 글자를 쓰느라 집중된 미간을 보며 학생들이 이 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지 알아챌 수 있었다. ‘사랑의 교실’ 선생님들은 이들을 어른으로 존중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대하듯 자상하게 돌본다.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 전 TV에서 종영한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장애인과 가족들이 처한 현실이 잘 나타났다. 다운증후군인 언니의 존재를 숨기는 영옥에게 “다들 말을 안 해 그렇지, 그런 집이 서너 집 건너 하나다. 별거 아니다. 내 손녀는 자폐”라고 말하는 해녀 할머니의 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다. 힘들게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 “혼자가 아니다. 함께 해보자”는 따스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장애가 있든 없든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중의 첫째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이 이웃을 향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함께 하는 곳이 ‘사랑의 교실’임을 깨닫게 된다.
  • 2022.07.29 / 복순희 기자

    사랑은 언제나
  • 최근 모 방송국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삽입곡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하는 서정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고 또 채워지길 바라는 사랑에 대한 정의는 도대체 뭘까. 사전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사랑을 정의한다. 우리는 사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인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 친구의 우정, 존경하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떠올린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몽글거리고 따뜻해진다. 사랑할 때 세상은 모든 것이 아름답다. 반대로 그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죽을 만큼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상처를 반복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사랑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랑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소설과 드라마가 '사랑'을 주제로 그리도 많은 작품들을 쏟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소위 사랑에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다. 오래 참고 온유했으며 무례하지 않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 성내지 않고 함께 기뻐했으며 모든 것을 감싸주었다. 누군가는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정작 그들은 '행복했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사랑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말씀을 몸으로 보여준 사례다. 사랑은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로 시작되는 복음성가처럼 모든 것을 감싸주고 믿어준다면 그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엮어주지 않을까.
  • 2022.05.29 / 오정선 기자

    진정한 사치
  • 코로나19에 따른 보복 소비로 고가의 명품을 구매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백화점 근처를 지나갈 때면 ‘오픈런’(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매장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행위)행렬을 볼 수 있는데, 새해에도 벌써 몇몇 유명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는 더 늘어나 제품들은 연일 매진된다고 한다. 명품 소비에는 과시욕으로 인해 높은 가격에도 소비가 오히려 증가하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값비싼 사치재를 사면 상류층에 속하게 된다고 믿는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가 적용되어 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많은 사람들이 유명 명품을 사자 소위 찐 부자들은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명품을 찾아나서는 중이라고 한다. 돈이나 사치품으로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나 보다. 모건 하우절은 자신의 책『돈의 심리학』에서 ‘더 적은 것을 가지고 사는 법을 배울 것’을 조언하면서 “5만 달러를 벌지만 4만 달러만 갖고도 행복한 사람은 15만 달러를 벌면서 15만 1000달러가 있어야 행복한 사람보다 더 부자”라고 말한다. 마음가짐에 따라 내 삶의 만족과 행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한 성공의 정의를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내렸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순자산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태도’라고 말한다. 좋은 물건으로 얻는 만족은 유행 따라 한순간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나누면 그 사랑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주는 사랑의 결과는 값지다. 우리 예수님도 사랑을 강조하셨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올해 명절에는 힘과 용기를 주는 덕담을 나누며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의 사치를 부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2022.01.30 / 김주영 기자

    인생의 결승점을 향해
  • 유럽에서는 매년 국제적인 사이클 대회가 개최된다. 그중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열리는 대회는 월드컵과 올림픽에 버금갈 만큼 위상이 높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우연히 ‘2021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경기 영상을 보게 됐다. 화면 속 수 백 명의 선수들은 경기 중반에 들어설 때까지 한 무리를 지어 움직였고 심지어 서로를 격려하며 웃고 있었다. 우승을 경쟁하는 곳에서 이러한 모습이 의아했다. 친구는 내게 “3주 동안 약 3500㎞를 달리는 경기이기에 결승선이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서로 힘을 모아 집단을 만들어 이동한다”며 장거리 경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이클 대회에서 무리를 지어 경주하는 선수들을 사이클 용어로 ‘펠로톤’이라고 부른다. 안전한 레이스 완주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서로가 협력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는 것 같았다. 장거리처럼 보이는 우리의 인생에도 인생의 결승점이 있다. 그 결승점이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천국이라는 결승점에 가려면 먼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한다. 그 후 예수님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길은 장거리 레이스와 같다. 우리는 이 길고 긴 믿음의 여행길을 신앙의 동역자들과 함께 헤쳐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또한 낙심에 빠진 사람들을 믿음의 여정에 동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 사이클의 펠로톤과 같이 모두가 협력하며 천국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 모두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되리라 믿는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 2021.10.31 / 금지환 기자

    올바른 사과
  • 얼마 전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도로를 잘 달리던 중 앞서가던 차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상자가 갑자기 운전자의 시야에 나타났다. 순간 운전자는 주변 차량들과 뒤에 오는 차량 등 2차사고 피해를 생각해 멈추지 못하고 직진했다. 차는 상자에 부딪히며 차체 하단이 심각하게 파손됐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해자는 사고 후 수습을 위해 고속도로 상황실에 연락을 한 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운전자가 낙하물 자진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직접 연락이 닿자 가해자의 첫 마디는 “죄송합니다. 다치진 않으셨습니까”였다. 그 말에 피해자는 고마움과 안심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피해보상도 적극 이행했다고 한다. ‘사고 후 올바른 대처’였다. 실수는 누구든 할 수 있다. 사고는 언제든 날 수 있다. 하지만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처가 영원히 남을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사고 후 그냥 넘어갔으면, 안 걸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반드시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올바른 사과법을 배우지 못해서 도망치거나 적반하장으로 대응 하거나 사과 대신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있다. 말로는 사과한다면서 행위가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사과에는 사고 보상을 위한 행위가 존재해야한다. 사과는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가해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순간 순간이 모여 이루어진다. 실수를 바로 잡고 대가를 치르는 것은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일이다. 인생에 기적은 있어도 요행은 없다.
  • 2021.08.29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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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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