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
V. 신론 (The Doctrine of God) - 2
  • 신 존재 증명은 이성적 측면에서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한 노력 조직신학은 신학의 여러 주제들을 조직적으로 세분화하고 체계화시켜 다루는 학문이다. 예를 들면 성령론은 성령에 대해서만 구원론은 구원에 대해서만 기독론은 그리스도에 대한 것만을 다루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신론은 하나님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인데 신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신 존재 증명’이다. ‘신 존재 증명’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일 수 있다. 어원적인 뜻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 존재 증명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이성적인 측면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다소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신 존재 증명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목적론적, 우주론적, 존재론적, 도덕적 신 존재 증명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이론과 신학적 접근에 대해 부정적인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1)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 신 존재 증명 이론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우주론적 증명이다. 우주론적 증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적 논증은 복잡한 이론이나 수사학적 기교가 아닌 간결한 논증으로 시작한다. 그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발전하고 확장되고 있는 우주의 근원을 소급해 올라가면 우주의 시작이 된 제1원인(prima causa)을 발견하게 될 텐데 이 제1원인이 되는 존재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우주의 근본 원인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신 존재 증명에 관한 논쟁은 이후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세를 지나면 인간의 이성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 발달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의 차원이 아닌 이성의 차원에서 증명하고자 하는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중세시대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존재 증명을 받아들여 신 존재 증명을 더욱 세분화하고 확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인 모든 우주의 근원이 되는 ‘제1원인’이라는 말 대신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움직임(movement)에는 그것을 일으킨 힘과 움직임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된 움직임은 또 다른 운동을 만들어가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간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모든 움직임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면 결국 최초의 움직임을 가능케 한 근원적인 힘의 요소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힘은 어떤 외부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다른 것에는 영향을 줄 수 있으나 그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을 ‘부동(不動)의 동자(動者)’라고 했으며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논증했다. 2)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 존재론적 증명은 철학적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인데 중세 시대 더욱 활발해졌다. 중세의 철학자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존재론적 논증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안셀무스는 스콜라 철학을 발전시킨 사람이다. 스콜라학파는 성경과 신학을 해석하는데 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이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안셀무스는 하나님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완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에 한계가 있는 ‘유한’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참과 거짓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인간을 발견하는 순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세의 위대한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을 이어받았다. 데카르트는 안셀무스와 달리 존재론적 증명을 조금 더 구체화했다. 그는 하나님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논증함에 있어 인간의 이성과 사고 능력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신과 인간의 연관성’ 속에서 존재론적 증명을 논증해 나갔다.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자아’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증명하려고 했던 신 존재 증명은 기독교의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철학자의 신’이라는 비평을 듣기도 한다. 3) 도덕적 증명(moral argument)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는 신 존재 증명에 대해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주장한 신 존재 증명은 ‘도덕적 증명’이다. 비록 인간의 한계와 죄를 짓고자 하는 본성으로 인해 좌절될지라도 인간은 선과 도덕적인 삶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인종, 성별, 나라, 언어, 문화적인 차이가 없다. 종교가 다를지라도 모든 인간은 도덕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추구하고 있는 최고의 도덕적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도덕적 개념을 인간에게 창조한 분이 존재하며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중 신 존재 증명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학자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증명되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자기 계시’에 의해서만 제한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토 베버(Otto Weber, 1902~1966)는 신 존재 증명을 ‘하나님을 세계화 또는 이성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왜냐하면 신 존재 증명은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규정하는 오류에 빠질 위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순절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의 세계와 인간의 이해와 한계의 밖에 스스로 계신 분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2.07.01

    V. 신론 (The Doctrine of God)-1
  • 인간의 역사와 삶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 조직신학의 신론은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 속성과 사역에 관한 신학적 접근과 이해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고 이에 반에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신존재 증명'이라고 한다. 키에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을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모욕"으로 치부하기도 했다(앤터니 티슬턴, 『조직신학』, 61).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하나님이 누구신지 규정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역사와 삶 속에서 드러나며 인간과의 소통을 통해 어떤 분인지 그의 속성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에 대한 이해 신약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구약의 하나님 이해는 차이점이 있다. 이 말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다만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이해한 것과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신약시대 기독교인의 하나님 이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1) 구약의 하나님 이해 구약시대의 하나님을 대표하는 말은 '거룩'이다. '거룩'은 하나님과 인간을 구별함과 동시에 전적인 차별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거룩의 집약체인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 흔들리는 법궤를 잡았다가 죽은 웃사의 이야기(삼하 6:1~7)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에 근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임재 속으로 자의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 민수기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민 23:19)라는 말로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아도나이)이며 인간은 그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구약의 하나님 이해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과 구원 사역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2) 신약의 하나님 이해 구약의 하나님 이해가 '거룩'이라면 신약의 하나님 이해는 '사랑'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구약의 구절에서 하나님의 거룩이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수많은 신약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일서는 하나님이 곧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요일 4:8, 16). 또한 구약의 거룩하고 죄를 심판하시는 무서운 전능자 하나님은 신약에서 '아빠, 아버지'로 기록되고 있다(롬 8:15). 이런 '하나님 이해'의 전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졌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과 같이 되셨고, 인간을 심판이 아닌 사랑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빌 2:6~8).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하나님이 되었고,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되었으며, 주인이 자신의 아들 안에서 자신을 배반하고 타락한 인간의 '아빠, 아버지'가 되셨다. 신약과 구약의 성서적 '하나님 이해' 외에도 교부와 중세시대는 물론 현대 신학자들에게 하나님 이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3) 교부와 중세시대의 '하나님 이해' 교부들은 이성과 논리를 통한 철학적 신학적 '하나님 이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 변증가인 저스틴(Justin, 100~165)은 하나님을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분'이라고 규정했으며, 클레멘트(Clement, 150~215)는 하나님은 '증명될 수 없고, 파악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신학자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 언어를 사용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했다. 『신학대전』을 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하나님을 '최초의 원인'(causa prima), '순수한 현실'(actus purus)이라고 이해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하나님은 진노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이고, 은총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이라고 이해했다. 이 말은 무서움과 파괴적인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는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은총 가운데 하나님의 참모습이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한, 불타는 화로'이며 선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루터 못지않게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멜란히톤(Melanchthon, 1497~1560)은 하나님을 율법과 복음의 이중적 인식론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율법은 하나님의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는 활동이고, 복음은 고유한 본래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이나 본질로 보지 않고 사랑인 하나님에게 따라오는 불가피한 그림자로 이해했다. 2.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론(Erroneous Theories about God) 하나님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접근 방법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들이 무신론(atheism), 불가지론(agnosticism), 유물론(materialism), 범신론(pantheism), 이원론(dualism), 다신론(polytheism), 이신론(deism) 등이다. 1) 무신론(atheism)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무신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철학적 무신론이다. 니체(F.W. Nietzsche)가 말한 '신은 죽었다'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실존론적 무신론이다. 하나님이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증명할 수도 없고 인간의 삶에 개입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2) 불가지론(agnosticism) 불가지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인정한 기독교적 사고 같으나 반기독교적인 사상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인간 속에 두셨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롬1:19). 3) 유물론(materialism)과 이원론(dualism) 유물론은 영(spirit)과 영적인 존재(spiritual being) 자체를 부인한다. 모든 영적인 현상은 뇌의 작용일 뿐이고, 유물론자들에게 죄는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이원론은 영과 물질의 영역을 구분하고, 모든 물질은 악하고 오직 영만이 선하다고 믿는다. 4) 다신론(polytheism), 범신론(pantheism), 이신론(deism) 다신론과 범신론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신론은 '많음'을 의미하는 'poly'와 '신(神)'을 의미하는 'theos'가 합쳐진 헬라어 합성어로서 많은 신의 존재를 믿으며 하나님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범신론은 힌두교와 같이 하나님과 우주만물을 동일시하는 사상으로 우주가 곧 하나님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신론은 하나님과 피조 세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전능자가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지만 피조물을 유기했으며 더 이상 인간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런 종교적 철학적 사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그의 본질과 속성에 가까이 갈 수도 없다. (다음 호에 계속)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2.04.03

    IV. 구원론 (Soteriology)-2
  • 예정론과 예지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구원론 칼뱅주의자에게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는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할 어떤 힘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인간의 선함(goodness)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인간의 행위 또한 구원의 필수 요소가 아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능력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 본 칼뱅의 5대 신조 중 첫 번째 '전인 타락'(total depravity)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빠져있다면, 그래서 누구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면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필요하다.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칼뱅주의자들은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부패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이해한다. 전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구원을 위한 그 어떤 윤리적, 도덕적 가치와 요소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는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칼뱅주의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시며 구원을 위한 믿음과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신다. 그러나 예지론을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을 주장한다. 이 조건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조건 아래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칼뱅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만인구원론(보편구원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인구원론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종교통합주의(Ecumenism) 적인 해석이다. 기독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적 사상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정확한 용어 선택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의미로 만인구원론이 사용되기도 한다. 기독교적 만인구원론은 종교통합주의적 보편구원론으로 이해될 위험성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열려있다는 의미 외에 다른 의미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으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칼뱅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온 세상의 죄를 속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는 오직 선택한 자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한 '제한적 속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택정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 예정된 사람들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칼뱅의 이런 예정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이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십자가의 사건은 온 인류를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제한적 속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에 구원은 결코 제한된 속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누구든지 자유의지에 따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첨예한 두 개의 대립과 논쟁은 500여 년이 다 된 지금도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칼뱅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불가항력적 은혜란 마치 1세기 기독교 최악의 박해자 중 하나였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체험하고 복음의 증거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음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복음을 거부하고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모든 선택된 자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구원하시는데 그 어떤 저항이나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으시며 어떤 제약이나 간섭을 받지도 않으신다. 선택된 자는 이 은혜를 거부할 수도 없으며 거절할 수도 없다. 이것이 칼뱅주의자들이 말하는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하지만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칼뱅주의자들의 불가항력적 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 가항력적 은혜(Resistible Grace)를 주장한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칼뱅주의의 마지막 5대 신조는 성도의 견인이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선택한 성도들을 성령을 통해 거룩하게 하시며 구원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끝까지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거듭난 사람은 사탄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믿음에서 떠날 수도 없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성도의 견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칼뱅주의자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성도의 견인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자유롭고 변치 않는 사랑에서 나오는 불변성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뱅주의자들이 구원을 위한 인간의 인내와 믿음의 결단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박해와 고난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끝까지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간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구원론의 정리한다면 칼뱅주의의 입장에서 구원은 인간이 배제된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이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의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다. 칼뱅주의의 예정론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 뜻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예지론은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에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정론이나 예지론이 구원론의 결론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정론과 예지론을 비교하며 보완하고 절충한다면 기독교의 구원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이전편 ☞ [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 IV. 구원론 (Soteriology)- 1
  • 2022.03.06

    IV. 구원론 (Soteriology) - 1
  •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 1517년 면죄부를 팔고 있었던 중세 가톨릭교회에 대항해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측면과 더불어 중세의 교육, 문화, 정치, 경제와 사회 각 분야에서 이전에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를 불러왔다. 종교개혁을 통해 인류는 중세에서 근대 세계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런 변화와 개혁은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의 촉발을 신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구원론의 정립과 맞물려 있다. 중세시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면죄부(indulgence)를 샀던 근본적인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한 갈망 때문이었다. 중세 교회는 이것을 이용해 면죄부를 팔아 120년 동안 이어진 성베드로성당(St. Peter’s Basilica)의 증축을 위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충당하고자 했다. 종교개혁자들은 면죄부를 팔고 있던 가톨릭교회에 정면으로 저항했으며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시기에 칼뱅(J. Calvin)을 중심으로 예정론(predestination)이 등장했다. 예정론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예정한 사람은 면죄부를 사든, 안 사든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칼뱅의 뒤를 이어 아르미니우스(J. Arminius)에 의해 예지론(foreknowledge)이 등장했는데 예지론은 예정론의 신학적 약점을 지적하며 기독교 구원론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예지론과 예정론은 지금도 논쟁 가운데 있으며 어떤 것이 우위에 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이해해야 한다. 구원론이 중세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활발한 신학적 논쟁과 함께 가장 발달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1. 구원론의 정의 ‘구원론’(Soteriology)이라는 명칭은 ‘구원, 구속’이라는 의미인 헬라어 ‘소테리오스’에서 유래됐다. 구원론은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완성할 수 있는지에 관한 신학적인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론은 구원의 서정(라틴어, ordo salutis), 즉 하나님의 부르심, 회심과 중생, 칭의와 성화 등 구원의 순서와 단계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2. 교부들의 구원론 이해 교부 신학은 영지주의와의 논쟁을 통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했기 때문에 교부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논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신학적으로 증명하는 기독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교부들이 구원론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1) 안디옥의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구원을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영적인 존재로서의 거듭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존재로 바뀌어가는 하나님의 구원론적 계획으로 이해했다. 2) 리옹(Lyon)의 이레네우스(Ireneus)는 구원을 ‘태초 창조의 회복’(Anakephalaiosis), 또는 ‘창조의 회복과 완성’으로 이해했다. 그는 구원을 인류가 타락 이전 상태로 회복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아담이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3) 초대 교회에서 중세 교회로 넘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기독교 이단 펠라기우스(Pelagius)는 아담의 죄가 인간 본성을 오염시키지 않았으며 인간의 도덕적 의지로 하나님의 도움 없이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인간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총 없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론은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개혁자들이 이를 계승했다. 3.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 이해 종교개혁자들의 구원론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구원과 ‘은총’을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이 오직 ‘은총’으로,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오직 ‘신앙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길 이유가 전혀 없으나 구원을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며 인간을 향한 그의 적극적인 사랑의 실현이라고 생각했다. 4. 예정론(predestination) 칼뱅에 의해 주장된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사람들을 이미 선택하시고 결정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칼뱅은 ‘예정’(라틴어, praedestinatio)을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라틴어, aeterna Dei electo)이라고 정의한다. 이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또한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재 세례주의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은 말씀이 없이도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고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제외한 구원은 있을 수 없다. 예정론은 5대 신조 위에 서 있다. 칼뱅주의의 5대 신조를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TULIP)이라고 부르는데, 5대 신조 각 항목의 첫 알파벳을 따온 것으로 그 내용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이다.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예정론의 가장 근본적인 교리는 인간의 ‘전적 타락’이다. 칼뱅주의자들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타락은 전인격적으로 이루어지며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인류에게 해당한다. 전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선함과 거룩한 능력이 인간에게 남겨져 있지 않다. 전적인 타락은 육체적으로는 살아있다고 해도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선한 것을 행할 능력을 상실한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그대로 보여 주며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적인 타락은 인간의 전적인 부패(total corruption)와 이런 부패 상태에서 인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전적인 무능력(total inability) 상태를 의미한다. (다음 회에 계속)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2.02.06

    III. 성서론 (Bibliology) - 2
  • 정경화 과정을 거친 구약 39권 …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성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신약 27권 3. 성경의 권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포함한 신·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디모데후서는 주후 66~67년경에 쓰였는데 이때는 아직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를 비롯한 신약성경 대부분의 책들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모데후서 자체도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정경화를 거쳐 성경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기에 딤후 3장 16절의 '모든 성경'을 신·구약 성경 모두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약성경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1) 구약성경의 권위 초대교회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구약 39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유대 전통을 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데 사도들은 이미 정경화 과정이 끝난 구약 39권을 논쟁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2) 신약성경의 권위 구약성경과 달리 아직 정경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바울의 서신서를 비롯한 공동서신과 복음서에 대한 권위를 인정할 기준이 필요했다. 신약성경의 권위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과 가르침은 다른 모든 성경의 말씀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구약 39권 중 요나서의 정경성(Canonicity)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요나서 자체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적이었던 앗시리아(앗수르)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었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너무 신화적인 요소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마 16:4)고 요나를 직접 언급하신 사건으로 요나서의 정경성 여부는 일단락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의 말과 기록보다 훨씬 권위를 가지며 구약의 기록보다 우선한다. 둘째, 사도성이다. 사도성은 신약성경을 누가 기록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신약성경이 된 베드로전·후서를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썼다면 베드로전·후서는 성경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기록한 야고보서나 바울의 편지글인 바울 서신서도 마찬가지이다. 4. 성경의 의미 성경은 십계명과 같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왕기서나 역대서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기록도 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산상수훈과 같이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한 것도 있지만 사도행전과 같이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사역과 초기 기독교의 선교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1) 교부들의 관점 교부들은 성경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눠서 이해했다. 알렉산드라 학파를 대표하는 오리겐(Origen, 185~254)은 성경의 세 가지 의미에 집중했다. 그는 첫째, 성경의 가장 근본적인 물질적 의미 즉 문자적, 문법적, 주석적(commentary) 의미를 강조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와 문법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주력했고, 유대 전통과 사도들의 해석인 주석적인 의미에도 소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둘째, 정신적(도덕적) 의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오리겐은 이것을 정신적(도덕적) 의미로 분류했다. 셋째, 영적 혹은 우화적(allegorical) 의미이다. 성경의 본문을 문자적인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교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경향이었다. 교부신학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성경의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역사적 의미, 유추(類推) 혹은 유비(類比, Analogy)적인 의미와 인과적인 의미로 세분화했다. 유비적인 관계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거나 역사적인 의미로 이해가 부족할 때 추론적인 의미를 부가해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가면서 이런 성경의 지나친 의미적 해석은 성경의 본질을 해치게 됐다. 2) 종교개혁자들의 관점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무분별한 성경의 우화적 의미나 해석을 비판하고 문자적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은 그 자체로서 분명하며, 자기 자신의 해석자이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전통을 통해 신뢰를 재확인하거나 설명되고 해석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종교개혁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와 맺은 일치신조(the Formula of Concord, 1577)는 오직 성경만이 교리의 심판자(index), 규범(norma), 척도(regula)와 시금석(Lydius lapis)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전통은 성경과 결코 동등한 것이 아니며 성경에 종속된다. 교회의 전통은 오직 성경과 모순되지 않고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5. 성경의 영감설(Inspiration) 성서론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주제 중 하나는 영감설이다. 영감설은 성경 기자들과 성령의 관계성에 관한 것이다. 1) 기계적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의 기자들은 성령이 불러주는 대로 성경을 기록한 '성령의 손', '필기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이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으나 이것은 큰 오류를 가지고 있다. 즉 성경의 기자들은 성경의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고 기록했고 성령과의 영적인 이해와 교감이 없이 단순히 받아쓰기하듯 기록했다는 뜻이다. 2) 동력적 부분 영감설 기계적 영감설이 성경의 기록자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축소한 것이라면, 동력적 부분 영감설은 성령의 역할을 극도로 제한한 것이다. 동력적 부분 영감설은 성경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받아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로 성경을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로마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바울의 책이 되는 것이다. 3) 유기적 축자적 영감설 오순절 교단을 비롯한 복음주의적인 교단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성경의 영감설이다. 성령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모든 단어를 불러 적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자들이 분명하게 무슨 뜻인지 알고 의지적으로 기록했으며, 성령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어휘, 표현, 단어를 선택하도록 인도하셨고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막아 주셨다고 믿는 것이 유기적 축자적 영감설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12.05

    Ⅲ. 성서론(Bibliology)-1
  •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낸 특별 계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책이다. 이 말은 성경의 신적권위(Divine Authority)에 도전하는 말이 아니다. 또한 인간의 문학적 활동에 의해 탄생한 일반 서적과 같이 취급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성경은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40여 명의 사람에 의해 1500여 년에 걸쳐 기록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로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내신 특별 계시이다. 이런 성경의 역사적 배경, 기록자, 정경성, 영감성(insperation), 권위, 문학적 장르와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성서론이다. 1. 성경의 문학적&역사적 배경 성경은 3개의 언어로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에스라(스 4:8~6:18, 7:12~26)와 다니엘(단 2:4~7:28 외)의 일부분은 아람어로 쓰였다. 이에 반해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헬라어 중에서도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고, ‘달리다굼’(막 5:41) ‘에바다’(막 7:34) ‘아바’(막 14;3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5:34)와 같은 몇 개의 아람어 단어와 구가 포함되어 있다. 성경이 처음으로 기록된 주전 15세기는 청동기 문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이후 강력한 철기 문명을 가진 수많은 제국의 등장과 쇠퇴가 성경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제국의 흥망성쇠뿐만 아니라 혼탁한 정치 상황 속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이야기가 여러 문학적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서는 바벨론, 메데,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멸망과 앞으로 일어날 최후의 심판까지 예언적 언어와 선포가 가득한 예언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구약성경 전체를 문학적 형식으로 나누면 모세오경은 율법서이고 여호수아서부터 에스더까지는 역사적 사건을 기술한 역사서이다. 욥기부터 아가는 지혜서(시가서)이며 이사야부터 말라기는 예언적 내용이 주를 이루는 예언서로 구분된다. 신약성경은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은 복음서, 사도행전은 역사서, 로마서부터 유다서는 서신서,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학적 형태와 역사적, 문화적, 시대적, 정치적 배경 외에도 성경을 기록한 40여 명의 각기 다른 배경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베드로는 어부 출신으로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울은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으며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고, 당대 최고의 학부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 누가는 의사였으며 마태는 유대인들이 경멸했던 세리였다. 구약의 스펙트럼은 신약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 성경이 기록된 1500여 년의 역사와 시간적 차이로 인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66권 전체는 논리적 충동을 일으키거나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고 일관된 하나님의 뜻과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다. 2. 정경화 과정(Canonization) 구약성경은 929장과 2만3214절로 기록되었으며 사용된 단어는 59만2439개이다. 신약은 구약보다 분량이 적은 260장, 7959절, 18만1253개의 단어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77만3692개의 단어, 1189장, 3만1173절로 기록된 신구약 66권의 성경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신학적 논쟁과 회의를 거쳤다. 성경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첫째, 구전(oral tradition) 단계이다.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 일어났던 천지창조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같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시대를 말한다. 둘째, 필사(manuscript) 단계이다.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게 되면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활자화되었고, 이렇게 기록된 문서들은 오랜 시간 동안 또 다시 옮겨 적는 필사의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셋째, 정경화(canonization) 과정이다.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소스(source)로 다양한 종류의 필사본이 만들어졌다. 이들 중 원본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도 있었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에 벗어난 것도 있었다. 이런 사본들을 종합적으로 검증하고 선별해 신구약 66권의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게 됐는데 이것을 정경화 과정이라고 한다. 정경(正經)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캐논(Canon)은 히브리어 ‘카네’에서 유래되었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다시 헬라어 카논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의미는 ‘자’, ‘막대기’라는 뜻으로 ‘표준이 되는 지표’를 말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규례’(갈 6:16)와 ‘규범’(고후 10:15, 16)으로 사용되었다. 정경화 과정은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의 사본(manuscript)을 찾는 작업이다. 1) 정경화 과정의 필요성 지금은 인쇄술의 발달로 성도들이 쉽게 신 구약성경을 얇은 한 권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갈대를 엮어 만든 파피루스나 양의 가죽을 종이처럼 사용한 양피지에 성경을 기록했다. 파피루스는 건조한 날씨에는 쉽게 부서졌고 양피지는 부피가 너무 컸고 파피루스보다는 내구성이 좋았으나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새로운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계속해서 옮겨 적어야 했다. 이런 필사의 과정에서 몇 가지 큰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첫째, 기록자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오기의 문제가 생겨났다. 둘째, 부식되거나 부서진 조각들로 인해 사라진 단어나 문장들이 생기게 되었다. 셋째,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많은 양의 필사본이 생기다 보니 어떤 것이 가장 원본(정경)에 가까운지 판단을 해야 했다. 넷째, 필사본들 사이에서 내용이 서로 어긋날 때 어떤 것이 원래의 뜻인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지금의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 구약의 정경화 과정 구약의 정경화 과정은 신약보다 조금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구약은 유대인들이 정경으로 확정한 구약 39권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구약은 주전 5~4세기경 학사인 에스라와 랍비들에 의해 거의 확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완전히 공식화 하고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주전 400년경에 모세오경을 정경으로 확정했고, 주전 4~3세기 무렵에 예언서를, 주전 160~105년에 그 외 다른 구역의 책들이 정경으로 인정됐다. 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이미 확정해 놓은 구약 39권을 주후 90년 얌니아(Jamnia) 종교회의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3) 신약의 정경화 과정 신약성경은 주후 45~100년 사이에 다 쓰였다. 그러나 지금의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3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복음서와 바울 서신들은 쉽게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363년 라오디게아와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를 거치며 지금의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이후에도 정경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며 정경에 대한 논쟁은 완전히 종식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2021.11.07

    II. 조직신학 개관
  • 인간의 이성과 사고체계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도와 1. 조직신학이란? 조직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논리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변증하는 학문이다. 신학은 크게 성서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조직신학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서신학이 성경 본문에 사용된 언어, 문법적인 요소, 구문의 사용, 해석 등 성경 본문에 관한 것이라면 역사신학은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실천신학은 목회, 예배, 설교, 선교, 사역 등 실천적인 부분을 다루는 분야이다. 이에 반해 조직신학은 신학의 이론적 부분에 해당하며 인간의 이성과 사고체계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학문이다. 또한 시대마다 변화하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대해 기독교 관점에서 반응하고 답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에밀 브루너(Emil Brunner)는 조직신학은 우리 시대의 언어로 성서를 옮기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알트하우스(Althaus)는 조직신학이 기독교 진리를 오늘날 우리와 관련된 타당성 속에서 철저히 해명해야 하는 신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 조직신학의 필요성 바울의 서신서는 그의 선교 기간 동안 그의 영향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겪고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변서이다. 바울은 이교도와의 종교 혼합주의, 혹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과 유대인들의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해 그의 서신서를 썼으며 공동서신서들 또한 이런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초대교회 시절부터 사도들과 교부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 변론하고 증명하는 신학적 논쟁이 있었다. 21세기 인간 사회는 1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변화되었고, 인간은 복잡한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더 많은 문제에 답을 제시하고 기독교 신앙을 변증해야만 한다. 조직신학은 이론적인 학문으로서 다음과 같은 필요성과 당면 과제를 가지고 있다. 1) 기독교 신앙을 논리적이고 조직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함 조직신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변증이라는 말과 함께 '논리적', '체계적'이라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진리이다. 그런데 진리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면 또한 체계적이지 않다면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성경은 약 1500년 동안 40여 명의 서로 다른 기록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을 '저자'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딤후 3:16)이기에 성령을 성경의 제1저자로 받아들이고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을 '저자'가 아닌 '기록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순절 성서론의 특징 중 하나이다(추후 성서론을 다룰 때 다시 한 번 언급될 것이다). 비록 시대와 상황을 달리하는 기록자들에 의해 성경이 기록되었지만 하나의 진리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것이 조직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또한 조직신학이 다루는 각각의 주제들(이것을 조직신학에서는 각론이라고 하는데), 즉 성서론, 신론, 삼위일체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죄론, 구원론, 은사론 등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변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2) 기독교 신앙과 교리를 논리적으로 변증하기 위함 조직신학은 보편타당한 기독교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학문적 방법론이 기독교의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비록 기독교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철학과 이성, 학문적 방법론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런 방법론이 기독교의 진리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기독교의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세상의 철학이나 교회의 전통, 개인의 체험, 인간의 이성이 될 수 없으며 신학의 근거와 내용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의해서 비판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3)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는가를 검증하기 위함 조직신학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학문이다. 이 질문은 과연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교회, 또한 우리의 공동체와 사회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이것은 중세 교회의 타락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질문이기도 했다. 조직신학은 교회의 전통, 목회활동, 선교, 윤리, 케리그마, 교육과 같은 교회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성경의 진리와 부합한가를 묻고 그것을 검증해야 한다. 3. 조직신학의 발전 조직신학을 유럽에서는 보통 교의학이라고 부르고 영미권에서는 조직신학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서로 큰 차이는 없다. 교의학(Dogmatics)이라는 명칭은 라인하르트(L. Reinhart)가 『교의신학개요』(Synopsis theologiae dogmticae, 1659)라는 책을 쓰면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교의학에서 사용된 헬라어 '도그마'(δογμα)는 δοκειν(도케인:생각하다)과 μοι(모이:나)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법적인 언어로도 사용되었고 철학적인 언어로도 사용되어 '법적인 처분' 또는 '철학의 근본원리'를 의미한다. 17세기 이후에 이것이 신학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교의학이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조직신학은 교부들의 이단과의 논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이후 본격적으로 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는데 그는 마니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기독교를 변증하며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또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해 그의 신학은 더욱 세련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적 인식론', '교회론', '영성신학', '은총론' 등에서 조직신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은총론'은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에 접어들어 기독교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그가 저술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중세 조직신학의 절정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중세교회의 암흑기를 끝낸 종교 개혁자들의 주된 관심은 구원론이었다. 왜냐하면 중세 가톨릭교회가 면죄부를 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현혹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칼빈은 예정론을 주장하며 면죄부를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선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예정론은 아르미니우스(Jacobus Arminius)가 주장한 예지론과 신학적 논쟁에 휩싸였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18세기 존 웨슬리(John Wesley)의 등장은 조직신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웨슬리의 신학적 관심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관한 구원론보다 구원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웨슬리의 영향으로 18세기 중후반까지 신학적 중요 화제는 구원론에서 점차 성화론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신학과 비평신학이 급속히 확산했고 그 영향으로 기독교 신학은 점점 퇴색되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오순절 운동에 의해 이런 신학적 흐름은 다시 복음주의 신학과 성령론 중심의 신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다음글 : [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직신학]Ⅲ. 성서론(Bibliology)-1
  • 2021.10.03

    I. 오순절 신학 프롤로그(Prologue)
  • 한 사건(event)이 사회와 나라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일으키는 종교적, 사회적 운동(movement)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성(continuity)과 확장성(extensibility)이 있어야 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행 2)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 그리스-로마의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초대 교회의 탄생과 바울의 선교를 중심으로 한 세계 선교의 문을 열었다. 기독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종교, 사회, 정치, 문화와 거센 충돌과 갈등을 겪었지만 소아시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됐다.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337)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의 공식 종교 가운데 하나로 공인되었다. 이후 380년 데오도시우스 1세(Flavius Theodosius, 347~395)에 의해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수많은 박해와 탄압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1. 오순절 신학의 필요성 20세기 오순절운동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새로운 변화와 영적 갱신을 불러왔다. 초기 오순절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20세기 오순절 운동 또한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시작되었으며 교회의 부흥과 선교, 영적 갱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이전에도 시대를 달리하며 영적 갱신 운동은 이어져 왔다. 존 웨슬리를 중심으로 한 성결 운동(Holiness movement)과 무디(D.L. Moody, 1837~1899)를 중심으로 한 부흥 운동은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이 일어났고 전 세계적 교회의 성장과 영적 갱신으로 발전됐다. 1800년대까지 오순절 기독교인은 전무했다. 하지만 1900년대에 이르러 98만1000명으로 늘어났고, 2008년에는 6억165만2000명, 2025년에는 7억9829만9000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증가세는 다른 기독교 그룹들과 비교에서도 큰 차이를 나타낸다. 특별히 아프리카와 남미와 아시아에서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루에 7만7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91%에 해당하는 7만명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미에서 증가하고 있다.[David Barrett, "Missiometrics 2008: Reality Checks for Christian World Communions" in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32, No. 1 (January 2008), p27~30. ] 20세기 초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오순절운동은 과거의 영적 갱신 운동과는 다른 신학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오순절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은 은사를 동반한 성령 체험이라는 것이다. 초기 오순절운동이 신비주의나 비성경적인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던 것은 성령의 은사적 체험에 대해 신학적인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신학의 방법(Methodology)과 신학화(Theologization)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서로 분리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으나 신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변론하고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신학자는 바울이라고 할 수 있다. 헬라와 유대교 사상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바울의 모습은 사도행전과 그의 서신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 특별히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논쟁을 벌인 것을 기록하고 있다(행 17:16~18). 성경을 기록한 바울을 신학자의 그룹에 넣는 것이 과하다면, 이레니우스(Irenaeus, 130~202)를 가장 먼저 교회사에 등장한 조직신학자로 볼 수 있다(앤터니 티슬턴, 『조직신학』, p30). 이후 교부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합리적으로 변호하고 증명하기 위한 변증서(apologia)를 지었다.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신학은 세부화 되고 다양해졌다. 현대 신학을 크게 조직신학, 역사신학, 성서신학, 실천신학, 선교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합리성이다. 신학의 분야와 주제가 다르다고 해도 기독교의 진리에 관한 일관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한 합리적 논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신학으로 설 수 없다. 오순절 신학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신학 용어 중에 '신학화'(Theologization)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 또는 영적인 운동이 신학으로 정립되는 과정을 말한다. 오순절 신학은 운동에서 신학으로 발전하는 신학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순절 신학의 가장 큰 과제 중의 하나는 어떻게 성령의 역동적인 체험을 사변적인 변증이 요구되는 신학으로 증명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합리성을 놓쳐서도 안 된다. 판넨베르크는 성령의 체험과 신학의 사변적 기능이 충돌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은 듯하다. 일부 오순절주의자들 조차 성령 체험을 신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신학적 논증과 성령의 작용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있다고 이해한다. 특별히 바울은 성령을 신뢰함과 동시에 성령 체험에 대한 사색과 논증을 심도 있게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Wolfhart Pannenberg, Basic Questions in Theology Vol 3 (London: SCM, 1978), p35.] 3. 교부 신학(Patristic Theology)과 오순절 신학(Pentecostal Theology) 기독교 신학의 주된 관심과 쟁점들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 기독교 신학은 시대마다 부각된 신학적인 논쟁과 변론을 통해 더욱 체계화되고 세분화 되었으며 학문적인 깊이를 더하며 발전해 왔다. 초대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가장 큰 위협을 주었던 것은 영지주의(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신학적으로 교부들의 가장 큰 적이었지만 동시에 교부신학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조력자이기도 하다. 영지주의는 유대교와 이방 종교가 혼합된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고 헬라 철학, 유대교, 기독교의 사상과 신앙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했다(윌리스터 워커, 『세계기독교회사』, p62). 영지주의가 추구했던 것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은 '영적인 지식' 또는 영적인 경험을 통한 지혜였다. 교부 시대에 넓은 지역에서 여러 종교와 혼합되어 있었던 영지주의는 고대 근동의 철학과 종교를 바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재해석했다. 그들은 많은 기독교인을 현혹시킬만한 논쟁의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 등과 같은 교부들은 영지주의자를 일찍부터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난 이교도로 취급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인 사고와 종교 혼합주의 사상을 섞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고, 교부들은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적 사상에 맞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변증에 힘을 기울였다. 교부들은 영적인 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며 물질세계와 인간의 육체에 대해 경시하고 있었던 영지주의자들과 피할 수 없는 신학적 논쟁에 직면했었다. 이로 인해 교부들의 신학적인 관심은 자연스럽게 온전한 인간이며 온전한 신인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되었고 이는 조직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독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을 마무리 짓고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니케아 공의회(325)를 기점으로 영지주의의 세력은 점차 위축되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313)한 후 영지주의와 관련된 수많은 문헌은 불타거나 파괴되었으며 많은 영지주의자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 다음글: [평신도를 위한 오순절 조식신학] II. 조직신학 개관
  • 2021.09.05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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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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