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신론 (The Doctrine of God) - 3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강조되면 하나님 모습 왜곡될 수 있어
4.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믿음의 대상이며 실체인 하나님을 철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은 헤어 나오지 못할 블랙홀을 헤매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인간 속에 두신 하나님의 선재적 행위로 인해(롬 1:19)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무모한 신기루를 쫓는 행위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이다. 모든 사물은 의미와 이유를 갖고 있다. 그 어떤 것도 고유한 의미 없이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은 무질서하게 계획과 목적이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 만약 어느 하나라도 궤도를 이탈하거나 다른 영역을 침범한다면 예기치 못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일정한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세심한 관찰 결과에 근거해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목적론적 증명이다. 목적론적 논증은 고대 철학자들도 사용했던 방법론으로써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를 중심으로 한 스토아(Stoa) 학파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신학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철학적인 용어인 ‘형상’(形相, form)과 ‘질료’(質料, matter)라는 단어를 썼다. 어떤 질료도 갖고 있지 않은 채 형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순수 형상(entelecheia)이라고 규정을 했는데, 이것을 신(God)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적인 복잡함을 제거하고 목적론적 증명을 신학적으로 단순하게 접근하면 이렇다. 세상 모든 만물은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는데, 그 목적을 부여하고 목적대로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인 순수 형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논쟁과 당위성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 신 존재 증명은 신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는 아니다.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신학자들도 많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지난 호를 참조). 현대 신학자들의 관심은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이나 철학, 혹은 학문적 방법론으로 증명하려는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있다. 1)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의미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개인 속에 거하시는, 혹은 인간의 삶과 공동체 안에 내재하시는 분이신가?”아니면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초월적이신 분이신가?”에 대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한 문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하는 주기도문 서두에도 잘 나타난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분명히 하나님의 초월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라는 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고 계신 내재적 하나님을 함축적으로 일컫는 단어이다. 2) 하나님의 초월성 하나님의 초월성은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모습에서 극명하게 나타고 있다. 천지 창조 속에 인간은 한 피조물일 뿐 천지 창조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피조물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그의 창조물과의 근본적인 차이를 넘을 수 없는 초월성을 갖고 계시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적인 사건들은 자연적인 현상과 요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하나님의 초월성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내재성마저 하나님의 초월성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칼 바르트(K. Barth)와 브라운(W.A. Brown)이 있다. (1) 칼 바르트(K. Barth)는 인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보여 주신 것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의 ‘자기계시’조차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바르트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본성, 소유, 행위의 순수한 한계와 순수한 시초이며 인간과 모든 인간적인 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 무한한 질적인 차이 속에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브라운(W.A. Brown)은 만약 하나님이 세계의 근거와 세계의 깊이로서 이 세상에 매어 있다면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되는 자신의 자유와 독자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은 언제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의 내재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하나님의 주권은 쉽게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휴머니즘적인 사랑은 쉽게 동질화 될 수 있다. 즉, 다시 말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 위한 심판과 징벌도 하나님 사랑의 일부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 그의 초월적 선택과 주권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내재성 하나님의 내재성은 역사적으로는 타락과 회개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그들의 희생 제사를 받으시고 전쟁에 개입하시며 개인의 삶을 주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의미한다.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로빈슨(John A. T. Robinson) 등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1) 본 회퍼는 하나님은 주변 세계나 배후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의 중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는 ‘세상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D. Bonhoeffer, Widerstand und Ergebung 9 (Aufl, 1959), 184f; 필만, 『교의학』, 189). (2) 틸리히는 관념주의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은 내재화된 초월자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초월성보다는 인간의 삶 속에 내재화된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 (3) 로빈슨은 하나님은 세계 위에, 또는 세계 밖에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깊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내재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인간의 자율성은 사라지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세상의 악과 부조리 또한 하나님의 의지로 치부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내재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위험에 빠질 우려도 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균형을 잡지 못하면 신앙은 변질되기 쉽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강조되면 하나님의 모습은 심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왜곡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대한 깊은 신학적 고찰과 신앙적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상윤 목사(홍콩순복음교회 담임)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