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3. ‘소망상’- 성은숙
  • 제목: 영원의 시간에 계신 엄마께 엄마가 오랜 세월 살았던 이곳에서 나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람을 맞고, 같은 햇빛을 받아요. 엄마가 심은 은행나무를 만나고, 엄마의 손길이 닿은 화단의 꽃들을 만나고, 엄마의 오랜 친구였던 난 화분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기억해요. 엄마 계실 땐 늘 버리라고 참견했던 베란다의 항아리들도 엄마의 마음과 손길이 오래 닿았던 유산이라 화석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네요. 이렇게 남겨진 것들이 많은데 정작 엄마는 다른 세상에 계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4월은 엄마가 세상에 오신 계절, 등을 밝힌 듯 환하게 핀 봄꽃들만큼이나 내 가슴엔 그리움과 회한이 가득 차올라요. ‘좀 더 다정한 딸이 될걸, 좀 더 많은 시간을 엄마와 보낼걸.’ 때늦은 후회만 가득한 이 봄은 엄마 보듯 반가우면서도 마음 아린 날들입니다. 눈부신 꽃그늘 아래에서 분분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엄마의 편지일까, 생각해요. 가슴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엄마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이 혹시 엄마일까, 생각해요. 길 잃은 아이처럼 어디로 갈지,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해요. 엄마, 삶은 무엇일까요, 죽음은 또 무엇일까요. 청년기에 누군가를 향해, 어쩌면 나 자신을 향해 뜨겁게 질문했던 것들을 엄마 떠나신 후, 다시 질문하고 있어요. 엄마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이제 그 답을 얻으셨겠지요. 그것만이 단절의 황망함과 이별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생명이 밝고 분주한 낮의 시간이라면 죽음은 조용히 불을 끄고 안식을 얻는 시간 같아요. 그 안식의 시간에 우리에겐 미지의 또 다른 세상이 주어질 거라 믿으며 담대하게 길을 떠나는 것이겠지요. 생명을 주신 분이 그분의 신실하심대로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셨을 테니까요. 120년 전, 이 땅에 왔던 선교사 로제타 홀은 말했죠. “우리가 인내의 걸음으로 피곤한 삶의 샌들을 풀고 쉴 곳에 이른다면, 우리 삶의 모든 고난과 의문을 하나님이 제일 잘 아시고 인도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한 번뿐인 삶이 귀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척박한 땅에서 헌신하며 생명을 바친 선교사님들을 생각할 때, 저는 우리들의 ‘어머니’로 일생을 헌신하신 엄마를 떠올리곤 해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명들을 낳고 돌보며 키워낸 당신의 시간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것인지요. 당신은 어쩌면 삶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서 작게만 여겨지는 자화상에 우울했을 시간도 있었겠지요. 어린 생명들을 품에 안고 책임 때문에 중압감을 느낄 때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도 어느 날 엄마의 일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어요. “자식은 낳을수록 예쁘고 사랑스럽다. 죽을힘을 다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사실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 엄마, 당신이 계셔서 우리는 고난도 고난인 줄 몰랐고, 가난도 가난인 줄 모르고 행복했습니다. 이제 앞서가신 그 비밀의 시간 또한 엄마가 우리 앞에 꽃등처럼 환하게 켜두신 빛을 따라 걸어갈 거예요. 갈수록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도, 영원의 시간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을 거라 믿어요. “엄마 사랑합니다. 당신은 최고의 엄마였고, 한 생애를 아름답게 살아내신 분입니다.”
  • 2026.08.02 / 복순희 기자

    참 평안
  •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열왕기하 4장 25~26절)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인사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함께 예배드리는 예루살렘, 바울, 안디옥 부속 성전과 영광대학, 시온 성전, 지성전 및 기도원, 독립 지교회, 전국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650여 교회, 해외 선교지 교회, 기도처, CTS, CBS 생방송으로 지금 방송하고 있는 GOOD TV, C채널, CGNTV, CBS 라디오 방송, 극동방송 OTT, 그밖에 인터넷과 모바일로 예배드리는 전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참 평안입니다. 열왕기하 4장 25절부터 26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참 평안”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평안”. 우리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기에 정말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환난 풍파가 몰아닥쳐도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온몸에 병이 찾아오고 삶의 기쁨이 사라지고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잠언 4장 23절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환난 중에도 우리가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늘 주님의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잠언 17장 22절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여러분, 마음을 지켜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내 마음 평안해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수넴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넴 여인은 수넴 지역에 사는 아주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믿음 좋은 여인으로서 엘리사 선지자가 그곳에 찾아올 때마다 언제나 자기 집으로 모셔서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또 머무실 방을 준비해서 편히 쉬었다 가게 하면서 주의 종을 잘 섬기는 주님의 귀한 여종이었습니다. 늘 이곳을 지날 때마다 수넴 여인이 너무나 극진히 자신을 섬겨주기 때문에 하루는 그 여인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주의 종을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고 섬기는데 뭐 원하는 것이 있느냐. 그녀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 때 그 옆에 사환 게하시가 말합니다. “남편이 많이 늙었는데 이 가정에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이미 남편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에 대해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말하기를 1년 후에 이 가정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수넴 여인이 처음에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 16절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대로 1년 후에 사랑스러운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열왕기하 4장 17절입니다.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아이가 없이 그냥 둘이 그저 적적하게 지내던 가정에 늦둥이가 생겨났으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워싱턴 순복음 제일교회 이규성 장로님이 결혼한 지 23년 만에, 53살에 첫 아이를 얻었는데 온 교회에서 손뼉을 치며 그 아이를 낳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성경이가 지금 다 커서 이제 시집갈 때가 됐는데, 그렇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아이를 주시니까 얼마나 기쁜지 그냥 그냥 눈만 뜨면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아기가 기쁨이고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추수 절기에, 이 아이가 아버지 밭에 추수하는 것을 구경하러 갔는데 갑자기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내 머리가 너무 아파요. 내 머리가 너무 아파요.” 막 소리를 지릅니다. 아버지가 놀라서 일꾼들에게 “빨리 이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라.” 그래서 일꾼들이 아이를 안고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어머니에게 안겨주니까 아이가 어머니 품에 “엄마, 아파.” 아파하다가 숨을 거뒀습니다. 1. 절망적 현실을 만난 여인 늦둥이로, 기적적으로 얻은 그 아들이 그녀 품에서 숨을 거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순간 모든 꿈과 희망이 다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늦둥이 아들을 보면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삶의 기쁨이고 낙이었는데 이제 그 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다시는 아들과 함께 웃고 웃으며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되니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기치 못한 슬픈 이별의 시간을 만납니다. 오늘도 아침에 제가 설교 준비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우리 교회 학교 동료로부터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왔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일 텐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님과 헤어지고 남편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너무 고통스럽게도 자녀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슬픔은 누가 위로를 해줄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반려견 1,500만 시대라 가족같이 지내는 사랑하던 반려견이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의 마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건강하게 지내다가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가보니까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잘 되던 사업이 갑자기 무너져 파산하기도 하고, 착하게 자라던 아이들이 사고를 치기도 하고, 정말 믿고 모든 걸 맡기던 사람이 배신해서 큰 피해를 주는 그런 일들이 생겨납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무너진 절망의 시간에 주저앉아서 낙심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 해결자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절망의 순간에 절대자 하나님께 나오면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왜 내가 이방의 나라에 가서 그 수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느냐 불순종해서 다시스로 들어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큰 풍랑을 만나게 되고, 문제의 원인이 된 요나는 바다에 던져져서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낙심하여 그 인생을 끝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요나 2장에 그의 기도가 나옵니다. 요나 2장 2~3절, 5절, 9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그 절망의 자리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요나를 니느웨 그 앞에 바닷가에 토해놓게 하셨습니다. 요나 2장 10절입니다. “야훼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그래서 그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모든 니느웨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성경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간절히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2절, 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너희가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그 기도를 들을 것이다. 절망의 때, 문제를 만났을 때, 중병에 걸려서 의학적으로도 어떻게 치료하는 것을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절망의 자리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나를 건져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앙 수넴 여인은 자기 아들이 자기 품에서 숨을 거두자 조용히 그 아들을 안아서 엘리사 선지자가 오시면 늘 머무는 그 방에 들어가 침상에 누이고 급히 사환을 데리고 나귀를 타고 엘리사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앞에 엎드려 발을 부둥켜안고 자기 아들이 죽었음을 알립니다. 열왕기하 4장 27절, 28절입니다.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야훼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이 여인이 주의 종의 발을 안고 눈물로 “내가 언제 아들을 구했습니까? 내가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생기겠냐고 말했는데, 내게 아들을 주셨는데, 왜 아들이 죽었습니까? 그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기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수넴 여인을 보고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주면서 이 지팡이를 가지고 먼저 빨리 달려가서 그 아이 얼굴에 올려놓으라 지시합니다. 열왕기하 4장 29절입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달려가서 아이에게 지팡이를 올려놓아라. 사람을 만나서 인사하고 인사 나눌 그런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가서 아이 얼굴 위에 지팡이를 올려놓아라. 그래서 게하시가 달려가서 지팡이를 얼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엘리사 곁을 떠나지 아니합니다. 게하시를 따라 같이 뛰어간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하 4장 30절입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야훼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이제 엘리사가 일어나니까 그 여인과 함께 자기 아들이 죽어 누워 있는 침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 절망의 때에 절대 하나님 곁을 떠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고 아예 교회에 발을 끊고 더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를 당할 때 주님께 더 달려 나와서 주님을 붙잡아야 하는데, 이 여인처럼 꼭 붙들어야 하는데, 교회가 멀어지고 예배가 멀어지고 주의 종과 멀어지면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 주님께 간구하며 주님 곁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 곁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붙어 있어야 주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게하시가 먼저 달려가서 지팡이를 올려놓았지만, 그 아이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여인이 아마 따라갔다면 더 절망했을 거예요. 그러나 여인은 엘리사와 함께 이제 천천히 그 자기 아들이 죽은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 31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 뛰어갔다가 지팡이를 놔도 아이가 안 사니까 돌아와서 지금 아이에게로 오는 엘리사와 그 여인 앞에 말합니다. “지팡이를 올려놓았는데 아이가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절망의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우리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 집에 도착해서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고 다시 한 바퀴 돌고 나서 또 아이 위에 엎드리고 나니까 아이가 재채기를 하고 살아납니다. 열왕기하 4장 35절입니다.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 할렐루야, 죽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암이 떨어져 나가고 타락했던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무너졌던 사업이 다시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삶 가운데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배경에는 수넴 여인의 절대 긍정의 믿음이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기 위하여 달려갈 때 엘리사 선지자가 보니까 급히 저 멀리에서 수넴 여인이 오는데 뭐가 큰 문제를 갖고 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환 게하시에게 달려가서 무슨 문제가 없는지를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 26절입니다.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달려가서 묻습니다. “아무 일 없습니까? 당신 괜찮습니까? 남편은 별일 없습니까? 아이는 별일 없습니까?” 이렇게 묻는데 “큰일 났습니다. 우리 애가 죽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말하지 않았습니다. “평안합니다.” 할렐루야. 절대 긍정의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내 마음이 평안합니다.” 왜?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기 때문에 평안하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어떤 문제를 만났어도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문제보다 크시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 마음의 평안함을 갖고 나가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7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서, 정말 인생의 제일 밑바닥까지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다고 할지라도 마음의 평안함을 갖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붙잡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절망의 상황이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을 갖고 오고 주님의 평안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평안을 고백한 위대한 믿음의 사람 호레이쇼 스패포드씨의 간증을 드리기 원합니다. 이분은 뉴욕 트로이시에서 1828년 9월 25일에 태어났는데, 그가 법학을 전공해서 시카고의 저명한 변호사로 시카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로 활동했고, 노스웨스트 신학교의 이사와 운영위원으로도 섬겼습니다.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 부흥사의 동역자로서 재정적인 모든 것을 담당하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연거푸 다가왔습니다. 1870년, 그의 42살 나이에 사랑하는 외동아들이 4살인데 숨을 거뒀습니다. 아들 하나, 딸 넷인데 아들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급성 전염병에 의해서 하늘나라로 갔고, 그다음에 시카고 대화재가 났습니다. 온 시카고가 잿더미가 됐는데 그는 갖고 있던 모든 부동산과 대저택이 다 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고 그가 섬기던 교회도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됐습니다. 자기 전 재산이 다 날아갔는데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뛰고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 안나 스패포드는 너무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건강이 악화되자 의사가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권했습니다. 마침 영국에서 무디 부흥사의 부흥 집회가 열리게 되어 있어서 “여보, 우리 온 가족이 휴식도 하고, 또 부흥에도 참석할 겸 우리 영국으로 갑시다.” 그래서 아내와 네 딸과 본인이 같이 영국을 가도록 표를 예약했는데, 그때는 다 배로 여행하던 때니까, 본인이 같이 가기로 한 날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부인과 네 딸을 먼저 보내기로 하고 1873년 11월 15일 뉴욕항에서 아내와 네 딸이 프랑스 호화 여객선인 빌르 뒤 아브르호(Ville du Havre)에 승선해서 뉴욕항을 떠납니다. 배가 순조롭게 항해하는 듯했는데 출항한 지 7일째 되던 날, 1873년 11월 22일 대서양 한복판에서 영국 철갑선 록 언호(Loch Earn)와 정면 충돌해가지고, 12분 만에 배가 완전히 가라앉아서,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사람 3분의 2가 다 죽었는데 226명이 죽고 87명만이 구조되었습니다. 스패포드의 아내 안나만 기적적으로 구조되었지만 첫째 딸 애니, 둘째 딸 매기, 셋째 딸 베시, 넷째 딸 타네타가 다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 도착한 안나는 남편에게 짧은 전보 한 통을 보냅니다. “혼자만 구조되었음”. 이 전보를 받아 든 스패포드 씨는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곧바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넙니다. 항해 도중에 선장이 찾아와서 조용히 말합니다. “선생님, 지금 이 배가 지나가는 곳이 바로 네 따님이 잠든 곳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슬픔이 갑자기 몰려 들어와서 선실에 들어가서 밤새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일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셨습니까?” 사랑하는 네 딸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그 아버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밤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마음에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평안함을 부어주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열왕기하 4장 말씀이 떠오르면서 자기 외동아들을 잃었는데도 평안하다고 고백한 수넴 여인의 그 믿음이 자기 마음 가운데 다시 새롭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는 고백합니다. “내 마음 평안합니다. 내 마음 평안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는 갑판에 올라가서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와 거센 파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가지고 찬송을 짓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찬송이 우리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입니다. 1절이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삶이 잔잔한 강처럼 평안할 때도 있고, 거대한 폭풍을 만나는, 그러한 고난의 폭풍을 만나는 것 같은 고난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평안합니다.” 그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니 파도치며 달려오는 그 거센 파도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사탄이 나를 삼키려고 저렇게 파도치는 것처럼 나에게 달려와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내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것이다. 2절을 짓습니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그 순간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면서 3절을 짓습니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었는데 뭉게구름 사이로 네 딸이 “아빠!”하고 손짓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펜을 들어 4절 가사를 짓습니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스패포드 씨는 사랑하는 자녀를 모두 잃은 슬픔 속에서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그는 1881년 아내와 같이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유대인 소년 엘리아후를 양자로 삼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를 섬기는 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아메리칸 콜로니 공동체를 세워서 고아원, 병원,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다가 1888년 9월 25일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 놀라운 평안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주님 앞에서 믿음을 부여잡고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평안해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08.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8일(토) - 네 입을 크게 열라
  • ◎ 말씀 : 시 81:7~10 ◎ 찬송 : 361장(통 480장) 시편 81편에서 하나님은 “네 입을 크게 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더욱 담대히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삶이 풍요로워 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은 옅어지고 기도는 메마르기 쉬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온전히 설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감당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는 나의 필요를 넘어 영혼 구원과 선교라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꿔야 합니다. 그러므로 입을 크게 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눈을 열어 주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7일(금) - 참된 이웃
  • ◎ 말씀 : 눅 10:33~37 ◎ 찬송 : 449장(통 377장) 율법에 밝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했지만 당시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은 다가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준 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참된 이웃이라 칭하시며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내 이웃인가’를 따지지만 주님은 우리가 먼저 참된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앎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우리의 작은 손길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회복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그 순간 우리를 통해 흐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라는 말씀을 지식으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삶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8월 6일(목) -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니라
  • ◎ 말씀 : 눅 9:46~48 ◎ 찬송 : 455장(통 507장)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큰지 다투며 자신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그가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셨습니다. 세상은 높아져야 성공이라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아짐이 곧 위대함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큰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이를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존중하며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에 높임을 받는 귀하고 복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낮아짐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참된 큰 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를 세워주는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 절대 감사
  • 감사는 믿음의 척도 성도의 삶은 감사의 삶이 되어야 한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봉사, 헌신 등은 모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골 3:16).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성도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셨다. 여기서 ‘범사’라는 헬라어 ‘엔 판티’는 ‘모든 것에’라는 의미이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모든 환경에서”라고 번역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명하시는 감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우리는 절대 감사의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절대 감사를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온갖 고난과 핍밥을 당했다. 그런데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권면했다(빌 4:6~7).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감사함으로 구하는 기도는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 욥은 다복한 가정, 사회적 명예와 재물 등으로 윤택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을 받아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도 잃었다. 아내는 그를 원망하며 떠났고 친구들은 그를 정죄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주신 분도, 거두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임을 고백했다(욥 1:21).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신 은혜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는 값싼 은혜가 아니다.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시는 대가를 치르셨다. 더욱이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게 아니다. 이 같은 구원의 은혜에 우리는 한평생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감사는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깊은 곳까지도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입술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듣길 원하신다. 감사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불평과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기를 실천하자.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감사를 드렸고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옥터가 흔들리고 닫혔던 문이 열리며 손과 발에 매인 것이 모두 풀어지는 기적을 베푸셨다. 감사 안에 기쁨, 평화, 사랑, 회복이 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넘치는 감사로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 2026.07.31 / 김주영 기자

    임지택 목사(천안순복음소망교회 담임) - 세상은 작은 친절을 기다립니다
  • 요즘 우리는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니 서로를 돌아볼 여유를 잃어가고, 작은 실수에도 쉽게 화를 내며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차가운 말이 더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것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친절입니다.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이 편의점에서 무선 이어폰을 진열대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직원들은 자신의 일처럼 바닥에 엎드려 끝까지 이어폰을 찾아주었습니다. 그 작은 친절은 관광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한국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은 친절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거창한 사랑보다 작은 친절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돈이나 성공보다 따뜻한 마음을 더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친절을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친절을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합니다(갈 5:22~23).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작은 친절로 가득했습니다. 병든 사람의 손을 잡아 주셨고 눈물 흘리는 사람과 함께 우셨으며, 사람들이 외면한 사람을 끝까지 품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기적은 능력의 기적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지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해결책보다 “잘 지내세요?”,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오늘도 작은 친절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의 작은 친절을 통해 오늘도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십니다. 올여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작은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은 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026.07.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옥한흠 목사 부인, 김영순 사모 별세
  • 이영훈 담임목사는 7월 26일 故 옥한흠 목사의 아내 김영순 사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김영순 사모는 7월 2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세 아들 옥성호·승훈·성수 씨가 있다.
  • 2026.07.31 / 김용두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