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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자가·대기업보다, 베들레헴
  • 모두가 오르려 할 때 예수님의 내려오심 성공의 자리보다 사랑의 자리로 옆자리 직원이 “수지자가대기업배부장입니다”라고 말하기에 ‘그게 뭔 소리야?’ 하고 웃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제목이 〈서울자가대기업김부장〉이라 했다. 제목만 봐도 이 시대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서울’은 기회의 상징, ‘자가’는 안정의 상징, ‘대기업’은 부와 권력의 상징, 그리고 ‘김부장’이라는 이름은 사회적 성공과 인정의 표식처럼 들린다. 많은 이들이 믿는다. “올라가야 성공이고, 오르지 못하면 실패다.” 하지만 12월, 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가장 낮은 자리인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셨고 사람의 옷을 입고 세상 한가운데로 ‘내려오셨다.’ 김부장의 자리, 예수님의 자리 세상은 말한다. “높이 올라야 산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낮아져야 크다.” 예수님의 첫 요람은 금빛 요람이 아니라 초라한 여물통이었다. 그분은 왕궁이 아닌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그분의 첫 손님은 권력자가 아니라 평범한 목자들이었다. 드라마 속 ‘김부장’이 지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종종 신앙마저 성과와 위치로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타이틀을 보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를 보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머리로 아는 복음, 삶으로 잃은 복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권력의 반전이었다. 왕이신 분이 제자의 발을 씻기신 것이다. 그분은 실제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무릎을 꿇으셨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머리의 지식으로만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예배에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래도 나는 올라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내려오셨고, 우리는 여전히 오르려 한다. 그래서 복음은 머리로는 아는데 삶에서는 사라진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낮아짐 속의 진짜 능력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으로 성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고 제자에게 배신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홀로 남으셨다. 그러나 바로 그 낮아짐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랑으로 세상을 품으셨다. 그분의 낮아짐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고, 그분의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용서였다. 우리는 종종 “강해야 산다”고 믿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크리스마스, 내려놓음의 계절 크리스마스는 축하의 날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계절이다. 내가 쥐고 있던 자랑과 불안, 비교와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부요함을 버리고 가난한 자로 오셨으며 강함을 버리고 약함으로 오셨다. 그분의 내려옴이 있었기에 우리의 구원이 가능했다. 이제 우리의 신앙도 그분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사람 위에 서는 자리보다 사람 곁에 서는 자리로, 칭찬받는 자리보다 섬기는 자리로, 그곳에서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누군가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일 - 외롭고 힘든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는 일 - 가족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먼저 하는 일 - 내 주장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 혹은 오랫동안 미루었던 용서의 한마디를 건네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들레헴의 예수님을 닮아 이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려옴의 복음’이다. Think! 나는 예수님처럼 내려올 용기가 있는가? 복음이 내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되고 있는가? Thank! 주님, 높아지려는 마음을 비우고 베들레헴의 예수님처럼 낮아진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5.12.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II)
  •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누가복음 3장 4~6절) 지난주에 이어서 누가복음 3장 4절에서 6절을 본문으로 하여서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 이제 열흘이 지나고 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입고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을 넘치는 감사와 기쁨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1. 굽은 것이 곧아지고 예수님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길을 곧게 해야 하고, 골짜기를 메워야 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낮아지고, 이 굽어진 것들이 바로 곧아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3장 5절은 말씀합니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려면 굽은 것들이 펴져 곧아져야 합니다. 가파르고 언덕이 많고, 굴곡이 많은 땅이 평평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 굽어진 마음들이 바르게 펴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짓되고 교활한 마음, 위선적인 마음, 부패한 마음, 삐뚤어진 마음이 바르게 펴져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마음이 굽은 사람들은 매사가 비판적이고 비관적이고 부정적입니다. 마음이 굽어 있어 남을 비방하기를 즐겨하며 편견과 오해에 똘똘 뭉쳐서 한 번 생각에 빠지면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사기 치고, 남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같은 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8절, 9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베드로전서 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마음이 구부러진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삐뚤어지고 굽어져 보입니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모든 문제가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들 때문에 생겨납니다.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고, 끊임없이 고소 고발하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혼란 가운데 빠뜨리게 만듭니다. 이 삐뚤어지고 굽어진 마음이 바르게 펴져야 우리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펴져야 주위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혹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굽어진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2년 전에 성도님 한 분으로부터 눈물로 얼룩진 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제가 교회 재직이고 오래 다닌 분이 이 사업에 투자하면 몇 배로 수익을 돌려준다고 그래서 돈을 맡겼는데 34억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분이 제일 많이 투자해서 손실한 분이고, 여러 사람이 크고 작은 투자를 했는데 그것이 또 잘못되어서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습니다. 그것을 법정까지 끌고 갔다가 풀려나니까 또 그 일을 하다가 다시 법정에 가고 결국 감옥에 갔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매일 새벽 기도하는 부부 집사가 “나에게 돈을 맡기면 30% 이자를 준다”고 사람들을 꼬셔서 수백억씩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지금 감옥에 갔습니다. “여러분, 은행 이자가 3% 안 되는데 30% 준다고, 돈을 맡기는 그분도 문제가 있는 거죠.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은혜인데 갑자기 무슨 큰돈이 생긴다고 하는 곳에 돈을 맡겼다가는 100%,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이 굽어있고 뒤틀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나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해서 굽어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르게 펴져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정직과 진실로 우리의 마음을 곧게 할 때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삶 속에 굽어있고 비틀어진 모습을 우리는 바로 해야 합니다. 내가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이 생기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좀 가진 게 있다고, 내가 좀 더 배웠다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 무시하고, 그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그것 역시 굽어진 마음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존귀한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서로 돕고, 힘을 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굽은 곳을 곧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사야 42장 16절입니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부러진 것들이 다 펴져야 합니다. 마음이 펴져서 우리 주위에 병들고 약하고 문제 있고, 또 장애를 가지고, 불편함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위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난과 어려움 당하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한평생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2.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또 성경은 험한 길이 평탄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3장 5절을 말씀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이 험한 길은 원래 산이 몰려 있는 지형으로 사람들이 쉽게 지나가기 어렵고 힘든 곳입니다. 거칠고 험한 땅입니다. 이 거칠고 험한 길은 거친 마음, 황폐한 심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고집만 부리고 성격이 거칠어서 남과 늘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험한 길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래서 부인을 때리고, 자식을 때리고, 이런 고통을 주는 사람, 입에 담기 힘든 쌍욕을 막 쏟아놓는 사람, 이러한 거친 인생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 믿고 달라지길 바랍니다. 예수님 믿고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귀함을 받는 그런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험한 길의 인생이란 우리에게 있는 잘못된 죄의 습관입니다. 음란한 데 빠져서 방탕한 사람, 밤낮 술에 취해 찌들어서 온갖 문제에 갇혀 사는 사람, 마약중독에 빠진 사람,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 게임중독에 빠진 사람,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 이분들이 그 험한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는지, 중독 중에 가장 많은 중독이 알코올 중독이라고 합니다. 술 없이 밤에 잠을 못 자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고로 죽는 사람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죽는 숫자가 첫째가 자살이고, 둘째로, 음주 운전 만취한 사람이 사람을 쳐서 죽이는 것으로, 그래서 사망자가 2위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가까운 나라 일본의 음주 운전 사고보다 우리나라가 6배가 많은데, 인구 대비하면 20배가 더 많습니다. 밤낮 드라마 틀면 술 먹고 비틀거리는 드라마가 나옵니다. 영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나라의 잘못된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예수 믿고, 우리가 변화 받아서 이런 험한 인생의 모습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과감하게 결단하고 끊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 잘못된 성격, 잘못된 삶의 모습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온유한 심령으로 변화되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팔복 중에 이 땅에서 큰 복을 받는 것은 온유한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나머진 다 영적인 것인데 온유한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풍성함의 은혜를 받습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변화되어서 이웃과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선을 행하며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주님이 앞서가시며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해 주시고, 굽은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사야 45장 2절입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가며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논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 ” 굽은 길이 펴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될 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3.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성경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3장 6절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삶 속에 교만의 산을 낮추기 바랍니다. 겸손과 온유로 무장하기 바랍니다. 부정적인 모습으로 굽어진 모습이 정직과 진실로 바르게 펴지길 바랍니다. 죄의 습관으로 찌들고, 거친 성격으로 이웃과 불화하며 살았던 그 험한 길, 인생을 화평의 은혜로 평탄케 하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3장 5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곳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잘못된 모든 모습이 치료받고, 변화되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준비될 때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온 세상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0절입니다. “야훼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시편 98편 2절, 3절입니다. “야훼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 구원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때 예수님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강물처럼 넘쳐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고, 풍성히 얻는 놀라운 축복이 임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전체의 요절입니다. 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다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를 믿기만 하면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서 주님이 그 삶을 주님이 가장 은혜가 충만한 삶으로,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복 받은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복 받은 인생입니까?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면 그것이 복 받은 인생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불안하면 그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이 여러분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여서 한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며 이 땅에 와서 예수님처럼 많은 고난 당한 이웃을 섬기다가 천국에 간 일본 기독교인 소다 가이치 부부를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이분은 1867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는데 21살 때 고향을 떠나 홍콩, 중국, 대만 등 해외를 떠돌면서 초등학교 교사, 광부, 선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청일전쟁 후 대만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대만으로 건너가서 1899년 어느 날,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져서 잠을 자는데 눈을 떠보니 자기가 여관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이 말하기를, “어떤 조선인이 당신을 업고 와서 치료해주고, 숙박비와 약까지 모두 지불하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은인의 나라에 가서 보답하겠다.” 1905년 6월,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당시 서울 YMCA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게 된 계기를 통해서 거기서 이상재 선생님을 만났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1909년, 일본에서 와서 숙명여고, 이화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독실한 크리스천인 우에노 다키코와 결혼해서 둘이 주님을 참 진실하게 섬겼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을 점령해서 한국의 식민지를 만들었던 그때, 조선 사람을 섬기니까 양쪽에서 다 오해받았습니다. 조선인들에게는 ‘간사한 놈, 일본의 스파이’로 그렇게 불림을 받았고, 일본 사람들에게는 ‘배신자, 일본의 수치, 조선인의 앞잡이’라고 비난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일본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 조선 총독을 찾아가서 무고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1919년 3·1운동 때는 구속자 석방 운동에 나서면서 법정에서 판사들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21년, 일본 아동복지 운동가 사다케 오토지로의 요청으로 이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보육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는 가마쿠라 보육원, 지금은 한경직 목사님께서 이어받아서 영락보린원이 됐는데 그것을 맡아 운영합니다. 조선의 고아들을 위해서 수레를 끌고 군부대를 돌며 음식을 얻고, 헌 옷을 주워 모으고, 가난한 아기를 안고, 젖동냥까지 하면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가 돌본 아이들 고아들이 상당수가 나중에 독립운동가가 됐는데 그것 때문에 몇 차례 끌려가서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그래서 심문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다 가이치와 우에노 여사는 가마쿠라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해방 때까지 약 1000명이 넘는 고아들을 돌봤습니다. 해방 후 일본 사람들이 다 한국을 떠나야 하는데 소다 부부는 조선에 남아서 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다 기도하는 가운데 1947년, 일본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소다 가이치 선생이 부인에게, “나는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들을 회개하는 메시지를 전할 테니까 남아서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고 하면서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첫째, 과거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한다. 둘째, 어떠한 재난이 닥쳐도 십자가를 우러러보며 마음의 평화를 간직한다. 셋째, 하나님의 가호를 빌며 살다가 천국에서 만난다. 그는 일본에 가서 ‘세계 평화’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비롯해 최남단 규수로부터 최북단 홋카이도까지 전역을 돌면서 “오, 하나님 인류가 범한 이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하고 조국의 회개를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남긴 두 가지 좌우명에서 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無一物中無盡藏(무일물중무진장),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둘째, 單行性靈必助之矣(단행성령필조지의), 단호히 행하면 성령이 반드시 도와주신다. 그는 이 두 좌우명을 붙들고, 온 일본을 돌면서 일본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홀로 남아서 고아를 돌보던 우에노 여사는 1950년 1월,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양화진에 묻힙니다. 한국 양화진 외국 선교사가 있는 그곳에 유일하게 묻힌 일본인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일 간에 국교가 단절되어 있어서 그는 장례식에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장례에 참석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신앙을 가지고 봉사의 생애를 마쳤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아니 그의 영혼은 늙은 남편과 같이 여행하면서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녀는 이 늙은이 대신 한국 땅에 묻혔습니다.” 1960년, 일본의 한 기자가 그의 사연을 아사히신문에 소개하면서 한국과 일본 기독교계가 힘을 모아서 한국에 초청합니다. 아직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았을 때인데, 1961년 5월, 그가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으로 들어올 때 많은 한국 사람이 나가서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94세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고, 영락보린원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년 후인 1962년 3월 28일, 9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신문에서 이를 대서 특별해서 다뤘습니다. 그리고 우에노 여사가 묻힌 그 옆, 양화진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인 최초로 문화훈장을 그에게 추서했습니다. 소다 부부에 의해 길러진 수많은 고아는 소다와 우에노를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그는 일본인이었지만 그 어떤 조선인보다 조선을 사랑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고아의 자부, 자비로운 아버지’라고 적혀 있으며, 우에노의 묘비에는 이와 같은 시구가 적혀 있습니다. 언 손 품어주고, 쓰린 가슴 만져주어, 인생을 길다 않고 거룩한 길을 걸었어라. 고향이 따로 있던가 마음 둔 곳이거늘 예수님의 성탄을 바라보며 거칠고 고집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모습이 깨어지고 낮아져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생각하며 찬송가 30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304장(통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1절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함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2절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3절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 하리 후렴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 남은 여생,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부끄러운 인생인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우리의 삶에 잘못된 모든 것, 이 성탄의 계절에 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변화 받고, 새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5.12.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0)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⑥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설교들을 계속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2) 상황: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고쳐 주자 주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면서 제사하고자 할 때(14:8~ 20) (1) 대상: 루스드라의 이방인들(11~13절 참조)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하려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고 무리들에게 설교함) (2)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14~17절) ① 우리도 같은 사람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15a절) ②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5b절) ③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으로 자신을 증언하심: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16~17절) (3) 결과: ① 겨우 무리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함(18절) ② 죽도록 돌에 맞은 바울: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침(19절) ③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다가 1차 선교여행 여정의 역순으로 안디옥으로 귀환함(20~26절) 3) 상황: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 각종 우상과 철학의 중심지인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17:16~34) (1) 대상: 아덴(그리스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21, 22절) (2)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22~31절) ① 아덴사람들의 종교성을 활용(22b~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② 하나님에 대한 설명(신론) (24~27절)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24a절) - 인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24b~25a절) - 생명의 공급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5b절)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심(26절) - 하나님을 더듬어 찾도록 하심: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27절) ③ 인간 존재의 성격(28~29절) 두 명의 헬라 시인 인용 -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크레타 섬의 시인 에피메니데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시칠리 섬의 시인 아라쿠스) - 우상숭배 금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효영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갑시다
  • 2025년 한해도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우이웃, 독거노인, 장애인 등 마치 12월에만 소외된 이웃이 있는 듯 평소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은 해마다 이맘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를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벽돌 하나는 약하지만 서로 연결될 때 견고한 성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 안에서 연결될 때 교회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집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했습니다(벧전 2:4~5). 우리는 죽어 있는 돌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으로 충만한 산 돌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정체성을 단계적으로 선언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며(19절), 말씀의 터 위에 세워진 자이며(20절),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자이며(21절), 결국에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자들입니다(22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웃과 연결될 때 구역이 건강한 구역이 되고 함께 모여 예배함으로 모든 예배가 성령으로 충만한 역동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과 연결되어 예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다음의 세 가지를 점검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말씀의 기초 위에 서 있는가?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 밀착되어 성령으로 충만한가? 셋째, 이웃들과 연결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 모든 이웃들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서서 주님과 성령으로 연결되며 성도 간에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축복의 통로로써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20일(토)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 ◎ 말씀 : 미 7:7~8 ◎ 찬송 : 393장(통 447장)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현실을 보며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미 7:2)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겠다고 결단하며 희망을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귀 기울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며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이 빛이 되어주실 것을 담대히 고백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을 굳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우리의 길을 밝히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보며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9일(금) - 마지막 날에는
  • ◎ 말씀 : 미 4:3 ◎ 찬송 : 293장(통 414장)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통치하실 마지막 날을 예언합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모든 어둠과 악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평화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칼과 창 같은 전쟁 무기를 보습과 낫 같은 농기구로 바꿀 것입니다. 전쟁과 폭력이 사라진 세상이 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날에는 서로를 해치는 대신 살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미가 선지자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 전쟁과 폭력, 불의가 만연합니다. 그러나 미가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악은 선으로 바뀌고 참된 사랑과 평화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늘도 그날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여전히 악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실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합니다. 그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8일(목) - 내가 네게 보이리라
  • ◎ 말씀 : 계 4:1 ◎ 찬송 : 79장(통 40장) 성령에 감동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로마 황제의 박해로 큰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은 요한의 시선을 고통스러운 땅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늘로 들어 올리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땅의 문제에 매인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시고 눈앞의 현실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하늘의 관점을 놓치곤 합니다. 인간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우리 삶 속에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현실의 어려움에 낙담하지 않고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7일(수) - 두려워하지 말라
  • ◎ 말씀 : 계 1:17~19 ◎ 찬송 : 405장(통 458장) 사도 요한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습니다. 지극히 거룩하고 압도적인 예수님의 임재 앞에서 경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쓰러진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 서면 인간의 연약함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 되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처음과 마지막 되시는 주님 안에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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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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