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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실 예수님
  •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누가복음 1장 46~55절)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누가복음 1장 46절로부터 55절을 본문으로 해서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실 때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결하고 고귀하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마리아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처녀의 몸으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반문할 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5절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하는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이미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8절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런데 천사가 또 전해준 말씀은 “너의 친족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갖지 못할 나이인데 하나님이 아이를 갖게 하셨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그 태중의 아기가 뛰놀며 마리아를 맞이합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해서 말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 1:41~42). 이 말을 하자 마리아가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드린 이 찬양을 ‘마그니피카트(Magnificat): 마리아의 찬가’라고 불리는데,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해서 베네딕투스(Benedictus, 사가랴의 찬가), 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시므온의 찬가)와 함께 3대 찬미로 불립니다. 이 찬양은 예수님이 행하실 사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1. 긍휼함을 베푸심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50절과 54절입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죄와 허물 많은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 그 죄의 노예가 되어서 절망적인 삶을 사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긍휼히 보시고 불쌍히 보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문제 있고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고통 중에 사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그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긍휼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절망 중에 나병을 앓고 살아가고 있던 환자가 주 앞에 나와 불쌍히 여김을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절에서 41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그 순간 나병 환자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인 바디매오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라고 외칠 때 주님이 그를 불쌍히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7절과 52절입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지 말고,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내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길 원하지만, 사람들은 말로는 “참 안 됐습니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한두 마디 얘기할 뿐 진정한 마음으로 그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 긍휼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무한하신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제가 일본 동경에 가서 목회할 때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하러 와서 너무나 고생하며 힘들게 사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석 달만 지나면 불법체류자가 되는데, 일본에 돈을 벌러 왔기 때문에 그들이 붙잡히면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까 불안한 마음을 갖고 밤에 나가 업소에서 열심히 일합니다. 금요일 성령대망회 할 때가 되면 그들이 와서 밤새 웁니다. 성전의 모든 장의자 위에는 티슈 박스가 두,세 개씩 놓여 있었는데, 울면서 티슈로 눈물을 닦으며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눈물의 기도로 이겨냈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들어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이제 그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직장을 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정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가게를 내서 그곳에서 정착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들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과 땀과 정성이 모여서 순복음동경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일본의 제1 번화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큰 거리에 8층 건물, 우리가 헌금으로 약 200억 정도를 모아서 조용기 목사님 모시고 입당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보셔서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그 제일 좋은 자리에 그 비싼 건물을 구입하게 해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거기 담임하고 계신 시가끼 목사님을 만났더니, “목사님, 땅값이 세 배나 올랐습니다.”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6편 8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여러분이 주님 앞에 나와서 눈물을 흘릴 때 그 모든 흘린 눈물을 주님이 기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우리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눈물의 기도를 회복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교만한 자를 징계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아가 교만한 자를 징계하십니다. 누가복음 1장 51절과 52절입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왜 인류가 죄를 짓게 되었느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해서 교만이 들어와서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교만으로 말미암아 인류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교만이라는 DNA를 갖고 태어납니다. 이 교만이라는 DNA는 바로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로부터 출발합니다. 교만의 모습은 하나님보다 항상 내가 먼저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자기가 마음이 상하면 예배도 안 나오고 교회가 멀어집니다. 내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늘 주님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나를 높여주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인정해 줘야 교회에서 가슴을 펴고 다니고, 내가 무시당하고 내가 소홀히 여김을 받으면 상처받고, 주님과 멀어지는 이런 문제를 우리가 안고 있는 것입니다. 한평생 ‘나’라고 하는 자존심을 붙잡고 사는데 이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그 당시 기득권 세력, 권력층이었던 대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 서기관 모든 상류층 그 지배 집단이 교만 덩어리였습니다. 본인들만이 사람들 앞에 존경받고 인정받고 칭찬받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로 가서 말씀을 들으니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의논한 것이 “예수라는 사람을 죽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그 장본인이 바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그것이 “혹시 내가 해당되지 않는가?”하고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교회에 충성하고, 내가 교회에 많은 물질도 냈는데, 교회가 섭섭하게 느껴지고, 주님이 멀어지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 우리가 회개하고 고칠 점이 있습니다.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자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침례 요한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합니다. 마태복음 3장 7절과 8절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사셨습니다. 화평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5절과 9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친 가르침도 행동으로 보여주신 섬김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과 15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지난주 수요일 날, 이 돈의동 쪽방촌에 저희가 구세군, 굿피플과 함께 가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골목도 얼마나 좁은지, 약 450세대가 살고 있는데 한 평짜리 방에 살고 계십니다. 얼마나 그들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서 기도해드리고 오는데, “주님, 우리가 1년에 한 번, 성탄절 즈음에 그들에게 관심 갖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 동안 우리 주변에 사회적 약자들, 병들고 아프고 힘들고, 고통과 고난 당하는 자들을 섬길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입니다. 그런데 쪽방촌을 가보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어쩌면 이렇게 절망적인 환경에 살고 있을까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드는 모습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한 평짜리 방이라 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난방도 안 되어 있고, 전기장판 하나, 전기담요 하나 갖고 겨울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이 거기 많이 계십니다. 우리 주위로 고개를 돌려보면 우리가 돌봐야 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 삶이 어려우신 분, 자식이 돌보지 않아서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 독거 어르신들.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집이 너무 힘들고 어려우니까 아들을 버려두고, 엄마가 딸만 데리고 다른 데로 이사 가서 전화번호를 바꿔버렸습니다. 혼자 아들이 빈집에 남아서 3일 동안 굶다가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이 가족을 찾았지만, “왜 그랬냐?” 그랬더니 “너무 살기 힘들어서 애 하나라도 떼어놓으려고 그랬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야 합니다. 움켜쥐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가진 빵 하나를 반쪽으로 쪼개서 나눌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문을 열어주셔서 쌓을 것이 없도록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좋은 것으로 넘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 누가복음 1장 53절에 말씀합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 34편 10절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야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107편 9절입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참 좋으신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 일생 살아가는 동안 한평생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십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간절히 구할 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이 우리와 날마다 동행하시며 차고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시편 103편 3절로부터 5절까지 고백합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미국 CBS, ABC 방송에서 보도된 이 귀한 사랑의 섬김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2014년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어느 주일날, 조지아주에 사는 크리스 라이트라고 하는 분이 온 가족을 데리고 교회로 가고 있었는데, 교회 가는 길에서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 한 여인이 차를 세워놓고, 휘발유 통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운전할 때 차 뒤에 항상 빈 휘발유 통이 있었는데 미리 사전에 휘발유를 채워놓지 않으면 휘발유가 떨어져 차가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휘발유 통을 들고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넣으면 다시 차가 가게 되는데, 아마 이 여인도 휘발유를 충분히 사놓지 못해서 차가 섰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휘발유 통을 들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라이트는 교회에 가족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제 차에 타세요. 제가 주유소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사서 오는 길에 그 여인이 말합니다. “저는 인생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절망이고, 마지막 같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순간 라이트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안에서 다시 한번 강한 이끌림을 느꼈고, 주님께서 ‘주머니에 있는 돈이 얼마든 그녀에게 다 주어라. 그녀에게 그게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40달러를 주었고, 그녀는 울었습니다. 그때 다시 그녀를 볼 수 있을지 몰랐지만, 그 순간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돈을 받은 헥터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 크리스 라이트 형제 어머니, 주디 라이트가 파키슨 합병증으로 아파 누워서 병실에서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가서 어머니를 위로하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집에 와서 간병인을 구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화했습니다. “아들아, 원래 오기로 한 간병인이 안 오고 다른 간병인이 왔는데 얼마나 그 간병인이 성실하고, 어머니를 잘 돌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라이트 형제가 자기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어머니를 이렇게 돌봐달라고, 필요한 상황을 전하려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이분이 갑자기 “제가 몇 년 전 길에서 휘발유가 떨어졌을 때 어떤 좋은 참 좋은 분이 저를 데리고 주유소까지 가서 휘발유를 채웠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주자, “그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기가 막힌 인연이 있는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가 정말 어머님을 위해서 열심히 옆에서 간호하고, 마지막 임종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잘 돌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이 헥터의 헌신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헥터의 평생 소원이 간호사가 되어서 이렇게 많은 어려운 분들을 간호하며 돌보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모금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고펀드미(GoFundeMe)라고 하는 웹사이트에 올려서 이 이야기를 소개했을 때 가족들은 “1,000불이 들어오면 많이 들어오겠지.” 했는데, 45분 만에 1,000불이 넘어섰고, 35,000불 이상 모금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은 기금을 가지고 이분을 간호대학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님!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좋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장학생으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 조지아주에 정식 간호사가 되었고, 이제 돌봄 받던 사람에서 남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헥터는 아이 아이즈 온 더 프라이즈 퍼스널 케어(Eyes on the Prize Personal Care)라고 하는 개인 간병회사를 만들어서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그 지역에 세미나를 열고, 많은 여성에게 간병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비 오는 날 길가에서 한 여인에게 행했던 이 아름다운 실천이 온 지역을 감동시키는 놀라운 은혜로 나타난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와 헥터 간호사는 지금도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라이트 형제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분명한 한 가지는 어머니께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굳건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신앙 안에서 계속 성숙해 왔고, 툰데를 마주했을 때의 선택 역시 제 안에 이미 뿌리내린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때로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한 부르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누군가의 행동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응답하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며, 행동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향한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통하여 강물처럼 흘러넘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귀한 일을 우리가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우리가 살아가는데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 찬송가 393장(통 447장) 오 신실하신 주> 1절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주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섬김을 우리 모두가 본받게 하여 주시고, 우리 남은 여생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5.12.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채정기 선교사(루마니아)
  • - 제자들 교회가 성령 충만해 변화의 삶을 이끌도록 - 현지 아이들에게 줄 성탄선물 1800개가 잘 준비되길 - 알파오메가교회, 시온산교회, 엘림교회 건축 비품·비용이 채워지도록 - 선교공동체가 영혼 구원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 2025.12.19 / 오정선 기자

     가장 낮은 곳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 - 카라바조의 ‘목자들의 경배’
  •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는 바로크 미술의 문을 연 거장이자 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논란 많은 인물이다. 그는 화폭에서는 ‘빛과 어둠의 마술사’로 불렸지만 현실에서는 분노와 폭력에 휘말려 살았다. 1606년 로마에서 테니스 경기 중 사소한 시비가 결투로 번졌고 그는 상대를 살해하고 말았다. 화려하던 명성은 한순간에 ‘살인자’라는 낙인으로 바뀌었고 도망자 신세가 됐다. 1609년, 시칠리아 메시나에 도착한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폴리와 몰타를 전전하며 쫓겨 다닌 그의 내면은 죄책감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했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카라바조의 작품 <목자들의 경배>는 ‘가장 낮은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거룩한 밤을 그려냈다. 성경은 그 밤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8~11). 구원의 첫 소식은 왕궁이 아닌 들판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 당시 목자들은 ‘암 하아레츠(땅의 백성)’라 불리며 멸시받던 유대 사회 최하층민이었다. 안식일을 지킬 여유도, 회당에 들어갈 자격도, 법정에서 증언할 권리도 없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카라바조는 이 장면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찬란한 천사도, 웅장한 건물도 없다. 낡은 나무 기둥, 거친 돌바닥, 메마른 짚더미가 흩어진 초라한 마구간이 전부다. 그러나 이 초라함이야말로 성육신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셨다는 사실을 그는 가감 없이 담아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놀라운 신비가 일어난다.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에게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온다. 카라바조는 등잔도, 횃불도 그리지 않았다. 아기 예수가 유일한 빛의 근원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는 말씀이 마구간이라는 현실 공간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된 셈이다. 이 빛은 지친 산모 마리아를 어루만지고 목자들의 거칠고 주름진 얼굴을 따뜻하게 감싼다. 화폭 속 목자들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투박한 양털 옷, 흙투성이 맨발, 굽은 등, 굳은살 박인 손까지 양을 치다 급히 달려온 목자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모두 아기 예수에게 모인다. 지팡이에 기댄 늙은 목자도, 허리를 깊이 숙인 젊은 목자도 경외감에 잠겨 있다. 가장 작고 연약한 아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신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역설을 카라바조는 빛과 구도로 표현했다. 그의 명암법(키아로스쿠로)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는 말씀처럼 주변의 어둠이 짙을수록 아기 예수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빛은 차별이 없다. 왕이든 목동이든 그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오히려 가장 낮고 가난한 이들이 이 빛을 가장 먼저 맞이했다. 어쩌면 살인자이자 도망자였던 카라바조에게 이 그림은 처절한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내면에 깃든 어둠은 목자들의 밤보다 훨씬 깊고 짙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붓끝으로 빛을 그려내며 자신이 갈망하던 용서와 구원을 화폭에 담았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어둠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영혼은 메마르다.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고립은 더 깊어진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리를 향한 갈증은 더욱 커진다.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탄은 한 가지 사실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 속으로 친히 들어오셨다. 2000년 전 마구간에서 시작된 그 빛은 시공간을 넘어 오늘 우리의 어둠 속에도 여전히 비추고 있다. 성경은 말한다. “목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더라”(눅 2:20). 목자들은 경배를 마친 뒤 다시 척박한 들판으로 향했다.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들 안에는 이제 ‘빛’이 있었다. 어두운 현실을 견딜 이유, 희망의 근거가 생긴 것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카라바조가 어둠 속의 빛을 그려 넣은 것처럼 400년이 지난 오늘 이 그림은 우리에게 진리를 건넨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희망의 빛은 존재하며 그 빛은 가장 낮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먼저 닿는다는 사실을. 성탄절을 맞아 목자들처럼 꾸미지 않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 그 빛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마구간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생명의 빛이, 우리 삶에 드리운 어둠까지 따뜻하게 밝혀 주기를 기도한다. 그것이야말로 성탄이 주는 약속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다. <국제신학연구원>
  • 2025.12.19 / 김용두 기자

    감사QT365와 함께하는 브런치 콘서트
  • 이영훈 목사 “감사는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영적 자원” 항상 분주함과 긴장감이 가득했던 여의도 CCMM빌딩 1층 로비가 18일 오전 직장인들을 위한 작은 콘서트홀로 변모했다. 사단법인 국민희망실천연대가 주최한 ‘감사QT365와 함께하는 2025 송년 브런치 콘서트’가 이날 CCMM빌딩 로비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브런치 콘서트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여의도 직장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문화선교의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번 콘서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된 지 6년 만에 재개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특별히 올해 콘서트는 이영훈 목사의 저서 『2026 감사QT365』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를 겸해 진행됐다. 성도들과 직장인들은 행사장 한편을 장식한 희망트리에 감사 편지를 붙였다. 다른 한편에는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와 빵 등 브런치 케이터링이 마련됐고, 콘서트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로 구성된 라비타 앙상블이 첫 곡의 현을 켜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국민희망실천연대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인사말을 통해 “감사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미 감사할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평과 부정적인 습관에 젖어 살았던 삶이 감사챌린지를 통해 위대한 인생으로 바뀌고 복이 넘쳐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참석자들이 직접 적어 제출한 감사 내용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접수된 수많은 감사 편지 가운데 엄선된 20편이 무대에서 낭독될 때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복음가왕전’ 대상 수상자인 루아흐가 ‘유 레이즈 미 업’과 ‘오 홀리 나이트’를 찬양하며 성탄의 감동을 선사했다. 시각장애인 솔리스트 박성철 성도는 진솔한 고백이 담긴 무대로 큰 울림을 전했다. 대학청년국 비전브릿지선교회의 카르디아 워십팀은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기독교 문화사역팀 ‘수상한 거리’ 출신 고동환 형제의 ‘광야를 지나며’와 CCM 싱어송라이터 최주은 자매의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도심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찬양과 감사의 메시지는 직장인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며 다가올 2026년을 향한 희망의 전주곡이 됐다. 글·김주영 / 사진·김용두 금지환 기자
  • 2025.12.19 / 김주영 기자

    이영훈 목사, 영화 ‘부흥’ 시사회 참석
  • 이영훈 담임목사는 15일 기흥CGV에서 열린 영화 ‘부흥’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영훈 목사는 “마지막 때에 필요한 것은 부흥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한국이 변화되고 세계가 변화되길 바란다”며 “주님 오실 그날까지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자”고 말했다. 이어 윤학렬 감독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부흥을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이 영화는 윤학열 감독이 2년 7개월 동안 5개 대륙 120여 개 도시를 다니며 세계 곳곳 부흥의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 2025.12.19 / 김용두 기자

    3대 온 가족 총동원 특별새벽기도회
  • ‘3대 온 가족 총동원 특별새벽기도회’가 13일 새벽 우리 교회 대성전에서 열렸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는 엄태욱 부목사(목회)의 사회로 재정위원장 이상준B 장로의 대표기도, 겟세마네&에벤에셀 연합찬양대의 찬양 순으로 이어졌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기쁨의 훈련’(요 5:11)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며 “훈련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다. 기쁨도 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많이 참석했다.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도 부모님과 드리는 예배에 집중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오희숙 집사(양서성전)는 “새벽 예배를 통해 믿음의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 2025.12.19 / 복순희 기자

    (167)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0>
  • 사랑하는 관계에 금이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무례히 행하는 것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 교만하지 아니하며”에 이어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창조주 하나님도 피조물인 인간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신다. 만일 하나님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이래도 나를 믿지 않을 거냐?”라고 말씀하시며 협박과 위협으로 신앙을 강요하셨다면, 정말 효과적으로 전도와 선교가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16). 사랑은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음을 가장 잘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들에게도 무례히 행치 않고 예의를 갖추신다. 예수님도 우리 마음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신다. 그분은 절대로 강력한 힘이나 능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랑으로 무례히 행치 않으시고, 우리가 반응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신다. 이처럼 우리도 사랑한다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무례함이 가득하다. 무례함은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사랑하는 관계가 금이 가는 이유는 바로 ‘무례함’ 때문이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이 그러한 예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막 거칠게 대하고 폭력을 가하며 협박까지 해놓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범죄이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억압은 참된 사랑일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친절하게 배려하는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는다. 많은 부부가 이혼하는 중요한 이유도 이러한 무례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랑이 무례함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같이 살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신앙적 지혜가 필요하다. 무례함이 권리이고, 그것을 권력으로 여기는 세태를 따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의 예절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변화된 행실을 따라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 된 성도는 절대로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무례히 대하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성도의 예절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과 참된 신앙적 영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절의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교회를 온전하고 든든히 세우는 중요한 토대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중요한 도구이다. 만일 성도들이 일상의 삶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굴며 거칠게 행동한다면, 과연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교회로 이끌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무례히 행치 않는 성경적 예절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존중과 배려를 실천해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12.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박용식 목사(금천대교구장) - 회복탄력성
  • 회복탄력성이란 책을 보면 하와이 군도 북서쪽 끝에 인구 3만명에 불과한 카우아이라는 섬에서 있었던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섬주민들은 대대로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코올 중독자 혹은 정신 질환자였습니다. 이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 섬에서 낳고 자란 아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연구하기로 합니다. 1955년에 태어난 833명의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추적 조사를 하기로 하는데 에너워미라는 학자는 833명의 아이들 중 201명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였습니다. 201명의 공통점은 몹시 가난하며, 부모가 이혼이나 별거 중에 있고 부모 중 한명이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자인 세가지 큰 어려움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위험군에 속해있던 아이들은 당연히 더 심한 일탈과 나쁜짓을 하는 아이로 자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중에 72명은 밝고 건강한 청년으로 문제없이 성장했습니다. 그중에 한 학생은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밝고 매력적이었고, 미국 대학입학 시험(SAT)에서 상위 10% 안에 들었고, 성격도 긍정적이고 도덕적이었습니다. 에너워미는 72명의 아이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평범한 삶을 살고 심지어는 보통의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 보다 더 밝고 뛰어나게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집중하여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삶의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힘의 원동력이었는데 에너워미는 이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연구했더니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 주는 어른이 적어도 그 아이의 인생 중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엄마였던, 아빠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였던 간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 아이가 언제든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던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죄와 유혹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변함없이 특별한 존재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로서 높은 회복탄력성을 갖고 날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 2025.12.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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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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