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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대제(2)
  • 알레고리적, 도덕적 성경 해석 권장해 목회 규칙』 통해 목회자들에게 설교 중요성 알려 이방인 개종과 성도 교육의 가장 좋은 수단 설교자로서 그레고리 대제는 매우 성실했다. 그는 설교를 행하고 설교를 통해 회중을 가르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했다. 그의 설교문은 모두 62개가 남아있다. 그중 22개가 에스겔서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는 복음서를 설교한 것이다. 이 설교문들은 주로 그가 작성한 것이며 어떤 것들은 속기사가 기록한 후에 그레고리 자신이 수정했다고 한다. 그레고리의 설교는 주로 짧은 것들이었지만 때로는 상당히 긴 것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근거하며 본문을 의역한 후에 도덕적인 적용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다간은 그레고리의 설교가 종종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으며 사상이 깊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솔직한 내용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일반 회중이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그레고리 대제의 설교의 특징 중 눈에 띄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발견하는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예화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는 성경의 진리를 회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성경 밖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져왔다. 그는 이미 6세기에 설교에 있어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레고리는 단순히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만을 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성경을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했다. 첫째는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었고, 둘째는 알레고리적으로 보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도덕적인 가르침으로 보는 것이었다. 때로 그는 3중의 방법 모두를 사용해서 성경 본문을 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교부들의 설교』, 180). 또한 그레고리의 설교는 신앙생활에서 묵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그는 “활동적인 생활과 명상적인 생활을 영적 성장에 있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단계”로 보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4). 이런 그의 모습은 수도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생각과 훈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는 기독교 예배에서 설교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리 대제는 목회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관심들이 『목회 규칙』(Pastoral Rule)이라는 논문에 담겨있다. 『목회 규칙』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Nazianzen)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현직에 있는 목회자들과 앞으로 회중을 이끌 목회 후보생들을 위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회중들의 특징에 따라 다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대목은 눈여겨볼만 한다. 모두 네 권으로 쓰여진 『목회 규칙』은 제1권에서 목회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사항들과 그들이 목회 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교구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면, 교구 설교자는 침묵과 언어에 있어서 신중할 것,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맞서 단호히 대처할 것, 자신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말 것, 성경을 자주 묵상할 것과 같은 내용들이 담겨있다. 제3권은 다른 책들보다 거의 두 배 정도의 분량인데,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설교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렇듯 목회자들을 위한 그레고리의 『목회 규칙』의 주제는 설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그가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후에 이 『목회 규칙』은 알프레드 황제(Alfred the Great)에 의해 앵글로색슨어(Anglo-Saxon)로 번역되었고,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가 제정한 제정한 법령들을 통해 권장되었다(Dargan, A History of Preaching 01, 128). 앞서 언급한 대로 그레고리 대제는 설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설교를 통해 성경의 복음이 선포될 때, 사람들이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간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교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그것에 의하여 이교도들이 개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신실한 신도들이 기독교적인 삶 안에서 교육받고, 이단들이 융화되며, 교회가 개혁되기 때문이다”(『교부들의 설교』, 181). 다간에 따르면 그레고리의 성품과 그의 설교를 포함한 저작들은 그를 고대 교회와 중세 교회를 있는 파라오가 되게 했다(History of Preaching 01, 129). 즉, 그는 고대와 중세를 이어줌으로서 초대교회의 설교적인 유산을 고스란히 담아 중세교회에 넘겨준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이미나 기자

    그레고리 대제(1)
  • 사회와 교회를 함께 섬겼던 그레고리 대제 유력 집안에서 태어나 수사학 등 최고 교육 받아 교황임에도 수도원 머물며 수도사로 생활해 그레고리 대제(540-604년) 역시 설교의 침체기 또는 암흑기로 말해지는 7-8세기에 활동하던 설교자이다. 로마의 명망 높은 아니키우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정치적 위상과 영적 유산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과 두 명의 교황(펠라기우스 2세, 펠릭스 3세)가 이 집안 출신이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아버지 고르디아누스는 로마의 행정관을 지낸 재력가였고 그의 어머니 실비아와 그의 두 고모는 훗날 성인으로 추대될 만큼 경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레고리가 태어나던 6세기 중반에 로마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있었다. 당시 동로마제국이 황제였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서로마의 재정복을 목표로 서방 영토 회복에 주력했따.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정복하고,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정복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남겼고 제국의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과정에서 도시 로마는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도시 기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와 하수도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특히 589년 티베르강의 대홍수로 도시가 잠겼고, 뒤이어 들이닥친 흑사병으로 교황 펠라기우스 2세를 포함해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레고리 대제가 태어났고 교황으로서 활동했다.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초대교회와 중세교회 시대의 지도자들은 모두 당시 최고 교육인 수사학과 법학 등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레고리 대제 역시 수사학, 법학, 변증학을 섭렵했다. 30대 초반 그는 아버지를 따라 로마 시의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의 직위에 올랐다. 이 시기의 활동에 대한 내용은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는 정부를 위한 상당한 활동을 했었던 것 같다. 집정관으로서의 재직을 마쳤을 때, 그는 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그는 “기도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려는 그 자신의 열망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도록 그가 받은 많은 부름들 사이에서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었다고 후에 진술한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1). 그러나 그의 갈등은 어떤 면에서 기우처럼 생각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성직자의 활동은 물론 로마 시민들을 위한 구제사업 역시 활발히 벌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상당한 재산을 모두 팔아 시칠리아 섬에 6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로마의 중심지에 있던 자신의 집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가 자신의 집을 수도원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 맺음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열망은 5년 정도 이어졌을 뿐이다. 교황의 부사제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579년 그레고리는 교황 펠라기우스 2세의 사절이 되어 콘스탄틴노플에 있는 최고 관구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7년을 머물렀다. 590년 흑사병으로 교황 펠라기우스 2세가 선종했을 때, 그레고리는 황제의 승인을 받아 교황의 직을 물려받았다. 당시 서로마제국은 476년 이미 멸망한 상태였고 동로마(비잔티움)제국은 서로마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흑사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드족의 공격 가운데 교회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 황제 그레고리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한마디로 교황 그레고리가 이끄는 교회가 ‘정부’의 기능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서로마에는 ‘시민 정부’가 존재했었다. 원로원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고 행정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젊은 시절 집정관으로서의 그레고리의 경험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중세역사에서 그레고리를 기점으로 교황이 세속적 군주로서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세속적인 업무로 인해 그레고리가 영적인 삶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목자가 아니라 세속 통치자가 된 것 같다.”라고 탄식했던 그는 수도사로 남아 계속 공동체 생활을 했다. 특히 그는 교회의 주된 사업이 구제가 아니라 ‘영혼구원’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 우선순위에 대한 그의 의식은 세상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그의 확신으로 인하여 더욱 강렬해졌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73).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이미나 기자

    아를의 체사리오(2)
  • 모든 성직자가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의 설교문을 다른 성직자들이 사용하도록 허용해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교해 아를(Arles)의 체사리오(Caesarius, 470-542년경)의 설교는 약 250편이 남아있다. 그의 설교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7세기에 활약했던 마우리스트들(the Maurists) 덕분이었다. 마우리스트로 알려진 사람들은 프랑스 마우리스트 수도회에 속해있던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17-18세기에 걸쳐 학문적 연구와 역사 편찬에 주력했다. 역사학, 문헌학, 고문서학 등에 탁월했던 그들은 교회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분석해서 방대한 양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우리스트들의 연구 전까지 체사리오의 설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으로 취급되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O. C. 에드워드는 체사리오의 설교가 그런 취급을 받았던 이유는 체사리오 자신의 모호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그 자신이 설교를 해야 한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주교들과 사제들도 설교를 해야 하며, 심지어 부사제들도 교부들의 설교들을 읽을 수 있다고 믿었다”(O. C. 에드워드, 『교부들의 설교』, 165). 그래서 자신의 설교를 다른 성직자들이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편집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설교가 그의 것이라는 사실이 가려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주교 외에는 설교권을 가질 수 없었다. 529년 바이송 공의회에서 “주교의 허락과 감독 아래에서 사제도 공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라는 원칙이 확립되기 전까지 사제들은 설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시 교회 성직의 단계를 잠시 살펴보자. 교회 성직은 모두 세 가지였다. 첫째, 주교(bishop / 라틴어 episcopus / 헬라어 episkopos)이다. 주교는 감독으로도 불리며 한 지역 교회를 책임지는 최고 목회자였다. 예수님의 열 두 사도들의 계승자로 이해되었고, 성경에 대한 가르침과 교회 치리의 최종적인 책임자들이었다. 또한 주교들은 교구 안에서 공식적으로 교리를 해석하는 성직자들이었고 모든 성사를 집전하는 목회자들이었다. 사제 임명, 본당 배치, 교회 재산 관리, 교회 제도 및 규율 관리 등 주교들은 교구의 행정 책임자이기도 했다. 교구 내에서 설교는 주교들에 의해 행해졌다. 사제(priest, presbyter)는 주교의 권한 아래 설교와 교육을 담당했던 목회자들이다. 주교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지만 새롭게 목회자를 세우는 ‘성품성사’만은 할 수 없었다. 한편 부제(deacon)은 교회 성직 질서에서 첫 단계에 위치한 성직으로서, 섬김과 봉사의 직분으로 이해되었다. 부제들은 예배와 성사에서 성경 봉독이나 성찬 보조와 같은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다. 세례, 혼인성사 장례 예식 등은 집전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성사는 인도할 수 없었다. 체사리오의 설교에는 그가 직접 행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성당 안에 마련된 미래 성직자를 위한 훈련센터에서 미래의 설교자들을 위해 분배용으로 허락된 설교들도 있었다. 체사리오는 자신의 설교를 다른 성직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설교자들에 따라 서론이나 결론이 추가되기도 하고, 어휘가 단순화되기도 했으며, 불필요한 단어들은 제거되고 편집되곤 했다. 실제로 7-9세기 많은 주교가 그의 설교를 사용했다고 한다. 체사리오의 설교는 5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첫째,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권고들로 이것은 온전한 설교 형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 정식 설교 형식을 갖춘 강해설교들, 셋째, 교회력에 따른 절기 설교들, 넷째, 성인들과 축일들을 위한 설교들, 마지막으로 수도원 공동체에서 행한 연설들이다. 그의 설교에서는 풍유적 성경해석이 자주 발견된다. 풍유적 해석이란 보통 알레고리(allegory)라고 하는 것으로 성경 본문 속에서 영적,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성경해석법이다. ‘풍유’는 빗대어 말하다라는 의미로 성경 본문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 구원, 영적 삶을 가리키는 표지(sign)으로 해석했다. 무엇보다도 체사리오의 설교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로 설교되었다. 그는 “단순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는 설교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배운 사람들을 향하여 하는 설교는 단순한 사람들에 의해 전혀 이해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체사리오는 회중이 이해하지 못한 설교는 실패한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김용두 기자

    아를의 체사리오(1)
  • 혼란한 시대 기독교를 지켜낸 대중 설교자 당시 주교들과 달리 올곧고 정직한 삶 살아 펠리기우스 주장에 맞서 하나님의 은총 강조 이번 호에서는 아를(Arles)의 체사리오(Caesarius, 470-542년경)에 대해 살펴보겠다. 체사리오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6세기 오랑주공의회(the Council of Orange)를 주도하며 펠라기우스 논쟁을 잠재우고 서방교회의 은총 교리를 정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프랑스 리용에서 북쪽으로 120킬로 정도 떨어진 항구 도시 샬롱이었다. 그의 가족과 유년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가 샬롱 지역의 유복한 가문 출신이며 18세에 갈리아의 설교자이며 신학자였던 실베리스 주교(Bishop Sylvester)에게 성직 서품을 요청했다는 것은 알려져있다. 성직에 대한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다음 세기, 즉 6세기 전까지 가울 지역에서는 성직자들의 공동 생활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성직을 수행하는 시간 이외에는 집에서 머물러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체사리오는 2년 뒤 레랭수도원으로 떠났다. 골 지역 전 교구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던 이 수도원에서 그는 깊은 기독교 영성, 금욕생활, 노동에 대한 헌신, 희생과 섬김과 봉사의 정신 등을 배웠다. 이런 배움은 이후 주교, 설교자, 목사, 개혁가로서의 그의 경력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라틴 교부들의 문학에 대한 이해는 그의 성경 이해와 설교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직무를 수행하는 체사리오의 역량을 지켜보던 수도원장은 그를 레랭수도원의 재정관리 책임자(cellerarius)로 임명했다. 그렇게 수도원을 위해 7~8년 일했던 그는 건강을 잃게 되었고 휴식을 위해 아를로 갔다. 로마시대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아를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고 한때 골의 수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 때, 아를의 주교이고 그의 친척이었던 애오니우스 주교가 그를 아를 교구의 주교 중 하나로 천거했다. 처음에는 부사제로, 나중에는 사제로서 8년 동안 섬긴 체사리오는 지역 수도원의 대수도원장 사망 이후 그 직을 계승했다. 499년 그의 나이 약 30세가 되던 때였다. 특히 체사리오의 신학과 사역에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수사학자이자 기독교 수도자였던 포메리우스였다. 체사리오는 스승 포메리우스를 통해 수사학을 비롯한 라틴의 훌륭한 이차적 교육을 받았으며 동시에 주교로서 근면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자신의 동료들과 공동체 생활을 했던 포메리우스는 「명상에 잠기는 생활」이라는 논문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이 말했던 기독교적인 이상 생활에 대해 진술했다. 이런 포메리우스의 성향은 고스란히 체사리오에게 영향을 미쳤고, 체사리오는 주교직으로 있던 40년 동안 수많은 회의들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와 포메리우스의 원리들을 입법화했다. 그는 포로상태에 있던 사람들의 출신 성분을 묻지 않고 자신의 돈을 주어 풀려나게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고, 지역 주교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여인들을 위해 수도원을 건립해주기도 했다. 독일의 신학자요 교회사학자인 오토 바르덴헤버(Otto Bardenhewer)는 체사리오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체사리오는 서로마가 붕괴하던 시기에, 야만족 정복자들의 새로운 정치 질서 위에 기독교 문명을 접목함으로써 완전한 파멸로부터 기독교 문명을 구해냈다 …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서 그는 영혼의 목자, 교회 규율의 개혁자, 그리고 실천적 기독교를 전하는 대중 설교자로서 헌신적으로 사역했다.”(Saint Caesarius of Arles: Sermons Vol. 1 (1-80), viii에서 재인용). 체사리오의 생애를 말할 때 ‘펠라기우스 논쟁’을 빼놓을 수 없다. 신학자이자 수도사였던 펠라기우스(354~420년경)은 원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선을 선택할 수 있으며,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결단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로 인해 인간은 결코 스스로 선을 시작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529년 오랑에서 열린 공의회를 주도했던 체사리오는 원죄로 인해 인간 스스로 믿음을 시작할 수 없으며 믿음의 시작이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도 필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와는 결이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은총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06.04 / 이미나 기자

    2026 국민미션어워드
  •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순복음강남교회 수상 기독교 문화 확산과 한국교회의 선한 사역을 조명하는 ‘2026 국민미션어워드’가 29일 서울 루나미엘레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국민일보 주관으로 사회에 빛이 되는 개인과 단체, 기업 등을 발굴해 시상하는 국민미션어워드는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올해는 크리스천으로서 이웃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해온 개인·기관·기업 등 총 25곳이 선정됐다.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축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기도하는 1천만 기독교인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기독교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세계 10대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의 헌신으로 사회가 더욱 밝고 아름답게 변화하고 있다. 여러분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충만하시길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올해의 사회공헌상’은 매년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3억원 이상 후원하며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재단법인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가 수상했다.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는 기독교 장묘문화를 선도하며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회에 희망을 전하고 있다. 또한 순복음강남교회 이장균 목사는 ‘올해의 문화사역상’을 수상했다. 김경호 국민일보 사장은 “오늘의 상은 서로의 헌신을 격려하고 품어주는 마음에 의미가 있다”며 “한국교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여러분이 계시기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사역들을 계속 찾아내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 2026.06.04 / 이미나 기자

    10. 나누어 주는 신앙
  • 나누는 삶, 크리스천의 본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본받아 복 나누는 청지기의 삶 살아야 크리스천의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가득 차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이다. 나눔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가르침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또한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게 하셨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는 빚으로 잃어버린 삶과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와 질병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눴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의 기근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보냈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눔에 동참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받으며 부흥 했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이웃에게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고 교회와 선교, 구제와 사랑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과 건강, 직분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관리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며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청지기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 사회복지 사역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실천해 왔다. 매년 예산의 약 3분의 1을 선교·전도·구제에 사용하며 국내외 선교와 취약계층 지원, 장학사업, 재난구호, 사회복지 사역에 힘쓰고 있다. 교회가 받은 축복을 세상과 나누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시간과 재능, 관심과 사랑, 기도와 봉사 모두가 나눔이 될 수 있다. 성도들도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돌보며 사회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쁨으로 나누어 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 2026.06.04 / 이미나 기자

    예수님의 절대 지상명령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사람이 죽기 전에 가족에게 꼭 필요한 말을 전하는 것을 유언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로부터 20절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인데 이것을 예수님의 절대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교입니다. 선교,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라고 할 때는 같은 문화권입니다. 우리가 우리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전도라고 하고, 선교라고 할 때는 타 문화권,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 문화권에 복음을 전할 때는 선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도나 선교나 내용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선교는 하나님께 받은 그 많은 은혜와 사랑에 대해 모든 것에 감사하여 그 사랑의 빚을 갚는 최선의 유일한 방법이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어요. 죄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여 주셔서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셨으니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지.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은혜는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내 무엇을 주님께 드릴까? 우리가 그 빚을 갚는 길이 뭐냐? 선교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모든 믿는 사람들의 사명이요 교회 존재 목적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선교하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강한 나라가 됩니다. 유럽의 모든 나라가 선교했을 때 유럽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선교에 불이 꺼지고 그 선교의 열정이 미국으로 옮겨갔을 때 미국이 세계 최대의 부강한 나라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 복음을 받은 우리 대한민국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니까 지금 세계 10대 강대국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요, 우리의 삶에 가장 귀한 주님의 뜻을 이룬 길입니다. 그런데 이 선교를, 복음을 전하는 일을 내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요.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1. 예수님의 권세로 선교하라 예수님의 권세가 임할 때 예수님의 권세로 선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전지전능하신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육신에 머물고 이 땅에 오게 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하나님이 다시 예수님을 부활시키셔서 모든 세상에 그 어떤 권세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예수님을 세우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부터 10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선교란 무엇이냐?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을 만방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교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권능이 임해야 합니다. 선교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항상 한계가 있고 부족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권세가 임할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권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이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예수님의 권세를 힘입어서 예수님 제일주의 선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했다고 우리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교를 우리가 하려면 주님의 영이신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힘껏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안디옥교회가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듣고 파송합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3절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께서 직접 이 안디옥교회에 명하셨습니다. 내가 불러 사람을 세워서 그들을 시킨 사람을 선교사로 내보내라. 그래서 다섯 명의 지도자 가운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던 바나바와 바울을 세워서 첫 번째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그런데 선교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해서 권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성령이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 나와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데, 오늘 성경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냥 예수님을 믿기만 할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만들어라! 제자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오늘날 교회에 신자는 많은데 교회는 많은데 제자는 참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자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의 닮은 꼴이 제자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 행하고 스승님의 좋은 점을 본받아서 그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제자인데, 우리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해야 하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나가서 걸핏하면 욕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싸우고 자기 성격을 다스리지 못해서 욱해 둘러엎고, 이것은 우리가 아직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신앙은 그 삶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강한 성격이 온전한 성격으로 변화가 되고, 걸핏하면 욕하고 싸우던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 좋은 말만 하고 선한 말만 하고 남을 살리는 말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제자. 내가 과연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늘 자신을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제자는 말씀 충만, 성령 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제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길에, 그 방법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함 받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1장 끝까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충만하면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써진 것인데,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었는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후에 한 20년쯤 지나서 신약 성경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써집니다. 예수님 계실 때 따라다니면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때 기록을 하지 않았어요. 듣기만 하고 있었어요. 다 외웠던 말씀들이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줄 알았는데 다시 오시지 않으니까, 그러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살아나서 우리 남아 있는 사람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적고 그래서 성경이 만들어집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되고 마태복음이 기록되고 누가복음이 기록되고 그다음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한 70년쯤 지나서 요한복음이 기록됩니다. 그렇게 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성경을 잘 알고 있던 제자들이 성령 받기 전에는 예수님 붙잡히자마자 다 도망갔습니다. 다 도망갔어요. 마가라는 제자는 홑이불을 둘러싸고 있다가 속옷도 안 입고 있었나 봐요. 예수님이 붙잡히시니까 그 붙잡히지 않으려고 홑이불을 벗어 던지고 벗은 몸으로 도망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웃지만 그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게 어려움을 당할 때는 고개를 돌리는 제자들과 같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수제자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데, 세 번째 가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그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그들이 성령 받지 못하는 그 상태로 있을 때는 “우리는 희망이 없어. 옛날처럼 고기나 다시 잡으러 가지.”하며 다시 어부가 되어서 저 갈릴리까지 올라가서 그물을 던졌는데 예수님 없이 그물을 던지고 던져봐야 그물이 잡힙니까? 그런데 그들이 성령 받고 나서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은 사도행전 2장에 성령 강림의 역사로 그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렇게 짧은 기간 내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세계 최대 교회가 되었느냐?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저들을 주님께로 인도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렇게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지난주에 교무 담당 목사님이 와서 보고하는데 작년 주일 평균 출석하고 올해 평균 출석하고 대조해 보니까 주일 대예배에 나오는 분만 5000명이 늘었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나와 복음을 전하니까 매달 새신자가 한 1000명씩 오고 그래서 주일날 이렇게 와서 정착하게 된 분이 한 5000명이 늘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그것이 제자입니다.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대로 행할 때 우리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갈 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로부터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여러분, 성령으로 말씀으로 충만해서 복 있는 사람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늘 말씀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서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살아가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3. 예수님과 동행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여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직장에 가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학교에서도 주님의 은혜로 열심히 공부하고, 여러분에게 어떠한 특별한 재능을 주셔서 이렇게 연주하는 재능을 주신 분은 그것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의사는 병 고치는 그 자리에서 주님의 은혜로 병을 고치고, 간호사는 그곳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교사는 주님의 은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러면 이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드류 신학대학원의 석좌 교수인 레너드 스윗 박사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선교란 무엇이냐? 타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까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것, 그 문화 속에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선교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교가 아닌 바로 하나님의 선교가 된다.” 주님이 함께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성령을 받지 못하니까 마음에 허전함을 채우지 못해서 옛날에 고기 잡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주님이 안 계시니까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져도 올라오는 것은 빈 그물이었습니다. 그때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저 동틀 적에 갈릴리 호수 저편 끝에서 누가 외칩니다. 예수님이 온 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21장 5절로부터 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빈 배 인생입니다. 근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의 은혜로 그물을 던지면 배가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빈 배의 인생으로 살지 말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가득 찬 배의 인생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빈 배 인생입니다. 무엇을 해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셔야 빈 배가 가득하게 차게 되고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여러분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배가 가득한 그러한 축복을 받고 베풀고 나눠주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주변에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서 마음에 기도 제목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직장 동료에게, 우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평양 제일의 깡패로 유명했던 이기풍, 이분이 나중에 귀한 주의 종이 되어 우리 한국의 첫 선교사가 되고 순교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분은 평양 가난한 농민 집의 아들로 태어나서 지배층, 권력층들은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저항 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어느 날 시장에 갔는데 웬 서양인이 서툰 조선말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 믿으세요.”라며 전도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가 듣기는 서양인들이 조선을 삼키려 한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화가 나던 차에 선교사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돌멩이를 들어서 던졌는데 그만 선교사의 턱에 맞아 턱이 깨지고 피가 흘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쓰러졌는데 그 선교사가 누구냐 하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던 사무엘 모펫 박사인데, 한국어 이름이 마포 삼열 박사고, 이분이 평양에서 숭실대학교를 세운 분이며 한국의 초대 교회 큰 역사를 이룬 선교사입니다. 그는 이런 선교사님에게 돌을 던져서 피투성이가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님이 교회를 세울 때 깡패들을 데리고 와서 교회를 때려 부쉈습니다. 선교사의 턱을 부서뜨리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난 후 이기풍 깡패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군지, 예수라는 걸 전한 사람을 내가 이렇게 다 때려 부수었는데 왜 마음이 이렇게 편치 않은지 모르겠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는데 꿈에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십니다.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 붙잡으러 가던 사울처럼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청일전쟁이 일어나서 위험을 피해서 원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또 한 분의 선교사를 만났는데 윌리엄 스왈른 선교사를 만납니다. 스왈른 선교사님이 그를 보자마자 죄를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고 외쳤는데 그때 주님의 은혜로 꼬꾸라졌습니다. 29살 나이에 눈물 콧물 쏟으며 회개하고, 그리고 자기가 돌을 던져 다치게 했던 마포 삼열 박사를 찾아갑니다. 마포 삼열 박사를 찾아가니까 박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무릎을 꿇고 펑펑 울면서 “제가 당신에게 돌을 던져서 상처를 입히고 이 교회를 무너뜨린 사람입니다.” 마포 삼열 박사는 그를 품에 안고 같이 울면서 “앞으로 함께 주의 일을 하자.” 그래서 깡패 이기풍이 신학교에 들어가 가지고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평양 일대에 “깡패가 변해서 목사가 됐다.” 그래서 복음이 증거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그는 장대현교회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한국 최초의 일곱 명 목사 가운데 한 명이 되어, 당시 언어와 풍습이 달라서 마치 외국같이 여기고 있던 제주도의 1호 선교사로 파송을 받습니다.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가는데, 목포에서 출발해서 가는 동안에 풍랑을 만나 배가 조난하는 어려움을 겪고 또 제주도에 가 보니까 완전히 미신으로 가득 차서 이상한 사람이 서양의 도를 전한다고 돌을 던지는 등 핍박하고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의 사람들이 미신을 많이 섬겼는데 뱀 귀신을 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렁이 귀신을 섬겼습니다. 저희 할아버님이 1950년도에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 보니까 해녀들이 집마다 구렁이 귀신을 섬기는데 물질하러 가기 전에 그 안방에다 음식을 차려놓으면 구렁이가 내려와서 그걸 먹고 밤에 들어와서 또 그걸 치우고 또 음식을 차려놓고. 그렇게 해녀들이 구렁이 신을 섬기는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그가 가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니까 막 돌을 던지고 피투성이가 되는데,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병자를 치료하고 주의 복음을 전하자, 복음이 제주 전역에 전파되어서 13년 동안 제주도에 30여 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할렐루야.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끝까지 믿음을 시키다가 감옥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1942년에 그는 마침내 순교합니다. 근데 그의 딸 이사례라고 하는 권사님에게 남겼던 말씀이 있습니다. “사례야, 첫째, 네 친구가 아주 슬프고, 고통을 당할 때 즉시 그 친구의 슬픔과 고통을 네 슬픔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즉시 그 친구를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관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잘 참되 열 번, 스무 번, 혹은 오십 번이 아니고 백 번이라도 참고 견디는 것을 간단하게 백인(백번이라도 견디는 인내)이라고 한다. 인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언제나 다른 사람을 너보다 낫게 여기고 네 친구를 항상 칭찬해 주는 마음을 가질 때 겸손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된다.” 할렐루야. 깡패였던 목사님이 이렇게 귀한 교훈을 가정에 남겨 놓아서 그 딸이 이 내용을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잠시 잠깐 아침 안개처럼 지나가는 인생을 사는데, 예수를 잘 믿고 제자의 삶을 살다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큰 상을 받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508장(통 270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1절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후렴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2절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 새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3절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 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짧게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예수 잘 믿고 제자의 삶을 살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장차 주님 앞에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며 상급 받는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05.3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선교사 수련회 27~29일 영산수련원서 열려 
  • 말씀 충만, 성령의 위로가 임했던 은혜의 시간 힐링 콘서트, 대륙별 선교 보고, 영화 ‘청년 조용기’ 상영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가 주최하고 선교국이 주관한 제52회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맞아 고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을 위한 수련회가 27~29일 경기 파주 영산수련원에서 열렸다. 수련회 둘째 날 저녁 성령대망회를 인도한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이영훈 목사는 ‘나의 나 된 것’을 제목으로 설교하며 “신앙의 가장 위험한 적은 외부 환경이나 핍박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가’라는데 있다”며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날마다 자아를 내려놓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때 사랑으로 택하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거두게 해주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긴 선교사들은 통성기도 시간,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거나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자신의 힘과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가운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선교사 수련회는 성령의 은혜가 충만히 임한 말씀과 기도 외에도 POS 트리오의 힐링 콘서트, 영화 '청년 조용기'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특강 시간에서 박성민 목사(CCC)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제목으로,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 원로)는 ‘역사를 보는 눈, 시대를 읽는 눈’을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장균(순복음강남교회)·정홍은(순복음성동교회)·강신호(일산순복음영산교회)·고영용(여의도순복음광명교회)·황선욱(여의도순복음분당교회) 목사는 ‘우리 교회 이렇게 선교한다’를 주제로 각 교회의 선교 정책과 사역 현황을 소개하며 선교 전략을 공유했다. 대륙별 선교 보고 시간에는 순복음북미총회를 비롯해 일본·유럽·오세아니아·중남미·아프리카·CIS·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대만·A총회에서 현지 사역 상황 및 향후 선교 전략을 발표해 선교적 협력과 시너지 방안을 나눴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은 현장을 방문해 선교사들에게 선교지 협력 사역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영훈 목사는 폐회 예배에서 ‘사명’(행 28:30~31)을 제목으로 수련회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사명임을 기억하고 성령 충만함 가운데 복음을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29일 밤 여의도 대성전에서는 이번 선교대회 마지막 행사인 ‘다음 세대와 선교사가 함께하는 금요성령대망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모든 민족의 복음화, 전쟁·가난·핍박 가운데 있는 선교지의 평안, 다음 세대가 다시 복음으로 일어나 세계 선교를 이어가게 해달라고 한마음으로 부르짖었다. 글=오정선 / 사진=김용두·금지환 기자 <관련기사 바로가기> ▶ 67개국 600여 선교사 함께 한 순복음세계선교대회
  • 2026.05.29 / 오정선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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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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