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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 수기 공모전 수상작 7. ‘화평상’-강용철
  • 제목 : 하얀 손수건 아버지, 아빠 아니 강 장로님 어떤 이름으로 불러 봐도 그리움은 매 한가지 인가 봅니다. 1987년 그해 봄, 당신은 암 병동에서 하루하루 생사를 오가며 사투를 벌이고 있으셨습니다 봄기운이 만연한 어느 날 오전 아침회진을 마친 주치의 선생님은 말씀 하시더군요 수술을 한다 해도 생존 확률은 50% 정도라고, 그 말에 어머니와 저는 병원 비상계단에서 한없이 울부짖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약 5개월간 지속되는 병원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수록 어머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오산리 기도원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오직 기도로서 버티고 있었지만, 오히려 아버지의 병세는 악화되어 5일째 혼수상태에 빠져들었고 희망의 불씨도 점점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저녁, 그날도 교회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품안에서 하얀 손수건 한 장을 조심스레 내 보이시며 조용기 목사님께서 아버지를 대신해서 안수(치유)기도를 해주신 손수건 이라며 아버지의 이마에 올려놓으셨고 우리 온 가족은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일년 아니 한달 만 더 살게 해주시라고, 다음날 아침 기적처럼 눈을 뜨신 아버지는 점차 병세가 호전되었고 검사 결과 머릿속 종양이 말끔히 사라졌다며 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않된다고 주치의 선생님은 말씀하셨고 그해 여름이 오기 전 아버님은 병마에서 해방되어 퇴원을 하셨습니다. 이후 30년이 넘게 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당신이 입원했던 병동을 찾아가 산증인으로서 수 백명의 환우들에게 예수님전도의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오직 예수만을 바라보시며 사셨던 우리 아버님은 2025년 12월 23일 예수님 생일을 이틀 앞둔 햇살이 가득한 아침 온화한 모습으로 예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 속, 그 하얀 손수건은 아마도 예수님의 따뜻한 치유의 손길이었나 봅니다.
  • 2026.09.16 / 복순희 기자

    산당을 제거한 히스기야 왕
  •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훼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열왕기하 18장 3~4절 오늘 열왕기하 18장 3~4절의 말씀을 가지고 “산당을 제거한 히스기야 왕”,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크게 따라 주시기를 바랍니다. “산당을 제거한 히스기야 왕”.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입니다. 선한 사람은 늘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일을 합니다. 악한 사람은 늘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일을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과거의 잘못된 모든 모습을 다 내던져 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사람의 길,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 복 받는 그 길을 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악한 사람과 어울리면 안 됩니다. 시편 전체의 서론이 되는 시편 1편에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편 1~2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래서 이 복 있는 사람,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들의 길은 망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 왜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망하는 길을 갑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열왕기 상하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 왕 19명이 다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 중 한 사람도 하나님 뜻대로 사는 왕이 없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는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중에 8명이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 뜻 가운데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던 왕이 8명인데,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아사, 요담, 히스기야, 여호사밧, 요시야입니다. 그런데 이 8명의 왕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을 제거했는데 성경을 보니까 산당까지 제거한 왕은 둘밖에 없습니다. 열왕기상 15장 14절입니다.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야훼 앞에 온전하였으며” 8명의 왕 중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 두 사람만 모든 우상을 없애고 산당까지 없앴습니다. 산당은 히브리 원어로 ‘바마’라고 하는데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부터 가나안 원주민들이 높은 곳이 하늘과 가깝다고 그래서 자기들의 신과 가깝다고 그래서 산당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고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해서 자연스럽게 그 산당에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3장 2절입니다. “그 때까지 야훼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 왕 때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되고 난 다음, 이제부터는 모든 백성이 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하나님이 임재하신 이 거룩한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그렇게 그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이 이제 바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집에서 가까운 산당에서 예배드리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집을 떠나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는 해발 750m 고지,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고 내려와야 하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의 편리함을 따라서 그냥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않고, 산당에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적당히 자기 편리함과 타협하는 것이죠. 문제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가나안에 있는 이방신을 섬기는 그들의 풍습과 혼합되어 굉장히 성적으로도 문란하고, 혼합 종교의 모습 속에서 잘못된 모습으로 예배드리기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1. 산당을 없애지 못한 이유 1) 자신들의 편리함을 택한 백성들 그런데 왜 그 산당을 없애지 못했는지? 산당 없애지 못한 이유는 성경을 보니까 자신들이 집 가까운 데서 편하게 예배드리는 그 편리함을 대신 택했기에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입니다. 이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수십 년,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이고 관습이었는데, 그들이 그들의 예배드리는 곳에서 예배드리다 보니까 편했어요. 집과 가까운 데 있으니까, 안식일이 되면 매주 그곳에 가서 산당에서 예배드리고 제사를 드리고 우리는 우리의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세워진 그다음입니다. 세워진 다음에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야 되는데 집에서 먼 그곳까지 가려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우니까 적당히 타협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리나 여기서 예배드리나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시니까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 했다고 자기 스스로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합리화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나한테 모든 것을 맞추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맞추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지 타협된 신앙으로 우리가 살아가면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심히 책망하셨습니다. 이사야 65장 7절입니다.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야훼가 말하였느니라” 이 같은 상황에서 왕이 명령해서 무조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다 산당에서 예배드리지 말고 오늘부터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라.” 이렇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할 때는 온 백성이 반발할 것입니다. “왕이시여, 우리가 어차피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되는데, 왜 그 먼 길을 가야 됩니까? 그 먼 길을 가려면 우리가 있는 고향에서는 하룻길이 걸리는데, 그러려면 여러 가지 삶이 불편하고 생업에 지장도 있고 하니 이곳에서 예배드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니까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백성들이 마음이 왕으로부터 멀어질까봐, 왕이 염려해서 적당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에서 타협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도 드려도 좋고, 산당에서 예배드려도 좋은 그런 어정쩡한 입장으로 저들의 입장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고 난 다음 그곳에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했습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다음에 하나님께 긴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9장 3절입니다. “야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성전을 거룩히 구별해서 내 눈길과 마음이 교회에 있겠다. 성전에 있겠다. 성전, 즉 교회는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 예배드리는 모습을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여기 와 있습니다. 주님이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가 기뻐 받으시고 하늘 문을 활짝 여사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배의 자리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기적의 자리입니다. 은혜의 자리입니다. 절대 이 자리를 우리가 빼앗기면 안 됩니다. 예배의 중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 살아가는 동안 주 앞에 예배드리는 이 모습을 절대로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하늘 문을 여사 넘치는 복을 부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삶 가운데 큰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 살아가는 동안 교회 중심, 십자가 중심, 예배 중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 종교 혼합주의 문제 그런데 산당에서의 예배는 종교 혼합주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그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그러한 신앙의 모습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이방신, 즉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그 예배 형식과 혼합이 되어서 그 예배 형식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원래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신전에서는 풍요로움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에게 복을 빌기 위해서 그 예식 가운데 성적으로 타락한 그러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그대로 저들에게 그냥 스며들어서 그곳에서 신앙적으로 또 여러 가지 타락한 모습이 그 삶 가운데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모습에서 타협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기가 미식축구 풋볼인데 이 결승전을 슈퍼볼이라고 합니다. 슈퍼볼은 항상 주일 오후에 그 마지막 결승전을 하는데, 미국 라이프웨이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그날 저녁에 미국 전체 교회의 5%가 주일 저녁 예배를 취소했다고 그럽니다. 오늘 오후 주일예배는 취소하니까 집에서 편하게 슈퍼볼 결승전을 관람하시오. 또 어떤 교회에서는 그날 저녁에 교인들과 이웃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서 대형 스크린 앞에서 피자를 먹으면서 열심히 응원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스포츠 게임이 예배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포츠 경기이고 예배는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생명을 바쳐 지켜야 할 우리 신앙의 근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성수 주일, 예배 중심의 신앙을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저희 할아버님이 평양 서문밖교회(장대현교회)를 섬기시는 장로님이셨는데 왜 북한에서 탈출해서 월남하셨느냐? 북한에 공산당이 들어와서 기독교가 너무나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고 북한에 있는 3,500개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있으니까, 기독교를 핍박하기 위해서 저들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주일에 투표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 투표를 시행하니까 믿음이 좋은 분들은 주일날 투표하러 안 갔습니다. 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이 그것을 구실로 삼아서 목사 장로들을 감옥에 잡아놓고 저들을 고문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공산 치하에서는 우리가 마음껏 예배드릴 수가 없으니까 월남 하자고 해서 온 가족을 데리고 월남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여러분 예배드리는 이것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근데 히스기야 왕이 그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라를 다스릴 때 보니까 우상은 제거가 됐는데 아직 산당에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명령해서 모든 산당을 헐어버렸습니다. 일부 백성들의 반발에도 과감하게 산당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열왕기하 18장 3절, 4절입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야훼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우상도 다 없애고, 그다음 놋뱀마저 그 역사적 유물인데 그것을 또 우상으로 섬기니까 부숴버렸습니다. 요시야 왕도 모든 산당의 그 제사장을 철폐하고 산당을 부숴 버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3장 5절, 8절입니다.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과감하게 다 허물어버렸습니다. 2. 우리의 산당 오늘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우리들의 산당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산당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산당은 우리 자신입니다. ‘자기 만족’이라고 하는 산당을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이 우리 주님이 아니라 자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열심히 나와서 예배드리고 충성할 때 내 마음이 좋으면, 내 감정을 따라서 기쁘고 좋아서 나와서 열심을 내다가도 누군가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내 마음을 힘들게 하면 ‘나 이런 교회 안 나가.’ 교회도 안 나오고 예배도 빠지고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으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자기 편리에 따라 지금까지 ‘자기 만족’이라는 산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산당을 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내 삶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과감하게 나라고 하는 산당을 제거해 버리고 주님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음 은혜받았을 때 우리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때는 그냥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은혜 받고 나니까 교회 가는 것처럼 기쁜 날이 없었어요. 그냥 교회 가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주일은 교회 가서 살았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나 좋고 교회에 와서 선생님 말씀 듣는 것도 너무나 좋고, 또 찬양대에서 찬양하는 것도 너무나 좋고 그냥 좋았어요. 교회 봉사를 하는데 교회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를 하라고, 또 교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그것도 너무나 좋고 그저 교회 일이라는 일은 안 해본 것이 없었는데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했습니다. 너무나 주님 은혜 감사했습니다. 근데 우리들이 그렇게 처음에 예수님 믿을 때 그렇게 기쁘고 감사함으로 예수를 믿다가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알게 모르게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산당을 세워놓고, 편하게 내 자신의 모습에 맞춰서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기쁨이 없어졌어요. 기쁨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벌써 내가 산당을 크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어졌습니다. 그 내가 내 마음속에 산당이 생긴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그 산당을 다 허물어 버리기를 바랍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알게 모르게 내가 비판적으로 남을 판단을 하고, 비난하고 불평, 원망하고 있다고 하면 내가 상당히 이미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과감하게 이 산당을 제거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그저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나와서 예배하고 찬양해야 하는데, ‘나’라고 하는 산당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이것이 문제가 되고 걸림돌이 것입니다. 여러분,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 삶 속에 산당을 다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늘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축복이 임하고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면 늘 시험에 빠집니다. 어느 때는 열심히 봉사하기도 하다가 어느 때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은혜 받았다고 하다가 어느 날은 은혜 전혀 못 받고 구경꾼이 되어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가 이 같은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예배드린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교회 나올 때마다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을 찬양하는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내 삶 속에 있는 산당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큰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3. 산당 대신에 세워져야 할 성전 이 산당을 제거하고 산당 대신 세워져야 될 성전이 무엇인지를 이 시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모든 산당은 제거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와서 성전 중심, 예배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우리가 돌아와야 합니다. 1) 예수님 중심의 신앙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 중심의 신앙으로 우리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나서 사람이 보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세상에 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는데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우리가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우리가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면 주님이 우리 삶 가운데 능력을 더하여 주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내 힘으로 부족하지만 연약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굳건히 서서 주의 이름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며 우리 삶 가운데 있는 우상과 산당을 철저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2) 우상과 산당의 제거 히스기야 왕과 요시야 왕이 우상과 산당을 제거해 버린 것처럼 우리 삶 가운데 있는 우상과 산당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우상이 무엇입니까?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동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사업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사업이 너무너무 잘 되니까 그 사업에 눈이 멀어서 주일 예배도 빠지고 사업장에 가 있다면 그 사업장이 우상인 것입니다. 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복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복을 주신 그 복을, 복만 바라보고 살고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이 우상인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와 인기가 우상인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과감하게 우상을 철폐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놓으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100세 때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귀합니까? 70세쯤 되어서 애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 우리 아기” 눈만 뜨면 우리 아기하며 찾느라 정신 없을 거 아닙니까. 아브라함도 100세가 되어서 아들을 얻으니까 너무 신나서 “이삭아, 이삭아, 이삭아” 눈만 뜨면 그냥 “이삭아! 이삭아!” 하나님 보시기에 이삭을 준 나 하나님은 너에게 이삭을 선물로 줬는데 나를 경외하지 않고 이삭만 찾고 있구나. 그래서 명령을 내립니다. 창세기 22장 2절입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이고, 아들을 가서 죽여 불로 태워드리라는 거예요. 야~! 근데 그 가는 길이 삼 일 길입니다. 아브라함을 완전히 그 우상을 깨뜨리시려고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정말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100세 때 준 아들, 그 아들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니깐 3일 길을 데리고 가서 모리아 있는 한 산에 올라가 칼을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급히 그를 막으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1절, 12절입니다.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이 창세기 22장 16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 여러분, 삶 가운데 모든 우상과 산당을 다 제거해 버리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선물로 더하여 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한평생 살아가면서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님 제일주의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녹스(John Knox)의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원래 가톨릭 신부였는데 그가 종교개혁자들과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종교개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조지 위샤트’ 목사가 불에 태워 죽임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아주 큰 충격을 받으면서 나는 이제 이 종교개혁을 끝까지 내가 이행하겠다. 그래서 세인트앤드류스 성에 모여서 그들이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프랑스 군이 와서 이 성을 점령해 그를 잡아가서 19개월 동안 프랑스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부렸습니다. 노예 생활은 정말로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시면 내가 다시 가서 종교개혁을 완성하겠습니다.’ 그래서 그가 풀려나 스코틀랜드 돌아와서 열심히 그가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했는데 당시 여왕은 철저하게 가톨릭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메리 여왕이 와서 저들을 박해하자 할 수 없이 잠시 피하여 제네바에 가서 종교개혁자 존 칼빈과 만나 다시 신앙적으로 무장하고 돌아옵니다. 그때 스코틀랜드에 돌아오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시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시옵소서.” 그가 돌아와서 그가 있는 곳에 세인트앤드루스를 개혁하려고 할 때 가톨릭 대주교가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일 앞으로 교회에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면 당신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럴 때 단호히 대답합니다.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 주님께서 내 생명의 피난처가 되시므로 나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선포했는데, 얼마나 말씀을 강하게 선포했는지 마치 수백 대의 나팔을 부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의 별명이 ‘하나님의 나팔수’입니다. 그는 메리 여왕의 탄압과 핍박에도 물러서지 않고 담대히 종교개혁을 완성하는 위대한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사명이 무지한 자를 가리키고 슬픔에 잠긴 자를 위로하고, 약한 자를 굳건하게 하고 교만한 자를 꾸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타락한 시대에 다가올 세상을 위해 책을 쓰는 것보다 이미 많은 것이 기록되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것은 너무나 적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이 사명을 완수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59세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쓰러져 마지막 그의 삶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며 종교개혁을 이루는 데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장례식에 모인 군중들이 이렇게 애도했습니다. “여기 이 세상의 사람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 녹스가 누워 있다.” 여러분! 인생 살아가면서 그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철저하게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서 위대한 하나님의 업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94장(통 102)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우리의 찬양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시고, 이 믿음 한평생 굳게 붙잡고 주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09.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9)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⑭
  • 3. 그 밖의 인물들의 설교 또는 연설 오늘은 “예루살렘 사도회의”(행 15장)에서의 주의 형제 야고보의 발언과 랍비 가말리엘의 연설에 주목하고자 한다. 2)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의 주의 형제 야고보의 발언(15:14~21) (1) 상황: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신자 몇이 가서 이방인 회심자들이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 다고 가르치자 큰 다툼과 변론이 일어남. 그래서 대표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서 이 문제를 확정짓기로 함(15:1~2) (2) 대상: 의논하러 모인 “사도와 장로들”(6절) (3) 야고보의 발언(15:14~21) ① (많은 변론이 있은 후) 베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어…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7~11절) ②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들음(12절) ③ 야고보: 가. 시므온(베드로)의 말이 선지자의 말씀(암 9:11~12)과 일치함. 나.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19~20절) (4) 결과: ① 안디옥 교회에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다와 실라 편에 편지를 보냄(22~28절):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28~29절) ②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서 심문 받을 때 베드로의 말을 듣고 무리들이 대노하여 그들을 죽이려고 할 때의 가말리엘의 발언(5:35~40) (1) 대상: 대제사장, 사두개인, 공회,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21b절) (2)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의 발언(34~39절) ① 주의 촉구 - 이스라엘 사람들아, 조심하라(35절) ② 소요를 일으킨 드다와 유다의 예 가.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짐(36절) 나.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짐(37절) ③ 가말리엘의 제언 -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38~39절) (3) 결과: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놓음(40절)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월 19일(토) - 어둠에서 빛으로
  • ◎ 말씀 : 행 26:16~18 ◎ 찬송 : 499장(통 277장)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복음의 사도가 되었는지를 증언했습니다. 그는 한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일에 온 힘을 쏟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난 뒤 자신이 본 것과 장차 보게 될 일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람들의 눈을 뜨게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바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복음이 필요한 자리로 보내십니다. 오늘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혀 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둠 가운데 있는 이들이 주님의 빛으로 돌아오도록 우리를 사용하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월 18일(금) -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 ◎ 말씀 : 전 3:1~11 ◎ 찬송 : 312장(통 341장) 우리 삶 속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날 때와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와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와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와 춤출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매 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앞날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장 알맞은 시기에 가장 선한 일을 이루십니다. 때로는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조용히 신뢰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9월 17일(목) -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 ◎ 말씀 : 행 22:4~8 ◎ 찬송 : 144장(통 144장) 사도 바울은 한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이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묻자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사울은 박해자에서 복음의 사도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을 바꾸신 주님은 오늘도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죄와 어둠에 붙들려 있던 옛사람을 벗고 주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몰랐던 어리석고 교만한 과거를 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9.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런던 선교사세미나·국제 학술세미나] 순복음의 신앙과 신학, 유럽 선교의 도약을 이끌다
  • 이영훈 목사, 성령 충만과 사명 회복 강조 김호성·전귀천 박사, 순복음의 역할 조명 ‘2026 런던 선교사 콘퍼런스’ 국제학술세미나와 선교사 세미나가 8일 런던순복음교회에서 개최됐다. 이영훈 담임목사는 ‘순복음의 신앙과 신학’을 제목으로 세미나를 인도하며 순복음 신앙의 출발점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좋으신 하나님 신앙,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 순복음의 7대 신앙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이영훈 목사는 “순복음 신앙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은혜가 임했고 삼중축복과 오중복음의 은혜를 누리게 됐다”면서 선교사들이 사역 현장에서 순복음 신앙의 정체성을 굳게 붙들 것을 당부했다. 특히 이 목사는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며, 이는 곧 예수 충만”이라며 “성령으로 충만하면 삶 속에서 ‘작은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교에 대해서는 “선교는 교회 존재의 목적이고 근거이며 부흥의 비결”이라며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선교대위임 명령을 감당하는 능력은 성령 충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와 성령 충만의 신앙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며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국제학술세미나에서 김호성 박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계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호성 박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교구 시스템과 평신도 교육, 기도와 예배, 해외 성회 및 목회자 세미나 등이 세계 여러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전귀천 박사는 ‘세계 선교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 역사의 변혁을 주도한 예언자적 교회’를 주제로 발표했다. 전귀천 박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전인적 구원, 디아스포라 거점, 남반구 성장, 다중심 구조, 공적 영역 등 세계 선교의 주요 흐름을 국제 문서로 정식화되기 이전부터 실천해 왔다고 분석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윤성빈 선교사(노르웨이)는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선교지의 영혼들을 더욱 사랑하고 충성스럽게 섬겨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하며 유럽 복음화의 새힘을 얻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학술세미나와 선교사 세미나는 순복음의 신앙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세계교회와 선교 현장에서 그 신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함께 토의하고 계획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 2026.09.11 / 김용두 기자

    여선교회, 성찬 포도주 담가
  • 여선교회는 10일 성찬실에서 성찬 예식에 사용될 포도주를 정성껏 담갔다. 이번 포도주 담그기에는 3㎏짜리 포도 2500상자와 15㎏짜리 설탕 300포대가 사용됐다. 봉사자들은 최상품 포도를 알알이 떼어낸 후 깨끗이 세척해 대형 통에 설탕과 함께 켜켜이 담았다. 이렇게 담근 포도는 1년간 숙성 과정을 거쳐 성도들의 성찬용 포도주로 사용된다. 이날 봉사에는 여선교회 박성순 회장과 임회원들을 비롯해 이동기 성찬실장과 성찬실원, 남선교회와 총무국 직원 등 80여 명이 참여했다. 봉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손을 보태며 섬김의 기쁨을 나눴다. 여선교회의 성찬 포도주를 담그는 봉사는 3일간 이어졌다. 박성순 회장은 “성찬 포도주를 담그기 위해 많은 봉사자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했다. 정성껏 만든 포도주가 성도들의 성찬에 귀하게 사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동기 성찬실장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찬을 위해 포도주를 준비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 2026.09.11 /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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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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