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서울·자가·대기업보다, 베들레헴
  • 모두가 오르려 할 때 예수님의 내려오심 성공의 자리보다 사랑의 자리로 옆자리 직원이 “수지자가대기업배부장입니다”라고 말하기에 ‘그게 뭔 소리야?’ 하고 웃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제목이 〈서울자가대기업김부장〉이라 했다. 제목만 봐도 이 시대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서울’은 기회의 상징, ‘자가’는 안정의 상징, ‘대기업’은 부와 권력의 상징, 그리고 ‘김부장’이라는 이름은 사회적 성공과 인정의 표식처럼 들린다. 많은 이들이 믿는다. “올라가야 성공이고, 오르지 못하면 실패다.” 하지만 12월, 우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하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가장 낮은 자리인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셨고 사람의 옷을 입고 세상 한가운데로 ‘내려오셨다.’ 김부장의 자리, 예수님의 자리 세상은 말한다. “높이 올라야 산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낮아져야 크다.” 예수님의 첫 요람은 금빛 요람이 아니라 초라한 여물통이었다. 그분은 왕궁이 아닌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그분의 첫 손님은 권력자가 아니라 평범한 목자들이었다. 드라마 속 ‘김부장’이 지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종종 신앙마저 성과와 위치로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타이틀을 보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는가를 보신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머리로 아는 복음, 삶으로 잃은 복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권력의 반전이었다. 왕이신 분이 제자의 발을 씻기신 것이다. 그분은 실제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무릎을 꿇으셨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머리의 지식으로만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예배에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래도 나는 올라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내려오셨고, 우리는 여전히 오르려 한다. 그래서 복음은 머리로는 아는데 삶에서는 사라진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낮아짐 속의 진짜 능력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으로 성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고 제자에게 배신당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홀로 남으셨다. 그러나 바로 그 낮아짐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되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랑으로 세상을 품으셨다. 그분의 낮아짐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고, 그분의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용서였다. 우리는 종종 “강해야 산다”고 믿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크리스마스, 내려놓음의 계절 크리스마스는 축하의 날이 아니라 내려놓음의 계절이다. 내가 쥐고 있던 자랑과 불안, 비교와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부요함을 버리고 가난한 자로 오셨으며 강함을 버리고 약함으로 오셨다. 그분의 내려옴이 있었기에 우리의 구원이 가능했다. 이제 우리의 신앙도 그분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사람 위에 서는 자리보다 사람 곁에 서는 자리로, 칭찬받는 자리보다 섬기는 자리로, 그곳에서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누군가에게 먼저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일 - 외롭고 힘든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는 일 - 가족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먼저 하는 일 - 내 주장 대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 혹은 오랫동안 미루었던 용서의 한마디를 건네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들레헴의 예수님을 닮아 이 땅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려옴의 복음’이다. Think! 나는 예수님처럼 내려올 용기가 있는가? 복음이 내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되고 있는가? Thank! 주님, 높아지려는 마음을 비우고 베들레헴의 예수님처럼 낮아진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김선희 교수(교육학 박사)
  • 2025.12.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10)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⑥
  • 지난 호에 이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설교들을 계속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2) 상황: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을 고쳐 주자 주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면서 제사하고자 할 때(14:8~ 20) (1) 대상: 루스드라의 이방인들(11~13절 참조)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와서 제사하려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이 옷을 찢고 무리들에게 설교함) (2)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14~17절) ① 우리도 같은 사람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15a절) ②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5b절) ③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으로 자신을 증언하심: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16~17절) (3) 결과: ① 겨우 무리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함(18절) ② 죽도록 돌에 맞은 바울: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침(19절) ③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갔다가 1차 선교여행 여정의 역순으로 안디옥으로 귀환함(20~26절) 3) 상황: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중 각종 우상과 철학의 중심지인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17:16~34) (1) 대상: 아덴(그리스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21, 22절) (2)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22~31절) ① 아덴사람들의 종교성을 활용(22b~23절)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② 하나님에 대한 설명(신론) (24~27절)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24a절) - 인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24b~25a절) - 생명의 공급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25b절)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심(26절) - 하나님을 더듬어 찾도록 하심: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27절) ③ 인간 존재의 성격(28~29절) 두 명의 헬라 시인 인용 -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크레타 섬의 시인 에피메니데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시칠리 섬의 시인 아라쿠스) - 우상숭배 금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효영 목사(장애인대교구장) -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 갑시다
  • 2025년 한해도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탄생한 성탄절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우이웃, 독거노인, 장애인 등 마치 12월에만 소외된 이웃이 있는 듯 평소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은 해마다 이맘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를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간다”고 말합니다. 벽돌 하나는 약하지만 서로 연결될 때 견고한 성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 안에서 연결될 때 교회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집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했습니다(벧전 2:4~5). 우리는 죽어 있는 돌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으로 충만한 산 돌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정체성을 단계적으로 선언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며(19절), 말씀의 터 위에 세워진 자이며(20절),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자이며(21절), 결국에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자들입니다(22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웃과 연결될 때 구역이 건강한 구역이 되고 함께 모여 예배함으로 모든 예배가 성령으로 충만한 역동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과 연결되어 예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다음의 세 가지를 점검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말씀의 기초 위에 서 있는가?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 밀착되어 성령으로 충만한가? 셋째, 이웃들과 연결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과 모든 이웃들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위에 서서 주님과 성령으로 연결되며 성도 간에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축복의 통로로써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20일(토)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 ◎ 말씀 : 미 7:7~8 ◎ 찬송 : 393장(통 447장)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현실을 보며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미 7:2)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에 머물지 않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겠다고 결단하며 희망을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귀 기울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며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이 빛이 되어주실 것을 담대히 고백합니다. 우리도 세상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을 굳게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우리의 길을 밝히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보며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9일(금) - 마지막 날에는
  • ◎ 말씀 : 미 4:3 ◎ 찬송 : 293장(통 414장)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이 통치하실 마지막 날을 예언합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모든 어둠과 악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평화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칼과 창 같은 전쟁 무기를 보습과 낫 같은 농기구로 바꿀 것입니다. 전쟁과 폭력이 사라진 세상이 올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날에는 서로를 해치는 대신 살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미가 선지자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 전쟁과 폭력, 불의가 만연합니다. 그러나 미가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악은 선으로 바뀌고 참된 사랑과 평화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늘도 그날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여전히 악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실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합니다. 그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8일(목) - 내가 네게 보이리라
  • ◎ 말씀 : 계 4:1 ◎ 찬송 : 79장(통 40장) 성령에 감동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로마 황제의 박해로 큰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은 요한의 시선을 고통스러운 땅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늘로 들어 올리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땅의 문제에 매인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시고 눈앞의 현실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하늘의 관점을 놓치곤 합니다. 인간의 눈이 아닌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우리 삶 속에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현실의 어려움에 낙담하지 않고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7일(수) - 두려워하지 말라
  • ◎ 말씀 : 계 1:17~19 ◎ 찬송 : 405장(통 458장) 사도 요한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고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습니다. 지극히 거룩하고 압도적인 예수님의 임재 앞에서 경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쓰러진 요한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요한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 서면 인간의 연약함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님이 함께하신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 되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처음과 마지막 되시는 주님 안에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2월 16일(화) - 구원은 야훼께 속하였나이다
  • ◎ 말씀 : 욘 2:7~10 ◎ 찬송 : 289장(통 208장)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이를 거부하고 도망칩니다.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난 요나는 결국 물고기 뱃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로 토해내게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불순종한 사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말씀에 불순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 용서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항상 열려 있으며 그분의 사랑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불순종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한평생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12.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