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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선교회, 야외예배
  • 사단법인 순복음선교연합회 서아시아선교회 야외예배가 6월 28일 세계선교센터 5층 선교회사무실과 비전센터 7층 농구장에서 개최됐다. 문성학 안수집사의 사회로 열린 이날 예배에서는 조재영 선교사의 기도 후 김진만 선교사가 '멈추지 않는 발걸음, 멈추지 않는 사랑'(딤전 4:8)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서아시아선교회장 방상훈 장로의 환영사 후 구현서, 배정희, 김병천, 황신 선교사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이어 자리를 농구장으로 옮긴 선교사들과 선교회원들은 탱탱볼탁구 대회를 개최해 믿음팀(베트남, 라오스, 스리랑카), 소망팀(인도, 네팔), 사랑팀(캄보디아), 샬롬팀(태국, 미얀마) 네팀으로 나뉘어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또한 김창모 안수집사의 인도로 레크리에이션을 갖고 화합과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 2025.07.02 / 복순희 기자

    아프리카선교회, 야외예배
  • 사단법인 순복음선교연합회 아프리카선교회가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환영하고 보내는 선교사들과의 유대를 위해 야외예배를 개최했다. 6월 28일 행주산성에서 열린 야외예배에는 아프리카총회 소속 선교사들과 이들을 위해 1년 365일 중보기도하는 선교회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아프리카 각국의 선교상황을 공유하고 선교사역을 위해 기도했다. 또한 오순절 성령의 바람이 아프리카 대륙을 변화시키길 간구했다. 아프리카선교회장 김병현 회장과 선교회원들은 선교사들과의 뜻깊은 만남에 감사하며 선교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스페인,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가나, 잠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르완다, 부룬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교사들과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기도했다.
  • 2025.07.02 / 복순희 기자

    예수님의 절대 지상명령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18~20절)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될 사명이고 따라야 할 주님의 명령으로 ‘절대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라는 이 명령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 뒷부분에 나오고, 또 초대교회 기록을 담은 사도행전 첫 부분에 나오는데, 그 대표되는 구절이 바로 오늘 함께 봉독한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절대 지상명령입니다. 교회가 행해야 할 첫 번째 사명이고 교회 존재 목적입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선교하는 나라가 부강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야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 가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라! 가서 복음을 전하라!” 이 말씀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가라!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저들에게 가라!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저들에게 가라! 질병과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 저들에게 가라!” 이 명령에 순종해서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권세로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선교 사역을 담당하는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국경을 뛰어넘어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정치와 이념을 초월해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복음을 들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편견을 버리고 인종을 초월해서 우리는 가야 합니다. 경제적인 부유함을 갖고 있지만 폭력과 마약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저 미국이나 유럽을 향해서도 우린 가야 합니다.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나 복음의 문이 굳게 닫힌 이슬람권, 불교권, 공산권, 저 중국, 북한에도 우리가 가야 합니다. 복음을 들고 우리는 가야 합니다. 교회는 예배하기 위해서 모이는 교회로서의 사명과 역할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흩어지는 교회, 가는 교회의 사명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흩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자 저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은 환난이 다가왔는가? 주님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어서 이런 환난이 다가왔구나. 그래서 저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 4절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이제 우리가 마음으로만 복음을 전해야지 이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단단히 신발 끈을 동여매고 복음을 전하는 그 발걸음은 복 받은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7절에 말씀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가까운 이웃으로, 학교로, 병원으로, 직장으로, 사업장으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2. 제자를 삼으라 나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됩니다. 제자를 삼으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a)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는 곳마다 주의 복음을 전하고 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교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게 한 다음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시켜서 주님 앞에 충성된 일꾼으로 그를 쓰임 받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신자는 많은데 제자가 적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제자가 되어서 예수의 사랑을 온전하게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에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선한 영향을 끼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계속 영적으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나지 못하면 정말로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온 가정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신앙이 자라지 않고 어린 신앙에 머물러 있기에 환난이 다가올 때 쉽게 무너지고 상처를 받고 쉽게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말씀으로 무장해서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쓰임 받도록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여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로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정말로 귀하게 위대하게 아름답게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 드류 신학대학교에 석좌교수로 있는 레너드 스윗 박사님은 세계적인 기독교 미래학자입니다. 선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타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때까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함께하는 것, 그 문화 속에 예수 이름의 제자를 양육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선교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교가 아닌 바로 하나님의 선교가 된다.’ 주님과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합니까?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나가 똑같이 거짓말하고 죄짓고 싸우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화를 내고 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어째 저래?’ 이렇게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그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해도 행동을 해도 그의 삶에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와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신자에 머물러 있지 말고 제대로 변화되길 바랍니다. 영적으로 날마다 성장하게 되길 바랍니다. 이웃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우리의 가진 은혜를 나누어 주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침례를 베풀라 성경은 말씀하기를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제자들의 사명은 복음을 들고 가서 예수님을 전하며 제자로 만들고 침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침례를 베풀라는 말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이가 ‘응애’ 하고 태어난 다음 동사무소에서 가서 아이를 등록해야 그 아이의 존재가 인정되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 반드시 교회에 와서 침례받고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침례를 받는 것은 많은 사람 앞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그러한 예식입니다.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인 박해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까지 250년 동안 10명의 황제를 거쳐 가면서 로마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 박멸 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시를 새롭게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변두리의 낡은 건물들에 불을 질렀는데 폭동이 일어나니까 그 폭동의 죄를 전가하기 위해서 기독교인이 불을 질렀다 해서 그때부터 기독교인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기독교인을 붙잡아서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죽게 하고, 불에 태워 죽이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고, 로마 귀족은 모든 재산을 빼앗고 평민으로 만들어서 추방시켰습니다. 이같은 환난과 핍박이 25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박해 시기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자기 목숨에 위험이 다가올 것을 무릅쓰고 흐르는 물가에 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걸 만방에 공포한 것입니다. 모든 교인이 나와서 같이 찬송하고 기도하며 흰 세마포를 입혀주고 박수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침례받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침례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밀라노 칙령’이 발표됨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박해가 종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 제국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로 변화될 때 그 당시 기독교 인구가 8%입니다. 8%만 제자화 되어 있으면 그 나라는 변화되고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변화되려면 8%의 제자들이 이 나라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제자들로 변화되면 이 나라는 변화가 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분오열된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고 잘못된 이념들이 떠나가고, 동성애의 물결이 물러가고, 이단들이 물러가고, 무속 신앙이 떠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기만 하면 저 휴전선도 무너져서 북한도 복음으로 변화되고 통일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갈 때 그 앞에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담당하고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몽둥이로 세 차례나 맞았습니다. 감옥에도 들어가고 또 헐벗고 굶주리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그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도 바울과 항상 함께하셨던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제자의 길을 갈 때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위대한 일을, 놀라운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복음 들고 나갈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해서 위축되고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자의 길을 갈 때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주님의 약속대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위대한 일을, 놀라운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복음 들고 나갈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온다 해도 위축되고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5절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내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입니다. 이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할 때 죽어갔던 심령들이 살아나게 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지만 주님이 함께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되면 우리는 넉넉히 이 귀한 일을 감당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이 땅에 순교자적인 정신을 갖고 와서 헌신한 많은 선교사님의 열정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화진에는 조선 땅에 와서 선교사로 여러 해 동안 사역하다가 죽은 수많은 사람의 무덤과 또 1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루비 레이첼 켄드릭 선교사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루비 레이첼 켄드릭 선교사는 1883년 1월 28일 텍사스 플래노라라고 하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1907년 미 감리교 해외 여선교사회 파송을 받아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개성에서 한국말을 배우면서 학교, 교회사역,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1908년 6월 9일 급성 맹장염을 앓게 되고 수술을 받고 회복되지 못하고 열흘 만에 6월 1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25세입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이와 같은 편지를 부모님에게 보냅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도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km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선교 본부에서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숨어서 아직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저는 조선을 향한 저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 자기 선교를 후원한 텍사스 엡웟(Epworth) 청년회, 이 청년회는 18살부터 25세까지의 젊은이들이 모여진 선교 단체였는데 그곳에 한 편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에 이와 같은 글이 남겨 있습니다.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든 생명을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이 문구는 그녀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신에 이와 같은 간곡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거든 텍사스 청년들이 10명, 20명, 50명씩 조선에 오게 해 달라" 마침 그때 엡웟 청년 연합대회가 열리고 있을 때 이 편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청년들이 그 편지를 읽고 선교의 열정으로 무장되고 선교에 뜻을 모았을 때 그다음 날 그녀의 죽음의 소식이 전해졌고, 수많은 젊은이가 자원해서 선교에 나서고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절대 지상명령을 실천한 주님의 일꾼들이 있었기 때문에, 참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이 복음화되고 세계가 복음화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참 제자가 되어, 선교사가 되어 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귀한 삶을 감당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508장(통 270)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1절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세 후렴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2절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 생명 얻으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3절 영생의 복락과 천국에 갈 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라 우리게 부탁하셨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의 모든 것 바쳐 헌신하며 복음의 증인 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온 많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목숨을 바쳐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 선교의 빚, 사랑의 빚을 갚을 때가 되었사오니 우리 모두 선교의 일꾼이 되어서 우리가 있는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5.06.2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마포2대교구, 더블레싱 345 예배 
  • 마포2대교구 더블레싱 345는 21일 사회사업미용선교회실에서 선교사 초청 예배를 드렸다. 3040지도 배영훈 장로의 대표기도와 대교구장 김현동 목사의 강사소개 후 E국에서 사역하는 김바울 선교사는 ‘역사하시는 하나님’(마 1:18~23)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만난 강도를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으로 회심시켜 첫 번째 제자로 삼은 일 등 사역 속 간증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고 더블레싱 345에 강력한 성령의 은혜가 임하길 함께 기도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50여 명 성도는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초대교회 공동체 같은 은혜를 나누며 그리스도를 위한 사명 감당을 확인했다.
  • 2025.06.27 / 오정선 기자

    (79) 종교개혁⑲
  • 『크리스천의 자유』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가운데 마지막은 그가 1520년 가을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낸 『크리스천의 자유』이다. 이 글은 단순히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이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공개서한 형식으로 작성되었고 라틴어와 독일어로 동시에 발표되었다. 루터는 인간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며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행위, 자유와 순종의 관계를 설명한다. 루터는 먼저 영혼의 자유 곧 인간의 내적인 자유에 대해 말한다. 그는 외적인 조건이나 종교적 행위만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사람은 비로소 의롭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롬 10:10)라는 말씀에 근거한 이해이다. 루터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도가 마치 신랑과 신부처럼 하나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께 속한 생명과 구원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의 죄와 죽음은 그리스도께 전가되어 십자가에서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과 믿음이 주는 참된 자유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되는데, 굳이 선행은 왜 필요한가?” 루터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한다. 진정한 믿음은 반드시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내적으로는 어떤 사람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완전한 자유인이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코 게으를 수 없으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선한 일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선행은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은 사람이 감사와 사랑으로 드리는 삶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올려드리고 사랑으로 이웃을 향해 자신을 낮추는 삶.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자유를 얻은 크리스천의 삶이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딤전 1:9)라는 바울의 말처럼 루터는 이러한 자유를 통해 크리스천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며 당시 교회와 성도들에게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촉구했다. 다음은 『크리스천의 자유』 중 한 단락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크리스천의 진정한 자유와 섬김의 의미를 곱씹어 보자.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종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대하여 완전히 섬기는 종이며 누구에게나 종이다. 이 두 명제는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서로 잘 조화된다. 이 두 명제는 모두 바울 자신이 말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나는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만인의 종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로마서 13장 8절에서는 “너희는 서로 간에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라고 말한다. 사랑이란 그 본질상 기꺼이 섬기고자 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그 대상에 대하여 기꺼이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그러하시다. 그는 만물의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서 나셨으며 율법에 굴복하셨다(갈 4:4). 그는 자유자이며 동시에 종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시며, 동시에 종의 형상으로 계신다(빌 2:6f). 김형건 목사(국제신학연구원 담당)
  • 2025.06.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최진용 목사(강서1대교구장) -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
  •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삶을 잠시 돌아보면 나이 듦이라는 단어에 얽힌 감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 든다’는 것을 곧 ‘늙는다’고 여겨 한숨을 쉬고 그래서인지 실제로 더 빠르게 노화를 경험하곤 한다. 그런데 이 노화는 단순히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타 히데키는 『사람은 감정부터 늙어간다』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전한다. 그는 “노화는 지력이나 체력보다 감정에서 먼저 시작된다”고 말한다. 지능이나 지성은 비교적 늦게까지 유지되지만 감정은 세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감정이 먼저 늙으면 육체도 빨리 따라 늙고 반대로 감정이 젊으면 몸도 자연스레 활력을 되찾게 된다. 그러니 ‘감정의 젊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정의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성경 빌립보서 4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라, 감사하라.” 이 말씀은 단지 마음을 다스리라는 조언이 아니다. 이 네 가지는 감정의 영역이자 믿음의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영적 무기이다. 기쁨, 관용, 감사는 건강한 감정이지만 원망과 염려는 감정을 병들게 한다. 우리 마음이 원망과 불평,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면 그것은 이미 감정이 늙어버렸다는 증거이다. 감정도 습관이다. 자꾸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면 어느덧 우울한 것이 일상이 된다. 감정은 기질의 영향을 받지만 훈련을 통해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 날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를 선포하고 삶에 실천을 해 나가면 성령께서 우리의 감정을 도우시고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기뻐하고 감사하자! 사랑하고 용서하자! 염려하지 말고 여유 있는 미소로 살자!” 감정의 늙음을 거절할 때 영적 젊음을 지키고 육체도 함께 회복된다. 그것이 곧 젊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이며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4~7).
  • 2025.06.27 / 김용두 기자

    7월 5일(토) - 염려가 아닌 믿음으로
  • ◎ 말씀 : 마 6:31~33 ◎ 찬송 : 456장(통 509장)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인간의 염려와 근심도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지 않도록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아시고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신 “그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며 “그의 의”는 우리 삶에 중심으로 삼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생활의 모든 걱정과 염려 앞에서 눈앞의 환경보다 주님을 먼저 바라보며 그것들을 이겨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4일(금) - 행복의 비결
  • ◎ 말씀 : 마 5:3 ◎ 찬송 : 427장(통 516장)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소망하지만 그 비결을 잘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팔복에 관한 말씀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행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재물의 소유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영적인 가난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마음과 영혼이 가난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세상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삶의 매 순간 하나님만 의지하여 천국을 소유한 것과 같은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5.06.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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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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