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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은혜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장 2~4절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좋은 일만 생겨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고 없이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다며 자신은 건강하다고 자랑하던 어떤 분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왜 이제 오셨냐고”라며 말기 암 진단을 받는 분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늘 믿고 의지하고 모든 것을 의논했던 자기 동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또 젊은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곧 회사가 어려워서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잘 되던 사업에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서 큰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이처럼 저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1. 고난 중에 기뻐하라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런 고난이 있을 때, 문제를 당할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말고,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하라, 고난 중에 기뻐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난과 시험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우리의 일생을 ‘고난의 바다’라고 말하는데, 바다에 끊임없이 물결치듯이 끊임없이 고난이 우리에게 물결치듯 다가오는 것입니다.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이 시험과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만한 믿음인가? 그 믿음이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 검증되는 그런 과정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잘못된 부분들을 주님 앞에 우리가 다 회개하고 고치고 바로 서기도 하고,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의 믿음이 초보적이다가 점점 성장하는 그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세를 통하여서 출애굽 해서 가나안으로 가는데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걸렸습니다. 40년은 광야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워낙 목이 곧고 고집이 세고 누구 얘기도 듣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살았던 그러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9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목이 곧고 고집불통인 저들을 훈련 시키기 위해서 광야 40년 동안 저들을 광야에서 깨어지고 또 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고난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고난 속에 깊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 당했을 때, 절망에 처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고난을 참고 견디며 다가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전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주님을 섬기다가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다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하늘나라 큰 상급으로 우리에게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 말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잠시 잠깐 우리가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서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견뎌내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기 때문에 환난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고난의 축복 고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고난은 변장 된 축복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고난은 그 당시에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주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119편 71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배우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께 더 크고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자녀로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우리의 모습이 깨어지고 낮아집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를 낮추십니다. 우리를 낮추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 고난의 가장 중요한 축복이고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 이스라엘 백성처럼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얼마나 자기 고집이 센지 모릅니다. 자기주장을 굽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큰 지금 문제는 뭐냐? 목이 곧은 사람, 고집 센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문제가 이렇게 커지는 것입니다. 정치권이 너무 양쪽으로 나뉘어져서 그냥 격렬하게 싸웁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처럼 그냥 물고 뜯고 싸웁니다. 그런데 양당 제도는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왔는데, 미국은 공화당, 민주당 선거 때마다 그렇게 서로 이기려고 캠페인하고 싸우지만 딱 선거 끝나고 나면 둘이 힘을 합쳐서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가 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고 교만하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을 통해서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9장 6절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이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을 깨뜨리시느라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돌고 또 돌고 또 돌게 만드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한 16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대통령께서 백악관 현관에서 직접 자기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마침, 백악관을 방문했던 외교관이 이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께서 존귀하신 몸으로 천한 사람이 하는 구두 닦는 일을 손수 하시다니 될 법한 일인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자기 구두를 자기가 닦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 이 세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인데 어찌 천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반문했습니다. 또 어떤 기록을 보면 내가 내 구두를 닦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이야기한 그런 기록도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종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아서 노예해방이라고 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룬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 잠언서 여러 곳에서 우리의 교만에 대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장 5절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야훼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잠언 18장 12절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단련되고, 깨어지고 낮아져 겸손하게 될 때 장차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앞에 존귀한 인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나아가서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성장하고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인내를 배우게 되고, 인내를 통해서 우리 인격이 연단되고, 그리고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우리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올 때 여러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고난이 다가올 때 고난 앞에서 주저앉아 낙심하지 말고 고난 후에 다가올 미래의 축복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가서 참소함으로 욥을 고난의 모든 어려움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10명의 자녀를 다 잃고 건강을 잃고, 온몸에 피부병으로 온몸을 기와로 긁으며, 부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하며 떠나가고, 친구들은 무슨 죄를 지었냐며 비판했습니다. 그 모든 고난을 참고 견뎠더니 하나님이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동방의 의인으로 넘치는 복을 그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할렐루야.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난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3. 인내의 열매 고난을 통해 우리의 고집불통인 인간의 자아, 교만이 깨어지게 되고,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인격이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우리 삶의 불신앙의 모습이 제거되고, 무엇보다도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인내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성격이 급하죠. 그러나 우리가 인내를 배울 때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인생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말씀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모세는 바로 왕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그를 건져내서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이 공주가 나중에 애굽의 역사를 보면 여왕이 되는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여왕의 아들로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의 어머니 요게벳이 왕궁의 유모로 들어와서 모세를 젖 먹이고 키우면서 “너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히브리 사람이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당하는 것을 기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야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40세가 되었을 때 ‘이제 내가 해보겠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고 나갔다가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욱하는 성질에 사람을 쳐 죽이고 나니까 그는 순간적으로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어서 미디안 광야에 가서 40년 동안 깨어집니다.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깨어지고 또 깨어집니다. 80세가 될 때까지 그는 깨어졌습니다. 얼마나 깨어졌는지 나중에 그의 온유함이 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성경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깨어지면서 모든 면이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급한 성격이 이제는 여유 있는 성격으로 바뀌게 되고, 걸핏하면 성질을 내던 것이 성질내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고, 강한 성격이 부드럽고 온유한 성격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왜 우리 마음 가운데 쉼이 없습니까? 내가 인내하지 못하고 내가 급하고 강하기 때문에 마음에 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시고 여러분이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하면 주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평안함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처럼 그 일생이 고난의 일생이었던 사람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가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난 후에 민족의 영웅이 됐지만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서 14~15년 동안 도망을 다닙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고 군대를 풀어서 쫓아다녔습니다. 하루 한 날 편히 쉴 날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내일은 저곳에서 그냥 새우잠을 자면서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난 다음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왕이 되게 되는데, 7년 동안 다시 사울 왕의 일가와 전쟁을 한 후에 그가 통일왕국의 왕이 되는데, 왕이 되고 나서도 그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가 심판을 받고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가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난 다음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 나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으로 고백한 고백이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 23편의 고백은 다윗의 신앙 고백이요. 우리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시편 23편을 우리가 1절부터 6절까지 함께 믿음으로 고백하겠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주 안에 거하면 고난도 축복이 되고, 어떤 문제도 우리 삶 가운데 우리를 무너뜨리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그러한 축복의 영양제가 되는 것입니다. 노숙자로 살던 한 여학생이 하버드 대학을 가서 미국에서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 있습니다. 미국 ABC TV 방송에서 ‘엘리자베스 머레이’를 크게 보도했는데 길거리에서 살던 노숙자입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는 노숙자가 된 배경은 그의 부모가 마약중독자입니다. 그래서 브롱스 빈민가에 살았는데, 이 뉴욕 브롱스 빈민가에 살면서 정부에서 주는 웰페어 체크로 하루하루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10살 때 어머니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았고, 그때로부터 이 어린 딸이 나가서 구걸하면서 부모님 먹을 것을 준비했습니다. 15살 때 그의 어머니가 에이즈로 죽습니다. 어머니가 41살에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 에이즈는 동성 간의 성적 접촉을 통해서 옮겨져서 93%가 이렇게 옮겨지고, 그 성적 접촉을 통해서 옮겨지는 병으로서 약이 없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죽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에이즈로 죽었어요. 아버지도 마약중독자입니다. 그래서 집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집을 나와 그때부터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원에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그녀에게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죽은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같이 인생을 살지 않을 거야. 나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살 거야”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를 날마다 고백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맨해튼에 있는 인문학 준비아카데미(Humanities Preparatory Academy에 들어가서 4년 과정의 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평균 95점으로 158명 중에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자기 집이 없어 노숙자로서 계단이나 건물 한구석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가 도전해서 1999년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교에 합격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이제 9월에 입학식을 하게 되는데 뉴욕타임스 주는 극빈자 장학금을 받고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로 말하면 노숙자로 살던 사람이 서울대학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녀는 고백합니다. “과거의 나의 고난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은 보스턴 인근에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들어서 누워 계시다는 소식에 그는 학교를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으로 옮겨 아버지까지 돌봅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2006년에 에이즈로 돌아가십니다. 그 후에 그녀는 2009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마치고 거기서 석사 과정을 거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처럼 이렇게 노숙인 같이 버림받은 청소년을 돕기를 원했습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의과대학, 사회 복지대학, 법과대학과 협력하여 뉴욕에 12,000명의 홈리스 청년의 심리학적, 정신적 교육지원을 위해 ‘유스 라이징’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그들 중에 3분의 1이 나이가 차서 위탁 보호 시스템에 보호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상담하고 돌보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에 골드만 삭스 재단에서 17만 불을 지원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2003년 ‘노숙자에서 하버드로: 리즈 머레이의 이야기’로 TV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방영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큰 도전을 받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록 노숙자로 집도 없고 떠도는 인생이었지만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도해서 그가 명문대학을 가게 되었고, 그리고 자기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브레이킹 나이트(Breaking Night)』를 출간하고 그다음에 믿음이 좋은 신랑 제임스 스캔 런과 만나 결혼하여 아들 리암, 딸 마야 진, 아들 하나, 딸 하나 둔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할렐루야. 2017년, 제프 무티와 함께 아서 프로젝트를 설립하여서 지금까지 소외되고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을 집중적으로 돌보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인적 성장과 대물림이 이어지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 당할 때 포기하고 손을 놓지 말고 우리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176장-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1, 3절> 1절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3절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일어나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길에 많은 고난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그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고난 뒤에 다가올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2026.10.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영광대학 축복성회 및 발표회-성숙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신앙 생활
  • 이영훈 목사 “건강 장수의 복 받는 인생” 당부 24개 팀 출연 … 악기 연주, 율동, 국악, 난타 등 공연 2026년 영광대학 축복성회가 8일 바울성전에서 개최됐다. 노년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이끌고 있는 복지사업국 영광대학은 이날 예배와 특별활동 발표회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특히 강남·중동·분당·광명·새성북·성동·도봉·김포·동부·성북 등 제자교회의 학생들도 참석해 성전을 가득 채웠다. 영광대학 차성환 학장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에서는 김형권 명예학장이 기도했고 영광대학 찬양대와 에벤에셀 몸찬양단이 찬양과 워십 공연으로 하나님을 경배했다. 이날 이영훈 담임목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시 23:1~3)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한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며 노년에도 각자의 재능으로 주님을 섬기는 영광대학 학생들을 축복했다. 이영훈 목사는 “건강 장수의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길 바란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서 “야훼가 나의 목자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이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며 감사의 삶을 당부했다. 예배 후에는 특별활동 발표회가 진행됐다. 올해는 24개 팀이 출연해 찬양과 악기 연주, 율동과 체조, 국악과 난타 공연 등을 펼쳤다. 차성환 학장은 “한 해 동안의 성장의 열매를 성도들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광대학은 65세 이상 성도들이 모여 신앙생활 하는 곳으로 성도들이 노년에도 건강하고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미술, 한문·한글서예, 일어, 영어, 율동, 찬양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글·복순희 / 사진·금지환 기자 영광대학 서예·미술·필사 작품 전시회
  • 2026.10.08 / 복순희 기자

    (120) 사도행전의 설교에 관한 가르침 ⑮
  • 3. 그 밖의 인물들의 설교 또는 연설 오늘은 에베소에서 있었던 은장색(은으로 우상을 만드는 사람) 데메드리오의 사도 바울 비난과 그로 인해 일어난 소동을 에베소의 서기장이 지혜롭게 진정시킨 발언을 살펴보고자 한다. 4)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 발언(19:23~27) (1) 대상: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드는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25절) (2) 데메드리오의 선동(19:25~27) ①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다(25절) ② 바울의 주장 -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라고 말함(26절) ③ 바울의 위험성 -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 위험(27절) (3) 결과: ①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성공하여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치며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감(28~29절) ② 바울이 그 연극장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제자들과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함(30~31절) 5)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드는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 그리고 다른 에베소 사람들이 온 시내를 시끄럽게 하고 바울 일행을 붙들고 연극장으로 들어가서 소동을 벌이자 이를 진정시킨 에베소의 서기장의 연설(19:28~41) (1) 대상: ① 연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나 태반이 왜 모였는지조차 알지 못함(32절). ② 그 안의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을 비난하려고 알렉산더에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라고 했지만, 무리들이 이를 묵살하고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외침(33~34절) ③ 그러자 서기장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에베소 사람들아!”라는 말로 발언 시작(35절) (2) 서기장의 연설(19:35~40) ① 먼저 무리들을 인정함 -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모든 사람이 안다(35절) ② 경고 - 그렇지만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36절) ③ 문제점 -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다”(37절) ④ 해결책 -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38~39절) ⑤ 결론 -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40절) (3) 결과 -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함(41절) 김호성 목사(여의도순복음동부교회 담임)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강종복 목사(여의도순복음벧엘교회 담임) - AI시대 주의해야 할 영적 위험성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상과 사회 전반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시대가 됐다. AI 기술은 분명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성도들은 편리함 때문에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더욱 깨어 분별해야 한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관계 없는 영성’이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있으며 동시에 성도들이 서로 만나 예배하고 교제하는 공동체성이 있다. AI를 통해 성경 지식을 얻고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함께 예배하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예배하며 서로의 삶을 돌보는 신앙 공동체가 더욱 중요하다. 성도의 궁극적인 신앙의 기준은 AI의 답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사 8:20)라는 말씀처럼 모든 가르침과 정보는 성경의 빛 아래에서 분별되어야 한다. 교회는 효율성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목회자의 심방과 상담, 성도의 눈물에 함께하는 위로, 병든 사람을 찾아가 손을 잡고 기도하는 일, 함께 예배하고 식탁에서 나누는 사랑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이다. AI는 우리의 일을 돕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셨다. 시대와 기술이 아무리 변하여도 이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성도는 AI에게 정보를 얻되 진리는 하나님 말씀에서 찾고, AI에게 도움을 받되 하나님을 의지하며,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기술은 우리의 보조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생각과 영혼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의 원칙이다.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채정기 선교사(루마니아)
  • - 방과후학교 운영 재정을 위해 - 방과후학교 사역의 지경 확장을 위해 - 소외된 집시 어린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 선교사의 영적 강건함과 사역을 위해 - 제자훈련에 집중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 2026.10.08 / 오정선 기자

    노장의 기베르
  • 성경 본문의 네 가지 의미 정식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설교학 교과서 집필 회중의 삶에 가닿는 설교 지향해 기베르 드 노장(Guibert de Nogent, 1055~1124)은 프랑스 북부 클레르몽앙보베지의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 성직자의 길로 이끌렸다. 열두 살 무렵 모자가 함께 들어간 생 제레마르 대수도원에서 교육받으며 처음에는 고전 시에 몰두했으나 안셀무스(훗날 캔터베리 대주교)의 영향으로 신학에 전념했다. 1084년 무렵 그는 은밀히 창세기 주석을 쓰기 시작했다. 그 안에 포함된 ‘헥사메론’(천지창조 6일) 주석은 그때까지 가장 학식 있는 교부들만 다룰 수 있다고 여겨지던 주제였으며, 그는 수도원장 사후 이 작업을 완성했다. 이 주석은 후일 『창세기 도덕론』으로 불리게 됐다. 1104년 그는 작고 가난한 노장수쿠시 대수도원의 원장이 됐고 이를 계기로 저술에 힘썼다. 1108년 제1차 십자군 역사서 『프랑크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행적』을, 1115년경에는 『고백록』을 본뜬 자서전 『나의 삶에 관하여』를 남겼는데, 중세 초기의 가장 상세한 자전적 기록으로 꼽힌다. 또한 『성인들의 유물에 관하여』에서는 당대 유물 숭배 열풍에 이례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1124년경 세상을 떠난 그는 생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중세 수도원 생활과 설교신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남긴 인물로 재평가받는다. 기베르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교부 전통,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성경 해석학에 뿌리를 둔다. 교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헥사메론 주석에 도전한 것 자체가 이른바 ‘11·12세기 르네상스’ 학자들이 지녔던 새로운 지적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는 중세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성경의 네 가지 의미’를 명료하게 정식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째 역사(historia)는 실제 사건을, 둘째 알레고리(allegoria)는 사물이 다른 것을 상징함을, 셋째 도덕적 교훈(tropologia)은 삶의 질서를, 넷째 신비적 해석(anagogia)은 신성한 주제로 신자를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이는 후대에 “문자는 교부들의 행적을, 알레고리는 믿음이 숨은 곳을, 도덕적 의미는 일상의 규칙을, 영적 해석은 싸움의 끝을 보여준다”라는 16세기 운문으로 다시 정리됐다. 그러나 기베르의 관심은 사변적 알레고리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적·도덕적 삶에 있었다. 그는 미덕에 대한 긍정적 설교와 악덕에 대한 부정적 설교가 똑같이 효과적이라 보았고, 설교의 궁극 목적을 인간의 자기 인식에 두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알게 하는 설교, 마음속 깊은 것을 드러내게 하는 설교, 자신의 시선 앞에 벌거벗겨진 채 서게 만드는 설교보다 더 효과적인 설교는 없다”라는 그의 말은 신학이 교리적 사변보다 내면적 성찰과 도덕적 변화를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기베르의 가장 중요한 설교학적 유산은 창세기 주석 말미에 덧붙인 소논문 ‘설교가 마땅히 행해져야 하는 방식에 관하여’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이후 처음 등장한 새로운 설교학 교과서로 평가된다. 아우구스티누스 사후(430)부터 제1차 십자군(1095)까지 약 650년간 설교자를 위한 조직적 지침서를 시도한 이는 없었고 그저 덕스러운 삶과 성경 지식을 권면하는 데 그쳤다. 기베르는 이 공백을 메운 최초의 인물이다. 기베르의 설교 논문은 “설교의 의무가 있는 자들이 연구를 멈추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는 설교의 의무가 주교·대수도원장·사제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절제하며 덕스럽게 살고 성경 지식을 갖춘 모든 이에게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세례·견진성사를 받은 모든 신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논증까지 동원했다. 그는 명예욕 같은 세속적 동기의 설교조차 나름의 효과가 있다고 인정하며 설교의 실용적 가치를 폭넓게 옹호했다. 또한 설교 실무에 대한 구체적 조언도 남겼다. 설교는 기도로 시작해야 하는데, “성의 없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조차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는 영적·지적 준비를 마친 뒤에야 문체를 고민해야 하며, 언제나 청중을 마음에 두어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가르치더라도 동시에 교육받은 이들과 더불어 더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기베르는 전통적 성경 해석의 틀 안에 머물면서도 설교를 회중의 실제 삶에 가닿는 실천적 행위로 재정의한 인물로 기억된다. 조지훈 목사(한세대학교 설교학 교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월 17일(토) -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 ◎ 말씀 : 사 58:3~10 ◎ 찬송 : 452장(통 505장)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금식하는 날에도 자기 이익을 구하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며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고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의 빛이 새벽같이 비치고 치유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부를 때 하나님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물질과 힘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참된 금식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웃을 살리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금식이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유익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10월 16일(금) -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 ◎ 말씀 : 고후 4:8~10 ◎ 찬송 : 545장(통 344장) 사도 바울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길에서 생명의 위협과 파선과 환난 등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사방이 막혀 보이는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하시기에 낙심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삶에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앞날이 막막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10.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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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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