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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서대문성전 담당) - 우리 가정에 주신 첫 번째 기적
  • 우리 가족은 첫째 아들을 위한 기도 제목이 참 많았다. 100일이 되기 전에 언젠가부터 몸에 작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반점이 점점 많아지더니 얼굴에까지 생겼다. 우리 부부는 당황했고 주일을 지나서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주일 오후에 집사람에게 다급히 전화가 왔다. 기저귀에 피 소변을 보았다는 것이다. 급하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하니 여러 검사 후 의사가 우리 부부를 조용히 불렀다. 의사는 아이의 병명이 바이러스성 혈소판 감소증이라고 말했다. 혈액을 응고시켜주는 혈소판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해서 혈관들이 스스로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에 반점도 생겼고 피 소변도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는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 했다. 혈관들이 스스로 터지고 있으니 이미 뇌에서 터졌을 수 있고, 만약 그랬다면 가망이 없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얼굴과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피 소변까지 보았는데 뇌는 멀쩡할 리 없었다. 우리 가족은 새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너무나 큰 절망을 마주하게 되었다. 병실에 갔더니 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이가 수십 개의 주사 바늘을 꽂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흘렀다.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붙잡고 싶었는데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 온 가족이 기도했다. 당시 교회학교에서 함께 사역했던 모든 교역자님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기도해 주셨다. 이영훈 목사님께서도 새벽예배 때 온 성도님들과 기도제목을 나누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우리 아들은 기적같이 살아났다. 혈관들은 스스로 아물기 시작했고 뇌에서 당연히 터졌어야 할 혈관은 터지지 않고 무사했다. 그렇게 혈소판 수치가 정상이 돼서 3주 만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고 아이의 백일을 집에서 가족과 보낼 수 있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그 병으로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다. 아들은 벌써 고3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첫 번째 기적이다. 하나님은 때론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길도 보이지 않는 광야를 만나게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그 광야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의 기적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기적은 기도하는 사람만 경험할 수 있다. 문제가 다가와도 절대 긍정의 믿음과 기도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길 소망한다.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부족함이 없는 삶
  • 2026.07.17 / 육은영 기자

    박혜영 권사(여의도순복음청라교회) - 턱 골수염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
  • 나는 최근 말씀과 기도로 치유 받는 기적을 체험했다. 2년 전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뒤 계속해서 통증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통증은 날로 심해졌고 이듬해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중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턱 일부가 괴사돼 골수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은 심했고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그렇게 밤잠을 설치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2시쯤 잠에서 깬 나는 어느새 말씀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무의식중에 읽게 된 말씀이었지만 그 말씀은 내 마음 깊은 곳에 평안과 위로로 임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나를 붙들고 계신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며 기도했다. 자녀들은 서울의 큰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권유했다. 나는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고 검사 결과 임플란트와 턱뼈 일부를 제거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었기에 수술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10월로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나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이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던 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골수염 진행이 멈춰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견을 들은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길로 예정되어 있던 수술을 취소했다. 이후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나를 치료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번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2005년경 운송업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겪으며 가정 형편이 크게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나는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렸고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나는 교회로 향했다. 예배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붙들릴 때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변화된 나의 모습은 남편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남편도 하나님을 믿게 됐고, 우리 가정은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갔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상황은 막막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허락하신다. 나의 삶을 치료하시고 우리 가정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6.07.17 / 금지환 기자

    (174) 순복음의 7대 신앙 -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87>
  •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곧 나의 이웃임을 기억해야 성령 충만을 통해 일어나는 역동적인 은사들은 교회에 ‘덕’(德)을 끼칠 때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바로 그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언급한다. 성령의 열매 중 그 첫 번째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장’(章)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 참고 …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에 이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한다(고전 13:4~5).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을 하려면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자신을 중심으로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필요를 바라보는 눈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태도와 같다(눅 10:25~37).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으시자,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하셨다. 사랑은 행동이다. 바로 행하면 된다. 그러나 율법사는 행하기 보다는 다시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만 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문제를 간파하시고 비유를 들려주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바빴을 수도, 두려웠을 수도, 도울 가치가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도 위급한 상황을 피할 이유를 만드는 데 참으로 교묘하다. 그러나 마침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고 주막으로 데려가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이토록 헌신한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그 우연한 만남에 충실하여 사랑의 모범이 되었으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계산이 너무 빨라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버리고 말았다. 주님께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시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하였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율법사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는 처음부터 “내 이웃”이라 말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자기로부터 출발하면 손익과 능력을 먼저 따지므로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곧 나의 이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죽어가는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미국 밀워키에서 있었던 일이다. 암에 걸린 한 십대 소년이 치료로 머리가 다 빠지자, 대머리가 된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을 가장 걱정하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소년은 깜짝 놀랐다. 반 친구들이 모두 자기와 같이 머리를 박박 밀고 대머리가 된 채 반갑게 맞아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데 빠른 까닭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정확한 수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면 자연히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게 된다. 예수님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우리는 가정과 이웃에게 이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5일(토) - 피난처 되신 하나님
  • ◎ 말씀 : 시 46:8~11 ◎ 찬송 : 370장(통 455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과 창을 꺾으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는 전쟁의 승패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싸움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전쟁과 같은 상황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쉽게 요동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자리에서 서둘러 움직이기보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면 주님이 앞서 일을 행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입니다.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4일(금) -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 것
  • ◎ 말씀 : 막 6:3~5 ◎ 찬송 : 27장(통 27장)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돌아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래 안다는 이유로 그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했고 그 불신 때문에 예수님은 고향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익숙함은 오히려 믿음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어 왔지만 어느새 익숙한 이름으로만 부르고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뜻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익숙함에 가려진 믿음을 다시 세우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익숙함에 가려진 믿음의 장벽을 버리고 친밀함과 경외감을 품고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3일(목) -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 ◎ 말씀 : 시 39:8~11 ◎ 찬송 : 305장(통 405장)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모든 죄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하며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러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징계와 고난을 겪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고백에는 죄를 덮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비는 정죄로 끝나지 않고 회복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죄로 인해 마음이 무겁고 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자신을 정죄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멀어지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 앞에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방황할 때도 회개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7월 22일(수) - 믿음의 손을 내밀라
  • ◎ 말씀 : 막 3:3~5 ◎ 찬송 : 338장(통 364장)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율법을 어기는지 지켜보며 비난할 구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율법을 지키는 데 있었고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고통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을 가운데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무엇이 옳은지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길은 형식과 규정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이 앞서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이와 같은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관습을 따르는 것이 안전해 보이고 침묵하는 것이 편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는 선택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고통 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믿음으로 손을 맞잡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026.07.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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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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