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75) 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
  • 에베소에서 아데미 여신의 형상을 은으로 만들어 팔아 부를 축적하던 은장색(銀匠色) 중 데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란(행 19:23~35)이 진정되자 바울은 제자들(믿는 자들)을 불러서 권면(위로)한 후에 작별하고 에베소를 떠나 제2차 선교여행 지역이었던 마게도냐로 갔다. 그곳에서도 제자들을 권면한 후 ‘헬라’(좁은 의미로는 남부 아가야)에 도착해 거기서 석 달을 지냈다. 이러한 여정은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라는 구절과 일치한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바울이 고린도에서 가이오의 환대를 받으며 로마서를 저술했다고 본다(참조. 롬 16:23). 그 후 바울이 배편으로 수리아(여기에서는 예루살렘)로 가려고 했으나 그 배에서 유대인들이 항해 중에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민 것이 알려져서 경로를 바꾸어 다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했다. 바울은 다양한 지역 출신의 회심자이자 동역자 일곱 명을 먼저 드로아로 보내고 자신은 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바울이 얼마나 광활한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도행전의 이 부분에서 다시 1인칭 복수 관점에서 여행기를 서술하는 “우리-본문”이 시작된다(행 20:5~15; 이전. 16:10~17).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가서 먼저 간 제자들과 재회했다. 이 여정은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을 출발할 때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사흘 만에 갔던 것(행 16:11~12)의 역방향이었다. 일주일 후 “그 주간의 첫날”(주일)에 “떡을 떼려 하여”(성찬, 예배를 위해, 행 2:42 참조) 모였을 때 바울이 다음날 그곳을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에 밤새도록 말씀을 전했다. 성도들이 많이 모여서 다락에까지 등불을 많이 켰는데 밤은 깊어가고 등불의 그을음과 연기가 천장에 가득하다 보니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뚫려 있는 공간)에 걸터앉아서 듣다가 졸음에 빠져 3층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바울이 그 즉시 옛날 선지자 엘리야(왕상 17:17~24)와 엘리사(왕하 4:33~36)처럼 죽은 청년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음으로써 그의 생명을 되살려 놓았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신유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서 심지어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나을 정도였는데(행 19:12) 이번에는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유두고는 그의 이름이 ‘운이 좋은 친구’라는 뜻 그대로 바울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 ‘제2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성경학자들은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죽은 것은 그의 영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분이 낮은 종이었기 때문에 예배에 늦을 수밖에 없었고, 가장 높은 곳에 앉을 수밖에 없었으며 바울의 설교가 길어짐에 따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참조. 고전 11:17~34). 하마터면 가장 비극적인 불상사가 될 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기적으로 바뀜에 따라 성도들이 유두고로 인해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행 20:12). 이처럼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 이동하는데도 흑암의 세력의 위협과 방해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위험에서 건져주시며 어두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큰 능력을 베푸심으로써 복음 전파의 길은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1.06

    (74)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대소동
  •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성령 사역의 전형이었다. 바울이 그곳의 믿는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말씀 양육 사역을 회당에서 석 달,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펼치자 에베소 인근 지역에까지 구원의 복음이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가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과 이사도 일어났다. 그에 따라 수많은 이교도들, 심지어는 마술사들까지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대부흥이 일어났다. 그러자 바울은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들린 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는 계획을 세우고 자기를 돕는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냈다. 그 무렵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銀匠色, 은 가공업자)으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에베소는 달의 여신 아데미 숭배로 유명했는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엄청난 규모의 아데미 신전이 그곳에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길이 137m, 너비 69m, 높이 18m에 이르는 거대한 석조 건물로 원주형 기둥 127개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바울이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고 한 것이 이 건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아데미 여신상을 은으로 만들어 고수익을 올리던 데메드리오 입장에서는 “우상 숭배를 버리라”고 외치는 바울이 눈엣가시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료 업자들과 직공들을 한데 모아놓고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그는 “이 바울이…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행 19:26~27)고 무리들을 선동했다. 자신이 처한 경제적 위기를 아데미 여신 숭배로 교묘히 포장해서 화근을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 동료 은장색들이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해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자 순식간에 군중이 불어나서 온 도시가 요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바울 일행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는데 바울은 아시아 관리 중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통지를 듣고 그곳을 피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몰려들다 보니 무슨 이유로 모였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이들을 선동하려고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연단에 올려서 상황 설명을 하려 했지만 반유대적 에베소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그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연호할 뿐이었다. 이렇게 두 시간이 지나자 에베소의 서기장이 무리들 앞에 나타나 군중들을 지혜롭게 설득했다. 서기장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경솔히 행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나서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하면서 이 소요 사태와 불법 집회를 빨리 끝내라고 촉구함으로써 큰 문제없이 무리를 해산시켰다(행 19:35~41). 이처럼 사도행전은 구원의 복음이 강력하게 전파될 때마다 흑암의 무리들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박해와 장애물을 쏟아 붓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예비하사 결과적으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고전 10:13 참조).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2.09

    (73)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대부흥
  •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주요 사역지는 소아시아의 주도(州都) 에베소였다. 바울은 먼저 성령 충만 사역을 펼쳤다. 그곳에서 바울은 열두 명쯤 되는 믿는 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고” 요한의 침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들이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아볼로(행 18:25~26)에 의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본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강림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침례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 또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바울은 말씀 사역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회당에서 석 달간,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로 증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그러자 아시아 지역의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이방인)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바울이 이처럼 성령과 말씀 사역을 전개해 나가자 놀라운 능력이 수반되었다. 그에게 신유의 능력과 귀신 내쫓는 능력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천막 작업용)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 고침을 받고 악귀가 쫓겨 나갈 정도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병 고침을 받은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막 5:25~34)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 병든 자가 치료 받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났던 사건(행 5:15~16)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능력의 근원은 이런 물건이나 도구 자체에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이때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다. 유대인 유랑 마술사들 중 자칭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바울의 은사 사역을 흉내 내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악귀야,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악귀 들린 사람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김에 따라 그들이 상처를 입은 채 벗은 몸으로 줄행랑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에베소 전역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면서 주께로 나아왔다. 그런데 이 유대인 마술사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면서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사고자 했다가 베드로에게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들은 마술사 시몬을 떠올리게 한다(행 8:17~24).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의 사역을 방해했던 것처럼 마술사인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 말씀 충만, 능력 충만의 대부흥이 일어나자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께로 돌아와 자복하며 회개하고 주를 영접했다. 그중에는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주로 비밀 주문을 기록한 두루마리)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로 태웠는데 그 책값이 은 오만 드라크마나 될 정도였다. 이것은 에베소가 고대 세계에서 마술의 중심지였다는 기록과 연관이 있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고 사도 바울의 에베소 선교를 요약하고 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1.11

    (72) 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선교
  • 오랫동안 안디옥에 머물다가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던 것과는 달리 바울은 안디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먼저 오늘날 터키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과 같은 기존의 선교지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을 든든하게 했다. 그즈음 아볼로가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언변이 좋고 성경(구약)에 능통’했고 ‘주의 도’를 잘 배워서 회당에서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 그런데 그는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 그 후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추천서를 써서 잘 영접하라고 했다. 그는 아가야 지방에 가서 믿는 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사람들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 그 무렵 바울은 당시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주(州)의 수도인 에베소에 도착했다. 바로 이 에베소가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최대 선교지가 된다. 바울은 그곳에서 열두 명 정도의 ‘제자들’(믿는 자들)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니라고 하면서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바로 그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는데 그가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신약에 기록된 유일한 재침례의 사례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선생의 교습소로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동안(오전 11시~오후 4시) 비워 뒀는데 바울이 그 시간을 이용한 것이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후에 바울이 직접 말씀으로 훈련시킨 결과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든든한 선교 기지가 될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이 균형을 이루게 되자 건강하고 탄탄하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바울이 이런 사역을 펼치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행 19:10) 열매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제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려 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로 가게 된 것을 일컬어 ‘바울이 유럽을 향해 올라탄 배에 눈부신 서구 물질문명도 함께 갔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내용에 전혀 맞지 않는 해석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2차 선교여행 때는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 땅인 마게도냐로 건너갔지만 제3차 선교여행 때는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로 돌아와 무려 2년 3개월 이상이나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복음과 함께 물질문명이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아시아로 복귀했다는 말인가?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0.07

    (71)제2차 선교여행-고린도교회의 부흥
  •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서 꽃을 피운 곳은 고린도였다. 고린도에 오기까지 그가 헬라의 주요 도시 네 곳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끊임없는 박해와 환난 속에서 겨우 탈출하는 위기일발의 연속이었다. 그에 따라 선교의 열매도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인적, 물적 교역이 가장 활발했고 경제적으로는 풍요했지만 각종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음란 방탕으로 영적 도덕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게 하는 고린도에 도착했으니 바울이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미꽃을 피우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바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먼저 로마에서 고린도로 보내셔서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생업이 같은 바울은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 살며 일도 같이 하게 되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거기에 모인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권면했다(행 18:4). 그때 마침 베뢰아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내려와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있고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난 바울을 여전히 사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살전 3:6~8). 기쁜 소식을 들은 바울은 더욱 담대히 “예수가 메시야(그리스도)”임을 선포했다. 그러자 회당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울은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행 18:6)라고 선언하고 회당 옆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이방인 중에서 유대교 신앙을 가진)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바로 이 집이 고린도교회가 되었다. 새로운 모임 장소에서 회당장 그리스보 일가를 비롯해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 그즈음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담대함과 확신을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b~10). 이 말씀 그대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 바울 일행이 2차 선교여행 중 가장 긴 기간인 1년 6개월 동안이나 고린도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다. 갈리오가 아가야의 총독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서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총독에게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라고 고발했다. 바울이 이에 대해 해명하려고 하자, 총독은 그를 제지하면서 “문제가…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라고 하면서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다. 그러자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렸지만 갈리오는 모르는 척 했다. 며칠 후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2차 선교여행의 출발지인 안디옥을 향해 떠났다. 인간의 눈과 하나님의 눈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바울의 고린도 선교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복음의 불모지 같았던 고린도가 부흥의 도가니가 되어서 바울이 2년 가까이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인간의 모든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9.08

    (70)제2차 선교여행 - 고린도 선교의 시작(행 18:1~11)
  •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때의 바울의 심경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그가 지나온 네 개의 도시에서 큰 성과 없이 겨우 목숨만 보전해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어느 한 곳에서도 박해와 고난이 없었던 곳이 없었다. 아가야의 아덴에서는 물리적 박해는 없었지만 세상 철학과 다신론적 우상 숭배라는 정신적, 영적 박해로 인해 많은 회심자를 얻지 못했다(행 16~17장).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는 바울에게 더더욱 기대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고린도는 우상숭배와 음란, 방탕이 성행하는 세속적인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해주는 좁은 지협(地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서로 두 개의 항구를 끼고 있어서 수 많은 사람들과 문물이 오가는 교통과 교역의 요지였다. 그래서 고대 시인 호머는 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부유한 고린도’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고린도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섬기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1000명이 넘는 ‘성창’(聖娼)들이 있어서 그곳을 찾는 자들과 음행을 벌였다고 한다(고전 6:12~20의 배경). 이처럼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영적, 도덕적으로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게 하는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의 바울의 심경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이런 바울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장차 그의 든든한 동역자가 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미리 고린도로 가게 하셔서 그를 돕게 하신다. 사실 이들은 로마에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의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클라우디우스)가 공포한 ‘유대인 추방령’(AD 49년)에 따라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로 이주했다. 마침 그들의 직업이 바울의 직업과 같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어서 바울은 그들 부부와 함께 살면서 같이 일을 하며 고린도에 정착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고 떨고 있던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확신의 말씀을 주셨다(행 18:9~10). 하나님께서는 먼저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신다. 우상숭배와 음란의 도성이라고 해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명령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다음 하나님께서는 마치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듯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나중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다(롬 8:31).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라”는 말씀으로 바울에게 고린도 선교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이 말씀대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나 고린도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바울은 2년 가까이 그곳에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행 18:11). 영적으로 볼 때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고 생각되었던 고린도에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은 귀중한 교훈을 준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황무지가 변하여 장미꽃 동산으로 바뀌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8.12

    (69)제2차 선교여행 - 아덴 선교(하)(행 17:22~34)
  • 마게도냐(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온갖 박해를 당한 뒤 아가야의 아덴(아테네)으로 피신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온 도시에 가득한 우상과 신전들을 보고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헬라 문화와 철학, 문명의 발상지로서 아덴의 웅장한 건물들과 조각, 신전들은 바울의 눈에는 한갓 우상 박물관이자 전시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바울은 만나는 사람마다 헛된 우상숭배를 그만두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했다. 그러자 뭔가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데려가서 할 말을 하라고 했다. 바울은 법정 가운데 서서 아덴 사람들의 만신전(판테온) 숭배를 연결 고리로 삼아 그의 설교를 시작한다. 아덴 사람들의 유별난 ‘종교심’을 언급하면서 신전들 중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섬기는 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취지로 그의 설교를 풀어나간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천지의 주재”)이심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우상숭배의 대상이 아니시며(“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온 생명체를 보존, 유지하시는 분(“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이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으로부터 인류가 시작되어 온 세상에 퍼져 살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기간과 살 지역을 특정하셨는데, 이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도록 하시기 위함(롬 1:20 참조)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강변한다. 계속해서 바울은 성경을 모르는 아덴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고대의 유명한 시인들의 말을 인용한다. 에피메니데스의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는 말과 아라투스의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바울은 이 문구가 곧 하나님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사람들이 만든 우상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끝으로 바울은 지금까지는 잘 몰라서 행한 우상숭배를 회개하고(“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를 믿으라(“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는 구원의 메시지로 결론을 맺는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아덴 사람들은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어떤 자들은 바울이 말한 “죽은 자의 부활”을 조롱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날 때 몇몇 사람들이 믿었는데, 그중에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행 17:34). 바울의 전도 전략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고전 9:22)이 아덴에서보다 더 잘 나타난 곳이 없다. 구약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 청중 앞에서 성경 대신 그들이 익숙한 그리스 문화를 접촉점으로 해서 복음을 전함으로써 구원의 열매를 맺어 나갔다.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b).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7.15

    (68)제2차 선교여행-아덴 선교(상)(행 17:16~21)
  •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그리스 북부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를 거쳐서 남부 아가야의 아덴에 이르게 되었다. 아덴은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로 BC 6~5세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다. 로마제국에 점령되어 그 옛날의 영화와 영향력을 잃고 말았지만 바울 시대에도 그 흔적의 대부분은 남아 있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제논과 같은 철학자들의 활동 무대이자 고대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지역이기도 했다. 다신교를 숭배하는 아덴에는 수많은 신전들과 조각상들이 곳곳에 자리했는데 그중 주신(主神)은 아덴의 수호 여신으로 받든 ‘팔라스 아테네’로 아덴 사람들은 그를 위해 파르테논 신전을 지어 헌납했다.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베뢰아를 떠나 혼자 아덴에 온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아덴 시내를 돌아보다가 우상들과 신전들이 온 도시에 가득한 것을 보고서 격분을 참지 못했다. 아덴 사람들과 여행자들은 휘황찬란한 신전들과 조각상들에 압도되어 찬탄을 금치 못했겠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는 신앙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바울(고전 8:4~6 참조)의 눈에는 우상전시관과 우상창고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웅장한 예술 작품이냐 아니면 역겨운 우상 놀음이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격노는 구약 비느하스의 전통을 잇는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민 25:11 참조). 그리하여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경건한 사람들’(이방인 유대교도)에게 복음을 전했고, 평일에는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나중에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에피쿠로스(BC 314~270)를 추종하는 철학자들은 행복과 쾌락을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고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한 삶을 누릴 것을 강조했다. 제논(BC 340~265)이 창시한 스토아 철학은 우주를 다스리는 이성(로고스)에 순응하여 자족하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아덴 철학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렸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라고 했다. 여기에서 ‘말쟁이’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경멸적인 표현으로 ‘새가 여기저기서 부리로 씨앗을 줍듯이 이곳저곳에서 지식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서 소화도 못한 채 마구 떠들어대는 지식 행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바울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을 새로운 ‘이방 종교’를 전하는 자로 여겼다. 그가 ‘예수’와 ‘부활’을 전파하는 것이 마치 ‘예수’라는 남신(男神)과 ‘부활’(성경 원어로 ‘아나스타시스’라는 여성 명사)이라는 여신을 전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덴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내치지 않고 그들을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이끌고 가서 바울이 가르치려 하는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듣고자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아덴의 도시 정서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행 17:21). 이처럼 아덴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드문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도시였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연스럽게 ‘아레오바고 설교’(행 17:22~31)를 선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아덴에서 복음은 인간 문명, 우상 숭배, 철학, 지적 호기심의 총화(總和)와 맞부딪치게 된다. ‘그리스도와 문화’가 만날 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우리는 계속될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통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06.12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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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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