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사도행전 이야기
(79)제3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
  •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친 후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그를 뜨겁게 환영했다. 다음날에는 야고보와 장로들을 문안하고 이방인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러자 그들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대부분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의 율법도 중시하고 있어서 바울이 로마제국의 판도를 세 차례나 오가며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듣고는 바울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유대인 신자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묘안을 바울에게 알려 주었다. 그것은 “지금 네 사람이 정결 예식을 지키기로 서원했는데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머리 깎을(아마도 나실인 서약) 비용을 부담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들었던 바울의 이방 선교에 대한 풍문이 사실이 아니고, 바울도 율법을 존중하고 잘 지키는 사람인 줄 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결론, 즉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행 21:25; 15:20, 29 참조). 바울은 사도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행한 후에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정결 예식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를 신고했다. 정한 기간인 일주일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아시아’(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그를 붙잡고,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전에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시내에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생각처럼 드로비모가 성전에 들어갔다면 당시 규정에 의해 바울보다 그가 처벌을 받아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고발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바울을 죽이려고 그를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러자 불길한 징조처럼 예루살렘 성전 문들이 곧 닫혔다. 이렇게 닫힌 성전 문들은 다시는 바울을 위해 열리지 않았다. 이제 바울은 꼼짝없이 그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때 성전 경내가 소란스럽다는 소식이 로마 군대 천부장에게 전해졌다. 그는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과 함께 달려 내려갔다. 로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요가 발생하면 즉시 개입할 수 있도록 성전 북서쪽에 안토니아 요새를 만들어 성전 경내를 바라보면서 성전 바깥뜰과 층계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이처럼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었다. 군인들을 보자 유대인 무리들은 그제야 바울 치기를 멈췄다. 사도행전을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유대인들은 호시탐탐 바울을 죽이려고 온갖 흉계를 다 부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피할 길을 예비하셔서 바울을 보호하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5.12

    (78)제3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 밀레도 항구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초청해서 고별 설교를 마친 바울은 배편으로 두로와 가이사랴를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바울 일행은 먼저 밀레도에서 고스, 로도,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가는 배로 갈아타고 두로에 상륙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 관점에서 사건이 서술된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행 21:1). 바울은 두로에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제자들(믿는 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한 목소리로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초지일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고자 했다(행 20:24 참조). 두로의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나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바울을 전송했다.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는 서서 하는 것이 보통인데(눅 18:11 참조), 바울과 제자들은 밀레도에서와 마찬가지로(행 20:36)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는 그들이 바울의 생사 문제를 놓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가를 보여 준다. 바울은 두로에서 배를 타고 돌레마이에 도착해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이튿날 그곳을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헬라파 일곱 지도자 중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일으킨 이래로 살고 있어서(행 6:5, 8:40 참조) 그 집에 들어가서 머물렀다. 여기에서 빌립은 ‘전도자’라고 불리는데(행 21:8) 이것은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도 ‘사도, 선지자, 목사와 교사’와 함께 언급되는 초대교회 내의 직분(복음 전하는 자) 중 하나로 생각된다. 그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모두 미혼으로서 ‘예언하는 자’(또는 선지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행 21:9).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며칠 후 전에 안디옥에서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라고 예언했던(행 11:28) 선지자 아가보가 가이사랴에 와서 이사야를 방불하게 하는 행동 예언을 했다. 그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서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했다(행 21:11).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바울을 권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고 말하면서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무리들은 어쩔 수 없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그만두었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세 번째 기록된 바울의 ‘고난 예고’이다. 처음 것은 성령께서 바울에게 직접 하신 말씀(행 20:23)이고, 두 번째 것은 두로의 형제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을 말리면서 한 말(행 21:4)이다. 세 번의 고난 예고 모두 성령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특히 셋째 예언 중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고난 예고(눅 18:32~33)에도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것처럼 바울도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 길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한참 후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의 몇 제자들과 구브로 출신의 오랜 제자인 나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반갑게 영접했다. 다음날 바울 일행은 주의 형제 야고보와 장로들과 만났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자세히 설명하자 온 무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해서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은 막을 내리게 된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4.07

    (77)제3차 선교여행 - 바울의 밀레도 고별설교(하)
  • 제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로 초청해서 마지막 설교를 한다. 그의 설교의 요지는 양떼들을 그들에게 맡기니 자신이 소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나갈 때까지 행한 바를 잘 기억해서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가 믿는 자들을 위해 사랑과 헌신,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그의 언행 하나하나가 교회 지도자들의 교과서가 된 것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것을 곳곳의 성령 충만한 형제들이 만류하면서 거기에 가면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성령에 매여” 그곳으로 간다고 하면서 무슨 일이 있다 해도 복음 전파 사명 완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앞으로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제2차 선교여행 때부터 자신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러 지역을 오가며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증언했다. 이 말은 자신이 복음 전파 사역을 할 만큼 다 했으니 말씀을 듣고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본격적으로 에베소 장로들에게 영적 지도자로서의 품격을 두려운 마음으로 갖출 것을 당부한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여기에서의 “감독자”는 초대 교회에서 “감독”의 직분(빌 1:1)을 말할 때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들은 장로들로서 감독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맡은 양 떼들을 잘 살펴야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친히 주신 직무였다. 양 떼의 감독자로서 그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영적으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사나운 이리”(요 10:10)로부터 양 떼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었다. 이단과 사설, 거짓 교사와 거짓 선지자들을 옳게 분별해서 양 떼들로부터 철저하게 차단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후에 에베소 교회를 맡게 된 바울의 제자 디모데는 이들과 맞서서 싸워야 했다(딤전 1:19~20, 4:1~3, 딤후 2:17~18, 3:1~9 참조). 또한 요한계시록에도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에베소 교회가 미워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계 2:6). 바울은 그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에베소 장로들을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며 그들을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하실 것을 간구했다(행 20:32). 끝으로 그는 남의 물질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일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행들의 쓸 것을 충당하며 보여준 모본을 따라 그들도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할 것을 장로들에게 당부했다. 고별 설교를 마치고 바울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들은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바울의 말로 인해 근심하며 크게 울며 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배 타는 곳까지 그를 전송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갔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3.10

    (76)제3차 선교여행 - 바울의 밀레도 고별설교(상)
  •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 부분의 사도행전 기록에 따르면 저자인 누가가 포함된 것이 확실한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앗소에 가서 그곳까지 32㎞를 걸어온 바울을 태우고 사흘에 걸쳐 미둘레네, 기오, 사모 등지를 들려서 밀레도에 도착했다. 밀레도는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48㎞ 떨어져 있는 항구 도시였다. 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면서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로 초청했다. 그리하여 유명한 ‘밀레도 고별설교’를 하게 된다. 바울의 밀레도 설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다른 많은 설교들과 비교할 때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첫째로, 그것은 바울의 2, 3차 선교여행의 사역지를 떠나면서 남긴 유언에 해당하는 고별설교이다. 성경에는 여러 편의 고별설교가 나오는데 야곱(창 49장), 모세(신명기), 여호수아(수 23~24장), 사무엘(삼상 12장), 예수님(요 13~17장)의 설교가 그것이다. 이런 고별설교는 대개 지나간 날에 대한 회고와 앞날에 대한 권면과 전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로, 바울의 밀레도 설교는 그가 사도행전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이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행 13:16~41)에서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루스드라(14:15~17)와 아덴(17:22~31)에서는 이방인 불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한 바 있다. 셋째로, 이 설교에는 바울서신의 내용과 유사한 요소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바울이 어떤 선교지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기울인 수고와 희생, 겸손과 사랑, 물질에 대한 깨끗한 자세 등이 잘 나타나 있다(예를 들어 살전 2:1~12). 또한 적대자들의 끊임없는 반대와 박해를 극복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선포한 것(고후 11:23~33)과 이단과 사설에 대한 경고(롬 16:17~18)도 나와 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양떼들을 맡기면서 그들에게 본이 될 것을 당부한 것(딤전 4:12)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먼저 그가 아시아 지역(지금의 튀르키예 서부)에 들어온 첫날부터 떠나는 그날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누구보다 에베소 장로들이 잘 알 것이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겸손과 눈물로 양떼들을 섬겼고, 유대인들의 간계로 박해를 당할 때도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내면서 주를 섬겨왔는지를 교회 지도자들이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그의 말씀 사역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파에 힘을 다했다. ‘공중 앞에서나’(회당과 두란노 서원 사역 등) ‘각 집에서나’ 양떼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담대하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을 상기시킨다(행 20:21). 그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결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사실상 바울은 여러 지역의 성령 충만한 다수의 형제자매들로부터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의 말을 들어왔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담대히 선언한다. 이처럼 투철한 바울의 사명감과 그가 보인 복음 전파와 성도를 섬긴 모범은 그가 떠난 후의 에베소 교회를 이끌어 갈 장로들에게 너무나도 값진 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명과 교훈을 주고 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2.10

    (75) 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
  • 에베소에서 아데미 여신의 형상을 은으로 만들어 팔아 부를 축적하던 은장색(銀匠色) 중 데메드리오가 일으킨 소란(행 19:23~35)이 진정되자 바울은 제자들(믿는 자들)을 불러서 권면(위로)한 후에 작별하고 에베소를 떠나 제2차 선교여행 지역이었던 마게도냐로 갔다. 그곳에서도 제자들을 권면한 후 ‘헬라’(좁은 의미로는 남부 아가야)에 도착해 거기서 석 달을 지냈다. 이러한 여정은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라는 구절과 일치한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바울이 고린도에서 가이오의 환대를 받으며 로마서를 저술했다고 본다(참조. 롬 16:23). 그 후 바울이 배편으로 수리아(여기에서는 예루살렘)로 가려고 했으나 그 배에서 유대인들이 항해 중에 바울을 죽일 음모를 꾸민 것이 알려져서 경로를 바꾸어 다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했다. 바울은 다양한 지역 출신의 회심자이자 동역자 일곱 명을 먼저 드로아로 보내고 자신은 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바울이 얼마나 광활한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도행전의 이 부분에서 다시 1인칭 복수 관점에서 여행기를 서술하는 “우리-본문”이 시작된다(행 20:5~15; 이전. 16:10~17).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가서 먼저 간 제자들과 재회했다. 이 여정은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을 출발할 때 드로아에서 빌립보까지 사흘 만에 갔던 것(행 16:11~12)의 역방향이었다. 일주일 후 “그 주간의 첫날”(주일)에 “떡을 떼려 하여”(성찬, 예배를 위해, 행 2:42 참조) 모였을 때 바울이 다음날 그곳을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에 밤새도록 말씀을 전했다. 성도들이 많이 모여서 다락에까지 등불을 많이 켰는데 밤은 깊어가고 등불의 그을음과 연기가 천장에 가득하다 보니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뚫려 있는 공간)에 걸터앉아서 듣다가 졸음에 빠져 3층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바울이 그 즉시 옛날 선지자 엘리야(왕상 17:17~24)와 엘리사(왕하 4:33~36)처럼 죽은 청년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음으로써 그의 생명을 되살려 놓았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신유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서 심지어 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나을 정도였는데(행 19:12) 이번에는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유두고는 그의 이름이 ‘운이 좋은 친구’라는 뜻 그대로 바울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 ‘제2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성경학자들은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죽은 것은 그의 영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분이 낮은 종이었기 때문에 예배에 늦을 수밖에 없었고, 가장 높은 곳에 앉을 수밖에 없었으며 바울의 설교가 길어짐에 따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참조. 고전 11:17~34). 하마터면 가장 비극적인 불상사가 될 일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은혜로운 기적으로 바뀜에 따라 성도들이 유두고로 인해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행 20:12). 이처럼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 이동하는데도 흑암의 세력의 위협과 방해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위험에서 건져주시며 어두운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큰 능력을 베푸심으로써 복음 전파의 길은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3.01.06

    (74)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대소동
  •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성령 사역의 전형이었다. 바울이 그곳의 믿는 자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말씀 양육 사역을 회당에서 석 달,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펼치자 에베소 인근 지역에까지 구원의 복음이 확산되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가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과 이사도 일어났다. 그에 따라 수많은 이교도들, 심지어는 마술사들까지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대부흥이 일어났다. 그러자 바울은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에 들린 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는 계획을 세우고 자기를 돕는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냈다. 그 무렵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銀匠色, 은 가공업자)으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에베소는 달의 여신 아데미 숭배로 유명했는데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엄청난 규모의 아데미 신전이 그곳에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길이 137m, 너비 69m, 높이 18m에 이르는 거대한 석조 건물로 원주형 기둥 127개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바울이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고 한 것이 이 건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아데미 여신상을 은으로 만들어 고수익을 올리던 데메드리오 입장에서는 “우상 숭배를 버리라”고 외치는 바울이 눈엣가시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동료 업자들과 직공들을 한데 모아놓고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다. 그는 “이 바울이…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행 19:26~27)고 무리들을 선동했다. 자신이 처한 경제적 위기를 아데미 여신 숭배로 교묘히 포장해서 화근을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 동료 은장색들이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해서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자 순식간에 군중이 불어나서 온 도시가 요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바울 일행인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는데 바울은 아시아 관리 중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통지를 듣고 그곳을 피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연극장으로 몰려들다 보니 무슨 이유로 모였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이들을 선동하려고 유대인들이 알렉산더를 연단에 올려서 상황 설명을 하려 했지만 반유대적 에베소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그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를 연호할 뿐이었다. 이렇게 두 시간이 지나자 에베소의 서기장이 무리들 앞에 나타나 군중들을 지혜롭게 설득했다. 서기장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경솔히 행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나서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하면 된다고 하면서 이 소요 사태와 불법 집회를 빨리 끝내라고 촉구함으로써 큰 문제없이 무리를 해산시켰다(행 19:35~41). 이처럼 사도행전은 구원의 복음이 강력하게 전파될 때마다 흑암의 무리들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박해와 장애물을 쏟아 붓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예비하사 결과적으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고전 10:13 참조).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2.09

    (73)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대부흥
  •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주요 사역지는 소아시아의 주도(州都) 에베소였다. 바울은 먼저 성령 충만 사역을 펼쳤다. 그곳에서 바울은 열두 명쯤 되는 믿는 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고” 요한의 침례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이들이 그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아볼로(행 18:25~26)에 의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본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강림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침례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 또는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른다. 다음으로 바울은 말씀 사역에 매진했다. 처음에는 회당에서 석 달간, 그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로 증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일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다. 그러자 아시아 지역의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이방인)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행 19:10). 바울이 이처럼 성령과 말씀 사역을 전개해 나가자 놀라운 능력이 수반되었다. 그에게 신유의 능력과 귀신 내쫓는 능력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천막 작업용)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해도 병 고침을 받고 악귀가 쫓겨 나갈 정도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병 고침을 받은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막 5:25~34)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 병든 자가 치료 받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났던 사건(행 5:15~16)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능력의 근원은 이런 물건이나 도구 자체에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이때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이 일어났다. 유대인 유랑 마술사들 중 자칭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바울의 은사 사역을 흉내 내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악귀야, 물러가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악귀 들린 사람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김에 따라 그들이 상처를 입은 채 벗은 몸으로 줄행랑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에베소 전역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면서 주께로 나아왔다. 그런데 이 유대인 마술사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면서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게 하는 능력을 사고자 했다가 베드로에게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들은 마술사 시몬을 떠올리게 한다(행 8:17~24).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의 사역을 방해했던 것처럼 마술사인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 말씀 충만, 능력 충만의 대부흥이 일어나자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서 대규모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주께로 돌아와 자복하며 회개하고 주를 영접했다. 그중에는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주로 비밀 주문을 기록한 두루마리)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불로 태웠는데 그 책값이 은 오만 드라크마나 될 정도였다. 이것은 에베소가 고대 세계에서 마술의 중심지였다는 기록과 연관이 있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고 사도 바울의 에베소 선교를 요약하고 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1.11

    (72) 제3차 선교여행 -­ 에베소 선교
  • 오랫동안 안디옥에 머물다가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던 것과는 달리 바울은 안디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3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먼저 오늘날 터키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과 같은 기존의 선교지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을 든든하게 했다. 그즈음 아볼로가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언변이 좋고 성경(구약)에 능통’했고 ‘주의 도’를 잘 배워서 회당에서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가르쳤다. 그런데 그는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다. 그 후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고 하자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추천서를 써서 잘 영접하라고 했다. 그는 아가야 지방에 가서 믿는 자들에게 큰 유익을 주었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사람들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 그 무렵 바울은 당시 로마 제국의 소아시아 주(州)의 수도인 에베소에 도착했다. 바로 이 에베소가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최대 선교지가 된다. 바울은 그곳에서 열두 명 정도의 ‘제자들’(믿는 자들)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아니라고 하면서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다고 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바로 그 요한이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는데 그가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신약에 기록된 유일한 재침례의 사례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셔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이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선생의 교습소로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 동안(오전 11시~오후 4시) 비워 뒀는데 바울이 그 시간을 이용한 것이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후에 바울이 직접 말씀으로 훈련시킨 결과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든든한 선교 기지가 될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성령 충만과 말씀 충만이 균형을 이루게 되자 건강하고 탄탄하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바울이 이런 사역을 펼치자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행 19:10) 열매가 나타났다. 여기에서 제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려 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로 가게 된 것을 일컬어 ‘바울이 유럽을 향해 올라탄 배에 눈부신 서구 물질문명도 함께 갔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내용에 전혀 맞지 않는 해석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2차 선교여행 때는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유럽 땅인 마게도냐로 건너갔지만 제3차 선교여행 때는 소아시아 지역의 에베소로 돌아와 무려 2년 3개월 이상이나 머무르며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복음과 함께 물질문명이 유럽으로 갔다가 다시 아시아로 복귀했다는 말인가? 유럽과 마찬가지로 아시아도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의 대상이었다.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
  • 2022.10.07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