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세상보기
새마음운동 새마을운동
  • 빈농의 아들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평소 “가난은 나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24시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스승인 가난과 관련된 일에서 결코 떠날 수가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실 5·16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에게 빈곤 추방, 경제 부흥, 국력 신장은 가장 설득력 있는 집권 명분이며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이때의 나라 형편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자원이 없는 좁은 국토, 높은 인구밀도,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 절망의 수렁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1960년에 발표된 미국 유명 연구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1인당 GNP는 87달러로 최하위였던 인도에 이어 바닥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재정 상황도 곤궁해 국가 예산 중 48%가 우리 돈이고 52%가 미국에 의존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외국의 원조 없이는 기본적인 나라 살림조차 꾸려 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보리는 여물지 않아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4, 5월경에는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 ‘절량농가’(絶糧農家) 등의 단어가 신문 사회면에 늘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 발행된 저명 학술지 ‘Foreign Affairs’는 당시 한국 경제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전력 산출량은 멕시코의 1/6, 수출은 200만 달러, 수입은 2억 달러, 한 마디로 한국의 경제 회생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처럼 절대빈곤의 빈사 상태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재건의 대역사(大役事)는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그는 1962년 1월 1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5년을 단위로 한 ‘경제개발 계획’은 이후 1979년 10월 박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제4차 5개년 계획’으로 이어지며 중단 없이 진행됐습니다.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 의식 전환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체념과 좌절, 냉소와 허무주의를 타개하지 않고서는 경제 부흥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워낙 가난한 이 나라 바탕에서 우리가 살길은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박 대통령은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과의 만남을 청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기에 대해 조 목사님께서는 저서 『4차원의 영성』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저를 청와대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조 목사님, 우리 민족을 새롭게 하고 농어촌을 변화시킬만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십니까?’ 저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새마음 운동을 시작하십시오. 각 곳에 교회가 있으니 그 교회를 중심으로 새마음 운동을 시작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후 각료들의 논의 과정에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로 ‘새마음 운동’은 ‘새마을운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민 각자의 마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목사님의 주장은 그대로 수용돼 이 운동의 핵심 목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의 국민정신을 진작시킨 성공적인 의식혁명”으로 평가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범적인 국가발전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자”라는 국민적 염원의 결집이 잠자던 민족의 역량을 깨워 한국의 기적을 일궈 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목사님 소천하신 바로 다음 날 <조선일보>에 실린 김태훈 논설위원 칼럼의 언급은 적확합니다.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이룬 기적과도 같은 압축 성장사를 닮았다. 조용기 목사는 그 기적에 뛰어들어 뜨겁게 삶을 불태웠던 한국 현대사의 인물이었다.” 원로목사님 1주기를 맞았습니다. 1년의 시간은 살 같이 흘렀지만 목사님을 향한 추모와 흠모의 정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삶이 고달파 좌절할 때 목사님께서는 불꽃같은 희망의 메시지로 재기의 용기를 주셨습니다. 나라의 현실이 캄캄할 때 이사야와 같은 영감으로 ‘일어나 빛을 발할’ 민족의 미래를 담대히 선포하셨습니다. 국제사회의 변방에 위치한 한국의 목회자가 세계를 교구 삼아 헌신하시며 방황하는 수많은 지구촌 이웃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해외 성회 개최국은 71개국이었고 이동 거리는 지구를 120바퀴 돈 것에 해당합니다. 원로목사님의 ‘희망의 신학’ ‘창조적 목회’가 가져온 경이로운 부활의 역사는 지금도 생생한 간증이 되어 우리 주변 곳곳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잠자던 민족이 깨어났으며 죽었던 영혼과 육신이 살아났습니다. “조용기 목사 소천, 하늘의 별이 되다.” 목사님 소천의 뉴스 1보를 전하면서 한 기독 언론이 붙였던 제목입니다. 진정 조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큰 별이었으며 세계 선교의 밝은 빛”이었습니다. 부디 저희들 신앙생활에 반짝이는 별이 돼 영원한 사표(師表)가 되어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하는 오늘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9.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스포츠와 국력
  • 1948년 8월 15일 오랜 진통 끝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의 출범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정부가 정식으로 출발하기도 전인 같은 해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7.29~8.14)에 67명의 우리 선수단이 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예비 신생국 ‘대한민국 선수단’은 59개국 4689명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웸블리 스타디움’에 당당히 입장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던 올림픽 참가가 현실이 되기까지 선각자들이 쏟은 희생과 헌신은 실로 눈물겨웠습니다. 1947년 6월 올림픽의 선행조건인 ‘조선체육회’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가입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떠난 전경무 선생이 항공기 충돌로 순직하는 비극적 사고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턱없이 부족했던 출전경비는 ‘올림픽 후원권’ 등 국민공채와 재외동포들의 성금으로 충당했습니다. 정식으로 건국이 되지 않았던 형편에서 선수들은 여권 대신 종이에 타자로 기재된 미 군정청 발행의 신분증명서를 지참하고 장도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항공편으로 12시간 걸리는 거리임에도 기차, 배, 비행기를 13차례 갈아타며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 20박 21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선수들의 투혼은 빛났습니다. 복싱 한수안, 역도의 김성집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첫 올림픽 출전에서 32위를 차지하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4년 뒤인 1952년 한국은 6.25 전란 중이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제15회 헬싱키올림픽’에 육상·역도·복싱 등 6개 종목, 1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습니다. 핀란드 대통령은 숭고한 올림픽 참가 정신을 기려 한국 선수단에 ‘최고체육문화상’을 수여했습니다. 비록 소수의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역도와 복싱에서 동메달을 따내 참가 69개국 중 종합 순위 37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험난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한국 스포츠는 국력의 신장과 궤를 같이하며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특히 1988년 9월 대망의 올림픽 주최국이 되어 서울올림픽을 훌륭히 치러냈습니다. 세계 변방에서 중심권으로 도약한 국가적 위상을 마음껏 과시한 쾌거였습니다. 더욱이 2018년 2월에는 제23회 동계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습니다. 여름올림픽과 달리 겨울올림픽은 경제적 기술적 자연적으로 대회 운영 능력을 갖춘 나라가 극히 제한돼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 차례의 도전 끝에 세계 열두 번째 동계올림픽 주최국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 동 하계 올림픽, FIFA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4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한 세계 여섯 번째 “그랜드슬램 국가”가 됐습니다. 외형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한국 스포츠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사실 우리의 초창기 올림픽 강세 종목은 복싱, 역도, 레슬링 등에 편중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역이 확대되어 양궁, 수영, 펜싱, 체조 등은 물론 쇼트트랙,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 스켈레톤, 봅슬레이, 컬링 등 다양한 동계 스포츠 분야에서까지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유한 ‘스포츠 강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주목할 것은 선수들의 활동무대 역시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11일 북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열린 18세 이하(U-18) ‘세계여자청소년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돌풍을 일으키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루마니아, 네델란드, 스웨덴, 헝가리 등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결승에선 강력한 우승 후보 덴마크마저 물리쳤습니다. 8연승 무패행진을 거둔 대표팀은 비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국제핸드볼연맹’(IHF)은 “빠른 스피드, 정교한 패스, 선수들 간의 호흡이 완벽했다”며 “다른 나라 팬들도 한국 핸드볼에 매료돼 사랑에 빠졌다”고 평했습니다. 실제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우상혁을 비롯해 황선우, 차준환, 정현 등 여러 종목의 선수들이 세계 각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들이야말로 국위를 선양하고 ‘스포츠 한류’를 확산하는 대표적인 민간외교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스포츠 경쟁력은 국력과 정비례합니다. “역대 올림픽에서 국가별 성적에 가장 영향을 미친 변수는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이라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세계 최빈국으로 출발했던 우리나라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서 비약적 국력 신장에 따른 한국 스포츠의 대반전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평화의 전령, 화합의 촉매 역할을 해 왔습니다. 1971년 미국과 중국 간의 ‘핑퐁외교’,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나 탁구의 남북한 교류 등이 실례가 될 것입니다.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는 긴장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사회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박한 시점에 한국의 스포츠가 화해와 단합의 가교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위상에 부응하는 시대적 소명이라 할 것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8.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대통령의 독서 목록
  • 연임에 성공해 8년간을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버락 오바마’. 그가 2017년 1월 퇴임을 일주일 앞두고 백악관에서 가진 마지막 회견의 인터뷰어는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서평 담당 기자 ‘미치코 가쿠타니’였습니다. 그는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악관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에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매일 잠들기 전 한 시간씩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은 음악, TV, 영화와 다르게 나 자신을 안정케 하는 힘을 준다.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줬다. 특히 소설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잘 상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실제로 그는 직무 수행에 힘이 되어준 책으로 정치나 역사 서적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꼽고 퇴임 후 소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도록 도와주는 일”을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책은 문화의 창조 확산 보존에 있어 다른 어떤 매체와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기여를 해 왔습니다. 책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상당 부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책은 인류 문화 발전의 산파며 젖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읽는 행위’, 곧 독서는 책을 열쇠 삼아 인류 문명의 보물 창고를 여는 경이로운 작업인 것입니다. 더욱이 크리스천들에게 <성경> 책은 생명처럼 소중합니다. 그를 통해 사모하는 예수님을 뵙고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성경 곳곳에서 책에 대해 귀중한 역할을 부여하고 계십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근래 여름이 새로운 독서의 계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독서 시즌’으로 알려져 온 가을에 비해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여름 휴가철인 7, 8월에 책들이 더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을 뜻하는 ‘북’(book)과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북캉스’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입니다. 이런 추세에 부응하듯 해마다 이맘때면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서 리스트가 발표돼 세간의 관심을 끕니다. 이 전통은 미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1961년 “라이프”지가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 10선’을 게재한 것이 시초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휴가 중 읽을 책 다섯 권을 공식 발표한 것이 관행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독서 목록 공개가 “공부하는 대통령상을 보여주고 많은 국민이 휴가 때 책을 가까이하는 건강한 문화 조성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취지대로 그간 ‘대통령 독서 리스트’의 공개는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수행해 왔습니다. 우선 정치 홍보적 역할입니다. 대통령이 읽거나 언급한 책들은 당연히 통치권자의 가치관과 관심사를 국민에게 전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집니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본인의 의중을 전달하기 위해 국무회의 등에서 직접 책을 추천하거나 저자를 내각이나 비서실의 중요 참모로 기용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결과 대통령의 책 읽기는 ‘국정의 일부’로 해석돼 ‘독서정치’ ‘독서인사’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다음으로 출판 시장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해마다 대통령의 독서 목록에 들어간 책들은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사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휴가지에 어떤 책을 선택해 챙겨 가느냐는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책 내용이 대통령의 생각과 판단에 영향을 미쳐 향후 국정 구상과 운영에 투영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읽으려는 독자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최첨단을 지향하는 뉴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결합한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 플랫폼은 자극적, 역동적 콘텐츠를 쉴 새 없이 쏟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올드미디어의 상징인 종이책의 영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만이 지니는 본질적 가치와 감동의 세계는 다른 매체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격언은 진부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진실입니다. 바쁜 일상을 쫓기듯 살아온 사람들에게 여름휴가는 재충전을 위한 소중한 시간입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숙독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뜨거운 여름, 독서를 통해 뿌려진 씨앗은 분명 풍성한 수확의 가을을 예비해 줄 것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7.22 / 김주영 기자

    그해 6월
  • 1983년 공개된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6·25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날이 바뀐 26일 새벽 3시, 그는 도쿄에 있던 연합군 사령관 겸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장군을 깨울 수 없으니 나중에 전화를 주겠다”는 전속 부관에게 이 대통령은 호통을 쳤습니다. “우리 국민이 맨손으로 죽어 가는데 사령관을 안 깨우다니 말이 되느냐! 대신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이 한 사람씩 죽어갈 터이니 장군을 잘 재우시오.” 놀란 부관에 의해 바로 맥아더 사령관과 전화가 연결되자 대통령은 무섭게 항의했습니다. “오늘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누구의 책임이오? 당신 나라에서 좀 더 관심과 성의를 가졌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오.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 대통령은 조종사 10명을 보내 단기훈련을 받고 ‘무스탕’을 몰고 오게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비행기가 없으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하하는 북한군의 거센 공세를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와의 통화가 끝나자 대통령은 워싱턴의 장면 주미대사를 불렀습니다. “장 대사! 트루먼 대통령을 즉시 만나 이렇게 전하시오. 적은 우리 문전에 와 있다고. 미 의회가 승인하고 트루먼 대통령이 결재한 2000만 달러 무기 지원은 어떻게 된 것이오?” 북한군은 6월 25일 일요일 새벽을 택해 전면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미국은 마침 토요일 오후 시간, 트루먼 대통령도 고향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워싱턴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는 사력을 다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국무성 고위관리들과 수차례 접촉하고, 유엔 안보리 긴급이사회에 출석해 연설했습니다. 실로 그에게는 ‘한 시간이 일 년만큼이나 귀중’했습니다. 그리고 현지 시각 6월 26일 월요일 오후 3시 30분 장면 대사는 비로소 백악관에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미국의 긴급원조를 요청하는 한국 대통령과 국회의 호소문이 들려 있었습니다. 훗날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대사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눈물이 글썽해 사기가 죽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러나 면담을 마치고 백악관을 나설 때 장 대사의 태도는 의연했습니다.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그는 결연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미군들이 우리를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싸우는 것과 죽는 것은 우리가 맡을 것이다. 우리의 청년들은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벌써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 기간 도쿄의 연합군 사령부도 긴박하게 움직였습니다. 개전 닷새째인 6월 29일에는 맥아더 사령관이 중요 참모들과 함께 전용기 ‘바탄호’를 타고 수원에 날아왔습니다. 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전황은 맥아더 장군 일행을 만나기 위해 대전에서 수원까지 이동하던 이 대통령과 무초 미국 대사가 탄 정찰기가 북한 야크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위험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맥아더 장군은 지프로 적의 코앞인 영등포까지 북상해 전선을 시찰했습니다. 참모들의 증언에 의하면 장군은 근처 언덕에 올라 한강 남안 국군의 방어 진지에 북한 포병 부대가 대포와 박격포를 맹렬히 퍼붓고 있는 장면을 20여 분 가량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적의 수중에 들어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서울 시내, 시뻘건 한강, 다리를 끌며 퇴각하는 부상병들의 모습… 그때 그는 그곳에서 미국의 지상 전투부대가 투입돼야만 한국을 구출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귀임한 다음 날 맥아더 사령관은 한국전에 미 지상 전투부대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지급전보 형식으로 국방성에 보냅니다. 이 보고는 바로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제한된 지상군 투입을 재가했습니다. “새로운 전쟁을 두려워해 개입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나라가 한국처럼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7월 1일 미 제24사단의 선발부대가 부산에 도착했고 7월 5일에는 딘 소장이 이끄는 미 2사단 병력 전원이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나아가 7월 7일에는 유엔이 ‘유엔군사령부의 설치와 회원국들의 무력 원조’를 미국 정부 지휘 하에 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네덜란드 캐나다 등 16개국 군대로 유엔군을 편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전쟁 발발 6일 만에 이루어진 미국의 신속한 참전 결정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군사학자들은 “없어질 뻔했던 나라가 살아남는 전기”가 됐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미국의 개입은 전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로 이어지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보호막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해 6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전쟁의 대재난 속에서도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이렇게 붙들고 계셨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6.19 / 김성동 장로 기자

    중요한 지방선거
  • 6월 1일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17명의 광역단체장(시·도지사), 226명의 기초단체장(구·시·군의 장), 779명의 지역구 광역의원, 97명의 비례대표 광역의원, 2596명의 지역구 기초의원, 386명의 비례대표 기초의원을 뽑습니다. 아울러 17명의 시도교육감도 선출합니다. 이처럼 문자 그대로 ‘통합지방선거’이다 보니 유권자 1인에게 색깔이 각각 다른 7장의 투표용지가 배부됩니다. 국회의원 재 보궐선거가 실시되는 지역은 투표용지를 1장 더 받게 됩니다. 따라서 각급 선거의 투표지를 잘 식별해 혼돈하지 않고 바로 기표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그 구체적 표현이 바로 투표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투표권은 시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투쟁하여 쟁취한 권리입니다. 국민의 보통 직접 평등 비밀 투표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6·25의 전장에서 수많은 호국 용사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처연한 혁명의 현장에서 선열들이 고귀한 희생을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지방자치 역사 속에는 눈물겨운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의회 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6·25 한국전쟁 중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52년 4월 25일에는 시읍면의원의 선거가, 5월 10일에는 도의원 선거가 ‘미수복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실시됐던 것입니다. 전쟁의 국난 가운데서도 민주주의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지방선거를 치러 낸 선대의 결연한 민주 의지를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투표권은 기권해 버려서는 안 될 너무나도 소중한 권리입니다. 크리스천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애국애족을 앞장서 실천해 온 자랑스러운 신앙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는 기독교의 부흥과 산업화, 민주화의 추세가 정비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6월 1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가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애국의 첫걸음이며 행동하는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솔직히 우리 사회의 정치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부도덕한 정쟁의 장으로 비춰질 때가 많습니다. 국가 발전의 걸림돌로 ‘삼류 수준’을 면치 못한다는 비아냥마저 받을 정도입니다. 또한 국민 의식 조사 등에 따르면 ‘정치인’은 여러 직업 중에서 가장 신뢰성이 낮은 직종으로 꼽히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정치의 위상과 역할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란 마치 기차가 달리는 길, 곧 ‘철로’를 설치하는 작업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열차는 결국 레일이 깔린 노선을 타고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경제, 문화, 교육, 복지, 안보, 외교 등도 정치가 깔아놓은 국가목표, 정책 지표의 철로를 따라 운행하게 됩니다. 정치가 닦아놓은 철길이 제대로 설치돼 있을 때 국민은 대망의 목적지에 편안하고 쾌적하게 닿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방향을 잘못 잡아 뒤틀려 버린다면 국가사회는 혼미해지고 탑승객인 국민은 갈피를 잃은 채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배척하고 경원시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는 사명을 받은 크리스천들이 부단히 도전하며 점령해 나가야 할 산지(山地)입니다. 또한 기독교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상에 공포하고 실현해야 할 본질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는 바로 공의의 길을 여는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인 것입니다. 더욱이 “자기 지역의 일을 지역주민들의 책임하에 지역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해 나가는 지방자치는 정치와 행정의 접점에 위치한 매우 소중한 영역입니다. 참여민주주의의 토대이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으로서 주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습니다. 사실 ‘민족 복음화’와 ‘지역 복음화’는 모든 교회들의 한결같은 비전이며 목표입니다. 실제로 많은 교회들이 지역민 속으로 과감히 들어가 섬김과 봉사, 베풂과 나눔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맞게 된 지방선거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이 선거가 ‘전지역(Whole City)에서 전복음(Whole Gospel)’이 확산 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육감 선거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광역자치단체의 교육 수장인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처절하리 만큼 무관심한 깜깜이 선거”라는 혹평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의 교육은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6월 1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장에 나가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의 위대한 역사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도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5.15 / 김성동 장로 기자

    장관 후보자들께
  • 1392년 조선 왕조가 한양 천도를 단행한 이래 630여 년간 서울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무대였습니다. 그 결과 도시 인근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역사적 유적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로구 이화동 1번지에 위치한 ‘이화장’(梨花莊)이 한 예입니다. 평범한 주택가 속에 자리 잡은 이곳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사저(私邸)로서 2009년 4월 사적 제497호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이끌던 그가 1945년 8·15 광복 직후 망명지 미국으로부터 귀국했을 때 당장 머무를 곳이 없음을 알고 주변 인사들이 급히 마련해 기증한 집이었습니다. ‘이화장’은 1455평 면적에 조각당(組閣堂), 전시관이 있는 안채, 별채, 새로 지은 살림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조각당’은 대한민국 첫 내각 구성 작업이 이루어진 뜻깊은 장소입니다. 현재는 안전시설 설치와 전시관 신축 공사 등으로 개방되지 않고 있지만 경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이 소박한 ㄱ자형 건물 앞에 서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푸른 꿈을 안고 성안(成案)과 번복을 거듭했을 당대 지도자들의 분망함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당시 자료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인선에 국민의 기대가 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승만 씨가 기거하고 있던 이화장의 조각 본부에는 아침저녁 정계 요인들의 출입이 빈번했으며 신문기자들도 날카로운 신경으로 조각 본부에 몰려들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국무총리 후보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했습니다. 경제부총리 등 각부 장관 후보자 인선 결과들도 뒤이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화장의 ‘조각당’ 시절로부터 74년의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새 내각 구성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대통령이 나라 경영의 총책임자라면 각료는 국정운영에 큰 역할을 해야 할 주축들입니다. 이런 요직에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를 보면 향후 5년의 정부 운용 기조와 철학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선인 대변인은 “유능함과 실력, 전문성이 인사의 기준”이라며 능력 우선의 인선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10여 명의 검증팀이 후보자에게 요청해 받은 자료를 토대로 “현미경 사전검증”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자들에게는 또 한 번의 검증 관문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국회 인사청문회’입니다. 여기에서 정책수행 능력과 개인신상 관련 검증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검증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진솔한 자기 점검과 마음의 다짐입니다. 우선 이번 인사의 기준이라 알려진 ‘실력’이 단순히 ‘지식’ 차원에 머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혜’의 영역까지를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조선 중기의 두 재상 ‘오리 이원익’과 ‘서애 류성룡’에 관한 일화는 깨우침을 줍니다. 기록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류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서애는 분명하고 정확해서 빈틈이 없고, 오리는 너그럽고 부드러워 인심을 얻었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리가 타계한 뒤 효종은 그를 추모하면서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것처럼 가냘프나 관직을 맡으면 늠름하여 범하기 어렵고, 말은 입에서 나오지 못할 것처럼 수줍으나 일을 만나면 패연(沛然)히 여유가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이런 외유내강의 자세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새 장관 후보자들은 ‘전문성’과 함께 대국을 보는 ‘통찰력’을 더불어 갖춰야 할 것입니다. 장관은 ‘행정각부의 장’ 이전에 국무회의를 구성하는 ‘국무위원’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의장인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총괄해 심의하는 핵심기구입니다. 따라서 장관은 맡은 부서의 책임자로서의 전문성 못지않게 국정 전반을 포괄하는 대승적 안목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장관 후보자는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는 변하고 정권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물결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도도히 흘러갑니다. 잠시의 영달에 들뜨지 않고 초심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슬기가 필요합니다. 귀와 시선이 임명권자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역사 앞에서, 국민 앞에서 언제나 겸손함을 견지하는 진정으로 존경받는 장관들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는 세종 연구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오천 년 우리 역사의 최전성기”를 연 세종 대왕의 리더십 요체를 찾기 위해 진력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세종처럼』 개정판 서문에서 세종 시대 태평성대의 비결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평범한 백성들이 매일매일 비범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려는 세종과 그의 신료들의 고뇌와 결단.” 이런 시대를 만들어 가는 장관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4.17 / 김성동 장로 기자

    통합과 소통
  •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국민은 수많은 고백과 약속을 들었습니다. 후보자들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하며 절절한 애정을 표했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자기들만이 진정한 국민의 편”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믿어 달라” “도움을 달라”며 지지를 간청했습니다. “말로는 국민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선거가 있는 4~5년에 한 번 정도나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는 셈”이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지 넘치는 지적이 새삼 상기된 시간이었습니다. 치열한 선거전은 불과 24만7000여 표 차로 승패가 갈렸습니다. 정치 입문 8개월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노련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새 대통령에 선출됐습니다.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의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거는 당면한 국가적 이슈들을 점검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번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선 투표 결과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존의 지역, 이념, 세대 간 갈등에 더해 성별 갈등도 간과할 수 없는 수준임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0.73%포인트 차의 박빙의 승부는 이 시대 ‘민심의 양극화 실상’을 생생히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 지형의 견고한 지역 구도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개표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후보의 ‘TK압도’, 민주당 후보의 ‘호남몰표’ 추세는 여전히 확고했습니다. 이러한 특정 정당의 ‘지역 독점’, 또 특정 정당에 대한 ‘철저한 배척’은 대의정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킵니다. 즉 정당들은 국익보다 지방적 이해와 정서를 우선시하게 되고, 정치인들 역시 국민보다는 지역 맹주인 정당 지도자들에게 정성을 쏟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당선인은 갈라진 나라를 통합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심각한 양극화는 공동체의 내부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선인도 이를 인식해 당선 일성으로 ‘통합과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곳곳에 내건 감사 현수막도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언론 등을 통해 소개되는 각계의 주문 역시 ‘국민 통합의 정치’를 해달라는 바람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분열된 집은 제대로 설 수 없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전을 치른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입니다. 실제로 그는 종전이 다가오면서 남부를 반역자로 처리하자는 강경론에 맞서 합중국의 존립을 위해 시종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등 직면한 국내외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국력의 결집입니다. ‘국민 통합’은 바로 이를 위한 선결 조건입니다. 여기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대두됩니다. 막힘없는 소통은 진정한 통합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정부,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환경 속에서 “의회와의 대화,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또 국민에게 다가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존 청와대를 해체하고 새로운 대통령실을 도심에 설치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습니다.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습니다. 사실 선거 기간부터 당선인은 “정치 경험이나 세력이 없는 자신을 국민이 키워 주셨다”고 줄곧 말해 왔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습니다. 부디 이 초심을 임기 내내 깊이 간직하고 실천해 가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의 대통령 제도를 논할 때 흔히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국가 원수로서의 상징적 권한은 물론 입법 사법 행정을 망라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권한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권력에는 위험이 수반됩니다. 청와대 고위직으로 대통령을 보좌했던 한 인사는 “민주사회에서의 권력은 손잡이 없는 무거운 칼”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잡는 순간 손을 베이고, 행사해 보겠다고 높이 드는 순간 팔목을 다친다”고 충고합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회고록을 보면 자신의 결정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중압감에 수많은 고뇌와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술회합니다. 그렇기에 당선인에게는 모든 권세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무릎 꿇고 도우심을 구하는 믿음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못지않게 ‘예수님과의 소통’에 힘쓰는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국민의 뜻을 살피기 앞서 역사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뜻을 먼저 살피는 지혜가 요청됩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내외환경이 결코 녹록하지 않더라도 당선인께서 이런 우선순위를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대통령과 이 나라의 앞길을 친히 열어 주실 것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3.20 / 김성동 장로 기자

    레이건의 고별편지
  •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은 여러 가지 핸디캡을 극복하고 권력의 정상에 오른 인물입니다. 1980년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그의 나이는 69세, 트럼프(70세)나 현 바이든(79세) 대통령 이전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령의 대통령 당선자였습니다. 또 전임자들과 달리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전교생 250명 규모의 고향 인근 기독교 학교인 ‘유레카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사회 경력 역시 소박했습니다. 지방 라디오 방송국의 스포츠 캐스터로 시작해 53편의 영화에 출연한 평범한 연기자, 영화배우협회 회장, 제너럴 일렉트릭(GE)사 홍보대변인 등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기 전까지 내세울 만한 정치 경력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외교, 국방, 행정, 경제 등의 견식을 두루 쌓을 기회 또한 제대로 갖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취임 초 국내외의 시선은 매우 싸늘했습니다. 특히 엘리트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나 언론의 폄하가 유독 심했습니다. 혹자는 레이건이 배우 출신임을 빗대 ‘Acting President’, 곧 ‘대통령을 연기하는 사람’ 또는 ‘대통령 직무 대행자’라고 비아냥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8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레이거노믹스’를 통한 경제의 활성화, ‘힘의 외교’를 기반으로 한 냉전의 종식, 자신감의 회복을 통해 ‘미국을 다시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어 준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레이건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Great Communicator)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성패가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나운서, 영화배우, 대기업 홍보 책임자를 거치며 쌓아 온 실제적 경험들이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연설문의 사전 검토와 연습, 편지쓰기, 전화, 현장 방문 등 국민과 소통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연구자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출중했고, 복잡한 사안도 단순화시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듣는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려 애썼습니다. 쉬운 말, 짧은 문장으로 행해지는 연설은 그래서 설득력이 컸습니다. 배우 출신답게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의 메시지는 화제와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인 1994년 11월 5일,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미국민들에게 보낸 고별편지’는 레이건식 커뮤니케이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서신에서 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통보를 받고 한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 비공개로 할 것인가, 공인으로서 일반에게 공개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 질병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환기시키기 위해 공표키로 결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편지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병의 증세가 더 깊어지기 전에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커다란 영예를 주셨던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며 진심 어린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전직 대통령과 같은 저명인사가 치매에 걸렸음을 스스로 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직과 용기, 국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체화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를 계기로 레이건 부부는 알츠하이머 연구를 위한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자신의 질병마저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7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대통령은 대한민국호의 선장입니다. 그의 역량과 자질이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결정 짓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냉철한 분별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윌슨이 엮은 책 『결국에는 품성(Character Above All)』은 많은 참고가 됩니다. 10명의 전문가가 미국 역대 대통령 10명을 분석한 이 책의 결론은 대통령의 업적이 ‘결국 품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화려한 정책도 신뢰를 잃게 되고, 신뢰를 상실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필자들은 주장합니다. 따라서 “표면의 거품을 걷어내고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의 요체”라고 제언합니다. 레이건은 대선 TV토론에서 “대통령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떻게 기도 없이 대통령이라는 두려운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분명히 말한 바 있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품성을 지닌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그는 대통령의 막중한 직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 2022.02.20 / 김성동 장로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