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고민화 집사(강서2대교구) -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건강, 물질 등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할 때 기적 일어나고 형통의 복 받아 35년 전 언니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오게 된 나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초신자였지만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십일조를 열심히 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순종하는 마음을 기쁘게 보셨는지 성령의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셨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기쁨이 컸던 나는 바울성전에서 새벽 4시까지 철야예배를 드려도 피곤한지 몰랐고 매일 감사가 넘쳐났다. 청년 시절부터 목사님께서 직분을 맡겨주시면 무조건 ‘아멘’이었다. 구역장, 지역장, 교구 총무 등 맡겨주시는 대로 봉사하며 순종했다. 남편이 직장을 5번 옮기면서 힘들 때 1년 동안 새벽예배를 다니며 기도했고 남편은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가르치느라 생활이 빠듯하기도 했지만 지역장을 하면서 10년 넘게 교구 찬양팀장을 맡는 등 교회 일에 소홀해질까봐 직장 다니는 것은 생각도 안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니 물질의 복은 저절로 따라왔다. 내가 가진 돈이 6500만원뿐이었는데 지인의 도움과 남편의 퇴직금 중간 정산 등으로 2억원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6년 전에는 놀랍게도 지역예배, 구역예배를 다 드리고 오후 12시에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게 됐다. 사실 출근 시간은 오전이었지만 내가 교회 일 때문에 12시 이전에는 갈 수 없다고 하니 사장님이 배려해준 것이었다. 2021년 2월 자꾸 소화가 안되고 체한 것 같아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임파선암이었다. 잠시 낙심됐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바로 입원해서 위내시경으로 용종을 떼어내듯 암 2개를 떼어냈다. 방사선, 항암치료도 받지 않고 약도 먹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을 의지해 담대히 나아가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건강한 것은 물론이고 보험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이 말씀은 내 삶에 큰 힘이 된다. 많은 분들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건강도 물질도 큰 복 받아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란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셨다면 꼭 교회에 나와 결신하시길 바란다. 모두가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한 해 되시길 기도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3.01.27 / 이미나 기자

    우지연 집사(관악대교구) - 성경 읽으며 재정과 가정의 문제 해결 
  • 말씀이 흥왕하는 다음세대 꿈꿔 나는 올해 ‘말씀이 흥왕하는 다음세대’를 일으키는 부모세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을 이뤄나가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성경 말씀 하루 10장 읽기를 관악대교구 3450임원들에게 권했더니 4명의 임원들이 함께 하기로 했다. 1월 2일부터 진행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참여하는 집사님 중 한 분이 단체 대화방에 “처음에는 성경 10장 읽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해보니 마음에 감동이 크게 온다”는 글을 올려주셔서 인원이 한 명 더 늘게 됐다. 바라기는 이 다섯 명이 조를 이뤄 다음 2독 때는 더 많은 성도들이 참여하고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3개월 동안 성경 1독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10장씩 읽어야 하고 시편과 잠언도 한두 장 씩 읽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훈련을 통해 익숙해지면 당연한 하루 일과가 될 수 있다. 나는 성경 말씀을 읽으며 가정이 축복받고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했다. 맞벌이 부부로 열심히 일하던 2014년 갑자기 적자가 지속되며 통장 잔고는 7400원뿐이었다. 평소 사치품을 즐겨 사는 것도 아니고 소비를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여러 일들이 한 번에 터지면서 돈이 흘러나갔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이때부터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또한 자녀들을 말씀 안에서 양육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딸은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면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느라 학교 수업에 늦거나 학원 시간을 놓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책을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남들과 다른 행동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내게 근심이 됐다. 이런 마음은 꾸중과 야단으로 자녀에게 돌아갔다. 나는 내 힘으로 자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맡기며 뜨겁게 기도했다. 말씀을 읽으니 기도가 깊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3년 만에 빚을 전부 갚으며 재정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리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녀들이 꿈을 찾았다. 첫째 아이는 고3때 돌연 미대에 가겠다고 했다. 면담을 간 학원에서 우연히 크리스천 원장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많은 도움을 줘 준비 6개월 만에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가게 됐다. 둘째 아이도 주님이 주신 재능을 발견해 자신의 진로를 향해 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는 내게 편지를 줬는데 ‘저를 믿어주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서 눈물이 났다. 또 지난해 4월에는 내게도 기쁜일이 생겼다. 내가 바라고 기도하던 완벽한 조건의 직장에 입사하게 됐다. 할렐루야! 이 모든 게 주님의 은혜다. 말씀 안에 답이 있다. 성경 읽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자 모든 일이 해결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한복음 17장 4절 말씀처럼 주님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주의 자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3.01.20 / 김주영 기자

    박병선 집사(순복음성동교회) - “삶,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 척추관 협착증으로 인한 소변 장애 치유
    지난해 6월 3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도중 갑자기 주저앉았다. 배꼽부터 아래 하반신이 마비됐고 소변이 안 나왔다. 아들이 도와줘도 걸을 수 없어서 교회에서 오래도록 친하게 지낸 집사님에게 도움을 청해 함께 병원을 갔다. 처음에 간 병원에서는 큰 병원을 가라고 권유를 했고 혹시나 뇌의 이상일까 싶어 MRI로 허리와 뇌를 검사했다. 원인은 ‘급성 척추관 협착증’이었다. 수술 대신 주사로 치료를 했다. 하루에 한번 씩 세 번 주사를 맞고 난 다음에 하지 마비가 풀려 걸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는 마비가 풀렸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여전히 소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소변줄을 사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계속됐다. 의사 선생님은 방광으로 가는 신경이 눌려서 그렇다는데 언제 회복될지 물어보니 소변을 스스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해결이 된다 해도 1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평생 화장실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스스로 화장실 가는 사람들이 최고로 부러웠다. 퇴원을 했지만 소변 문제 때문에 일상이 망가졌다. 1988년부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유통업을 해왔는데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눈 뜨고 있는 내내 하나님께 기도 밖에 할 수 없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순복음성동교회 성도들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의료센터 봉사자들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중보기도에 나섰고 꼭 나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너무 힘들어 나도 포기할 지경인데 이분들은 포기를 모르셨다. 농수산물 시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도 내 일을 나눠서 해주었다. 그러던 중 11월 20일 주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님들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내용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영훈 목사님께서 신유기도 시간에 “소변이 나오질 않아서 고통을 당하는 분이 있는데 이제 하나님이 고쳐주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딱 내 얘기라며 전하며 ‘치료 받았죠?’라고 확인하는 전화였다. 더 놀라운 건 이날 순복음성동교회 정홍은 목사님께서 설교 후 신유기도를 하시면서 “눌렸던 신경이 정상이 되어서 고침을 받았다”는 선포를 하셨다. 그 순간 몸이 뜨거워지고 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멘’으로 답하고 난 뒤 이튿날부터 내 의지대로 정상으로 소변을 볼 수 있게 됐다. 마비가 오기 전에도 나이가 들면서 새벽에 소변 때문에 두 세 번씩 깼는데 회복 후에는 아침까지 잠을 깨지 않을 정도로 몸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러한 어려움과 회복을 경험하며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라는 찬양처럼 모든 것을 감사하게 됐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더 많이 봉사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살아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3.01.13 / 복순희 기자

    장보선 집사(장년국) - 순복음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 ‘절대긍정 절대감사’ 삶에 적용할 때 변화 생겨
    나는 친가 쪽으로 4대, 외가 쪽으로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적 동네 교회에 다니다 부모님이 다니시는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옮긴 건 20대 초반이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결혼 잘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줄 알았는데 공허함이 다가왔다. 또래들은 어떤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사는지 궁금해 청년국 프뉴마선교회에 가보고 싶었다. 낯선 환경 탓에 친한 친구에게 세 번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고 왔는데 때마침 동계수련회가 열렸다. 그 곳에서 나는 성령 침례를 처음으로 받고 기억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잘못까지 회개했다. 나의 부탁을 받고 세 번만 순복음교회에 가기로 했던 친구도 그때 교회에 홀딱 반해 함께 청년국에서 신앙생활하게 됐다. 청년국에서 믿음의 형제를 만나 결혼한 나는 내 자녀는 반드시 어릴 때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중등부 교사로 봉사하는 남편의 권유로 두 아이가 찬양반에서 봉사하게 됐는데 찬양반 어머니 기도 모임은 육아에 지쳐 침체됐던 내 신앙에 불꽃을 키워주는 은혜의 통로가 됐다. 그런데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시작된 코로나19로 학교도 유치원도 학원도 못가는 환경이 되자 나는 아이들을 집 안에서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했다. 장년국 교구 지역장님이 기도 제목을 내라 하실 때 ‘아이들을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배운 모든 것을 적용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지혜를 주셨다. 우리가 했던 활동은 ‘미라클 모닝’이라고 아침에 일어나면 긍정 확언을 하는 것이었다. 이영훈 목사님을 통해 배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말들을 선포하자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과 저녁으로 감사했던 일 세 가지씩 기록하는 감사노트를 작성했다. 긍정 에너지가 매일 솟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자녀들로 학교에서도 모범이 되길 항상 기도했다. 삶의 모습이 곧 전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님께 배운 ‘바라봄의 법칙’을 아이들과 함께 적용해보기로 했다. 지난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딸과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은 연초 ‘지성·영성·감성·체력’ 네 분야에 각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종이에 적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이미 목표가 이뤄진 것을 꿈꾸고 바라보고 시인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지난해 영어와 한자 능력 시험에서 자격증을 땄고 학교 성적은 물론 예의 바르고 독서 습관도 잘 익히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예배도 드리며 하나님과의 친밀감도 높아졌다. 예배 때 아이들이 감사기도를 세세하게 드릴 때면 감동이 밀려온다. 자녀의 믿음이 우리 부부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고 더 좋은 부모로 성장하게 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해마다 연초 2주간 열리는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는 우리 가정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는 큰 역할을 한다. 구역장인 나는 부구역장과 함께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구역원은 물론 우리 가정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내 어머니들이 자녀 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을 기억하며 나 또한 내 자녀 그리고 그 후손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굳건히 세워지길 소원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3.01.06 / 오정선 기자

    최은주 성도(동작대교구) - 교수의 꿈 이뤄주신 하나님께 감사
  • 나는 대학 시절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느끼며 교육자의 꿈을 품게 됐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학원 강사로 활동했는데 늘 아이들의 성적에 맞춰 편협한 교육을 하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그랬던 내게 어느 날 조용기 목사님이 강조하셨던 4차원의 영성 메시지가 큰 도전이 됐다.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생각하고 믿고 말로 선포하라는 목사님의 메시지에 나는 학생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인성에 대한 교육까지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교수가 되려면 박사과정에 입학해야했다. 당시 나는 2년간 석사를 마치고 직장과 결혼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학업보다는 결혼에 전념해야 되지 않겠냐며 박사과정 입학을 반대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때 조용기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 드려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이 찾아와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생각지도 않게 기도를 해주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용기 목사님께서는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시고 기도해 주시면서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믿음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조용기 목사님께서 알려주신 방법대로 방 벽면에 ‘대학교 강단에 서는 교수가 되겠다’는 기도제목을 붙이고 수시로 바라보고 기도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학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재정적인 어려움, 갑작스런 부모님의 건강 악화 등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나는 그때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의 삶을 전적으로 맡겨드렸다. 그리고 2018년부터 3년 동안 또다시 이어진 학업으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바라봄의 법칙으로 공부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2021년 12월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하게 인도해 주시고 연구 교수로도 활동하게 해 주셨다. 또한 공부하는 내내 재정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고 지도 교수님을 비롯한 귀한 제자들도 만나게 해 주시면서 교수에 대한 확실한 소명을 깨닫게 하셨다. 나는 지난해 3월부터 학부와 석사 과정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지금은 연구 교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올해 나는 하나님께서 전임 교수로 세워주실 것을 기대한다. 당장의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낙심하지 않고 끊임 없이 도전할 것이다. 희망찬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꿈꾸고 도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2.12.30 / 금지환 기자

    김옥자 집사(은평대교구) - “교회에 다닐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 유방암과 림프전이 완치 되고 새 삶 찾아
    20년 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처음 오게 된 것은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였다. 당시 과일가게를 했었는데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나를 누군가 교회로 데려가는 꿈을 꿨다. 1주일 후에는 전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지켜주시는 꿈을 꿨다. 또 한번은 과일 가게 방안에 벽걸이 선풍기가 떨어져 남편이 크게 다칠 뻔 했는데 마침 딸기를 사러 온 손님 덕분에 화를 면했다. 굳이 잠들어있는 남편에게 딸기 포장을 맡기겠다고 해서 남편을 깨웠는데 자고 있던 그 자리에 선풍기가 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들었고 나는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 교회를 갔지만 하루하루가 영적 전쟁으로 힘들었다. 시댁과 친정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고 내 신앙도 뜨겁지 않아 점점 교회와 멀어졌다. 결국 사업도 안 되고 집도 경매로 넘어가버렸다. 다시 절을 다니며 108배를 하는데 꿈에서 조용기 목사님이 손에 십자가를 쥐어주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교회로 돌아가지 않았다. 2016년 12월 오른쪽 가슴에 몽우리가 잡혀서 병원에 갔는데 유방암 3기였고 림프절 24곳이 전이된 상태였다. 그 결과지를 본 순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데 그때 검사결과지 위에 쓰여 있는 성경말씀이 눈에 띄었다. 아! 내가 갈 곳은 교회였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17년 1월 다시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항상 CTS 기독교 TV를 틀어놓고 기도에 힘썼다. 주일 저녁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방송이 나왔는데 “이 시간 유방암으로 고통 받은 사람이 치유받았다”고 선포해주셨다. 나는 “아멘”을 외치며 내 병이 나았음을 입술로 선포했다. 당시 나는 8차 항암치료를 받은 상황이었다. 암이 많이 줄어들어 6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의사도 놀랐던 것은 항암치료에 대한 부작용이 없어서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특수한 체질이라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붙잡아주신 것임을 안다. 이후 방사선 치료와 표적 치료를 마치고 5년이 지난 지금 완치 판정을 받았다. 올해 6월에 담당 교수를 만났는데 힘든 케이스였던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된 것은 기적이라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기적은 또 일어났다. 2018년 1월 열이 41℃까지 올라 응급실에 가게 됐다. 병원에 가서 CT촬영을 하니 간에 농이 끼어 있었다. 나는 급히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혈압이 떨어져 혼수상태가 오고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 내가 힘들 때마다 교구 성도들이 와서 기도해주었고 그 덕분에 위기를 여러 번 넘겼다. 50일 동안 입원하면서 세 번의 시술을 받는 중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다. 같은 병실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갈 때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두려움을 없애고 병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며 복음을 전했다. 나는 빠르게 회복해 건강을 되찾아 퇴원했고 구역장으로 열심히 봉사하며 신앙생활하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때 우리 모두 시편 23편의 삶을 살기 바란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모두 주 안에 승리하고 행복하길 소망한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2.12.23 / 이미나 기자

    김종임 집사(영등포대교구) - 노방전도에 주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 가정에 평안과 건강의 축복 주셔
    나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 하나님은 온 가족을 구원해 주셨고 자녀가 아플 때나 내게 어려움이 생길 때 늘 도와주셨다. 딸이 세살이었을 때 폐렴으로 고통 받는걸 보며 하나님이 아이를 고쳐주시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내 믿음이 온전치 못해 교회를 나가다 안나가기를 반복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부모님을 보며 성장했기에 힘들 때는 교회를 찾고 주님을 외쳤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면 신앙이 시들해졌다. 그런데 내 필요에만 하나님을 찾던 믿음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2006년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교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에 찾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신앙이 재정립되고 전도의 사명도 갖게 됐다. 직장을 다니며 주일에만 교회를 다니다가 경찰선교회에서 봉사를 하게 됐는데 벽제수련원과 관련 기관들에 전도지를 들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 보니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고 전도의 기쁨을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전도가 잘 되지 않아 1년에 한 명을 전도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본격적으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마다 전도를 나가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러 고충이 있었지만 내 신앙은 더욱 굳건해졌다. 전도함으로써 헌신과 섬김의 자세를 갖추게 되니 가정은 더 화목해졌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졌다. 모두들 노방전도가 어렵다고 하지만 전도를 하기 전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면 주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담대해진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믿고 거리로 나간다. 그러면 길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하게 되는데 나는 그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세요. 그리하면 구원 받고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환경이 변화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와 함께 믿어보세요”라고 전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게 전도가 될까’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전하는 자가 없다면 듣는 자도 없다. 주어진 곳에서 열심히 전하면 하나님이 역사해주신다. 그 결과 올해 13명을 전도했다. 최근에는 내가 전도한 가정에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심방을 와주셔서 큰 격려가 됐다. 전도한 가정은 중국에서 이주한 다문화가정으로 남편 집사님은 실명하셨고 아내 집사님이 건물 청소를 해서 생계유지를 하고 있다. 나는 전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처럼 계속 섬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2015년부터 이 가정을 금천구에서부터 여의도까지 택시로 모시며 새벽예배를 함께 다녔다.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 나는 지금처럼 주님이 가정의 평안과 건강에 축복을 주시길 소망한다.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믿음의 성숙을 이루고 싶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2.12.16 / 김주영 기자

    정영애 권사(양천대교구) - 위기는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기회
  • 신앙 안에서 영혼 사랑하는 마음 깨달아
    나는 어려서 시골에 살 때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지만 성장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됐다. 그런데 국민일보를 2년 동안 구독하다 보니 기독교 신앙에 마음이 열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촉촉해지고 ‘누군가 나를 전도해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목동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찾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세요.” 이사를 한 뒤 기도가 이루어져 1992년 고모와 사촌언니의 전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면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또한 물질의 주인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올바르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996년 시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남편은 7형제 중 다섯째인데 시어머니는 남편과 형제들의 새어머니셨다. 형제 중 그 누구도 모시려 하지 않았다. 내가 모신다고 하니 가족 모두가 말렸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마땅히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남편을 설득해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집에서 간호를 해드렸더니 몇 달 만에 마비가 다 풀리고 건강이 회복되셨다. 어머님을 전도해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같이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속 한 때문에 자식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어머니와 부딪혔고 힘든 일이 생기면 어머니가 미워졌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했다. 울면서 기도를 하니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네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유하라”는 마음속 음성을 하나님이 주셨다. 그리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는 말씀처럼 내 안의 들보를 보게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상처를 보게 하셨다. 낳지는 않았어도 7명 아들에게 어머니 자리를 지켜주신 시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11년, 산본 엘림노인전문요양원에서 7년을 지내시면서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셨다. 건강하실 때는 기도처 열쇠 당번을 하실 정도로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어머니는 한을 다 풀어내셨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는 마음껏 자손들을 축복하며 천국으로 떠나셨다.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친정어머니도 계속 사랑으로 섬기고 순종하니 예수님을 믿게 됐고 지금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응원자요 중보기도자가 되어주셨다. 어머니들의 변화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고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예수님이 이루신 죄 사함의 큰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문제들이 다가오지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관점으로 보면 위기는 더 많이 사랑할 기회가 된다.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2.12.09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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