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정인환 장로(강서1대교구) - 삶의 위기, 즉시 하나님 만나야 할 때
  • 어려움 당해 교회 왔지만 나눔의 삶 알게 돼
    새신자 때부터 봉사하며 영혼의 소중함 깨달아 IMF 사태가 일어난 1997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다니던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실직을 당했다. 실직으로 고통스러운데 친구에게 빌려줬던 돈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억대의 돈을 잃고 보니 상실감과 배신감이 너무나 컸다. 함께 일하던 선배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가족은 해외여행을 보내고 나는 머리를 좀 식히면서 다음 일을 도모해 보라고 조언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괌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샀다. 그런데 여행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여행 날짜를 하루 뒤로 바꾸겠다고 해서 비행기 표를 바꿨다. 얼마 뒤 원래 가기로 한 날 그 시간에 이륙한 비행기가 괌에서 추락했다는 사고소식을 들었다. 참담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예정대로 여행을 갔다면 가족을 모두 잃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나는 신앙이 없었는데 결혼 전부터 교회를 다녔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연히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2000년 전기·소방공사 회사를 설립하고 열심히 살았다. 3명으로 시작한 사업이 성장하고 있던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닥쳤다. 금리가 오르고 일도 수주되지 않아 사업이 위태로워졌다. 인생 최대의 어려움을 당한 나는 2009년 아내와 아이들의 위로와 권유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신자 교육을 받고 교구에 속해서 지역예배를 드리고 아내와 함께 오산리 기도원에 올라가 하나님께 나의 답답한 상황을 기도로 아뢰면서 살려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예전에는 내가 잘나고 잘해서 사업도 가정도 잘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아내의 기도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그때 교구에서 만난 장로님이 남선교회 봉사를 권유하셔서 새신자이지만 성도님들을 보호하는 보호실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도 관심이 생기고 긍휼한 마음도 갖게 됐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니 자연스레 도와야 할 곳들도 보였다. 남선교회에서는 명절 때마다 장애인복지시설을 돕는데 그때마다 나는 쌀 200포대와 후원금을 보탰다. 2018년에는 딸이 교회 청년들과 함께 봉사하러 간 화성의 외국인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앰프와 쌀을 기증하기도 했다. 주중에는 열심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에 전념하는 가운데 위기에 놓여 있었던 사업은 이제 직원 40명에 연매출 50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2.09.30 / 복순희 기자

    한정철 안수집사(용산대교구) - “담낭 염증에 의한 패혈증에서 기적으로 살아났어요”
  • 죽음에서 나를 살려주신 능력의 하나님 찬양
    지난 3월 1일 아침에 일어나려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침식사를 권하는 아내(송점심 집사)의 말에 겨우 일어나 앉아보았지만 어지러워 도로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도 증상은 여전했는데 심지어 열까지 올라 38℃를 넘어섰다. 상황이 심각해 우선 119를 불렀다. 가까운 대형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검사를 받게 됐다. 병명은 담낭 염증으로 인한 패혈증이었다. 병원에서는 우선 시술을 통해 며칠간 복수를 빼내고 3~4일 후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당시는 코로나 재유행이 심각할 때라 가족 면회가 일절 허용되지 않아 아내와 자녀들은 의식 없는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묻고 또 물었다. 8일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입원한 지 후반부가 돼서야 의식을 찾게 됐다. 어떻게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고,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간호사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환자분, 죽다 살아나셨어요. 심장 박동이 멈춰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후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해 저희도 놀랐어요.” 나는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이 전혀 없었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있었다. 바로 꿈이었는데 너무나도 생생해 이게 꿈인지 실제인지 나도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어딘가를 나를 데리러 왔던 안내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러다 앞에 누군가와 마주하게 됐는데 그가 나를 보더니 ‘넌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안됐는데 누가 이 사람을 여기로 데리고 왔어?’라고 말했다. 나와 동행했던 안내자가 ‘내가 데리고 왔다’고 하자 앞에 있던 그 사람이 안내자의 머리를 확 받아쳤다. 그러자 안내자가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더니 사그라졌다. 그리고 나서 내 의식이 돌아왔다. 의식 없던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날들 동안 아내는 용산대교구와 교구장님께 내 소식을 알리고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그래서 밤으로 낮으로 교구 성도들이 나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다. 우리 부부를 아는 권사님은 “교회에서 20년 넘도록 충성 봉사했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수고를 기억하실 것”이라며 긍정의 위로를 전해주셨다. 사방에서 몰려온 중보기도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수술 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던 병원 측 말과 달리 나는 복수를 빼내는 간단한 시술로 모든 병이 완화됐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뒤에는 3월 말 퇴원도 했다. 협착증으로 인해 열 걸음 이상 걸으면 무릎 통증이 심해 힘들었는데 이때 이마저도 깨끗이 고침 받아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나는 남선교회 새생명실에서 20여 년 동안 열심을 다해 봉사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한 것이 내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터라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그 은혜 기억하며 더 감사하는 믿음 생활을 실천해 나아가겠다. 나를 위해 쉼 없이 중보해주신 용산대교구 목회자님들과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2.09.23 / 오정선 기자

    우동임 권사(용산대교구) - 공황장애 치유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 전도에 매진할 때 놀라운 복 임해
    내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며 믿음을 지켜왔다. 결혼 후에도 두 아들을 주님 안에서 양육하며 크고 작은 고난들을 잘 이겨냈는데, 2000년 1월 갑작스럽게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왔다. 큰 아들을 결혼시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됐다. 예기치 못한 남편의 죽음은 나를 절망에 빠지게 했고 이로 인해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 남편의 빈자리가 컸지만 그때마다 나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봤다. 매일 같이 새벽예배에 나가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임했고 그 힘으로 우울한 나날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공황장애를 앓은 지 3년 정도 됐을 무렵, 지인의 추천으로 용산 쪽방촌에 반찬 나눔 봉사를 나갔다. 큰 기대 없이 나간 봉사에서 나는 다시금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하나님께서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섬기며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나는 내가 죽으면 장례비용으로 1000만원 정도 사용될 텐데 이전의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1000만원을 후원하며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삶의 목표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공황장애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오래 전 우리 집에 세 들어 살았던 이웃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아직도 교회에 다니냐며 자기를 데리고 갈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공황장애로 내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확신에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인도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이웃들이 하나님 안에서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됐고 나는 더 많은 이웃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매진했다. 전도를 하면서부터 삶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간 앓고 있던 공황장애 증상이 점차 사라지면서 치유가 된 것이다. 또한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지금 거주하는 집이 계속해서 가격이 상승하면서 처음 집을 구입했을 때에 비해 수십 배 가까이 오르게 됐다. 하나님의 기적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둘째 아들이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며 미국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는데 3년 동안 심사가 보류 됐던 아들의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렐루야!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현재 아들은 중국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미국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고 파송하는 선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일생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힘쓰겠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2.09.16 / 금지환 기자

    표경순 권사(강서2대교구) - 뇌동맥류로 생명 위험, 주님 은혜로 건강 찾아
  • 기도하고 찬양하며 주님만 바라보니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기적 일어나 9년 전 주일날 교회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냥 몸이 조금 안 좋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교회에서 2부 예배를 드리고 일어나려는 순간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바로 응급실로 갔다. 찾아간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머리 오른쪽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이었다. 원래 뇌동맥류는 자각증상이 없어서 발현되기 전까지 쉽게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큰 종합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의사는 머릿속에 있는 꽈리의 크기가 커서 위험하니 수술하지 말고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MRI를 찍어 관리하자고 했다. 너무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다른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했다. 머릿속에 꽈리가 두 개나 있고 하나는 수술이 가능하지만 하나는 시신경에 자극을 주는 위험한 위치에 있어 자칫하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더구나 이 병원에서도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진단 이후 희망 없이 매일 스트레스 속에 살면서 식사도 못하게 돼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평소 다니던 내과 병원에 링거를 맞기 위해 갔는데 의사가 나를 보더니 얼굴이 너무 창백하고 아파 보인다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전후 사정을 듣던 의사는 본인이 서울대병원 내과 과장 출신이라며 신경과에 직접 예약해줬고 나는 서울대병원으로 가게 됐다. 그동안 불안과 절망에 쌓인 모든 부정적인 상황을 뒤로 하고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서울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판독 결과를 듣는 순간 너무 놀라웠다. 수술할 수 없다는 다른 병원들의 결과와는 다르게 머릿속 꽈리 두 개를 시술로 제거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할렐루야! 야훼 라파, 치료의 하나님께서 의사를 통해 역사하신 것이었다. 입원실이 없는데도 급한 환자라고 배려해주어 바로 다른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시술 전날 저녁부터 금식하며 밤새 여러 검사가 진행됐다. 그동안 나는 찬양대에서 봉사하는 딸과 찬양하며 통성기도를 드렸다. 딸은 주일 3부 찬양대에서 봉사하고 있고 나는 주일 6부 갈릴리 찬양대와 권사찬양대에서 오랫동안 봉사해왔기에 찬양을 부르면서 큰 은혜가 임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가득했다. 새벽 3시에 담당 의사가 찾아와 검사결과가 좋으니 오전 8시에 시술하자고 했다. 교회 성도들의 중보기도에 힘입어 8시간의 시술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머릿속 꽈리 두 개가 완전히 제거됐다. 뇌동맥류가 터지지 않게 미리 발견하게 하신 것과 시술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열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치료자 되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평생 주님께 순종하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것이다. 할렐루야!
  • 2022.09.08 / 이미나 기자

    김영희 권사(영등포대교구) - 목 디스크· 방아쇠 수지 증후군 치유
  • 성경 필사하니 기적과 기쁜 일 넘쳐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될 무렵 교회에서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성경 필사를 강조하시며 신앙 성숙을 이뤄가자고 하셨다. 나는 신앙생활을 한지 35년이 되었지만 성경을 완필해 본적이 없던 차에 말씀을 적으면서 깊이 묵상해야겠다는 결심이 서 필사를 시작했다. 하루에 3~4시간씩 꾸준히 성경을 적어 올해 4월, 20개월 19일 만에 완필했다. 성경 필사로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를 나누며 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딸의 육아를 돕다가 목을 삐끗한 뒤로 통증이 계속 있었는데 3년 반 전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어나다가 갑자기 온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픔을 호소하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남편은 서둘러 병원 갈 채비를 했다. 길 하나만 건너면 5분 내로 종합병원이 있는데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응급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왔는데 극심한 통증을 느껴 응급실에 두 번째로 실려 가게 됐다. 병원에서 목 디스크 진단을 받고 일주일 입원하며 시술을 받았지만 그 순간에만 통증이 완화될 뿐이었다. 막내사위의 소개로 다른 병원 정형외과 교수를 만나 또 일주일을 입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로도 통증클리닉을 다녔지만 통증 때문에 고개를 편히 못 돌리고 몸 전체를 돌려야 옆을 볼 수 있었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도 몸을 굴려서 일어나야 할 정도였다. 의사는 내게 고개를 숙이고 오랜 시간 글을 읽거나 쓰면 통증이 가중된다고 주의를 줬다. 그러나 나는 필사로 내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드릴 것을 약속드렸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육체의 고통 가운데도 필사를 하며 하나님께서 목을 치유해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다. 지난해 8월, 여느 날처럼 필사를 하다가 목을 드는데 갑자기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더니 통증이 사라지고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방아쇠 수지 증후군을 진단받아 손가락이 펴지지도 잘 굽혀지지도 않는 어려움을 겪었다. 가정을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일하며 열심히 산 세월의 흔적이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가족들이 나서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적의 하나님이 병을 고쳐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성경을 쓴지 20개월 19일 만에 완필을 하면서 손가락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할렐루야! 필사를 하면서 아침 금식을 할 때 결혼 3년차에도 아기가 생기지 않던 큰 딸이 임신을 해 45세 나이로 올해 5월 순산하는 기쁨도 있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평생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내게 코로나 기간에 시작한 필사는 신앙의 갈급함을 채우고 신앙을 성장시킨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기적의 하나님만을 믿고 살아가겠다. 정리=김주영 기자
  • 2022.09.02 / 김주영 기자

    이희순 집사(동작대교구) - 감사하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고난의 터널 통과
    ‘4차원의 영성’으로 전도하며 살아가고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흔들렸던 그때 우리 가정에도 큰 경제적 위기가 다가왔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생겼고 설상가상 은행에 다니던 나는 퇴직을 하게 됐다. 퇴직 후 건강이 나빠져 하혈을 하기도 했다. 그때를 뒤돌아보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 생명도 가정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2000년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됐다. 대전에서 대전순복음교회를 다녔던 나는 자연스럽게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출석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은행원이었던 경력을 살려 일반기업에 입사를 했고 좋은 사장님 덕분에 감사하게도 한 직장에서 22년째 근무하고 있다.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 나 혼자 벌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과 일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남편도 건강을 회복해 함께 힘을 합쳐 빚도 갚아나갈 수 있었다. 2020년에는 드디어 부천에 가족의 첫 집인 신축 아파트를 마련했다. 감사하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의 모양으로 시련이 찾아왔다. 나는 집을 장만하고 생활도 안정됐지만 영혼의 갈급함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 힘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갈 수 없는 시간들도 있었고 게다가 노량진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기도처가 없어 아쉬웠다. 그러던 올해 5월 같은 대교구에서 신앙 생활하는 최병임 지역장님이 교회에서 열리는 ‘4차원 영성 지도자과정’을 추천하셨다. 위로의 은사가 있으신 지역장님은 내가 어려울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던 분이기에 바로 8주간의 과정을 신청했다. 매주일 열리는 수업을 통해 조용기 목사님이 생전에 항상 말씀하셨던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 영성을 집중적으로 들으며 성령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해 말씀을 붙들고 기도에 힘썼다. 찾아보니 집 근처에 감사하게도 365일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있어 그곳에서 매일 저녁 2시간씩 기도를 했다. 20여 년 고난의 터널을 지나며 미처 내려놓지 못했던 무거운 죄짐을 주님 앞에 토해내며 첫사랑의 순수한 열정과 성령 충만함을 채워달라고 간구했다. 무엇보다 함께 고난의 시간을 이겨낸 남편과 자녀들의 마음과 신앙을 위해서 중보기도했다. 예전부터 나는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기를 원해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왔다. 앞으로도 이영훈 목사님의 말씀대로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하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2.08.26 / 복순희 기자

    문선희 성도(통일대교구) - “교회는 나에게 가족이 돼 주었습니다”
  • 2007년 탈북, 두 달 만에 대한민국 품 안겨
    2008년 2월 13일은 내가 ‘대한민국’ 땅에 첫 발을 딛고 새 생활을 시작하며 맞이한 첫 번째 주일이었다. 나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정착한 딸과 함께 교회에 가게 됐는데 당시 중풍으로 걸음도 잘 걷지 못하던 때라 ‘내가 이렇게 힘든데 꼭 교회에 가야 할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대한민국에 데려오기 위해 1년 동안 번 월급을 다 쏟아 붓고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썼던 딸인데, 교회에 데려가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닌지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힘겨웠던 첫 걸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북한에 살 때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은 30년 동안 군인으로 지냈고 나는 산골에서 군인가족으로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키웠다.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고난의 행군 속에서도 우리는 기적같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북을 떠나고 싶었다. 2007년 탈북을 시도할 때 나는 중풍에 걸린 지 3년째라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헤어진 후 7년 동안 생사조차 알지 못했던 막내딸이 한국에 살아 있다는 것과 그 딸이 나를 꼭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에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북 과정에서 10개나 되는 국경초소를 지나는 동안 무사히 통과하게 해달라고 그저 눈을 꼭 감고 빌기만 했다. 기도라는 것을 몰랐지만 할머니가 정말 힘들 때마다 ‘하나님’하고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고 두 달 만에 대한민국에 도착해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위해주는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교회는 가족이 되어주었고 사랑을 나눠주었으며 삶의 희망을 주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나는 교회에서 만난 의사의 정성스런 치료에 중풍도 사라졌다. 강남에 받은 새 주택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꿈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왜 선진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기독교를 믿는지’ 꼭 알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면서 신앙의 싹이 트기 시작했고 한 선교단체에서 ‘자유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학교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깊이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선교학교에서 자유시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인턴 교사 제의를 받고 활동하면서는 하나님이 나를 북한 복음화를 위해 세워주셨음을 믿게 됐다. 그동안 나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돌이켜 보면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이 떠오른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아멘! 이 말씀이 나를 향하고 또 2000만 북한 동포들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르고 뜨거워진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시고 하나님의 일꾼, 복음을 전하는 이로 세워주신 것처럼 북한을 지옥의 문턱에서 구원하시리라 굳게 확신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2.08.19 / 오정선 기자

    정성재 안수집사·유미혜 집사 (양천대교구) -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
  • 믿음으로 하나님 신뢰하면 놀라운 은혜 임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는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들고 집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에 취업과 함께 장막을 갖게 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도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좋으신 분이다. 나는 2018년부터 친구의 제안으로 현재 폴딩도어 전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입사하기 전 나는 5년 동안 인쇄소를 운영했는데 그동안 벌었던 모든 돈을 잃을 정도로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인쇄소 사업을 정리하게 됐고 47세라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정에 물질적인 어려움은 한계에 다다랐고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는 내가 조금이라도 낙심할까 옆에서 묵묵히 나를 지지하며 매일 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나의 취업과 가정의 안정을 위해 간구했다. 아내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수요3부 예배와 금요성령대망회에 나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동안 아내가 쌓은 기도가 하늘에 상달된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폴딩도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혹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이곳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구나’라는 감동이 마음에 찾아왔다. 하지만 영업직을 맡아야 해서 당장 차량이 절실히 필요했다. 당시 가지고 있던 차량은 17년 이상 된 노후 차량이어서 업무에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나는 염려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 순종하면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누구에게도 차량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손윗동서가 좋은 일이 생겼다며 우리 가족에게 새 차를 선물해 준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형님이 선물해주신 차량으로 전국 곳곳을 누비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회사는 초창기에 비해 20배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큰 성장을 이뤘고 나는 회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직급을 얻게 됐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이전부터 내 집 마련을 소망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자가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부모님이 소유하던 집을 증여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동생들도 흔쾌히 동의하며 증여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 그동안 꿈꿨던 집을 갖게 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믿음으로 감사할 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2.08.12 / 금지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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