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변화
김정은 성도(대학청년국) - “선교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겁니다”
  • 루푸스 병으로 고난 겪었지만 감사
    선교 비전 계속 이어갈 것 어린시절 조용기 목사님 해외성회 스크린 영상을 보면 가슴이 뭉클했다. 인종도 다른 머나먼 나라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기적을 체험하는 모습에 뜨거운 전율을 느꼈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다. 선교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는데 20살 때 리바이벌 코리아(국내 선교)로 여수, 제주도를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다음해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 월드미션(해외 선교)을 다녀왔다. 무더운 날씨와 불편한 환경으로 힘들었지만 모든 것을 잊을 만큼 선교가 즐거웠고 그 다음해인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연속 4차례 우즈베키스탄으로 단기선교를 갔다. 2001년 우즈베키스탄 선교를 세 번째 다녀왔을 때 몸이 붓고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너무 피곤했다. 여러 곳 병원을 다니던 중 위급한 상황이 왔고 대학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맸다. 내 병명은 루푸스였다. 너무 늦게 왔으니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몸이 조금 나아졌을 때 의사는 “이 병엔 완치가 없으니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23살에 그 얘기를 듣게 되니 청천벽력 같았다. 약을 먹으면 괜찮았지만 조금만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몸을 추스르고 2004년에 아프가니스탄 월드미션 팀을 꾸려서 가게 됐다. 가기 전부터 돌아올 때까지 매 순간 기도하면서 팀원들과 사역을 이어갔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전체 마무리 시간에 “2주 동안 기도하며 지켜봤는데 네가 수백 수천 명의 청년들을 선교사로 동원할 것을 믿어”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게 그 말씀이 레마로 다가왔고 선교 동원가라는 비전이 확실해졌다. 다음해부터 월드미션에서 봉사하다 2007년부터 간사로 활동하게 됐다. 2008년 겨울에 실크로드 팀을 인솔해 다녀왔는데 몸이 급격히 나빠져 병원에 3주간 입원하고 한 달 후에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다. 주님을 위해 선교를 다녀왔는데 병으로 고생하고 나니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잊지 않고 한세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0년부터 월드미션 총무 간사로 섬기며 올해까지 3748명의 청년들이 월드미션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마음이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내게 큰 위로를 주셨다. 2014년 말 다시 입원했을 때는 내게 가시 같은 이 병이 축복임을 받아들이고 감사하기로 다짐했다. 그 후로 증상은 눈에 띄게 호전됐고 매일 24알씩 먹어야 했던 스테로이드 약도 4년 전부터 반 알로 줄였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나는 많은 청년들이 열방을 사랑하고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길 기도한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훈련을 받고 기도하며 선교지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영적 인도하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그 은혜를 삶에 적용할 때 평생을 살아갈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우리 교회 청년들의 월드미션은 1990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9731명이 열방에 나가 복음을 전했다. 우리 청년들의 해외 단기 선교사역이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하나님이 이들의 선교 열정과 사역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는다. 정리=이미나 기자
  • 2024.07.12 / 이미나 기자

    손준·함윤미 성도(대학청년국) - 새벽기도를 통해 놀라운 은혜 체험
  • 돌아보니 언제나 주님께서 인도하셔
    우리 부부는 올해 신년축복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 기간에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다. 우리는 숙박업을 했는데 기도회에 가려고 집을 나설 때마다 예약됐다는 알림이 울리더니 결국에는 12월까지 모든 예약이 마감됐다. “야훼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신 28: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 부부에게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셨다. 원래부터 나에게 신앙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하나님을 모르고 무당을 하던 친한 언니를 돕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20년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를 따라 무당 언니가 일하는 곳에 함께 찾아가 허드렛일을 했다. 그 언니는 남편이 일을 잘한다며 좋아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오면 굿판에서 돼지머리가 서지 않는다며 미워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남편은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며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내가 교회에 부담을 갖지 않도록 온라인 예배, 기독교와 관련된 영상, 좋은 말씀을 보내주며 언제나 나를 응원했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올 때면 “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오래 있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다”며 남편은 나를 공감해 줬다. 지난해 더 홀리스피릿 페스티벌에 유명한 가수와 목사님들이 오신다고 해서 콘서트에 가는 마음으로 기대 없이 참석했는데 하나님께서 “윤미야, 너가 힘들었던 것들 내가 다 안다. 내가 널 반드시 쓰임 받게 할테니 기다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태껏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내 어려움을 알고 지켜보고 계셨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후로는 완전히 변화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주님에 대한 감사로 퇴근 후에는 성경을 읽고 40일 작정 기도회를 했다. 기도가 5분, 10분씩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또한 과거의 나처럼 주님을 모르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전하고자 국내 선교를 결단했다. 코로나 기간에 결혼한 우리는 주례사 대신 어머니의 기도를 받았다. 당시에는 교회에 갈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과 어머니의 기도, 더 홀리스피릿 페스티벌까지 주님은 내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남편은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분이기에 강요하지 않고 예배의 자리로 안내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내게 해준 말처럼 공동체에서 항상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함께 신앙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좋은 부부의 본을 보이고 싶다. 정리=박찬웅 기자
  • 2024.07.05 / 박찬웅 기자

    조명희 장로(구로대교구) - 갑작스런 대동맥 파열로 생사기로에 서
  • 하나님의 은혜 속에 봉사와 헌신
    동료 봉사자들 도움으로 긴급 이송 ‘헉’ 소리도 지르지 못할 만큼 극심한 복부통증이 갑자기 몰려왔다. 2020년 2월 여느 때처럼 주일 2부 예배 후 남선교회 본부 사무실에 들렀던 차였다. 낯빛이 하얗게 질려가는 나를 보며 옆에 있던 봉사자들이 재빨리 119에 신고를 하고 응급조치를 해 주러 몰려들었다. 곧장 앰뷸런스가 왔고 나는 여의도성모병원을 거쳐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대동맥류였다. 대동맥은 세겹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바깥쪽부터 두 겹이 찢어졌다. 혈압은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치솟고 어떤 진통제도 듣지 않을 만큼 멈추지 않는 고통 속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가 시작됐다.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이 2~3일 동안 온몸을 관통하자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4살 때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불안했던 어린 시절, 사람이 모자란다며 등 떠밀려 나간 미팅에서 만난 사랑하는 아내, 다른 조건 안 보시고 오로지 교회에 다니는 것만을 약속해 달라며 결혼을 허락해 주신 장인 장모님, 첫아이를 임신하고도 추운 겨울에 혼자 버스를 타고 교회 가던 아내, 아내와 뱃속 아이가 걱정돼 교회에 데려다주다 첫 예배를 드렸던 날, 꼭 나한테만 맞춰서 하는 것 같았던 목사님의 설교, 남선교회 봉사를 하던 날들, 잘 자라준 두 아들까지 모든 것이 다 떠올랐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했기에 건강이라면 자신 있었다. 병상에 누우니 내 선택이고 의지라고 생각했던 건강관리도 봉사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만 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봉사하던 시간들이 행복이었는데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다. 파열된 혈관이 잘 아물어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 나중에 의사로부터 마지막 한 겹까지 파열됐으면 10분 내로 즉사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집에 있다가 혹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졌으면 어땠을지 생각하니 봉사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다는 것이 감사했다. 병원에 이송될 때도 보호자로서 끝까지 내 곁을 지켜준 동료들에게도 고마웠다. 나의 회복을 위해 사랑하는 장모님과 가족들은 물론 구로대교구 목사님과 성도님들, 남선교회 봉사자들, 아내가 봉사하는 찬양대에서도 중보기도해 준 덕분에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시간이 없다’, ‘아이가 어리다’, ‘여유가 생기면 봉사하겠다’라면서 봉사를 안 했었다. 하지만 막상 봉사를 시작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표로 내 삶을 다 바꿔주셨다. 사업 환경을 바꿔주셔서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게 됐고, 자녀들도 공부 강요나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어도 잘 성장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께 봉사와 헌신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리길 소원한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4.06.28 / 복순희 기자

    서용술 원로장로(마포1대교구) - 줄지 않던 소변 양을 하나님이 고쳐주셨어요
  • 밤에 자다가 11번까지 일어나 생활 힘들어 이영훈 목사님 신유기도 선포에 치유 확신 2021년 가을 경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밤에 소변을 자주 보는 게 걱정이 돼 병원을 다녔는데 의사가 약을 바꿔 써 봐도 효과가 없으니 내시경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권했다. 내시경 검사 결과 암세포가 발견됐고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는 않아 바로 수술을 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 수술했으나 병원에 암센터가 없으니 더 큰 병원을 통해 확실히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얼마 후 이대목동병원에서 다시 확인한 결과 이상 없음으로 판명이 났다. 하지만 밤에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7~8번 일어나야 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통증이 있다거나 이상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병원마저 이상이 없다고 하니 그런 상태로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생활이 불편했고 무엇보다 나 때문에 아내까지 밤에 자주 깨 미안함이 컸다. 전립선에 문제가 있나 생각 돼 전문 병원을 다시 찾았고 지난해 8월 수술까지 받았지만 소변보는 횟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하나님, 이런 상황 때문에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가장 큰 문제가 예배를 드리는데 집중할 수 없으니 고쳐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2~3개월 전 수요 1부 예배를 드리는데 이영훈 목사님이 신유기도 후 “소변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지금 고침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아멘!”하고 대답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몸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5월 2일 수요 1부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잦은 소변 때문에 대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날은 꼭 대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님! 이영훈 목사님의 신유기도가 내 기도가 되게 해주옵소서. 믿습니다’하고 기도했는데 목사님의 신유기도 첫 마디가 “소변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고침받았습니다!”라는 선포였다. 그때 “할렐루야!”를 외치며 “감사합니다”라는 감사기도만 계속 고백했다. 5일 주일에도 성전에서 예배드린 나는 ‘전에도 고쳐주셨고 지난 수요일에도 고쳐주셨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깨끗이 고쳐주시는 의미에서 오늘 한 번만 더 치료해주십시오’라고 간구했다. 그러자 그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영훈 목사님이 같은 신유기도를 다시 한번 선포하셔서 깜짝 놀랐다. 옆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장로님들이 응답받았다며 기뻐해 주셨다. 그날 이후 정말 소변 양이 줄어들었고 생활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밤에 자다가 평균 8번, 많게는 11번 일어나 화장실을 갔는데 하나님이 깨끗이 치료해 주셔서 편히 잘 수 있게 됐으니 감사 또 감사뿐이었다. 이제는 주께 나아와 예배드림이 기쁨이 됐다. 다시 특별새벽기도회도 빠짐없이 드릴 수 있게 됐으니 정말 행복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치료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보혈로 나를 지켜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드린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족의 성령 충만, 아내의 건강을 기도하며 믿음 생활에 성실히 임하겠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4.06.21 / 오정선 기자

    이희순 권사(동작대교구) -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
  • 내게 넘치는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드린다. 나는 올해 4월 급한 기도제목이 있어 교구에 중보 기도를 요청했다. 지난해 6월 장대같이 쏟아졌던 비로 집이 침수 됐는데 그때부터 세를 주었던 집들이 몇 개월째 나가지 않았다. 은퇴한 남편의 새로운 사업을 위해 쓰일 자금이 당장 필요한 상황에서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동작대교구 모든 교구장 목사님이 찾아 오셔서 기도해주셨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교구 식구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5월 초 전성도가 참여했던 특별새벽기도회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마침 이번 기도회 주제도 ‘응답받는 기도’여서 더 기대가 컸다. 그리고 기도회 마지막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기도해도 불안했던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응답과 함께 마음이 평안해졌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나는 집에 와서도 마음이 평안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는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1개 호실이 계약 된 것이다. 그것도 국가 사업과 맞물리면서 기존 보증금에 1.5배가 넘는 금액으로 체결됐다고 했다. 가정의 생계를 이어갈 사업 자금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셨다. 하나님은 이 외에도 수많은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자녀를 위해 기도했을 때 넘치는 복을 주셨다. 내게는 2명의 딸이 있는데 모두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큰딸 한나는 현재 난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적응하도록 돕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국가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 중에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돕는 일에 사명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자녀들을 사용해 주신 것이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앞으로 두 딸이 모두 결혼해 믿음의 가정을 이뤄 세상 가장 귀한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길 소망한다. 내가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어머니는 이후 전도의 열정을 지피시며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무당이었던 작은아버지는 어머니의 전도에 회심했고 자녀들 모두 장로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막냇삼촌 가정도 목회자 가정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됐다. 이 모든 전도의 기반도 간절한 기도에 있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3)라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한다. 그러면 고난의 때에도 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다.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이 더 익숙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싶다. 또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삶에 희망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하길 소망한다. 정리=금지환 기자
  • 2024.06.14 / 금지환 기자

    이범의 원로장로·김현애 권사(종로중구대교구) - “우리의 생명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 죽음 목전에서 주님 은혜로 건강 회복
    기도와 말씀, 중보기도의 능력 깨달아 나는 평소 운동하기 위해 남산을 자주 다녔다. 2017년 6월 9일 남산을 걷다가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평소에 건강하고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마침 걷기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내 뒤에 있었기에 바로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심폐소생술 7분 만에 호흡이 돌아왔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구급차 안이었다. 정말 그 곳에 나 혼자 있었다면 아마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쓰러진 그 순간 바로 심폐소생술을 받을 수 있던 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쓰러지기 며칠 전 새벽에 꿈을 꿨었다. 화장터 화구를 바라보는 자리에 수십 명이 들어가는데 나도 무리에 섞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안에 빨간 글씨로 ‘구원’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깃발이 있었다. 그 꿈이 생각나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병원에서 검사해본 결과 관상동맥 3개가 막혀서 심장마비가 온 것이었다. 급히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다. 이 분야에 권위 있는 의사를 만나 신속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 교회 금요성령대망회 때 내 기도제목이 올라가 전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받을 수 있었다. 목사님과 지역식구들의 중보기도로 빠르게 회복했고 5일 만에 퇴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히 지내고 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고, 심장마비로 죽었던 몸도 살아났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나의 생명 되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겠다는 각오로 신앙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4년 전 늘 나를 위해 기도해준 아내 김현애 권사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아내도 아픈 곳 없이 건강했는데 감기 때문에 가게 된 동네 병원에서 유방암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유방암 3기였다. 다행히 암이 전이 되지 않고 유방과 임파선 쪽만 모여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라는 말씀을 붙잡고 하루에 2~3시간씩 기도하며 보혈 찬송을 불렀다.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에 큰 위로를 얻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내는 수술을 앞두고 8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는데 이영훈 담임목사님이 주일 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유방암 환자가 있는데 암과 싸워 이기세요”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에 큰 힘을 얻었다. 2020년 12월에 아내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됐다. 이후 12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아내는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부작용도 없었고 후유증도 남지 않았다. 나와 아내의 치유 과정 속에 중보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지역식구들의 도움과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믿음의 공동체의 소중함도 다시 깨달았다. 암 치료를 받는 교구 식구들에게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을 전하며 힘내라고 권면할 수 있어 이 또한 감사하다. 평생 우리 부부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다. 할렐루야! 정리=이미나 기자
  • 2024.06.07 / 이미나 기자

    이호성 성도(대학청년국) - 절대 긍정과 감사로 살아갈 때 은혜 체험
  • 순종, 헌신할 때 전도 열매 맺어
    해마다 개최되는 ‘더 홀리스피릿 페스티벌’(The Holy Spirit Festival)은 성령으로 충만한 성회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준비된 만큼 잊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매년 성회에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성회 본부에서 진행 총무로 헌신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큰 규모의 성회를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청년 세대의 부흥을 위해 섬기는 자리였기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가 청년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로 결단한 순간이 있다. 최전방 GOP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당시 80여 명의 부대원과 함께 생활했지만 많은 군인 중에서 크리스천은 나뿐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해 왔기에 어떤 상황도 긍정과 감사로 대할 수 있었다. 크리스천이 유일하게 나 혼자였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을 굳건히 지켜 나갔다. 24시간 빈틈없이 교대로 근무를 서며 맡겨진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겨움이 계속됐다. 동기의 업무까지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했다. 그러던 중 한 장교님이 “누구라도 힘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인내하는 너를 보면 나도 교회에 가보고 싶다”며 그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그저 기도하며 인내하는 것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의 모습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셨다. 군대에는 예수님을 모르는 청년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믿음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청년이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청년 사역의 중요성을 느꼈다. 나는 참된 크리스천의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것을 결단했다. 그래서 이번 성회의 준비를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쁨과 감사가 앞섰다. 그런데 워낙 큰 규모로 진행되는 성회인지라 정신이 없었다. 감사했던 것은 청년 열두광주리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나를 회복시켜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이다. 또한 매일 강사가 바뀌며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군인 시절 품었던 청년세대를 위해 기도했던 내 모습을 일깨워 주셨다. 성회 일정이 다가올수록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더욱더 힘을 주셨다. 나는 많은 청년이 성회의 자리에 참석해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성회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역시나 성회는 기도한 대로 수많은 청년이 참석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큰 은혜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성회는 끝났지만 나는 참석했던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께 나아가며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이어갈 것이다. 정리=박찬웅 기자
  • 2024.05.31 / 박찬웅 기자

    김국영 집사(장애인대교구) -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
  • 장애, 질병의 고난 속에 기도하면 응답받아
    어린 시절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나는 서울 큰아버지댁에서 살았다. 7살 때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보약을 먹었는데 신경마비로 청력을 잃었다. 농아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1년만 다녔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안 가겠다니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님이신 큰아버지께서 나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19살이 되어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에 강원도 영월 아버지 집으로 갔다. 하지만 새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내가 집을 나와 셋방을 얻어 혼자 생활했다. 친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의지할 곳이 없었다. 혼자 식당 주방일을 하다가 동생과 함께 식당을 열었는데 오빠가 매일 같이 돈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다. 맞서 싸우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술을 마시다 우울증과 간경화, 폐결핵에 걸렸다. 장애만으로도 힘든데 병까지 들었으니 살고 싶지 않아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늘 사람들에게 발견돼 실패했다. 1990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소주 다섯 병을 마시고 한강다리에서 차도로 뛰어들었다. 또 실패였다.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영등포의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으니 매주 ‘행복으로의초대’를 주고 가는 분들이 계셨다. 전도지에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도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간증도 있었다. 읽다 보니 눈물이 났다. 나도 새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일단 퇴원만 하면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6개월 만에 퇴원을 하고 목발을 짚고 바로 교회로 갔다. 새가족 등록을 하고 새가족교육을 받다가 성령 충만이 임했다. 사람들이 기도 하면서 ‘주여 주여’ 외치는데 내가 술만 마시면 혼자인게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외치던 소리가 ‘주여 주여’여서 깜짝 놀랐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성경 말씀에 의지해 술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술 냄새만 맡아도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했던 기미도 확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간경화와 폐결핵도 고침을 받았다. 겉으로 불룩했던 갑상선도 들어갔다. 한번은 식당 일을 하는데 손님이 하도 권해서 술을 한번 마셨다가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서 한달 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됐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외롭지 않고, 기도하면 삶의 문제도 다 해결됐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응답받으며 삶이 단단해졌다. 항상 평안함을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좋으신 하나님만 전하며 살아가고 싶다. 정리=복순희 기자
  • 2024.05.24 / 복순희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