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표 교수의 크리스천의 이기는 습관
잘 할 수 있는 일 찾기
  • 직장 초년기에는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이 지독하게 싫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많이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직장생활에서 크리스천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을 정하고 그것들을 고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능력을 주셨고 나를 격려해주셨다. 좀 잘 못해도 계속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그러면 그것이 내 것이 되어 자연스러워지듯 나도 계속 노력했던 것이다. 그 중 한 가지가 하나님께 하듯 일하기였다. 어떤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서 남다른 차별화로 집중하고 끈질기게 도전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존경하는 한 선배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어와서 3년 반이 지나갈 무렵, 대리 진급자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는 아주 높은 위치에 있던 선배가 갑자기 점심이나 같이 하자며 전화가 왔다. 나도 진급 대상자였기에 이런 저런 신경이 참 많이 쓰일 때였다. 그런데 선배로부터 밥을 같이 먹자는 제안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나는 얼른 약속 장소로 달려 나갔다. 일식당에서 매운탕을 시켜 놓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선배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자네가 잘하는 게 뭔가?” “네에? 뭐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고객과 시장을 파악하여 보고하고, 분석 등을 통해 미래 전략을 미리 세우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 좋네. 하지만 앞으로는 전공분야를 세워서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도록 하게. 공연히 대리 진급이나 빨리하려고 신경 쓰지 말고 말이야”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사실 나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절친한 선배이고 그룹 내에서도 유명한 분이라 식사를 하자고 하니 은근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대리 진급자 발표를 앞두고 고작 한다는 말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승진에 대해서는 너무 집착하지 말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밥맛도 싹 사라지고 선배의 얼굴도 보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내가 이번 진급에서 탈락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후에 아내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충격을 받을 줄 알았던 아내가 오히려 담담하게 반응했다. “야아, 그 선배 참 멋있다. 당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면, 이제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하셨겠어요? 진급도 잘 될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선배님 말씀처럼 잘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최고의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되세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아내의 대답이 싫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시간이 흘러, 나는 대리로 진급하고 회사일도 평안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잘 하는 일에 집중 하라는 선배의 말이 계속 뇌리에서 맴돌았다. 그렇다. 우리 주님도 각자 은사를 받은 대로 일하기를 바라시지 않았던가. 이 일 후로는 직장생활이 되었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가 되었다. 누구나 각각 최대의 강점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 주님은 한 사람의 인격도 헛되게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12.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사람의 마음을 얻는 비결
  • 온 나라가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혼란스럽다. 믿었던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절망이 국민을 분노케 한다. 이즈음에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을 비롯해 이웃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얻고 공감 할 수 있는 것인가. 먼저 솔직하고 진솔해야 한다. 솔직하고 진솔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고 항상 그 마음 깊은 곳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변명과 거짓말은 언젠가 진실 앞에서 처절하게 패배를 맛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깨닫는 순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솔직하고 진솔한 회개는 예수님의 은혜와 죄 사함을 받는 첩경이고 필수 요소이다. 마음을 얻는 것은 둘째로 섬기는 것이다. 섬길 때 사람들은 감동하고 마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그들의 발을 씻기까지 섬김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 주셨다. 섬긴다는 것은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중대한 목표설정이다. 둘째로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가 확실한 가치관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흔들리지 않을 때 영향력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힘이 센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처럼 섬김이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한다. 또 한가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내 마음이 확정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물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 때문에 흔들리게 되고 고통 받게 된다. 어떤 환경과 어떤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악한 영향력에서 멈춘다는 생각을 가져라.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으면 반드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42살의 건장한 사업가 한분이 나를 찾아왔다. 동대문에서 옷감 염색을 하여 자수성가해 안정된 삶을 살지만, 늘 시간에 쫒기다보니 교회에 나올 수가 없었다면서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잘 믿어야겠다고 했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로 염색한 옷감을 나르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어깨 골절이 되어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았더니 폐암 말기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다.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가 되어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면서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나 얼마 후에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환자 같지 않은 건강한 모습을 보았다. 단순한 믿음, 도로 낫게 해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가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고 차분히 치료에 임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신실한 믿음이 있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소중한 길은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확정되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고 늘 섬기는 리더십으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확정된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시 57:7)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11.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미래를 생각하는 성경적 네트워킹으로 승리하자
  •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직장을 떠나 새로 시작할 그 일을 최소 3년 후에도 지금처럼 똑같이 좋아할 자신이 있는가? 3년 후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안 할 자신이 있는가?” 나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미련 없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적어도 3년 뒤의 미래까지는 그려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3년 후의 고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뒤에도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순간의 열정으로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직장 생활이 전쟁이라면 밖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전쟁에서는 적절한 전략을 써서 전투에 이기면 살 수 있다지만, 지옥에서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 답을 듣기 전에 우리는 불가능을 꿈꾸었던 한 인간을 만나보기로 하자. 일본 최고의 부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혈기 하나만 믿고 창업을 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꿈 그리고 아무 근거도 없는 자신감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번듯한 사무실도 없이 허름한 창고에서 임시직원 두 명을 데리고 창업을 하면서 사과상자 위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5년 이내에 100억 엔, 10년 후에는 500억 엔, 언젠가는 1조 엔대의 기업이 될 것이다” 그나마 함께 일하던 두 명의 직원들은 아무 준비가 안되어 있던 회사에서 2개월도 채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고, 회사는 서서히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이어 일본 대학생과 신입사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 2위가 되었다. 창업 3년 만에 그의 회사는 800개의 계열사를 지닌 대기업이 됐다. 그의 30년 후의 목표는 상위 10대 기업이 되는 것과 5000개의 계열사를 지닌 그룹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300년 후의 목표는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이 행복해지는 기업’이다. “나는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는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경영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것이다” 열아홉 손정의의 인생 네트워킹 계획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세운 50년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48세 때는 정말 인생의 승부를 걸어 전 재산을 보다폰재팬 인수에 사용했다. 그는 “보다폰재팬을 인수할 때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그의 결정을 침몰하는 배에 올라탄 격이라고 비난했다. 덕분에 주가는 내리 사흘 동안 30퍼센트나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결국 손정의는 승리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 승부수로 인해 소프트뱅크의 이익은 급격히 늘어났고 보다폰재팬의 가입자 수는 급증했다. 노키아는 휴대폰 점유율 세계 1위의 회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휴대폰은 열심히 만들었지만 다가오는 새로운 시장은 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애플은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을 그려냈다.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새로운 시장이 있을 거라는 일치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삼성전자 역시 불확실함 속에서도 뭔가 희뿌연 가능성을 보았다. 두렵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노키아는 그런 변화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시장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업계 1위였기 때문에 관성에 젖어 있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가? 직장인들은 새해가 되면 달력에 들어있는 빨간 날부터 세고, 여름휴가 계획은 꼼꼼히 짜면서도 자신의 1년 후, 5년 후, 10년 후는 상상해보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의 삶이 5년 후, 10년 후에는 달라질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 더 멀리 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한번 상상해보길 바란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 하였느니라”(딤전 1:19)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10.23 / 이소흔 기자

    예수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행복
  • 중국 상하이에 가면 유명한 발 마사지 가게가 나란히 있다. 한 가게는 장사가 너무 잘되어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 가게는 손님이 없어서 개점휴업 상태이다. 두 가게를 자세히 관찰한 학자들은 두가지 점에서 큰 차이를 발견했다. 장사가 잘되고 못되고의 차이점은 종업원들의 태도 차이였는데 사명과 목표가 달랐다는 점이다. 장사가 잘 안되는 가게의 종업원들은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남의 냄새나는 발이나 맨날 만져야하나’라며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였지만 장사가 잘되는 가게의 종업원들은 ‘나는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드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 주는 귀한 일을 감당하고 있다’며 발 마사지 일을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또한 목표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는데 장사가 잘 안되는 가게 종업원들의 목표는 ‘빨리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지’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목표는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반면 장사가 잘되는 가게의 종업원들의 목표는 ‘중국에서 최고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며 최고의 회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흙수저니 금수저니하며 사명과 목표를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과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가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이 행복이고 기쁨이고 축복이고 은혜인 것이다. 얼마나 좋은 직장에 다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일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진(秦)나라의 재상이던 여불위(呂不韋)는 인재를 뽑을 때 여섯 가지 기준을 잣대로 삼았는데 이를 인재 발탁의 육험론(六驗論)이라고 한다. 그는 사람이 낙(樂), 희(喜), 고(苦), 공(恐), 비(悲), 노( 怒)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시험한 후 인재를 등용했다.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에 만든 이 기준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을 평가, 등용, 배치하는 데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여불위는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재능만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모, 재능, 지식, 경험, 기술, 재력 외에 인격적인 부분, 즉 ‘사람됨’을 반드시 제대로 보고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몸이 큰 사람을 거인이라 하고 마음이 큰 사람을 거물이라 한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사람은 몸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다. 유명한 동기부여 연설가 지그 지글러는 “인생의 고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의 재능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라고 말했다. 결국 삶의 자세가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뉴욕 근교에 문스 레이크(Moon’s Lake)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다혈질이며 고집스럽고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문스 레이크에는 나이 지긋한 손님이 많이 오는데 그들은 까다로운 주문을 할 때가 많아 주방장은 그런 손님들과 다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눈에도 까다로워 보이는 할아버지가 들어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주방장이 감자를 튀겨 내오자 노인은 “감자가 너무 커 먹을 수가 없소. 다시 튀겨 오시오”라고 말했다. 주방장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다시 작게 썰어 튀겨 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감자가 너무 두꺼워 못 먹겠소. 다시 얇게 썰어 튀겨 주시오” 주방장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고 감자를 더 얇게 썰어 튀겨서 내왔다. 하지만 까다로운 손님은 여전히 두껍다며 다시 요리해 가져오라고 했다. 주방장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얼마나 더 얇게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 바로 그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주인이 주방장을 끌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 않았나. 손님 한 분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당신이 무슨 주방장인가” 주인의 엄포에 주방장은 오기가 생겨 감자를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튀겨 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인은 감자튀김을 집어 한 입에 쏙 넣은 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손님들도 그 감자튀김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포테이토칩’이란 새로운 메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메뉴 덕분에 문스 레이크는 유명해졌고 포테이토칩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과자가 됐다. 까다로운 손님이 만족할 때까지 주방장이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포테이토칩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0∼11)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09.25 / 이미나 기자

    비교의 칼을 거둬라
  • 흔히 SKY라고 불리는 대학을 다니는 청년이 있다. 나름대로 외모도 준수하고 집안도 등록금 걱정은 하지 않는 상태니 남들이 보면 그가 가진 것을 부러워 할 법 한 젊은 인재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필자를 찾아와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강남의 유서 깊은 명문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는 늘 우등생이었다. 20대 후반이 된 지금 자신은 아직 직장도 갖추지 못한 채 자격증 시험에 수년째 도전중인데, 동창회에서 의사가 된 친구, 유수의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 등을 보면 열등감과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젊은 친구에게 마태복음 9장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예수님 당시 최고의 지식과 권위가 있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하시면서 당시 천대 받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찾아오심을 설명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우리 주님은 세상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비교의 칼날을 거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오직 믿음뿐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다. 좋은 스펙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에 비교의식으로 염려가 가득하다면 어떻게 진정한 자유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걸림돌은 세속적인 가치로 비교에 집착하는 것이다. 스펙, 외모, 출신의 랭킹시대가 지나가고 창의적 열정지수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다. 갤럽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는 마크 버킹엄은 ‘성공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식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왜곡된 자아로 자신을 비춰보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자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과 비교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학력이나 경력, 스펙, 집안과 외모라는 기준으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다보면 좋은 인성마저 피폐해진다. 내가 무엇을 잘 하고 좋아하는지부터 성찰이 이뤄져야하는데, 남보다 부족하고 열등한 게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게 된다. 젊었을 때부터 비교의 칼을 차고 인생을 살다보면 늘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렇다면 새로운 자아에 접근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이며 화가, 건축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조각할 대리석을 보면서 중요한 말을 남겼다.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고 천사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조각해 나갔다” 미켈란젤로는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에 천사가 나타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조각해 나갔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다. 투박한 돌덩이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그러나 중요한 건 스스로 자기 안에 천사가 있다고 믿고 열심히 조각을 해나가는 자세다. 다른 사람의 천사가 먼저 보인다고 불안해하거나 그 형상에 의기소침 할 필요가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품고 있는 천사는 그들의 얼굴 생김새처럼 제각각이다. 이를 알면 비교의 칼로 자신을 찌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인 로센셜과 제이콥슨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전교생 650명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무작위로 20%의 학생을 선발해 실험을 했다. 이들의 새 담임을 맡게 된 교사들에게 검사 결과 이들이 전교생 중에서 지능이 뛰어나며 학업 성취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실제로는 지능이 높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8개월이 지난 후 이 20%의 학생은 성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교사들은 이 아이들이 실수를 해도 가능성이 많은 학생이기에 또 다시 기회를 주고, 잘 모르는 것은 오히려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준 덕분이었다. 아이들을 성공시킨 것은 스펙과 지능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늘 격려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 약속을 붙들고 오직 진리 안에 담담히 서 있어야 한다.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08.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성공은 질량불변의 법칙 주님의 일이 축복의 지름길
  • 2016년이 시작되고 벌써 7개월이 흘러갔다.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정말 빠르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듯이 행동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화학 선생님이 ‘질량불변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물질에 어떤 화학반응을 가해도 그 물질의 질량이 변함없는 것처럼,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양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놀기만 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필연적으로 고생하게 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젊어서 누구보다 힘든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질량불변의 법칙처럼 노력한 만큼 성과로 보상받는다는 성공의 기준을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이라 할 것이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 자신이 수고한 만큼 거두게 되는 것이 주님이 주시는 엄청난 축복이다. ‘게으름뱅이 나무늘보 우화’라는 동화책에는 평생 ‘나중에’를 연발하며 낮에는 자고 밤에는 빈둥거리고, 그래서 다시 머리가 무거워져 낮에 또 자다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게으름뱅이 나무늘보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도 이 나무늘보를 흉볼 처지는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나중에’를 연발하다 결국엔 포기하고 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시간이 우리를 성장시켜준다’라는 믿음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왜 우리 주위에는 나이 들수록 더 비굴해지고, 더 고집스러워지고, 점점 더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시간에 대한 진정한 진리는 ‘시간은 모든 것을 낡게(혹은 늙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의 길로 안내하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자기관리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간을 적당히 흘려보내고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다. 나태하자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풀어질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 앞으로 1년 후에는 어떤 단계로 발전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올해 무엇을 할 것인지, 또 이번 달, 이번 주 그리고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검증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을 대충 보내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하긴 해야 하는데 귀찮으니까 다른 일이나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꿈꾸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게으름의 수렁에 발을 담그면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역시 시간문제다. 여러 가지 변명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이 ‘시간이 없어서’라는 변명이다. 시간은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면서도 또한 가장 잘못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옛날에 어느 왕이 현인들을 모아놓고 모든 백성들이 다 잘 살 수 있는 성공비결을 적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인들은 열심히 연구하고 토론도 하여 국민들이 다 잘 살 수 있는 비결을 12권의 책으로 엮어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백성들에게 모두 나눠주기 힘드니 한 문장으로 간단히 줄여올 것을 명령했다. 현인들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추리고 추려 가장 핵심적인 글귀 한 마디만을 적어서 왕에게 바쳤다. 그때서야 왕은 이거면 누구나 다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며 무척 기뻐했다. 그 말은 바로 ‘공짜는 없다’ 이 한 마디였다. 왕은 즉시 이 비결을 온 백성에게 알리고 실천하게 한 결과 얼마 후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은 모두 다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짜는 없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세계 제일의 명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땀 흘린 만큼 반드시 하늘은 성공이라는 단어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잠언 6장 6절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했듯이 주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축복의 지름길인 주의 일에 기쁜 마음으로 지금 바로 헌신하여 큰 은혜의 복을 마음껏 누려야겠다.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07.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꿈을 이루는 72시간의 법칙
  • 우리의 성공 이끌어 주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 생각이 변하여 행동이 변하게 되고 일관된 행동에 의해 습관이라는 제2의 천성을 가지게 된다. 어떤 습관을 갖느냐에 따라서 삶의 승패가 갈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있다. 습관은 바꾸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습관은 바꾸기 쉬운 것으로 규정하고 당장 실행해야 한다. 작심 3일을 잘 견디면 습관을 고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 때문에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늘 그것들에 붙잡혀 산다. 스펜스 존스의 역작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선물’에는 한 소년과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소년에게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선물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소년은 그 선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당장 할 일이 많아서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이 선물에 대해 잊어버린다. 성인이 된 그는 직장에서 승진에 탈락하고 매사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 삶에 대해 불평을 갖는다. 불평이 쌓이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선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선물을 이제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하는 기대를 안고 노인을 찾는다. 그가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늦게나마 발견한 선물의 정체는 ‘현재’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이었다. 오늘이라는 시간, 현재라는 시간이 바로 행복을 여는 열쇠임을 깨닫는다. 순간순간 집중하여 하루하루 의미있게 보내는 일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에 감사하며 당장 시작하라. 지금 소망을 갖지 못하면 영원히 소망을 갖지 못한다. 생각이나 계획을 떠올리고 72시간 내에 실행하지 않는다면 실행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웠다 해도 직접 실행에 옮기지 않고 3일을 흘려보내면 그냥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디슨이 발명왕이 된 것은 실패를 견뎌 냈기 때문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달걀의 부화가 궁금했던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접 달걀을 품어 본 것이다. 행동했기 때문에 좋든 나쁘든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목표를 제시하고 좋은 의견을 내지만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행에는 필연적으로 ‘포기’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행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수중에 5000원밖에 없는데 그 돈으로 커피를 마시겠다고 결정하면 밥 먹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게임 개발자가 야근도 주말 근무도 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성과를 내야 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해야만’ 성과가 나온다.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현재를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 좋은 미래를 바라는 것은 도둑 심보에 지나지 않는다.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지금부터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하루의 일과를 다시 짜고,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맡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내야 한다. 지금 당장, 72시간이 흐르기 전에 작은 아이디어라도 실천에 옮겨 보자. 해야 할 일을 조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다시 행동 단위로 나눠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당신의 꿈을 꿈인 채 홀로 외롭게 두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목표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려고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른 업무에도 똑같은 집중력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것을 다 잘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하는 점은 우리의 성공을 이끌어 주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임을 명심해야 한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싸움이다. 누구의 선택이 상대적으로 옳았고, 거기서 누가 더 집중했는가가 승패를 가르는 싸움인 것이다. 꿈과 비전을 결정했고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순위에서 처지는 일은 과감히 포기하자.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 신앙의 성공은 야훼 하나님을 우선하기 위해서 포기할 것을 실행해 나가는 용기라 할 것이다.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신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다져진다
  • 하나님 신뢰하고 고난을 단련의 기회로 삼아야 더러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과정 없이 곧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길은 없다. 사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밍밍하게 살아온 사람보다 중간 과정이 복잡했거나 어려웠던 사람이 이후 어떤 경험을 해도 잘 대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인생의 ‘맷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리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은 큰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경험한 사람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을 때 침착하게 대처한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체험으로 아는 까닭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삶의 고난을 강인하게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도망치거나 심지어 삶 자체를 놓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어떤 일을 겪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 때문이다. “두 번 긍정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첫번째 긍정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하려는 태도다. 두번째 긍정은 일을 진행할 때 발생하는 온갖 어려움과 힘겨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다. 예를 들어 당신이 원하는 꿈을 찾았다면 당신은 첫 번째 긍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위대함 뒤에는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일을 잘하기까지는 힘겨움과 실수, 다양한 실패라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진정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 번째 긍정이 필요하다. 원하는 꿈으로 향하는 길에 겪는 많은 어려움을 잘 받아들이겠다는 긍정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한다. 특히 우리가 시련을 당하던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어떤 일을 우리가 지배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향력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더 불안해지고 더 걱정하게 된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기보다는 시련을 만나게 되면 그 상황을 자신이 지배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어찌 할 수 없는 극한에 이르게 되면 혹독한 시련 속에서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주님께서 제련시키시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간혹 슬픔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마음의 강한 단련을 받는다. 욥의 시련을 통하여 갑절의 축복을 더하신 주님의 진정성을 이해한다면 그분 안에서 안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련하시는 분이 용광로 옆에 앉아 불길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시련은 우리의 불순물들을 제거하여 더 가치 있고 거룩하게 살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그런데 정작 그 가운데 있다 보면 우리의 시선은 일시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거나 나를 죽일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데도 응답이 없고 나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바로 이런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도 기억해야 할 것은 그동안 나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에 대한 주님과의 만남을 회상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일 때와 계속 자라고 성장해서 어른의 신앙을 가질 때, 우리를 훈련하시고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야훼 하나님의 철저한 배려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계속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편하고 손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신앙생활만을 추구한다면 정말 경험해야 할 깊이 있는 신앙을 놓치고 만다. 당장은 연단도 없고 시련도 없고 고난도 없는 것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런 신앙은 어린아이가 젖을 먹는 신앙의 수준에 머물게 한다. 하지만 연단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들을 버리고 신앙의 보다 높은 수준, 하나님을 깊이 아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옥표 교수(위닝경영연구소)
  • 2016.05.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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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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