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신학을 말한다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의 실천
  • 지금까지 영산신학의 중심 테마인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중지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모든 영산 신학의 중심 테마들의 뿌리가 되는 것은 역시 십자가 신앙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영산 신학의 시작과 끝은 십자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영산 신학의 기초 부문에서도 살펴 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사랑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중복음은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그리고 재림의 복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성경과 복음의 핵심을 다섯 가지로 묘사한 것이다. 이 땅에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다 살다가 결국 천국에 가게 된다는 복음의 핵심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오중복음인 것이다. 삼중축복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 범사에 잘 되는 축복 그리고 강건함의 축복을 가리킨다. 삼중축복에서의 핵심은 현실 세계에서의 물질만능주의나 기복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영혼의 축복이 삼중축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삼중축복의 저변에는 영혼의 축복이 없이는 다른 축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상이 깔려있다. 즉, 세상적 축복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가 하는 것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4차원의 영성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실천편이라 볼 수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를 삶 속에서 누리고 그 복음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4차원의 영성이 필요하다. 4차원의 영성은 인간이 속한 현실 세계인 3차원이 사차원의 세계인 영적 세계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 세계인 3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4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 꿈, 믿음 그리고 말이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꿈, 우리의 믿음 그리고 우리의 말이 4차원의 세계를 통해서 3차원의 현실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과 말이 영적인 세계인 사차원의 세계에서 역사를 일으키게 되면 현실 세계인 3차원의 세계에 그에 대한 열매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중지위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적 지위는 모두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에 주시는 지위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나오는 것이데, 이러한 영적인 지위를 받게 되는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복음 선포는 또한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지상 명령이기도 하다(마 28:18∼20). 앞에서 영산 조용기 목사님의 신학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영산 조용기님의 신학과 목회는 ‘십자가를 지는 제자도의 실천’이라 볼 수 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세계 최대 교회를 어떻게 이루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하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을 뿐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제자로서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하고 쉬운 것 같아도 전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아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눅 14:27).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만,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수 있다. 영산이 설교 가운데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영산신학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2)”<끝>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10.09.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 예수님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므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가치는 예수님의 보혈과 같이 매우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사시고 난 다음에 성령으로 인을 쳐 주셨다(엡 1:1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며 지키신다고 약속하신다(시 94:14).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재산목록 1위에 등재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해야 한다. 피카소의 그림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 개개인은 피카소의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바로 알고 소중히 여길 때에, 사탄도 우리의 영적인 권위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가치 있는 사람들이요,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해주시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걱정거리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직접 채워주기 원하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천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천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 분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신의 자녀로 여기시며 우리의 찬양에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왕 같은 제사장의 자격을 주시고, 거룩한 나라로 만들어 주시고,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우리의 지위는 실로 어느 지위와도 비길 데 없이 큰 것이다. 지위에는 언제나 가치가 따른다. 사장이라는 지위를 가지면 사원이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게 된다. 대통령과 평민은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대접도 다르게 받는 것이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으로서의 지위, 왕 같은 제사장의 지위, 거룩한 나라의 지위, 그의 소유된 백성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위가 없는 사람이 결코 아닌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고 불경기가 되더라도 지위는 지위인 것이다. 지위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위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접해 주시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환난을 당하더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한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어려움과 환난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활용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움과 환난이라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큰 꿈을 가지시기를 부탁드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선포한 말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하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10.08.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리스도인의 사중 지위 3: 거룩한 나라
  •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리스도인 한 개인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위치한 곳에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이 가진 권위와 신분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마귀가 점령한 이 세상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철저히 배척해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계실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요한복음 1장 11절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같이 하나님을 배척하는 이 땅에 하늘나라를 상륙시킨 첫 출발점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심으로 하늘나라가 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마다 하늘나라가 그 속에 임하게 된 것이다. 세상 나라가 꽉 들어찬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하늘나라가 된 것이다. 세상 나라는 마귀가 세상 사람과 세상 조직을 통해서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임한 하늘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을 통해서, 또 우리의 감사와 기도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믿을 때에 귀신도 쫓겨나가고, 흑암도 물러가고, 병도 낫고, 기적도 일어나고, 축복도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더 나아가 이 나라 전체에 하늘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곳에 하늘나라가 임하도록 기도에 힘써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작은 하늘나라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큰 하늘나라이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우리 한국은 전 국민의 4분의 1인 1200만 명이 예수 믿는 백성이니 1200만 명의 가슴 속에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이다. 바로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권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도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나라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단 1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간과 공간 속에는 전부 세상만 꽉 들어차 하나님께서 계실 조그만 틈도 없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시간과 공간을 늘 만들고 있다. 식사할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일할 때도 기도하고, 잘 때도 기도하고, 언제 어디서나 늘 하나님께서 계실 곳을 마련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곳에 임하셔서 다스리시는 것이다. 개개의 그리스도인 속에 하나님의 주권 행사가 이루어지므로 우리는 항상 “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나라이다”라고 선포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신분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성도님들의 삶 속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열매들이 충만하기를 기도드린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10.06.1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리스도인의 사중 지위 (1) - 택하신 족속
  •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 이뤄진 선택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리스도의 사중 지위 중의 첫째 지위인 택하신 족속은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을 연결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선택되었다. 이와 동일하게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어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구약과 신약의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야훼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신명기 10장 15절),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4∼7)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 인간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누군가의 간섭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로마서 9장 10절로 13절에 보면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야곱과 에서의 행동에 의해서 그들의 상벌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왜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질문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시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역 중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분야가 너무나 많다.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탐구하는 신학도 그래서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모든 신앙과 신학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하신 족속으로 선택받은 것은 하나님의 매우 큰 은혜인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서 9장 15절로 18절에 보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의미가 그의 선택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사람들을 미리 다 아시기 때문에 “긍휼히 여길 자는 내가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는 내가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편벽되게 행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다행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고 불쌍히 여기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예수를 아무리 전도해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안 열어 주시면 예수님을 믿게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 되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재산, 학벌, 배경 등을 보고 좌절하며 자신의 신분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내가 너를 택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택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너를 불렀다. 영원한 천국과 영광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택했으니 너는 나의 택함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은 성도님들은 택하신 족속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늘 감사하며 기쁜 삶을 사시길 기도드린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10.05.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사차원의 영성(3) - 믿음
  • 기적을 이루는 열쇠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환경 보다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도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분히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매일 점검하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소유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믿음이란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믿음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믿어야 한다고 에 말씀하신다. 믿음이란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만드는 영적인 눈이며, 믿음이 없이는 결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성령의 권능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좌석수가 2만 5000개인 세계 최대의 성전을 건축한 인도네시아의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였던 자신의 둘째 아들의 치유를 위해서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성령께서 그의 믿음의 기도를 보시고 그 아들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다. 만일 여러분이 알렉스 목사처럼 기적을 체험하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4차원의 영성인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을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 특권을 활용해야 한다.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 기적의 씨를 심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복을 주셨다. 갈라디아서 6장 7∼9절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면, 기도로 구한 것이 이미 응답받았음을 고백해야 한다. 병의 치료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이미 치료받았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선포해야 하며, 직장이나 배우자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면, 이미 직장이나 배우자를 하나님께로부터 기도응답으로 받았음을 바라보고 선포해야 한다. 그리할 때에 믿음의 기도가 응답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를 통한 기도응답의 축복은 3차원의 세계에 4차원의 축복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선포했을 지라도 사탄의 유혹을 통해서 의심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할 때에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그 의심과 사탄의 유혹을 몰아내야 한다. 평안한 마음이 올 때까지, 다시 응답의 확신이 올 때까지 뜨겁게 부르짖고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전쟁을 믿음으로 이겼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기도 응답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절대절망을 절대희망으로 바꾸는 믿음의 매개체이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 분은 시편 145편 19절에서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다(요 10: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로서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님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성령과 동행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믿음을 잘 활용하여 늘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사시길 기도드린다. <국제신학연구원 제공>
  • 2010.01.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강건하게 되는 축복(Ⅰ)
  • 강건하게 되는 축복이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정해주신 수명대로 살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사는 축복을 말한다. 강건하게 되는 축복에 대해서 3가지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것들은 병 고침을 받는 길, 건강을 유지하는 길, 가시의 문제이다. 이번 호에는 병 고침을 받는 길과 건강을 유지하는 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병 고침을 받는 길. 하나님의 축복은 저절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야 임하는 것이다. 환자가 질병에서 나음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면 결코 병에서 치료함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환자가 질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그 병으로부터 속히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을 보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빌 2:13). 또한 병 고침을 받으려면 자신의 지나간 영적 상태를 정검하며 죄를 지을 것이 있다면 회개해야 한다. 이러한 회개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신을 정검할 수 있다. 회개의 기도를 통해서 죄로부터 용서 받으면, 인간은 죄책감과 죄책으로부터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남을 용서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중요한 조건이며 그로 인하여 우리의 죄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게 된다(마 6:14∼15).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성경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라고 말한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강건함 속에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둘째, 건강을 유지하는 길. 건강을 유지하려면 우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병마가 다시 들어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사단이 들어올 틈을 내어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엡 4:27). 또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한다. 극도로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요즈음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생의 원리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땅에 살며 결국 천국에서 성삼위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된다는 인생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슬프고 부정적인 마음을 마귀가 마음속에 불어 넣을 때에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물리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사단의 유혹을 철저히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문제를 기도 가운데 주님께 맡겨야 한다(마 11:28).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빈부노천을 막론하고 어렵고 힘든 문제를 만나게 된다. 그러할 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스트레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수도 있고, 그 문제를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탁처럼 그 분께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태도이고 행동이다. 그리고 때로 그러한 문제들이 너무 많을 때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휴식을 취하며 성령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하게 되면 어렵고 힘든 문제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은혜와 권능을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공급받게 된다. 휴식과 휴가란 쓸모없이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성령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영혼육의 재충전을 공급하는 시간이다. 또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 충만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성령님께서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곳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들과 교제하기 원하시며 늘 우리 곁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외롭고 힘든 세상에 그분의 자녀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성령님을 보내셔서 늘 가까이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할 때에 기꺼이 돕고자 기다리고 계신다(요 14:16∼18).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의 문제를 맡겨드릴 때에 우리는 어떠한 문제와 스트레스라도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령 충만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 성령 충만한 삶 속에 질병과 사단은 결코 틈탈 수 없고, 영육 간에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은 병고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가운데 늘 강건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 2009.08.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범사에 잘되는 축복은 하나님의 뜻
  • 마음의 생각,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불퇴전의 믿음 갖고 기도로 나아가자 사람의 마음은 인생을 성공케 하는 무한한 보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끝없는 파괴를 일으키는 무서운 폭탄이 되고 만다. 그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기록하고 있다. 인생의 승리와 축복은 환경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 삶을 실패케 하는 요소들, 즉 미움, 분노, 탐욕, 완전주의, 죄책감, 두려움, 좌절감과 같은 것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죄악시하고 꺼려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생각 속에 잠재해 있는 가난 의식, 저주 의식, 절망 의식들을 쫓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하는 것에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가난과 저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요와 축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부터 철저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이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축복의 법칙들을 생활 속에 실천해야 한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행위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우리 생애 속에 쏟아 놓을 수 있는 믿음의 열쇠가 된다(말 3:10-12).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 법칙이요, 우주적인 법칙이다(갈 6:7,8). 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물질과 봉사와 헌신 등으로 하나님께 많이 심어야 하겠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일이 축복을 앞세우고 돌아오는 것이다(눅 6:38).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먼저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이 산울림이 되어 30배, 60배, 100배로 되돌아 올 것이다. 한편,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은 뚜렷한 목표 가운데 이루어진다. 목표 추구의 생활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더욱 박력 있고 활기차게 하는 활력소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조목조목 상세하게 세우고, 언제까지 어떻게 이룩하겠다는 시한을 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기도를 기뻐하신다. 목표를 세웠으면 불붙는 소원과 집념으로 뛰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시지 않는다. 불타는 소원은 불퇴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믿음을 얻어 기적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가 설정되고 그 목표에 대한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이것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구체화 된다. 또한 그 결과로 우리가 확고한 성공 이미지를 갖게 되면 성공적인 것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지만 때로는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믿고 있다. 우리의 과거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할 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것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오히려 유익이 되어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의 길로 변화된 것을 우리는 거듭 거듭 체험하는 것이다.
  • 2009.07.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예수님께서 다시오시는 그날
  • 재림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영접하고,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정확한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신다(참조, 마 24:36; 행 1:7).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징조들이 나온다. 첫째, 이스라엘의 독립(마 24, 32∼33) 둘째, 늦은 비 성령(참조, 행 2:17∼18) 셋째,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과 처처의 기근과 지진(마 24:4∼8).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두 번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첫 번째 재림은 ‘공중 재림’이다. 이는 7년 환난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갑자기 공중에 나타나셔서 성령의 기름을 준비한 성도들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는 재림을 말한다(참조, 살전 4:16-18; 눅 17:34∼35). 이때 성도들의 몸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참조, 고후 3:18). 두 번째 재림은 ‘지상 재림’이다. 이 재림은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셨을 때 들림 받은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다가 7년 환난이 끝난 후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참조, 계 19:17∼19), 이 전쟁에서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으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다. 또한 이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산 채로 잡혀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참조, 계 19:20), 용(사탄)은 무저갱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참조, 계 20:1∼3). 그 후 지상에는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이다(계 19:11∼20:4). 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어 성도들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는 시간이 지나면,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시 놓여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다. 또한 세상에 속한 모든 일들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계 20:11, 벧후 3:10). 그런 후에 최후의 심판인 백보좌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심판대에는 생명책과 우리의 모든 행실이 기록된 책이 놓여 있어서 아무도 핑계대지 못하며,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불의 형벌을 받게 된다(계 20:14).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소망은 영원한 천국이다.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되어 있다(참조, 계 21:1). 그곳에 있는 새 예루살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였다(참조, 계 21:1∼2). 또한 그곳에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다(참조, 계 21:4). 일부 사람들이 천국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천국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천국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천국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하고 축복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천국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첫째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참조, 마 24:42). 기름 준비를 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깨어서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참조, 마 25:1∼13).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둘째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려 돌아가셨으며, 예수님의 최대 관심사는 영혼 구원 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복은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진다. 믿음의 진가(眞價)를 가려내는 것은 ‘기다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천국과 재림을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재림과 천국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읽는 순복음의 성도님들은 이 땅에서 영혼육의 온전한 축복 가운데 살며, 천국에서 예수님과 영원히 사는 축복을 모두 누리시기를 기도드린다.
  • 2009.04.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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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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