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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하프를 켜는 다윗 왕>
2024.10.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홀로 하프를 연주하는 노인이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그의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세고 얼굴과 손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품격 있는 손끝으로 섬세하게 하프를 켜는 노인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평화로움을 자아낸다. 어둠 속에서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며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이 노인은 바로 노년에 이른 다윗이다.

 구약성경에서 다윗의 이름은 848번 등장한다. 이는 구약성경의 모든 인물 중 가장 높은 빈도이다. 그만큼 다윗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한다. 

 성경에 묘사된 다윗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미술사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대부분 예술가는 다윗을 젊고 용맹한 모습으로 표현하여 그의 강인함과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려고 했다. 다윗을 모티브로 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역시 탄탄한 근육과 강인한 얼굴을 지닌 젊은 다윗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바로크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달랐다. 루벤스가 그린 다윗은 힘이 넘치는 청년이나 위엄 있는 권력자가 아닌 그저 홀로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늙은 악사의 모습이다.

 루벤스가 노년의 다윗을 화폭에 담은 이유는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루벤스의 고향 안트베르펜이 있다. 루벤스는 이곳에서 미술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23세에 안트베르펜을 떠나 이탈리아에 머물며 고대미술과 르네상스 거장들의 화법을 배웠다. 이로 인해 루벤스의 작품에는 사물의 표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알프스 북부의 화풍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탈리아 고전주의의 특성이 모두 나타난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구성과 생생한 색채로 이루어진 루벤스의 그림들은 당대의 이목을 끌었으며 바로크 미술이 확립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끼쳤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루벤스의 삶은 말년까지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지병인 통풍이 심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루벤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화상을 보면 통풍으로 뒤틀린 오른손을 장갑 안에 숨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루벤스는 63세의 나이에 통풍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하였고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얀 보에크호르스트(Jan Boeckhorst, 1604~1668)가 그림의 왼쪽과 하단을 마무리하면서 오늘날의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이 탄생했다.

 말년의 루벤스는 나날이 쇠약해지는 육체와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허무함을 깨닫고 혈기 왕성한 청년 다윗보다 노년의 다윗에게 더 깊은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프를 켜는 다윗 왕>은 그의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던 기존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보다 사색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앙심이 깊었던 루벤스는 40년 권력의 무게를 내려놓고 홀로 하프를 켜며 찬양하는 다윗을 그리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찬란했던 인생은 한때 피고 지는 꽃과 같으며 결국 주님만이 참된 구원자이시며 피난처 되신다고 스스로 되새겼을지도 모른다. 

 다윗은 이를 그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믿음으로 순종했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많은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영원히 지속할 왕위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도 순식간에 죄악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는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로 인해 큰 슬픔과 좌절을 경험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 혈육 간의 살상, 부하들의 배신 등 많은 아픔으로 얼룩진 말년에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더욱 통렬히 깨달았을 것이다. 

 시편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함은 완전함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데에 있었다. 
 위엄 있는 왕관과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버린 채 하나님을 바라보며 정성스레 찬양을 올려드리는 다윗의 모습이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또한 삶의 끝자락에서 어떤 신앙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잡으려고 분주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오늘 이 그림 속 다윗을 깊이 묵상해보자.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고 다윗이 고백한 하나님을 우리도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 역시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그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길 바란다. 또한, 사라질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일평생 하나님 앞에 나의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찬양을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국제신학연구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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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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