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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빛이라
2026.02.15 / 에베소서 5장 8∼11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에베소서 5장 8∼11절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자신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요, 프랑스의 철학자며, 수학자며, 과학자였던, 데카르트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존재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가 이 삶을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뜻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복이 한평생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나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1. 주 안에서 빛이라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 보니까 우리를 주님 안에서 빛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전에는 어둠이었다고 말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래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스스로 힘으로 죄의 굴레를 풀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도 바울은 절망적인 우리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로마서 7장 24절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모두 예수 믿기 전에는 죄와 허물이 많은 부끄러운 존재였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지배되고,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면서 늘 마음이 불안하고, 염려, 근심, 걱정이 끊임없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갈등 가운데 살아온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죄 없고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의 결박에서 놓여나 자유함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신분이 바뀝니다. 어두움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변화된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된 것은 10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평생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입을 열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삶에 감사가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한 1년이 지났으면 이제 믿음이 다 성장해서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를 ‘어둠을 밝힐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15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우리가 가는 곳마다 빛을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의 빛을 비추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의 빛을 비추고, 상처와 고통이 있는 곳에 치료와 회복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2. 열매 맺는 삶


우리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빛의 자녀로서 이제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열매 맺을 것에 대해서 에베소서 5장 9절은 말씀합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빛의 자녀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우리는 착함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악하게 살면 안 됩니다. “참 저 사람 악한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안 됩니다. “독한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 들어서도 안 됩니다. “참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합니다.

착함이라고 하는 건 성령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열매하고 관련이 있는데, 양선, 자비, 이 열매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들의 삶에 착한 행실이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명절, 구정 연휴를 맞이해서 우리 주변을 돌아봐야 합니다. 명절을 맞아 온갖 음식 갖다 쌓아놓고, 먹고 마셔서 살찌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이 지금 250만 다문화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 다문화 가족들은 이 기간에 어디서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외롭게 지내야 합니다.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을 생각해야 하고, 또 유학생들은 누구 불러줄 사람도 없고, 그냥 기숙사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펼쳐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기간 중에 우리 주변에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그리고 장애를 갖고 어려움 가운데 사는 분들, 이런 분들을 찾아가서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착한 행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주님의 사랑이 온 천하에 충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연휴 기간에 서울역 쪽방촌에 사는 우리 성도님 집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그 분은 지금도 1.2평, 약 한 평, 혼자 누우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좁은 방에 살고 계십니다. 거기는 에어컨도 없고, 이 난방 시설도 안 되어 있습니다. 그냥 전기담요 하나 둘러업고, 그 추운 겨울을 지냅니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운지, 선풍기가 더 불어도 더운 바람이 부는 그곳에 외롭게 지냅니다. 그들을 위해서 서울시에서 숙소를 만들어 옮겨드리고 있는데, 아직 순번이 안 되어서 못 들어가고 아직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당하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받은 은혜는 나눌수록 커집니다. 외롭고 쓸쓸할 때 그분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해야 할 착한 행실입니다. 

우리는 나가서 주님 앞에서 의로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의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17편 15절입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먼저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우리가 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더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과 2절은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형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과 6절은 말씀합니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우리는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주의 사랑을 전해야 하고, 의로움의 모습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언 12장 22절은 말씀합니다. 
“거짓 입술은 야훼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밖에선 한없이 좋은 사람인데, 집에 들어가면 폭군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멀쩡하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완전히 사람이 돌아버려 가지고 들고 때려 부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는 없지만, 저쪽에 가면 몇 사람이 있어요.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잘라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선 경건하고 의로운 체하면서, 혼자가 되는 순간 온갖 더러운 죄악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컴퓨터, 이 스마트폰 앞에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많은데, SNS의 익명성 속에 숨어서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그래서 피해를 주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고 진실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노예가 된 어둠의 자식들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야 합니다. 이런 것은 참으로 말하기도 부끄러운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죄로 타락한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5장 11절과 1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여러분, 여러분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착한 행실, 의로움,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서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0절은 말씀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우리가 착한 일을 행하고 의롭게 살고 진실된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서 우리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성경은 설명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빛에 속한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육신에는 죄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이 죄의 습관을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 말씀 묵상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우리 삶 가운데에 있는 모든 이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를 유혹하는 죄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인 시간과 재능과 건강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아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모든 여러분의 노력을 쏟아붓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과 16절 이와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는 내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어떠한 고난도, 문제도,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가 복음의 증인 되어 주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첫째도 성령충만이고, 둘째도 성령충만이고 마지막도 성령충만입니다. 외국의 많은 목사님이 와서 묻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렇게 크게 부흥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그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중심에 성령충만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조용기 목사님께서 성령충만을 외치고,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 다른 교단에서 우리를 비난했습니다. “하나님이 귀머거리냐?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하냐? 좀 조용히 예배드리면 안 되냐?”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 가보나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할 것 없이 다 순복음 스타일로 변해 버렸습니다. 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다 드럼치고, 다 주님 앞에 기뻐 감사함으로 예배합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통성기도 하는 교회가 순복음교회, 저 시끄러운 교회라고 그렇게 했었는데 지금 다 시끄러워졌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지금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전 세계 크리스천의 3분의 1이 오순절, 순복음 교인들입니다. 그것은 가톨릭을 포함해서 총 20억 중에 7억 2천만이 우리 오순절 운동, 순복음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을 때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맡긴 사명을 감당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여러분이 어디 있든지,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교사는 교사로서, 학생은 학생으로서, 의사는 의사로서,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서, 그 있는 자리에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십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과 20절은 말씀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령충만한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94세까지 현역으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며 헌신하시다가 천국 가신 한원주 원장님. 한 원장님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4월 21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대 때는 항일투쟁으로, 그리고 해방 후에는 의료봉사에 힘씀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의 중요성과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연히 아버님의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란 그녀도 의사가 되었습니다.

1959년,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서 내과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개인병원을 열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살던 중에 그만 남편이 1978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그저 남편의 죽음으로 그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드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이렇게 원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 하소연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입으로는 모태 신앙이라고 떠벌렸지만, 정신없이 가족들을 돌보며 ‘의료’라는 은혜와 은사를 소멸시키며 살아가는 데만 급급했던 게 나의 현실이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복된 삶을 살아왔다고 자처했는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 시련을 통해서 ‘왜 하나님이 나를 의사로 부르셨는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교회 나가고 예배드리며 기도하면서 ‘주님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입니까?’ 주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잘 되던 개인병원도 접고, 이제 의료봉사에 힘쓰면서 1979년에 한 ‘의료선교의원’에서 일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무료로 돌봐주고,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전인치유소’를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또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하고, 1년에 한 번씩 시간을 내서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라오스에 해외 진료를 나가서 사랑으로 저들을 돌봤습니다. 

2008년, 그는 83세의 나이로 은퇴했는데, “내가 아직 건강한데 그냥 놀고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남양주에 있는 ‘매그너스요양병원’에서 2020년, 94세까지 환자들을 돌보다가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의 삶은 KBS 인간극장, CTS 기독교 방송 등 많은 언론매체에 소개되었고, 그녀가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라는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그 책에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얘기했습니다. 

“사별의 고통으로 허우적거릴 때 하나님은 다가오셨다. 나는 그 사랑의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슬픔에 빠진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셨고, 나의 앞길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다. 많은 사람이 94세에 아직도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여기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계속 일하면 뇌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모양이다. 지금까지 맑은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린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94세가 되어도 이렇게 귀한 사명 잘 감당하다가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다시 한번 사명감을 가지고 94세가 아니라, 100세를 넘어서 건강하게 주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401장(통 336장) 주의 곁에 있을 때>

1절  주의 곁에 있을 때 맘이 든든하오니
     주여 내가 살 동안 인도하여 주소서

후렴  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

2절  피난처인 예수여 세상 물결 험할 때
     크신 은혜 베푸사 나를 숨겨 주소서

3절  세상 풍파 지난 후 영화로운 나라와
     눈물 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짧은 인생길을 지나가는 동안 우리를 부르신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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