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절망이 변하여 절대 희망으로
2025.09.28
/ 요한복음 11장 23~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3~26절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마음이 아프고 슬픈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면 그 슬픔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개하고 고양이를 가족처럼 기르는데 인간보다 수명이 짧으니까 먼저 세상을 떠나거든요. 그러면 주인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어떤 분은 몇 년씩 마음에 슬픔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별의 슬픔은 큽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다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삶이 힘드니까 스스로 자기 목숨을 포기합니다. 작년 통계를 보니까 2012년 이후 무려 14,872명이 자살했습니다. 하루에 40명씩 그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35분마다 한 사람씩 자기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도 “살인하지 말라”. 자기 목숨을 끊는 것도 살인입니다. 절대로 이 귀한 생명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죽을 용기에 다시 한번 믿음으로 도전해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나는 이제 다 정리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로부터 자기를 사랑하는 온 가족의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픔으로, 나 혼자 정리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 가족에게 가까운 지인들에게 그대로 다 전달되어서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났든지 어려움을 당했든지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 내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은 다가옵니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절대 절망에 처한 가정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이 사랑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지형상으로 동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베다니를 거쳐 감람산 산마루를 넘어야 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 있는 베다니에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가족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가정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면 이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에 머물면서 같이 온 제자들과 함께 쉬었다 가셨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열심히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 언니 마르다는 손이 커서 예수님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몰려와 그 집에 머물러도 팔 걷어붙이고 모든 음식을 차려서 정성껏 접대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0절을 보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말씀했습니다.
일단 예수님이 오시면 제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같이 오기 때문에 그 음식을 준비하느라 너무 마음이 분주하고 바빴던 것입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매우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언제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주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 가까운 것을 알고 값비싼 향유를 깨어서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절은 설명합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르다, 마리아가 부모님처럼 믿고 의지하던 오라버니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예수님께 사람 보냈습니다. “예수님, 사랑하는 나사로가 지금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빨리 와서 우리 오라버니 고쳐주세요.”
요한복음 11장 3절입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곳에 며칠 더 머물러 계시다가 베다니로 오셨는데 이미 와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됐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마르다, 마리아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와 같은 절망의 순간이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가 동경에서 교회를 섬길 때 일곱 달 만에 아이를 사산해서 그 아버지가 일본 분인데 충격 속에서 “우리 이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어디로 갑니까?” 울부짖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보니까 주먹만 한 핏덩어리인데요. 그것을 함에 넣어서 예배를 드리고 화장해서 기도원에 두었다가 그로 인해서 순복음동경교회에 납골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쌍둥이를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일곱 달 만에 조산해서 750g으로 태어났는데 아이가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은 둘 다 죽었습니다. 부모님의 충격과 슬픔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절망의 순간이,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라버니가 병으로 죽어가게 될 때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오라버니가 위독하다고 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고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은 이와 같이 담대히 선언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구약 창세기를 보면 꿈꾸는 소년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다가온 것은 꿈의 성취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이었습니다.
그의 꿈을 듣고 형들이 미워해서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노예로 팔렸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주인의 눈에 들고 가정 총무로 또 인정받고 가정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게 되었는데, 또 마나님이 모함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갑니다. 무언가 조금 안정되려고 하면 더 큰 어려움이 오고, 더 큰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그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노예로 팔려 갔어도, 감옥에 가서 죄수로 있어도 형통케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고난은 그의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한 축복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13년의 긴긴 고난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 하루아침에 그는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어서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승격됐습니다.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꿈을 해몽한 대로 7년 풍년이 다가오고, 이어서 7년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7년 풍년이 다가올 때 곡식을 충분히 저장했던 애굽은, 7년의 극한 흉년이 다가왔을 때 흉년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흉년에 대비가 안 되어 있는 인근 각처에 식량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와야 했습니다. 흉년이든 두 번째 해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 옵니다. 그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판 지 22년 만에 본인은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절하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22년 전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당할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고 이겨 내길 바랍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판 그 형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어 넣거나 형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품어서 온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해 살게 했습니다.
옛날 60~70년대 참 어려울 때 미국에 먼저 가 있는 가족들이 한국에 어려움 당하는 가족들을 미국에 이민 초청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형들이 겁이 났습니다. “야, 이제 아버지가 죽었으니 이제 동생이 우리에게 복수하겠구나. 우리를 노예로 팔고 그렇게 울면서 노예로 팔지 말라고 했을 때, 우리가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미워서 노예로 팔았는데 이제는 우리를 붙잡아 형벌을 줄 것 같으니, 빨리 동생에게 가서 우리 잘못을 빌자.” 두려움을 갖고 찾아왔을 때 요셉이 한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 20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오지만은 때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가 나를 모함하고 나를 괴롭히고 고통 가운데 버려놓지마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온 우주 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게 하시고 의인은 세워 주셔서 주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오셔서 절대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절대 절망에 처한 마르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절대 희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가 먼저 나와 있다가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말합니다. “네, 마지막 때에 부활의 날에 우리 오라버니가 그때 살아나겠죠.” “아니다. 내가 부활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날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겠고, 날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절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제서야 말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7절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려움을 당하든지 “주님,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이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절대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3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희망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서 온몸에 베를 칭칭 동인 채로 비틀비틀 걸어 나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기적입니다.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절망에 처한 자들아 나오라. 일어나라. 내가 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부활의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주는 음성은 우리에게 염려, 근심, 걱정을 가져다주지마는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고, 축복을 주고,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정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열어서 늘 믿음으로 ‘아멘’하며 말씀을 붙잡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나사로가 걸어 나올 때 베로 칭칭 감긴 모습을 보시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베를 풀어서 나사로가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
요한복음 11장 44절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영적으로 죽어도 우리가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변화되어서 오늘 여기까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는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사로가 살아났는데 베를 칭칭 감고 있으니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뒤뚱뒤뚱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자유롭게 하라.”
여러분을 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예수를 믿을 때도 우리를 감아서 우리를 자꾸 절망하게 합니다. 낙심하게 합니다. 소심한 사람은 자꾸 소심한 생각에 과거의 상처에 매여서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서 자기 자신이 칭칭 베를 감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우울증에 자신을 칭칭 감아 감고 더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약을 먹어도 더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죽기만을 원합니다. 이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자유롭게 하라.” 염려, 근심, 걱정에 칭칭 감고 있는 베를 다 풀기 바랍니다.
절대로 묶어놓고 살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칭칭 감아서 생각이 부정적이고 말이 부정적이고 행동이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간 풀어놓아 자유한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문제와 고통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질병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여러분, 이 시간 다 풀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밤낮 옛날의 문제에 붙잡혀 그걸 되뇌고 또 되뇌고 또 되뇌는 사람들 그건 스스로 자기가 자신을 감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또 감아 매고 또 감아 매고, 주일날 와서 은혜받을 때 조금 풀어놓으면 또 나가면서 또 감고 또 감고 생각이 자기를 감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원망, 불평의 생각, 어두운 생각 이런 것들이 자꾸 나를 감는 것입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성령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모든 베가 다 끊어져 버릴 것입니다. 다 불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아서 날마다 가슴을 펴고 승리의 삶,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걸 다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면 우리는 모든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기쁨 속에 감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생이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 입에서 감사가 멈추는 순간 우리는 또 우리 자신을 묶어 매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원망 불평에 섭섭함에 미움과 분노에 여러분 풀려나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빠>로 널리 알려진 오은주 집사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원합니다. 오은주 집사님은 평범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남편 이관희 집사는 어린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교회와 가정을 오가며 신앙 안에서 자라난 모범적인 청년으로 진정한 교회 오빠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이관희 집사를 칭찬하고 많은 여학생들이 이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 오빠를 혼자 짝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29살 결혼하게 되어 믿음의 가정을 이룹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얼마 가지 않아 큰 시련을 맞게 된 것은 결혼 3년 차이던 2015년 9월, 남편 이관희 집사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오은주 집사가 딸을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막 퇴소했을 때입니다. 의사가 생존율이 매우 낮은 대장암 말기라고 했습니다.
이관희 집사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받았습니다. 교회 오빠라는 별명처럼 투병 생활을 모범적으로 감당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소원했습니다. 4기 암 환자답지 않게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죽음을 직면해야 할 때도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투병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또 하나의 큰 시련이 다가왔는데,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들이 이런 죽을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것에 상심해서 괴로워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현실 앞에 오은주 집사는 하나님 앞에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남편 이관희 집사는 오히려 무너지는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끝까지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제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다.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갈 즈음 오은주 집사 몸에 이상한 변화가 왔습니다. 산후통이 심해서 진통제를 10알씩 먹었는데도 진통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12번째 항암치료를 받으며 입원해 있던 그때 의사가 정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온몸에 암이 퍼져 있는 것입니다. 골수까지 암이 전이된 혈액암 말기 4기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부가 동시에 암 환자가 됐습니다.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울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서로가 나 때문에, 내 남편이 나 때문에, 내 아내가 나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았나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말씀을 함께 나누고 큐티를 하면서 서로가 얼마나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것을 늘 말씀하셔서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는 큰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도 설교 말씀 들으면서 마음의 위로함을 받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영적인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3년 동안 정말 하루하루 말기 암과 싸우면서 여러 차례 대수술과 수십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단 한 번도 믿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더욱더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연약한 부인 오은주 집사를 위로하면서 성경을 가르쳐주고 늘 온화한 미소로서 부인에게 용기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얘기가 밖으로 알려져서 이우경 PD라는 분이 기독교인인데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게 되었습니다. KBS 스페셜 <앎: 교회오빠>라는 그 스페셜 프로그램이 2017년 TV로 방송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교회오빠>라고 영화가 만들어져서 방영되었고, 그다음 국민일보를 통하여서 『교회 오빠 이관희』라는 책으로 출간하게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이야기가 꿈과 희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통증에도 하루라도 더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싶다며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던 이관희 집사는 이와 같은 말을 남기고 주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을 증거로 삼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증거로 삼으신다.”
이 말씀을 남기고 39번째 생일인 2018년 9월 16일, 사랑하는 주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반면에 오은주 집사는 혈액암 4기에서 2021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고 있는데,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 소연이를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하면서 언젠가 천국에서 남편과 함께 만날 그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전진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오은주 집사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저는 남편의 병을 고쳐 보려고 ‘암’이라는 글자가 적힌 모든 책을 다 사서 밤새 공부하고 좋다는 음식도 해서 먹였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저에게 지금 이런 거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께 수없이 원망을 쏟아내며 지쳐 있었습니다. 제 한계가 드러나고 힘이 빠져갈 때 남편은 오히려 이제 우리 함께 말씀을 보자고 하며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제 삶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픔과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를 말씀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어려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는 암을 고쳐주시든지 고쳐주시지 않든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와 예배에 온 마음을 다하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떠한 고난에도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413장은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여객선 사고에서 다 잃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지은 찬양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조차도 뛰어넘어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찬송가 413장(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1~3절>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죄 주홍빛 같 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 보다 더 정하리라
후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
사랑의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때때로 예기치 않은 큰 고난이 다가오고 절망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 믿음이 약해서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쉽게 상처받고 섭섭해하고 남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 다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서 이 이관희 집사처럼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부인을 격려하고 믿음으로 바로 세웠던 그 믿음, 우리가 본받게 하시고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다가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주님 우리의 삶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마음이 아프고 슬픈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면 그 슬픔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개하고 고양이를 가족처럼 기르는데 인간보다 수명이 짧으니까 먼저 세상을 떠나거든요. 그러면 주인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어떤 분은 몇 년씩 마음에 슬픔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별의 슬픔은 큽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다가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삶이 힘드니까 스스로 자기 목숨을 포기합니다. 작년 통계를 보니까 2012년 이후 무려 14,872명이 자살했습니다. 하루에 40명씩 그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35분마다 한 사람씩 자기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도 “살인하지 말라”. 자기 목숨을 끊는 것도 살인입니다. 절대로 이 귀한 생명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죽을 용기에 다시 한번 믿음으로 도전해서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 혼자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나는 이제 다 정리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로부터 자기를 사랑하는 온 가족의 마음속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픔으로, 나 혼자 정리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 가족에게 가까운 지인들에게 그대로 다 전달되어서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를 만났든지 어려움을 당했든지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 내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은 다가옵니다.
1. 절대 절망에 처한 가정
오늘 성경을 보니까 절대 절망에 처한 가정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예수님이 사랑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 예루살렘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지형상으로 동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사람은 베다니를 거쳐 감람산 산마루를 넘어야 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 있는 베다니에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는 가족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가정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면 이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에 머물면서 같이 온 제자들과 함께 쉬었다 가셨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열심히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 언니 마르다는 손이 커서 예수님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몰려와 그 집에 머물러도 팔 걷어붙이고 모든 음식을 차려서 정성껏 접대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40절을 보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말씀했습니다.
일단 예수님이 오시면 제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같이 오기 때문에 그 음식을 준비하느라 너무 마음이 분주하고 바빴던 것입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매우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언제나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주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 가까운 것을 알고 값비싼 향유를 깨어서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절은 설명합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르다, 마리아가 부모님처럼 믿고 의지하던 오라버니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예수님께 사람 보냈습니다. “예수님, 사랑하는 나사로가 지금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빨리 와서 우리 오라버니 고쳐주세요.”
요한복음 11장 3절입니다.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곳에 며칠 더 머물러 계시다가 베다니로 오셨는데 이미 와 보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됐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오라버니의 죽음 앞에 마르다, 마리아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이와 같은 절망의 순간이 예고 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제가 동경에서 교회를 섬길 때 일곱 달 만에 아이를 사산해서 그 아버지가 일본 분인데 충격 속에서 “우리 이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어디로 갑니까?” 울부짖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보니까 주먹만 한 핏덩어리인데요. 그것을 함에 넣어서 예배를 드리고 화장해서 기도원에 두었다가 그로 인해서 순복음동경교회에 납골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쌍둥이를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일곱 달 만에 조산해서 750g으로 태어났는데 아이가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은 둘 다 죽었습니다. 부모님의 충격과 슬픔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절망의 순간이,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비 되어 있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절대 절망이 주는 교훈
오라버니가 병으로 죽어가게 될 때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오라버니가 위독하다고 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고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고난 뒤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은 이와 같이 담대히 선언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구약 창세기를 보면 꿈꾸는 소년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꾸고 다가온 것은 꿈의 성취가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이었습니다.
그의 꿈을 듣고 형들이 미워해서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노예로 팔렸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주인의 눈에 들고 가정 총무로 또 인정받고 가정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게 되었는데, 또 마나님이 모함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갑니다. 무언가 조금 안정되려고 하면 더 큰 어려움이 오고, 더 큰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그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노예로 팔려 갔어도, 감옥에 가서 죄수로 있어도 형통케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고난은 그의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한 축복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13년의 긴긴 고난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 하루아침에 그는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어서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승격됐습니다. 당시 최대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꿈을 해몽한 대로 7년 풍년이 다가오고, 이어서 7년 흉년이 다가왔습니다. 7년 풍년이 다가올 때 곡식을 충분히 저장했던 애굽은, 7년의 극한 흉년이 다가왔을 때 흉년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흉년에 대비가 안 되어 있는 인근 각처에 식량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와야 했습니다. 흉년이든 두 번째 해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러 옵니다. 그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판 지 22년 만에 본인은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절하며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22년 전 꾸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도구입니다. 고난당할 때 낙심하고 절망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 견디고 이겨 내길 바랍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요셉은 자기를 노예로 판 그 형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어 넣거나 형벌을 주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품어서 온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해 살게 했습니다.
옛날 60~70년대 참 어려울 때 미국에 먼저 가 있는 가족들이 한국에 어려움 당하는 가족들을 미국에 이민 초청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형들이 겁이 났습니다. “야, 이제 아버지가 죽었으니 이제 동생이 우리에게 복수하겠구나. 우리를 노예로 팔고 그렇게 울면서 노예로 팔지 말라고 했을 때, 우리가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미워서 노예로 팔았는데 이제는 우리를 붙잡아 형벌을 줄 것 같으니, 빨리 동생에게 가서 우리 잘못을 빌자.” 두려움을 갖고 찾아왔을 때 요셉이 한 말이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 20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오지만은 때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가 나를 모함하고 나를 괴롭히고 고통 가운데 버려놓지마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온 우주 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게 하시고 의인은 세워 주셔서 주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절대 희망을 선포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그곳에 오셔서 절대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절대 절망에 처한 마르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절대 희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가 먼저 나와 있다가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때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말합니다. “네, 마지막 때에 부활의 날에 우리 오라버니가 그때 살아나겠죠.” “아니다. 내가 부활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날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겠고, 날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절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제서야 말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7절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어려움을 당하든지 “주님,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이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절대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서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43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희망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죽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서 온몸에 베를 칭칭 동인 채로 비틀비틀 걸어 나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기적입니다.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절망에 처한 자들아 나오라. 일어나라. 내가 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부활의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주는 음성은 우리에게 염려, 근심, 걱정을 가져다주지마는 주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고, 생명을 주고, 축복을 주고, 은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정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열어서 늘 믿음으로 ‘아멘’하며 말씀을 붙잡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나사로가 걸어 나올 때 베로 칭칭 감긴 모습을 보시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베를 풀어서 나사로가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
요한복음 11장 44절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영적으로 죽어도 우리가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변화되어서 오늘 여기까지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는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사로가 살아났는데 베를 칭칭 감고 있으니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뒤뚱뒤뚱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자유롭게 하라.”
여러분을 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예수를 믿을 때도 우리를 감아서 우리를 자꾸 절망하게 합니다. 낙심하게 합니다. 소심한 사람은 자꾸 소심한 생각에 과거의 상처에 매여서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서 자기 자신이 칭칭 베를 감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우울증에 자신을 칭칭 감아 감고 더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약을 먹어도 더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죽기만을 원합니다. 이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풀어놓아 자유롭게 하라.” 염려, 근심, 걱정에 칭칭 감고 있는 베를 다 풀기 바랍니다.
절대로 묶어놓고 살면 안 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칭칭 감아서 생각이 부정적이고 말이 부정적이고 행동이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시간 풀어놓아 자유한 그러한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과거의 상처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문제와 고통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질병에서 자유함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여러분, 이 시간 다 풀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밤낮 옛날의 문제에 붙잡혀 그걸 되뇌고 또 되뇌고 또 되뇌는 사람들 그건 스스로 자기가 자신을 감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또 감아 매고 또 감아 매고, 주일날 와서 은혜받을 때 조금 풀어놓으면 또 나가면서 또 감고 또 감고 생각이 자기를 감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원망, 불평의 생각, 어두운 생각 이런 것들이 자꾸 나를 감는 것입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성령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 받으면 모든 베가 다 끊어져 버릴 것입니다. 다 불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아서 날마다 가슴을 펴고 승리의 삶,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걸 다 주님께 맡겨야 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면 우리는 모든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기쁨 속에 감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생이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내 입에서 감사가 멈추는 순간 우리는 또 우리 자신을 묶어 매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원망 불평에 섭섭함에 미움과 분노에 여러분 풀려나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빠>로 널리 알려진 오은주 집사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원합니다. 오은주 집사님은 평범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남편 이관희 집사는 어린 시절부터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교회와 가정을 오가며 신앙 안에서 자라난 모범적인 청년으로 진정한 교회 오빠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이관희 집사를 칭찬하고 많은 여학생들이 이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이 오빠를 혼자 짝사랑하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29살 결혼하게 되어 믿음의 가정을 이룹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얼마 가지 않아 큰 시련을 맞게 된 것은 결혼 3년 차이던 2015년 9월, 남편 이관희 집사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오은주 집사가 딸을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막 퇴소했을 때입니다. 의사가 생존율이 매우 낮은 대장암 말기라고 했습니다.
이관희 집사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받았습니다. 교회 오빠라는 별명처럼 투병 생활을 모범적으로 감당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기를 소원했습니다. 4기 암 환자답지 않게 밝고 긍정적이었으며 죽음을 직면해야 할 때도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투병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던 어느 날, 또 하나의 큰 시련이 다가왔는데,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들이 이런 죽을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것에 상심해서 괴로워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현실 앞에 오은주 집사는 하나님 앞에 원망을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남편 이관희 집사는 오히려 무너지는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며 끝까지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제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다.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갈 즈음 오은주 집사 몸에 이상한 변화가 왔습니다. 산후통이 심해서 진통제를 10알씩 먹었는데도 진통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12번째 항암치료를 받으며 입원해 있던 그때 의사가 정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래서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온몸에 암이 퍼져 있는 것입니다. 골수까지 암이 전이된 혈액암 말기 4기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부가 동시에 암 환자가 됐습니다.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울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서로가 나 때문에, 내 남편이 나 때문에, 내 아내가 나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았나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말씀을 함께 나누고 큐티를 하면서 서로가 얼마나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것을 늘 말씀하셔서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는 큰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도 설교 말씀 들으면서 마음의 위로함을 받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영적인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3년 동안 정말 하루하루 말기 암과 싸우면서 여러 차례 대수술과 수십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단 한 번도 믿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더욱더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오히려 믿음이 연약한 부인 오은주 집사를 위로하면서 성경을 가르쳐주고 늘 온화한 미소로서 부인에게 용기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얘기가 밖으로 알려져서 이우경 PD라는 분이 기독교인인데 그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게 되었습니다. KBS 스페셜 <앎: 교회오빠>라는 그 스페셜 프로그램이 2017년 TV로 방송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교회오빠>라고 영화가 만들어져서 방영되었고, 그다음 국민일보를 통하여서 『교회 오빠 이관희』라는 책으로 출간하게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이야기가 꿈과 희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통증에도 하루라도 더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싶다며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던 이관희 집사는 이와 같은 말을 남기고 주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을 증거로 삼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증거로 삼으신다.”
이 말씀을 남기고 39번째 생일인 2018년 9월 16일, 사랑하는 주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반면에 오은주 집사는 혈액암 4기에서 2021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고 있는데,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딸 소연이를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하면서 언젠가 천국에서 남편과 함께 만날 그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전진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오은주 집사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저는 남편의 병을 고쳐 보려고 ‘암’이라는 글자가 적힌 모든 책을 다 사서 밤새 공부하고 좋다는 음식도 해서 먹였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저에게 지금 이런 거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께 수없이 원망을 쏟아내며 지쳐 있었습니다. 제 한계가 드러나고 힘이 빠져갈 때 남편은 오히려 이제 우리 함께 말씀을 보자고 하며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제 삶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픔과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를 말씀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어려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는 암을 고쳐주시든지 고쳐주시지 않든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와 예배에 온 마음을 다하기로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떠한 고난에도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413장은 자기의 사랑하는 네 딸을 여객선 사고에서 다 잃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며 지은 찬양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조차도 뛰어넘어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찬송가 413장(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1~3절>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죄 주홍빛 같 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 보다 더 정하리라
후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
<기도>
사랑의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때때로 예기치 않은 큰 고난이 다가오고 절망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 믿음이 약해서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쉽게 상처받고 섭섭해하고 남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 다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서 이 이관희 집사처럼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부인을 격려하고 믿음으로 바로 세웠던 그 믿음, 우리가 본받게 하시고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다가 기쁨으로 우리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주님 우리의 삶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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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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