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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맹인
2025.09.21 / 요하복음 9장 13~17절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요하복음 9장 13~17절)


이 세상에 두 종류의 맹인이 존재합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맹인과 영적인 눈이 떠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맹인이냐, 아니냐. 여러분은 예수 믿고 영적인 눈이 떠져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 받은 인생임을 알기 바랍니다. 
근데 오늘 말씀 보니까 육신의 맹인 된 사람 얘기가 나옵니다. 그는 절망 중에 태어난 인생이었습니다.

 
1. 절망 중에 태어난 인생


요한복음 9장 1절 보니까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을 만납니다.

사실 그는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가는 우리들이 바로 영적인 맹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가면 육신의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죄에 갇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는 영적인 맹인이었는데, 웬일인지 예수를 믿고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일생은 감사의 일생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는 사람은 인간의 눈으로 모든 걸 보고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육신의 맹인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요한복음 9장 2절에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누구 죄 때문에 이 사람의 눈이 멀었습니까? 자기 죄 때문에 눈이 멀어서 태어났습니까?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까?”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남을 평가하는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누가 문제가 있을 때 그를 도와주고 그를 사랑으로 보살펴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도록 해야 하는데, 문제 있는 것을 가지고 지적합니다. “저 사람은 왜 이런 문제가 있습니까? 왜 이런 문제가 있습니까? 누구 죄 때문에 그럽니까?” 늘 남에게 문제점을 발견하려고 하고 비판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맹인 된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도 하고, 성경에 있는 모든 십계명의 말씀을 다 지켜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인이다.” 했지만, 사실 그들은 영적인 맹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영적인 맹인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친 걸 가지고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예수님을 비판합니다. 

요한복음 9장 16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 눈을 뜬 놀라운 일에 대해서, “이야! 하나님의 은혜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했느냐?” 병 고친 건 상관이 없어요. 안식일에 누가 병 고쳤느냐 그래서 영적인 맹인인 저들이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습니다.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의 눈을 뜨려면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 되셔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5절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주님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그대로 영접할 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과 12절에 이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이 맹인을 보셨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그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우리 주님께 잘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리다툼을 하고 서로 자기주장을 하고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9장 5절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하신 다음 계속해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9장 6절, 7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른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와라.” 순종하여 가서 눈을 씻고 오니 눈이 떠지고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실 때 대부분의 병자를 말씀 한마디로 고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순간 병이 낫고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고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에서 침을 땅에 뱉어 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은 여기 한 군데밖에 안 나옵니다. 가만히 성경을 살펴보면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우주 만물을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흙을 빚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흙은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무가치한 흙입니다. 누가 흙 한 덩어리를 떠 와서 돈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돈으로 바꿔 줄 사람이 없습니다.

온 천지에 흔히 있는 것이 흙인데, 주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하는 것은 무가치한 존재인 우리를 주님의 영을 불어넣으심으로 가장 귀한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들어올 때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하고 늘 문제 속에 살았는데,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서 무가치한 존재가 이렇게 존귀한 존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가치한 이 흙이 예수님 손에 들려서 침으로 이겨 눈에 바를 때,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고 올 때 눈이 떠지는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무가치한 존재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가장 존귀한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3. 눈 뜬 맹인의 고백


그래서 맹인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자기 눈을 뜨게 한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내 눈을 뜨게 했다!”라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이 예수를 만난 후에 눈을 뜬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영의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9장 11절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이 말을 듣고 저들이 “이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이기에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눈을 뜨게 하는가?” 논쟁을 하면서 다시 불러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24절, 25절에 다시 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바리새인들은 영적인 맹인으로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는 그 이유 하나로 예수님을 죄인으로 저들이 낙인을 찍고, 다시 맹인을 불러서 “이 사람은 분명히 죄인인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느냐?”라고 또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병을 고친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우리 또한 이 바리새인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가 은혜받아서, 나 같은 죄인이 은혜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늘 내 중심의 입장에서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한다면 이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혹시 바리새인처럼 살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데 주님이 말씀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떠나라.’ 그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 모두가 우리의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잘못된 모습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의 모습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모습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감정에 사로잡혀서 흥분하고 격해져서 소리를 지르고 다투고 싸우던 이런 모습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떠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과거의 모습에서 떠나야 합니다. 술 먹고 주먹을 휘두르던 과거의 모습에서 떠나야 하고, 그저 밤마다 술에 찌들어 술에 취해 살던 모습에 떠나야 하고, 세상 중독에 빠진 모습에서 떠나야 합니다. 떠날 때,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완전히 떠나 변화된 모습으로, 새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육신의 눈과 영적인 눈을 한꺼번에 뜬 맹인은 담대히 말합니다.

요한복음 9장 31절에서 33절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면 내 눈을 뜨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당시 모든 권력을 쥐고 있던 바리새인이 그를 세우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갈 때, 당당하게 바리새인에 맞서서 그는 그가 받은 은혜를 선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 권력 앞에는 움츠러들고, 권력에 따라 자신의 위치와 입장을 바꾸고 또 바꾸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진리를 선포하고, 정의의 강물이 흘러넘치도록 바른길로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서는 자를 복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뜬 맹인처럼 담대하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시고, 예수님만이 우리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로 만드는 유일하신 분이라고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기 바랍니다. 이 맹인이 눈을 떴다가 예수님을 증거한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영적인 눈을 떴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를 믿고 그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담대하게 선포하고, 또 선포하고 또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었던 옛날의 모습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아직도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교만해서 남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다면 지금 그 잘못된 모습을 떠나서, 영적인 맹인의 모습에서 눈을 떠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천국 가신 강영우 박사님. 그는 육신의 눈이 먼 맹인이지만 영의 눈이 떠져서 평생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1957년, 그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어느 날 친구들과 축구하다가 축구공이 눈에 정면으로 맞아 시력을 상실하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입고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졸지에 그는 고아가 된 것입니다.

1950년대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던 때입니까? 6.25 한국전쟁 후에 모두가 가난과 어려움 속에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의 누나가 생계를 위해 방직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나마저 과로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는 홀로 남겨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방직 공장을 다니던 누나가 죽기 전에 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소식을 들으니까 “저 대조동에 천막 교회가 있는데 거기 가면 병을 고쳐준다.” 그래서 동생 영우의 손을 잡고 그 먼 길을 몇 시간을 걸어서 대조동 산골에 있는 천막 교회까지 간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조용기 전도사님을 만나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를 받고 기도를 또 받는 가운데 그는 육신의 눈을 뜬 게 아니라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삶은 절망 그 자체였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마음속에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바뀐 것입니다.

자기 또래의 친구들은 다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는데, 그는 그때 처음으로 맹인학교 들어가서 서울맹학교에서 점자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서 꿈을 가졌으니까, 앞은 보지 못해도 꿈이 그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후 그는 연세대학을 입학해 1972년에는 차석으로 졸업해 아내와 함께 꿈꾸던 미국 유학길을 갑니다. 당시 문교부의 정책상 맹인이 외국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는 문교부의 모든 분을 만나서 “나는 꼭 미국 가서 공부하고 와야 하겠다.”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맹인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국제로터리재단 장학금을 받고 3년 8개월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합니다. 1976년 한국인 최초로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한국의 모든 대학교에서 “우리는 맹인을 교수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받으려면 우리 학교의 모든 시설을 다 바꿔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시설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모든 문이 다 닫혔습니다. 

근데 그 꿈을 갖고 있는 강영우 박사를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서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로 채용되었습니다. 이어 일리노이주의 특수교육국장을 역임하면서 그가 하는 일들이 알려지게 되어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부시 대통령 당시 백악관의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내며 유엔 세계 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011년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장애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다가 2012년 2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꿈은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통해 계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아내 되신 석은옥 여사는 강영우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장학금 지급 및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제2의 강영우 같은 인재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큰아들 강진석 박사, 폴 강은 안과의사로서 조지타운 의과대학에서 미국 소비자협회에서 선정한 미국 최고의 안과의사로 뽑혔습니다. 이후 워싱턴 안과의사협회장을 역임한 후에 2023년에 예일대학교의 교수로 지금도 재직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 강, 강진영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실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2001년 29세의 나이로 미 상원 수석 법률보좌관에 임명, 최연소 기록을 세웁니다. 그러고 나서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법률고문실에 선임 법률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백악관의 주요 정책 입안에 참여하고, 2018년부터는 미국 헌법학회 수석 정책 고문으로서 법률 개혁과 공공정책 발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님의 그 귀한 사역을 계속 펼쳐 나가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 주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강영우 박사님의 유고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그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에게 장애는 축복 그 자체였습니다. 저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장애는 불편함일 수는 있어도 불완전함은 아닙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지배하는 생각의 장애, 마음의 장애, 영의 장애를 뛰어 넘어 나의 장애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꿈은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저의 실명을 통해 저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실명을 하기 전 저는 딱히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없었습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 본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명을 하고 나서야 저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때서야 온전히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목표가 생기니 공부할 이유도 생겼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제 생애는 결코 고통의 시간들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고 주님 앞에서 거룩한 꿈을 품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의 일생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넘치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이제 강영우 박사처럼 영의 눈을 떠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러분 모두가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93장(통 447) ‘오 신실하신 주’>

1절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절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주 영광 드러내도다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3절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신실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일생을 주님의 은혜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눈을 떴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영적인 맹인들의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늘 자신밖에 몰라서 자신의 주장만 하고 고집과 편견으로 살았던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영의 눈을 뜨고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강영우 박사같이 귀하게 아름답게 위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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