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
영광대학 ‘서예미술전시회’ 황혼기, 인생 작품을 그리다
  •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서 24일까지 “내 나이가 어때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천국 가는 날까지 맘껏 펼쳐볼 거야.” 노년층 성도들을 위해 설립된 영광대학이 10월 17∼24일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에서 ‘2018 서예미술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다. 평균나이 79세!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전시회를 마련한 것.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영광대학 학생들이 수업을 받으면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1년 동안 준비한 것들이다. 서예 100점 이상, 미술 40점 등이고 전시회장 입구에는 성경필사본들도 전시되어 있다. 영광대학 회장 김형권 장로는 “미술 작품들도 그렇지만 특히 서예는 100장을 써야 겨우 한 점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며 이번 전시회가 영광대학 학생들의 열정으로 마련되었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쓴 붓글씨 성구들이 전시회장을 풍성하게 채웠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를 담은 작품의 경우 붓글씨로 쓴 말씀을 수묵화로 그린 포도나무가 조화롭게 감싸는 모습이다. 성경 구절만 아니라 선인들의 명언과 보석처럼 아름다운 문장, 시구 등도 있다. 더욱이 풍경화와 정물화에서는 오랜 시간 인생을 살아온 노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삶의 깊이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핑크와 샛노랑 등 발랄한 색감의 꽃 그림을 보면 육신이 늙어가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동심의 감성들이 살아 있어 즐거움을 더해준다. 봄날 손자와 산책에 나서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에선 삶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영성도 볼 수 있다. 유화를 출품한 추옥지 권사는 “7∼8년 전부터 영광대학에서 매주 한 번씩 그림을 배워왔는데 그림을 배우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무 하나, 잎 하나를 봐도 선과 형태가 다 다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진다”는 것. 또한 영광대학 학생들 가운데는 한글도 모르는 상태로 입학했다가 지금은 90세가 넘은 나이에 한글서예는 물론 한문서예까지 하는 분들도 있다. 이처럼 이번 전시회의 작가들, 즉 영광대학 학생들의 경우 다양한 이력들을 가지고 있어 이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의미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또 보는 이들에게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한계도 없음을 웅변하고 있어 배움의 의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광대학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36년 전 신앙 안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지향하며 노인복지 실현을 위해 개설한 단체로서 현재는 350여 명의 학생들이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매년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면 작품 전시회를 통해 성도들과 이웃들에게 1년간의 노력의 성과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평소에는 전문강사를 초빙해 매주일과 수요일, 목요일에 일어, 영어, 장기, 바둑, 한문 서예, 율동, 건강체조, 성극, 찬양, 국악, 성경쓰기, 미술, 하모니카, 오카리나, 난타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2018.10.21 / 복순희 기자

    굿피플 삼리스 학교-케냐 빈민가 아이들의 “꿈은 이루어진다!”
  • 내일의 주인공 단도라 히어로즈의 ‘레디, 액션!’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 그 쓰레기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단도라(Dandora). 눈길이 닿는 곳마다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주민들은 쓰레기 속에서 일하고 배우며 살아간다. 이곳 주민들의 평균소득은 하루 2달러 미만.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한 곳이다. 정부로부터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탓에 제대로 된 사회기반 시설이 전무하고 특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무엇보다 열악하다. 이 때문에 단도라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단도라의 쓰레기 산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순환은 끊을 수 없는 고리처럼 이어지고 있다. 엄마아빠를 돕기 위해, 또는 소년소녀가장으로서, 단도라의 아이들은 자고 일어나면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은 가장 낮은 자를 섬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단도라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2015년부터 ‘굿피플 삼리스 학교’를 개교해 이곳 아이들의 교육과 환경개선에 헌신해 왔다. 아이들이 어려운 현실에 눈을 맞추기보다 자신들이 가진 희망과 가능성을 키워줌으로써 내일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영상 콘텐츠 제작 및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이다. 특히 2017년 1월부터 ‘칸 라이언즈 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주식회사 파울러스와 함께 영상 콘텐츠 제작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즐거움을 누리며 꿈을 키운다. 특히 이 교육은 단순한 영상교육뿐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세도 배우고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스스로 살피면서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다. 또 가난이나 어려운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찾아 가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교육에 참여한 아동들은 스스로 ‘단도라 히어로즈(Dandora Heroes)’라는 이름을 만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했다. 2017년 교육에 참여한 아동들은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 ‘아동학대(Child Abuse)’, ‘절대 포기하지마(Never Lose Hope)’등의 영상을 만들었다. 요셉(17) 군은 “지금까지는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재미있다”면서 “우리가 만든 영상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변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쓰레기장이 아닌, 단도라를 빠져 나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굿피플 삼리스학교는 절망의 땅에 희망의 물줄기를 끊임없이 이어 나갈 계획이다.
  • 2018.09.16 / 김용두 기자

    창립60주년을 맞은 여의도순복음교회
  •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이 11년 만에 재개, 한반도에 봄기운 가득한 평화무드가 조성됐다. 하지만 불과 60여년 전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고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으로 그 어디를 둘러봐도 절망과 좌절뿐이었다. 그 때 한 젊은 청년이 절대희망을 선포했다. 1958년 5월 18일, 서대문구 대조동 한 가정집에서 사과상자에 보자기를 씌운 강대상 앞에서였다. 그곳엔 5명이 전부였지만 조용기 전도사의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라는 메시지는 마치 빛과 같았고, 그 빛은 짙은 어둠속을 뚫고 나왔다. 빛은 ‘순복음’이 되어 가장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희망으로 한반도 가득 전해졌다. 그것이 세계최대교회를 이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태동이었다. 보잘 것 없던 천막교회가 1962년 서대문 사거리로 옮겨져 순복음중앙교회가 되었고, 1964년에는 성도 수 3000명이 넘어선다. 1973년 교회는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여의도로 이전해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 많은 성도들이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 교회로 와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는 꿈과 기쁨이 충만했다. 교회에 오면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희망을 얻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어느새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 ‘세계최대교회’라는 타이틀이 붙게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50주년을 맞은 2008년 5월 이영훈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이영훈 목사는 담임목사 취임 후 ‘절대 긍정 절대 감사’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모래알 같던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했다. 특히 개인적 구원에서 나아가 시대적븡사회적 요청에 응답해 ‘안산희망나눔프로젝트’, ‘희망박스나눔’ 등 사회적 구원에 앞장섰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지난 60년 동안 세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이 이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전파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 곳에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고, NGO를 통해 학교와 병원을 짓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회이지만 그렇기에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내 몸처럼 품었다. 특히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구제 및 선교비로 사용하며 사회의 아픈 이웃들을 껴안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올해 60주년을 맞아 더 큰 꿈과 비전을 품고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 나간다.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오늘도 달린다!
  • 2018.05.20 / 정승환 기자

    예수님 사랑 나누며 30주년 맞은 장애인대교구
  • 장애인 사역의 롤모델이자 선구자 사랑의 김장나누기 등 섬김에도 앞장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대교구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장애인대교구의 행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애인 사역 그 자체이다. 교회 내 장애인 공동체로서 역사가 깊은 만큼 타 교회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롤모델과 선구자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한 세대가 바뀐다는 30년 동안 장애인 성도들의 참여와 헌신,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후원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아름다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예배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성도들의 힘은 서로를 향한 사랑 나눔, 받은 사랑을 세상에 나눔으로 표출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했던 시절인 1988년 일반교구와 청년국에 흩어져 있던 300여 명의 장애인 성도들은 함께 모여 한 목소리로 예배를 드리며 장애인대교구를 결성했다. 대교구 산하에는 지체교구, 청각교구, 시각교구, 청년부, 소망부가 교구와 부서로 편성됐다. 현재는 1200여 가정이 소속되어 있다. 장애별로 나타나는 증상에 따라 의사소통의 방식이 다르고 같은 한 군의 장애 안에서도 중도장애, 다운증후군, 발달장애 정도가 다르지만 이들은 신앙 공동체로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성도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보다 장애가 심한 성도들을 돕는다. 불편한 몸이지만 매 예배시간 자신이 받은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하나님께 예배한다. 성도들은 비록 장애로 인해 불편함이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만큼 열정이 있다. 이들의 신앙생활을 곁에서 돕는 가족과 교역자, 봉사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장애인 성도들과 삶 속에서 매일 기적을 이루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들 흔히 생각하는데 장애인대교구의 성도들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부터 시작된 사랑의 김장나누기다. 처음에는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성도를 돕고자 개인이 시작한 김장 나눔이 혜택을 받은 장애인 성도와 가족들을 움직이게 했고 이후 매년 11월이면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일주일간 자원봉사로 김장담그기에 참여해 20년이 흐른 지금은 매년 1300가정에 김장을 지원하는 큰 연례행사가 됐다. 장애인 성도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자신들도 대부분 형편이 어렵지만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쌀을 내어 놓는다. 또한 교회에서 장애인대교구에 지급되는 쌀로는 형편이 어려운 성도들을 먼저 돕고 일부는 떡을 만들어서 ‘장애인 성도 돕기를 위한 일일 찻집’을 개최한다. 일일 찻집의 시작은 장애인대교구 청년들의 주도로 이어져 오다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참여로 매년 규모가 커져 장애인대교구 차원의 행사, 전성도가 사랑을 나누는 행사가 됐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신앙생활 돕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성도들의 생활 개선과 기독교적 재활 교육 및 복지 공간의 필요성에 따라 1995년 소망의 집을 설립했고 이후 이는 사랑의 교실로 발전했다. 1997년부터 개원한 ‘사랑의 교실’은 장애인 성도들을 위한 평일 교육 프로그램을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또한 사랑의 교실은 은평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가 발족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16년 은평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개관으로 보다 전문적이고 실질적 복지를 제공하는 장애인 사역의 지평을 넓혔다. 앞으로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이미지를 바꿔 나갈 때 장애인대교구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순복음의 신앙인으로서 감사와 기쁨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 2018.04.22 / 복순희 기자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공사 재개 청신호
  • 남북관계 개선되면 민간차원 첫 대북 사업 전망 이영훈 목사 “교회 창립 60주년 맞아 큰 의미있는 북한 사역” 남북·미북 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북한에 짓고 있는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의 건축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7년 12월 4일 평양 대동강구역 동문2동에 심장전문병원인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착공하고 공사를 진행해왔다.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건축공사가 수시로 중단되던 중 2010년 3월 북한에 보내는 모든 물자 수송을 중단시킨 정부의 5.24조치가 시행되면서 8년 전부터 공사가 완전히 중단됐다. 연면적 2만㎡ 규모의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 현재 7층까지 골조공사가 마무리돼 내부공사와 병원 기자재만 설치되면 완성된다. 정부의 대북제재로 8년동안 공사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은 기도를 쉬지 않았고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는 올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출전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까지 이어지며 남북 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건립과 관련해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북한이 변화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공사가 속히 재개되길 바란다. 병원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해 북한에 큰 부흥의 역사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성도가 하나 되면 꿈은 이뤄진다”고 전했다. 이영훈 목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민간 차원에서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짓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의 공사 규모와 진행 상황 등에 관심을 보이며 이영훈 목사에게 “남북 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면 민간 차원에서 인도주의적인 첫 대북 사업으로 평양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잘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평양의 인구 밀집지역인 동문2동에 건립 중인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260개 병상을 갖추게 된다. 인근에 평양 유명 병원인 평양산원과 고려종합병원, 김만유병원이 있어 병원이 완공되면 전문 의료단지를 형성하게 된다. 예상 건립비용을 200억원으로 세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7년 11월 타워크레인 등 184종의 1차 건설 자재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 4월 19일까지 20차례에 걸쳐 1144가지의 건축자재를 북한에 전달했다. 우리 교회는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건설현장 북측 인부들을 위한 식자재, 주방기구까지 북한에 전달하며 공사를 진행해왔다. 내부 시설과 의료장비까지 갖춰지면 남측 의료진 상주와 북한 의료진 훈련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 2007년 5월 북한병원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건립위원회는 수차례 개성과 평양을 오가며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측과 실무적인 회담을 갖고 지속적인 협상을 진행했다. 12월에는 평양에서 조용기심장전문병원 착공식이 열려 조용기 목사와 우리 교회 방북단 250명이 참석했고, 봉수교회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로 기념예배가 드려지기도 했다. 이후 이영훈 목사는 세 차례 평양을 방문해 병원 공사 진척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공사가 재개돼 6개월만 더 지으면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이 완공된다. 북한에 많은 지원을 해온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심장전문병원 건립을 통해 평양은 물론 북한 전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이루고 있다.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은 북한 전역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퍼져나가는 기적과 은혜의 장소가 될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9절)
  • 2018.03.18 / 이미나 기자

    성도에게 출산장려금 지원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
  • 3044가정에 총 29억 7150만원 지원 이영훈 목사 “생명 존중은 기독교의 근본 가치”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년대교구 이경미 성도는 2012년부터 아이 셋을 출산하고 교회에서 출산장려금 350만원을 받았다. 병원비에 기저귀, 분유 값까지 만만치 않은 지출에 경제적 부담이 컸지만 목돈이 필요한 시점에서 받은 교회의 출산장려금은 큰 도움이 됐다. 이경미 성도는 “나라에서도 지원 안 되는 첫째 아이도 출산장려금을 지원해주셔서 참 감사했다. 출산장려금으로 편하게 조리원에서 지낼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육아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가정이 많은 이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출산장려금은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출산율은 매우 낮다. 출산 가능한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수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65년 5.63명이던 합계출산율이 2016년 1.17명, 2017년 약 1.26명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인 것은 물론 세계 224개국 중에서도 220위에 해당할 정도다. 사회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나가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출산을 적극 권장하기 위해 2010년부터 출산장려금을 지원해 왔다. 2017년까지 총 3044가정에 29억715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지원했다. 출산장려금은 자녀 출산 순서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첫 번째 자녀 출산시 50만원, 두 번째 자녀는 100만원, 세 번째 자녀는 20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쌍둥이일 경우 동일순위 동일금액으로 지원된다. 예를 들어 첫 출산이 쌍둥이일 경우 한 아이에 50만원씩 두 명이니 100만원이 지원되고, 두 번째 출산이 쌍둥이일 경우 100만원씩 2명이니 200만원이 지원된다. 출산장려금을 지급 받으려면 부모 중 한 명이상 본 교회에 등록한 교인이어야 하고 월 1회 이상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생명 존중은 기독교의 근본 가치에 속한 것이다. 성경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나와 있다. 우리가 아이를 많이 낳아서 잘 기르는 것은 신앙적으로 성경의 지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며 성도들의 출산을 독려해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출산장려금 외에도 ‘헌아식’을 통해 성도들에게 자녀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2006년부터 어린이집을 만들어 맞벌이 부부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다산을 장려하는 복지 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데도 적극 앞장서며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해왔다. 오래 전부터 예산의 3분의 1을 선교와 전도, 구제비로 사용해왔는데 2018년 올해 예산만 해도 총예산 1248억원 중 선교븡전도븡구제비로 386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전체 예산의 31%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동안 수많은 나눔에 앞장서온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이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올해 1월 복지사업국 사회복지상담센터를 개소하는 등 어려운 성도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복지 서비스는 교회 성도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사회적·국가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적인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미나 기자
  • 2018.02.25 / 이미나 기자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년국 매년 ‘사랑의 불꽃나누기’ 진행
  • “연탄 한 장에 따뜻한 사랑의 마음 담아 전해요” 복지사각지대 이웃에 4년간 연탄 3만3670장 전달 올 겨울 혹한으로 전국이 종일 영하권으로 추웠던 지난 1월 27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년국 장년대교구 성도들이 주말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대형버스 4대에 나눠 타고 경기도 여주 흥천면과 점동면을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장년대교구 성도들이 여주 지역을 방문한 이유는 제대로 된 난방시설 없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이웃들에게 연탄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장년대교구 성도들 눈에 들어온 건 차디 찬 겨울바람을 막아줄 가림막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가구가 전부. 이 가운데 대문도 없이 가건물로 대충 지은 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러 나무판을 덧댄 집은 보기에도 허름해 찬 바람을 막을 길이 없어 보였다. 예순을 넘긴 이수창 할아버지(가명)는 몸이 약한 할머니와 고등학생인 손자 손녀와 함께 이 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손녀가 3살 때 며느리가 집을 나간 후 엄마 얼굴도 기억 못하는 손주를 돌보며 이제껏 살아왔다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추운 날씨 탓에 얼어 있었다. 생활하는 공간 뒤로 광처럼 보이는 곳에 장년대교구 성도들이 연탄을 쌓아올리자 할아버지 얼굴에는 잠시나마 미소가 번졌다. 또 다른 봉사현장은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비나 눈을 피해 연탄을 쌓아둘 공간조차 여의치 않았다. 장년대교구 성도들과 자녀들이 비닐하우스와 비닐하우스 사이로 줄맞춰 연탄을 나르자 이를 받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어르신이 보였다. 김기훈 할아버지(70세·가명)였다. 혼자 산 지 10년째, 마땅한 거처가 없어 농작물을 키우며 비닐하우스 한 편에서 생활하신다고 했다. “누가 연탄을 주러 온다기에 나와 봤더니 아이들도 있더군요. 그래서 ‘어디서 오셨냐’고 묻자 ‘교회에서 왔다’ 하대요. 고맙게 잘 쓸게요. 덕분에 올 겨울 따뜻하게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했는지 김 할아버지는 장년대교구 성도들과 동행한 지역 교회 목사님을 보고 “이제 교회 다닐게요”라고 말했다. 연탄을 옮겨 나르던 장년대교구 성도들은 김 할아버지 말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장년대교구가 이날 흥천면과 점동면의 14가구에 전달한 연탄은 모두 7000장. 3040대 성도들과 그들의 자녀가 한 끼 금식 혹은 용돈을 아껴 모은 후원금 등으로 마련한 사랑의 선물이었다. 장년대교구는 2015년부터 ‘사랑의 불꽃나누기’라는 타이틀로 어려운 지역 사회를 위한 연탄 나눔을 전개해 지금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 어려운 이웃에게 총 3만367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장년대교구장 이동주 목사는 “‘사랑의 불꽃나누기’ 행사에 참여한 성도들과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따라 사랑 실천에 나선 성도들의 헌신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한 겨울을 나길 기도한다”고 했다. 올해로 세 번째 사랑의 불꽃 연탄 나눔 현장 봉사에 참여했다는 김원호 집사는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한 봉사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어린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날 연탄 전달 봉사에 동참했던 박대순 장로는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소홀했던 것 같다. 나눔 현장에 직접 참여하니 크리스천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며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우리의 이웃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일에 지속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 2018.02.18 / 오정선 기자

    김춘호 총장(한국뉴욕주립대학교)
  • “주님을 신뢰하고 맡길 때 고난이 기회로” 성령체험 후 순종의 삶 다짐 실력·인성·영성 갖춘 인재 육성 “인생은 끝없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분명 기회는 있습니다”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김춘호 총장이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김 총장은 삶에서 고난은 단 한 번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늘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총장은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막노동을 하면서 어머니와 여동생 둘을 돌봐야만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너는 과학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25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공학박사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덕연구단지에 입사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게 됐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 탓인지 세상문화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5년을 방황하던 김 총장에게 이전에는 몰랐던 두려움들이 찾아왔다. 그가 두려움에 빠졌을 때 주님이 손을 내미셨다. 그는 유학가기 전 친구의 간곡한 요청으로 교회를 따라갔다가 지금의 아내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 봉사하는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김 총장은 결혼 후에도 꾸준히 교회를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한 명의 과학자로서 믿음과 영성의 의미가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학 중에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교회는 나갔지만 소위 말하는 선데이크리스천이었다. 방황하던 그가 우연히 들른 천막교회에서 성령체험을 하게 됐다. “영성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상황에서 성령님이 저를 ‘강타’하신 거죠. 그 후로 제 삶은 180도로 바뀌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미쳤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오직 주님밖에 몰랐었죠” 당시 연구소 주변에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국내로 들어온 러시아연구원이나 중국유학생들이 많았다. 김 총장은 선교단체를 만들어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영어예배, 러시아어 예배를 드리며 사역을 점점 확대해갔다. 그가 주님께 온전히 돌아선 이후 주님은 그를 사용하셨다. 이후 그는 서울에 있는 산업자원부 산하 전자부품종합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발탁과 더불어 3번을 연임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됐다. 김 총장은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거쳐 한국 최초의 미국 대학 분교인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총장이 됐다. “이전에는 제가 교만해서 제 생각이 앞서다보니 ‘하나님께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었는데 지금은 그냥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뿐이죠” 그는 한국뉴욕주립대학교에서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면서, 인성을 갖추고 나아가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물론 그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매일같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성령과 동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물론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결과는 주님께 맡긴다. 그 결과 그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체험했다고 간증한다. 김 총장은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계획 속에 움직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믿고 맡기십시오”
  • 2018.02.11 / 정승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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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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