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학력위조, 성형 잘못된 겉포장 진정한 속 가치 ‘사랑’ 깨달아야 대한민국에서 ‘다른 사람만큼’ 살기란 쉽지가 않다. 갖추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력’과 ‘외모’이다. 최근 사회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 있으니 바로 ‘학력위조’다. 소위 ‘잘나가는’ 혹은 ‘전문가라는’ 유명 인사들의 학력이 위조되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혹자는 자진해서 자신의 학력위조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이전에도 학력위조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있어 왔지만 이번에는 ‘혹시나’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사회에서는 ‘실력보다는 학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한다. 모 온라인 취업사이트의 20∼30대 성인남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구직활동을 하면서 학력이나 학벌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66.5%가 ‘있다’라고 답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학력과 학벌의 차별을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조사대상자들은 학력위조와 관련한 질문에서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 학력위조의 유혹을 느낀다’고 답했다. 학력은 어느새 사람들을 구분 짓고 사회 차별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해버린 것이다. 이런 유혹은 학력위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모 케이블 프로그램에서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모티브로 한 개그우먼이 가수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개그우먼의 가수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노래가 아닌 ‘외모의 변화’였다. 물론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부분은 수술을 통해 얼마나 예뻐질 수 있는가였다. 여자 가수로서 성공의 여부가 ‘외모’라는 것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최근 성형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특히 TV 쇼프로에서 많은 연예인들이 ‘당당하게’ 성형고백을 하면서 더 이상 성형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성형’을 통한 업그레이드는 꼭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진정 성형이 자신을 업그레이드 한 것일까. 우리는 선물을 하기 위해 물건을 구입하면 반드시 그 선물을 포장한다. 포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급스럽게 느끼기도 하며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대하게끔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아무리 포장을 잘한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즉 포장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도리어 과도한 포장은 그 안의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학력과 외모는 겉포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겉포장을 위해 분주한 지금의 세태는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면 겉포장이 아닌 속포장, 즉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 것일까. 톨스토이의 대표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우리는 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사람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즉 사람에게 진정한 가치와 속은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점에 있는 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크리스천은 가장 큰 가치를 속에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른 채 자신을 겉포장하고 있었음을 나부터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일련의 사회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크리스천은 사회와 구별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항상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이 수반되어야 한다.
  • 2007.08.17 / 정승환 기자

    견디기 힘든 치통, 무엇이 원인일까
  • 자연 치유가 힘든 치통, 참지 말고 반드시 치과에서 치료 받는 것 필요 어렸을 때 병원은 두려움에 상징이었다. 얼마 전 우는 아이가 “의사 선생님한테 주사 놓으라고 한다”라는 말에 울음을 뚝 그치는 걸 보면 필자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는 주사가 가장 무서운 것 같다. 보통 가벼운 두통이나 감기는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치통은 통증이 심해 대부분 즉시 치과로 간다. 인내심이 있다고 버텨봤자 오래 못가고 치과로 향하게 되어 있다. 치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치통의 원인은 크게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가 충치로 인한 치통이다. 충치란 이의 성분인 석회질이 녹아서 구멍이 뚫리는 병을 말한다. 충치가 생기는 이유는 이에 묻은 음식물이 발효되어 유산이 되고, 그것이 이의 석회질을 녹여서 충치로 발전된다. 충치가 처음 발생할 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충치가 신경말단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면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된다. 치통이란 쉽게 말해 치아의 통증을 말한다. 둘째로 잇몸질환으로 인한 치통이 있다. 플라그(plaque)나 치석에 서식하는 세균에 의한 것으로서 초기에는 통증이 없으나 심해지면 잇몸에서 피가 나며, 붓거나 아프며 치아가 흔들리게 된다. 셋째로 사랑니로 인한 치통이 있다. 사랑니가 제대로 나지 못하고 매복되어 있는 경우 사랑니 주위에 염증이 생겨 붓고 통증이 올 수 있다. 사랑니를 구강외과 전공의에게서 발치하고 적절한 항생제를 투여하면 된다. 하지만 통증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빼주는 것이 본인한테 가장 좋다. 넷째로 턱관절로 인한 통증이 있다. 턱관절은 아래턱과 두개골을 연결하는 관절을 말하며 여기에 병이 생기면 주로 귀의 앞부분에 통증이 생긴다. 이러한 통증은 음식물을 씹을 때 위, 아래 치아가 잘 맞물리지 않거나 외상이나 염증성 또는 퇴행성관절염 등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이를 악다물어 근육을 긴장시키면 생길 수도 있다. 끝으로 비치성 안면 통증이 있다. 치아가 원인이 아닌데도 마치 치아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을 말하며 원인으로는 삼차신경통, 상악동염, 비정형성 안면통증 등이 있다. 자세한 검사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므로 대학병원과 같은 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아 함부로 치아를 뽑지 않도록 한다. 치통에도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방법이 있다. 따라서 치통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치과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는 일이다. 치과질환은 자연치유가 극히 어려우므로 방치하면 더욱 악화되어 간다. 치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일만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진통제로 치통을 참아낸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일은 소중한 치아를 발치해야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2007.08.09 / 정승환 기자

    선교와 커뮤니케이션- 21C도 이야기 식 커뮤니케이션은 뜬다
  • 예수님의 설교방법도 대부분 스토리 텔링 재밌게 구성된 이야기 흥미, 설득효과 있어 스토리텔링을 통한 복음전파 “한 성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 그 부한 자는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자는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사지에 보내 죽게 한 다윗을 회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야기다. 만일 나단이 다윗에게 우리아의 부인이었던 밧세바와의 불륜관계를 들먹이며 직설적으로 회개를 촉구했다면 아무리 신임이 두터웠던 나단이지만 최고 권력자 다윗의 심기를 건드렸을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재미있어 한다. 재미있게 구성된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쉬우며 오래 기억된다. 그런데 이야기 효과는 재미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설득효과가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한다는 것을 의식하면 자아를 보호하려고 방어벽을 치기 쉽다. 그러나 위협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가면 마음의 빗장을 푼다. 이야기의 설득효과는 듣는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론을 유도하는 데서도 나온다. 이야기는 분명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들의 정서, 반응, 요구, 성향, 상황에 맞추어 이야기 내용을 조정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경험을 다루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며, 이야기가 다루는 내용은 듣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여 깊이 반응하게 된다. 성경의 단일, 이중, 삼각 이야기 구도 성경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예수님은 사역 중에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야기로 진리를 전하셨을 때 사람들은 먹을 것이 떨어졌을지라도 그 장소를 떠나지 않았다고 전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소집단 무리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말한 다음, 대부분 이야기로 그 메시지를 보강했다. 씨, 양, 진주, 돼지, 왕, 탕자, 부자, 등불, 낙타 등이 다 이야기 거리였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님이 남긴 메시지는 하나이고, 이야기들은 많다” “예수님은 이야기를 즐겨하는 신적 존재”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대부분 단일, 이중 아니면 삼각 구도로 되어 있다. 단일 구도는 감추어진 보화, 값진 진주, 겨자씨, 누룩, 소금, 빛 등 진리와 사물의 비유에서 나타난다. 이런 단일 구도는 메시지의 간결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성경은 보화와 값진 진주 비유, 겨자씨와 누룩 비유, 소금과 빛의 비유를 쌍을 지어 기록하고 있다. 단일 구도인 한 가지 요지를 적어도 둘 이상의 이미지를 통해 반복하여 떠올리게 함으로써 강조와 연속의 효과를 창출했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가, 아니면 세 사람이 등장하는 가에 따라 이중, 삼각 구도로 구분된다. 이중 구도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 이야기 ▲주인과 무익한 종 ▲나단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 등에서 발견된다. 삼각 구도는 ▲주인, 청지기, 빚진 자가 등장하는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 ▲잔치 초청자, 불참자, 불참자 대신 초대받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큰 만찬 이야기 ▲포도원 주인과, 먼저 온 품꾼들, 나중 온 품꾼들이 등장하는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이런 구도는 이야기에 동원된 인물들 간의 긴장 내지는 갈등 관계 때문에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의 행위를 머리에 떠 올리며 자신의 행위와 저울질해 본다. 그리고 자신은 바람직한 선택을 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삼각 구도 이상의 구도는 복잡하여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붙들기 어렵다. 복잡다단한 구도는 예수님 이야기에서는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친숙한 상황과 기대에 어긋난 행동 예수님의 스토리텔링이 설정한 등장인물과 상황은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묘사하는 행동들은 일상적이지 않다. 놀라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즉, 탕자 이야기 주제는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나는 가출 자녀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탕자가 비난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의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또한 이야기대로 아버지가 달려가 탕자 아들을 맞는 장면은 당시 일반적인 가부장적 아버지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탕자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행동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충격적으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 식 커뮤니케이션이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다. UCC 제작자들이나 작가들 뿐 아니라 언론, 광고도 스토리텔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그래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 장면, 사건을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 풀어봄으로써, 사람들에게 정보나 감동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도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탐구해 구성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사님들의 설교 예화, 평신도들의 간증은 다 이야기다. 성경에 나타난 스토리텔링에 비추어 도움이 될 만한 지침을 정리해 본다. ▲간결하게 구성할 것.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인가 생각하고 주제에 직접 관련이 없는 사물, 인물, 상황묘사는 최소화할 것. 그러나 관련 있는 것들의 묘사는 구체적일 것. 마치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스토리를 전개할 것. ▲말하는 대신 보여주고 느끼게 할 것. ‘기쁘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기쁜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느끼게 할 것. ▲해결 안 된 문제, 긴장 요소를 이야기 속에 넣어 듣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것. 이야기 전개에는 놀라움, 신선함이 포함되도록 할 것. ▲듣는 사람들의 청각과 시각만이 아니고 후각, 미각, 촉각 등을 다 동원하도록 이야기를 꾸밀 것. 말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도구, 즉 팔, 다리, 손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소도구도 사용하는 것이 좋음. 김숙현 교수(한세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 2007.04.13 / 이미나 기자

    기독교커뮤니케이션(3)- 진리 전파에는 비유도 한 몫
  •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짝짓기 예수님은 비유법 통해 진리 전파하셔 성경을 흔히 ‘비유의 보고’라고 한다. 특히 예수님은 전도하실 때 비유를 많이 들어 사용하셨다. 복음서에만도 ‘비유’라고 명시된 비유가 30꼭지나 된다. 그렇지 않은 비유까지 합하면 족히 50꼭지는 된다. 비유란 존재, 개념, 사물, 체험 등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는 표현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성경의 비유를 “하늘의 의미를 갖고 있는 땅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신학자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유는 영상언어의 일종이다. 왜 비유인가? 첫째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특히, 하나님이나 신성은 인간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진리 전파를 위해서 끊임 없이 사람들의 경험에 비춘 비유가 개발되었다. 비유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일조를 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런데 말에는 추상성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선교에 자주 거론되는 ‘천국’ ‘하나님’ ‘믿음’ ‘진리’는 추상성이 높은 반면, ‘겨자씨’ ‘누룩’ ‘신랑’ ‘신부’ ‘길’ ‘목자’ 등은 가시적이며 추상성이 낮다. 언어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상성이 높은 표현과 추상성이 낮은 표현을 ‘롤러코스터’ 타듯 잘 운용해야 하는데 비유는 추상성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의 짝짓기 산물이다. 예수님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말했을 때 겨자씨라는 가시적이고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추상성이 높은 믿음이란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신학자들은 “신학적 의미는 생활에서 끌어 온 이미지를 통해서 구현되어야 한다” “이미지는 개념을 먹여 살찌우고 개념은 이미지의 규율을 잡는다”고 한다. 아이콘을 중시했던 중세 교회 관행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칼뱅조차 “설교는 나무나 돌로 만든 수많은 십자가를 능가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나타내야한다”고 말한 것은 주목받을 만하다. 비유는 ‘이해 돕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도 같은 설득과정에도 힘을 발휘한다. 설득의 선행조건은 메시지 기억이다. 기억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유’이며 ‘영혼의 힘’이고 ‘기억 속에 있는 사물들은 그 자체가 아니라 영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설득 메시지는 ‘겨자씨와 믿음’ ‘씨 뿌리는 자와 믿음’ 같이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을 비유로 짝짓기 할 때 효과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은 행동이나 메시지가 호의적인 해석과 평가를 받으면 기대한 행동이나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설득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던 행동이나 말을 하면 상대방은 새롭게 느껴져 그 행동이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정보 처리를 세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은 그 행위나 말에 대한 해석과 평가과정을 활성화시킨다. 이를 기대위배이론이라고 한다. 비유는 또한 치유력도 있다. 치유란 문제해결에 있다기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들을 바라보게 하는 ‘연관 짓기’에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가보지 못한 ‘하나님 나라’와 사람들이 음식 만들 때 흔히 사용했던 ‘누룩’을 짝짓기 했다. 누룩은 곰팡이에 불과하지만 누룩을 사용한 사람들은 빵을 만들고 술을 빚는 것 같이 변화와 창조를 가져오는 신비한 물질이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누룩의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내적?외적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치유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한 것도 지성을 중시했던 그리스?로마 분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비유는 직접적인 언설이 어려운 상황에서 유용하다. 예수님은 비유를 사용하시는 목적을 묻는 제자들에게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라고 설명했다. 이런 예수의 설명은 그의 말에서 ‘혹세무민’의 올가미를 찾으려는 대립자들의 의도를 알고 비유를 사용하셨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성전 건축 비유,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을 것”을 들어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비유는 유사성이 있는 본체와 유체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같다’ 같은 비유사어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의 비유는 보이지 않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본체와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의 이미지인 유체와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믿음이나 천국 같이 추상적인 개념들은 눈에 보이는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핀 백합화, 사람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는 빵과 포도주, 기쁨의 자리인 잔치, 가족관계, 신랑, 신부, 어둠을 밝히는 등잔, 빵과 술을 만드는데 쓰이는 누룩, 물건을 사고파는데 사용되는 동전, 씨 부리는 행위, 추수 등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성을 갖는다. 성경의 비유가 농업사회, 유목사회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면 현대인들은 정보사회의 이미지에 근거해 믿음을 전할 수 있는 비유를 개발할 과제를 안고 있다. 성경은 듣는 사람들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맞게 비유에 동원된 유체를 달리 했다. 일반 사람들을 위한 비유에는 씨 뿌리는 자, 알곡과 쭉정이, 신랑, 목자 등 그들 가까이 있는 이미지를 사용했고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이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비유에서는 모세, 잔, 대접, 박하, 부자, 전설병 등 같이 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했다. 비유는 좋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들을 압제하고 해치고 속이는데 비유를 사용한 사례들이 있음을 말해준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즘이다. 히틀러는 비유 등 영상언어를 사용하여 반유대적 감정을 대중들에게 불어 넣어 유대인 학살로 이어지게 했다. 그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우리 조국의 몸과 생산 노동자 위에 살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비하하며 “게르만 민족의 삶에 해를 끼치고 있는 이 유대인 바이러스가 제거될 때 비로소 소망을 이룰 수 있다”라고 비유를 사용, 선동했다. 이런 비유의 역기능을 경계하면서 기독교적 비유는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며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영적?육신적 치유에 기여해야 한다. 비유의 참된 영향력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틀을 제시해 주는데 있다. 김숙현 교수(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 2007.03.16 / 이미나 기자

    공연으로 만나는 문화의 기쁨
  • 기독인 가수 초청해 축제 분위기 물씬 한국근대사, 교회사 돌아보는 시간도 2007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가 4월 8일 새벽5시 시청앞 광장에서 10만여 명의 성도가 운집한 가운데 드려진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한국교회의 큰 행사인 이날에는 예배 뿐 아니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같은 장소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부활절 문화공연에서는 환경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담고 한국 가스펠의 역사와 동서양 음악의 만남 등을 표현할 예정이다. 특히 부활의 메시지가 ‘생명’인 만큼 지구촌 환경의 위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도 갖는다. 행사의 총 연출은 평화운동을 위해 앞장서 온 홍순관 집사가 맡았다. 홍 집사는 “부활절날 시청앞 광장에서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들과 현 시대 최고의 가수들이 꾸미는 뜻 깊은 공연이 펼쳐진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한반도의 아픔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소외된 작은 이들의 이야기도 나눌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연은 동서양 악기와 춤의 만남인 멜빈 밀러(현대무용), 김정연(비올리스트), 강은일(해금연주자) 씨가 함께 꾸미는 상징적인 무대로 시작한다. 인종과 민족, 음악과 국경을 넘는 이 공연 후에는 가스펠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노문환, 장욱조, 김민식, 송정미 씨 등이 출연해 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우리 가스펠의 시작과 외국가스펠과의 만남, 기독정신으로 사회참여와 역사에 대한 노래를 불러왔던 기독노래운동 등 한국 가스펠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어 이스터 2007 프로젝트 밴드와 홍순관의 공연이 펼쳐진다. 총 연출을 맡은 홍순관 집사의 공연인 만큼 한국적 가락과 언어로 국제적 감각을 품고 만들어왔던 음악으로 꾸몄다. 또한 안치환과 윤도현 밴드, 임정현 등 기독교 연예인들을 초청해 대중과 기독교가 만나는 축하와 화합의 무대, 예수님을 노래했던 시인 정호승과 최고의 연극배우 윤석화가 들려주는 시낭송 등이 마련돼 있다. 영상물을 통해 100년을 흐르는 교회사와 한국근대사, 아시아의 아픔을 돌아보고 지구촌 전체의 평화와 부활을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한편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을 맞아 2월 28일부터 4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제주, 광주, 포항, 전주, 대구, 대전, 춘천 등에서 지역순회 문화공연 ‘다함께 봄’을 펼치고 있다. 장소는 각 지역의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교회를 비롯해 제주의 4?3제, 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아픔이 서려있는 현장으로 선정했다. 사순절 문화공연은 제주 서귀포중앙교회를 시작으로 광주 한빛 교회, 전주 바울교회까지 열렸다. 공연이 열리는 지역마다 한국 특유의 색깔을 내는 무대를 꾸미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3월 21일에는 대전 새로남교회, 25일에는 포항 들판음악회(곡강,죽천,푸른마을,꿈이있는,청하제일교회), 28일에는 춘천 춘천중앙교회, 4월 4일에는 대구 대봉교회에서 공연이 개최될 예정이다. ‘춤추는 평화’의 노랫길을 걷는 홍순관 특유의 시선과 마음으로 풀어내는 노래와 이야기 해금, 가야금, 장구, 꽹과리, 기타, 피아노 등을 통해 생명과 부활의 노래도 들려준다. 모든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며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참가신청을 해야 한다.(문의 596-8454/ www.easter2007.or.kr)
  • 2007.03.16 / 이미나 기자

    이 세상 최고 스승은 ‘아버지’
  • 바쁜 일정 핑계대면 나중에 후회 해 말씀 묵상과 대화로 가족 사랑 확인 ‘아빠’ ‘아버지’ 와 ‘하나님 아버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나를 낳으시고 키우신 육신의 부모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역시 아버지라고 부른다. 두 분의 이름이 같은 것은 아마도 육신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인이요, 그 권위는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모법적인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아버지들이 어떻게 하면 자녀들과 아내에게 최고로 존경받는 가장이 되며, 행복한 가정을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버지의 역할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 가정의 행복은 좌우된다. 현대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 경제적 책임을 지고 돈을 벌어오느라 아침부터 밤중까지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여 경제적인 면만을 풍족히 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자녀 교육에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종종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아버지들과 자녀들 사이에 큰 낭패를 겪는 경우를 보게 된다. 아버지의 역할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족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경제적인 의무이다. 둘째는 사랑으로 가정을 보호해야 하는 보호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훈계하는 훈계자이다. 넷째로는 예수님께로 가정의 모든 식구들을 인도해야 하는 인도자의 역할을 해야만 성공적인 훌륭한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각 가정의 아버지에게 원하시는 온전한 모습이다. 또한 온 식구와 이웃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나는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이다. 좋은 육신의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도 잘 믿고 신앙생활과 사회활동도 멋지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인생은 행복하고 또한 성공적이다. 그러나 책임감과 사랑이 없는 아버지를 만난 사람들은 깊은 신앙을 갖기도 너무나 힘들고 나아가 사회와 가정생활도 원만하지 못한 것을 볼 때가 있다. 육신의 아버지에게 성경을 배운 많은 사람들은 깊은 신앙생활과 더불어 부모를 존경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라나는 자녀들의 뇌 발달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뇌에 비해 무척 성숙하다. 현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밤낮으로 고생을 하며 큰돈을 벌어 자녀들에게 비싼 교육을 시키는 데 우선의 목적을 두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그런 고생이 허무하고 미련한 일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자녀들이 다 커 버린 후이기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공적으로 자라나길 원하고 있는데 그 해결 방법을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이는 성경 구절을 기억하고 매일 시간을 정해서 혹은 저녁 식사 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성경말씀을 나누어 보자.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초이고, 자녀들을 세상적으로도 출세시킬 수 있는 ‘성공의 열쇠’가 된다.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많은 인물들은 아버지에게로부터 성경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이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 방법은 얼마나 쉽고 간단한 일인가?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나의 자녀가 다 컸으니 늦었다’ ‘아이들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니깐 교회 목사님과 전도사님에게 배우면 됐지’ ‘내가 뭐 성경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라는 식의 핑계가 마음속에 있다면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다. 이 세상 최고의 선생님은 바로 아버지이다. 지혜로운 아버지가 되길 원한다면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말씀 읽기를 실행하라. 바쁜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시작해야한다. 아버지와 함께 이루는 교육의 영향은 실로 그 효과가 엄청나다. 적어도 주일만이라도 시간을 만들어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토론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어느 집사는 매일 저녁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친 오후 8시 30분이 되면 자녀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성경 말씀을 나누고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집에 손님이 계시면 함께 초청해 예배를 드리던지 아니면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다. 수요일이나 금요일 저녁, 아빠와 엄마가 예배드리러 교회에가면 자녀들은 집에서 예배드릴 정도로 훈련이 잘 되어 있다. 그 집사의 자녀들은 학교의 정기수업 외엔 아무런 과외 수업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님께 순종하는 귀한 자녀들이고, 나아가 학업 성적도 최상위며 학교에서 진행되는 각종 시상대회에서도 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가정은 매일 기적 같은 기쁨의 일들만 일어난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육신의 아버지가 함께 이룬 성공적 사례가 아닐까? 당신의 자녀를 천재로 만들기 원하는가? 아버지들이여! 오늘부터 집으로 빨리 퇴근하여 자녀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나누어 보자. 아내와 자녀들을 아침과 저녁으로 축복하며 대화를 만들어 가자. 자녀들이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세상을 이길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은 사탄이 넘보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천국이 될 것이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7.03.0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태아는 환영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 최근 영아 살해 사건이 일어나면서 영아 유기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2002년 이후 급증하고 있는 영유아 유기는 성문란 풍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생명은 존중되어져야 한다. 뇌의 구조가 형성되는 이 때 우리는 태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자녀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편집자 주> 생명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잉태 돼 태교따라 인격이 형성되는 것 알아야 TV보다 말씀 묵상과 기도가 효과적 나의 어머니는 자주 “내가 너를 임신 했을 때에 시어머니를 미워했더니, 너의 얼굴이 바로 그 분의 얼굴과 똑같이 생겨 나왔단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이야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태아의 얼굴이 임신 중 임신부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사람의 얼굴을 닮아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말하며, 유전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임신부에게 전달된 정보나 희로애락은 생화학적으로 변해 신호 분자가 피 속으로 전달되고, 그 후 단백질로 활성화되어 협동 및 신진 대사를 조절하는 기능으로 바뀐 뒤 아기 얼굴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과학, 의학과 교육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진리의 말씀과 함께 주님을 닮은 자녀들을 생산해야 한다. 보통 임신의 여부를 알려면 적어도 임신 2개월이 넘어야 한다. 아내의 임신에 남편은 세상의 모든 환영의 탄성을 지르며 태아를 환영하고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기는 잉태 3개월이면 벌써 머리와 몸, 손가락, 발가락의 모양이 다 생기고 청각기관이 거의 완성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잉태를 기뻐해주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한 뇌세포를 가지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아기는 좋고 건강한 엄마의 태내 환경에서 잉태 되어 10개월을 기쁘게 지내며 자라나야 한다. 그리고 임산부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는 말씀을 따라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지내야 한다. 또한 TV를 보는 것 대신에 성경말씀과 영성 깊은 책을 읽어야 하며, 주위는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차야 한다. 자동차나 시끄러운 소음 대신에,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야 한다. 소음이 많은 공항 주변의 아기들이나 동물들은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 때문에 다른 조용한 지역 비해 미숙아나 정신지체아가 많이 태어나며 심지어 동물들도 새끼 생산율이 낮다는 보고가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야 한다. 창세기 30장에 나오는 꾀 많은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얼룩진 양과 염소를 자기의 분깃으로 달라고 한다. 그리고 37절 이하에 나오는 것과 같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자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잉태할 당시 주위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말씀을 이미 창세기부터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나 우리는 미련하게도 21세기 들어와서야 태교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태아는 자칫 무시되기 쉬우나 태중의 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그들은 엄마의 태내에서 기뻐하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품도 하고 딸꾹질도 하고 심지어 쌍둥이의 경우 싸움도 한다. 임신 중 아빠의 역할은 아기 뇌 발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태아는 아빠의 낮은 목소리를 무척 좋아한다. 따라서 아빠는 아내의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매일 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어주고 찬송과 기도 소리를 들려준다면 아기는 태내에서 최대의 뇌 발달을 일으키게 되며, 태어나 공부를 잘하게 됨은 물론 효도를 잘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아빠가 임신을 환영하지 않았을 경우 혹은 의심의 눈길로 아기의 잉태를 기뻐하지 않고 10개월을 지냈을 경우 아기는 태내에서 불안한 뇌세포를 가지고 자라나게 되고, 더욱 심각한 것은 태어나서도 아빠를 신뢰하지 않고 신앙도 갖기 힘든 반항아가 되기 쉽다. 태의 열매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태아들이 산부인과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중절수술이 행해지는 모습이 TV에 방영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태아가 곧 죽임을 당할 것이란 것을 알고 엄마 뱃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을 다니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유산을 가장 많이 시키는 나라, 국내 입양은 적고 아직도 해외로 입양을 제일 많이 보내는 나라, 그래서 슬픈 사연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날마다 험해져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다. 크리스천들이 먼저 앞장서서, 우리 자녀들을 잘 가르쳐 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슬픈 사연들이 없고 모든 태아들이 행복하게 태어나 훌륭한 성품과 인격을 가지고 자라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모든 크리스천들이 앞장서야 한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
  • 2006.08.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문화포커스 -김문애 교수(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주임)
  • -“춤을 통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유치부 교사 지도하며 하나님 만나 무용으로 선교작품 만들며 복음 전해 지난 4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아리수의 혼’이라는 공연이 열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 희망을 찾아가는 몸짓은 역시 김문애무용단 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한 우주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흐름을 인간의 삶에 비유해 무예와 춤의 조화로 안무했어요”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움직이는 손놀림과 몸짓은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지난 3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2006! 김문애의 춤 ‘武&舞’ - 산상의 소리’ 공연에서도 그의 실력은 과감 없이 드러났다. 그는 이번 공연으로 정병호 교수(전 문화재 전문위원장)는 “김문애의 춤은 내가 일제시대에 본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춤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춤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화끈함이 있었고 아름다움과 기교적인 면에서 보면 전통춤이 가진 춤사위의 특징을 충분히 체득했다. 또한 기독교의 신앙생활에서 담게 되는 심층적 심성을 가지고 있어 감정의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게 한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석,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교수는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의 제자로 19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97호 이수자로 문화재 관리국으로부터 지정되어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주임교수, 바기오예술신학대학 겸임교수, 한국무용연구원이사장, (사)백제문화예술단 예술감독, (사)기독교예술총연합 무용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우리교회 (사)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음악선교회에서 진행하는 영산찬양아카데미에서 선교와 무용예술을 접목시킨 한국무용과 한국 타악(대북)의 수업 등을 가르치고 있다. ‘휴거’ ‘나를 따르라’ ‘하나됨의 큰 울림’ ‘예수의 생애’ ‘작은 기도’ 외 다수의 기독교 작품을 만들어낸 그는 문화관광부장관상, KBS국악대상, 한국기독예술대상, 전통예술무용부대상 등 많은 수상경력도 지녔다. 5살 때부터 말보다 춤을 먼저 배우기 시작했던 김 교수도 춤이 인생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춤에 있어서는 항상 톱을 달려왔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춤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공허와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느날 한 유치부 교사의 제의를 받게 됐다. 150명이나 되는 교사들에게 무용을 지도해줄 사람을 급히 찾고 있다며 춤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딛게 된 곳이 여의도순복음교회였지요. 교사들에게 동작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들은 비록 딱딱한 몸짓이었지만 온 몸으로 표현하고 영혼을 담아냈어요. 겨우 유치부 애들한테 가르칠 건데 저렇게 열심일까? 도대체 누굴 위해서 춤을 추는 것일까? 나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습이 끝나면 기도하러 간다고 서둘러 나가는 교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많은 충동을 느꼈단다. 한 교사의 전도에 교회에 따라 나간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 때부터 완전 달라졌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춘 춤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추는 춤으로 바뀐 것이다. “찬양이 몸속에 깊이 들어가면 춤이 되죠. 마치 법궤를 보고 즐거워 덩실덩실 춤을 춘 다윗처럼요” 20년 전 순복음 교회 예술인 선교회에 들어온 김문애 교수. 그는 1989년 무용극 ‘휴거’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90년도에 ‘예수의 생애’라는 작품을 올리는 등 30여 편의 창작 선교 작품을 국내외로 선보였다. 김 교수는 틈만 나면 자신이 이끌고 있는 한국무용연구회, 김문애 무용선교단과 함께 사회봉사와 전도에 나서며 국내, 해외선교를 통해 우리 고유의 춤으로 예수님을 알리기에 앞장선다. “춤은 선교의 좋은 도구죠. 듣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도 우리의 춤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요” 요즘 김 교수는 선교작품 ‘아브라함’을 무용극으로 무대에 올릴 대본을 쓰고 있는 중 이다. 또한 국제선교민속페스티벌을 개최해 각 나라의 전통 춤과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을 갖는게 소망이란다. “미약한 우리나라의 기독교 예술에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싶어요. 세상문화는 한류를 타고 나가는데 기독교 예술은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죠. 예술과 문화로 선교하는데 노력을 기울 여야지요” 그는 19일날 미국 LA로 떠날 예정이다. 병원과 교회를 방문해 자신의 선교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저는 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죠. 춤을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춤은 제 생활이자 기도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 2006.06.18 / 이미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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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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