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를 위한 성경이야기
요한계시록
  • < a> 마지막 책 … 요한계시록 의인은 구원과 상급, 악인은 무서운 심판 현재의 고난 극복하고 예수 재림 맞이해야 사도 요한은 박해로 고통당하는 교회들을 격려하고, 무관심한 자들을 경고할 목적으로 이 편지를 썼습니다. 1세기 말엽의 상황은 도미티안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박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황제숭배를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의 위협과 고통 속에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런 상황을 상징적 언어를 통해 표현하면서 교회들을 격려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여러 가지 상징적 언어와 숫자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상징들 중에서도 숫자적 상징은 우리의 관심과 이해를 갖게 합니다. 3은 초자연계를, 4는 땅의 세계를, 6은 불완전수를, 7은 완전수를, 그리고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숫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계시록의 전체적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가면서 본서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은 환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계시에는 장차 반드시 일어날 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해자들이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도록 상징적 언어들로 작성되었습니다. 장래의 일들이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요한은 일곱 교회에 편지로 보냈습니다. 그는 일곱 교회에 문안하면서 서두에 영원하신 아버지와 일곱 영 곧 완전하신 성령님과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역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4장로가 등장하는 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와 12사도를 합한 것입니다. 곧, 그들은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심부분에는, 일곱 숫자가 4회 연속 나타납니다.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일곱 표징, 일곱 대접 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극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흰 말은 로마제국을, 붉은 말은 로마제국보다 더 호전적인 것을, 검정말은 기근을 그리고 창백한 말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일곱 표징 중 다섯 번째 표징으로 지상에서 짐승이 등장합니다. 이 짐승은 사악하고 거짓된 제사장을 말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이 표는 짐승의 수이며 사람의 수인 666입니다. 666이라는 숫자는 불완전수가 세 개나 모인 사람의 수이자 용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사단적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짐승의 수입니다. 사단적 삼위일체는 성삼위일체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1200명씩 계산된 14만4000명의 숫자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666과 달리 구원받은 사람들 전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린 양이며 교회는 그분의 신부입니다. 마지막 날에 사단은 결박당하고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을 다스리게 되며 백보좌 심판 때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분리하여 심판받게 하며, 이후 신천신지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요한계시록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안겨줍니다. 의인은 구원과 상급을 그리고 악인은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는 신앙으로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우리를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9.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유다서
  • < a>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힘써 싸우라! 거짓교사들의 정체 폭로와 심판 경고 이단을 경계하고 믿음과 성령으로 승리해 예수님의 종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교훈을 경고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가르칠 목적으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 당시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주하고 인류와 우주를 다스리는 절대적 주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과 그들의 불경건한 정체를 폭로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권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유다는 악을 행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후 믿음을 상실한 자들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망각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처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불의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자들입니다. 유다는 이런 심판이 거짓 교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경고합니다. 다음으로,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불경건함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 줍니다. 그들은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무시하고 영광을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지식을 비방하고 또한 이성없는 짐승처럼 본능적으로만 알고 행동합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탐욕은 마치 가인과 발람 그리고 고라의 행동들과 일치합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을 대적한 행위 그대로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영혼을 돌보지 않고 오직 육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며 뿌리 채 뽑힌 열매 없는 나무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최후는 영원한 흑암과 사망의 길로 떨어질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경건한 성격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욕대로 행하며 비웃으며 분열을 일으키며 육에 속하는 자들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들에게 성령님이 안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됩니다. 끝으로 유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건설적인 교훈을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위에 굳건히 서고 성령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영생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에 의지하고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위험에 처한 자들을 구해주고 자비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리고 더러움을 멀리 해야 합니다. 유다는 교회가 지녀야 할 매우 소중한 권면의 내용들을 그의 편지에서 간결하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자세로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는 2000년 전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허망한 것을 가르치는 이단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본능에 의지하여 왜곡된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들을 경계하며 믿음과 성령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9.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베드로전서
  • < a> “겸손과 사랑 가득한 하나님 사람 되세요” 선한 청지기로서 고난과 섬김 강조 헌신과 훈련 필요한 거룩한 삶을 교훈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삶에 대해 말씀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로 표현한 이유는 그들이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산 소망에 합당한 거룩하고 헌신적인 삶을 교훈할 목적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은 주로 복음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그리스도인의 관계, 그리스도인의 헌신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권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베드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받는 영혼구원은 이미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전래되었으며 이제 성령님의 도움을 받은 복음전도자들이 행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위해 세상에 나그네된 그리스도인은 사도로부터 거룩한 삶과 서로 사랑함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며, 왕의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며 그리고 하나님 소유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룩함과 사랑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세상과 국가와 가정 그리고 교회 내에서의 여러 관계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가운데 있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세상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법과 질서 그리고 제도는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도 국가의 원수와 일반 사람들을 공경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사회에서도 직원은 주인에게 순종을 요구받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죄로 인한 고난이 하나님의 형벌이며 선행으로 인한 고난이 하나님의 칭찬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는 소중히 여기고 순종해야 할 관계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며 겸손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섬김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보고 해를 끼칠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면 그것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도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결한 삶을 위해 옛생활을 청산하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청지기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하나님을 정성껏 섬기는 방편이 됩니다. 넷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에게 여러 권면을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본이 되는 존재입니다. 젊은이들은 목회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근심 걱정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 마귀의 계교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에서 본이 되는 거룩한 삶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는 헌신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잘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겸손으로 행하는 삶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8.2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고보서
  • < a> 축복받고 싶으세요? 야고보서를 보세요. 문제해결할 수 있는 방법 제시 행함과 믿음의 일치는 축복의 통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스데반의 박해이후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가진 설교형태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에게는 시련과 인내의 문제, 행함과 믿음의 문제, 신유기도의 방법 그리고 죄인의 전도 등의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순교적인 사명으로 복음을 전했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의 신앙과 전도열은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는 자신의 목회경험을 배경으로 한 실천적인 차원의 권면을 목적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실천적 권면에 초점을 둔 까닭에 명확한 신학적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단지 여러 주제들을 서술하는 형태로만 내용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에게 시련이 임할 때 우선 기쁘게 여기고 그리고 온전히 인내할 것을 가르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복을 주십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1장 12절). 야고보는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가르칩니다. 지혜는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야고보는 가난한 자는 희망을 갖고 부한 자는 겸손할 것을 가르칩니다. 특히 부한 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것을 엄히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할 것을 강력히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행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야고보서 1장 25절). 하나님은 행함이 없는 믿음 곧 결실이 없는 믿음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선생들이 혀를 잘 통제하고 참된 지혜로 행할 것을 가르칩니다. 야고보는 인간의 정욕이나 비방 그리고 성급한 확신을 경고합니다. 이것을 물리치고 오직 선을 행할 것을 가르칩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맹세를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은 맹세가 필요없는 신뢰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고난당하고 병든 자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 5장 15절). 끝으로, 야고보는 죄인을 회개시켜 주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영혼구원의 축복이 그에게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예수님이 영혼구원의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한편으로 야고보는 영혼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복음전도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는 종교개혁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마틴 루터에 의해 형편없는 ‘지푸라기 서신’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루터가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바울의 교리에 반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계에서는 루터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야고보는 신앙의 열심이 식어져가는 초대 기독교의 전환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함을 통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내와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윤리의 참모습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믿음과 행위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속과 겉이 다르면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습니다. 행함과 믿음은 하나이기에 일치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연결됩니다. 야고보서는 처음과 끝이 축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에 충실할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8.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히브리서
  • < a> 예수님의 우월성과 절대성 전해 바른 생활하는 그리스도인 돼야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바울의 여러 편지들에는 저자와 수신자의 언급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으나, 히브리서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히브리서의 저자로 바울을 들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바나바, 누가, 클레멘트, 실루아노, 아볼로, 빌립 그리고 브리스길라 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수신자의 문제도 특정한 공동체, 유대인 수신자, 이방인 수신자, 그리고 혼합 공동체 등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나타난 폭넓은 구약성경 인용과 레위 전례에 따른 모세, 여호수아, 아론의 대제사장직 순서로 전개되는 저자의 논증은 유대 수신자들에게 아주 적합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히브리서는 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주의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타적인 그들에게 세계 선교를 권고하며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의 절대성을 교훈하며 그리고 이단에 대한 답변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런 목적 하에 저자는 예수님의 우월성과 여러 가지 권면의 말을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우월성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우월한 분이십니다. 천사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또한 천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부리는 영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한 분이십니다. 모세는 집을 관리하는 사환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집을 맡은 아들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열에 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레위족보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이것은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큰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그분이 레위 계열의 제사장직이 아닌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그분의 신성과 영원성과 무죄성 그리고 완전성으로 입증됩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아론적인 제사장직과 구별된 역할을 하셨습니다. 아론이 1년에 한차례씩 성소에 들어간 반면에, 예수님은 모두를 위해 한번에 지상의 성소가 아닌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권면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과 축복의 소망을 가져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님을 욕되게 하는 배교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영혼구원을 위한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믿음은 소망과 용기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우월성과 절대성을 교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시므로 그리스도인은 사회생활과 개인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에 있어 바른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8.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빌레몬서
  • < a> 회심한 자에게 주는 용서와 사랑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결단 가르쳐 믿음의 교제 나누는 그리스도인 돼야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자유인이 되어 자기에게로 다시 보내 줄 것을 권면하는 목적으로 본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의 재물을 훔쳐 로마로 도망쳤던 자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바울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어 종의 신분이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 맞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에게 매우 유익한 사람이기에 자신의 사역을 돕는 자로 그를 곁에 두고자 합니다. 이 편지는 주로 빌레몬에 대한 칭찬과 오네시모를 위한 변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코이노니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믿음의 교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리스도와의 참다운 교제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동역자 빌레몬에게 믿음의 교제로 인해 자신이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고 칭찬합니다. 원래 믿음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며 모든 일에 가장 우선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상호간에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며 또한 그리스도와의 참다운 교제를 위한 지름길이 됩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변호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전에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무익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에는 회심하여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하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계속 두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종의 신분이기 때문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사랑받는 형제 곧 자유인의 신분으로 승낙해 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오네시모에게 이 편지를 지참시켜 그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냅니다. 또한 그 내용에는 오네시모를 바울 자신 곧 친구를 영접하듯이 하라는 권면이 있습니다. 또한 오네시모가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갚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요구에 순종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빌레몬이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많고 또한 믿음의 교제로 그리스도와의 참다운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바울의 확신은 빌레몬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해석됩니다. 그 당시 로마사회에서 종에 대한 재산가치는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종을 자유인의 신분으로 방면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런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만큼 큰 가치와 재산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바울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위한 순종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7.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 < a> 교회 안 질서, 그리스도인 경건한 삶 제시 헌신과 기도로 하나님의 다스림 받아야 대인관계 및 바른생활에 대한 교훈 담아 흔히 신학자들은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서신이라는 호칭은 13세기 가톨릭교회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이후로 별다른 문제없이 오늘까지 이 호칭은 인정을 받으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목회서신이라고 호칭한 이유는 세 편지들이 유사한 목적과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서신은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들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의 제반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과 그들을 격려해 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목회서신은 교회에서의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주요한 내용들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목회서신은 교회에서의 기도와 질서, 그리고 직분자의 자격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바울이 중보기도를 가르치는 목적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중보자로 오신 사실을 알리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여성들이 정숙한 복장과 순종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권면합니다. 그렇다고 남녀차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의도는 여성들이 교회에서 행할 역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 직분자들의 자격에 대해 권면합니다. 감독은 선한 일을 사모하며 교회를 잘 돌보고 지도하며 술을 즐기지 않으며 한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입니다. 또한 집사도 술 취하지 않으며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이 모두는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는 교인들의 헌신과 기도와 질서있는 생활을 통해 유지됩니다. 한편으로, 목회서신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목회자의 모범적인 생활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형제들과 연합하며 헛된 생각을 버리고 말과 행실과 태도에서 본이 되며 경건한 생활을 하며 성실히 사역을 수행하며 그리고 부단히 은사를 계발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종이 상전을 공경하고 잘 섬길 것과 거짓 교훈에 유념할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가 된다는 내용의 경건한 삶에 대해 권면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어른들에게 절제와 경건과 근신과 온전함과 거룩함과 선함을 권면하고 젊은이들에게 가족 사랑과 근신과 순전함과 선함과 복종을 권면하고 그리고 종들에게 순종과 충성된 삶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에 대해 권면합니다. 대인관계에 있어 그리스도인은 순종적이고 선한 일을 행하고 다투지 말고 온유함을 베풀 필요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사회행동은 충성스럽고 순종적인 시민정신과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 그리고 원만하고 예의바른 대인관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통해 목회자의 바른 생활과 그리스도인의 바른 교훈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에 따라 성실히 수행하고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목회자들의 바른 가르침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순종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 2003.07.19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데살로니가 전·후서
  • < a>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인식 심어줘 영적지도자 본받아 하나님 원하시는 거룩한 삶 권면 재림신앙 강조…거짓된 영 경계, 참 신앙 모습 제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많은 환난 중에도 주님과 영적 지도자를 본받아 주변의 모든 성도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의 진보에 대한 만족과 기쁨을 편지 전체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삶의 실제적인 권면과 동시에 성도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줍니다. 그리고 재림 전에 성도들이 영·혼·육이 흠없이 보전되기를 가르칩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재림을 중심주제로 삼고 이에 따른 실천적인 권면을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먼저 성도들의 삶과 관련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영적 지도자들을 본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삶은 음란과 색욕에서 벗어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 직업을 갖고 조용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재림에 대해 언급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은 성도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 그 때 살아 남은 성도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휴거). 그 때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재림은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구원의 소망으로 무장하여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당부로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들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그는 화목하고 게으른 자를 책망하고 약한 자를 돕는 사회적 책임들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선을 붙잡고 그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영적 의무들을 다할 것을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먼저 전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재림에 대한 나머지 사실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의 날은 어떤 자들의 주장처럼 이미 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멸망할 운명을 지닌 불법의 사람 곧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먼저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 악한 자는 멸망해 버릴 것입니다. 그 악한 자는 멸망되기 전에 온갖 종류의 거짓된 능력과 표적과 기적들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을 멸망시킵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좋아하는 자들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준수하라고 당부합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는 성도들에게 게으른 생활에 대한 질책과 함께 자기를 본받아 성실한 삶을 살 것을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완전하고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인구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부지런히 살아갈 것을 원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의 삶입니다. 한세대 순복음신학연구소 제공
  • 2003.07.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