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과 4차원 영성
4차원 영성과 성령
  • 기독교 영성은 인간이 타락하고 손상된 피조물로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임을 가르쳐왔다. 그리고 죄에 떨어진 타락한 인간이 회복되어 선을 행하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가르치고 있다. 태초의 창조로부터 하나님의 영은 어디서나 임재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유지하고 양육하며, 만물에 생기를 주셨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만물 안에서 활동하고, 만물을 지탱하고, 만물에 생명과 운동을 주셨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창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창세기 2장 7절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서 산 영이 됐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3차원의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4차원의 영적세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올바르게 회복하고 만물을 다스리고 본래적인 인간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진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은 오직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온전한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성령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피조물에게만 속해있는 자유의지는 혼돈되고 죄악된 것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성령이 없는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며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8권에서 성령께서 악한 성향들의 지배에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해방시키시고 하나님께서 아름다움의 영향력으로 자신을 이끌어 주신 과정을 설명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인간의 영을 통하여 인간과 영적인 관계를 맺고, 인간의 혼을 통해 인간의 진리와 선을 추구하는 이성과 의지를 부여하시며, 인간의 육체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에서 성령의 사역이 인간의 전인적 인격을 변화시키는데 중요하다면 4차원 영성에서도 성령의 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3차원의 물질세계를 다스리는 4차원의 영적세계는 성령의 영원한 세계이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성령은 3차원의 물질세계를 품고 있는 영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4차원의 영적세계는 3차원의 물질세계를 포함하며 그 세계를 다스리신다. 성령은 혼돈과 공허의 물질세계에 새로운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시면서 3차원의 물질세계를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 가신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으로 창조된 인간은 3차원의 물질세계에 속해 있지만 동시적으로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해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존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다. 영적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하게 되므로 물질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성령께서는 자신의 영적 언어인 꿈과 비전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주셔서 3차원의 물질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신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구원받은 자 안에서 꿈과 비전을 부화시키면 인간은 4차원의 영적원리인 하나님의 생각, 꿈, 믿음, 그리고 말을 3차원의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처럼 4차원 영성이란 인간의 영혼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의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고 있으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될 때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 영성과 4차원의 영성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한 영성수련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 모든 성도는 3차원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4차원의 ‘생각’ ‘꿈’ ‘믿음’ ‘말’을 소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꿈과 비전을 한 번 경험했다고 하여 3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로한 성령과의 지속적이며 역동적인 관계를 끊임없이 이루어 나아갈 때에만 그 기능들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세대 영산신학연구소장)
  • 2011.05.2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말(씀)의 위대함’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인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는데 곧 ‘말하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할 수 있는 복을 주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와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자신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를 다스렸을 것이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동물들을 아담 앞으로 이끌고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나 지켜보셨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말씀 자체라는 것이고 인간이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4차원의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말을 사용하는냐에 따라서 3차원의 세계가 움직인다. 잠언 6장 2절 말씀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말의 권세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올바른 말의 사용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이 사용하는 부정적인 말을 통해서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포하고 있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언어에서 마가복음 9장 23절을 말씀대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위대한 언어로 우리의 말을 변화시켜야 한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을 깨달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사용하기 위해 날마다 말씀훈련을 했다. 말씀훈련은 기독교 영성을 이끌어 온 핵심적인 훈련이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영성훈련 방법을 개발해 자신들의 독특한 영성을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말씀의 영성’에 근본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신앙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성경말씀’을 현재 우리에게 하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레마)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기독교 영성을 발전시켰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들으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위대하고 창조적인 언어로 변화됐다. 이러한 위대한 말의 사용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타락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달려있다. 우리의 말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위대하고 창조적인 언어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삶과 세상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과 나 자신이 변화되려면 먼저 우리의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한 말을 사용해 “할 수 있다”라고 선포할 때 3차원의 세계는 긍정적인 현실로 변한다. 하지만 4차원의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해 “할 수 없다”라고 말할 때는 자동적으로 영의 세계가 닫혀 버리고 결국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의 선포를 통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고 거친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으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의 권능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할 때,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말에는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능력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약력) (한세대 영산신학연구소장)
  • 2011.04.22 / 정승환 기자

    4차원의 말과 신적 에너지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성경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말씀은 3차원의 물질세계가 있기 이전에 존재하였고, 이 말씀은 3차원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끌어 가는 위대한 신적 능력이다. 모세 실바 교수는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이라는 특정한 방법을 사용하셨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말씀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신 것일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특별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큰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신적 능력과 창조력이 있다. 동방교회의 영성 안에서 오래전부터 창조되지 않는 ‘신적 에너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4차원의 세계에 속한 것이지만 보이는 3차원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에너지이다. 또한 이 에너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피조 세계를 역동적으로 연결시키며 인간의 영과 혼과 육에 침투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유도한다. 동방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신적 에너지’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신적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연결시키는 연결고리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3차원의 물질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말에도 창조력과 능력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말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인간도 말씀에 기초한 올바른 언어 사용을 통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한다. 영산 조용기 목사는 성경 말씀 속에 나타난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 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중 말의 창조력도 일부 가지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완벽하지 않지만 사람의 말에도 창조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당연히 부정적인 요소들이 자라납니다. 반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말을 하면 말한 그대로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환경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4차원의 영적세계에서 말은 강력한 창조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적절히 사용하는 일은 우리의 삶으로 하여금 승리하는 삶이 되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우리는 말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적인 세계로 이끄는 동시에 파괴적으로도 이끌 수도 있다. 잠언서 기자는 오래 전부터 말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언어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믿음의 말, 창조의 말을 소유하고 선포할 때 우리의 삶은 축복받는 삶, 승리하는 삶으로 변화될 것이다. 한세대학교 신학부장
  • 2011.03.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믿음의 해석학"
  •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물질세계는 보이는 현상들의 관찰과 분석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의 법칙을 관찰하고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일반학문에서는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가령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과학자는 “왜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3차원의 물질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력의 법칙이라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을 한다. 3차원의 물질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도구가 이성과 합리적 사고라면 4차원의 영적세계를 해석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통로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이성적인 도구로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오직 4차원에 속한 믿음으로만 증명할 수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적인 삶과 영원한 삶이 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4차원의 영적세계가 3차원의 물질세계를 지배하듯이 4차원에 속한 믿음의 법칙이 3차원에 속한 이성과 과학의 법칙을 지배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봄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니다”(고후 5:7)라는 말씀처럼 모든 성도들은 믿음으로 사는 영적법칙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해석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세계로 나아갈 수 있고 3차원의 물질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믿음의 해석학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3차원에 속한 인간의 의지를 깨뜨리는 것이다. 3차원에 속한 우리의 능력과 의지로 영원한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영원한 생명은 4차원에 속해 있다. 따라서 4차원에 속한 구원의 복음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진실된 고백을 할 수 있다. 구원이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마음의 의지를 전폭적으로 주님께 내어 맡길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의 해석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속사람을 성장시키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중생을 체험하기 전에는 3차원에 속한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수단과 방법에 따라 산다. 그러나 중생을 확실히 체험한 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4차원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장성하게 되고, 믿음의 폭이 넓어지게 되어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해석학은 기적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2∼2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산을 옮기는 능력이 나타나고, 홍해수가 갈라지며, 물위를 걷는 기적이 산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을 낳는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4차원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믿음’을 받기 위해서 4차원의 영성을 매 순간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한세대학교 대학원장
  • 2011.02.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하나님의 믿음’
  • 4차원의 영성에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며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3차원의 물질세계가 4차원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된 것을 알 수 있다.(히 11:3)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처럼 믿음을 통하지 않으면 인간은 하나님과 절대로 교통할 수 없으며 4차원의 영적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믿음은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한 것으로 우리 자신 안에서 분출하는 신념과 구분이 된다. 신념이란 인간의 의지로부터 나오는 변하지 않는 굳은 생각을 의미한다. 하지만 4차원의 영성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 기원이 인간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 3차원의 물질세계에 속한 세상 사람들은 3차원의 지식과 이성을 통하여 신념을 만들어 내지만 이러한 신념은 극히 제한적이며 불완전하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통해 3차원의 이성을 바탕으로 4차원의 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4차원의 영적세계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배되고 있는 이 세계의 한계성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차원의 세계가 만들어낸 모든 방법이나 신념은 4차원의 무한한 영적세계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없다. 4차원의 영적진리와 살아계신 하나님은 4차원에 속한 믿음을 통하여만 깨달을 수 있다. 기독교 영성에서 믿음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특별히 종교개혁가들은 성경과 더불어 ‘믿음’을 그들의 신앙에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시켰다. 종교개혁가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영성에서 말하는 믿음은 인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믿음이다. 4차원 영성에서 말하는 믿음도 우리 자신 안에서 분출하는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믿음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성경은 믿음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친다(히 12:2).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인간 중심에 두면, 결국 우리의 꿈은 파탄에 이르고, 믿음은 산산조각이 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예수님께 두면”,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모든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믿음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난다. 믿음이란 그 들은 바 내용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그저 단순히 어떤 추상적인 막연한 초월적 능력에 대한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믿음이란 그가 믿음으로 수납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과 연관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선포된 말씀을 매일 들음으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하나님의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4차원의 영성이 말하는 하나님의 믿음은 우리의 속사람을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3차원의 물질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2∼2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산을 옮기는 능력을 얻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적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한세대학교 대학원장
  • 2011.01.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바라봄의 법칙’
  • 4차원의 영적세계에서 바라봄의 법칙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인도하실 때 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보여주신다. 미래의 세계를 보여주시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바라봄의 법칙이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전환될 수 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셨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그의 자손이 하늘의 많은 별들의 수처럼 번성할 것을 말씀하시며, 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그처럼 많은 자손들을 마음속에 구체적으로 그리게 하셨다. 이처럼, 바라봄의 법칙은 초시공의 영역에서 현실을 초월하는 꿈의 법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미래의 꿈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사업가들도 미래의 성공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향하여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우리가 현실적인 면만 바라볼 때 앞을 내다보는 시각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꿈과 비전이 있으면 현실의 역경을 극복하고 믿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기독교 영성훈련에서도 바라봄의 법칙은 중요한 영적법칙이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그들의 수련생활에서 마귀와의 영적전쟁을 끊임없이 하였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한다. 만약 우리가 마귀의 공격에 넘어가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의 잡으면 마귀는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불행한 모습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불안감을 가지고 근심과 걱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마귀가 부정적인 미래를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영성훈련에서는 이러한 마귀와의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몇 가지 영적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은 곧 하나님의 존재 자체이며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실제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꿈을 바라볼 수 있다. 수많은 영성훈련 방법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말씀훈련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미래에 긍정적인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신다. 둘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꿈꾸고 바라고 믿는 것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다 이루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바라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미래의 사건들을 우리의 현실에 실현할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볼 때 우리의 영혼은 잘되고 범사는 형통하며 육체는 강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관점으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셋째, 믿음의 법칙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말씀하고 있다. 꿈은 믿음을 통해서 현재에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미래가 꿈의 구체적 형태를 빌어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현재 바라보는 것이다. 부정적인 모습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미래가 다가올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바라보면 축복의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4차원의 영성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말하고 믿는 바라봄의 법칙이며 또한 꿈꾸는 법칙이다. 한세대학교 대학원장
  • 2010.12.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꿈과 상상력
  • ‘꿈과 상상력’은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한 것으로서 3차원의 물질세계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며 성령의 영적 언어이다. 성령께서는 꿈과 상상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며 미래에 나타날 일들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신다. 다시 말해서, 꿈과 상상력은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 소통하시는 통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꿈과 상상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일을 이 세상에 나타낼 수 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전달하실 때 객관적인 서술 형식으로 전달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사용하면서 계시의 말씀을 전달하신다. 성경에는 꿈과 상상력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과 언약의 말씀을 하실 때 항상 꿈과 상상력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자손에 대한 약속과 땅의 기업에 대한 축복은 아브라함의 꿈과 상상력이 믿음을 통해 나타날 때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꿈과 상상력을 통해 요셉에게 그의 미래에 나타날 그의 삶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요셉은 꿈의 사람이 되었고 그 꿈을 생생하게 상상함으로써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미래의 비젼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많은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야에 대한 꿈과 상상력을 가지고 메시야적 이상을 현실에 이루어 질 것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구약의 모든 메시야적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다. 이처럼 우리에게 나타나는 꿈과 상상력은 하나님의 계획이나 구원사역이 이루어지는 통로이자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는 대화의 통로이다. 기독교 영성 수련자들은 꿈과 상상력을 통하여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하나의 기록이기 보다는 생생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복음서에 나타난 모든 이야기는 죽은 기록이 아니라 살아서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기독교 영성 수련자들은 상상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애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오감적으로 만나고 그 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단계에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약속과 구원 그리고 기적들은 우리의 꿈과 상상력을 통하여 3차원의 세계에 나타날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의 언어로서 꿈과 상상력을 통해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꿈과 상상력을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잠언 29장 18절을 통하여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4차원의 영적세계에 속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인간이 꿈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스릴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따라서 믿는 성도들은 성령의 영적언어인 꿈과 상상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리차드 박스터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적 이미지’를 사용하고 상상력을 활용하여 읽도록 권고하였다. 영산 조용기 목사(이하 영산)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약속들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직접 체험하였다. “나는 아브라함이 별을 세다가 감동하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 둘 별을 세다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하여 어느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영산은 자신의 상상력을 통하여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언어인 꿈과 비전을 직접 체험하였다. 이를 통하여 자신도 꿈을 꾸고 생생하게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산은 성령께서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꿈과 상상력을 가지고 타락한 3차원의 물질세계를 삼중축복의 세계로 변화시켰다. “사람의 미래는 그가 어떤 꿈을 말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원리를 계속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꿈을 키워주기 위함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영적 언어인 꿈과 상상력을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한세대학교 대학원장
  • 2010.11.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생각훈련(2)
  • 기독교 영성훈련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그 분의 뜻을 이해하고 그 분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훈련 과정을 ‘정화의 단계’, ‘조명의 단계’, ‘합일의 단계’의 3단계로 구분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 먼저 ‘정화의 단계’를 거쳐야한다. ‘정화의 단계’는 육체의 유혹과 정욕을 극복해야 하고 옛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몰려오는 두려움, 근심과 염려, 탐심, 미움과 질투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우리의 생각에서 제거하는 것이다. 때때로 이 단계에서 ‘영적어둠’을 경험하기도 한다. 영적어둠은 과거에 일어났던 정신적 충격, 인생의 실패, 사랑하는 이의 죽음, 심리적 허탈감 등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은 우리의 영적성숙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다. 하나님의 존재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영성훈련의 첫 번째 단계에서 제거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조명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 돌입하면 영적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기도생활에 몰두하게 된다. 특별히 이 단계에 돌입한 영성가는 기도에 집중하게 된다. 영성가는 기도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심리적 황홀감, 내면의 빛에 대한 깨달음, 감정적인 열정 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특별히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합일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가 되어 연합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들어간 영성가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하나님의 생각으로 전화되는 것을 경험하며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께 말씀하신대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이러한 3단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독교 영성가들은 ‘말씀기도’에 집중하였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과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성경 말씀으로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이러한 말씀기도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영성가들은 말씀 속에서 역사나 교훈, 도덕적 윤리 등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시며 말씀 안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자 했다. 영성가들은 자신의 옛 생각과 부정적인 자아를 정화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 사건을 연상하였고, 영적인 빛을 얻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를 붙잡고 기도했다. 4차원의 ‘생각훈련’은 먼저 우리의 옛 모습과 옛 생각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기독교 영성가들이 정화의 단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연상하고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죄악된 뿌리와 죄악된 습성을 제거하였듯이 4차원의 ‘생각훈련’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과거의 부정적인 자화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생각훈련’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면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심어주신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의인이 되었다. 나는 성령충만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의 삶은 축복된 삶이다. 나는 하나님의 천국 백성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변화된 자화상을 얻게 될 때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변화되고 하나님과 연합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한세대
  • 2010.10.29 / 정승환 기자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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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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