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진 전도사의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세계관(5) - 미디어의 꽃, 광고
  • 광고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 과거 계절의 변화는 여성들의 옷끝에서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문화의 대중화 시대에 시절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전달해 주는 것 중 하나를 꼽는다면 광고일 것이다. 언젠가 영국 방송공사에서 시청자가 TV 없이 1년 동안 살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184가구가 1주일에 13달러의 돈을 받고 TV를 보지 않기로 하였다. 연구할 당시에 이 정도의 돈은 상당한 액수로 일반적인 노동 계층의 가족들에게는 훌륭한 보너스가 될 터이었다. 그런데 이 연구에 응하겠다고 했던 실험 가구들은 연구가 시작되기 무섭게 탈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실험에 응한지 5개월을 넘긴 가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연구원들은 이 참가자들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자들과 비슷한 금단 증세로 고통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미래는 일반 대중들의 TV의존도가 증가될 것이며, TV가 시청자들의 자립성, 대인접촉, 창조적인 일을 추구하는 행위를 최소한으로 줄여버릴 것이다’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하였다. 영국 이전에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실험이 행해졌는데 3주일이 지나자 첫 번째 실험 가구가 떨어져 나갔으며 마찬가지로 5개월 째를 넘긴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시대에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상업성과 오락성, 예술성을 특징으로 갖는 대중문화는 산업사회 안에서 점차적으로 예술성 보다는 오락성을 부추김으로써 상업적 요인으로 그 목적을 집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광고의 역할은 문화의 선도로써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광고라는 것이 무엇인가, 광고의 기본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상품 만드는 이들의 뜻을 제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 광고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시대의 광고는 마음보다는 눈을 겨냥한다. 광고 상품과는 관계 없는 이미지를 빌려와서 상품이 실제 가진 가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즉 대상 제품을 직접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소비자들에게 전하기 보다는 그 상품이 지닐 수 있는 이미지를 강조하여 소비자를 유혹한다. 결국 광고는 상품의 정보를 있는 사실 그대로 전하기 보다는 이미지를 창조하여 그 이미지가 소비될 수 있도록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광고 상품에 의미를 전해줄 어떤 기호나 이미지를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에 전이시키는 방법으로 스타를 내세운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상품 구매시 상품 자체의 효용 가치나 만족 보다는 그 광고에 내세워진 스타들의 이미지나 다른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일종의 동일시 효과이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광고 속의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자신을 그 스타에 투사시킴으로써 마치 자신이 그 광고의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후기 구조주의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곧바로 결핍의 세계로 돌입하게 되어 이후의 생애는 그 결핍을 메우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광고는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결핍감, 욕망을 건드려 소비를 통해 충족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요일 2:16)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집중시킨다. 바로 ‘사탄은 광고를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섹스지향적, 소비지향적, 세상지향적으로 우리의 가치관을 소유하도록, 끊임없이 돌아가는 매스컴을 통해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광고는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임벳(Embeds: 섹스심벌을 교묘한 은유로 표현하는 광고기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통해 언어를 오염시키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광고 내용들은 과소비와 사치, 피해의식 등을 조장시켜 국민의식을 파괴하기도 한다. 특별히 여성에 대한 상품화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거나 여성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광고는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구입한 이후에 얻게 될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을 그리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관심과 소망을 하늘나라가 아닌 이 땅에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광고의 홍수 시대,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님을 늘 깨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황정진 전도사(국신원)
  • 2006.11.07

    기독교세계관(4) - 뉴에이지 운동
  • 범신론에 근거, 포괄적인 혼합주의적 운동 신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인간 승리’로 표현 성경의 메시지 부정하며 문화 곳곳에 침투 하늘이 드높다! 한여름 장대비에 폭염을 쏟아내던 하늘도 입추, 처서가 지나니 스치는 바람의 향기가 다르다. 참으로 어김 없는 자연의 신실함에 우리는 겸손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즈음에 난데 없는 ‘바다 이야기’가 온 나라를 다시 뜨겁게 한다. 인터넷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바다 이야기란 ‘최근 유행한 사행성 성인오락게임을 일컫는다’라고 되어 있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올해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 인구는 1억 명을 넘어섰으며, 작년 말 세계 시장의 23.5%를 장악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임 시장에도 ‘한류열풍’이 불었는가, 게임 용어도 한국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개구리 삶는 법’을 아는가! 개구리를 삶기 위해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곧바로 튀어 나온다. 하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어서 서서히 물을 달구면 개구리는 자신이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그만 서서히 죽는다. 게임 중독에 빠져서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결국 자신까지도 잃게 되는 중독증상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모든 중독의 첫 시작은 ‘이번 한번 만’으로 시작해서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은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게 죽어간다. 현대 문화 현상 가운데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소위 ‘새시대 운동’이라 이름 하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다.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은 문화 곳곳에 침투하고 있으며 운동의 배경 또한 다양하고 포괄적이어서 이에 대한 정의를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은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 사람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에 의해 창설된 ‘신지학협회’의 활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신지학협회: 신지학이란 ‘신을 인지하는 지혜’란 말로 인간은 7개의 서로 다른 단계를 거쳐 진화하며, 신, 절대자와 합일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기본적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부정한다)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은 범신론에 근거하는 동양의 신비사상과 세속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계시를 제외한 모든 종교에 관대한 포괄적인 혼합주의적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뉴에이지 운동에서 말하는 ‘뉴에이지’는 ‘힘’이라는 비인격적 대상과 연관되며 의식, 정신, 영혼 및 생명, 기(氣) 등으로 정의한다.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이러한 힘을 신으로 규정하며 인간은 명상 등의 방법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 속에는 이처럼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죄’이고, 깨달음의 단계를 통해 내재된 잠재력으로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면 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로 ‘구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점진적 진화론에 기초하여 환생론을 주장하며 이에 따른 의식 개혁운동을 펼치고 있다. 오늘날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적 문화 현상 가운데 이들 뉴에이지 운동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깊숙이 침투해 있다. 영적 신비한 힘을 강조하며 초능력을 행하는데 유체이탈(육신과 영혼이 잠시 분리되는 것), 텔레포테이션(순식간에 공간 이동하는 것), 예지력,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매력과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이밖에도 음악, 영화, 건강 운동 등 대중문화 전반에 하나의 조류를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장르로서의 뉴에이지 음악이 아닌) 즉, 뉴에이지 운동의 정신을 가진 음악은 연주형태나 스타일 등 외적인 요소보다는 의식의 전환이나 심리적인 상태를 음악을 통해 나타내려고 하며, 음악에 있는 이러한 영적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적인 영향을 준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영화의 주요 줄거리보다는 영적 현상을 통한 범신론적이고 비기독교적이며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인간 승리’의 모습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이러한 뉴에이지 운동은 드러내고 이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건드리고 영향을 주어 이러한 뉴에이지 운동의 세계관에 노출된 문화를 계속적으로 접하다 보면 미지근한 물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어가는 개구리와 같이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그 몸과 마음과 영혼은 이미 빼앗겨 버린 상태가 될 것이다. 황정진 전도사(국신원)
  • 2006.09.03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 형태
  • 3. 포스트모더니즘 - ②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문화 상대주의 극복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을 외쳤던 것이 엊그젠데, 이제 사람들은 불볕 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고 있다. 한 쪽에선 휴가와 방학을 반납하고 수해 지역의 복구 현장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선 쏟아지는 태양 아래 그간의 공부와 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피서지로 향한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어느 한 쪽은 옳고 다른 한 쪽은 그르다고 단정지어 판단할 수 없다. 과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또 하나의 기대는 바로 가족과의 외식이 아니었을까! 요즘 가족의 외식문화는 과거와 다르다. 일단 외식의 기회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예전과 달리 단연 아이들 몫이다. 어른은 값에 대한 지불권(?)만 있을 뿐이다. 요즘엔 세대에 따른 음식 기호를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음식 백화점 스타일의 패밀리 레스토랑(Family Restaurant)이 생기면서 각자의 기호에 따른 음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퓨전 레스토랑이라 하여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섞어서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것이 웰빙 바람과 함께 한창 인기이다. 이처럼 먹는 음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의상 디자인과 음악회 등 문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퓨전바람이 불고 있다.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절대 가치 체계가 해체되고 개인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의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형적인 문화 형태이다. 이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전통과 인습을 소중히 하던 절대성을 배격하고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길을 추구하면서 이것이 기독교에도 영향을 주어 절대 진리와 영원한 말씀에 도전을 가하며 종교다원주의로 상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지식과 도덕에 있어서도 객관성과 보편성을 거부하여 ‘옳고 그름’ 보다는 ‘좋다 싫다’로 표현하며 윤리의 상대화를 추구한다. 이에 따라 개인의 자아 존재감은 생각과 행동의 주체로서 생기기 보다는 동일한 문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됨으로써 개인의 주체성이 파괴된다. 현대 사회는 같은 연령대라도 다양하게 분화되어 X 세대로부터 최근의 n 세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이름의 ‘세대론’이 대두되었다. 이들 각각의 세대는 그들만의 의식과 생활방식이 있어서 주체성과 자아의 독특성은 사라지고 평준화를 추구한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과 실생활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대중문화의 특징을 갖는다. 과거 예술성을 중시하며 소위 고급, 저급 문화로 분류하던 틀이 해체되고 상업성이 가미된 대중적인 문화를 지향한다. 문화의 산업화로 탈 장르화가 이루어져 한 공간 안에서 동시적으로 클래식과 팝송, 심지어 가요까지 다양한 장르를 동시에 공연하는 ‘열린 음악회’와 같은 퓨전 문화가 형성되면서, 문화의 예술성보다는 오락성과 상업성이 중요시 되어, 결국 문화의 질은 하향 평준화에 머무르게 한다. 이와 동시에 동성애와 같이 과거 드러내지 못했던 것들이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틀 안으로 들어와 대중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잡으며 ‘인권’의 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형태 아래서 절대적 진리와 영원불변한 말씀에 더 이상 대중들은 전적으로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 역시 개인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이 가능한 문화의 일부분으로 화(化)하여, 원시종교적인 신비주의의 신비체험을 추구하거나 감성적, 개별적인 사상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말씀에 따른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 태도에 대해서도 윤리적 상대주의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역행하며 상황윤리를 주장하고 나선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바른 성경적 역사관과 세계관을 확립하고 영적 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 시대의 문화를 분별하며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 2006.08.06

    3. 포스트모더니즘 - ①
  •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절대 가치 체계 해체 올 여름, 유난히 뜨거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초여름 여성들의 옷차림은 여느 해보다 더욱 파격적이다. 어디까지가 경계인지 모를 정도의 과감한 노출과 함께 겉옷인지 속옷인지 구분할 수 없는 패션이 더운 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올해 우리나라 남성들의 복장은 그 어느 때보다 와이셔츠와 넥타이의 디자인과 색감, 그 문양이 과감해지며 더운 여름 남성들의 목을 한껏 조이고 있다. 남성 패션이 변하고 있다! 과거 단순하고 점잖은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던 남성복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세대의 구분 없이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그 색깔부터 화려하고 대담하게, 혹은 아기자기하게 변하고 있다. 여성 패션에서도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다이어트 열풍으로 ‘작게 작게’ 만들더니 올해는 급기야 ‘44 사이즈’ 열풍이 불어, 백화점 의류매장에서는 44 사이즈 매출이 25%이상 올라가는가 하면 44 사이즈 인터넷 전문 쇼핑몰까지 등장하고 있다. 언젠가 의류매장에 갔다가 무안을 당했던 기억이 새롭다. 옷들이 너무 작아서 도저히 입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무심코 매장 직원한테 한 말, “왜 이렇게 옷이 작아요! 좀 크게 만들면 안되나요?” 직원의 즉각적인 반응은, “옷에 몸을 맞추세요. 요즘은 다 이렇게 작게 나와요” 였다. 언제부터 사람 몸을 옷에 맞추는 시대가 되었는가! 오늘날 이러한 패션의 변화는 세대의 구분 없이 대체로 모든 연령대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칙적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생물학적 연령에 따른다. 그러나 오늘날 세대 구분은 같은 연령대라 할지라도 새로운 기준에 의해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을 발견하여 기존의 사람들과 다시 구분한다. 여기서 ‘새로운 기준에 의해 구별되는 문화적 특징’, 이는 바로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마디로 기존에 모두가 인정하던 전통적이고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신념, 가치, 기술의 틀이 뒤집어진 것이다. 16세기 이후 과학 기술과 계몽사상에 근거한 인간 중심의 이성적인 삶의 양식을 가지고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던 현대인의 이상은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제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은 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 한계를 보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즉 포스트모던이란 과학과 이성으로 특징지어진 근대를 떠난 새로운 시대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문화, 사상적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한다. 이 말은 원래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서구 역사를 암흑기, 중세기, 모던, 포스트 모던으로 구분한 것에서 유래한다.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바탕에는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가치체계는 모두 해체되고 개인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흐른다. 결국 과거 절대 진리로 믿었던 모든 가치 체계가 무너지고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정 불변이 아니며 단지 해석이고 말 뿐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의 해체는 도덕 체계를 파괴시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 기류를 요구하게 되어 불교를 비롯한 무속신앙과 기철학, 요가 등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대 전환을 요구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는 종교와 문화의 불가분리성을 보여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종교다원적 상황 아래서 종교는 단지 기호와 선택일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말하기 보다는 ‘좋다’ ‘싫다’로 구분하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선택하는 것이 진리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다. 비이스는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터가 무너진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각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 패러다임(paradign)이란 토마스 쿤(Thomas S. Kuhn)이 쓴 「과학적 혁명의 구조」란 책에서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의 총체성’을 뜻하는 용어이다. 원래는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사용된 말이었으나 오늘날 현대 문화를 이해하는 틀로사용되고 있다. 황정진 전도사(국신원)
  • 2006.07.05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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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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