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태 교수의 성령과 선교
물질과 선교
  •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다. 개신교 선교는 19세기에 꽃을 피웠는데,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국가가 중심이 됐다. 이 국가들은 선박과 항해술의 발달,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는 선교사들을 물질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었다. 20세기는 선교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 졌다. 미국은 20세기에 세계 최강국이자 경제 대국으로 발돋음하였다. 유럽과 미국의 활발한 선교는 모두 교회의 선교적 열정과 더불어 국가 경제의 뒷받침이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세계 선교의 참여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2010년에 전체 한국 선교사 숫자는 2만명을 넘었다. 이와같이 많은 선교사가 해외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경제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해외 선교사 파송수 1위는 미국이고, 한국이 그 다음으로 2위이다. 하나님은 한국에 영적 축복과 물질적 축복을 주셨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뜨거운 기도와 선교의 열정, 물질적 헌신, 선교사들의 땀과 수고는 영혼 구원의 결실로 맺어지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빵과 음료가 공급되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이다. 개신교 선교가 유럽과 미국, 한국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영적인 부흥과 더불어 국가 경제의 부흥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 부요가 선교를 위해 사용됐다. 예수님은 보화를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다. 보화를 땅에 쌓아 두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보화를 사용하는 것이고,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를 위해 보화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시며,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하셨다(마 13:44). 우리가 가진 물질을 드려서 선교하여 한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을 얻는다면 바로 ‘감추인 보화’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위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구원과 복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면서,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적 축복은 선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 많이 부요해졌다. 50년전의 한국의 경제를 생각해보면, 당시는 선교사를 해외에 보낼 경제력이 아니었다. 영적인 축복과 더불어 경제적 축복으로 인해 현재 150개국 이상에 선교사를 파송한 국가가 됐다. 예수님은 재물을 섬겨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마 6:24). 재물을 섬기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구하고 쌓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과 선교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바로 재물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축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를 위해 드려야 한다. 축복을 구하는 것은 나 자신의 필요를 넘어서 선교를 더욱 감당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베데스다대
  • 2010.04.23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
  • 선교는 어떤 교회가 할 수 있을까? 필자가 선교사로 있을 때, 국내에서 교회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거나, 교세가 아직크지 않은 목사님들을 만나면, “우리 교회는 아직 선교를 할 만한 여건이 못 됩니다. 교회가 부흥되면, 그 때나 선교할 수 있겠지요”라고 말씀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선교는 과연 교회가 크게 혹은 어느 정도 부흥된 후에 하는 사역일까? 성경에서 선교사를 정식으로 처음 파송한 교회는 복음의 센터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세워진지 얼마 안된 이방 지역의 안디옥 교회였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났다.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 안디옥 지역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다.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보내어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게 했다. 바나바는 이들의 신앙을 보고 기뻐했고, 하나님을 굳게 믿도록 격려했다. 바나바는 바울을 오라고 해서 함께 이들을 말씀으로 가르쳤다(행 11:19∼30). 이렇게 하여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교회였다. 목회자와 교사, 성도들이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을 예배했다(행 13:2). 그 때에, 그들에게 성령의 음성이 들렸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행 13:2). 성령은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러 가야 한다고 명하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금식과 기도를 마치고, 바나바와 바울을 안수하고 기도하며, 선교사로 파송했다. 성경은 안디옥 교회가 물질이 풍족하여서 선교사를 보낼 수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은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 교회였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순종했다고 말씀한다. 성령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교회에게 음성을 주신다.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음성은 “보내어 선교하라”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다른 조건을 따지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교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들이므로 선교사로 보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을 지원할 만한 힘이 없으므로 아직은 보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기도하며 보냈다. 오늘날 오순절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1906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난 성령의 강한 역사와 부흥으로 인해서이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파했다. 성령을 주신 것은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라는 뜻으로 믿었다. 아주사 부흥 운동이 시작된지 1년도 안되어 여러 사람들이 미국을 떠나 선교사로 나갔다. 어떤 사람은 기도중에 한 도시의 이름이 귀에 들렸다. 처음듣는 이름이었다. 세계 지도를 찾아 보니 브라질의 한 도시였다. 그는 그 곳으로 선교를 떠났다. 1911년에 알리마 애스튼이라는 자매는 오클라호마에서 인도로 선교하러 가려는데 비용이 없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일단 갈 수 있는 거리 만큼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났는데, 기적적으로 때마다 모든 것이 공급되어 현지에 도착했다. 오순절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시작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 속에 퍼져 나가며,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교회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음성과 권능을 따라 순종하여 선교하기 때문이다. 오순절의 선교는 안디옥 교회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예배하고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예배하고 성령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는 것이 선교의 출발이요 맥이다. 베데스다대
  • 2010.03.26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교회
  •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보통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다(고전 1:1∼2, 신 6:6∼7). 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고전 12:27∼28, 엡 1:22∼23). 셋째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17, 엡 2:21∼22).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교회가 건물이나 장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백성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한다(행 20:28).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것은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 우리도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하며, 성도들은 각기 몸의 요소로서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서로 미워하고 반목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로서 합당치 못한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은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는 말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을 따르고 닮는 삶을 가리킨다. 교회로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따라 가서는 안된다.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다. 종합하면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우선이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연합하고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참된 교회의 모습에 한 가지 더할 것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러 오셨다(막 1:15).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 내용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는 말씀이다(행 28:31).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불신자가 신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가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것은 그 교회는 확장되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 수는 늘지 않은 것이다. 교회는 불신자를 전도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선교학자 벤엥겐은 “교회의 참된 목적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생명을 주시는 성령,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데스다대
  • 2010.02.26

    주님의 기도와 선교
  • 예수님은 무엇에 대하여 기도하셨을까? 예수님이 하신 기도를 따라 하는 것이 성경적 기도이자 진정한 기도일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가 너무 중요하므로, 제자들에게 상세히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은 나를 자녀로 여기시고 돌보시는 분이라는 뜻이며,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땅에 사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다. 기도는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게 필요한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에 대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마 6:9)을 받기를 간구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첫째 제목은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칭송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시편 67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취사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1∼3)라고 말씀한다.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고 경배하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어서 “(하나님의)나라가 임하시기”(마 6:10)를 간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나라가 전부가 아니다. 미래에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그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등록된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땅의 삶은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어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마 6:10)지기를 간구하라고 하신다. 이 땅은 사탄의 악한 활동과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어둠과 반목과 고통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시험과 죄악과 씨름한다. 하늘에서 모든 천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종하듯이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의를 좇는 복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이다. 성경에서 가장 간절한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간구하는 선교적(Missional Prayer) 기도이다. 2010년 새해가 다가온다. 날마다 선교적 기도로 하루를 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베데스다대
  • 2009.12.25

    밭을 바라보는 선교
  • 예수님께서는 어느날 제자들과 함께 들녘에 계셨다. 밭을 가리시키고 바라보시면서 곡식이 추수되듯이, 영혼들이 추수되어 영원한 안식이 있는 곳간,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5∼36). 밭은 세상이고, 곡식은 바로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추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각각 직업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지만, 모두 똑같이 천국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혼 추수의 직업이다. 오늘날 우리는 영혼의 밭인 세상을 바라보고 추수해야 한다. 오늘날의 영혼 추수의 밭인 세상을 살펴보자. 현재 세계 인구는 68억이며, 이중 기독교 인구는 33%(22억)이고, 비기독교 인구는 67%(46억)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혼 추수가 안 되어 있는 밭은 어디인가? 아르헨티나의 선교지도자 루이스 부쉬는 북위 10도와 40도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복음화가 안 되어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을 10/40 window(창)이라고 규정했다. 이 지역은 세계 인구의 2/3가 거주하고, 61개국이 미전도 상태이다(탐 스테픈과 로이니 멕키니 더글러스의 저서 Encountering Missionary Life and Ministry). 이 지역은 회교, 힌두교, 불교가 발생한 곳이다. 바로 북아프리카와 중동과 아시아이다. 현재 북아프리카와 중동은 회교권이며, 아시아는 불교, 힌두교, 회교를 대부분 신봉하고 있는 대륙이다. 그런데 세계 선교사의 20%만이 이 지역에서 선교하고 있다. 가장 전도가 안 된 이 지역에 앞으로 선교사가 많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추수해야 한다. 교회는 이 지역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이 지역에 부름받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영혼 추수의 직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천국직업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기독교 선교를 국가적으로 제한하고 핍박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10/40창 지역은 선교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1900년대에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80%가 백인이었지만, 현재는 45%이다(데이빗 바렛과 토드 존슨의 저서 ‘세계기독교트렌드’(World Christian Trends AD 30-AD 2200). 지난 100여년 동안 남미와 아프리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신자와 교회가 증가해 온 것이다. 한국은 복음의 불모지였으나, 현재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한국에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10/40 지역에 일어날 수 있음을 소망해야 한다. 공산권에 문이 열려 선교가 이루어 졌듯이, 이 지역에도 복음의 문이 열릴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지역에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이 부탁은 오늘날 10/40창 지역과 선교사들에게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주어야할 부탁이다. 베대스다대
  • 2009.11.27

    하나님의 남은 일과 우리의 남은 일
  •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벅찬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수님을 증거했고, 예수님을 따라 살려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을 자신들의 인생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일로 여겼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긴급하게 알아야만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온 지경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으며, 이스라엘 백성 중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나게 하셔서, 온 민족을 위한 구세주로 세우셨다.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셔서, 신자들에게 권능을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일해 오셨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요 5:17).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약속하신 일인데 아직 실행하지 않으신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을 다시 보내실 일이 남아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고 계실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궁금증을 이미 2천년 전에 풀어 주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증거되어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남은 일은 예수님을 다시 보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가 우리의 남은 일을 할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남은 일”은 이 세상의 모든 민족(종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현재 세계에는 1만6344종족이 있다(미국 세계 선교센터 여호수아 프로젝트 2009년 자료, www.joshuaproject.net). 이 중 6639종족이 미전도 종족이다. 미전도 종족이 전체 종족 수의 40.6%에 해당한다. 미전도 종족은 스스로 자신의 종족을 복음화할 수 있는 역량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종족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전무하거나, 있더라도 극소수인 종족을 가리킨다. 국가 단위가 아닌 종족 단위로 세계의 사람들을 구분하는 이유는 한 국가 안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여러 종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족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별개의 공동체이므로, 외부에서 누군가가 와서 복음을 전해 주어야만 종족 안에서 복음이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씀한다(롬 10:13∼14). 미전도 종족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고, 전파하는 자를 기다리고 있는 종족이다. 우리는 각각의 종족 속에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고, 세워진 종족 교회가 자신의 종족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가는 방식으로 선교를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복음이 로마제국과 유럽 대륙을 덮었듯이, 미전도 종족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아시아와 다른 대륙의 미전도 종족들에게 한국을 통해 복음이 퍼져 나갈 수 있다. 이것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남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남은 일,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마음에 품고, 우리의 남은 일을 행해야겠다. 베데스다대
  • 2009.10.22

    그들이 느낄수 있는 복음
  • 우리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바로 대답하기 쉽지 않다. 친척이, 자녀가, 친구가 전도해서, 교회에 가자고 해서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나의 삶에 그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것을 하셨고, 영원히 하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도네시아 부근의 이리안자야라는 섬에서 돈 리차드슨 선교사는 아내와 함께 싸위라 불리는 부족에게 선교하러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날 저녁 부족 남자들이 한 집에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배반당한 이야기를 하자, 이 사람들은 깔깔 웃으며, 유다는 너무 뛰어난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이 사람들에게는 잘 속이는 사람이 영웅이었다. 리차드슨 선교사는 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답답했다. 그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싸위 부족과 이웃 종족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피를 흘렸다. 선교사 부부는 그들의 상처를 약을 발라 치료했다. 그러나 전투는 계속되었다. 선교사 부부는 우리는 이제 이 마을을 떠나야 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교사 부부에게 애착을 가졌던 부족 추장이 전쟁을 그치겠다고 했다. 양 부족 사이에 화친 예식이 거행됐다. 평화를 요청한 싸위 부족 추장이 자신의 어린 갓난 아이를 상대 부족에게 전해 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흐느끼며 통곡을 했다. 상대 부족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싸위 부족은 아이 때문에 상대를 공격하지 않음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를 평화의 아이(Peace Child)라고 불렀다. 싸위 부족은 아이를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이었다. 리차드슨 선교사는 이것을 보고 나서, 싸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하나 뿐인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평화의 아이 (peace child)로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히 평화가 있게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싸위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아들을 내어 준 그 아픔을 깊이 느꼈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추장은 성경교사가 됐고, 사람들은 함께 밀림의 나무들을 베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이 됐다. 돈 리차드슨 선교사는 이와같은 자신의 선교경험을 통하여 Redemptive Analogy(구속적 유비)라는 선교의 개념을 제시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속죄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 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집 떠난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설명하셨다. 천국에 대하여는 흥겨운 혼인 잔치에 비유하셨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하나님과 천국에 대하여, 사람들이 느낄수 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이 느껴져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다. 이 선물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해야겠다. <미국 베데스다대>
  • 2009.09.25

    접촉점을 찾는 선교
  • 스리랑카에서 선교 사역을 할 때의 일이다. 복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복음을 전하기까지 보통 세 달, 여섯 달까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가 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언제 전도하나 하는 조바심이 들면서,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인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이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기로 마음 먹고 거리를 나섰다. 골목길의 한 현지인 집에 들어갔다. 처음 만난 사람이다. 집 입구에 꽤 큰 신상이 있었다. 1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필자를 맞았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전했다. 이 소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 입구의 신상에 가서 두 손을 모으고 여러차례 절하더니, 필자를 외면하였다. 그 집을 나오면서 친분을 쌓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도는 상당한 반발을 가져올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울은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하면서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아덴에 갔다 (사도행전 17장). 아덴 시에 들어 갔을 때 거리에 우상이 가득하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바울은 아덴의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아덴 사람들에 대하여 말한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행 17:22) 아덴 사람들이 종교적 열심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당신들은 틀렸소”라고 시작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을 존중했다. “나는 여러분의 종교적 열심에 대하여 관심이 있소”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마음과 대화의 장을 연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그들이 믿는 신을 언급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 17:23) 바울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하여 나는 알고 있소”라고 말하면서,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해 간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성 뿐 아니라 문학을 인용하였다.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행 17:27∼29)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문학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었다. 이것이 선교학에서 말하는 접촉점의 원리(Point of Contact)이다. 바울은 그들의 종교성, 그들의 문학을 접촉점으로 삼아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한 것이다. 창조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 부활과 구원의 예수님을 전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28∼31) 사도 바울이 우상으로 가득한 아덴을 보면서 마음이 괴로웠듯이, 오늘날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 속에 괴로움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접촉점을 찾아서 아덴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한 것 같이,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의 태도를 가지고 접촉점을 잘 사용하여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베데스다대
  • 2009.08.28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