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의 초대
일어나서 함께 가자
  • 2025.05.30

    6월 1일자 다른그림찾기 정답입니다
  • 2025년 제3회 순복음 3040 연합 가족 체육대회가 15개 대교구 3040 그리고 장년국이 함께한 가운데 5월 17일 경기 파주 영산수련원 잔디구장에서 진행됐다.
  • 2025.05.30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 이 고백처럼 사랑의 상징인 장미가 6월을 맞아 아름답게 피어났다.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는 사랑과 헌신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도 장미처럼 뜨겁게 피어나는 계절, 나라를 위한 헌신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다시 마음 깊이 새겨본다. 글·김주영 / 사진·김용두 기자
  • 2025.05.30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 4:22) 
  •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디모데후서 4장 22절) “The Lord be with your spirit. Grace be with you.” (2Timothy 4:22)
  • 2025.05.30

    연필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
  • 연필은 초등학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글은 쓰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항상 우리 주위에 있기에 그 중요함과 편리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연필 한 자루를 통해 인생의 교훈과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연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네 가지 소중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연필은 깎이는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쓰일 수 있습니다. 연필은 처음엔 길고 반듯한 모습으로 만들어집니다. 보기에는 멀쩡하고 온전해 보이지만 깎이지 않으면 아무 글도 쓸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은 깎이는 만큼 짧아지고 때론 거칠게 다듬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연필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된 시간과 아픔을 통과할 때 점점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잘못 쓴 글은 연필 끝의 지우개로 고칠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쓴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됩니다. 실수했다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셋째, 연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군가 대신 써 줄 수 없으며 오롯이 자신이 써 내려가야 합니다. 누구나 걸어온 길이 다르고 그 안에 담긴 기쁨과 아픔도 다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귀한 일입니다. 남의 삶이 더 나아 보일 수 있지만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찾아 정직하게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넷째,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안에 심이 없거나 부러져 있으면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인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입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은 외부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삶은 연필을 닮아있습니다. 때로는 깎이는 아픔도 있고, 실수를 지우는 시간도 있으며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멈춰 서 있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완성해 가시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이 부족하고 연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우리의 삶을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지나온 날들은 의미 없이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빚으신 기록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손에 인생을 맡기십시오. 지치고 넘어지더라도 믿음으로 써 내려가는 하루하루가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 2025.05.3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 2025.05.23

    우유 한 잔의 기적
  • 존스홉킨스 병원 공동설립자 하워드 켈리는 의대생 시절,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된 방문판매를 했습니다. 해질녘이면 온몸이 녹초가 되었고, 굶주림은 그를 더욱 지치게 했습니다. 어느 늦은 저녁, 주머니 속 십 센트짜리 동전 하나로는 허기를 달랠 수 없었습니다. 물 한 잔이라도 얻으러 어느 집의 문을 두드리자, 한 소녀가 나왔습니다. 소녀는 그의 딱한 처지를 눈치채고 물대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건넸습니다. 켈리가 우윳값을 치르려 하자, 소녀는 “어머니께서 친절에는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어요”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수십 년 후, 저명한 의사가 된 켈리 앞에 긴급 수술이 필요한 여성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과거 자신에게 우유를 건네주었던 바로 그 소녀였습니다. 켈리는 모든 의료 장비와 기술을 동원하여 정성껏 치료했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생명을 구했지만 막대한 치료비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퇴원 전날 그녀가 받은 청구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되었음.’ 사소해 보이는 선행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거창한 계획이나 대단한 희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필요에 기꺼이 내미는 손길, 따뜻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속에 담긴 ‘우유 한 잔’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온기가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낼지 모릅니다.
  • 2025.05.23

    교회에서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①
  • 현재의 달력에서 한 주를 7일로 구분한 것의 기원은 성경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주전 7세기경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매월 7일, 14일, 21일, 28일에 쉬는 주(週) 7일 제도를 시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주를 7일로 하는 것을 토대로 요일 제도가 확실히 자리 잡은 것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F. V. A. Constantinus, AD 272~337) 황제가 기독교를 정식 국교로 삼은 후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의 주 7일 제도와 줄리우스 시이저(G. J. Caesar, BC 100~44)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보완해 7일이 기본이 되는 주(週) 개념을 도입했다.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거쳐 주 7일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요일에 고유한 명칭을 붙였다. 각 요일의 명칭은 로마와 고대인들이 관찰할 수 있었던 태양과 달을 포함한 일곱 행성과 관련된 신들의 이름을 토대로 정했다. 태양, 달,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의 각 신들. 이는 지동설이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 천동설에 근거해 일곱 개의 행성이 지구를 돌며 시간을 다스린다고 믿었던 점성가들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후에 앵글로색슨인들이 그 명칭을 영어화해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이런 요일의 명칭이 사용된 것은 갑오경장 이후인 1895년부터이다. ‘일(日) 월(月)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라는 요일의 이름은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연관되며 로마의 일곱 행성 신들의 이름을 차용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5.05.23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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