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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희망이 있는가
2019.11.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가 야훼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편 8~11절)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슴에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 절망을 극복하고 가슴속에 찬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행복을 건설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고통과 상관없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희망이 없는 인생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이 있을 때는 살아갈 수가 있는데 희망이 없으면 기운이 다 빠져버리고 살아갈 용기와 힘도 잃어버리고 결국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치고 인생을 포기 안 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술을 퍼먹든지 그냥 방종하든지 될 대로 되라고 인생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인간처럼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늘만 뻔히 쳐다보고 있고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것입니다.

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우울증의 노예가 되어서 마음의 즐거움이 없고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대꾸를 하지 않고 완전히 고독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은 좋은 약과 같아서 심신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니까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 공명과 쾌락을 다 가지고 있어도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 마음은 공허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어버리면 살아갈 용기를 상실하고 인생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절망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물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요, 희망적인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희망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타락해서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떠난 식물들은 다 누렇게 떠서 죽고 맙니다. 물고기가 바다를 떠나면 죽고 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마음에는 희망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여러분과 나는 어떤 환경에 처해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6편 8절로 9절에 “내가 야훼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에 빈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이 육체를 입고 있는 존재로서 육체은 집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하나님이 와서 거하실 수도 있고 사탄이 와서 거할 수도 있고 빈집으로 그대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빈 공간을 세상과 마귀가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은 세상과 마귀에게 점령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빈집의 우환에 대한 예화를 드시면서 어떤 사람에게 일곱 귀신이 들어가서 그 빈 공간을 점령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아가 빈 공간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빈 공간에 자기가 들어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 공간을 점령하고 “하나님도 없다. 마귀도 없다. 내가 제일이다.”라고 자기를 마음속 빈 공간의 우상으로 세워놓고 경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의 공간에는 누가 있어야 되느냐?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과 성령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단호하게 이 마음의 공간에서 마귀와 세상을 쫓아내고 자기 자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여, 날 위하여 죽으셨으니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 지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서, 예수님이 이제 내 마음의 빈 공간의 주인으로서 와 계신다.” 이렇게 고백하며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왜 절망해야 합니까? 여러분,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그러나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만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은혜 베풀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가장 힘든 것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맡기고 난 다음에 하루를 여삼추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기다릴 때는 눈 딱 감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런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면 주님도 가장 좋은 때에 응답하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반드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증명하라.”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우리가 죄인 되어 처참한 상황에 있을 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상 더 무엇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포기하거나 버렸다면 여러분과 나는 벌써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49장 15절로 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젖 먹는 어린 자식을 여인이 못 잊는 것은 그러나 그 중에도 그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는 그 사람들하고 다르고 나는 안 그런다. 나는 끝까지 잊지 않는다. 못되게 굴어도 끝까지 잊지 않고 그를 건져내 새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준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았다고 말씀하셨으니 절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죽을 때까지 돌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금 내 상황이 어렵고 괴로워도 십자가를 쳐다보면 우리는 절망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렸기 때문에 “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나를 믿으면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채찍에 맞으므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라고 말합니다. “너의 병과 고통을 내가 짊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저주를 담당했으므로 너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되었다.”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를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했으므로 너를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절망을 하려고 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절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 60년 동안 목회하면서 절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목사가 절망했다고 하면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은 답답하고 절망할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럴 때마다 엎드려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몸 찢고 피 흘린,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절망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피 값으로 희망이 마음속에 솟아났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셨으니 내가 절망할 수가 있겠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서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내 마음을 부여잡고 그래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와서 위로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눈에 안보이지요. 그러나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숨을 쉬고 공기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은 우리 눈에 안 보여도 우리 속에 와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고난이 있으면 위로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성령이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에게 위로를 해 주심으로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을 당할 때 친한 친구가 와서 여러 말로 위로해 주면 굉장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 위로의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큰 환란과 풍파가 몰아쳐도 가슴속에 성령님의 위로가 넘치면 그 고난을 거뜬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울 때 성령님의 품안에 여러분 자신을 던지고 “성령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성령님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합니다. 성령님이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꼭 성령이 와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온 세계에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체험했습니다. 온 세계를 다니면서 기후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잠자리가 바뀌고 피곤해져서 집회장에 나가서 강단에 설 때, 다리가 떨리고 몸에 열이 나고 고통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강사로 와서 몸이 아프다고 설교 못한다면 호텔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 오직 의지할 분은 성령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이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 들입니다. 의지합니다. 성령님이여, 나는 성령님을 꽉 붙잡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성령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나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하고 집회 장소에 가서 강단에 서면 성령이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몸에 새로운 힘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겨서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성령은 위대한 위로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위로를 여러분이 늘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란이 심해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이유가 성령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희망을 가지는 것은 천국의 약속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천국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끝나면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잠시 잠깐이요, 영원히 살 천국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언제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날 버려도 예수님은 우리를 안 버리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품어주시고 조금 나쁘다고 발길로 차버리면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은 좋을 때도 우리와 같이 계시고 어려울 때도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절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희망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라

셋째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희망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희망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한 국가와 민족이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하는 것은 국민들이 그 마음속에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는 백성은 흥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희망을 생각하고 희망을 꿈꾸고 믿고 말하십시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다가와도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로써 환경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라도, 여러분은 그 속에 들어가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축복이 다가온다. 십자가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축복이 오는 것을 꿈꾸며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입술의 말로 고백하면 여러분이 여러분 운명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폐병에서 살아나고 난 이후부터 시작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아니했는데 성령께서 저의 마음속에 역사해 주셔서 희한하게 부정적인 기대를 깡그리 버리기로 작정을 했었습니다. 아무리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거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언제나 잘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나와서 저 불광동에 가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비참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 나는 매일 같이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부모님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는 어디든지 슬픔과 고통에 대한 말은 기록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저의 마음에는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다. 다음날은 금번 달보다 나아진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진다. 하나님께서는 같이 하시므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가슴속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줄기찬 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일 이러한 기대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저는 파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교회를 지을 때에도 정말 칠흑같이 어둡고 캄캄할 때,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홍수로 휘몰아 올 때도 무언지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 꿈과 희망이 샘물같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뒤로 물러가면 안 된다.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은 꿈과 희망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오늘날 우리 교회를 있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꿈을 적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당사자가 내 자신에 대해서 매일 적습니다. 왜냐하면 과거를 돌아볼 때, 내가 과거에 가슴 속에 그려놓고 매일 적고 바라보는 것이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가슴 에 그려놓고 바라보고 늘 적는 그 그림이 내일의 나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90이 되어도 지금같이 활달하게 산다. 그렇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 이상적인 자기 미래를 꿈 꿀 수가 있습니다. 최고의 이상적인 자기를 마음에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성령님이 우리의 보혜사가 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감싸고 있으므로 희망을 안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잘 살 수 있습니다. 병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에게 희망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가슴속에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어둡고 캄캄한 좌절 속에 빠졌을지라도 가슴에 예수님을 모시면 부활의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두 성령의 불을 받아 귀신을 몰아내고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에 주님의 생명이 강물같이 넘쳐흐르게 도와주옵시고 모두 생명으로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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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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