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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2019.11.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 성취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든지 미래에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현재에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인 말씀이나 철학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현재적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종교적인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속에 그려놓고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봄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도화지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그림을 그려 놓고 항상 바라볼 때, 마음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면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병이 낫기를 원하면 병 낫고 건강하게 된 자기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놓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마음속에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현재적 신앙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라봄의 법칙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될 때까지는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5세까지 무명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을 바라봄으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나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많아서 너무 늦었다.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생각하기에 늦은 것이지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너무 늦었다”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어떠한 장애물도 넉넉히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100세 된 아브라함이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불가능이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아무리 해도 대답이 오지 않아요. 그리고 마음에 믿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많이 했는데 믿어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데 하루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천막 안에서 꿇어 엎드려서 부르짖기만 하고 천막 밖으로 나오지 않는 너는 천막 밖으로 나오라.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라. 별들을 헤아려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밤마다 천막 밖으로 나와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 별처럼 많은 후손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드디어 믿음이 생겼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로 6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것을 보고 믿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야로 마음속에 바라볼 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베풀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바라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잘못 바라보면 부정적인 믿음이 생기고 잘 바라보면 긍정적인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방법을 바꿔서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함으로써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함으로써 물질의 축복도 얻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축을 많이 주셨는데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들이 가축들이 먹을 초지 때문에 자주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네가 좌라 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네가 먼저 떠나라.” 그러니까 조카 롯은 물이 넉넉하고 좋은 땅을 택해서 떠났습니다. 그리니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풀도 없고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아직까지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점령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면서 “아직 자기 소유가 되지 아니한 것을, 아직 없는 것을, 마치 자기 소유가 된 것처럼 내게 있는 것처럼 바라보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봐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한 야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뿐 아니라 야곱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가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였으나 얻은 재산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외삼촌은 20년 동안 조카를 맨손으로 부려먹었습니다. 여러 번 월급을 변경하고 야곱을 속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어리석은 제안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이런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외삼촌, 내가 외삼촌의 양을 칠 텐데 외삼촌께서 이 양 무리 가운데 얼룩덜룩이 점박이를 전부 옮겨가십시오. 나는 순수한 색깔의 짐승을 치겠습니다. 그런데 이 순수한 색깔을 가진 양이나 염소가 얼룩덜룩이를, 점박이를 낳으면 그것은 나의 월급이 되게 하십시오.”

야곱이 이런 제안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대한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1장 10~12절에 보면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래서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만들고 그 가지를 짐승 떼들이 풀을 먹고 물을 마시는 구유 앞에 병풍처럼 세워놓았습니다. 짐승 떼들이 물을 마실 때, 새끼를 배는데 그때 얼룩덜룩한 나뭇가지를 바라보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도 그곳에 팔짱을 끼고 서서 짐승 떼들이 새끼를 밸 때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였습니다. 힘차게 그 얼룩덜룩한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그의 마음속에 ‘모든 새끼는 얼룩덜룩이로 잉태된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얼룩덜룩이 새끼를 꿈꾸고 그것을 확실히 마음속에 믿었습니다. 그리고 늘 입술의 말로 시인했습니다. “새끼를 가지면 얼룩덜룩이가 틀림없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다음부터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낳았다 하면 얼룩덜룩이입니다. 외삼촌은 울고 야곱은 웃고. 얼마 있지 아니하여 야곱은 한 떼, 두 떼, 바다 모래 같은 많은 짐승 떼를 거느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그 마음속에 얼룩덜룩이의 양과 염소 떼가 창대하게 태어나는 것을 꿈을 품고 그것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고 입술로 시인할 때, 성령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3.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오면 강단 앞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왜 교회마다 십자가가 있는가?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 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린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의미가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십자가상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우리가 기억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일생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그 현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의 염려하는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내가 앓는 고통을 다 당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치료를 베풀어주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우리 삶의 가시와 엉겅퀴를 제하시고 모든 가난을 제하신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이 말씀을 붙들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천국과 영생을 가져오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된 사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 말씀을 붙잡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기 모습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고층 탑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강단에서 십자가를 세워 놓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항상 바라보고 내가 그 안에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마음속에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나의 꿈꾸고 계획한 목표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마음속에 바라보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 전체는 낭패를 당하고 절망적인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새로워지고 건강해지고 부유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을 마음속에 꿈꾸고 바라보아야 될 것입니다. 어둡고 깜깜할 때, 광명한 소망을 바라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개인이나 민족은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꿈을 마음속에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는 사람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꿈과 환상이라는 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 성령께서 그 꿈과 환상이 현실에 생겨나도록 역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슴에 꿈을 품지 않은 사람은 내일에 창조적인 현실을 가져올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주할 때에 목표 없이 뛰면 아무리 잘 뛰어도 상을 타지 못합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때는 초등학교에도 시험을 쳤습니다. 일본 선생의 앞에서 시험을 치고 난 다음,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서 경주를 시키는데 일본말로 말을 하니까 제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출발선에 세워 놓고 난 다음에 뛰라고 하는데 뛰는 데는 제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집으로 뛰라고 그러는 줄 알고 죽을힘을 다해서 집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니까 뒤에서 아버님이 따라오시면서 고함고함을 치면서 제 이름을 부릅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는데 난 집으로 가다가 꼴찌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에 떨어질 뻔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뛰는 데 자신이 있어도 목표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뛰면 그 뛴 것이 효과가 없습니다.

공부도 목표 없는 공부는 시간 낭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어느 녀석이 학교에 와서 집에 갈 때까지 늘 책상 밑에 소설책을 놓고 읽었습니다. 그 집에 가니까 그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 자랑하는지 몰라요. “우리 아들이 주야로 공부하니 소망이 있다” 그러는데 그 주야로 공부하는 책상에 쌓여 있는 것이 전부 다 소설책입니다. 그는 공부는 하되 목표가 없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기도했으나 그 기도는 헛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믿음의 목표를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목표를 가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일으켜서 우리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생길을 살아라. 이러한 목표를 정하라.”고 마음에 소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어버렸거나 퇴직을 했거나 사업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로 목표 설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저앉아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주님 앞에 기다리며 간절히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목표로 예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좋은 것을 예비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 여러분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새로운 길을 예비하시고 새로운 꿈과 목표를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꿈의 수레인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수레가 없이는 꿈은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기적을 가져옵니다. 믿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짐으로 성령의 그릇이 되면 그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겼으면, 믿음을 입술의 말로 고백해야 합니다. 가슴속에 꿈을 품고 믿음을 가지고 입술의 고백으로 고백하시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내 자신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꿈을 현실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바라봄의 법칙을 잘 알고 사용하여 마음속에 꿈을 이루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해서 교회로 보내시고 하나님 섬기고 예배하고 찬양하기를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다가와서 죄짓게 만들고 허물진 인생으로 만들고 병들게 하고 저주받게 하고 멸망하여 지옥으로 가게 하는 원수 마귀를 물리쳐 주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임하셔서 기적을 행하여 주옵소서. 모든 병마는 다 물러가고 모든 죄지은 마음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가난과 저주를 밀어내시고 축복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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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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