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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자
2019.08.0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누가복음 4장 18~21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여 일생동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이 첫째 아담의 후손들이 짊어지고 살아야 할 운명인 것입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그런데 이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모두 다 직접이냐 간접이냐를 막론하고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때문에 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형벌을 명하셨습니다.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너희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되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첫째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오늘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마귀의 지배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죄라는 약점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한 죄를 약점으로 잡고, 인간은 영원히 죽어야 한다고 소리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목표는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느냐?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탐심을 넣어서 삶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탐심의 근본입니다. 고로 인간에게 탐욕을 한량없이 퍼부어 인간 가운데 분쟁과 싸움이 끊일 날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불행은 탐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탐심이 가득하면 삶의 만족이나 행복이 없고 결국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또 탐심은 가족 간에, 이웃 간에 끊임없는 분쟁과 미움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범죄들을 보십시오. 모두 다 탐욕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배후 세력인 마귀를 멸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무거운 짐을 상속받아 버둥대며 고생하고 사는 후손들을 건져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 되셨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야만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청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2.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의 대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대표하는 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태초에 아담을 유혹했던 마귀는 죄가 없는 의로운 사람이신 예수님을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죄로 붙잡으면 이 세상을 마귀의 지배하에 묶어 놓고 무제한 적으로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명의 첫 발을 내딛으시자마자,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을 마귀가 탐욕을 무기로 시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제압하시고 본격적 의로 사람들이 지고 있는 마귀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 내려가 안식일에 회당에서 자기의 사명을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21)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된 만족과 쉼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영혼의 잘됨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의 짐을 청산해야, 그 다음에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성회를 했을 때, 매일 저녁 7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날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는데, 이슬람교를 믿는 어떤 부인이 나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슬람 신도인 당신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부인이 하는 말이, “한국 사람은 머리가 좋다지요!” 하면서 다짜고짜 손을 내밀면서 손금을 봐 달라고 합니다.

그 부인이 말하기를,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손금을 잘 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신문에서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읽었고, 또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당신의 성회에서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므로, 내 운명을 좀 봐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손금으로는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손금보다 위대하신 분을 찾으셔야 합니다. 내가 성회에서 그분에 대하여 설교하고 있으니, 그분이 누구신지 알기 원하시면 그리로 찾아오십시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무언지 모르게 초조하고, 내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첫째로 죄책과 정죄의 짐이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 가운데 태어나 일생동안 죄의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보다 깨끗하다. 네가 나보다 깨끗하다“ 서로 잘났다고 아웅다웅하지만, 이것은 인간적인 대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허물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부패하게 된 인간은, 겉으로는 깨끗한 체하고 교육을 잘 받고 점잖고 훌륭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욕심이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허물의 짐을 벗기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방되기를 원해도 인간적인 힘으로는 허물의 짐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하면 그만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또 마십니다. 도박꾼도 늘 도박을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 또 도박합니다. 자기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다, 우리는 심신의 질병이라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병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 저기 갖가지 병이 들어서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몸의 병도 무섭지만, 마음의 병도 무섭습니다. 오늘날 탐욕과 욕심과 시기와 분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갑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생활고의 짐도 있습니다. 요사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지 못해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뿐 아니라 노인들도 생활고로 고통을 당합니다. 옛날 같으면 집에서 손주나 보면서 편안하게 살 터인데,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결국에는 져야만 하는 죽음의 짐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이와 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짐을 벗고 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 예수님께 짐을 맡기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짐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 모두를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은 예수님께로 돌아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가지신 분입니다.

그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상으로 오셨다는 것은 굉장히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코드가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코드가 맞으려면 예수님과 같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 시기와 분쟁과 분노와 질투가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교만하여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높이려고 하면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에는 결코 평안과 쉼이 없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신자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겸손하게 낮아지는 자를 주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내 마음의 보좌에서 나를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보좌에 앉아서 주장하는 것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앉을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보좌를 점령해서 내가 먹고 마시고 눕고 일어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순종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쉽게 “주여, 믿습니다. 주님을 따라갑니다.”라고 말은 하지마는, 실제적으로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좇아 자기 계획을 다 세워놓고 난 다음에 “주여, 믿습니다. 와서 도우소서.”라고 말함으로 주님을 심부름꾼이나 일꾼으로 삼고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쉼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고 참된 쉼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고집이 깨어지고 주님께 모든 짐을 맡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른편으로 가라 하시면 오른편으로 가고, 왼편으로 가라 하시면 왼편으로 가야 합니다. 깨어진 사람, 잘 길들임을 받아서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 온유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갖춘 사람, 이러한 사람이 주님께 모든 짐을 맡기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멍에라고 하면 고통스럽게 생각하는데, 멍에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멍에란 짐승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소나 말이 짐을 쉽고 가볍게 걸머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사람들도 짐을 질 때 지게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지게를 사용하지 않고 짐을 짊어지면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중동에서는 밭을 갈 때 멍에를 어미 소에 얹어 놓고, 그 다음 같은 멍에 속에 새끼 소의 목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어미 소가 아무리 힘들게 밭을 갈아도, 새끼 소는 힘들지 않습니다. 멍에를 어미 소가 메고 있기 때문에, 새끼 소는 어미 소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농부는 이렇게 해서 새끼 소에게 밭가는 법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십자가인데, 예수님께서는 그 멍에를 홀로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 밑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의 문제는 내가 멍에를 짊어졌다. 질병의 문제도 내가 멍에를 짊어졌다. 저주의 문제도 내가 멍에를 짊어졌다. 죽음의 문제도 내가 멍에를 짊어졌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멍에 속으로 들어와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모든 짐을 내게 맡겨라. 그러면 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의 짐을 주님께 다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친히 돌보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성회를 인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그곳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폭발해서 화재가 일어나고, 도로가 무너지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저는 호텔에 있었는데, 설교 준비를 마치고 성회 장소로 가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니, 성령이 충만하고 온 몸에 전기 스위치를 꽂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야아! 오늘 저녁에는 하나님의 대단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사도행전에 보니까 성도들이 기도할 때 모인 곳이 진동했었는데, 내가 오늘 기도를 많이 했더니만, 내가 목회하는 동안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는데 오늘 집이 다 진동하는구나!’ 그렇게 감격을 하고 있는데, 다음 순간 그게 아니었어요. 하늘도 움직이고 땅도 움직이는데 저는 평생에 지진을 처음 당했습니다.

호텔 건물이 삐걱 삐걱 하는데, 침대가 날아다니고 램프 스탠드가 박살이 나고 텔레비전이 떨어지고 몸을 가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성도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가족들도 주님께 맡깁니다. 나는 이제 주님께 가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원래 우리 일행은 20층짜리 호텔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미국에서 예약을 담당한 분의 비서가 깜박 잊고 예약을 안 했던 것입니다. 그때 지진으로 20층짜리 호텔의 식당이 무너져서 거기 있던 사람들이 죽었는데, 만일 우리가 20층짜리 호텔에 묵었더라면 우리 일행 장로님과 집사님들이 그 시간에 그 무너진 식당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약을 담당한 비서가 잊어버린 것에 대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는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친히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평안과 쉼을 누리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생활이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은 우리에게도 짐은 있지만 그 짐을 예수님께서 져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의 근본을 찾아서 예수님의 보혈로 쫓아내고 이제 예수님께 맡긴다면 쉼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천당 가기 위한 것뿐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함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선물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 도>

자비롭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셔서 성령으로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성도들 모두 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강물같이 흘러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기적이 일어나며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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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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