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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품은 가슴
2019.04.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장 27절)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침공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백성들 중에서 싸움에 나갈 자를 모집했는데 3만 2천 명이 싸우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슴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사람은 어떤 싸움에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마귀가 주는 두려움

인간의 삶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감정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크고 적은 두려움의 공격을 받습니다. 두려움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질병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버림당할까 하는 두려움 수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크든 작든 간에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어떤 것이든지 이것이 오랫동안 마음을 점령하게 되면 그 삶이 파괴되고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불안은 근본적으로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마귀가 인간의 마음을 점령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전혀 없었습니다. 가슴속에 평안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반역하고 나자 아담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서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게 오는 편지 중에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하소연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앉아서도 두렵고 서서도 두렵습니다. 일이 안 될 때도 두렵고 일이 잘되어도 두렵습니다. 불행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유 없는 두려움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두려움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심을 가져다주는 것은 원수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마귀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을 줍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의 믿을 것을 무력화시켜서 마귀에게 저항할 힘을 잃게 만든 다음에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아버님이 과수원을 했는데 우리가 개를 십 수 마리 키웠습니다. 개가 사람이 오면 뛰어 나가서 짖는데 달아나는 사람은 영락없이 물립니다. 그러나 달아나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사람은 개가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할뿐이지 결코 달라 들어서 물지를 못합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면 그 두려움의 파장을 개가 느끼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하면, 마귀가 와서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두려움과 불안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려움과 불안은 마귀가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마귀를 대적하고 가슴속에 평안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할 때, 비로소 가슴속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나무 사이에 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품에 숨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시 91:1~2)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품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어미 새가 그 새끼를 날개 아래 숨기고 깃으로 덮어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품의 안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캄캄한 밤이 와도 어머니의 사랑의 품에 안겨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기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면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안을 마귀에게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마귀가 두려움을 가지고 공격할 때,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야고보서 4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긍정적인 가슴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지 않으니까 자꾸 달려들지요.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피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권세를 가지고도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잘못이지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는 도둑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늘 조심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에도 도둑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여러분에게 와서 마음의 평안을 빼앗고 가정의 평화를 빼앗고 화목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다가올 때, 여러분은 서로 원망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는 안 되지요. 오늘 이 시간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마치 벌떼가 와서 집을 덮친 것같이 집안 분위기가 저기압일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그럴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 집안 분위기가 우울하고 저기압은 마귀가 시험을 하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그럴 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향하여 호령을 칩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집에서 떠나가라!” 그러면 얼마 있지 않아서 봄바람 같이 신기하게 모든 것이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고 평안과 온화함을 기쁨이 온 가정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 권세를 행사했더라면(행사하지 아니했더라면 이라고 말씀) 수없이 많은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고 수많은 마음의 파탄을 부부 간의 파탄 삶의 여러 가지 두려움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평안과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3.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

여러분께서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을 다 버리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 내가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어떤 부부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남편이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만 회사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절망하기를 거부하고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습니다.

생활은 점점 더 절망적이 되어서 더 이상 살아갈 길이 막막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부는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도 절망하기를 거부하고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생활이 어려워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골목에 처하게 되자 “이왕 죽을 바에는 마지막으로 순복음교회에 가서 운명을 결단 내리자.”하고 저희 교회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 한 번만 기도해 주시면 우리 운명이 바뀔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은 기대에 넘치는 말을 하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위해 평범한 축복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편지에 보니까 그때 내 기도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고 예수님의 차랑차랑한 목소리의 이와 같은 말씀이 그의 영혼 속에 뚜렷이 들려오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 네가 오랫동안 잘 견딜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겪고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이제 내가 네게 상을 주겠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 후로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는데 3일 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외국 기업에서 자기 발로 걸어와서 30만 달러어치 물건을 수출 계약을 맺고 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꿈과 믿음을 품었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죽음이 변하여 생명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것을 꿈꾸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꿈의 그릇도 반드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꺼져가는 소망도 아니고 죽어가는 소망도 아닙니다. 살아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꿈을 품고 늘 희망차고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이나 절망적인 말을 하면 나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남도 희망을 잃게 되고 맙니다. 모든 일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잘 되는 것도 있고 못 되는 것도 있습니다. 축복 받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좋게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지난 60년의 목회를 되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늘 희망의 전도자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 성도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못 살겠다 변두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희망을 주는 교회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받아 변화되고 기적을 체험하고 꿈과 희망을 붙잡고 오늘날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절망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힘차게 선포했고 성도들은 가슴속에 희망을 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슴속에 꿈과 희망과 평안을 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의지하면 용서와 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면 성령 충만과 거룩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주와 가난이 청산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며 부활과 영생, 천국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슴에 품고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한 일들뿐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의 평안으로 변화시켜주시고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절망하고 낙담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오니 늘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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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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