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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2019.02.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장 1~10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라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이 업어서 성전 미문에 데려다주면 하루 종일 길가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베드로의 마음속에 ‘이 사람이 오늘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라는 확신이 용솟음쳤습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주셔서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될 것을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주려고 쳐다보라고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올라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돈이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속에 실망이 꽉 들어찼습니다. 은과 금이 없는 사람이 왜 자기에게 우리를 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단호하게 명령을 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는 어리벙벙하게 앉아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자 갑자기 무릎이 펴지고 다리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구걸이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 받은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그에게 동전 몇 푼만 주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면 그 날 끼니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걷지 못한다는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평생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면서 살다가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인생의 문제보다도 영원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현실적인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찌릿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준다.”고 말했는데 베드로는 자기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았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은과 금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면 인생의 어리석음을 만날 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게 있는 것이 있으니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겠다!” 적어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베드로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나에게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첫째로, 내게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에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름을 주셨어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을 주신 것은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바로 죄를 사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양 손과 양 발을 대못에 박히시고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음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 중에 30년이 넘도록 이단 사설에 매여 있다가 회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어머니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전도했으나 도무지 딸의 말을 듣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만 교회에 가달라는 부탁에 못 이겨 예배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의 이름과 그 보혈에 대한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사람처럼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이처럼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어떤 부부의 간증을 들었었는데 남편이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는 것입니다. 참다못한 부인이 마지막 방법으로 남편에게 철야예배를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철야예배를 드렸는데 어떤 집사님이 남편에게 와서 “당신 알콜 중독인데 술을 끊지 않으면 곧 죽습니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두려워진 남편이 아내와 기도원에 올라가 7일 금식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 옆에 검은 사람이 쫓아다니면서 술을 먹어보라고 하고 아내를 때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더니 귀신이 떠나가고 그 날 이후로 술을 딱 끊고 착실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날에도 일어납니다. 오늘날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쫓아내면 귀신이 나갈 리가 없지요.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대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신유기도가 끝난 후 간증시간에 어떤 부인이 엑스레이 2장을 가지고 나와서 그리고 간증하기에 “코에 중한 병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의사들이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눈 깜짝 사이에 나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엑스레이를 가지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에 전문가인 의사가 마침 집회에 참석했다가 나를 붙잡고 하는 말이 “당신 가짜가 아니죠? 진짜죠?” 그러는 겁니다. 그러고는 내가 쓴 ‘4차원의 영성’을 손에 들고 “이거 거짓말 아니고 참말이죠?” 또 그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거짓말 같으면 안 읽으면 되지 않느냐? 내가 뭐 할 일이 없어 거짓말을 하고 다니겠느냐?”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의사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의학적으로는 그 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나을 수가 없는 병인데 순식간에 낫는 것을 보고 너무나 믿기지 않아서 진짜인가 자꾸 물어본 것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완전히 예수 믿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고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고 생활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병을 고치고자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절)라고 말씀하고 계셨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간 기도하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에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진짜로 알면 목숨을 걸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매달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쫓아내서는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나가는 것이 자기의 멸망이므로 귀신도 안 나가려고 끝까지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우리의 것임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셨을 때,  벗고 또는 굶주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를 받아 우리 삶에 가난과 저주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육신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부활과 영생을 소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이요 그 속에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린 모든 공로가 들어 있으며 그 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2. 함께하시는 성령님

둘째로, 내게 있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는 고독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고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리고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있어도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독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에는 나 혼자란 없습니다. 언제든지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고백하십시오.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혼자 인생을 살지 않는다,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산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여러분 혼자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함께 계시니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여럿이 함께 하면 넉넉히 이겨내는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해도 이처럼 힘을 얻는데 하물며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손을 내밀라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이라는 길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사람은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도 못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하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만이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사슬에 매여서 불의와 더러움에 매여져서 질병에 매여져서 가난에 매여져서 죽음에 매여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갖가지 문제에 매여서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앉은뱅이인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앉은뱅이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과 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으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 3장6절)’ 그렇게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의 능력으로 그들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구세군 창시자인 윌리암스 부스(William Booth)에게 “당신의 전도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런던의 빈민가를 보았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내게 금과 은은 없었지만 나의 전부인 그리스도를 전하여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것은 사랑의 외침인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나 걷기를 바라는 베드로의 사랑의 외침이 그를 온전하게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저주와 죽음 때문에 절망의 길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교회에 데리고 와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의 삶입니다.

교회가 구제 사역을 하는 것은 그들의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서 참으로 귀한 사역입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명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인생의 근원적이고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이름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아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긍휼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의 삶이 마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장애인과 같이 서럽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아 성령받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오니 날마다 인도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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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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