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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에덴의 회복
2018.12.0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 고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5~17절)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빛을 지으시고 기뻐하셨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갖가지 생물들을 지으시고 기뻐하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를 거하게 하셨는데 에덴으로 ‘기쁨’이라는 뜻은 그야말로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1.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사건

그런데 그 기쁨을 깨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장 16절~17)”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선악과는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하는 과실인 것입니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는 의미이고 ‘악하다’는 말은 나쁘다는 의미인데 선악과를 따먹으면 ‘좋다’와 ‘나쁘다’를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주의 절대 주인인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주인 노릇을 하면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과 다투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집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4절로 26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빈 집은 한 개인일 수도 있고, 한 가정일 수도 있고, 사회나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빈 집에는 좋은 주인이든 나쁜 주인이든 주인이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주인으로 들어오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든 고통을 당하고 결국 파멸하고 마는 것이 되고 맙니다.

에베소서 2장 2-3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마귀가 주인이 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죄를 지으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면 기쁨과 행복의 에덴을 잃고 그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하게 됩니다. 창세기 3장 17~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삶에 저주가 다가왔을 뿐 아니라 영이 죽어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공비들의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부산으로 아버님과 식구들이 다 이사를 갔는데 당시 조부모님께서는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고집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조부님을 위해서 저를 남겨두고 떠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제가 국민 학교 5학년 때였는데 학교 갔다 오니 나만 남겨 놓고 다 이사를 가 버렸습니다. 그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방에 가도 아무도 없고 건넌방에 가도 아무도 없고 그냥 하늘 보며 울고 땅을 보고 울고 정신없이 울었습니다. 그때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깊이 느꼈습니다. 그렇게 가족과 분리돼 살았던 경험은 그 때 내게는 뼈와 살을 깨뜨리고 찢어놓는 슬픈 일이었습니다.

가족과 단절이 이렇게 슬픔을 준다면 하나님과의 단절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길 때 행복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면 불안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지은 후 인간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계가 죄로 말미암아 이처럼 고통과 탄식으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원수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고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슬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

그러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폐하시고 우리의 구원의 길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의 길은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세기 3장 15절)”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차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류의 죽음을 철폐하시고 진정한 생명을 복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놀라운 계획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은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길을 찾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저마다 진리의 길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길이요,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달리기 경주를 할 때, 아무리 빨리 달려서 1등으로 들어와도 정해진 길로 뛰지 않으면 실격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잘못된 길을 달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구원을 받을 이름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고 또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가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셨으므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도 오직 예수님만 아십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생명을 얻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길을 잃은 존재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 절반이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쟁과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저마다 가슴 속에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근본 되신 하나님과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우울한 것입니다. 여러분, 길을 잃어버린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소련 공산당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크렘린 궁에서 제가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크렘린 궁에 들어가서 집회를 여는데 소련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들었습니다. 집회 강단에 서보니, 제 뒤에는 레닌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레닌의 동상 앞에서 제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을 때, 모든 소련 사람들이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모두 다 손을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는가?’ 싶고 하도 이상해서, “예수님을 안 믿던 사람이 오늘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만 손을 들라”고 하니 그래도 모두 다 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러냐?”고 물으니까 그들이 대답하기를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은 물질로만 돼 있지 영혼은 없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제가 소련의 여러 도시에서 집회를 했는데 그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아무리 ‘인간은 물질로만 돼 있다’고 가르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을 누리고 살려면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잃어버린 모든 자들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 가면 새로운 신분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가 형기를 다 마치고 나오면 출소할 때 죄수복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죄인의 신분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옷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모를 때, 죄인의 신분으로 죄인의 옷을 입고 살았으나 예수님을 믿고 나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의 신분으로 예수님께서 보혈로써 값 주고 사신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3. 오중복음은 에덴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오중복음은 아담이 잃어버렸던 에덴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 때는 죄가 없었고 더러움도 악이 없었고 질병도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가 없었으며 죽음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청산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에덴에서 누렸던 의와 거룩함과 성령의 충만, 건강과 치료와 풍요로움,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중복음은 잃어버린 에덴의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목회생활 하던 60년 동안에 발견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환경이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천막교회에 가마니를 깔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춥고 덥고 굶주렸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기쁨의 샘이 넘쳐났고 이로 인해 행복했던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장 9절~11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은혜를 주심으로 기쁨이 가득한 에덴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똑같이 광산에서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금을 캐내고 어떤 사람은 종일 괭이질을 해도 아무것도 캐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은 종일 헛된 괭이질 만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금을 캐며 사는 값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삼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슴속에 꿈과 믿음을 가지고 살면 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오중복음을 삼중축복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의 말로 선포하셔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에덴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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