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2025.06.08
/ 예레미야 29장 11~13절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장 11~13절)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인이 걸어가는 하나님의 길이요, 또 하나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간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세상의 도전과 유혹 가운데 두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새로 세워진 지도자도 반드시 하나님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2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서 주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29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서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온 세상이 불안, 염려, 근심, 걱정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의 평안함을 얻길 원합니다.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 속에 살다 보니까 이 세상에 우울증이라는 병이 많은 사람에게 절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6~7명 중 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는데, 우울증의 마지막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한참 뛰놀며 해맑게 자라날 중고등학생들이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며 조현병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 방면에 전문적인 지위를 가진 의사를 만나 상담하고, 치료받아도 상태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진짜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안 가운데 있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그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참된 평안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의 고통과 근심만 더해집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고 상처만 줍니다.
오직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같은 참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평안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때 내가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사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 목사도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넘치게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터인데,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평안함입니다. 화평, 평안, 샬롬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임하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되고, 기쁨이 넘쳐나게 되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인정하신다. 나를 도와주신다’라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확신 속에서 다가오는 평안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하지 않고, 염려하지 아니하고, 분노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 마음의 평안함이 임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시편 4편 8절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참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우린 기도해야 합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온 세계를 떠돌아다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은 평안이었습니다. 늘 쫓겨 다니면서 불안,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평안을 외쳤습니다. “샬롬!” 만날 때도 “샬롬!”, 헤어질 때도 “샬롬!” 하나님의 평안함이 오도록 저들은 인사하고 기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전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600만이 학살당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유대인인 것이 발각되기만 하면 그들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서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안을 외쳤습니다.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주여! 우리에게 샬롬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샬롬이 임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 당하기 직전에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지금 나라가 완전히 풍전등화 같은 어려움 속에 처해서 멸망 당하기 직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고 고난이고 슬픔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고난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해가는 이 시점에서 국가의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이렇게 꿈과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문제만을 바라보고 쉽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부정적인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하기에 쉽게 무속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지금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지금 너무나 여러 가지로 불안한데 나의 미래에 대해서 좀 얘기해 주세요.”
이 세상에 그 어떤 점쟁이도 미래를 얘기해 줄 점쟁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만 더 깊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참된 꿈과 희망을 주실 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을 넘어서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 문제만 바라보고 절망하고 좌절하며 무속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문제 속에 갇혀서 절망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은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들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절대 희망의 주님이 되십니다. 위대한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절대 희망의 주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찬란한 미래와 희망과 꿈을 가져다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 쓰러져 넘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해 주시며 우리를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인간의 세계에는 실패가 있지만 하나님의 세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희망의 내일로, 축복의 내일로, 기적의 내일로 걸어갈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설명되어 있는데 여러 번 반복된 말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기독교 신앙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시간표이고, 우리 기독교는 고난의 저녁을 넘어서서 희망의 아침의 문을 여는 영원한 희망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절망을 말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저녁을 말하고 밤을 말하지만, 우리는 새벽을 말하고 우리는 희망의 새날을 선포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잠시 잠깐 저녁이 다가오지만, 잠시 잠깐 절망의 밤이 다가오지만, 잠시 잠깐 문제와 고통과 고난의 밤이 다가오지만, 이 고난의 밤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희망의 새벽이, 축복의 새벽이, 기적이 밝아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우리를 다시 세워주셔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대한민국이 건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나갈 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이 응답하시고 놀라운 일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예레미야 29장 1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부모님은 자식의 마음에 무슨 소원이 있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동시에 자녀들은 또 부모님이 자기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녀 간에도 대화가 필요할 때, 대화를 통해서 부모님은 자녀의 뜻을 알게 되고, 자녀는 부모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대화가 기도입니다. 기도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고 평안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몸이 병들어 아플 때도 기도하고, 건강해서 내가 무슨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좋으나 나쁘나 우리는 어느 때든지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야훼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문제 속에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강력한 기도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응답이 다가오고 기적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할 때 고난의 밤이 지나가고 희망의 새벽이 밝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또 찾고 또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희망과 미래입니다. 우리에게 예비 된 희망과 미래의 축복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와 씨름하지 말고, 사람들 찾아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원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옵소서.’ ‘주님! 이 질병에서 내가 놓임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보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안타깝게 여기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우리의 응답자가 되어 주셔서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고민도 다 아시고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매달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마음에 평안함이 임할 때, 거룩한 꿈과 소망을 가지고 부르짖으며 나아가서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는가?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길은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이요 축복입니다.
사람의 길은 불안, 염려, 근심, 마음속에 상처와 고통만 남겨주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길을 가다가 너도나도 좌절하고 실패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람의 길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어떠한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길을 가면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놀라운 평안함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대한민국에 평안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샬롬이 온 한국을 뒤덮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더 이상 다투고 나누고 싸우지 말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되,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된 평안함이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413장을 작사한 호래시오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씨는 시카고의 저명한 변호사였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였고, 신학교 이사 및 운영 위원이었고, 무디 부흥사를 도와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근데 1871년에 그 집에 불행이 몰아닥쳤습니다. 네 살 난 아들이 성홍열로 열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너무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는데 그 화재가 온 시카고를 뒤덮어서 본인이 섬기던 교회도 다 불타고, 본인의 대저택도 다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그 절망 가운데서 주님만 바라봅니다. 자기 집 다 불타서 잿더미가 된 것은 뒤로 하고 교회가 불탄 것을 걱정하며 빨리 교회를 건축 해야겠다고 목사님을 도와서 매일 같이 기도하며 교회 건축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몸이 많이 지치고 병약해서 쉼이 필요했습니다. 부인 애나 스패포드 씨는 몸이 너무 약해서 ‘아무래도 내가 좀 휴식을 취하고 좀 몸을 추스려야 되겠다.’ 그래서 부인과 딸 넷과 함께 유럽에 같이 가서 좀 쉬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고 예약을 했는데 본인은 처리해야 될 일들이 있어서 같은 배를 타지 못하고 부인과 네 명의 딸을 실은 프랑스 정기 여객선 빌 뒤 아브르호가 313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을 떠나 대서양을 순항하게 되었습니다.
떠난 지 며칠 안 돼서 1873년 11월 22일 새벽 2시 이 여객선이 스코틀랜드의 철제 선박인 로크 언호와 정면충돌하면서 가라앉게 됐습니다.
이 사고로 226명이나 목숨을 잃습니다. 네 딸을 붙잡고 기도하던 엄마가 눈을 떠보니 네 딸은 이미 다 물속에 장사되었고 본인만 겨우 생명을 건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국 웨일스에 도착한 부인이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혼자 살아남았음.” 이 전보를 받고 스패포드 씨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친구들에게 그는 담담히 말을 합니다.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마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한꺼번에 다 잃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도 잃고 네 딸을 잃고 전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구조되어 있는 아내를 구하려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하던 중에 선장이 와서 얘기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지금 지나가는 이 지역이 선생님의 아이들이 배가 충돌해서 세상을 떠난 그곳입니다. 배가 침몰한 지역을 우리가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선실에 들어와서 밤새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제게 주십니까?” 울며 주님 앞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밤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임해서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 샘 솟듯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새벽 동이 틀 때 무릎을 꿇고 펜을 들어 그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니까 때때로 잔잔한 강같이 평탄하기도 하고 큰 풍파가 다가오는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1절을 짓습니다.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선박 밖을 내다보니 배를 삼키듯이 몰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2절을 짓습니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그러고 나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3절을 짓습니다.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그러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높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 뭉게구름을 볼 때 마치 자신의 네 딸이 천국에서 ‘아빠!’하고 자기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4절을 짓습니다.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스패포드씨는 그 후에 다시 얻은 두 자녀와 함께 이스라엘로 옮겨가서 일생 그곳에서 가난과 싸우고 있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 고아들을 돌보며 살다가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함을 늘 여러분 마음 가운데 소유하고 문제를 헤쳐나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13장(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 보다 더 정하리라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의 순간이 다가와도, 어떤 고통의 순간이 다가와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주님 주신 평안함 절대 잃지 말게 하여 주시고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인이 걸어가는 하나님의 길이요, 또 하나는 불신앙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간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세상의 도전과 유혹 가운데 두 길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새로 세워진 지도자도 반드시 하나님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2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서 주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평안
예레미야 29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평안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서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온 세상이 불안, 염려, 근심, 걱정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의 평안함을 얻길 원합니다.
모든 것이 불안한 상태 속에 살다 보니까 이 세상에 우울증이라는 병이 많은 사람에게 절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6~7명 중 한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는데, 우울증의 마지막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한참 뛰놀며 해맑게 자라날 중고등학생들이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며 조현병 약을 먹고 있습니다. 이 방면에 전문적인 지위를 가진 의사를 만나 상담하고, 치료받아도 상태가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진짜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안 가운데 있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지만 그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탄식합니다.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참된 평안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의 고통과 근심만 더해집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고 상처만 줍니다.
오직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은 말씀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같은 참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평안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때 내가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사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 목사도 성령 충만을 받고 난 후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넘치게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터인데,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평안함입니다. 화평, 평안, 샬롬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임하면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되고, 기쁨이 넘쳐나게 되고, 주님이 주신 평안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인정하신다. 나를 도와주신다’라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확신 속에서 다가오는 평안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하지 않고, 염려하지 아니하고, 분노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 마음의 평안함이 임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시편 4편 8절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참 평안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우린 기도해야 합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온 세계를 떠돌아다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은 평안이었습니다. 늘 쫓겨 다니면서 불안,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평안을 외쳤습니다. “샬롬!” 만날 때도 “샬롬!”, 헤어질 때도 “샬롬!” 하나님의 평안함이 오도록 저들은 인사하고 기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전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600만이 학살당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유대인인 것이 발각되기만 하면 그들은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서 가스실에서 죽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안을 외쳤습니다. “샬롬, 샬롬, 샬롬, 샬롬, 주여! 우리에게 샬롬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샬롬이 임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주십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와 희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 당하기 직전에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레미야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절망적입니다. 그들은 지금 나라가 완전히 풍전등화 같은 어려움 속에 처해서 멸망 당하기 직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절망이고 고난이고 슬픔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고난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나라가 망해가는 이 시점에서 국가의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이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이렇게 꿈과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문제만을 바라보고 쉽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부정적인 것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하기에 쉽게 무속신앙에 빠지는 것입니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지금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지금 너무나 여러 가지로 불안한데 나의 미래에 대해서 좀 얘기해 주세요.”
이 세상에 그 어떤 점쟁이도 미래를 얘기해 줄 점쟁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만 더 깊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참된 꿈과 희망을 주실 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을 넘어서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재 문제만 바라보고 절망하고 좌절하며 무속인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문제 속에 갇혀서 절망하지 말고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 31절은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들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은 새 힘을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절대 희망의 주님이 되십니다. 위대한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절대 희망의 주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찬란한 미래와 희망과 꿈을 가져다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 쓰러져 넘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해 주시며 우리를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인간의 세계에는 실패가 있지만 하나님의 세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는 희망의 내일로, 축복의 내일로, 기적의 내일로 걸어갈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설명되어 있는데 여러 번 반복된 말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째 날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기독교 신앙은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시간표이고, 우리 기독교는 고난의 저녁을 넘어서서 희망의 아침의 문을 여는 영원한 희망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절망을 말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저녁을 말하고 밤을 말하지만, 우리는 새벽을 말하고 우리는 희망의 새날을 선포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잠시 잠깐 저녁이 다가오지만, 잠시 잠깐 절망의 밤이 다가오지만, 잠시 잠깐 문제와 고통과 고난의 밤이 다가오지만, 이 고난의 밤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희망의 새벽이, 축복의 새벽이, 기적이 밝아 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주여,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옵소서. 우리를 다시 세워주셔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대한민국이 건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나갈 때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이 응답하시고 놀라운 일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예레미야 29장 12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부모님은 자식의 마음에 무슨 소원이 있고 무슨 계획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동시에 자녀들은 또 부모님이 자기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어떻게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녀 간에도 대화가 필요할 때, 대화를 통해서 부모님은 자녀의 뜻을 알게 되고, 자녀는 부모의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대화가 기도입니다. 기도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고 평안할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몸이 병들어 아플 때도 기도하고, 건강해서 내가 무슨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좋으나 나쁘나 우리는 어느 때든지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시편 3편 4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야훼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문제 속에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기도를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강력한 기도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응답이 다가오고 기적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할 때 고난의 밤이 지나가고 희망의 새벽이 밝아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또 찾고 또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희망과 미래입니다. 우리에게 예비 된 희망과 미래의 축복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문제와 씨름하지 말고, 사람들 찾아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원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나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옵소서.’ ‘주님! 이 질병에서 내가 놓임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보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안타깝게 여기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우리의 응답자가 되어 주셔서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고민도 다 아시고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매달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마음에 평안함이 임할 때, 거룩한 꿈과 소망을 가지고 부르짖으며 나아가서 기적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는가? 사람의 길을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길은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이요 축복입니다.
사람의 길은 불안, 염려, 근심, 마음속에 상처와 고통만 남겨주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의 길을 가다가 너도나도 좌절하고 실패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사람의 길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어떠한 고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길을 가면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놀라운 평안함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대한민국에 평안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신 샬롬이 온 한국을 뒤덮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더 이상 다투고 나누고 싸우지 말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되,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된 평안함이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413장을 작사한 호래시오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 1828-1888)씨는 시카고의 저명한 변호사였고, 의과대학의 법리학 교수였고, 신학교 이사 및 운영 위원이었고, 무디 부흥사를 도와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근데 1871년에 그 집에 불행이 몰아닥쳤습니다. 네 살 난 아들이 성홍열로 열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너무너무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는데 그 화재가 온 시카고를 뒤덮어서 본인이 섬기던 교회도 다 불타고, 본인의 대저택도 다 불타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그 절망 가운데서 주님만 바라봅니다. 자기 집 다 불타서 잿더미가 된 것은 뒤로 하고 교회가 불탄 것을 걱정하며 빨리 교회를 건축 해야겠다고 목사님을 도와서 매일 같이 기도하며 교회 건축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몸이 많이 지치고 병약해서 쉼이 필요했습니다. 부인 애나 스패포드 씨는 몸이 너무 약해서 ‘아무래도 내가 좀 휴식을 취하고 좀 몸을 추스려야 되겠다.’ 그래서 부인과 딸 넷과 함께 유럽에 같이 가서 좀 쉬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고 예약을 했는데 본인은 처리해야 될 일들이 있어서 같은 배를 타지 못하고 부인과 네 명의 딸을 실은 프랑스 정기 여객선 빌 뒤 아브르호가 313명의 승객을 태우고 뉴욕을 떠나 대서양을 순항하게 되었습니다.
떠난 지 며칠 안 돼서 1873년 11월 22일 새벽 2시 이 여객선이 스코틀랜드의 철제 선박인 로크 언호와 정면충돌하면서 가라앉게 됐습니다.
이 사고로 226명이나 목숨을 잃습니다. 네 딸을 붙잡고 기도하던 엄마가 눈을 떠보니 네 딸은 이미 다 물속에 장사되었고 본인만 겨우 생명을 건진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국 웨일스에 도착한 부인이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혼자 살아남았음.” 이 전보를 받고 스패포드 씨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보를 듣고 달려온 친구들에게 그는 담담히 말을 합니다.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마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네 딸을 한꺼번에 다 잃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도 잃고 네 딸을 잃고 전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구조되어 있는 아내를 구하려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하던 중에 선장이 와서 얘기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지금 지나가는 이 지역이 선생님의 아이들이 배가 충돌해서 세상을 떠난 그곳입니다. 배가 침몰한 지역을 우리가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선실에 들어와서 밤새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제게 주십니까?” 울며 주님 앞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밤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임해서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평안함이 샘 솟듯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새벽 동이 틀 때 무릎을 꿇고 펜을 들어 그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니까 때때로 잔잔한 강같이 평탄하기도 하고 큰 풍파가 다가오는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1절을 짓습니다.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선박 밖을 내다보니 배를 삼키듯이 몰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2절을 짓습니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그러고 나서 자기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3절을 짓습니다.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그러고 나서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높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 뭉게구름을 볼 때 마치 자신의 네 딸이 천국에서 ‘아빠!’하고 자기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4절을 짓습니다.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스패포드씨는 그 후에 다시 얻은 두 자녀와 함께 이스라엘로 옮겨가서 일생 그곳에서 가난과 싸우고 있는 많은 어려운 사람들, 고아들을 돌보며 살다가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함을 늘 여러분 마음 가운데 소유하고 문제를 헤쳐나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13장(통 470) ‘내 평생에 가는 길’>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 보다 더 정하리라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절망의 순간이 다가와도, 어떤 고통의 순간이 다가와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괴로워도, 주님 주신 평안함 절대 잃지 말게 하여 주시고 주신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