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함께 가자
2025.05.25
/ 아가 2장 10~12, 15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가 2장 10~12, 15절)
우리의 신앙은 절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또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기록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자녀로 사랑하시고, 어여삐 여기십니다.
아가서 2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은 솔로몬 왕입니다. 모든 여인이 사모하는 존귀한 왕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많은 여인 가운데 술람미 여인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여인은 밭에서 일하느라 햇볕에 타서 얼굴이 거무스름해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 술람미 여인에게 포도원을 돌보라 그래서 나가서 하루종일 일하다 보니까 얼굴이 검게 그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 왕은 이 여인을 택하여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아가서 곳곳에 구구절절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진실되고 열정적인 사랑의 모습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검게 그을린 피부에도 불구하고 자기 내면의 모습이 솔로몬의 휘장같이 아름답다고 자랑합니다.
아가서 1장 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솔로몬 왕이 일방적으로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못났어도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일방적으로 우리를 택해서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해줄 것이다. 너의 모든 상처와 질병을 다 고쳐줄 것이다. 너의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절망에 처해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보기에 때때로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것없기도 합니다. 때때로 실수하고 죄짓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느냐? 독생자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우리는 매우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허물 많고 문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이 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고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절망의 땅끝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택하여서 은혜의 자리로, 축복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어여삐 보셔서 우리를 주님 보시기에 매우 존귀한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절망에 지쳐 주저앉아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일어나라! 절망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지금 한국이 절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대한민국이여! 절망의 감옥에서 일어나라!’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의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봄은 어떠한 겨울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아가서 2장 11절, 12절은 말씀합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입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여러분, 고난의 겨울이 지나고 축복의 봄이 왔습니다. 슬픔의 비가 그치고 기쁨의 날이 밝은 것입니다. 꽃이 피고 비둘기가 울듯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찬양이 온 세계를 뒤덮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망 가운데 있지만 그러한 봄이 이미 다가왔음을 믿음으로 소유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해 나갈 때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문제가 변하여 우리에게 응답과 해결로 다가올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너무나 사모하는데 솔로몬 왕을 보지 못해서 병이 났습니다. 너무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병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아가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함으로 병이 생겼음이라”
너무 사랑해서 병이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때때로 겨울과 같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고 나 혼자 외롭게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외로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고, 몸은 병에 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겨나면 스스로 불안, 염려, 근심, 걱정이 가득히 쌓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버리셨나?’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나?’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변치 않고 사랑하시며 함께하시며 도우시며 인도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인생의 절망이 다가온 그 순간에도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겨울은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가올 봄을 예비하는 기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강한 사람으로 훈련 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의 겨울을 통과하게 하신 것이고, 동시에 우리 삶에서 잘못된 죄의 모습을 회개하고 우리 삶에서 죄의 모습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고난의 겨울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왔다고 해서 고난의 겨울이 다가왔다고 해서 낙심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것에 임하게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놀라운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겨울은 겨울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겨울이 곧 지나가고 희망의 봄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 고난의 겨울에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입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내가 이 어려운 문제를 헤쳐 나가게 하여 주시고, 나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셔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고난의 자리에 있다고 할 때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고 붙들고 계시고, 여러분의 삶을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릴 때 기쁨의 꽃이 피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예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우리에게 다가올 희망의 봄을 바라보고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 삶에 여우와 같은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 2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희망의 봄이 다가왔습니다. 얼어있던 시내가 녹고 포도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꽃이 다 피지도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것입니다.
가보니 포도원 밭이 막 헤집어져 있고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 포도원에 45cm에서 한 90cm 되는 작은 여우들이 몰래 와서 땅을 파고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붉은 여우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에 서식하는 체구가 아주 작고 지능적이고 민첩한 여우입니다. 이 여우들이 때때로 포도원에 가서 땅을 파고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말라 죽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원 지기는 붉은 여우가 포도를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그 안에 들어온 붉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 우리를 가장 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적인 작은 여우들입니다. 우리가 큰 죄를 저지를 때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사기를 치고 폭력을 휘둘러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런데 이 작은 여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여우가 들어와서 우리 은혜의 포도원의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은혜받고 교회 나올 때는 교회 나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예배 시간에 그저 찬송 불러도 좋고 말씀 들어도 좋고 기도해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눈물이 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구경꾼이 돼서 이렇게 앉아서 ‘저 사람은 왜 저런 옷을 입고 왔나.’ ‘저 사람은 왜 졸고 있나.’ 남이나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이미 작은 여우가 들어와서 여러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 시간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아주 사소한 거짓말,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부정적인 생각, 원망과 불평, 영적인 나태함, 시기, 질투, 쉽게 화내고 미워하고 남을 헐뜯고 비판하고 이간질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작은 여우들입니다.
이 여우들을 잡아내야 합니다. 이 작은 여우들이 우리 은혜의 포도원을 해치고 이 신앙의 뿌리를 갉아 먹어서 우리 신앙이 흔들리게 하고 시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매우 관대합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데, 남의 조그마한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합니다. 그래서 그냥 족집게로 잡듯이 잡아내 가지고 그를 비판하고 그를 공격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티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들보는 이만큼 큰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만큼 큰 허물이 있는데 왜 남의 요만한 티끌 같은 허물을 들춰내서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그러한 작은 여우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그러한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얘기하지 않습니다. 늘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고 늘 말씀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하는 분들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작은 여우들이 너무 많아서, 정치권에도 작은 여우들이 들끓고 있고 이 나라가 그냥 엉망입니다. 우리가 이 작은 여우들을 소탕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를 믿는 우리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다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불신앙의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이제는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 22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신앙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금이 가게 하는 그 어떤 모습도 버려야 합니다. 어떠한 잘못된 모습도 우리가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말도, 우리의 행동도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볼 때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이 작은 여우를 잡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알게 모르게 무너지게 되고, 알게 모르게 내게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주여!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시고, 늘 기쁨이 샘솟듯 넘쳐나게 하시고, 감사가 넘쳐나게 하시고, 기쁨과 감사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삶을 점령해서 그 사랑으로 인한 감동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칠고 폭력적이던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세계적인 권투 선수가 되었다가 예수님 만난 다음 목사가 된 조지 포먼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1949년 미국 텍사스주 마셜이라고 하는 도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난과 폭력에 얼룩진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도 자주 빠지고 늘 주먹을 휘두르며 거친 환경 속에서 폭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잡 코어’라고 하는 빈민층 무료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조지 포먼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운동선수로 이끌어 줄 찰스 닥 브로더스라는 분을 만납니다.
그분의 관심 속에서 그가 권투를 하게 되었고 놀라운 것은 권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살의 어린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나가 헤비급 결승에서 소련 대표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땁니다.
그후 그는 프로 선수가 되어 1973년까지 37전 전승을 거두면서 권투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당시 무패 헤비급 챔피언이던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 KO로 꺾고 WBA와 WBC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면서 ‘인간 흉기’, ‘KO 머신’이라고 불렸습다.
그러던 그가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 나갈 줄 알았는데, 무하마드 알리라는 선수와의 대결에서 8라운드에 KO패를 당합니다. 무하마드 알리에 이어 지미 영이라고 하는 선수와의 경기에서 또 한 번 패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탈의실에서 완전히 탈진해서 의식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그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 지옥의 형벌과 고통을 체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저를 살려주신다면 제 인생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이 그의 마음 가운데 찾아왔습니다. 그가 권투에서 우승의 트로피를 받을 때의 그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그의 마음 가운데 샘솟듯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투 선수를 은퇴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조지 포먼 청소년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자기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던 청년들을 모아서 그들을 무료로 교육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설교자로 전도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신앙 체험을 나누고 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와 감동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운영비가 부족하고 그 모든 재정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내게 주신 권투하는 재능을 갖고 나가서 내가 다시 권투 시합을 해서 기금을 모아서 학생들을 돌보겠습니다.’ 하고 권투 선수로의 복귀를 그는 결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링에 서는 건 나를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더 오래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1987년 38살의 나이로 다시 링에 복귀합니다. 그런데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그런 옛 모습이 아니라 늘 웃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러한 신앙인의 모습으로서 나가 상대편을 존중하면서 권투 시합에 임해서 그가 계속 승리를 거두었는데, 1994년 11월 5일 당시 무패 행진 중인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와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45살이고 챔피언은 26살이라 19년 연하입니다. 많은 사람이 ‘45세 난 저 아저씨가 이길 수가 없다. 젊은이를 어떻게 이기냐.’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10라운드 경기에서 그가 무어러를 KO시키고 최연소 챔피언을 꺾은 최연장 챔피언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의 여정과 감동과 도전을 영화로도 만들어서 『빅 조지 포먼』이라는 영화가 2023년도에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사업가로도 성공했지만, 그는 언제나 링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올해 3월에 하나님 품에 안긴 그가 이와 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가 링에 돌아온 건 청소년들에게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이 너를 도우신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링 위에서 얻은 모든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과 평안은 영원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지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 주의 사랑을 체험하면 그 운명이 바뀝니다. 아무리 거칠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났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면 그 운명이 바뀌어져서 주님 보시기에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제 이 고난의 겨울은 끝나고 희망의 봄이 밝아올 것입니다. 조지 포먼같이 거친 인생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는 그 귀한 모습대로 여러분 모두가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176장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1절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절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절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낙심하고 주저앉아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약속의 말씀 붙잡고 일어나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우리의 신앙은 절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녀 간의 사랑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또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기록했습니다.
1.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인 교회와 성도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자녀로 사랑하시고, 어여삐 여기십니다.
아가서 2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이 아가서의 남자 주인공은 솔로몬 왕입니다. 모든 여인이 사모하는 존귀한 왕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많은 여인 가운데 술람미 여인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여인은 밭에서 일하느라 햇볕에 타서 얼굴이 거무스름해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 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 술람미 여인에게 포도원을 돌보라 그래서 나가서 하루종일 일하다 보니까 얼굴이 검게 그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 왕은 이 여인을 택하여 그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아가서 곳곳에 구구절절 기록되어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진실되고 열정적인 사랑의 모습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왕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검게 그을린 피부에도 불구하고 자기 내면의 모습이 솔로몬의 휘장같이 아름답다고 자랑합니다.
아가서 1장 5절입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솔로몬 왕이 일방적으로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비록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못났어도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고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일방적으로 우리를 택해서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우리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해줄 것이다. 너의 모든 상처와 질병을 다 고쳐줄 것이다. 너의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절망에 처해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보기에 때때로 우리의 모습은 초라하고 보잘것없기도 합니다. 때때로 실수하고 죄짓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사야 43장 4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느냐? 독생자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우리는 매우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허물 많고 문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이 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고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죄인 되었던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절망의 땅끝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택하여서 은혜의 자리로, 축복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어여삐 보셔서 우리를 주님 보시기에 매우 존귀한 존재로 세워주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입니다. 절망에 지쳐 주저앉아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일어나라! 절망의 자리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문제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지금 한국이 절망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대한민국이여! 절망의 감옥에서 일어나라!’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2. 우리에게 다가오는 희망의 봄
우리에게 희망의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봄은 어떠한 겨울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아가서 2장 11절, 12절은 말씀합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입니다. 비가 그쳤습니다. 여러분, 고난의 겨울이 지나고 축복의 봄이 왔습니다. 슬픔의 비가 그치고 기쁨의 날이 밝은 것입니다. 꽃이 피고 비둘기가 울듯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찬양이 온 세계를 뒤덮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망 가운데 있지만 그러한 봄이 이미 다가왔음을 믿음으로 소유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해 나갈 때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문제가 변하여 우리에게 응답과 해결로 다가올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너무나 사모하는데 솔로몬 왕을 보지 못해서 병이 났습니다. 너무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병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아가서 2장 5절입니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함으로 병이 생겼음이라”
너무 사랑해서 병이 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때때로 겨울과 같은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고 나 혼자 외롭게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외로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고, 몸은 병에 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겨나면 스스로 불안, 염려, 근심, 걱정이 가득히 쌓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버리셨나?’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나?’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변치 않고 사랑하시며 함께하시며 도우시며 인도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인생의 절망이 다가온 그 순간에도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겨울은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가올 봄을 예비하는 기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강한 사람으로 훈련 시키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의 겨울을 통과하게 하신 것이고, 동시에 우리 삶에서 잘못된 죄의 모습을 회개하고 우리 삶에서 죄의 모습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고난의 겨울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왔다고 해서 고난의 겨울이 다가왔다고 해서 낙심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약속의 말씀만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것에 임하게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놀라운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겨울은 겨울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겨울이 곧 지나가고 희망의 봄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 고난의 겨울에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입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내가 이 어려운 문제를 헤쳐 나가게 하여 주시고, 나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셔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고난의 자리에 있다고 할 때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 곁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고 붙들고 계시고, 여러분의 삶을 축복의 자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눈물로 씨앗을 뿌릴 때 기쁨의 꽃이 피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예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우리에게 다가올 희망의 봄을 바라보고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여우 같은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하라
나아가서 우리 삶에 여우와 같은 불신앙의 요소를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가서 2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희망의 봄이 다가왔습니다. 얼어있던 시내가 녹고 포도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꽃이 다 피지도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것입니다.
가보니 포도원 밭이 막 헤집어져 있고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 포도원에 45cm에서 한 90cm 되는 작은 여우들이 몰래 와서 땅을 파고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붉은 여우라고 불리는 중동지역에 서식하는 체구가 아주 작고 지능적이고 민첩한 여우입니다. 이 여우들이 때때로 포도원에 가서 땅을 파고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기 때문에 포도나무가 말라 죽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원 지기는 붉은 여우가 포도를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고, 그 안에 들어온 붉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때 우리를 가장 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적인 작은 여우들입니다. 우리가 큰 죄를 저지를 때는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사기를 치고 폭력을 휘둘러서 문제를 일으키고, 그런데 이 작은 여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여우가 들어와서 우리 은혜의 포도원의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은혜받고 교회 나올 때는 교회 나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예배 시간에 그저 찬송 불러도 좋고 말씀 들어도 좋고 기도해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눈물이 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구경꾼이 돼서 이렇게 앉아서 ‘저 사람은 왜 저런 옷을 입고 왔나.’ ‘저 사람은 왜 졸고 있나.’ 남이나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이미 작은 여우가 들어와서 여러분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 시간 기쁨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아주 사소한 거짓말,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부정적인 생각, 원망과 불평, 영적인 나태함, 시기, 질투, 쉽게 화내고 미워하고 남을 헐뜯고 비판하고 이간질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작은 여우들입니다.
이 여우들을 잡아내야 합니다. 이 작은 여우들이 우리 은혜의 포도원을 해치고 이 신앙의 뿌리를 갉아 먹어서 우리 신앙이 흔들리게 하고 시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매우 관대합니다. 자기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데, 남의 조그마한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합니다. 그래서 그냥 족집게로 잡듯이 잡아내 가지고 그를 비판하고 그를 공격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티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들보는 이만큼 큰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만큼 큰 허물이 있는데 왜 남의 요만한 티끌 같은 허물을 들춰내서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그러한 작은 여우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그러한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얘기하지 않습니다. 늘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고 늘 말씀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하는 분들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작은 여우들이 너무 많아서, 정치권에도 작은 여우들이 들끓고 있고 이 나라가 그냥 엉망입니다. 우리가 이 작은 여우들을 소탕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를 믿는 우리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다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불신앙의 작은 여우들을 잡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이제는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 22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 신앙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금이 가게 하는 그 어떤 모습도 버려야 합니다. 어떠한 잘못된 모습도 우리가 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말도, 우리의 행동도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볼 때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이 작은 여우를 잡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알게 모르게 무너지게 되고, 알게 모르게 내게 어두운 그림자가 들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주여!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시고, 늘 기쁨이 샘솟듯 넘쳐나게 하시고, 감사가 넘쳐나게 하시고, 기쁨과 감사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삶을 점령해서 그 사랑으로 인한 감동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칠고 폭력적이던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세계적인 권투 선수가 되었다가 예수님 만난 다음 목사가 된 조지 포먼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1949년 미국 텍사스주 마셜이라고 하는 도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가난과 폭력에 얼룩진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도 자주 빠지고 늘 주먹을 휘두르며 거친 환경 속에서 폭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잡 코어’라고 하는 빈민층 무료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조지 포먼이 참여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운동선수로 이끌어 줄 찰스 닥 브로더스라는 분을 만납니다.
그분의 관심 속에서 그가 권투를 하게 되었고 놀라운 것은 권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살의 어린 나이로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나가 헤비급 결승에서 소련 대표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땁니다.
그후 그는 프로 선수가 되어 1973년까지 37전 전승을 거두면서 권투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당시 무패 헤비급 챔피언이던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 KO로 꺾고 WBA와 WBC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면서 ‘인간 흉기’, ‘KO 머신’이라고 불렸습다.
그러던 그가 승승장구하고 잘 달려 나갈 줄 알았는데, 무하마드 알리라는 선수와의 대결에서 8라운드에 KO패를 당합니다. 무하마드 알리에 이어 지미 영이라고 하는 선수와의 경기에서 또 한 번 패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탈의실에서 완전히 탈진해서 의식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그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 지옥의 형벌과 고통을 체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저를 살려주신다면 제 인생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이 그의 마음 가운데 찾아왔습니다. 그가 권투에서 우승의 트로피를 받을 때의 그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그의 마음 가운데 샘솟듯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투 선수를 은퇴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주의 종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에 조지 포먼 청소년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자기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던 청년들을 모아서 그들을 무료로 교육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삶의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설교자로 전도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신앙 체험을 나누고 많은 사람에게 큰 은혜와 감동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청소년 센터를 운영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운영비가 부족하고 그 모든 재정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 내게 주신 권투하는 재능을 갖고 나가서 내가 다시 권투 시합을 해서 기금을 모아서 학생들을 돌보겠습니다.’ 하고 권투 선수로의 복귀를 그는 결심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링에 서는 건 나를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더 오래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1987년 38살의 나이로 다시 링에 복귀합니다. 그런데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그런 옛 모습이 아니라 늘 웃으면서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러한 신앙인의 모습으로서 나가 상대편을 존중하면서 권투 시합에 임해서 그가 계속 승리를 거두었는데, 1994년 11월 5일 당시 무패 행진 중인 챔피언 마이클 무어러와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45살이고 챔피언은 26살이라 19년 연하입니다. 많은 사람이 ‘45세 난 저 아저씨가 이길 수가 없다. 젊은이를 어떻게 이기냐.’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10라운드 경기에서 그가 무어러를 KO시키고 최연소 챔피언을 꺾은 최연장 챔피언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의 여정과 감동과 도전을 영화로도 만들어서 『빅 조지 포먼』이라는 영화가 2023년도에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사업가로도 성공했지만, 그는 언제나 링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올해 3월에 하나님 품에 안긴 그가 이와 같은 고백을 남겼습니다.
“내가 링에 돌아온 건 청소년들에게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이 너를 도우신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링 위에서 얻은 모든 것은 사라질 수 있지만,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과 평안은 영원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지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 주의 사랑을 체험하면 그 운명이 바뀝니다. 아무리 거칠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났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면 그 운명이 바뀌어져서 주님 보시기에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제 이 고난의 겨울은 끝나고 희망의 봄이 밝아올 것입니다. 조지 포먼같이 거친 인생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가는 그 귀한 모습대로 여러분 모두가 복 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176장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1절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절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 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절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낙심하고 주저앉아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시간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여 일어나서 함께 가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약속의 말씀 붙잡고 일어나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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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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