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은혜
2025.04.20
/ 요한복음 20장19~23절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20장19~23절)
이 부활의 날에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임하여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 이래로 최대의 기적이요 기쁨과 감격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축복을 얻은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찾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난 다음 두려움과 공포에 싸여서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저들은 모든 꿈과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들의 삶에는 삶의 목적도 꿈도 희망도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근데 누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자들이 ‘뭔 허깨비를 봤겠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 곳에 주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차례나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장 21절에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샬롬’이라는 말은 단순한 마음의 평안이 아니라 영, 혼, 육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인적인 이 조화를 이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샬롬은 절망에 찬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문제와 어려움 속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주신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의 상처와 옆구리의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니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하다가 예수님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고 놀라며 기뻐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참된 평화를 주실 분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영원한 평화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 염려, 걱정의 근원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버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평화가 임할 때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차고 넘쳐나야 합니다. 특별히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에 참된 평화가 임해야 합니다.
저 북녘땅에도 주님의 평화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아직도 공산독재 치하에서 절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주여, 북녘땅에도 평화의 날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임하여서 갈라진 남과 북이 통일되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함께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있습니까? 주님의 평안함이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주여, 이 평안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차례 말씀하신 다음 그다음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 모든 다른 동물과 달리 하나님은 친히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영인 생령을 훅 불어넣으셨습니다.
모든 동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 새가 생겨라, 바다에 물고기가 생겨나라, 짐승의 이 땅 위에 짐승들이 생겨나라 명령하심으로써 창조하셨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말씀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의 영을 후 불어넣은 순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될 때 천지 창조가 일어났던 그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삶 가운데 불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없이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고,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어떠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할 때 성령이 내게 임하여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주의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임합니다. 권능이 임하면 모든 문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위대한 능력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살리는 영입니다. 치료의 영입니다. 생명의 영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예수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그 마음속에 가득 담겨있는 것이 흘러나가게 돼 있는데, 미움이 가득 담겨있는 사람은 미움이 흘러나갑니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분노가 흘러나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주의 사랑이 흘러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게 되길 바랍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 쓰임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우리 삶 가운데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와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나서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비판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예수님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야, 저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구나. 저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졌다.’라고 하는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올해가 한국 선교 140주년인데, 두 명의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그 두 명이 뿌린 이 복음의 씨앗이 오늘날 풍성한 열매를 맺어서 전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고,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로 사랑을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를 명령하십니다.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큰 숙제가 용서하지 못하는 겁니다. 한 번 상처를 받으면 평생 그 상처를 안고 미움과 증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요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죄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결박에서 자유케 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용서와 사랑을 선물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어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값없이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용서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강물처럼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에 쓴 뿌리를 마음속에 담고 삽니다. 과거의 상처를 마음에 담고 삽니다.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 이웃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평생 안고 미움과 증오를 품고 삽니다.
오늘 그 모든 아픈 상처를 미움과 증오를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싸움은 상대편을 짓밟고 때려눕혀야만 승리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싸움은 상대를 용서해야만 끝나는 것입니다. 용서해야만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최대한의 복수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칼을 들어 쓴 자는 칼로 망한다고 성경에 말했듯이, 우리가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더 큰 절망밖에 없습니다.
잠언 25장 21절, 22절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야훼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주님께서 여러분의 억울함을 아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말고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마음에서 놓아버리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 용서, 죄 사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용서할 때 기도에 응답이 다가옵니다. 기적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용서를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는데, 이 천국 열쇠는 용서하고 하나 되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서할 때 내 자신이 먼저 상처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되며, 용서할 때 부모와 자식 간의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가정이 화목하게 되고, 용서할 때 대인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까지 자기에게 못을 박는 자들을, 자기를 죽음에 몰아넣은 자들을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60절입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는 평신도 집사의 직분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동됐던지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돌을 던지는 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돌을 한 대 맞으면 돌을 들어 두 번 던지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마음인데, 그는 맞아 죽으면서도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늘 갈등하고 다투고 싸웠던 우리의 모습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주님,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앞에 국회라고 하는 큰 집이 있는데 늘 여야가 싸웁니다. 주님, 국회에 사랑과 용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물고 뜯고 싸우는 국회가 아니라 이제는 사랑하고 화해하고 화목하고 하나 되는 국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 좁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에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 살면서도 지역 간에, 계층 간에, 이념 간에 갈등과 대립으로 싸우고 나뉘는 이와 같은 잘못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우리 모두가 화목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인간이 연약하기에 우리는 용서 받아야 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고, 또 이웃이 우리에게 상처 입힌 죄를 용서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에 사는 사람은 평생 미움과 분노에 갇혀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시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미움과 원한의 칼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로 하나 되어 한평생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후 30년 동안 전 세계에 용서와 희망을 전하다가 2017년 1월 10일 천국에 간 스티븐 맥도널드 경찰관이 있습니다.
뉴욕 경찰관이었던 그는 1986년 당시 29세 때인데요. 7월 18일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를 순찰하던 도중 15살 소년이 쏜 세 발의 총알을 맞고 목 아래쪽을 영원히 쓸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찰이 된 지 2년밖에 안 됐고, 젊은 아내는 임신한 상태입니다. 근데 졸지에 온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남이 도와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지체 부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자기 아들을 보면서 마음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한순간에 저는 활동적인 경찰관에서 몸도 못 가누는 범죄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 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살아야 한다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 같았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를 쏜 젊은 친구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건 발생 9개월이 지난 1987년 3월 1일, 휠체어를 타고 아들의 세례식에 참석한 다음에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소년을 용서한다고 말하고 소년에게 용서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자 그 소년이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사과할 때 그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소년을 용서한 이유에 대해서 경찰관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용서한다는 것이, 그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저 자신도 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그 사고는 내게 호된 신앙의 시험이자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주고, 내면과 영원에 집중하도록 해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이후 그는 휠체어를 타고 북아일랜드, 이스라엘, 보스니아 등 전 세계 전쟁 분쟁 지역을 방문해서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왕따, 폭력, 총기 사건 등으로 상처 입은 많은 젊은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성자, 진짜 영웅이라고 하는 칭호를 받게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시장은 그는 진정한 영웅의 표상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시 경찰국장이 와서 또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가 활동한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에 지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는 용서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관계 속에서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다. 증오를 증오로 갚으면 증오만 더 증식시킬 뿐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짙은 어둠만을 더할 뿐이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이 미움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폭력은 폭력을, 그리고 가혹함은 가혹함을 낳는다. 사랑만이 오직 적을 친구로 변화시킬 힘이 있다!”
할렐루야!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한평생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셔서 이제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당시에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귀신 들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기록을 살펴보면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귀신이 쫓겨나고 새 삶을 살게 되어서 너무너무 감사해서 한평생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위해 살아오며 헌신하며 섬겼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가로 갔다가 무덤 문이 열린 걸 보고 앉아서 울고 있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제일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런 놀라운 은혜를 입었던 이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지은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442장을 우리 함께 부릅니다. 우리 모두가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을 갖고 찬송합니다.
<찬송가 442장(통 499)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후렴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절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절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언제나 3절 가사가 저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괴로움 많고 문제 많고 슬픔 많고 고통 많은 세상에 여러분을 주님이 보내십니다. 사랑의 화신으로 보내셔서 저들을 치료하게 하시고 저들을 용서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값없이 용서받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잘못된 모습이 없습니다. 오늘 이후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값없이 용서받아 이렇게 복 받은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늘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았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우리 모두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이 부활의 날에 우리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임하여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 이래로 최대의 기적이요 기쁨과 감격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온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하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의 축복을 얻은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찾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난 다음 두려움과 공포에 싸여서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저들은 모든 꿈과 희망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메시아로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들의 삶에는 삶의 목적도 꿈도 희망도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근데 누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자들이 ‘뭔 허깨비를 봤겠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문을 닫고 숨어 있는 곳에 주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차례나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장 21절에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샬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샬롬’이라는 말은 단순한 마음의 평안이 아니라 영, 혼, 육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인적인 이 조화를 이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샬롬은 절망에 찬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날 문제와 어려움 속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주신 희망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의 상처와 옆구리의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니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 하다가 예수님의 상처 입은 모습을 보고 놀라며 기뻐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참된 평화를 주실 분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영원한 평화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평화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 염려, 걱정의 근원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버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십자가를 통해서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평화가 임할 때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차고 넘쳐나야 합니다. 특별히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에 참된 평화가 임해야 합니다.
저 북녘땅에도 주님의 평화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아직도 공산독재 치하에서 절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주여, 북녘땅에도 평화의 날이 다가오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평안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임하여서 갈라진 남과 북이 통일되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함께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있습니까? 주님의 평안함이 여러분 마음을 다스리게 하시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주여, 이 평안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성령을 받으라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차례 말씀하신 다음 그다음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22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사람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 모든 다른 동물과 달리 하나님은 친히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영인 생령을 훅 불어넣으셨습니다.
모든 동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에 새가 생겨라, 바다에 물고기가 생겨나라, 짐승의 이 땅 위에 짐승들이 생겨나라 명령하심으로써 창조하셨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은 말씀합니다.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의 영을 후 불어넣은 순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될 때 천지 창조가 일어났던 그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삶 가운데 불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없이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고, 성령이 없이는 우리는 어떠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할 때 성령이 내게 임하여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주의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임합니다. 권능이 임하면 모든 문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에베소서 5장 18절에 사도 바울은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위대한 능력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살리는 영입니다. 치료의 영입니다. 생명의 영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게 하는 영입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예수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 그 마음속에 가득 담겨있는 것이 흘러나가게 돼 있는데, 미움이 가득 담겨있는 사람은 미움이 흘러나갑니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분노가 흘러나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주의 사랑이 흘러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 받게 되길 바랍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 쓰임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성품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우리 삶 가운데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와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고 나서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비판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 예수님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야, 저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구나. 저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졌다.’라고 하는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올해가 한국 선교 140주년인데, 두 명의 선교사가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그 두 명이 뿌린 이 복음의 씨앗이 오늘날 풍성한 열매를 맺어서 전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고,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로 사랑을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용서를 명령하십니다.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큰 숙제가 용서하지 못하는 겁니다. 한 번 상처를 받으면 평생 그 상처를 안고 미움과 증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3절에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용서는 사랑의 결정체요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죄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의 결박에서 자유케 하시고 우리에게 놀라운 용서와 사랑을 선물로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어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값없이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용서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강물처럼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에 쓴 뿌리를 마음속에 담고 삽니다. 과거의 상처를 마음에 담고 삽니다. 자라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받은 상처, 이웃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평생 안고 미움과 증오를 품고 삽니다.
오늘 그 모든 아픈 상처를 미움과 증오를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의 싸움은 상대편을 짓밟고 때려눕혀야만 승리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싸움은 상대를 용서해야만 끝나는 것입니다. 용서해야만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최대한의 복수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칼을 들어 쓴 자는 칼로 망한다고 성경에 말했듯이, 우리가 미움을 미움으로 갚으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더 큰 절망밖에 없습니다.
잠언 25장 21절, 22절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야훼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주님께서 여러분의 억울함을 아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말고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에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마음에서 놓아버리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기도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 용서, 죄 사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용서할 때 기도에 응답이 다가옵니다. 기적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용서를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는데, 이 천국 열쇠는 용서하고 하나 되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용서할 때 내 자신이 먼저 상처에서 놓여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되며, 용서할 때 부모와 자식 간의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가정이 화목하게 되고, 용서할 때 대인과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까지 자기에게 못을 박는 자들을, 자기를 죽음에 몰아넣은 자들을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한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60절입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는 평신도 집사의 직분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동됐던지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습니다.
돌을 던지는 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돌을 한 대 맞으면 돌을 들어 두 번 던지려고 하는 게 우리들의 마음인데, 그는 맞아 죽으면서도 그들을 용서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늘 갈등하고 다투고 싸웠던 우리의 모습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주님,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앞에 국회라고 하는 큰 집이 있는데 늘 여야가 싸웁니다. 주님, 국회에 사랑과 용서가 임하게 하여 주시고 물고 뜯고 싸우는 국회가 아니라 이제는 사랑하고 화해하고 화목하고 하나 되는 국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 좁은 땅덩어리 대한민국에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 살면서도 지역 간에, 계층 간에, 이념 간에 갈등과 대립으로 싸우고 나뉘는 이와 같은 잘못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이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우리 모두가 화목하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인간이 연약하기에 우리는 용서 받아야 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고, 또 이웃이 우리에게 상처 입힌 죄를 용서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미움과 분노에 사는 사람은 평생 미움과 분노에 갇혀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시간 마음속에 품고 있는 미움과 원한의 칼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로 하나 되어 한평생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신마비 사고를 당한 후 30년 동안 전 세계에 용서와 희망을 전하다가 2017년 1월 10일 천국에 간 스티븐 맥도널드 경찰관이 있습니다.
뉴욕 경찰관이었던 그는 1986년 당시 29세 때인데요. 7월 18일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를 순찰하던 도중 15살 소년이 쏜 세 발의 총알을 맞고 목 아래쪽을 영원히 쓸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찰이 된 지 2년밖에 안 됐고, 젊은 아내는 임신한 상태입니다. 근데 졸지에 온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남이 도와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지체 부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자기 아들을 보면서 마음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한순간에 저는 활동적인 경찰관에서 몸도 못 가누는 범죄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 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살아야 한다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지 같았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를 쏜 젊은 친구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건 발생 9개월이 지난 1987년 3월 1일, 휠체어를 타고 아들의 세례식에 참석한 다음에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소년을 용서한다고 말하고 소년에게 용서의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자 그 소년이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사과할 때 그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소년을 용서한 이유에 대해서 경찰관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척추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고 믿으니까요.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감정 낭비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용서한다는 것이, 그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그러나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저 자신도 악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저 자신이었어요. 그 사고는 내게 호된 신앙의 시험이자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끌어주고, 내면과 영원에 집중하도록 해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이후 그는 휠체어를 타고 북아일랜드, 이스라엘, 보스니아 등 전 세계 전쟁 분쟁 지역을 방문해서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한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왕따, 폭력, 총기 사건 등으로 상처 입은 많은 젊은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면서 용서와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성자, 진짜 영웅이라고 하는 칭호를 받게 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시장은 그는 진정한 영웅의 표상이었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시 경찰국장이 와서 또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가 활동한 폭력의 고리 끊기 프로그램에 지도 목사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목사는 용서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과 관계 속에서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다. 증오를 증오로 갚으면 증오만 더 증식시킬 뿐이며,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에 짙은 어둠만을 더할 뿐이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이 미움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폭력은 폭력을, 그리고 가혹함은 가혹함을 낳는다. 사랑만이 오직 적을 친구로 변화시킬 힘이 있다!”
할렐루야!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한평생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셔서 이제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당시에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귀신 들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기록을 살펴보면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귀신이 쫓겨나고 새 삶을 살게 되어서 너무너무 감사해서 한평생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위해 살아오며 헌신하며 섬겼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가로 갔다가 무덤 문이 열린 걸 보고 앉아서 울고 있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녀를 만나주셨습니다. 제일 처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런 놀라운 은혜를 입었던 이 막달라 마리아를 생각하면서 지은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442장을 우리 함께 부릅니다. 우리 모두가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을 갖고 찬송합니다.
<찬송가 442장(통 499) ‘저 장미꽃 위에 이슬’>
1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후렴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절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절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언제나 3절 가사가 저의 마음에 와닿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괴로움 많고 문제 많고 슬픔 많고 고통 많은 세상에 여러분을 주님이 보내십니다. 사랑의 화신으로 보내셔서 저들을 치료하게 하시고 저들을 용서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값없이 용서받은 우리가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잘못된 모습이 없습니다. 오늘 이후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값없이 용서받아 이렇게 복 받은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늘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았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우리 모두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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