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신앙
2025.04.06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2주 후면 우리 기독교의 최대 영적인 축제인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13일부터 한 주간 우리가 고난주간으로 지키게 되는데, 금요일인 18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6시간 동안 피를 흘리시며 고통 가운데 일곱 번 귀한 말씀을 남기시고,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1517년 종교 개혁을 했을 때, 가톨릭교회의 모든 상징은 다 없앴지만, 십자가만은 남겨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우리 기독교 안에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십자가를 우리 신앙의 상징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한평생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한평생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한 평생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이 십자가 신앙에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세상 살아가면서 내 삶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이 되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남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내게 좋고 이익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누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피해를 주면 분노하고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히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이 이기주의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는다는 말은 나의 옛사람, 예수 믿기 이전에 육에 속한 사람,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내 삶의 옛 모습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아직 육에 속한 사람이 계속 우리를 괴롭힙니다. 미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죄짓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철저히 죽을 때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옛사람의 모습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면서 나 자신밖에 모르고, 많은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피해를 주고 어려움을 주었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같은 옛사람의 모습에 대해 로마서 7장에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도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 때는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서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 그를 잘 죽인다고 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자랑거리를 다 내버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가문, 지위, 학식, 이런 것들이 자랑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없습니다. 나 혼자 잘난 것도 없습니다. 교만도 자존심도 없는 것입니다. 탐욕도, 인기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누가 욕을 해도, 꼬집어도, 손으로 찔러도,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분노하고 다투고 소리를 지르고 편을 가르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영적으로 내 옛사람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이 살아 있습니다. 분명히 영적으로는 죽었는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옛사람의 모습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누가 나를 비판해도 불쾌하고, 또 누가 나를 칭찬하면 우쭐해서 잘난 줄 알고 교만해집니다.
오늘날 모든 문제가 옛사람이 살아있고 강한 사람들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강한 자아를 깨뜨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강한 자아가 나의 고집과 교만이 쓸데없는 자존심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니까 우리는 자꾸 많은 문제에 휩쓸려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잘못된 풍조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우리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이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나! 나! 나!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까 이 나라가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1,200만 크리스천이 먼저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으면 이 나라는 다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지고 낮아지고 죽어진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며 늘 엎드려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으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늘 소리 지르며 부부 싸움하는 사람들 보면 두 분 다 살아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한쪽이 죽어 있으면 부부 싸움이 될 일이 없는데 손뼉이 마주치니까 소리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죽어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 죽어야 하고, 이 사회를 위해서 죽어야 하고 이 나라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우리는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 옛사람이 죽으면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업을 해도 내가 사장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사업을 이끌고 기업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기업을 운영하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고 어려움도 많고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침체에 빠져서 문제 속에 있을 때 스스로 헤쳐 나갈 길이 없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며 주인 대신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사업을 맡깁니다. 내 가정을 맡깁니다. 내 자녀를 맡깁니다.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여러분 자녀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곳에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우리 주님 한 분뿐이신 것입니다.
내가 공부해도 운전해도 집에서 살림해도 그 모든 삶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 홀로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할 수가 있고, 오히려 고난이 변하여 축복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 교회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을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할렐루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예수님, 의로우신 예수님, 기쁨이 되신 예수님, 치료자 예수님, 모든 복의 근원인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면 그때로부터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가 내 삶 가운데 강물처럼 흘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쌓일 때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옛사람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너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다. 다시는 내게 염려 근심 걱정을 가져오지 말라!” 믿음으로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침례를 줄 때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자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가니까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라는 이가 와서 우리에게 따라오던 사람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때 그가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 고백 같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고 존경받으시고 높임 받으시길 소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우리 인간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주님의 모습이 점점 우리 삶 가운데 높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요, 그것이 바로 말씀으로 충만한 삶이요. 그것이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사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절대긍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 가운데 산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삶을 말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 문제 많은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이 없이는 이 문제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허물 때문에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시며 고통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이 내 믿음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면 빌립보서 4장 13절의 고백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이 믿음이 있어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 끝까지 하나님은 오직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불신앙의 사람,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남만 물고 뜯는 사람하고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 믿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의 믿음의 기초는, 나의 믿음의 근거는, 나의 믿음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사랑이 내 삶의 은혜로 다가올 때, 그것이 나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셨습니까? 누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어줄 수가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의 허물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평생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는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 통곡하고 울면서 주님 은혜 감사하며 주님을 믿고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첫사랑의 감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눈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에 처해서 주저앉아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님 계십니까?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 시간 다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인이 모든 걸 제쳐놓고 교회를 나가다 보니까 좀 잘못된 데 빠진 것이 아닌가 해서 부인을 뒷조사하느라고 교회 따라 나왔다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조정민 목사님이신데 MBC 기자, 뉴스데스크 앵커 등으로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왔던 분입니다.
부인이 모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그저 부인 마음 얻느라고 교회 가겠다고 말을 해 놓고 결혼하고 나서는 교회 ‘교’자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부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주일날이 되면 아내는 교회로 가고 그는 골프장으로 갔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이제 교회 그만 다니라고 했는데 부인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새벽 예배를 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저혈압이라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데 새벽만 되면 벌떡벌떡 일어나서 교회 가니깐 아내가 뭐 이상한 데 빠진 게 아닌가, 화도 나고 또 궁금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 옆에 골프 연습장에 갔는데 그날따라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정기 휴일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정말 아내가 교회에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교회 들어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말로 기도하는데 ‘야, 여기 이상한 데 왔구나. 아내가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놨다니 큰일 났다.’ 싶어서 집에 돌아와서 어디 갈 데가 없어 그리 이상한 데를 다니냐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뭐 숭얼숭얼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나가지 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근데 부인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부인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기자니까 이 교회를 취재해서 교회에 문제가 있는 걸 낱낱이 파헤쳐서 내 아내를 이 이단에서 끌어내야겠다.’
그래서 이제 교회에서 고발 거리를 찾으려고 와서 앉아 예배를 듣는데, 가만히 설교를 들어보니까 설교 말씀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거예요. 말은 참 바른말을 하는데 예배 도중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술에 취한 사람처럼 손도 번쩍번쩍 들고 그러니까 ‘노래 부르는데 왜 손을 들고 난리야? 이 사람들 단단히 미쳤구나.’
그래서 이제 네 번째 교회 나오는 날 자기가 앉아있는데 찬송이 흘러나오는데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너무 놀랐습니다. ‘이거 왜 눈물이 나고 난리냐.’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남편이 우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눈물 흘리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1년 전부터 구역 식구들하고 자기 변화되라고 같이 예수 믿으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고발 거리를 찾으려고 왔다가 눈물 흘리는 게 창피해서 그날로 자진 철수하고 ‘이제 그 교회 가서 고발 거리 취재하는 거 그만둬야겠다.’
그런데 아내가 월요일은 좀 일찍 들어오라 해서 들어와 보니 목사님이 와 계세요. 못한 취재를 이제 목사님하고 담판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내가 하는 걸 따라 하세요.” 그래서 엉겁결에 따라 하다 보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시작해서 “아멘”까지 끝냈습니다. 결신기도를 해버린 거예요.
그 순간 ‘아! 내가 지금 항복 문서에 사인한 것이구나! 내가 졌구나!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구나!’
그러고 나서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믿는 예수가 누구고 도대체 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 뭔가 5번 성경을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현대인성경도 읽고 어린이 성경도 읽고 한영성경도 읽고 그렇게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경이 진리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성경은 진리이며 모든 인생의 답이 성경 안에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믿어지게 됐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해서 20대에는 세상을 바꾸려고 세상에 나가서 ‘돌’을 들었고, 데모대에 있었고, 서른, 30대에는 아내를 바꾸려고 부인을 향한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자녀들을 위해 자녀들을 바꾸려고 ‘매’를 들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 비로소 바뀌어야 할 사람이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25년 동안 MBC에서 기자와 앵커, CEO로 그가 지내다가 53세에 신학교에 가고 57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62세에 교회를 개척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은 나보다 남을 잘되게 하는 삶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말없이 도와주는 것, 형제나 자매가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것,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 사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비정상의 세상 질서를 거슬러 정상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책임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216장(통 356장) ‘성자의 귀한 몸’>
1절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2절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3절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4절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자신밖에 몰랐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늘 내 자아가 강해서 고집이 세서 내 주장만 하고 살았습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옵소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주 후면 우리 기독교의 최대 영적인 축제인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13일부터 한 주간 우리가 고난주간으로 지키게 되는데, 금요일인 18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6시간 동안 피를 흘리시며 고통 가운데 일곱 번 귀한 말씀을 남기시고,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1517년 종교 개혁을 했을 때, 가톨릭교회의 모든 상징은 다 없앴지만, 십자가만은 남겨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우리 기독교 안에 모든 것이 되기 때문에 십자가를 우리 신앙의 상징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한평생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한평생 예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은 사도 바울의 한 평생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이 십자가 신앙에 있습니다.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한다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 세상 살아가면서 내 삶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이 되어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남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내게 좋고 이익이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반대로 누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피해를 주면 분노하고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저히 나 자신밖에 모르는 이 이기주의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는다는 말은 나의 옛사람, 예수 믿기 이전에 육에 속한 사람,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내 삶의 옛 모습이 죽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아직 육에 속한 사람이 계속 우리를 괴롭힙니다. 미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죄짓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철저히 죽을 때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옛사람의 모습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면서 나 자신밖에 모르고, 많은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피해를 주고 어려움을 주었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같은 옛사람의 모습에 대해 로마서 7장에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도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 때는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서고,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 그를 잘 죽인다고 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는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자랑거리를 다 내버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가문, 지위, 학식, 이런 것들이 자랑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없습니다. 나 혼자 잘난 것도 없습니다. 교만도 자존심도 없는 것입니다. 탐욕도, 인기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누가 욕을 해도, 꼬집어도, 손으로 찔러도,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으니까 분노하고 다투고 소리를 지르고 편을 가르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영적으로 내 옛사람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이 살아 있습니다. 분명히 영적으로는 죽었는데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옛사람의 모습이 살아 있어서 조금만 누가 나를 비판해도 불쾌하고, 또 누가 나를 칭찬하면 우쭐해서 잘난 줄 알고 교만해집니다.
오늘날 모든 문제가 옛사람이 살아있고 강한 사람들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강한 자아를 깨뜨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가 날마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강한 자아가 나의 고집과 교만이 쓸데없는 자존심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니까 우리는 자꾸 많은 문제에 휩쓸려서 미워하고 분노하고 다투고 잘못된 풍조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우리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이 대한민국이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 속에 빠졌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나! 나! 나!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까 이 나라가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1,200만 크리스천이 먼저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으면 이 나라는 다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이 나라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지고 낮아지고 죽어진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지켜 행하며 늘 엎드려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살아 있으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늘 소리 지르며 부부 싸움하는 사람들 보면 두 분 다 살아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한쪽이 죽어 있으면 부부 싸움이 될 일이 없는데 손뼉이 마주치니까 소리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죽어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 죽어야 하고, 교회를 위해서 죽어야 하고, 이 사회를 위해서 죽어야 하고 이 나라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우리는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2.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 옛사람이 죽으면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업을 해도 내가 사장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사업을 이끌고 기업을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기업을 운영하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고 어려움도 많고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침체에 빠져서 문제 속에 있을 때 스스로 헤쳐 나갈 길이 없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며 주인 대신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사업을 맡깁니다. 내 가정을 맡깁니다. 내 자녀를 맡깁니다.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여러분 자녀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곳에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우리 주님 한 분뿐이신 것입니다.
내가 공부해도 운전해도 집에서 살림해도 그 모든 삶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 홀로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할 수가 있고, 오히려 고난이 변하여 축복으로 다가오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이 교회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을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할렐루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예수님, 의로우신 예수님, 기쁨이 되신 예수님, 치료자 예수님, 모든 복의 근원인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면 그때로부터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가고 주님의 은혜가 내 삶 가운데 강물처럼 흘러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이 쌓일 때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옛사람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너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다. 다시는 내게 염려 근심 걱정을 가져오지 말라!” 믿음으로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침례를 줄 때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자 사람들이 다 거기로 가니까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라는 이가 와서 우리에게 따라오던 사람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때 그가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 고백 같이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시고 존경받으시고 높임 받으시길 소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우리 인간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주님의 모습이 점점 우리 삶 가운데 높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요, 그것이 바로 말씀으로 충만한 삶이요. 그것이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사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절대긍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 가운데 산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삶을 말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죄 많은 세상, 문제 많은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이 없이는 이 문제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허물 때문에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시며 고통 가운데 돌아가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이 내 믿음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면 빌립보서 4장 13절의 고백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이 믿음이 있어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 끝까지 하나님은 오직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불신앙의 사람,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남만 물고 뜯는 사람하고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 믿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의 믿음의 기초는, 나의 믿음의 근거는, 나의 믿음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사랑이 내 삶의 은혜로 다가올 때, 그것이 나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셨습니까? 누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어줄 수가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의 허물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평생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는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 통곡하고 울면서 주님 은혜 감사하며 주님을 믿고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첫사랑의 감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눈물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에 처해서 주저앉아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님 계십니까?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 시간 다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인이 모든 걸 제쳐놓고 교회를 나가다 보니까 좀 잘못된 데 빠진 것이 아닌가 해서 부인을 뒷조사하느라고 교회 따라 나왔다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조정민 목사님이신데 MBC 기자, 뉴스데스크 앵커 등으로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왔던 분입니다.
부인이 모태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그저 부인 마음 얻느라고 교회 가겠다고 말을 해 놓고 결혼하고 나서는 교회 ‘교’자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부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주일날이 되면 아내는 교회로 가고 그는 골프장으로 갔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이제 교회 그만 다니라고 했는데 부인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새벽 예배를 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저혈압이라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데 새벽만 되면 벌떡벌떡 일어나서 교회 가니깐 아내가 뭐 이상한 데 빠진 게 아닌가, 화도 나고 또 궁금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교회 옆에 골프 연습장에 갔는데 그날따라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정기 휴일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정말 아내가 교회에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교회 들어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말로 기도하는데 ‘야, 여기 이상한 데 왔구나. 아내가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놨다니 큰일 났다.’ 싶어서 집에 돌아와서 어디 갈 데가 없어 그리 이상한 데를 다니냐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뭐 숭얼숭얼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나가지 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근데 부인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부인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기자니까 이 교회를 취재해서 교회에 문제가 있는 걸 낱낱이 파헤쳐서 내 아내를 이 이단에서 끌어내야겠다.’
그래서 이제 교회에서 고발 거리를 찾으려고 와서 앉아 예배를 듣는데, 가만히 설교를 들어보니까 설교 말씀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거예요. 말은 참 바른말을 하는데 예배 도중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술에 취한 사람처럼 손도 번쩍번쩍 들고 그러니까 ‘노래 부르는데 왜 손을 들고 난리야? 이 사람들 단단히 미쳤구나.’
그래서 이제 네 번째 교회 나오는 날 자기가 앉아있는데 찬송이 흘러나오는데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너무 놀랐습니다. ‘이거 왜 눈물이 나고 난리냐.’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부인이 남편이 우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해서 눈물 흘리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1년 전부터 구역 식구들하고 자기 변화되라고 같이 예수 믿으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고발 거리를 찾으려고 왔다가 눈물 흘리는 게 창피해서 그날로 자진 철수하고 ‘이제 그 교회 가서 고발 거리 취재하는 거 그만둬야겠다.’
그런데 아내가 월요일은 좀 일찍 들어오라 해서 들어와 보니 목사님이 와 계세요. 못한 취재를 이제 목사님하고 담판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먼저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내가 하는 걸 따라 하세요.” 그래서 엉겁결에 따라 하다 보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시작해서 “아멘”까지 끝냈습니다. 결신기도를 해버린 거예요.
그 순간 ‘아! 내가 지금 항복 문서에 사인한 것이구나! 내가 졌구나!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구나!’
그러고 나서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믿는 예수가 누구고 도대체 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이 뭔가 5번 성경을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현대인성경도 읽고 어린이 성경도 읽고 한영성경도 읽고 그렇게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경이 진리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성경은 진리이며 모든 인생의 답이 성경 안에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믿어지게 됐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해서 20대에는 세상을 바꾸려고 세상에 나가서 ‘돌’을 들었고, 데모대에 있었고, 서른, 30대에는 아내를 바꾸려고 부인을 향한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자녀들을 위해 자녀들을 바꾸려고 ‘매’를 들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 비로소 바뀌어야 할 사람이 ‘자신’인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25년 동안 MBC에서 기자와 앵커, CEO로 그가 지내다가 53세에 신학교에 가고 57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62세에 교회를 개척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고백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잘 사는 것’은 나보다 남을 잘되게 하는 삶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말없이 도와주는 것, 형제나 자매가 기뻐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것,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 사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비정상의 세상 질서를 거슬러 정상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책임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216장(통 356장) ‘성자의 귀한 몸’>
1절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2절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3절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4절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자신밖에 몰랐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늘 내 자아가 강해서 고집이 세서 내 주장만 하고 살았습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옵소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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