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4~5, 8)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부활절을 지나고 나서 일곱 주일을 지나면, 성령강림주일이 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2000년 전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해서 교회가 탄생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교회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교회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박물관처럼 생명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유럽을 가보면 큰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퀄른에 있는 한 교회는 교회를 600년 동안 지은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교회가 관광하는 관광의 명소가 되었고, 3000명이 넘게 들어가는 교회에 주일날 100명이 안 모입니다. 성령이 떠나가시면 교회는 죽는 것입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함을 받고 예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하는 주님의 귀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 모두에게 부어 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복음성가: 성령님 내게 오소서>
성령님 내게 오소서
기도드립니다
권능과 능력으로써
나에게 채우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시옵소서.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우리가 죄 가운데 살다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령충만한 교회로 보내 주셔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신앙생활 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한평생, 성령충만한 신앙인들이 되어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수의 사랑을 전하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주님의 일꾼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사도행전 1장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수를 믿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지고 늘 좋은 일만 있고 늘 승리의 삶만 살아야 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죄를 짓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혈기를 부리고 다투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배웠지만은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저들은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거짓말을 한 것이죠.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째 가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그런 부끄러운 제자의 모습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언제 달라졌느냐? 그가 성령 받고 달라진 것입니다. 성령 받고 나서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충만 받아 죄와 싸워 승리하며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분부
이것은 예수님의 분부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분부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십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기다리라.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1장 5절에 이어서 설명하십니다.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의 침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침례를 받기 위해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붙잡혀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예수님을 붙잡아 죽인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요, 또 그들에게 매수된 많은 군중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붙잡아서 똑같이 저들을 처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다 붙잡아서 감옥에 넣기를 원하는 그러한 곳이 예루살렘인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에 네로 황제 시대에 대 박해가 시작되어서 250년 동안 기독교인을 다 붙잡아 죽였습니다. 붙잡아서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불에 태워죽이기도 하고, 짐승의 밥이 되어 죽게 하기도 하고 십자가에 달려 며칠 동안 고생을 당하며 죽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대 박해가 크리스천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그런 고난의 자리, 박해의 자리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 아버지의 약속하신 5절 말씀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침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침례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교인이 되고 나서 다 침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아직 침례를 안 받으셨으면,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침례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제일 중요한 교회의 예식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물에 잠길 때, 내 옛사람이 물속에서 죽고 물에서 나올 때 주님과 함께 부활 된다고 하는 그러한 영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 침례인데, 성령의 침례는 내가 성령에 잠기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뜻대로 살던 나의 옛 모습을 버리고 성령에 사로잡혀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3년 반 동안 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이해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 그래서 그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이 함께 기도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1장 14절을 보니까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말씀을 붙잡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력하고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상처받고 절망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성령으로 충만함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권능을 받을 때, 우리는 승리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에게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라."
2. 권능을 받으라
둘째로, 우리는 권능 받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랬습니다. 진짜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으면 권능이 뒤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생활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죄짓고, 똑같이 소리지르고, 똑같이 싸우고, 똑같이 거짓말하고 주일날은 교회에 나와서 거룩 거룩한다면 그것은 위선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권능이 따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 받고 권능이 임해야 되는데 권능이 없으니까 자꾸 죄에 넘어지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직분을 맡고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소멸하면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짓게 되는 것입니다.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죄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권능이라는 것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 두나미스라고 하는 말에서 다이너마이트가 나왔습니다. 폭발적인 능력. "주여 내게 이 권능을 주시옵소서. 죄와 싸워 승리하고 병을 물리치고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내 다스리지 못하는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고,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주여, 내게 성령충만을 주시고 권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일생은 성령이 임해서 권능이 함께한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침례를 받으시는 그 순간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셔서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권능과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8절에 예수님의 사역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할렐루야!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셔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여 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우리가 권능 받고 예수님처럼 선한 일을 행하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고치고, 주님 영광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임할 때,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수제자 베드로는, 성령 받고 완전히 달려졌습니다. 능력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고 뛰쳐나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그날 3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왔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41절에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할렐루야! 오순절 날 성령 받고 나서 말씀을 선포할 때, 그 설교 한 번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주여 이 권능을 우리에게도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 받고 나서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저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늘 넘어지고 실수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십 년을 예수 믿어도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다녀도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또 받고 또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또 충만함을 받아야 우리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후, 사도행전 보면 첫 번째 기적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는 것인데,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고치는 장면이 3장에 나옵니다. 3장 6절과 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귀머거리가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이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도 주셔서, 죄악으로 뒤덮인 이 세상을 우리가 성령의 권능으로 승리하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꿈과 희망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나라가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좌우 갈등이 심합니다. 해외 나가면, 염려가 다 우리 조국에 대한 것입니다. 동포들이, 우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서로 의견이 나뉘어서 다툰 적이 없는데 늘 싸우고 있으니 너무나 염려가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염려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경제는 곤두박질하고, 국회는 밤낮 싸움만 하고 있고, 여론을 양쪽으로 나눠서 더 갈등이 심해지고.
이 모든 것의 문제 해결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갖고 있는데, 그 열쇠가 바로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이 모든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누어진 사회를 하나로 만들 수 있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흑암의 권세를 물리치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고 권능을 받아서,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3. 증인이 되라
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시느냐?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증인이 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인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장 8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이 되리라! 할렐루야! 증인이라는 말의 헬라원어는 말투스입니다. 말투스라는 말에서 순교자라고 하는 뜻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목숨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증인이 아니라, '내가 이 복음을 전하다가 내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나는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세계로 교회의 손현보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 얼마나 이분이 목숨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지, 그 시골에서 대대로 미신을 섬기는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고, 또 전하려고 하고, 또 전하려고 하고, 또 전하려고 하고 그래서 너무 괴롭히니까 술을 잔뜩 먹고 도끼를 들고 죽인다고, 교회를 찾아온 그 간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술 먹고 도끼를 들고 온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거기에 안수집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도끼를 들고 왔던 사람이 안수집사로 변하는 것이 위대한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로 35절에 보면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권능을 받고 복음을 전할 때, 저들이 큰 감동을 받아서 가진 것을 다 주님께 내어 놓으니 그것을 가지고 교회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 내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아서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도록 늘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입으로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우리 주위에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생명보다도 귀한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해서 최소한도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이 예수를 믿고 그리하여 통일의 문을 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 안 됩니다. 북한의 2500만은 주체사상으로 73년을 훈련받은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4월이 되면 태양절이라 그래서 김일성의 생일을 지킵니다. 우리 교회에 크리스마스가 있듯이 저들에게는 태양절이 있는데, 아이들이 1년 내내 태양절을 기다립니다. 왜냐 태양절이 되면 학교에 가면 사탕 한 봉지를 줘요.
사탕을 모여서 줄 때, "이 사탕은 누가 주는 것이죠. 네 위대한 어버이 수령 김일성 수령께서 주십니다."하고 두 손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70년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안 바뀝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시고, 위대한 구세주가 되시고 능력자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북한을 해방시킬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이 남한의 절반은 예수를 믿어야 되기 때문에 이제 우리 교회가 갑절로 부흥해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이 복음을 북한에까지 전하는 주님의 귀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충만 했던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는 처음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돌을 던져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용서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 60절입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면, 여러분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에게 분노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나에게 욕하고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분노의 화신들이 되어서 그 분노가 언제 폭발될지 모르는 그러한 위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합니다.
운전하다가 뒤에서 빵빵 한다고, 차를 끝까지 쫓아가서 차를 가로막고 멱살 잡고 싸우는 사람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그들 가운데 크리스찬이 없는지 욕하고 싸우다가 서로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성령 충만하지 않으니깐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러분이 과연 그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습니까? 누가 뒤에서 나에게 뭐라고 말하여도 "너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너 나 좀 봐." 이렇게 싸우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말 한마디만 나에게 나쁘게 해도 성질을 내고 그들과 싸우는 우리들이 성령충만 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에게 돌 던지는 사람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진정한 사랑과 용서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용서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의 증인 되어 순교자적 영성을 갖고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맞서서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믿음을 지키시다가 1938부터 44년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5년 4개월 동안 감옥에 붙잡혀 들어가서 얼마나 고문을 받았는지 어머니와 아들을 데려다 놓고 그 아버지 고문하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는 앞에서 몽둥이로 20여 차례 칠 때 그냥 기절해 버리니까 그것을 본 부인과 아들의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시뻘건 고춧가루 물을 갖다가 억지로 입을 열고 계속 부은 다음 그 위로 물이 가득 찬 배 위로 눌러 타고 올라앉아서 코하고 귀를 쏟아져 나오게 하니까 그것을 본 아들이 놀라 가지고 충격받아서 실어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못을 송판에 박아서 뒤집어 놓고 그 가시 못 판 위를 걸어가게 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온 발이 그 못에 찔려서 발이 다 터지고 파상풍이 걸렸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944년 4월 21일 밤 9시에 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에 그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그의 목숨을 주님께 바쳤던 것입니다.1939년 2월 5일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했던 그분의 설교는 유언과도 같습니다. 다섯 종목의 나의 기도라는 제목이 있는데 이러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2. 장기(長期)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3.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5.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이렇게 5가지 기도 제목을 말씀하신 후에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처음에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만 나중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지어줍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복음의 증인으로 순교한 이 주기철 목사님의 그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이렇게 주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목숨 바쳐 주님을 위해 살다가 우리 주 앞에 부름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길은 오직 성령충만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무기력해서 늘 넘어지고 쓰러지고 죄와 타협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허물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변화 받아 새사람이 되어, 권능 받고 목숨 바쳐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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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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