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봉독>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야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야훼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3-5)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평생 예배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구경꾼으로 밤낮 왔다갔다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맞아들이고 주님의 은혜가 충만한 시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1절)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2절)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3절)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쏘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주님 내 몸,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단 한 번도 우리 주 예수님은 예배 시간에 우리를 기다리시지 않은 적이 없는데, 거꾸로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문, 마음 문 닫아놓고 내 마음의 염려, 근심, 걱정 때문에 주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었고, 내 마음의 상처 때문에 주님이 계실 자리가 없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나의 염려가 앞섰고, 나의 걱정이 앞섰고, 나의 상처가 앞섰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교만한 마음을 깨뜨려주시고 주님,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드려서 주님이 이 땅에 오시는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어떤 은혜도 우리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 때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회개!”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中>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사야서 40장 3절로 5절 말씀 가지고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눕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4주 후로 다가왔습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이 4주 동안을 ‘Advent’, ‘강림절’, ‘대강절’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하는 기간으로 우리가 이 기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맞이하려면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침례 요한이 오늘 이 본문 말씀 가지고, 이 본문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이사야가 한 예언의 말씀인데, 그 말씀을 가지고 선포하며 “주님 오심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쳤습니다.
오늘도 그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그냥 또 올해, 매년 연말이면 맞이하는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우리 죄를 사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진정한 감사와 사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이번 성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상처와 절망의 골짜기를 메우라
그렇게 되려면 먼저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이 패인 골짜기들이 메워져야 합니다. 상처와 절망의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40장 4절에 보니,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라고 말씀합니다.
옛날에 왕이 어느 곳에 출정하려면, 먼저 전위대들이 나가서 나갈 길을 고릅니다. 파인 곳은 메우고, 또 높은 곳은 깎아 내고, 거친 것들은 땅을 골라서 평평하게 만들고, 많이 굽은 길은 길을 바르게 만들고, 그런 일을 합니다. 전쟁이 나면, 군인들이 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공병대들이 나아가 가지고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전쟁이 나면 군인들이 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공병대들이 나아가 가지고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길을 만들어놔야 뒤에 탱크도 가고, 뒤에 따르는 부대들이 그 길을 갈 수 있지, 길이 이곳저곳으로 막혀있으면 전쟁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려면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우리 마음 가운데 이 패인 많은 상처의 골짜기가 있어서 주님이 오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미래를 바라보고 꿈과 소망을 갖고 나아가라고 하는 그러한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삽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늘 꾸중 받던 경험, 학교 선생님에게 야단맞던 경험, 사업에서, 사업을 하다가 경영이 안 돼서 한때 큰 어려움을 겪고 파산에 이르렀던 경험,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움푹 파인 골짜기를 만들어서 절망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며, 그 상처에 매여 살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 젊은 자매님 한 분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그곳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 가서 들은 얘기는 미국 전역에 있는 모든 병원에 있는 각종 환자들의 숫자를 다 합쳐놓은 숫자만큼 정신병원에 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큰 병원이 바로 도시 한복판의 울창한 숲 뒤에 있는 것을 몰랐어요. 매일 그 앞을 지나갔지만, 뒷길에 보니까 큰 병원이 있는데 그동안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가득 입원해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미국 전역의 병원에 환자가 2천만 명 있으면 정신병원에도 2천만 명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닥터가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과거에 받은 어느 상처에 붙잡혀서,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 상처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겁니다.” 좀 나아질 만하면 또 과거의 상처를 들먹이고, 또 얘기하고,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그러한 약을 주고, 그러한 테라피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늘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과거에 상처받은 그 기억을 지워버린다면, 약 85%의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 그날 다 퇴원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과거의 상처에 딱 붙잡혀가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과거의 어떤 상처, 내가 남에게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억울한 일당하고, 이러한 일을 가지고 매여 산다면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스스로 그런 웅덩이를 파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파인 웅덩이는 메워야 되는 것입니다. 파인 채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파인 상태에서 더 파이고, 더 파이고 하기 때문에 점점 더 상처는 깊어가고 절망은 깊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더 이상 상처에 매여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치료받았습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 같은 은혜가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치료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아서 사람에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주님 앞에서 치료함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과거의 모든 상처가 치료함 받고, 내가 헤어나지 못하던 고통과 아픔에서 치료함 받고 회복되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과거의 상처에 매여 사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요, 한 번도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요. 늘 아버지는 술 취해 들어와 가지고 자녀들에게 욕을 하시고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30년 지났어요. 그런데도 그걸 못 잊는 거예요. 못 지워버리고 평생 갖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의 결혼생활도 불행해요. 왜? 자기 남편에서 아버지 모습을 자꾸 보니까 남편이 화를 내면 또 아버지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좌절하고 그런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상처의 골짜기를 예수님의 보혈로 채워서 상처가 변하여 치유가 되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낙심이 변하여 용기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교만의 산을 낮추라
둘째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교만의 산을 낮춰야 됩니다. 독선과 아집과 교만의 산과 언덕을 낮춰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4절에 보니,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라고 말했습니다.
골짜기가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또 한편에는 이 마음속에 언덕과 산이 많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굉장히 자아가 강합니다. 누구에게 비난을 받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감히 나한테 뭐라 그래? 내가 누군데!” 언젠가 제가 공항에서 말이죠, 그렇게 막 화를 내는 분을 봤어요. 그런데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함부로 나를 무시하고, 나를 함부로 이렇게 할 수가 있어?”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모르겠는데, 본인은 내가 누군데 하고 소리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뭐 정부 고위관료인지는 모르겠어요. 그 교만 덩어리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데 날 무시해! 내가 누군데 의전을 소홀히 해! 내가 누군데 인사를 안 해!” 어떤 분이 막 성질을 내면서 하는 말이 “요즘 젊은것들이 어른 보면 인사도 안 하고!” 알고 보니 그 젊은 친구는 눈이 워낙 나빠서 지나가는 사람이 누군지 잘 못 봐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혼자 화를 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산이 높은 사람이 있고 낮은 사람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서 이 교만을 깨뜨리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리고, 또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늘 불편한 삶을 살 것입니다. 늘 부딪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예수를 더 믿은 사람이 처음 믿은 사람을 섬겨야 됩니다. 평신도 때보다는 제직을 임명받아 직분 자가 되면 더 많이 섬겨야 됩니다. 서리 집사 때 평신도를 섬겨야 되고, 안수 집사님 권사님이 되면 더 섬겨야 되고, 장로님이 되면 더 섬겨야 되고, 주의 종이 되면 더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질서입니다. 내가 늘 다스려야 되고, 늘 남들이 나의 말을 복종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그 인생은 정말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많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이 교만의 산들을 깎아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교만했는지 “우리가 너희들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바리새인들이다.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도 하고, 철저하게 십일조도 드리고, 십계명 다 지켜 행한다. 너희들은 죄 덩어리가 돼서 방황하지만, 우리는 너희와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생각하며 이렇게 교만이 꽉 들어찬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만이 존경받고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예수”라는 분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그것에 저들의 속이 뒤집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였더라”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받아야 될 영광을 예수님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과 같은 이들, 그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이처럼 결국 교회 내에서 교회를 상처 입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은 평신도가 아니라 재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 믿은 사람들이 아닌 오래 믿은 사람들이 교회에 상처를 입히고 어려움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린 잊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가 다 그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마다 문제가 생겨나고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분열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홀로 존귀 받아야 되는 이 교회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나타내고 “나! 나! 나!”를 강조한다면 우린 상처투성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낮아져 살면 인생이 더 편한데 대우받으려고 하니까 불편한 거예요. 저는 어디 회의를 가면 항상 말석에 앉습니다. 왜? 윗자리에 앉았다가 순서를 맡은 분이 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항상 말석에 앉아요. 윗자리로 오라고 해도 저는 밑이 좋다고 극구 사양합니다.
여러분, 섬김은 훈련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깨어지고 낮아질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4장 11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한국 교회사에 빛나는 겸손과 섬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자익 목사님과 조덕삼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귀한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였던 조덕삼 장로님.
이 조덕삼 장로님이 섬겼던 이자익 목사님은 경남 남해군 한 섬에서 태어나 너무너무 가난해서 김제에 있는 한 부잣집에 가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저를 머슴으로 써주세요” 하고 들어간 그 집이 바로 조덕삼 장로님 집입니다. 그런데 어느 선교사로부터 이 머슴이 예수를 믿게 되고 나서 주인을 전도합니다. 그래서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곳에 세워진 교회가 금산 교회인데, 이 주인 조덕삼과 또 머슴 이자익은 나중에 둘 다 그 교회의 영수가 됩니다. 옛날 장로교회에서는 장로 직분 밑에 ‘영수’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을 도와서 교회 일을 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우리 교회의 ‘안수집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다 영수가 되었는데 선교사님이 여러 교회를 돌아보셔야 하니까 교회를 비우실 때는 영수 직분을 받은 분이 대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머슴이던 이자익 영수가 설교를 잘했기 때문에 늘 이자익 영수가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1908년에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의 영수를 놓고, 조덕삼, 이자익 영수를 놓고 투표를 했는데 그만 머슴인 이자익 영수가 장로가 되고, 그리고 주인인 조덕삼 영수는 떨어진 거예요. 교인들이 걱정했습니다. ‘아이고, 주인 어른이 떨어지고 머슴이 붙었으니 이거 참 교회가 난감하게 생겼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떨어진 조덕삼 영수가 나와서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섬겨서 교회를 부흥시킵시다.”
할렐루야!
집에선 머슴이지만 교회에서는 장로님으로 깍듯하게 예우하고 섬겼어요. 그것을 온 성도들이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 저 믿음 본받자. 저 겸손을 우리도 본받자!” 그래서 그 다음 해에 이 조덕삼 영수도 장로님이 됩니다. 그 후에 이자익 장로님이 말씀을 잘 전하니까 평양신학교에 보내서, 목사로 만드셨고, 훌륭하신 목회자가 되어 장로교 총회장을 세 번을 역임하고 큰 업적을 남긴 목사님이 되셨고, 이 조덕삼 장로님은 대대로 그 겸손의 본을 보여서 온 가족이 주님을 잘 섬기는 그러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쉽지가 않습니다. 쉽지가 않아요. 현실적으로 사장님이 장로에 떨어졌는데 사원이 장로가 되면 참 힘든 겁니다. 그런데 이 조덕삼 장로님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자기 집 머슴인 이자익 영수가 장로가 되었을 때, “장로님!” “장로님!” 하고 교회에서 얼마나 잘 섬겼는지, 큰 감동을 주고 교회에 부흥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낮아짐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어떠한 교만의 산이 있든지 간에 오늘 다 쳐 부숴서, 깨뜨려서 낮추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존심의 산도 깨뜨려버리고, 내 마음에 있는 어떠한 나의 자랑거리들, ‘내가 많이 배웠다.’ 그 지식의 교만도 깨뜨려버리고, ‘내가 돈이 많다.’ 물질의 교만도 깨뜨려버리고, ‘내가 높은 자리에 있다.’ 그 권력의 교만도 깨뜨려버리고 낮아져서 섬기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내 삶 속에 예수님만이 높임 받으시고 존귀케 되길 원합니다. 내 모습은 주님 앞에서 사라져버리고 주님의 모습만 남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은혜입니다.
3. 굽어진 신앙을 바르게 하라
셋째로, 굽어진 것이 바로 펴져야 됩니다. 우리 굽어진 신앙을 바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4절은,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굽어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이미 무엇인가 본인이 자랄 때 큰 상처를 남긴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굽어져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삐딱하게 봅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에 성경은 말씀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제가 보니까 육신의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가 문제더라고요.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삐뚤게 봅니다. 매사가 부정적입니다. 그 입을 열면 늘 부정적인 얘기만 합니다.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원망 불평하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 좋은 많은 자랑할 내용을 다 뒤에 두고, 백 가지 자랑할 것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문제점만 지적해서 이야기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견과 오해로 똘똘 뭉쳐있어가지고 늘 비판적인 시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그러한 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이 부분은 힘든 부분입니다. 잘 안 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 안 변해요. 이 굽어진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잘 안 변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어려운 신앙생활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굽어진 것도 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이 되고, 성령의 불을 받으면 매사에 비판적인 것이 감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굽어진 인생을 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바다에 돈이 2조가 들은 보물선이 빠졌다!” 해놓고 돈을 거둬들인 다음 그렇게 사기 친 사람이, 또 저쪽 싱가포르로 건너가서 가상화폐를 만들어가지고 투자자를 모아가지고 또 사기치고. 계속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굽은 마음이 그와 같은 절망적인 삶을 살고 부패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나서 이 굽어진 마음이 펴져야 됩니다. 야곱이 한때 굽어진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그 굽어진 마음을 가지고 형이 받을 장자권의 축복을 빼앗았던 그가 이십 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깨어지고 난 다음, 얍복강 나룻터에서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굽어진 그가 바로 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바로 그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4. 험한 곳이 평지가 되리라
마지막 네 번째로, 험한 모습이 선하게 되어야 합니다. 본문말씀 4절에 보니,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험한 길이 있습니다. 돌들이 많이 있고, 가시와 엉겅퀴가 있고, 땅이 막 울퉁불퉁하고 그래서 이런 데는 불도저로 갈아엎어가지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되는데, 참 마음이 험한 사람들은 인생이 참 힘듭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마음이 험한 사람들은 술 취하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술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제가 해남의 땅 끝 마을에 갔을 때, 아이들이 나와서 율동을 하는데 그 중의 한 아이가 이빨이 없어요.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물어보니 아이들을 돌보시는 사모님이 “목사님, 쟤는요, 하도 아버지한테 맞아서 이빨이 아홉 개가 없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 아이의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들어와서 엄마를 때리고 자기를 때리는데, 부인이 맞다 맞다 못 견뎌서 집을 나가버렸고 얘 혼자만 남겨놨는데, 얘도 집에만 들어오면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와 때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오면 숨어 피하느라고 어느 날은 며칠씩 개집에 들어가서 숨어있고. 동네 사람들이 ‘쟤 저러다 맞아 죽겠다’ 싶어 그 지역 아동센터에 그 아이를 옮긴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한지 몰라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주먹을 휘두르는 그런 거친 인생을 살아요, 입을 열면 욕을 해대는 데, 어떻게 사람이 저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할 수가 있나할 정도로, 막 거친 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이 아이는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의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이를 다 해 넣고 요즘은 활짝 웃습니다. 옛날에는 웃을 때도 입을 가리거나 입을 벌리지 못하고 웃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활짝 웃어요. 할렐루야!
이렇게 거친 인생을 사는 부모님을 만나면 얼마나 힘듭니까. 술은 왜 그렇게 먹어 대고, 술을 먹으면 주먹은 왜 그렇게 휘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면 또 왜 죄 없고 연약한 부인들을 때리고 얘들을 때립니까.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는 이와 같은 거친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모습이 있다고 하면 오늘 이 시간 완전히 제거해버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거룩해진 모습으로, 선한 모습으로 바뀌어져서 주님을 섬기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야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처럼 주님의 길을 예비해야 됩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추고, 굽은 것은 바로 하고, 거친 것은 평탄케 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사야 40장 5절에 기록된,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야훼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회개해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나에게 그런 상처를 준 부모 이웃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 불행하게도 알코올 중독의 자녀들이 절대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안 되겠다고 하는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그것이 심겨져버렸어요. 절대 나는 부인 안 때리겠다 했는데, 자기가 부인을 때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아버지의 술 먹고 부인을 때리는 모습이 자기한테 유전이 되어 심겨져서, 그 DNA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잘못된 DNA를 다 정리해버려야 됩니다. 다 청산해버려야 됩니다. 다 쓸어 내버려야 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2절)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찬송가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1절)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밖에 세워두니 참 나의 수치라
(2절)
문 두드리는 손은 못 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렀네
이처럼 기다리심 참사랑이로다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3절)
주 예수 간곡하게 권하는 말씀이 네 죄로 죽은 나를 너 박대할쏘냐
나 죄를 회개하고 곧 문을 엽니다 드셔서 좌정하사 떠나지 마소서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손을 들고 주님을 영접하겠다고 우리가 결심하고 찬송했사오니 주여,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주인이 되어주시고, 오늘 이후로는 우리 마음의 모든 쓰레기를 청산해버리고,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여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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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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