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마가복음 3장 1~5절)
귀한 은혜의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 엎드리어 경배하며 찬양
왕의 위엄을 신령과 진정한 찬양으로 영광 돌려 만왕의 왕께
주님만 바라보고, 오늘 주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가는 복된 은혜의 시간 되길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 예비하신 은혜로 넘치게 채워주시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 엎드리어 경배하며 찬양
왕의 위엄을 신령과 진정한 찬양으로 영광 돌려 만왕의 왕께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주셔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여 구원하여주시고, 늘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에 품어주시고, 저희들을 인도해주신 그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들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와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오니, 우리 모두에게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로 넘치게 채워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말씀 제목은 “네 손을 내밀라”입니다. 마가복음 3장 1절로 5절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 해주세요. “네 손을 내밀라” “네 손을 내밀라”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고, 상처가 있고, 말 못 할 고민도 있고, 또 부끄러운 과거의 모습도 있고, 실패의 경험, 또 상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거에 붙잡혀서 평생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과거의 감옥에 갇혀서 고통 가운데, 괴로움 가운데 살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상처 입은 과거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변화받은 모습으로, 치료받은 모습으로, 회복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 한쪽 손 마른 사람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손 마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쪽 손 마른 사람이 나오는데요. 3장 1절을 보니까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오늘 말씀을 보니까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한쪽 손 마른 사람, 한 손이 마비되어 오그라든 사람, 한쪽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한쪽 손 마른 사람’이라고 되어있지만, 의사인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을 보면 ‘오른편 손이 마비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로 우리가 오른손을 많이 쓰는데, 오른손이 마비되었다고 하는 것은 활동에 큰 지장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손은 우리의 활동의 중심이고, 또 성경에 ‘하나님의 손’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의 중심이 되는, 활동의 중심이 되는 오른손이 마비되어 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겠습니까? 아마 그 마비되고 말라붙은 손으로 인해서 심한 열등의식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늘 혼자서 외톨이로 지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쁨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그러한 신세가 되었나?’ 아마 낙심하여 살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른 손이 꼭 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런 마른 손과 같은 연약한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핸디캡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의 죄의 모습도 있고, 실수도 있고, 실패의 경험도 있습니다. 죄로 뒤덮인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니까,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렇게 말씀하고 있고.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핸디캡, 약점을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많이들 열등의식 속에서 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피해 외롭게 지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게임 중독, 도박 중독에 빠져서 거기서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서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져서 만나는 사람하고 늘 부딪히고, 그리고 그 예민한 성격이 늘 폭발해서 주변 사람에게 불편을 주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마른 손이, 이 마비되고 오그라든 손이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으로, 의학으로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이 오그라들고 마비된 손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손 마른 사람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3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이 교회 안에도 여러 가지 핸디캡을 가지고 손 마른 사람의 모습 같은 모습으로 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 불행했던 과거. 또 저는 육체적인 장애보다는 실제로 정신적인 장애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나는 실패자다.’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내 결혼 생활에 한번도 행복하다고 느껴본 일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 같아요. 신혼여행 가서 싸우고 거기서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려면 결혼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살다가 맞지 않아서 헤어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과거의 상처가 평생 나를 붙들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처, 이런 연약함을 예수님의 은혜로 치료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를 믿은 그 순간 우리가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 보니까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과거는 예수 믿을 때 여러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영원한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과거가 된 것입니다. 세상 유행가에도 ‘과거를 묻지 마세요’ 그런 노래가 있는데, 여러분 우리 예수 믿고 나서 자꾸 과거의 어두운 기억, 무시당한 기억, 미움과 분노의 기억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 받아서 이 과거의 모든 상처를 다 떠내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주님 안에서 변화되었다.” “새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2. 부정적 사고를 하는 사람
그런데 회당 안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고, 또 한 편에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늘 판단하고, 정죄하고, 남의 잘못을 들춰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사람을 끌어내리고 하는 이러한 습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 와 있었습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에, 그것이 관심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서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느냐, 안 어기느냐? 거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고 말씀했는데, 안식일은 어떤 일도 하지 않도록 계명에 정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병 고치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만약 예수님이 병을 고치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것이니 예수님을 고발해서 븥잡아 가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저들이 와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은혜가 떠나면 이 같은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은혜 받는 데는 관심이 없고 문제가 무엇인가? ‘왜 저 사람 저기 앉아가지고 졸고 있나?’ ‘왜 저 사람 신문 보고 있나?’ ‘왜 저 사람 아직도 핸드폰 켜가지고 핸드폰 문자하고 있나?’ 이런 데만 관심 있어요.
여러분, 예배드리는 데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은혜 받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되고,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 할렐루야! 여기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 마음은 비판의식, 부정적인 의식, 교만, 탐욕 이런 것들로 가득 차서 늘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은 다 옳아요. 자신은 다 옳고 나하고 안 맞은 사람은 다 틀린 거예요. ‘다름’하고 ‘틀림’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있는데, ‘나하고 다르면 다 틀린 거야’ 이렇게 되면 다 원수가 되고 평행선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 문제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너하고 나는 다르기 때문에 너는 틀렸어.” 그러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체제 속에서 지난 70년이 지나왔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강력한 그 공산 독재 체제 하에 70년을 유지해왔고,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분방한 자유민주주의를 통해서 70년 동안 우리가 이 나라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이 간격은 무엇으로도 메꾸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을 한다고 하는데, “너 우리하고 체제가 다르니까, 당신이 적이요!” 하고 총과 칼을 겨눈다면 통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서로 다르니까 어떻게 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 공통분모를 찾을 것이냐 그것에 머리를 맞대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이 사상적인 차이를 뛰어넘고 간격을 뛰어넘어서 남북을 하나 되게 만들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비판의식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이 책망하십니다. 마가복음 3장 4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주님 물으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그렇지 않으면 악한 일을 행하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내버려 두는 것이 옳으냐?” 저들이 아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그리고 예수님을 어떡하든지 자기들의 그 올무에 잡아넣으려고 왔는데, 주님 물으시니까 그들이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아시아기독교지도자 모임에 갔을 때, 거기 싱가포르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이 강의할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문제 있는 교회는 없다. 그러나 교회에 문제 있는 사람들은 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 문제 있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걸 구분해야 되요. “아! 저 교회 문제 있는 교회야.” 그러면 안 됩니다. “저 교회에 문제 있는 사람이 있어.” 이건 얘기가 돼도,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구성원인 사람들이 문제가 있어서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바리새인처럼 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절 보니까 이렇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말은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23장 1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들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함으로 천국 문 앞을 딱 가로막고 못 들어가게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못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까지 막 막고 있으니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라는 것을 주님이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 26절에도 책망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고,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은 타락했고 교만과 불순종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다음 겉을 바르게 하라고 주님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우리 마음이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그러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주님 앞에 진실되고, 마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마음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복 내려 주실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님 믿으면서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 비판적인 사람, 항상 남의 잘못만 이야기하는 사람 편에 서 있지 말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 편에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회복시키시는 주님
세 번째로, 회복시키는 주님에 대해서 말씀 나누기 원합니다. 3장 5절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치료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른 손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병, 육신의 병, 많은 문제를 고쳐주시고 해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주님 와 계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 오신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죄 덩어리였지만, 우리가 문제투성이였지만, 주님이 우리를 그 죄와 절망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을 얻게 해주시고, 우리의 삶이 주님이 은혜로 풍성하게 주님의 축복으로 넘쳐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계속 절망의 고통의 모습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손 마른 자의 모습에 머물러 있어도 안 되고, 또 바리새인들처럼 비판하고 남을 부정적으로 말하고 그렇게 주님 뜻과는 반대 길을 가는 편에 서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선한 일을 행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께서 그 손 마른 사람을 한가운데서 나오라 부르시고 일어나라 그러셨습니다. 쭈뼛쭈뼛 손 마른 사람은 나와서 일어났습니다. 가운데 섰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그랬습니다. 늘 감추고 부끄러워했고 자기의 핸디캡으로 여겨서 누구에게도 그 손을 보이기 싫었던 그 손인데, 주님이 “손을 내밀라.” 믿음으로 손을 내미는 그 순간 그 손이 완전히 치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내 모습 이대로 주 앞에 나와 손을 내밀 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든 손을 주 앞에 내밀어야 합니다. 문제 있는 손을 주 앞에 내밀어야 합니다. 실패와 상처로 얼룩진 손을 주 앞에 내밀 때 주님께서 우리의 상처도, 실패도, 실수도, 과거의 부끄러운 죄도 다 사해주시고, 치료하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주 앞에 나와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여러분이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손을 내밀면 주님이 그 손을 붙잡아주시고 여러분의 모든 상처를 다 치료해주실 것입니다.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는 부흥사 무디와 함께 귀한 부흥 사역에 찬양 인도를 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 종입니다. 부흥사 무디가 전 세계를 다닐 때 생키는 찬양을 통해 영광을 돌렸고 평생 1,200편가량의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부흥사 무디와 생키가 스코틀랜드 대도시에서 부흥 집회를 열었을 때입니다.
그 집회에 한 소녀가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집 근처에 있는 교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너의 앞길을 인도해주실 거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글을 읽을 줄 몰라요.”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글을 읽지 못한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물론 한글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글을 읽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시골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글을 못 읽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걱정하지 말아. 네 모습 그대로 그냥 주님 앞에 아뢰기만 하면 주님이 너를 받아주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거야.” 그때 소녀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날 위해 죽으신 주님,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주세요.” 이 간증이 부흥사 무디에게 전달되었고, 부흥사 무디가 말씀을 전할 때 이 소녀가 구원받고 변화된 모습을 간증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해밀턴이라고 하는 분이 듣고 작곡을 해서 찬송가가 되었고, 이 찬송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그 예수 믿는 소녀가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구두 고치는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구두 고치는 분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예수를 믿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를 믿으라고 그래도 거절하고, 거부하고 성경책을 읽으라고 갖다 주면 성경책을 찢어버리고. 그래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눈물로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남편이 돌아오질 않아요. 예배드릴 때마다 “우리 남편 구원해주세요.” “우리 남편 구원해주세요.” 세월이 흘러서 남편이 기관지염이 병이 깊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간호하면서 예수님 믿으라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같이 천국 가자고 남편을 전도합니다. 남편이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부인 얘기를 듣지 않습니다. 와서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다음 그 찬송가 가사를 읽어줍니다. “날 위해 죽으신 주, 주님이 그대로 받아주실 거야.” 그런데도 이 남편이 고개를 젓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 여기 있다고. 읽어 보라고. 그 찬송을 펴주니까 눈이 침침해서 안보여요. 안경을 가져다가 주니까 보니까 “날 위해 죽으신 주, 날 받아주소서.” 그 말이 눈에 탁 들어왔어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두 주일 후에 이 분이 “나 이제는 참으로 행복해.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집으로 돌아와가지고 “날 위해 죽으신 주 날 받아주소서. 날 위해 죽으신 주 날 받아주소서.” 2시간 동안 그 말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고 천국에 갔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 날 위해 죽으신 주님이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찬 214장, 1절)>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부끄러운 손을 주님 앞에 내밉니다. 상처로 얼룩진 손, 실패와 고통과 괴로움으로 얼룩진 손, 부모에게 상처받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한평생 고통 속에 살아왔던 그 아픔의 손을 주님 앞에 내놓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내 모습 이대로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셔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지면보기
행복으로의 초대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