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기독교 핵심 진리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경험적으로 체험되는 부활
부활은 구원과 절대 희망을 주는 놀라운 은혜
기독교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이 근본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하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이 우리가 믿는 진리입니다.
1. 부활의 증거
마가복음 10장 33절로 34절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안식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을 붓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왔는데 주의 천사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구나. 그는 이곳에 있지 않고 부활하셨다. 그가 누운 곳을 와 보라”는 천사의 말에 무덤 안을 보니까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그가 벗어놓은 수의만 보였습니다. 여자들은 놀라서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야 겠다고 뛰어가는데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낙심한 두사람이 길을 가며 예수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놀라서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도마가 없는 열 제자들이 모인 곳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로 20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말씀합니다. 8일 후 제자들이 모였을 때 의심하는 도마에게도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로 27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일곱 제자와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를 잡지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물을 던졌더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고 하셔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축복 하시면 사람의 생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생선을 굽고 빵을 준비하여 제자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 잡는 일을 했으니 배가 고플 것을 아시고 빵과 생선을 구워서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던지 돌보시는 주님입니다. 택하신 이도 예수님이시요, 부르신 이도, 보내신 이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함 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불러주셨으므로 우리를 주님이 버릴 턱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고 난 다음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다가 세 번 부인한 쓴 체험이 있던 베드로를 위한 주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는 500명 사람들에게도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서 처형하려고 하는 사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이 되어 위대한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보면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처형시킨 빌라도는 ‘빌라도 보고서’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초기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예수님에 대해 “그는 메시야였다. 우리 유대인들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도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 중에 총독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는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조사하며 이에 대해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사실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한 사실을 인류사에서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가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예수님의 열 한 제자가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는데 거짓 이야기를 보고서 목숨을 버릴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 제자들을 만나주셨기 때문에 부활한 예수를 확실히 보고 체험했으므로 조금도 의심할 수 없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카트니 박사는 “죽은 예수를 살았다고 거짓말하면서 목숨을 바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안에 지금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때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고 기도할 때도 느낄 수가 있고 말씀 읽을 때도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알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내 속에 함께 계신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2.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한 사실을 알고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 생애속에 큰 변화를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무덤속에 주님이 같이 들어온 것입니다. 죄악의 무덤, 불결의 무덤, 질병의 무덤, 저주의 무덤, 사망의 무덤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그 무덤에서 우리를 끌어안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온 것은 나와 하나가 되려고 온 것입니다. 나와 함께 죄악의 무덤에 살았고 불결의 무덤에 살았고 질병의 무덤에 살았고 저주의 무덤에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무덤문을 박차고 부활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무덤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더러움의 무덤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병의 무덤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저주의 무덤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죽음의 무덤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무덤을 이기고 부활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64절로 66절에 보면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를 다 청산하고 죄를 용서하고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함과 성령 임재의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무덤에 들어갈 때 채찍에 맞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39대의 매를 맞으셨는데 요사이 과학자들이 발표하기를 모든 인류에게 있는 병의 대략을 줄기로 조사해 보면 39 가지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모든 병을 예수님께서 채찍을 통해서 다 청산하시고 무덤에 들어가서 부활할 때는 병을 벗어버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주의 말씀에 의지해 치료받았음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축복의 부활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풍부하게 하나님께 받아서 착한 일을 넘치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더불어 우리에게 누릴 수 있는 은총도 축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벌거벗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속에 ‘나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나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나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고 산다’고 입술로 말하십시오.
내 운명은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한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는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안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옷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2절에도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삶을 얻었습니다.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3. 구원과 희망의 복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구원과 희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이 오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희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수르 광야에서 마라의 쓴물에 나무를 던져서 달게 한 것처럼 오늘날 십자가를 우리 가슴에 품으면 십자가를 통해 모든 쓴물이 달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좌절, 미움, 분노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사망의 독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죄의 독, 부정의 독, 질병의 독, 저주의 독, 죽음의 독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위대한 치료의 능력을 그 속에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생명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과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사람도 멸망받고 심판받아 망하고 지옥에 들어가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해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 나가서 허랑방탕하여 완전히 죽게 되었을 때 회개하고 자복하고 아버지께 돌아옵니다. 그때 아버지의 환대를 보십시오. 그게 아버지의 마음, 곧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27살 때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제임스는 병이 악화되면서 자살의 유혹을 받고 발버둥치다가 어느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요한복음 11장 25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마음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께서 내 병 못 고치시겠느냐”는 신념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치료받는 것을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경쇠약증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변화되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신 증거로써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바람인 성령께서 우리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된소식을 전하시는 성령님, 마음속에 가난 의식을 버리고 축복 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는 마음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데 성령이 오셔서 마음속에 말씀하는 음성을 들으면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을 통해서 치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려서 심신이 고통스럽고 병든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셔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하나님이 은혜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영생을 복구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하나님의 새로운 삶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국민일보에 노숙자로 지내며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50대 남성의 간증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원래 건설업을 하던 그는 두 아들과 식당 일을 하던 아내와 함께 단란하게 잘 살았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녀서 안수집사도 되고 건축위원장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아내가 이단에 빠졌습니다. 이단에 빠지자 가정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낙심한 남편은 술을 먹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별거하게 되었고 아들들은 가출해 버리고 IMF가 닥치면서 직장도 잃어버리고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노숙자 쉼터로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성경책을 보았습니다. 순간 예전에 신앙생활 잘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게 되었고 즉시로 회개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술에 중독이 되어 노숙자가 된 저를 부활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게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자로 살던 삶을 완전히 청산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오자 해방시키는 놀라운 힘이 솟아오른 것입니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한국 전쟁 때 종군 기자로 참여하여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여기자입니다. 중공군이 쳐들어와 포위를 당해서 추운 겨울에 온갖 고생을 다하는 미군 병사들에게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병사는 슬픈 낯으로 “나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도스토예프스키는 “희망이 없이 산다는 것은 삶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용서받은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거룩하고 성령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심신이 치료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천당 복락을 누릴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가 희망을 우리 속에 가득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어둠에서 빛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희망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 모든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희망으로 부활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의 꽃을 피우게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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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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