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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2024.04.07 / 누가복음 7장 11~16절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누가복음 7장 11~16절)


오늘은 누가복음 7장 11절부터 16절까지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 절망의 삶을 살던 온 인류에게 절대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와 사망, 질병, 우리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의 결박이 풀리고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가 심판받고 이제 더 이상 우리를 죄와 사망의 노예로 붙잡아 놓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복 있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1. 깊은 절망에 처한 한 여인


오늘 성경에도 깊은 절망에 처한 한 여인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7장 11~12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예수님이 나인 성으로 가실 때 관을 메고 오는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한 불쌍한 과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며 관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살아가던 이 여인은 유일한 희망이자 삶의 의미가 남편이 남겨준 외아들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기억하는 것은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성도의 남편분이 그만 가게 앞에서 총을 맞아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종종 총기 사건이 있습니다. 한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문제는 죽은 사람이 영주권자인데, 그 부인되는 분은 남편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는 중이었는데, 영주권 신청자가 죽어버렸으니까 졸지에 그의 부인은 미국에서 적법하게 지낼 수 있는 신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하루아침에 국제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영주권을 받을 수 없게 되니까 그녀는 불법 체류자가 되었고,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정말 하루하루 고통과 절망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그저 유일한 기쁨이자 희망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교회에 예배드리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임한다고 고백하며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같은 절망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흔히 죽음을 두고 피할 수 없는 절망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강건한 몸으로 장수하면서 천년만년 살고 죽었으면 좋겠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죽음이 차자오는 것입니다. 이 사망이라는 것은 죄의 결과로 다가온 형벌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이같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 육신의 죽음과 질병, 이 땅에 저주와 가난이 형벌로 다가왔습니다.

 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2. 불쌍히 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수께서 그녀를 불쌍히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보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불쌍히 보신다는 원어의 뜻은 ‘자신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느낀다’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과부의 슬픔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을 느끼시면서 죄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는 우리의 아픔을 돌보시고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보실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보실 때 앞을 못 보던 맹인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동냥하며 살다가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예수님을 만나면 내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해야 하겠다’라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 

그때 마가복음 10장 47절은 말씀합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간절히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앞도 못 보는 거지가 뭘 소리를 치고 그러냐.”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예수님께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때 주님이 그를 부르시고 그를 불쌍히 보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 52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리고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한센병 환자를 불쌍히 보시고 다가가셔서 그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향해 “저 사람은 하나님에게 형벌을 받아서 저런 병에 걸렸다”라며 아예 상종하지 않고 다 피했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가족과도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멀리하고 그들을 쫓아냈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불쌍하게 보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40절 41절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모두가 그를 피하여 도망을 갔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손을 대시며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까 목자 잃은 양같이 너무나 그들이 불쌍해 보여서 주님이 간절하게 저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셨을 때 저녁에 뉘엿뉘엿 해가 저물 때 저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저들은 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래서 저희들이 가진 것 중에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갖고 나오니, 그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나눠주셔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열두 바구니가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38절, 41절에서 44절은 설명합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남자 어른만 5000명이 배불리 먹고 음식이 남았으니깐, 아마 여자와 아이를 다 합치면 약 2만명 이상의 많은 굶주린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눠주신 귀한 음식으로 채우고 배불리 먹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불쌍히 보시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로 고통 가운데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이 잘될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도 안 될 때는 사람을 슬슬 피합니다.

 옛날에 크게 사업하던 분이 있는데, 사업을 잘될 때는 그렇게 손님도 많이 오고 명절 때가 되면 선물도 많이 오더니, 그의 사업이 망하고 나니까 그 흔한 사과 상자 하나도 오지 아니하고 발걸음이 끊어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인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절망에 처할 때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중병에 걸려 고통당할 때, 많은 문제로 어디서도 문제 해결을 얻지 못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주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절망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나를 고난에서 건져주시옵소서,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나를 불쌍히 보시옵소서.”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과부를 불쌍히 보셨습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그 고통으로 불쌍하게 보시고 관에 가까이 가셔서 손을 대시며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14절 15절입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조금 전까지 통곡하고 울며 어깨를 쫙 늘어뜨리고 모든 희망을 잃고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과부. 그 어머니가 눈앞에서 아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 펄쩍펄쩍 뛰면서 두 손을 들고 ‘할렐루야 만세!’를 부르면서 예수님 앞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인사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이 그가 보는 앞에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과부를 불쌍하게 보시고 그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면 어떠한 절망도 문제도 고통도, 괴로움도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됩니다. 문제가 변하여 응답으로 다가오고, 질병이 변하여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 되시고 우리의 진리가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절대 희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놓여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16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우리는 한평생 감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본분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의 신앙, 우리에게 주어질 모든 축복도 서서히 우리에게서 떠나기 시작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첫날부터 하늘나라 갈 때까지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고난에 처하고 내가 몸이 아파 질병 가운데 있을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감사하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가 그곳에서도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옥문을 흔들어버리시고 문을 열어젖혀 주시고 손과 발에 매인 모든 것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이 같은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한국 대학생선교회를 창설하신 김준곤 목사님이 사랑하는 딸을 천국에 보내고 나서 쓰신 책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네명의 딸 중에 유독 연약했던 둘째 딸 신희가 1982년 4월 26일 29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 딸의 죽음에 대해서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라고 하는 책을 내셨습니다.

 둘째 딸 신희가 어린 두 딸을 키우면서 미국 유학 가 있는 남편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하루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보니까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너무 늦어서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암이 그의 온 몸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의사와 상담을 했는데 “그래도 한번 수술하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1981년도 12월 10일에 개복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집도를 맡은 의사에 따르면 위를 열어보니 너무 암이 퍼져서 수술하지 말고 그냥 덮어버릴까 고민하다가 수술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위와 비장 전체를 다 잘라내고 간장 일부와 췌장 일부까지 잘라내고 소장 일부를 잘라서 위가 없으니까 대용 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술 끝나고 나서 그 의사의 말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앞으로 살날은 5달에서 6달 정도입니다.” “다시 살 확률은 없습니까?” “백분의 일, 천분의 만분의 일도 없습니다.” 왜 수술했는지 모르겠어요. 수술해서 온몸을 다 잘라냈으니 그 통증은 어떻게 견딜 것입니까?

 그로부터 167일 동안 그녀는 죽음의 고통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극한 고통 가운데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갔습니다.

자기 딸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김준곤 목사님은 딸에게 죽음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말을 꺼냅니다.

“신희야, 너 주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남편과 두 딸에게는 남길 말도 녹음해 둬야 하겠다. 네 딸들의 양육은 조금도 염려마라.”

“아빠 고마워요. 사실은 진작부터 그 일을 부탁드리고 싶었지만 미안해서 말씀 못 드렸어요. 내가 죽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주님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는 것이 걱정일 뿐이에요. 그런데 고통이 무서워요.”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데 성령이 그 딸에게 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감에 찬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 기도 구구절절 목사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주님 만일 다시 살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면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주님이 잘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어떤 잔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마시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내 고통과 눈물이 기도가 되고 찬송이 되게 해 주십시오. 고통의 잔은 감당할 힘이 없사오니 주님이 책임지고 감당해 주십시오.”

죽음을 앞둔 그 딸의 가장 큰 고통은 참을 수 없는 통증이었습니다. 진통제를 먹어도, 모르핀을 맞아도 통증이 너무 심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통증이 한 번 오면 온몸이 너무나 아프고 힘들어서 온몸을 비틀면서 “주여! 주여! 주여!”라고 외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기도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며 순종을 결단하는 그 마음이 생겼을 때 하나님이 그들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가장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님이 빼앗아 가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목사님은 그 순간 주님이 빼앗아 가는 손보다 다른 손에 준비한 것을 보았습니다. 신희를 빼앗아 간 다른 손에는 주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소망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은 주님에 대한 절대 사랑과 신뢰,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는 그 믿음을 주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아비 된 자로서 12번이라도 자기 딸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었지만 고통과 죽음만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신희를 대신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님은 살아계셨다. 주님은 사랑이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다. 내 딸이기 이전에 주님 딸이다. 내가 사랑하기보다 주님이 더 사랑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신희가 이 세상에서보다 천국에서 더 필요하셔서 더 좋은 곳으로 최선의 것을 예비하시고 높이 쓰시려고 특별 고통 코스로 특별 연단을 시켜 특별히 불러 가신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고통의 날을 보내던 신희의 끊임없는 기도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님을 찬송하게 하옵소서.”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고통과 싸웠습니다.

신희가 세상을 떠난 날 아침 8시에 목사님이 병원에 가서 기도해 주고 나올 때 사모님과 신희가 잠든 모습을 보고 나오는데, 병실을 나가려고 하는 순간 신희가 손을 들면서 “아빠, 아빠.” 부릅니다. 그래서 다시 달려 들어가니까 “기도, 기도.”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 주고 나올 때 또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병원에서 나와서 사무실에 막 도착했는데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간호사가 전화를 했는데 “따님이 지금 곧 숨을 거둘 것 같다”라고 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급히 병원에 가니 딸이 숨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몸에 붙은 모든 파이프를 다 떼어내고 딸의 손을 잡고 있는데 딸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면서 몸이 굳어져 갔습니다.

딸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십자가상의 주님을 쳐다본다. 가시관 밑으로 피가 빗물처럼 줄줄 흐르고 있다. 이윽고 한 기적이 일어났다. 깊고 깊은 존재의 밑바닥, 주님이 뚫어버린 지하에서 지하수가 솟듯이 세미한 음성으로 한 찬송이 터지고 있었다. 찬송의 영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내 찬송이 아니다. 내 속의 성령이 나 대신 부른 찬송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계셨다.

딸이 죽는 그 순간, 주님이 주신 마음의 평안함과 함께 ‘거기 너 있었느냐 그때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있을 때’ 그 찬송이 마음속 깊은 곳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그 찬송이 마음속에 울려 퍼지면서 딸을 조용히 천국에 보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딸을 유해실에 맡겨놓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이 남긴 어린 두 손녀, 큰 아이 정하는 5살, 둘째 아이 수연이는 3살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묻습니다. 엄마는 어디에 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오셨냐고 묻습니다.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수님이 데려가셨어.” 5살짜리가 3살짜리가 죽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수님이 데려가셨어.”
“어디로 데려갔지?”
“하늘나라로 데려가셨단다.”
“어떻게 올라갔어? 줄을 내려 올려갔어?”
“...”
“그럼, 언제 다시 데리고 오시지?”
“이담에 너희들이 크면 예수님이 오실 때 데리고 오신단다.”

큰딸 정하는 친구에게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 가셨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둘째 딸 수연이는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먼 하늘만 쳐다봅니다. 그 아이들이 다시는 ‘엄마’라고 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딸을 천국에 보내면서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내 속된 세상 욕심을 95%쯤 내세적 소망으로 꽉 채워주고 간 신희는, 주님이 더 사랑해서 더 필요해서 더 좋은 곳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데려가셨으니 더욱 찬송하기만 할 뿐이다. 공동묘지 길이 언덕 밑 귀퉁이 땅에 신희처럼 미안하게 자리잡고 ‘고 김신희의 묘’라고 쓴 동그랗고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나의 세상 욕심도 묻어버린 곳이다.

딸의 죽음조차 부활 신앙으로 승화시켜 믿음으로 승리한 우리 김준곤 목사님. 그는 수많은 젊은이를 훈련시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어떤 절망의 순간이 다가와도 부활 신앙을 갖고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에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맡기신 귀한 사명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숨 쉬는 동안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주님께서 맡긴 사명을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꿈을 갖고 주님 오실 날을 바라보며 우리 찬송 490장을 함께 하겠습니다.

<찬송가 490장 (통 542장) : 주여 지난밤 내꿈에> 

1절 주여 지난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2절 마음 괴롭고 아파서 낙심될 때
내게 소망을 주셨으며
내가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니 
앞길 환하게 보이도다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 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 되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것밖에 없는데, 사소한 세상의 일을 가지고 내 개인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서 내가 뭐라고, 내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상처받았다고 분노하고 다투며 살았던 저들의 연약함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고, 딸의 죽음조차도 부활 신앙으로 승화시켜 믿음으로 귀한 역사를 이루신 목사님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삶을 살다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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