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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2024.03.24 / 이사야 53장 4~5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4~5절)

오늘 저는 이사야서 53장 4절 5절 말씀을 가지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이번 한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이 오늘입니다. 오늘은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겉옷을 펴서 깔고 예수님을 맞이해서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사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월요일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셔서 장사꾼을 내쫓으셨습니다.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화요일에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하셔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시고 또 말세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수요일에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려 주님께 부은 그 아름답고 귀한 행적이 기록되어 있고, 목요일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인데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전해주신 다락방 강화, 마지막 설교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을 읽어보면 이때 하신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내가 가면 성령을 보내주겠다.”

 그리고 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끝나자마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십니다. 기도하시고 내려오셔서 붙잡히셔서 그 한밤중에 안나스 전 대제사장 집에 끌려갔다가 그다음 가야바 현 대사장에게 다시 와서 심문을 받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밤에 자고 있는 빌라도를 깨워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데리고 가니까 빌라도가 헤롯왕에게 예수님을 보내고, 헤롯이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어 예수님은 밤새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하다가 새벽 6시에 사형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금요일에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시고 운명하십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들어가셔서 토요일 하루 쉬시고 주일, 다음 주일이 부활주일인데 동트기 전 한 새벽 3시 반 4시 사이에 주님이 부활을 하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고난주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뜻 깊게 보내는 한 주 되기를 바랍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을 경험하며 일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어머님의 산고를 통하여 그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수시로 감기도 걸리고 또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피도 나고 다치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병약한 것 같아도 그런 잔병을 치르면서 점점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런 고난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머님의 산고의 고통은 아이를 낳는 어머니 외에는 그 고통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병치레하는데, 그 병치레하는 것을 다른 아이가 대신 앓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 가운데 단 한 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고난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의 고통을 대신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겪을 것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멸시 천대 받을 것을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과 슬픔을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셨지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서 우리가 받을 모든 고통과 고난을 대신 겪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다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을 우리 기독교의 신앙 가운데 발견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에서도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고난과 죽음을 맞이한 경우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친히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처럼 주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아주 생생하게 예수님이 받을 고난을 눈에 보는 것처럼 기록했습니다. 
 

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5절 이하에 그 기록이 나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그가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머리에 가시가 찔려 피를 흘리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7절입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양손과 양발에는 대못이 박혀 그 대못에 두 손과 두 발이 피가 철철 흘러내렸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5절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병사가 와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입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손과 두 발에 박힌 대못으로 인하여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고통 가운데 주님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이 같은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시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렇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신하여 머리를 가시관에 찔려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손과 발로, 우리의 행위로 지은 죄를 대신하여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마음이 잘못한 것들을 대신하여서 심장 옆의 옆구리에 창으로 찔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예수님께서 온몸이 찔리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2.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이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여기 상했다고 하는 표현은 피부가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 원어 ‘메둑카’라고 하는 원형 ‘따카’의 의미는 뼈가 완전히 부스러지는 치명적인 상해를 말합니다. 공동번역은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 몸이 이렇게 으스러지도록 상하신 것입니다. 
 

3. 그가 징계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나아가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려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의 그 징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던 모든 죄로 인한 담을 허물어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여 평화를 누리는 관계로 우리를 회복시켜 놓은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원수였지만, 예수님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죄의 담을 허무심으로, 대신 징계를 받아 그 담을 허무심으로 우리 삶 가운데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 17절은 설명합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피를 뿌려 죄사함을 받는 의식을 하는데,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은 큰 휘장은 1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져서 둘로 갈라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1절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이 무너지고 휘장이 열려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호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된 은혜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으므로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한 관계가 되어서 이제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제가 왔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은 설명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4.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도다


나아가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예수님을 때린 채찍에는 끝에 쇠꼬챙이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또 뼛조각이 붙어 있어서 한번 등을 때리면 살점을 파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온 등이 이 채찍에 맞아서 갈라지고 살점이 파이고 피가 뚝뚝 흐르는 그런 고통을 주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심문을 당하실 때 그를 침을 뱉고 주먹과 손으로 때리고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0절입니다.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시면서 얼마나 그 고통이 크셨던지 몇 번이고 쓰러지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들이 등을 채찍으로 쳐서 온 등이 갈라진 틈으로 피가 더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 인간을 모든 죄의 결과로 다가온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이같은 고난을 주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설명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마음의 병, 육신의 병에서 이제 놓여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면 우리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고 풍성히 얻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든 마음의 병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육신의 병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몸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이와 같은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은 설명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한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 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다가오는데 예수님의 그 고난을 바라볼 때 우리가 이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가 당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고 떠난 폴 알렉산더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2주 전에 이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온 미국 매스컴이 주목하고, 뉴스에 이분의 얘기가 곳곳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이분은 1946년 1월 30일 달라스 텍사스에서 태어나서 바로 두 주 전 3월 11일 달라스 텍사스에서 세상을 떠나신 분인데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그의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이 발명된 것은 1955년, 그 후 그가 소아마비 앓고 난 3년 후에 백신이 개발됐고, 이때 소아마비 백신 나오기 전에 소아마비 걸린 사람들은 몸이 목 아래가 다 마비가 돼서 그래서 이 병으로 대부분 어린아이 때 죽어갔습니다.

제대로 호흡을 쉴 수 없기 때문에 ‘아이런 렁’이라고 하는 철통을 만들어서 그 안에아이들을 집어넣어서 아이들이 숨을 쉬게 했습니다. 이 철제 산소통은 병원에서 아이들이 호흡을 할 수 있게끔 원통 내부에 진공 상태를 만들어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준 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알렉산더의 상태를 본 의사들도 그가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부모님이 기도하는 부모님이셨습니다. 우리 오순절 교회, 순복음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아마비로 죽어가는 아이를 붙잡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살려주셔서 이 아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때로 교회에 나와서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로 통곡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기도로 아이가 믿음을 갖고 이 고난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긴 플라스틱 막대기를 이용해서 입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철제 산소통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잠깐씩 밖에 나와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휠체어를 또 만들어서 그곳에서 잠시 잠깐 쉬기도 했습니다.

이 철제 산소통에 들어가서 생활한 것이 72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정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21살 나이에 고등학교를 전교 2등으로 졸업을 합니다.

할렐루야! 그가 가진 장애로 인해서 대학에서 받아줄 수 없다고 하니까 입학 관계자와 계속 자기를 봐달라고 논쟁을 해서 2년 후에 달라스에 있는 남감리교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다시 달라스의 명문인, 남쪽의 명문인 텍사스 대학에 남부 하버드로 불리는 이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에 입학을 해서 1978년 경제학으로 학사학위를 받고, 1984년에는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가정법 및 파산 전문변호사로 달라스와 포트워스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는 온몸이 마비돼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입에 도구를 물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또 책을 썼습니다. 정말 그 키보드를 하나씩 눌러가면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에 펜을 물고 성경을 넘기면서 성경을 읽고, 그래서 그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도 고난의 자리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부모가 절대긍정의 신앙으로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말을 해준 덕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꿈을 주시기 바랍니다. 긍정의 메시지로 자녀를 변화시키고 자녀에게 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많은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평생을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그것은 그저 말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랑을 받아보면 그것이 정말로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아무나 우리 부모님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분들은 정말로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습니다.”

부모님이 늘 붙잡고 기도하면서 꿈과 희망을 주고 “할 수 있다! 하자! 해보자!”

그래서 그는 철통에 갇혀서 몸만 움직이면서도 변호사가 돼서 변호사 일을 보고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기네스북에 72년 동안 세계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로 기록이 되고 78세를 일기로 2주 전에 주님 품에 안기게 된 것입니다.

한때 아이런 렁이 고장이 났는데 이 기계가 단종돼서 고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가 유튜브에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알리고 또 그걸 본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줘서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기계를 고쳐서 또 생명을 연장하고, 그 이후로 유튜브 틱톡을 통해서 그는 긍정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책도 내고 해서 많은 사람이 이분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11일 78세를 일기로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마는 수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삶의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도구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고 주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여기 있나요? 당신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삶에는 목적이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 이 질문이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사지가 멀쩡한데 이렇게 온몸이 마비되었으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많은 사람을 절망에서 건져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절망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의 사랑을 들고 그들에게 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250만 다문화 가정을 주의 사랑으로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을 주의 사랑으로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탈북자들, 노숙자들, 미혼모 자녀를 둔 가족들, 우리가 주의 사랑으로 다 품어서 이웃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뤄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가 461장 (통 519):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 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4절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이 귀한 인생길에 예수님 만나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정말로 우리 삶 가운데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 있도록 주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어주시고 하나님의 귀한 일을 이루게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고난 중에서도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이 귀한 폴 알렉산더의 간증처럼 우리도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선한 영향을 끼치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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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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